동아신춘문예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음악세계

by  김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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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사평
  • 당선소감
  • 1. 서론 - 현대 클래식음악계의 양상

    세상에는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물질적인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들이 인간의 삶을 항상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욱 편안한 것을 쫓으려고 하고 있고, 그러한 경향이 거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인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예술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 본래의 기능으로 파악되던 인간심성의 정서적 순화, 혹은 미화는 잃은 채 마치 대중문화처럼 사람들의 감각을 만족시켜 주는 데에 급급한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것은 고도로 분화되고 자본주의화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삶의 자발성을 상실한 채 생존에만 급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개인이 사회와 삶의 중심부에서 자신을 찾으려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삶을 망각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감각적인 것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것에 기인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에 대한 기호는 감각적이며 그저 피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키취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인데, 예술이 상품화되어가는 사회구조 현실에서 본래의 순수예술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구조는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작곡가, 연주가, 청중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서양음악사를 통해 본다면 베토벤 이후에야'예술을 위한 예술'이 가능한 사회로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낭만주의 이후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어려운 작품으로 인해 연주가와 작곡가는 더욱 전문화, 분업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음반산업의 발달은 클래식 음악계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음악사회의 모습 또한 많이 변모해나가고 있다. 거기에는 많은 장단점이 존재하나, 클래식 음악계가 소수의 연주가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폐쇄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되었고, 많은 청중들은 음악의 아름다움에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양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이유는 현재의 음악사회구조에서 대다수의 청중들은 동시대의 음악과는 분리되어 있으며, 과거의 음악에만 고착되어 있고, 또한 음악감상에 있어서도 소수 연주가에 의해서만 획일화되어가는, 감상자로서, 수용자로서의 주체를 상실하는 과정에 놓여있으며 이는 클래식음악계의 모습이 마치 매스미디어의 광고에 의해 좌우되는 소비사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연주자가 녹음한 음반은 더 이상 한 예술가의 창작품이 아닌,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생산품'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 현대 음악계의 모습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음악계의 상황으로 비추어보아 앞으로의 연주자와 청중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성을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수 밖에 없는 미래에 도달하고 말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가능할 수 밖에 없다.



    2. 연주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

    현재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큰 역할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 연주가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부언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많은 청중들은 공연과 음반의 선택에 있어 작품보다도 연주가를 우선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계의 많은 현상을 변화시키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은 다름 아닌 연주가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음악계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환경의 변화가 음악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나, 음악을 해석하고 재창조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연주가상에 비추어 본다면 음악에 있어 연주가의 책임과 역할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연주가의 역할은 이렇듯 작곡가와 청중을 연결해 준다는 단순한 매개자의 의미가 이제는 크게 확장되어 때로는 특정 작곡가보다도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파악되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훌륭한 작곡가들은 대부분 피아노를 포함한 한가지의 악기에 있어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기도 했으며,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연주한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음악인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으로 인해 작곡과 연주에 모두 임하는 경우는 예외적이며 특수한 경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시대의 연주가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역할은 음악을 피상적이며 감각적으로 대하는 애호가들을 포함한 청중들에게 그들이 가능한 망각하려고 하는 삶의 중심을 바라볼 수 있는 변화 즉, 감동이 가능한 연주를 들려주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음악적 경험을 통해서 점점 부속화 되어가고 사물화 되어가는 개개인의 삶으로부터 주체성을 회복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삶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순수예술로서의 음악이 아닌 상업성에 영합하는 감각적이고 저급한 '상품화된 문화'와의 변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는 문학이나 미술처럼 구체적인 표현언어가 아닌 '음(音)'이라는 추상언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앞서 말한'사회와 삶을 직시'하도록 도와주는'구체적 의미'로 전해지기란 어렵다. 많은 연주가들은 날로 뛰어난 테크닉과 나름의 개성으로'새로운 베토벤'을 들려주려 애쓰고 있지만, 오늘날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이'예술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단순히 연주해석 측면의'새로움'만으로는 부족하다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음악적, 사회적 상황에서 한 연주가의 베토벤 연주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단순히 악곡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기교적인 과시를 통해 느껴지는 음악적 쾌(快)를 넘어서 베토벤의 연주속에 현대사회상의 파악을 통한 '사상적인 감정'이 이입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추상적이나마 이러한'사상적 감정'에 기반을 둔 연주를 통해 청중은 한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으며, 연주가로부터 감동, 감화되는 정서적 반응을 통해 연주가와 함께 동시대인으로서 삶을 의식적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순수예술 본래의 기능을 다하게 되는 것이라 본다. 이렇게, 음악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순수예술적 기능 회복의 가장 중요한 주체로서 연주가를 상정한 필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음악세계를 고찰해봄으로써 이 혼란한 시대에서의 바람직한 예술가상을 미약하나마 정립해 보는 계기와 함께, 백건우의 음악세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시론(試論)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3. 백건우의 음악적 발자취와 활동시기 구분

    a. 연주회 자료

    대표적인 국외 연주회

    1972 뉴욕 / 라벨 피아노곡 전곡 연주회
    1974 파리 / 무소로그스키 피아노곡 전곡 연주회
    1982 파리 / 리스트 피아노곡 연주회(총 6회 50여곡)
    1991 폴란드 /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연주회(전 5곡)
    국내연주회 (*필자가 참석했던 연주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음)

    1992. 7.7.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성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마리스 얀손스)
    1993. 3.24-27 서울 KBS홀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회
    (KBS교향악단, 지휘:박탕 조르다니아)
    11.16-29 창원, 광양, 춘천, 안동, 대구, 서울, 울산 / 리스트, 부조니 피아노곡 연주회
    1995. 10.16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
    (서울시립교향악단 제 533회 정기 연주회)
    1996. 대구, 전주, 창원, 여수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
    서울, 대전, 부산, 광주 /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9.2 ,4 ,6(3일) 서울 명동성당 / 메시앙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전곡
    (*한국 초연)
    12.9 서울 예술의 전당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오슬로 필하모닉, 지휘:마리스 얀손 스)
    1997 서울, 부산, 대구 /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광주, 전주, 대전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LG정유 주관 푸른문화예술축제)
    1997. 9.28 서울 예술의 전당 / 베토벤/리스트 교향곡 제9번 <합창>듀오 연주회
    (피아노:후세인 세르미트)
    1998. 3.25 서울 예술의 전당 / 라벨 피아노 곡 전곡 연주회
    1998. 6.1 서울 명동대성당 / <평화의 집>돕기 자선음악회
    1998. 11.16 세종문화회관대강당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러시아 내셔날 오케스트라, 지휘:미하일 플레트네프)
    b. 음반자료 (*국내에 발매된 음반들)

    라벨 피아노 작품 전집 1975 / Dante
    라벨 피아노 협주곡 전집 1981 / Orfeo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 1991 / Naxos
    (*프랑스 디아파죵상 수상)
    리스트 피아노 곡집 1991 / Virgin
    프랑스 작곡가 소품집 1991 / Virgin
    스크리아빈 피아노 작품집 1992, 1993 / Dante
    (*프랑스 디아파죵상, 누벨 아카데미 뒤 디 스크 수상)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집 1993 / Dante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집 1993 / Dante
    멘델스존 무언가집 1994 / Dante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 1998 / RCA
    c. 백건우의 활동시기 구분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946년 5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파리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전세계 무대를 누비며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어머니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고 교사였던 아버지는 서양문화에 조예가 깊은 아마츄어 음악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양음악에 친숙할 수 있었으며, 10살때 최초의 독주회를 가졌고, 12살 때는 당시 국립교향악단 (*서울 시립교향악단의 전신)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으로 협연무대를 가졌다. 15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에서 공부하고, 나움베르크 콩쿨, 레벤트리트 콩쿨, 부조니 콩쿨등의 국제콩쿨에 입상하여 세계적인 연주가가 되기 위한 발판을 다지기 시작했으며, 1972년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연주를 통해 세계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 작곡가씩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전곡연주등의 심도있고, 무게있는 연주회를 주로 가져온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활동시기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습시기 -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8살 때 부터 배재중학을 졸업하고 도미하여 줄리어드 졸업한 시기
    국제무대데뷔기, 미국 거주시기 - 카네기홀 데뷔, 레벤트리트 콩쿠르, 나옴버그 콩쿠르 입상, 1969년 부조니 콩쿨 우승한 시기. 26살(1972) 때 라벨 전곡 연주 (라벨을 필두로 사티, 드뷔시, 뿔랑, 무소로그스키, 프로코피에프, 리스트, 바르톡, 모차르트, 슈베르트, 스크리아빈, 메시앙등의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을 집중탐구 연주해 오고 있다.)
    축적기, 파리 거주시기 - 거주지 파리로 옮기고 연주횟수 줄임, 레파토리 확장
    녹음기, 재활동시기 -1991년 이후로 집중적으로 레코딩을 시작하였으며, 과거에 연주했던 레파토리들을 한 단계 높은 완성도로 연주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름
    부족하나마 이상의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백건우의 연주경력은 무엇보다도 연주가로서의 주관과 그 세계가 뚜렷하다고 보여지며, 항상 쉼없이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다. 콘서트 피아니스트 이외의 다른 활동은 전혀 해 본 이력이 없는 전문연주가로서의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 이는 연주예술가로서의 소명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굳은 노력에서 가능한 사실임을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지극한 완벽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주로 연주회를 통해 활동을 해오다가, 90년대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레코딩을 시작했으며, 92년도에 스크리아빈 음반이 프랑스의 디아파죵상을 수상하면서 더욱 주목 받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4. 연주회와 음반을 통해 살펴본 백건우의 예술세계

    a. 한 작곡가의 작품세계의 근본을 파고드는 탐구자

    백건우가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6살 때 라벨 피아노곡 전곡 연주를 하면서이다. 라벨을 필두로 하여 특정 작곡가의 집중탐구 연주는 드뷔시, 무소로그스키, 리스트, 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메시앙등의 작곡가로 이어져 최근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이라는 결실을 맺으며 이어져 오고 있다. 한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을 전곡연주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연주행위인데, 한 두 작곡가가 아닌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전곡연주 형식으로 집중탐구함으로써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백건우의 연주행위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연주계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 주요 연주회와 음반에 관한 자료는 3-a,b 참조) 최근 국내에서 20여년만에 다시 가진 라벨 피아노곡 전곡연주회(98년 3.25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는 두 번의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준 바 있다. 이날의 공연은 국내음악계에도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켜 전석매진이 되었으며, 연주가 끝났을 때는 많은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연주회를 통해 미래의 클래식 음악의 상황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국내의 여러 악조건과 클래식 분야가 침체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연주의 수준이나 질이 높은 경우에 청중들은 그러한 연주자와 연주회장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고로, 연주회의 외형적인 형식의 변모나 대처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청중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음악에 대한 요구를 눈뜨게 해줌과 동시에 그 요구를 채워주며,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가 준비된다면 순수예술로서의 클래식음악의 미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의 예술적 상황에서 한 연주가가 자신의 음악적인 세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많은 유혹과 험난한 장애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백건우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커다란 계기는 스크리아빈의 피아노곡 녹음에 있었다. 이 음반은 '스크리아빈의 세계와의 친화, 철학적인 심리학적인 차원을 이해하고 소화해내었다.'는 국제적인 평을 얻으며 프랑스의 '디아파죵상'과 '누벨 뒤 디스크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스크리아빈 전곡녹음은 현재 중단되어 있고, 두 장의 음반만이 발매되었다.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인간의 선과 악을 강하게 노출시키고 있어, 스크리아빈의 음악에 오래 머무르기가 어렵다.'는 것이 백건우의 말이다. 또한, 그는 1982년 파리에서 리스트의 작품 50여곡만으로 6회에 걸친 연주회를 준비할 때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리스트의 전작품을 수집했으며, 리스트에 관한 수십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4년의 시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회 (1993. 3.24-27 서울 KBS홀/ KBS교향악단, 지휘:박탕 조르다니아)후에 계속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마하여, 동양인 최초로 전곡녹음을 한 사실등을 통해, 백건우는 한 작곡가의 작품을 대할 때 총체적으로 작품과 작곡가의 세계의 심층에 깊이 머무르며, 음악주변적인 상황에 대한 방대한 탐구작업을 해나가는 연주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작곡가와 작품의 근본에까지 파고 들어가려는 그의 노력을 통한 연주로 일반인들에게는 무겁고 어려운 레파토리를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중들로부터 음악적인 공감을 얻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b. 합일(合一)의 장(場)으로써의 연주회장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

    흔히들 청중들은'음악속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표현을 한 연주회에 대한 최상의 찬사의 표현으로 사용한다. 이렇듯, 다른 예술장르와는 달리 연주회장에서의 음악이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하면서도 득특한 점은 바로 예술을 행위하는자, 즉 연주가와 직접 만나며, 그가 연주하는 음악속에서의 합일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경우 연주가는 자신이 연주하는 작품과 청중과의 합일의 매개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아마도 이것을 완전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일은 미학과 물리학의 상호연구를 통해 가능한 과제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합일의 경험이 '열림'의 형식을 통해 가능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열림'의 주체는 연주가 뿐 아니라, 청중의 총체적인 '열림'이 있어야'합일'의 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연주회장에서 '열림'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열쇠이자 매개는 바로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소리, 즉 악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유일한 매개인 악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에 의해 연주자와 청중이 합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소리에 '열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연주회장에 앉아있는 각 청중의 '들음'은 모두 다를지라도, 청각을 통해 강력히 호소하는 음악을 통해 청중은 나머지 다른 감각을 자발적으로 열게 되고, 이것이 바로 '열림'의 형식으로 이어져 '합일'의 체험을 가능케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음악이 매개가 되어 경험하는 '합일'의 경험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은 설명의 필요가 없으며, 또한'존재의 기쁨'이라고 할 것이다. 연주회장에서 이러한 합일의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주자에게 그러한 '합일'의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지와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백건우의 연주활동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에게는 한 연주가로서 그러한 의지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 것은 지난 '베토벤 / 리스트 교향곡 제9번 <합창>듀오 연주회(*한국초연, 피아노:후세인 세르미트, 97년 9월 2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 )'를 통해서였다. 리스트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해 놓은 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 <합창>은 두 명의 피아니스트에게 어려운 기교적인 극복과 함께 본래의 곡이 지니고 있는 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그 연주의 의미가 산다고 할 수 있는 곡인데, 백건우와 후세인 세르미트는 이 곡의 4악장에 지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고독속에서의 연대감의 회복을 힘차게 노래한 작품'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으로 연주되는 원곡의 의미와 감동을 두 대의 피아노로 충실하게 표현하였다. 이는 연주가로서 백건우의 중요한 특질이자 일면이기도 한데, '삶의 불안과 그것을 부정하고서 떠올라오는 고독속에서의 연대감의 회복'이라는 과정은 백건우가 연주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원동력중의 하나라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c. 인간의 참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피아니스트

    한 연주가의 정신적 측면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연주라는 행위가 어떤 사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구체성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연주가의 연주행위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주가의 정신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백건우는 많은 인터뷰를 통해 '예술가란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역설해오고 있다. 그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다가, 예술가란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든지, 예술가의 길을 모색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활동을 해오다가 예술가란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든지 간에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연주이외에 다른 활동은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보면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참모습'은 역시 그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담겨있다 할 것이다. 만일 그가 깨달아서 결론에 도달한 인간의 참모습이 구체적이고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보다 구체적인 글이나 그림을 통해서 그것을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활동을 통해 주관적이나마 파악될 수 있는'인간의 참모습'은 결코 고정적이거나,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백건우의 예술세계에 대해 앞서 설명을 한 것처럼, 백건우가 추구하고 펼쳐보이고 있는 연주세계와 마찬가지로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참모습은 '크고 하나된 열려진 가능성의 존재'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며,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1996년 9월2일 4일 6일, 서울 명동성당, 한국초연)의 연주속에서 그러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주자 스스로 "음악적, 심리적인 것 뿐 아니라 종교적인 차원까지도 체험할 수 있는 이 곡을 대할 때마다 기쁨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이 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순수한 참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라고 얘기했던 2시간이 넘는 난해하고 장대한 이 현대곡의 연주를 통해 백건우는 빛과 생명이 넘치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과 순수한 기쁨'을 그려냄으로써 명동성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 모두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백건우에게 있어서 인간의 참모습이란 '객관적으로 파악되고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마치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레파토리와 새로운 연주를 청중에게 들려주고 있듯이, '미래를 향하여 열려져 있는 존재','하나로 융화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며, 이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적인 인간관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백건우의 정신적인 측면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의 연주는 음악을 통해서 종교성을 체험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연주회였다.



    5. 맺음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예술에 있어 상반된 예측과 걱정이 공존하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문화예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과, 순수예술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심각한 걱정이 그렇다. 최근의 현대예술은 청중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안식을 주기보다는 혼돈만을 제공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 그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연주라는 행위는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이 시대에 계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큰 영향력을 가진 예술행위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그동안 들려준 그의 음악세계 뿐만 아니라, 그가 걸어온 삶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불가능'과 '안주'란 있을 수 없는 것 처럼 여겨진다. 적어도 연주회장에서의 연주가란 청중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떠한 속임수도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연주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내면에 있어야 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그 무엇'이며, 그 무엇이 풍요롭게 자리하고 있는 상태에서 연주를 들려주었을 때 청중은 무언의 감동과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절실한 생명'의 모습일 것이다. 혼란한 이 시대를 차갑고 날카롭게 분석하여 절망을 우리앞에 내어놓는 것이 아닌, 점점 무감각해지고 차가워지는 현대인의 냉소적인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하여 생명으로, 생명으로 숨쉴 수 있게 하는 생명력이 참으로 이 시대의 연주가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며, 혼란한 예술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항상 청중과 연주회장에서 만난다는 연주예술행위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상업주의의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술분야중에서 그래도 연주행위에는 여전히 희망이 살아숨쉬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의 바탕은 그 무엇도 아닌 연주가, 곧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그러한 희망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희망을 걸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인 것이다.
    김동준

    김동준

    1970년 서울 출생

    국민대 공업대지안학과 졸업

    현재 PC통신 하이텔 '클래식피아노연구회' 대표시삽

    조이 피아노 앙상블 대표

  •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음악세계>을 뽑고나서

    - 김춘미


    올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모두 평론가적 자질이 풍부했다. 비록 이번에 당선되지 못했더라도 지속적인 글쓰기를 했으면 싶다.

    이헌의 경우, 유려한 필치와 선명한 논리, 그리고 20세기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가 놀랍고 흥미로웠다. 그러나 주창한 내용의 근거가 약하고 미국의 한 사회학자의 글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 양지영은 부르디외의 '장의 개념'을 도입한 것은 좋았으나 제 3세대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과 사회학적 논리를 하나로 녹이는 작업은 역부족으로 다가왔다. 김은경도 대중음악의 저항성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가벼운 저항과 문화산업 사이의 관련성 탐구가 부재하고 대중가요의 저항을 너무 상식적인 차원에서 단순화한 것이 흠이었다.

    결국 올해의 당선작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현재 한국 클래식 연주계의 문제를 무리없이 전개시킨 김동준에게 가게 되었다. 김동준의 글은 논리가 정연하다거나 시각이 새롭다거나 어휘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자신이 경험한 문제를 진솔하고 소박한 언어로 그려냈다. 이런 점은 강하고 비판의 수위가 높아야 평론이 된다는 통념에 반성의 자극을 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 김동준

    김동준

    1970년 서울 출생

    국민대 공업대지안학과 졸업

    현재 PC통신 하이텔 '클래식피아노연구회' 대표시삽

    조이 피아노 앙상블 대표

    기쁘다. 그러면서도 어리둥절한 마음이다. 전공과는 무관한 피아노를 독학으로 시작한지 9년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뒤를 좇은지 7년째. 20대를 피아노와 백건우씨와 함께 보낸 것 같다. 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소리없이 울던 날들, 백건우씨의 연주회를 듣고 연주회장을 나와 먼 밤하늘을 바라보며, '도대체, 음악은... 인간은...?'하고 되뇌이던 물음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하고, 연주를 하고, 그리고 음악에 대한, 예술에 대한 안타까운 물음들과 함께 살고 싶고, 글을 쓰고 싶다. 머리와 귀만이 아닌 나의 삶과 영혼을 거쳐 나온 글이 되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아직 한번도 제대로 얘기를 나눠보지 못한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서로의 삶과 음악 얘기를 나눠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훗날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좀더 깊이있게 다룬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감사해야 할 사람도 그만큼 많다. 답답하게 여기면서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어머니, 나를 먹이고 키워주신 할머니, 사랑하는 동생들. 밤늦게까지 연습하다가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음악에 대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격려해 온 경원대 음대의 따뜻한 친구들. 물심양면 많은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 주변 친구들. 그리고 하늘나라에 먼저 가 계신 아버지, 형, 사랑하는 예수님. 끝으로 너무나 부족한 글을 가능성으로 믿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감사하며, 기쁨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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