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흑백사진

by  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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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사평
  • 당선소감
  • 그가 문을 열었을 때
    새들은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고 노래하지 않고
    석양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지


    붉게 꽃핀 담장 너머
    멀리 공장의 굴뚝 다섯, 하늘을 이고 있었네
    그는 손을 들어
    잘린 손가락을 들여다 보네
    짧게 잘린 마디는 마치 촛농으로 덮어씌운 듯 했지
    상처만이 고통을 기억하고 있네
    더 이상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남아있는 손가락을 천천히 세어보네
    사진 속 친구들의 얼굴도 들여다 보네
    붉은 철근 더미 위에 앉아
    한순간 웃던 얼굴들이 사진속에선 영원히 웃고 있네
    또한 영원히 울고도 있네
    눈을 들었을 때
    키 큰 순서부터 공장의 굴뚝들은
    어둠에 허리를 짤리우고 있었지
    이제 그는 창문을 닫네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넣고
    빈 새장 속으로 걸어들어가 보네
    누군가 와서
    그를 잊지 않았다고
    모이를 주고 물을 주면,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고 노래하지 않고
    석양의 집으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부리를 다친 새처럼 그는
    가슴에 얼굴을 묻네
    문은 밖으로 잠겨있네.
    최경민

    최경민

    1970년 전남 영암 출생

    1997년 청구문화제 시부문 최우수상

    1998년 의혈창작문학상 시부문 당선

    현재 국립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 <흑백사진>을 뽑고나서

    - 김혜순, 이남호

    수많은 응모작 중에서 한편을 고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누구도 그 결과의 완벽성을 장담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이번 심사는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몇편의 작품들이 나머지 응모작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정준상, 김행숙, 최경민씨의 작품들이 거론되었다. 정준상씨의 시적 상상력은 독특하고 세련된 것이다. 인상적인 작품에는 틀림이 없으나 선명한 이미지들이 삶의 실존에 닿아 있지 못해서 허전한 느낌이 든다. 김행숙씨의 경우, '창'이란 작품은 우수하나 나머지 투고작이 적절한 시적 사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영광은 자연스레 최경민씨에게 돌아갔다. 최씨의 작품은 모두 인상적이고 안정된 수준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명징한 인상을 포착할 줄 아는 언어 감각, 개성적이고 신뢰감이 가는 사유능력, 자신만의 시적 공간을 형성시킬 줄 아는 힘을 지녔다. 특히 사물과 세상에 대한 명료하고도 정확한 사유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증한다. '올림푸스 세탁소'와 '흑백사진' 가운데서 한 작품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올림푸스 세탁소'에서 시인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되었으나 전체적인 안정감과 주제의 선명함, 완성도 면에서 '흑백사진'을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최경민씨의 당선을 결정하면서 주저됨이 없다. 그만큼 최씨의 능력은 돋보인다. 즐거운 심사였다.
  • 최경민

    최경민

    1970년 전남 영암 출생

    1997년 청구문화제 시부문 최우수상

    1998년 의혈창작문학상 시부문 당선

    현재 국립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그날 밤 책갈피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을 때,
    나는 어느새 항구의 저녁거리를 거닐고 있지 않는가.
    드문드문 비가 선창위로 내리고 나는 갈매기보다 낮게 휘파람을 불어본다.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미덕이다. 미덕을 배우기까지
    많은 것들을 보내야 한다. 나는 청춘의 반을 덧없이 보내고
    바다의 눈썹같은 방파제위에 서 있다.
    어서오라! 나는 기다릴만큼 기다리다
    안개와 바람에 묻혀 이 항구를 떠도는 무서운 이름이 될 것이다.
    누구도 지워보지 못한 그리움이 될 것이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뒤에서 내 문학을 든든히 잡아주던 고마운 손들이 있다. 어느 순간 그 손들 없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그만 손을 놓아달라고 말하려 하자 그들은 이미 저 뒤편에서부터 손을 놓은 채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겨울나무을 후려치는 채찍 " 이재무 선생님, 당선소식을 내 일처럼 기뻐해준 맏형같은 시인 이대의 선배, 외롭고 치열한 시정신을 일깨워주는 시인 함기석 형, 특히 처음으로 시를 가르쳐 주었던 `내가 그다지도 사랑하는' 뿐뿐이 美와 때론 싸우고 질투하며 함께 시를 공부했던 벗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따뜻하게 배려해주신 강소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 쓰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
    나의 모든 것은 그분들의 것이다.

    시는 혼자 쓰는 일이지만 그 시가 한 사람에게 찾아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의 힘이 필요하다. 국립서울산업대 문창과 교수님들과 주병율, 이위발 선배, `획을 긋는 문창과' 학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심사를 해주시고 뽑아주신 이남호 김혜순 선생님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끄럽지 않은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저에게 주어진 제 삶의 몫을 다 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아버지!
    젊은날 시를 쓰시고 소월을 사랑하셨던 당신의 피가 제 시의 영혼에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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