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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by  이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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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나리오의 구조와 줄거리

    이 시나리오는 구조와 줄거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줄거리를 말하기 이전에 시나리오의 구조에 대해 간략한 언급을 하려 한다.

    1.구조

    전체는 취조실에서의 민수에 대한 심문장면에서 시작하여 심문장면에서 끝나며 그 내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크게, 영화속 실제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실과 드라마 `운명'의 상황전개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드라마 `운명' 의 상황전개는 TV라는 매체를 통해서나 촬영현장을 통해 현실과 접목된다.

    현실에서는 민수의 이야기 전개와 그들 주변의 인물들의 인터뷰로 구분되어 있으며, 민수의 환상적인 기억이 민수의 이야기에 녹아 있다. 영화 속의 현실과 실제 우리의 현실은 등장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서로 연관지어 진다.

    드라마 `운명'의 상황전개 중 민수의 환상적인 기억과 거의 흡사한 장면이 있게 되고 이 때문에 민수가 혼동을 겪게 되며, 이후 민수의 의식은 드라마`운명'의 상황전개를 쫓게 되고 마지막에 드라마 속의 허구의 인물이 영화속 현실에서 실제화하는 공간인 촬영현장에서, 민수는 드라마중의 주인공의 행동을 자신의 것인양 인식하고 실천하게 된다. 즉, 전체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서서히 윤곽은 드러날 것이고 마지막에 현실과 드라마는 촬영 현장에서 완전히 결합하게 된다.

    부연하면, 민수의 현실과 드라마가 서로 교차되어서 진행되고 둘은 촬영현장과 TV, 민수의 기억장면에 의해 서로 상호간섭한다.

    (#는 현실부분의 씬 표기를 위해 사용되었고 드라마부분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였다.)

    ---드라마는 고의적으로 철저히 상투적인 내용전개를 택하였다. 여기서 영화상 현실에서 민수와 태준 등의 삐끼생활은 독립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즉 이 시나리오는 이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다. 드라마내의 상투적인 내용전개도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영화속 현실과 드라마와의 상호간섭과 침투, 그리고 인터뷰를 통한 진짜 현실과 영화와의 만남과 대화이다. 왜 여기에 방점을 찍으려고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삶은 영화(허구)를 모방하고 영화(허구)는 삶을 모방하여 어디까지가 실제하는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재에 영화(허구)자체에 관한 질문이 곧 우리 삶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허구에 불과한 영화가 우리들 의식의 근저에 큰 영향을 끼치며,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역으로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한 보여 줌으로써 그러한 허구와 현실의 연관관계를 영화를 보면서 체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영화가 점점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심지어 영화 자체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영화의 위험한 시기에 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물어 보고 싶다.

    허구와 현실의 게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2. 줄거리

    현실--- 민수는 취조실에서 형사에게 심문을 받고 있다.

    민수는 스무살 나이의 젊은이다. 그는 태준이라는 가출한지 1년되는 친구와 같이 산다.

    민수는 삐끼로, 태준은 종업원으로 같은 심야 단란 주점에서 일한다. 민수는 가족없이 어린 나이부터 혼자 살아 왔으며, 양아치 같은 생활을 한 이후는 명확히 기억하지만 그전의 과거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아기 였을 때 어머니품에 안겨서 행복했던 순간을, 객관적으로는 희미하게 기억하지만 본인은 가족 및 모성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며 혼자이지 않은 유일한 기억이며 행복했던 유일한 기억이기 때문에 너무나 강렬하게 간직하고 살아 간다.

    그 행복한 순간의 배경이라고 믿고 있는 공원에서, 민수는 일이 없는 낮을 보내며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밤에는 삐끼일을 하고 일이 끝난 후나 쉬는 날엔 태준과 함께 단란주점의 아가씨들과 술마시고 놀며 보내거나 지하창고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한다. 집에 있는 날은 민수는 주로 잠을 자거나 그냥 누워서 시간을 보내며 태준은 TV보기를 즐긴다.

    태준은 TV를 보면서 가수들의 노래와 춤 등을 잘 따라 하며 그것을 즐긴다. 태준은 집과 학교가 감옥같이 느껴지고 견딜 수 없다고 느껴질 무렵에 가출 청소년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타리를 보고 충동적으로 집을 나온 엉뚱한 녀석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민수는 자주 가던 공원에서 자신의 기억과 일치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데 그것은 `운명'이라는 드라마 촬영현장이었다. 무언가 홀리는 기분이 들었던 민수는 며칠 후 TV를 좋아하는 태준 덕택에 TV화면을 통해 공원에서 목격했던 그 장면을 다시 한 번 보게 되고 그 날 이후부터 자신도 알게 모르게 드라마 속의 상황전개에 자신의 의식을 점점 빼앗기게 되며 그에 비례해 현실에서의 자신을 잃어가게 되며 TV에 점점 몰입하게 된다.

    드라마는 지나친 애정묘사와 폭력장면 때문에 비판도 받지만 인기도 치솟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드라마의 주연 배우들도 각종 프로에 출연하는 등 인기를 누리게 된다. 토크쇼에서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배우 정우영씨가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정하는 더욱 더 드라마에 빠진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드라마상의 정하의 과거와 동일시하게 되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인식까지 드라마의 상황전개를 따라가게 되고 현실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게 된다.

    한편 태준은 점점 자신의 그러한 생활들이 지겨워지고 민수의 심상치 않은 변화에 그와의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태준은 어머니의 병환 소식과 여동생의 간절한 부탁을 듣고 많은 고민 끝에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혼자 남게된 민수. 그에게 남은 건?-----현실부분은 민수의 의식변화 및 그로 인한 행동의 변화, 태준의 생활, 드라마 촬영현장, 그리고 민수와 자신들의 일상에 대한 열네사람의 인터뷰(마지막 김형사의 인터뷰도 포함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현실부분은 드라마의 상황전개와 교차된다.

    현실의 드라마 촬영 현장--- 어린 정하가 어머니와 함께 먹고 살기 위하여 조직의 보스가 살고 있는 대저택으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정하의 어머니는 이 집의 가정부로 들어오게 되는 데 첫 날 보스는 정하의 어머니를 보고 음흉한 마음을 품는다.

    드라마 부분(드라마의 내용은 촬영현장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정하의 어머니는 한때 공원 벤치에 앉아서 어린 정하를 품에 안고 그의 천진난만함을 보며 그에게 사랑을 듬뿍 주며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햐여 악의 소굴로 들어오고 만 것이다(위부분은 현실의 촬영현장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어린 정하는 집주인인 보스의 어린 아들로부터는 멸시를 받지만 어린 딸한테는 도움을 받으며 꿋꿋이 버틴다. 그러나 정하의 어머니는 결국 음흉한 보스에게 유린당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욕실에서 동맥을 끊어 자결한다. 이 충격으로 어린 정하는 그 집을 나오고 보스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복수의 신념을 가지게 된다.

    신문팔이 등을 하면서 혼자 버티는 정하.

    스무살의 젊은이가 되어 있는 정하. 그는 주유소에서 일하며 알게 된 경수형에게 소매치기를 배우게 된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능숙한 소매치기가 되는 정하. 그러나 정하가 소매치기를 계속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수는 정하를 자신이 형님으로 알고 지내던 망치라는 사람밑으로 보낸다.

    망치가 관리하는 나이트클럽의 종업원으로 일하게 된 정하. 어느 날 반대파의 기습을 받게 되고 망치형님이 위험하게 된다. 이 때 정하의 동물적인 격투실력으로 반대파의 칼잡이들을 물리치고 망치형님과 나이트클럽을 구한다. 그러나 큰 부상을 당한 정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가 퇴원하자 그에게 반대파의 두목을 해치우라고 망치형님이 말한다. 그것은 망치형님이 모시는 보스가 정하의 실력을 전해듣고 내리는 명령이었다. 정하는 망치형님을 통해 두목을 해치울 날카로운 칼과 죽여야 할 두목의 사진을 보스의 선물이라는 이름아래 받게 된다. 망치형님의 도움으로 정하는 상대파 두목을 감쪽같이 해치운다. 이 일로 인하여 정하는 망치형님과 함께 그가 모시는 보스를 만나러 보스의 집으로 간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하가 찾아간 곳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던 바로 그 대저택이 아닌가!

    보스와 대면하는 정하, 분노를 삭이며 다음 기회를 노린다. 잠시 의심을 하는 보스지만 안심하고 정하에게 자신을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는 말까지 한다.

    현실의 드라마 촬영 현장

    촬영할 내용은 보스가 직접 관리하는 나이트클럽으로 정하가 찾아와 사무실에 혼자 있는 그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 보스가 준 바로 그 칼로.

    감독과 스텝들은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다. 조명설치 및 리허설이 끝나고 정하역의 배우 정우영씨와 종업원역의 단역배우가 나와, 정하가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와서 보스를 찾아 사무실로 가는 장면을 일단 찍는다. 그러나, 정하가 보스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에서 배우 정우영씨가 자꾸만 NG를 낸다. 여러번의 테이크를 가보지만 잘 되지 않자 정우영씨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겠다고 화장실로 가서 담배를 한 대 핀다. 그 때 누군가 화장실문을 천천히 연다.

    잠시 후 정우영씨가 나타나고 너무나 사실같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어 감독은 OK를 외친다. 그러나, 곧 촬영현장은 발칵 뒤집힌다. 정우영씨와 장수길씨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정우영씨가 아니라 바로 민수였고 배우 장수길씨는 민수에 의해 어머니의 원수로 여겨져 살해된 것이었다. 정우영씨는 화장실 바닥에 겉옷을 벗기운 채 쓰러져 있었다.

    촬영현장에서 멍하게 선 채 민수는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자기로 돌아가 공원벤치에 앉아 있는 엄마와 아기를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운동장에서 같이 감광지 놀이를 하다가 아이들이 자신들을 데리러 온 어머니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후에 텅빈 그 곳에서 혼자 남아 해가 지는 곳도 모른 채 감광지를 들고 홀로 서 있는 민수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

    현실- 민수의 심문을 끝내고 나오는 김형사의 인텨뷰로 이 영화는 끝난다.

    등장인물

    민수-주인공. 스무살. 남자. 과묵한 편임. 어린 시절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하나만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 희미한 기억이지만 민수 자신에겐 아주 소중함. 혼자서 험한 일들을 하며 살아 왔 음. 현재 심야 단란주점의 삐끼.
    태준-스무살 . 남자. 쾌활하고 싹싹한 편. 엉뚱하기도 함. 1년 전 가출했음. 공부를 싫어 해 고등 학교 진학시 재수했음. 지금 민수와 같이 살고 있고 같은 단란주점에서 종업원 일을 함 어린 민수
    경미-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아가씨
    소연-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아가씨
    아기-민수의 환상같은 기억속에서 등장
    민수의 엄마-민수의 환상같은 기억속에서 등장.
    배우 이보라-드라마`운명'에서 정하의 어머니로 분함.
    배우 정우영-드라마`운명'에서 정하로 분함
    배우 장수길-드라마`운명'에서 정하의 어머니를 괴롭히는 조직의 보스로 분함
    배우 김민호-드라마`운명'에서 어린 시절의 정하로 분함
    감독-드라마 `운명' 의 감독
    김형사
    태준의 가족-여동생, 어머니, 아버지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

    태준, 감독, 경미, 가게집 아줌마, 연출부, 형사3, 방송국에서 전화 받는 아가씨, 소연, 단란주점의 남1, 태준의 여동생, 술집 아줌마, 김형사

    드라마 `운명'의 등장인물

    정하
    어린 정하.
    정하의 어머니
    보스(주인 아저씨)
    보스의 아내(주인 아주머니)
    보스의 딸
    보스의 어린 아들
    스포츠형 머리의 사나이(망치 형님)
    상대파 두목
    긴머리 사나이
    칼자국 사나이
    경수


    #캐스팅시 유의해야 할 점

    민수와 드라마 `운명'에서 류를 연기할 배우 정우영은 같은 인물을 캐스팅.(민수=류=배우 정우영)
    민수의 엄마와 드라마 `운명'에서 류의 엄마를 연기할 배우 이보라는 같은 인물을 캐스팅.
    (민수의 엄마=류의 엄마=배우 이보라)


    #.타이틀 나는 너다

    현실 부분

    #1.경찰서 내의 취조실

    뿌연 담배 연기가 좁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사와 민수가 마주 앉아 있다. 김형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입에 문 채 다 타 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비벼 끈다. 민수의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표정과 실룩거리는 입술이 약간의 광기마저도 느끼게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왠지 모를 슬픈 기운이 더 강렬하게 묻어 난다.

    민수:(흐릿한 초점의 눈으로 내뱉듯이) 그 자식이 우리 어머니를 죽였어.

    #2. 학교 운동장

    햇살이 두텁게 흐르는 늦은 봄의 오후. 약간은 낡은 건물이 운동장을 초라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변두리 지역의 어느 학교임을 짐작케 한다. 수업이 끝난 후라 텅빈 운동장. 그 한구석에서 몇몇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다. 토끼 혹은 사슴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을 보라색의 감광지 위에 올려놓고 여백 부분이 감광되어 진한 보랏빛이 되어 가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고들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것도 모른 채 아이들은 자리를 떠나질 않는다. 그 때 어머니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자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돌아가기 시작한다. 어느새 운동장은 텅 비어 버리고 슬픈 기운이 묻어 나는 얼굴을 한 사내아이 하나만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감광지를 바라보고 있다.

    시끄러운 노랫소리와 음악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한다



    (O.S.S)태준: 야, 야. 민수야.

    #3. 단란 주점

    전 신의 노래 소리가 커져서 절정을 이룬다. 30대초반의 직장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막 노래를 끝내고 자기의 무리가 있는 테이블로 들어간다. 동료들의 환성 소리와 박수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 와, 노래 죽인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지만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실내는 정신이 없다. 한 쪽 복도 가운데서 민수가 슬픈 기운의 꼬마를 연상시키는 난해한 표정의 얼굴로 서 있다.

    태준(OSS): 야! 민수 이 자식아, 지금 뭐하냐! 일 안하고. 멍청하게 서서 뭐해?

    태준의 고함소리에도 아랑곳없는 민수. 보다 못한 태준이 민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한쪽 테이블에 있던 젊은 남녀들이 뒤엉켜서 한꺼번에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자(배우 정우영)가 태준과 부딪힌다.

    남자(꼬부라진 목소리로): 이런! 조심해야지. 응?

    태준(손님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후에): 죄송합니다.

    남자: 화장실이 어디더라?

    태준(손으로 가리키며) : 저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남자. 어두운 실내 조명탓에 정확하게 볼 순 없지만 민수와 얼굴이 매우 흡사하다. 태준은 그의 뒷모습을 응시해 본다. 민수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우뚱한다.

    태준(민수의 뒤통수를 치며): 자식아! 어디다가 정신을 팔고 있냐?

    그제야 깜짝 놀란 듯, 태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민수

    태준: 니가 지금 이 안에 있으면 어떡해. 빨리빨리 밖에 가서 손님들 물어 와야지.

    민수의 등을 떠미는 태준.



    #4. 단란 주점 주변의 유흥가 골목

    민수가 자기 동료 두 서명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접근해 호객 행위를 한다. 그들 외에도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으려 애쓴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는 흥청거리고 있다. 고함치는 사람, 토하는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 그리고 술을 더 마시려는 사람과 그들에게 그런 장소를 안내해 주려는 사람.



    #5. 인터뷰 하나-태준, 단란주점에서

    (무대에서 20대 초반 정도의 남자대학생 둘이 요즘 한창 유행하는 최신 댄스 곡을 부르고 있다. 잠시 후 흥에 겨워 둘은 그 노래의 가수들이 했던 것처럼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여러 테이블의 손님들이 열광한다.)

    (노래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이 노래 정말 신나지 않아요?
    (노래를 흥얼거린다.)이거 완전히 떴어요. 요즘 이 노래랑 (춤동작을 하면서)이거 모르면 완전 간첩이에요. 그녀석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긴 있었어요. 아 그렇다고 싸이코나 재수없는 놈은 아니었어요. (태준의 얼굴에 얇은 미소가 번진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여자애들이 무대로 나가 남자애들과 같이 춤추며 노래하기 시작한다) 괜찮은 놈이었어요. 착했죠. 제일 잘 통했어요. 나랑.
    가끔씩 멍해지는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아무리 불러도 한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요. 어디 딴 세상에 갔다온 사람처럼요.

    (무대에서는 어느새 넥타이 부대들이 노래를 하며 몸을 흔들어 대고 있다. 옆에서는 여자들이 적당히 분위기를 띄워주며 코러스를 넣어준다. 넥타이 부대중 한명이 여자의 손을 잡고 같이 춤을 추려 한다. 못 이긴척 하면서 같이 춤을 추는 여자.)



    #6. 민수와 태준의 방안-낮

    태준:(방문을 열고 들어오며)야, 이제 그만 일어나.

    민수를 흔들어 깨우는 태준. 가늘게 눈을 뜨며 인상을 구기는 민수

    민수(귀찮다는 듯이):할 일도 없는 데 왜 그래. 좀더 잘래

    태준: 야, 벌써 오후 2시야. 날씨 좀 봐라. 죽인다 죽여

    태준의 호들갑에 마지못해 일어나는 민수.



    #7. 촬영현장(나중에 전개될 드라마내의 대저택의 거실)

    세트는 부유한 집안의 거실. 오른쪽 편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주인 여자가 젊은 여자(배우 이보라)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붙어 있는 초등 학교 저학년생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거실을 가로질러 계단쪽으로 간다. 곱고 희게 생긴 젊은 여자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고 아이의 표정에는 어두움이 묻어 있다. 화장실문을 열고 나오던 주인 남자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젊은 여자를 자세히 살핀다. 마치 눈으로 더듬으려는 듯이.

    감독 :컷! 오케이, 다음 방안으로 이동하자고.



    #8. 인터뷰 둘-감독, 촬영현장에서

    글세, 드라마는 일단 재미있고 봐야죠. (고개를 돌려 조연출에게)성호야, 다음 씬에 출연할 배우들 체크하고 소품준비 다 됐는지 한 번 더 점검해 봐. (다시 원위치로)사실 시청률이 신경이 쓰이죠. 좀 야하고 폭력적이라고 욕해도 그런 거 없으면 사람들 잘 안 봐요. 그리고 뭐랄까? 너무 예민하고 아픈 구석을 적나라하게 들추어 내면 사람들 안 봐요. 골치 아파해요. 사실 드라마 보면서 공부하거나 철학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저도 물론 심오하고 작품성있는 거 만들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만들 수도 없어요.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뒤를 돌아다보며)성호야! 성호야! (다시 원위치로)만드는 사람 마음하고 보는 사람 마음이 같을 수 있겠어요?



    #9. 공원-낮

    포근하고 맑은 날씨. 도심의 한적한 공원. 그 한구석에 있는 벤치위에 멍하게 앉아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는 민수,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잠시 있다가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려본다. 반대쪽 벤치를 보는 민수. 젊은 여자가 아기를 안은 채 앉아 있다. 아기를 소중하게 돌보는 여자,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한다. 엄마의 다정스런 얼굴을 보고 까르르 웃는 아기. 즐거워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천진난만한 아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민수를 바라본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여자와 아기를 바라보는 민수, 일어나서 걸어간다. 반대쪽 벤치앞에 서는 민수. 텅비어 있는 벤치. 텅 빈 벤치를 바라보다 그 앞을 지나가는 민수. 한가로운 공원의 텅 빈 벤치.



    #10. 단란주점주변의 유흥가 골목

    몇몇의 사람들만 왕래하고 있다. 오히려 더 북적대는 삐끼들. 민수, 지나가는 한 쌍의 남녀한테 다가간다.

    민수: 자아, 단란주점 있어요. 24시간 단란주점이요

    대꾸없이 그냥 지나쳐 가려는 남녀. 그 뒤를 바짝 붙어 따라가는 민수

    민수: 싸게 해드리께요.

    따라가며 이야길 해보지만 결구 그냥 가버리는 남녀. 두리번거리다가 저쪽에서 다섯의 남자들을 보고 접근하는 민수

    민수:(따라붙으며)아저씨들. 24시간 단란 주점 있어요. 아가씨도 있어요. 죽여주는 아가씨 넣 어드리께요.

    무시하고 걸어가는 남자들

    민수(일행중 한 명의 팔을 잡고): 아저씨, 정말 죽여주는 애들이라니깐요.

    남자(귀찮아 하며): 돈 없어요.

    민수: 싸요. 진짜루 싸요. 카드도 됩니다.

    그래도 그냥 뿌리치며 가버리는 일행. 몇걸음 좇아 가다가 멈추어 서는 민수, 밤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본다. 여러 번 시도하지만 유난히 오늘은 잘 되지 않는다. 아예 멀찍이 물러나서 담배를 한 대 피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민수. 시계를 한번 쳐다본다. 자정을 넘긴지 오래다. 길가 한쪽 모퉁이, 쓰레기더미 근처에선 오바이트하는 사람과 그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반대편 락카페 앞에는 서넛이서 둘러선 채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다. 문이 닫힌 당구장 입구에는 남녀 한 쌍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락카페에서 기도들이 나와 앞에서 시끄럽게 노래부르는 서너명들을 내쫓으려 한다. 술에 취한 서너명들이 가지 않으려 한다. 실갱이가 붙더니 몸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서로 욕설을 주고 받는다. 조용히 구경하고 있는 민수옆으로 태준이 다가와 선다.

    태준: 야, 영업 끝났어. 애들 데리고 들어와.

    욕설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마침내 서로 치고 받기 시작한다.

    태준:(흥미있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목을 한번 꺽어 보며) 어, 저 자식들 봐라. 한번 힘좀 써 보까?

    민수:(관심 없어하며 무뚝뚝하게) 그냥 내버려 둬.

    단란주점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태준:(혼잣말로) 아유, 저 자식들을 그냥--

    손가락 관절을 꺽어보며 거칠게 침을 뱉어 보는 태준. 그 앞으로 여고생 또래의 애들이 요즘 인기있는 가수의 복장을 흉내낸 채 왁자지껄하며 지나간다.



    #11. 단란주점 내부

    어수선한 실내. 종업원 몇 명이서 청소를 하고 있다. 민수와 태준도 거든다. 홀주변의 룸에서 아가씨 몇이 나온다. 태준이 아는 척을 한다.

    태준: 경미야. 오늘 수입 좀 괜찮았냐?

    경미: 아니. 오빠도 알다시피 손님이 별로 없었잖아

    다른 아가씨들: 오빠는 꼭 경미한테만 물어보더라

    아가씨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소연이 민수를 자세히 쳐다본다.

    태준(멋쩍어하며): 참, 미자랑 영미는?

    경미: 아, 개들 2차 갔어.

    옷을 갈아 입으러 몰려가는 아가씨들.

    태준:(소연이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쟤가 너 좋아하는 것 같애

    민수:(계속 자기 일을 하며)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

    태준: 아냐, 경미가 그랬어. 재 이름이 소연인가 그런데 가수가 될려고 가출했대. 어린 게 미 쳤지. 하지만 예쁘긴 정말 예뻐. 물론 경미만 못하지만. 오늘 밤 재네들하고 한잔 어때?

    대꾸하지 않는 민수.



    #12.심야술집

    꽤 넓은 지하 공간에 수십개의 작은 포장마차들이 인접해 있다. 손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이곳저곳에서 손님들을 끌려고 아우성이다.

    아줌마1 : 학생, 여기로 와 .여기가 더 맛있어.

    아가씨1 : 싸게 해줄께. 일루 빨리 와요.

    아줌마2 : 어이 거기 이쁜 아가씨. 애인이랑 여기서 마셔. 서비스 잘해 줄께

    실내는 알코올 기운과 담배 연기로 질식할 정도다. 가운데 쯤에 위치한 포장마차에서 민수와 태준 그리고 아가씨 네 명이 같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제법 술기운이 오른 상태이다.

    경미 :아줌마, 여기 진로 하나 더요!

    태준 :어쭈, 너 오늘 땡기나 본데.

    경미 :흥.

    아줌마, 술을 갖다 준다. 경미에게 술을 따라주는 태준.

    아가씨1:(빈 잔을 내밀며) 경미만 입이고 나는 입도 아냐

    태준: 오, 아임 쏘오리.

    술을 따라주는 태준.

    민수:(자신의 잔을 만지작거리며) 너 집 나온지 얼마나 됐어?

    소연:(잔을 비우고 나서) 글쎄, 한 석달쯤 됐나?

    태준:(끼어들며) 소연아, 자 술 한잔 받아? 석달이라고? 난 거진 일년이 다 돼 가. 집에서 아 직 너 찾을려고 난릴 꺼다. 그리고 이 자식 조심해. 음흉한 놈이니까.

    웃는 소연.

    민수:(잔을 비우며)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참 그리고 넌 엄마 생각 안 나냐? 집 나온지 꽤 됐는데?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하냐?

    태준:(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너가 걔들의 눈빛을 못 봐서 그래. 그때 무슨 특집 다큐 멘타리였는데 가출 청소년에 관한 얘기였어 한놈이 인터뷰를 하는데 그 눈빛에 뿅 간 거야. 그리고 놈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정말 쌈박해 보이더라구. 그래서 나도 한번 하는 생각에 나왔지. 뭐, 답답한 집구석하고 감옥같은 학교가 싫기도 하구, 못하는 공부 하기도 싫구. 뭐 그냥 그랬어.

    민수가 태준의 얼굴을 자기쪽으로 바짝 당겨 그의 눈을 자세히 쳐다본다.

    태준: 이 자식, 징그럽게 왜 이래.

    민수:(태준을 풀어 주며) 눈알이 맛이 갔구만.맛이 갔어.

    여자들이 웃는다. 경미 특히 크게 웃는다.

    태준:(경미에게)네가 뭘 안다고 웃고 그래?

    소연:(어깨를 으쓱한 후 약간 맛이 간 어투로) 난 가수가 될꺼야. 내가 제일 사랑하는 가수 신 성수! 그 사람도 고등학생 때 가출해서 자유롭게 살았대.

    태준:(황당해하며)어떤 미친놈이 그래

    소연: 잡지에서 읽었어. 잘 나가는 잡지야.

    민수:(혼잣말로) 미친 년.

    경미: 자, 다같이 원샷!



    #13.인터뷰 셋-경미, 심야술집에서

    (술 한 잔을 마시는 경미)우리들 생활이 이래요.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사는 건 아니에요. 내 나름대로 원칙은 있어요. 엄마,아빠는 거의 포기했어요.(시끄러운 심야 술집을 한 번 둘러본 후)이런 데 많아요. 돈 무지 벌 거에요. 태준 오빠는 귀엽고 재미있고, 민수 오빠는 재민 없어요. 무뚝뚝해요. 좀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좋은 사람 같아요.(술 한잔을 더 마신 후)열여덟이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야죠. 패션잡지나 TV보고 따라 입고 따라서 화장해요. 유행에 뒤지면 안 돼죠. (고개 돌려) 아줌마, 여기 진로 하나 더 주세요.



    #.드라마 부분

    14 .거대한 저택의 외경 견고하게 보이는 높은 담벼락

    15 .넓은 마당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한쪽 편에는 수영장도 보인다. 수영장 뒤편으로는 키높은 나무들 로 잘 정돈된 화려한 정원이 보인다. 잔디 위에서 즐겁게 뛰어 놀고 있는 남자아이와 여자아 이. 어린 정하와 집주인의 어린 딸이다. 정하가 여자아이 앞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해 보인다. 까르르 웃는 여자아이. 2층 창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주인집 어린 아들, 정원으로 나간다.

    아들:(동생의 손을 잡아끌며) 따라와. 얘랑 놀지마. 얘는 우리 집 하인이야. 하인.

    오빠에게 끌려가면서 정하를 돌아다보는 어린 딸. 물구나무 선 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정하. 기운이 빠졌는지 쓰러진다.



    16 .저택의 대문 앞

    운전수가 차고에서 차를 몰고 와 대문앞에 주차한다 운전수, 벨을 누른다.



    17 .거실

    주인 아주머니: 누구세요.

    (O.S.S.)운전수: 차 대기시켰읍니다. 사모님

    주인 아주머니: (부엌쪽을 향해) 얘들아, 학교 가야지. 얼른. 아줌마 애들 도시락 좀 챙겨와요

    (O.S.S)정하의 엄마:예, 사모님

    잠시 후, 아들과 딸, 그리고 정하가 가방을 메고 나온다. 그 뒤를 따라 정하의 어머니가 나오며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건네준다.

    아들과 딸(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나가며) : 다녀오겠읍니다.

    주인 아주머니: 그래.

    정하, 아들과 딸 뒤에서 쭈삣거리며 그냥 말없이 고개만 숙인 후 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한번 쳐다본다. 어머니의 사랑스런 얼굴.

    주인 아주머니: 아니, 너도 빨리 따라가지 않고 뭐해. 차 기다리잖니.원 애가 눈치가 없어.

    얼른 가라는 어머니의 눈짓. 재빨리 뒤돌아 뛰어가는 정하.



    18 .대문앞

    자동차 안에는 이미 아들과 딸이 뒷자석에 앉아 있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정하. 차를 보고 머뭇거리는 정하. 딸아이가 친절하게 문을 열고 타라고 한다. 정하가 타려고 하는 순간 딸옆의 아들이 문을 닫아 버린다. 딸애가 문을 다시 열어 보려 하지만 아들의 힘을 당할 순 없다. 잠시후 그냥 출발하는 차. 대문앞에 서 있는 정하. 멀어져 가는 자동차를 바라다본다.

    19 .학교 운동장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여러 놀이를 하며 놀고 있다. 철봉대에서 노는 아이들. 씨름판에서 뒹구는 아이들. 고무줄뛰기 하는 아이들. 공놀이하는 아이들. 정하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열심히 공을 몰고가는 정하, 갑자기 뒤에서 누가 발을 건다. 넘어지는 정하. 잽싸게 공을 낚아 채 반대쪽으로 몰고가는 주인집 아들. 정하의 무릅이 까져서 피가 난다. 아이들은 축구를 한다고 정신이 없다. 수돗가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정하. 수돗물을 틀어 상처부위를 씻어 낸다. 그 때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던 딸아이가 그를 발견한다.

    딸: 많이 아파.

    정하: 아니, 괜찮아

    딸: 교실로 가자. 내가 약 발라줄께.

    교실로 같이 걸어가는 정하와 어린 딸



    20 .교실

    구석의 책상에서 자신의 무릅에 약을 발라주는 딸아이를 계속 바라보는 정하. 정성스레 약을 바르는 어린 딸.

    현실 부분

    #21. 방안-오후

    TV에서는 광고가 나오기 시작한다.

    태준: 야. 꽤 재미있는데.

    옆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민수. 그 옆에 벌러덩 눕는 태준.

    태준: 이 자식 재미있다고 보라니까 자는 척 하면서 안 보네.

    민수:(눈을 감은 채로) 야, 드라마 그거 다 거짓말이야. 그런 건 집에서 아줌마들이나 보는 거야.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드라마야. 밤에 일하려면 잠이나 더 자 둬

    돌아눕는 민수.

    태준:(일어나 앉으며) 미친 새끼, 오늘은 쉬는 날이야.

    ----시간경과---------

    TV에서 인기가요 30이라는 가요순위프로그램을 한다. 민수와 태준이 나란히 벽에 등을 붙이고 TV를 보고 있다.

    TV-화려한 의상의 여자MC 김희숙양과 잘나가는 미남 탤런트 장동석군이 진행을 하고 있다.

    여: 이번 주 1위 후보곡부터 알아볼까요?

    남: 네, 5월 둘째주 인기가요 30의 1위 후보곡은 H.O.K의 환상, 스크림의 카이저, 박선 주의 비애가 올라와 있읍니다.

    여: 그러면, 먼저 화려한 율동, 현란한 무대의 스크림부터 만나 볼까요

    남: 네

    남,여: 스크림의 카이저!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무대에 댄스그룹 스크림이 나와 춤을 추며 노래하기 시작한다.

    태준, 손과 팔동작을 따라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민수: 야,야 정신 사납다. 그냥 좀 보자.

    이젠 아예 일어나서 춤동작을 그대로 재현해 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태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따라하는 태준.

    TV-남:정말 화려한 무대였읍니다. 다음 순서는 슈퍼 VJ 박해리가 전하는 30위에서 21위까 지의 순위입니다.

    남,여: 보시죠!

    VJ박해리가 발랄하게 순위를 소개한다.

    태준:(일어선채로 여자를 안는 시늉을 하면서) 오, 죽인다. 죽여.

    박하리의 동작과 멘트도 따라하는 태준.

    ------------시간 경과--------------------

    태준은 엎드려서 TV를 보고 있고 민수는 벽에 등을 기대고 보고 있다. TV에서는 광고가 나오고 있다.

    TV : 사랑을 찾아드립니다 라는 프로가 막 시작된다.( 이 프로는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와 유사한 프로.옛날의 짝사랑의 대상, 은사, 친구, 은인등 지금은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나, 꼭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을 TV에서 추적하여 만남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그런 프로그램.)

    여MC,남MC: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방청객 여러분

    방청객들의 박수소리.

    다시 누워서 눈을 감는 민수.

    남MC:양윤정씨, 오늘 모실 손님은 누구죠?

    여MC:예, 한국최고의 미녀 탤런트죠.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야누스적인 매력의 소유자. 이 보라씨를 모시겠읍니다.

    태준:이야, 이보라다. 재 정말 끝내준다.

    남MC:이보라씨, 정말 바쁘실텐데. 전번에 인기리에 방영된 "마지막 사랑"의 세연 역할로 다시 한번 최고의 자리에 올랐었죠.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가 있다던데요.

    이보라: 예, 지난번의 성원에 감사드려요. "운명"이라는 드라마인데요. 시작된지 얼마 안되요. 비련의 여자역이에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애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혼 자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그러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 그런 역할이에요.

    여MC: 역시 기대가 되는군요. 근데 오늘은 이보라씨가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한 소 년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보라씨 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죠?

    이보라: 6학년때였어요. 제가 전학을 왔었는데 옆자리에 앉게 됐었죠.

    남MC:이름 기억하시죠?

    이보라:네,물론이죠. 음, 민정수에요. 대단한 개구장이였어요, 활달하고 운동을 굉장히 잘 했어요.

    여MC: 네, 거기까지만요. 지금 우리의 "사랑의 배달부" 김학수 리포터가 민정수씨를 찾고 있을 겁니다. 김학수씨!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을 갈아입는다.

    태준: 야, 어디 가려고 그래?

    민수: 담배 좀 사올께.

    TV- 김학수:(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한 남자에게) 민정수씨, 아세요?

    남자: 그럼요.



    #22. 가게안-밤

    TV를 보고 있는 주인아줌마. 사랑을 찾아 드립니다 라는 바로 그 프로다. 가게로 들어오는 민수

    민수: 아줌마, 저 담배 2갑이랑 맥주 2개요.

    아줌마:(TV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맥주는 저기 냉장고에서 꺼내와. 오늘은 일 안해?

    민수:(맥주를 꺼내며): 오늘 노는 날이에요

    카운터에 다가오는 민수

    민수: 그 프로가 그렇게 재밌어요.

    아줌마: 그럼, 아이구 저런 또 이사를 갔네.

    돈을 내고 담배와 맥주를 들고 나가는 민수. 계속 TV시청에 여념이 없는 아줌마



    #23.인터뷰 넷-가게 아주머니, 가게 안에서

    그 학생, 우리 가게 단골이죠.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착한 애 같아요. 일도 열심히 하고.(하품을 한 번 한 후)미안해요.피곤해서. 쥐꼬리만한 구멍가게가 돈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먹고 살 정도죠. 요즘 물가가 워낙 비싸잖아요. 장사하면서 시간 보낼 게 TV밖에 없어요. TV보면 시간 금방 가잖아요.(입구쪽을 바라보며) 잠깐 비켜보세요. 손님, 들어오게. 드라마랑 이 프로는 꼭 봐요.



    #24.공원-밤

    공원의 그 벤치에 앉아있는 민수. 주위에 아무도 없다.



    #25.방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민수. TV에서는 그 프로가 계속 하고 있다. 거의 끝나가고 있다.

    태준:(TV를 보다말고)담배를 만들어 가지고 오냐?

    말없이 앉는 민수, 태준에게 담배 한 갑을 던진다.

    태준:나 주는 거냐? 자식 인간 됐네.

    맥주를 마시는 민수.

    태준:(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 말고)너, 자식 또 공원에 갔다 왔구나. 골때린 새끼. 하여튼.

    TV- 여MC:두번째 손님인 인기가수 김성진씨께서 고등학교시절 은사님을 만나는 모습 정말 가슴 뭉클하네요. 김성진씨 참 성실한 학생이었나봐요.

    남MC:네. 소중한 만남을 이어주는 사랑을 찾아드립니다 이제 마쳐야 될 시간이군요. 스타가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찾고 싶어신 분은 전화 543-6432,543-6433로 연 락주시거나 PC통신 하이텔과 천리안 GO LOVE에 사연을 주십시오. 누구든지 환 영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남,여:그럼 다음주에 다시 찾아 뵙겠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빈 캔을 찌그려 버리는 민수

    민수: 야, 바람이나 쐬러 가자.

    태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민수를 쳐다본다.



    #26. 지하창고내부- 밤

    열 명 남짓되는 남녀들이 모여서 놀고 있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술병. 탁한 공기. 술마시는 애들, 포카치는 애들, 담배피는 애들, 본드마시는 애들, 뒤엉켜있는 남녀등 가지각색으로 놀고 있다. 민수와 태준은 포커판에 끼어 있다. 한 녀석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친구: 야! 하던 거 그만하고 내가 `카오스'의 최신 뮤직비디오를 구했으니까 이거 보면서 춤연습이나 하자. 이 춤이 곧 뜰거야. 요즘 잘 나간다는 우리나라 가수애들 다 얘 춤 베낀 거래.

    벽에 가까이 붙어 있는 비디오에 다가가 테잎을 집어넣는다. 애들이 가까이로 모여든다. 태준도 얼른 일어나 다가간다. 민수는 그냥 앉아서 구경한다. 현란한 의상을 입은 3인조 트리오가 괴상한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이 비디오화면을 통해 흘러나온다.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에 외계인같은 복장. 열광하며 같이 따라하는 아이들. 태준도 신이 난다.

    민수:(내뱉듯이)미친 새끼들.



    #27.공원-낮

    화창한 날씨. 몇몇 사람들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같은 벤치에 앉아 있는 민수,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잠시 있다가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려본다. 반대쪽 벤치를 보는 민수. 다정하게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 행복한 표정의 여자, 환하게 웃는 아기--- 기억에서 깨어나는민수. 정신을 차리고 눈을 가늘게 떠 보는 민수. 민수의 시야에 잡히는 젊은 여자와 아기. 깜짝 놀라는 민수. 자신의 기억과 똑같은 모습이다. 맞은 편 벤치에 바로 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가 앉아 있다. 눈을 질끔 감아보는 민수. 머리에 무언가 얻어맞은 듯 온 몸이 떨려온다. 한참을 숨도 쉬지 못하고 얼어붙은 민수. 천천히 일어난다. 몇 걸음 다가간다. 누군가가 민수를 제지한다.

    연출부:(소리내지 말라는 표시로 손가락을 자기 입가까이에 갖다댄 후 작은 목소리로): 저어,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O.S.S.) 캇!

    감독이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로 다가간다.

    연출부: 됐읍니다. 지나가셔도 괜찮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멍하게 젊은 여자를 응시하는 민수. 연출부는 스텝들쪽으로 뛰어간다. 드라마 촬영현장. 젊은 여자에게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감독

    감독: 이 봐, 이보라씨. 정말 사랑이 충만한 얼굴을 보여줘야 해. 이 아기가 당신의 모든 것 처럼 느끼는 그런 표정 있잖아.

    감독: 자, 준비 됐지. 모두 제 위치로. 레디, 카메라, 액션!

    사랑으로 가득 찬 얼굴의 그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민수.



    #28.인터뷰 다섯-연출부,공원에서

    그 사람요. 전혀 말썽 피우진 않았어요. 그냥 구경만 했어요. (부르는 소리 들린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 돌리며) 잠깐만요. 곧 갈께요. 여배우가 워낙 끌렸나 봐요. 그 여자만 계속 보더라구요. 촬영현장에 그런 사람들 몇 있어요. (다시 부르는 소리. 고개 돌리며) 곧 가요. 금방 가 봐야 할 거 같네요. 연출부 생활 힘들죠. 너무 불규칙적이죠. 밥먹듯이 밤을 새고 돈은 조금밖에 못 벌고. 직장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원해서 하는 건데요. 뭐 참고 견뎌야죠.



    #29. 단란주점내부-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들어온다. 종업원이 가서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받는다. 홀에는 꽤 사람이 많은 편이다. 무대에서는 30대후반의 직장인이 흘러간 트롯트를 분위기있게 부르고 있다

    직장인: 오늘은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어라. 영원하지 도 않더어라.

    무대한편에서 아가씨가 박자를 맞추며 코러스를 넣어준다. 태준이 과일안주를 들고 룸으로 걸어간다.



    #30. 유흥가 골목-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유흥의 장소를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락처를 제공해주려는 또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달라붙는다. 별로 일할 기분이 없는 듯 그냥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민수. 하릴없이 담배만 피고 있다. 오후에 있었던 공원의 일이 자꾸만 생각나는 민수. 그때 옆에 술이 취한 한 무리의 일당이 다가온다. 한 명이 비틀거리며 민수의 바로 옆 담벼락에 오줌을 갈긴다. 민수, 쳐다본다.

    취객:(오줌을 누며서) 야, 새꺄 뭘 쳐다봐. 오줌 누는 거 처음 보냐?

    약간 얼굴이 일그러지는 민수, 그냥 못 들은 척 한다.

    취객:(바지춤을 치켜올린 후 자기 친구들을 한 번 둘러본 후) 어쭈. 십새꺄! 웃어? 너 웃어?

    민수에게 가까이 다가와 비틀대며 자신의 어깨로 민수의 몸을 민다. 한숨을 내쉬는 민수, 민수의 동료 둘셋이 다가 온다.

    취객:(계속 밀면서) 야, 개섀끼야. 너가 한숨 쉬면 어쩔래? 응!

    민수를 말리는 동료들. 폭발하는 민수. 한 방 먹인다. 나가 떨어지는 상대. 주위 친구들이 덤빈다. 민수의 동료들도 가세하고 동료 한 명은 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31.단란주점내부

    민수의 동료:(문을 급히 열며)태준아! 싸움 붙었어!

    태준, 제일 먼저 뛰어 나간다. 뒤를 몇 명의 종업원들이 따라 나간다



    #32.유흥가 골목-밤

    뒤엉켜 싸우는 사람들. 숫적으로 불리한 민수와 동료들이 지쳐서 자꾸 궁지에 몰린다. 불리함을 느낀 민수가 칼을 꺼내들고 접근을 못하게 한다.

    민수:(살기가 도는 목소리로)죽고 싶은 놈 덤벼 봐.

    이 때 태준과 몇명의 사람들도 뛰어든다. 다시 한 번 치고 받는 사람들. 갑자기 나타나는 경찰차. 도망치는 아이들.



    #33. 경찰서내부-밤

    유흥가 주변 경찰서라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잡혀 와 있다. 한쪽 테이블에서 10대로 보이는 아이들 대여섯이 형사한테 질책을 받고 있다.

    형사1:이 맹랑한 놈들, 그런 수법을 어디서 배웠어? 술취한 사람에게 술집소개시켜준다고 속여 가지고 엉뚱한 곳에 데려가서 돈을 빼앗어! 이 망할 자식들

    머리를 한대 쥐어박는 형사.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있는 아이들

    형사1:(한 녀석의 머리를 한대 더 때리며)자식아 어디서 배웠냐니까?

    자식1:(볼멘 소리로)TV에서요. 왜 있잖아요. 경찰 25시 이라는 프로요. 거기서 얼마나 자세 히 말해주는데요.

    형사1: 뭐야! 이 녀석들이!

    한대 더 쥐어박는 형사1.

    (O.S.S)순경1: 이 놈들아, 어디서 싸움질이야. 싸움질은! 빨리빨리 들어가.

    문을 열며 들어오는 민수와 태준, 그리고 동료 한 명, 그리고 술취한 상대방 녀석들 네 명

    순경1:(맨 뒷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왜 이렇게 꾸물거려. 빨리빨리 들어가지 못해.

    (O.S.S.)형사2: 야이, 새끼들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휴

    형사2가 중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세명의 애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형사2: 어린 놈들이 뭐 좋은 거 있다고 본드를 마셔. 이 미친 새끼들아. 흉내를 내도 낼 걸 내야지. 어디서 양아치같은 짓만 골라하기는, 어휴. 부모님들은 얼마나 속이 타겠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명. 형사2가 타이핑하는 사이,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수근거린다.

    형사3:(담배를 질겅질겅 씹듯이 피우며) 야이 개자식들아, 왜 싸웠어? 응 이유가 뭐야? 밥들 잘 쳐먹고 왜 쌈박질이야? 힘이 남아 돌아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태준과 동료, 그리고 상대 네 명. 민수 혼자 모른 척 딴 곳을 보고 있다. 민수를 쬐려 보는 형사. 태준, 민수의 옆구리를 찌른다. 모른 척하는 민수. 민수의 머리통을 쥐어 박는 형사. 형사를 쳐다본 후 다시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민수. 담배를 집어 던지는 형사.

    형사3:(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걷어 붙이며)늦은 밤에 사람 잠 못자게 해 놓고 이 씨팔새끼가. 형사3가 주먹으로 민수를 때리려고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

    (O.S.S.)서장: 박형사, 지금 뭐하는 짓이야?

    형사3:(쭈삣거리며) 별거 아닙니다.

    서장:(화난 목소리로)빨리빨리 처리해서 보내. 지금 경찰서안이 엉망이잖아!

    출입문 쪽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순경의 손을 뿌리치며

    아저씨:(꼬부라진 목소리로)야,술먹는 것도 죄야.응, 죄냐구

    순경2: 돈을 내고 드셔야죠.

    아저씨: 술마시다 보면 돈을 못낼 수도 있지. 돈 없는 게 내 잘못이야? 나, 열심히 살았다구 (끌려가며) 나, 정말 열심히 살았어. 그런데도 돈이 없어. 이게 말이 돼.----



    #34.인터뷰 여섯-형사3(박형사), 경찰서 안에서

    요즘 젊은 애들 정말 문제에요. 목표나 가치관 같은 게 없는 거 같아요. 편하고 쉽게만 살려고 그래요. 모방범죄, 그거 무시 못해요. TV나 신문보고 따라하는 놈들, 꽤 있죠. 세상이 어떻게 될려고 그러는지.(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애들을 향해) 조용히 해, 이 녀석들아. 제 자식도 이럴까봐 걱정돼요. 경찰짓 오래 안 할 거에요. 늙어서 이 짓 어떻게 하겠어요? 그 동안 모은 돈하고 퇴직금 합해서 가게나 하나 내야죠. 누구요? 아, 그 놈요. 고집이 세어 보이고 좀 이상한 느낌을 줬어요. 뭐랄까 불안해 보였어요. 왠지 기분 나쁜 녀석 있잖아요.



    #35.집으로 오는 길-밤

    민수와 태준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다. 거리에는 사람들도 없고 어두워 황량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태준:(서장의 목소리를 흉내내며)박형사, 지금 뭐하는 짓이야?

    키득키득 웃는 태준. 그러다가 심각하게

    태준:야, 아까 왜 칼은 들고 설쳐. 하여튼 겁대가리는 없어.

    묵묵부답인 민수.

    태준:너, 뭔가 기분나쁜 일 있었지, 그렇지? 너 웬만해서는 아무리 시빌 걸어도 거들떠 보지 도 않잖아. 뭐야? 대체. 말해 봐. 이 형님이 상담해 주께.

    조용히 걷기만 하는 민수. 잠시후에 민수:너 집나온지 얼마나 된다고 그랬지?

    태준:그건 왜? 자식, 1년 정도 돼간다고 전에 말한 것 같은데.

    민수:1년이라. 식구들 보고 싶지 않아? 형제가 어떻게 된다고 했더라?

    태준: 이 자식, 오늘 영 이상하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잠시 뜸을 들이다가)여동생 하나 있어. 가끔씩 생각나지.

    민수:(잠시 생각하다가)어머니 보고 싶지 않아? 어떤 분이시냐?

    태준:(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말도 마. 어휴, 어찌나 극성스럽고 잔소리가 많은지 머리가 아 플 지경이라니까. 그래도 제일 만만하지. 가끔 보고 싶기도 해.

    얼굴이 다소 굳어지는 민수.

    민수:아버지는 뭐하시는데?

    태준:(민수를 쳐다보며)이 새끼, 수상하네.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민수:아니, 그냥 궁금해서.

    태준:사업하셔.

    민수:부자구나. 너네집

    태준:부자? 사업하면 다 부잔가? 글쎄, 그냥 보통이야.

    민수:집나온거 후회하지 않아?

    태준, 말이 없다.

    민수: 너, 후회하는구나.

    태준: 아냐, 자식아. 후회는 무슨. (조심스럽게) 근데 너--,부모님에 관해서 생각나는 것도 없 어?

    민수: (한참후에)글쎄, 잘 모르겠어.(잠시 있다가) 근데 너-,TV보고 가출했다는 거 정말이야? 가출 청소년 다룬 프론가 뭔가 보고?

    태준:(약간 쑥스러워하며) 응. 진짜야. 학교랑 집이 갑갑했고 공부도 하기 싫고. 그냥 괜히 벗 어나고 싶었어. 그때는.

    민수: 맞아.개네들이 쌈박하고 멋있어 보였다고 그랬지? (약올리는 말투로)어때? 너 자신이 좀 쌈박해진 것 같애?

    태준: 아니 뭐라고? 이 자식이

    도망가는 민수.

    태준:(민수를 쫓아가며)야,너 거기 안 서. 잡히면 너 죽었어.



    #36. 외진 골목안-늦은 밤

    급하게 골목으로 뛰어 들어와 벽에 기대어 서는 민수. 심각한 민수의 얼굴,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

    (O.S.S.)태준:야, 민수아 어디 있어? 봐 줄 테니까 그만 나와.

    가만히 벽에 기대어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민수. 태준, 그냥 골목앞을 지나간다.

    (O.S.S)태준:이 녀석, 정말 빠르네. 집에 가면 보겠지, 뭐.

    뛰어가는 태준의 발소리.



    #37. 공원-밤

    공원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민수



    #38. 방안-저녁

    민수는 누워있고 태준은 TV를 보고 있다. TV에서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영화 퀴즈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TV-남MC:네 다음은 영화 `트루먼쇼'에 관한 화면이 나갈텐데요. 화면 안에는 영화 트루먼 쇼와 아무 관련이 없는 장면이 다섯 군데 있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겁니다.

    여MC:빠르게 지나가니까 단단히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발견하시는 분은 빨리 부자 를 눌러 주십시오. 네 그러면,

    남,여 MC:보시죠.

    영화 `트루먼쇼'의 편집화면이 흘러나온다.

    조금 보다가 재미가 없자 이곳저곳으로 채널을 바꾸어 보는 태준. 드라마가 하는 채널에서 멈추는 태준.

    TV-화창한 봄날의 공원. 몇몇의 사람들이 한적한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산책하는 사 람들, 가벼운 운동을 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뛴다.

    태준:어, 저거, 저기는 우리 동네 공원이잖아. (누워있는 민수를 건드리며)민수아, TV좀 봐. 야,야

    민수:(귀찮아하며 몸을 돌린다) 나 안 봐. 너나 봐.

    태준:(더 세게 흔들며)아,글쎄 좀 보라니까

    민수:(마지못해 일어나며)그 자식 대개 보채네. 뭐, 뭔데?

    태준:(TV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TV에서 너 자주 가는 공원이 나와.

    TV-공원벤치에서 이야기하는 젊은 남녀를 보여준다. 그러다가 맞은 편 빈 벤치에 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가 와서 앉는다.

    굳어지는 민수의 얼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놀라움과 의심이 교차한다.

    TV-아기를 안고 바라보는 젊은 여자. 까르르 웃는 아기. 즐거워하는 여자. 그리고 슬픈 표 정.

    심각한 민수의 얼굴을 보고 덩달아 심각해하는 태준. 꼼짝않고 고정된 시선으로 보는 민수.



    #39.인터뷰 일곱-태준, 방안에서

    (켜져 있는 TV. 광고가 나오고 있다.)

    완전히 미친 놈 같았어요. 두려울 정도로 진지했어요. 다음부터 그 드라마에 집착했어요. 거의 빼놓지 않고 다 봤어요. 그리고 나서 놈하고 좀 거리가 생긴 거 같애요. 솔직히 좀 겁이 났거든요.(가서 TV를 끄고 온다) 이 생활요? 점점 지겨워져요. 공부요? 골치아파요. 잘하는 애들이 부러울 때도 가끔 있죠. 사실 전 고등학교 들어올 때 1년 재수했어요. 창피하죠. 하지만 다 잘 할 순 없잖아요. 제가 잘 하는 거요? 글세, 뭐가 있을까? 춤요. 노래도 꽤 하는 편이에요. 앞으로 뭐 할 거냐구요? 잘 모르겠어요. 적당한 일자리 구해서 취직해야죠. 아님 아버지일 따라 해야죠.



    #40. 방안

    TV를 보고 있는 민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못해 광기마저 느끼게 한다.



    #. 드라마

    41 .$$나이트클럽입구-밤

    고급 외제 승용차가 나이트 클럽 앞에 미끄러지듯 멈춘다. 건장해 보이는 사내들이 차앞에서 기다린다. 한명이 문을 열고 주인집 아저씨가 내리자, 일제히 사내들이 `읍'하며 고개를 숙인다. (주인집 아저씨는 조직의 보스였음). $$ 나이트클럽안으로 들어가는 보스



    42 .$$나이트클럽내부

    시끄러운 음악.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지에서 정신없이 흔들고 있다. 스테이지를 돌아 자기 사무실로 가는 보스와 뒤따르는 부하들. 그를 알아보는 종업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43 .보스의 사무실-클럽내

    책상위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있는 보스. 보스 옆에 한 명이 서 있고 보스앞으로 여섯명의 사내가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다. 맨 앞줄 오른편에 스포츠형 머리의 사나이가 보인다.

    보스:(다리를 내리며)그쪽 낙찰건은 잘 준비되고 있겠지?

    부하1(보스 옆의 사내): 네

    보스:그리고 저쪽애들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감시해.

    부하1: 네.애들 몇명 풀어서 동태를 파악하겠읍니다.

    보스:그래. 빨리 보고하도록. 그리고 각자 자기 구역 철저히 사수해.

    부하들: 네.

    보스: 그래. 됐어. 일들 봐.

    현실 부분



    #44.공원-낮

    그 벤치에 앉아 있는 민수, 복잡한 표정이다. 일어나서 공원을 서성여 보는 민수. 그러다가 반대편 벤치로 다가간다. 벤치를 한번 만져보는 민수. 몸이 떨려오는 듯한 기분이다. 조심스럽게 벤치를 쓰다듬다가 천천히 앉아보는 민수.



    #45.단란주점-내부,밤

    무대에서 젊은이 한 명이 그룹 `초이스'의 "BACK HOME" 을 부르기 시작한다.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들에서 환호성이 울린다. 술을 갖다주고 빈 쟁반을 들고 가던 태준도 환호성을 지른다. 친구 두명이 가세해 세 명이서 춤도 함께 추면서 노래를 맞춰 부른다.

    태준: 어쭈, 저 자식들 제법이네.

    태준도 동작을 비슷하게 맞추면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주위 테이블의 사람들이 태준의 솜씨를 보고 환호한다. 어깨를 으쓱하는 태준.



    #46.단란주점입구-밤

    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삐끼들. 그냥 무관심하게 서있는 민수.

    민수의 동료:(술취한 세명의 아저씨들을 잡으며)아저씨, 단란주점 있어요. 싸게 해드리께요.

    아저씨:(혀가 꼬인 목소리로)아냐, 아냐, 우리는 룸싸롱 갈꺼야. 비켜.

    계속 쫓아가 보지만 놓치고 마는 동료.

    동료:(멍하게 구경만 하는 민수를 보고)야, 너 왜그래? 뭐하냐?

    대꾸없는 민수,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그냥 바라본다. 술취한 거리를 바라보는 듯하다.



    #47.공중전화박스-낮

    공중전화박스안으로 들어가는 민수. 동전을 넣는다. 잠시 망설인다. 뒤를 돌아다보는 민수. 아가씨 한 명이 기다리고 있다.

    민수:(그냥 나오며)먼저 사용하세요.

    아가씨:(놀래며)고,고마워요.

    기다리며 골똘히 생각하는 민수. 그냥 걸어간다



    #48.길거리

    길거리를 걷는 민수. 비어 있는 공중전화박스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49.전화박스안

    잠시 망설이다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거는 민수. 543-6432.` 따르르르릉' 신호음이 울린다.`철컥'

    (O.S.S.)여보세요.여기는 `사랑을 찾아드립니다'담당자입니다

    민수:(머뭇거리며)여,여보세요.

    (O.S.S.):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민수:저----, 일반사람도 신청해도 됩니까?

    (O.S.S.):네, 출연신청하시려구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민수: 강민수인데요.

    (O.S.S.):나이는요

    민수:스물하난데요

    (O.S.S.):주소는요

    민수:--구--동--번지데요

    (O.S.S.):그럼 찾으시는 분은 누구세요?

    민수:어머니요

    (O.S.S.):어머님 성함은요?

    대답하지 못하는 민수

    (O.S.S.):여보세요? 어머니 이름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를 끊는 민수.



    #50.인터뷰 여덟-전화받았던 아가씨, 방송국의 사무실에서 자기 자리에 앉아

    기억 못하죠. 워낙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떻게 일일이 목소리를 구별하겠어요?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받는 아가씨)지금 안 계신데요. (자세를 고쳐 앉으며)TV가 나쁜 점도 많지만 우리 프로는 괜찮은 거 같애요. 유익한 면도 많구요. 애타게 찾던 사람 만나는 거 보면 얼마나 흐뭇한데요. 그럴 땐 나름대로 긍지도 느껴요.



    #.드라마

    51. 보스의 서재-보스의 대저택안-오후

    꽤 넓은 서재에는 온갖 장서로 가득차 있다. 전화를 하고 있는 보스.

    보스:(목소리를 깔아서)전에 말했던 그 건은 어떻게 됐나? 응, 응. 그래 수고했어.

    수화기를 내려놓는 보스. 이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하의 엄마. 커피를 쟁반에 받쳐들고 있다. 그녀를 훓어보는 듯한 보스의 눈빛. 순간 머뭇거리는 그녀. 잠시 후 보스에게 가까이 다가가 커피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빨리 돌아서 나오려 한다.

    보스:집사람은?

    정하의 엄마:(조심스럽게)사모님은 외출하셨읍니다.

    보스: 그래, 나가봐.

    문을 닫고 나가는 그녀. 그런 그녀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보스.



    52 . 서재의 문앞

    문앞에 서서 한숨을 내쉬는 그녀.

    (O.S.S.)보스: 참, 나 목욕할테니까 물온도 맞춰 놓고 갈아입을 옷 좀 준비해 줘.

    언뜻 그녀의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불길한 예감.

    (O.S.S.) 물소리



    53 . 목욕실

    상당히 넓은 호화판 개인 목욕실. 욕조에 물을 받고 있는 정하의 엄마. 이 때 뒤에서 타올을 몸에 두르고 나타나는 보스. 깜짝 놀라는 그녀. 보스에게 고개를 숙인뒤 나가려는 그녀. 그 때 그녀의 손목을 붙잡는 보스. 붙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 그바람에 보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타올이 떨어진다. 드러나는 보스의 몸. 나이는 들어 살은 붙었지만 단단한 근육질의 몸. 질겁하며 고개를 돌리는 그녀.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힘껏 움켜진 채 자신을 향하도록 만드는 보스.

    보스:(나즈막히 그러나 힘있게)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대강은 눈치는 챘겠지. 자식 새끼 잘 간 수하려면 나하자는 대로 하는 게 좋을거야.

    아무말도 못한채 두려움에 벌벌 떠는 그녀.

    보스:지금 집사람도 비슷한 처지였지. 말만 잘 들으면 너랑 자식새끼 장래는 내가 책임지지.

    그녀의 옷을 벗기는 보스. 눈을 질끔 감는 그녀. 흘러넘치는 욕조의 물.

    현실 부분



    #54.심야술집의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 얼굴을 씻는 민수.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거울속의 인물이 낯설게 보인다. 거울속의 인물이 민수를 응시하는 느낌이다.



    #55.심야술집

    시끌벅적한 분위기. 취기가 잔뜩 올라와 있는 공기. 몇몇 손님들이 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온다. 각자 자기집으로 손님들을 데려가려고 아우성이다.

    아줌마: 이봐요, 여기로 와, 싸게 해줄께. 아저씨: 서비스안주, 잘 나가. 일루 와. 일루

    민수, 화장실을 나와서 가운데 쯤에 있는 테이블로 간다. 태준과 몇명의 여자애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모두들 취기가 올라 있다.

    태준:야, 너희들 요즘 `초이스'의 "BACK HOME" 들어봤냐?

    경미:(코웃음치며)그럼. 요새 그 노래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태준:그래, 알았어. 그 노래 정말 느낌이 팍 오지 않냐?

    아가씨1:맞어, 오빠. 그 노래 들으면 웬지 BACK HOME 하고 싶어.

    이 때 의자에 앉는 민수.

    소연:(술이 취한 목소리로)오빠, 어디갔다 이제 온 거야? 응

    태준:야, 화장실에서 뭘 했길래 그렇게 오래 있냐?

    민수:(잔을 비우고)야, 술이나 따라.

    태준:허, 이 자식

    술을 따라주는 태준.

    민수:(잔을 들며)자 다 같이 마시자구.

    소연:(즐거워하며)오늘 먹고 죽자. 와! 다같이 건배한다. 걱정스런 눈으로 민수를 보는 태준



    #56. 여관의 화장실

    쏟아지는 물줄기. 샤워를 하고 있는 민수.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응시하는 민수.



    #57.여관방

    화장실문을 열고 나오는 민수. 침대위에는 술이 취한 소연이 자고 있다. 소연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민수. 소연이 옆에 가만히 눕는다. 몸을 뒤척이는 소연, 민수의 목을 끌어안는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민수.



    #58.인터뷰 아홉-소연, 연관방에서 침대에 걸터 앉아

    술이 많이 취해서 아무 기억도 안 나요. 눈 떠 보니까 오빠는 가고 없더라구요. 오빠도 그냥 눈만 붙이고 갔나 봐요. (담배를 피워 문다) 이런 일 가끔 있죠. 그 오빠는 얌전한 편이죠. 매너도 있고. 미친 놈들이 얼마나 많은 데요. 담배요? 배운지 얼마 안 돼요. 많이 안 펴요. 피부에 안 좋거든요. (담배를 끈다) 집은 아직까지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골치 아파요. 꼭 가수가 될 거에요.그래서 유명해져야죠, 엄청. 그냥요. 그러고 싶으니까요.



    #.드라마

    59 .서재

    커피를 갖다주는 그녀를 강제로 겁탈하는 보스. 흔들리는 커피잔. 허공을 쳐다보는 공허한 그녀의 눈.

    60 .거실

    울리는 전화기. 굳어지는 그녀의 표정.

    61 .어두운 길가의 차안

    그녀를 범하는 보스. 높은 전신주에 목을 맨듯 달려있는 가로등 하나.

    62 .고급 호텔 입구-오후 도착하는 보스의 차. 기사에게 무언가 말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보스. 수행하는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63 .최고급 VIP룸 내부

    불안감과 괴로움에 객실안을 왔다갔다하는 정하의 엄마. 무언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

    64 .엘리베이터안의 보스

    65. VIP룸내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보스. 뒤로 멈칫 물러나는 그녀. 잔인하고 음흉하게 씨익 웃는 보스. 거칠게 그녀를 밀어붙이는 보스.

    66 .정하와 엄마의 방

    정하를 꽉 안고 있는 엄마. 숨이 막혀 벗어나려고 하는 정하. 발버둥치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가만히 엄마품에 안겨 있는 정하.

    정하:엄마, 울지마. 엄마

    계속 흐느끼며 정하를 으스러질 듯 껴안는 정하의 엄마

    67 .학교운동장-낮

    점심시간. 열심히 뛰어노는 아이들. 수돗가 옆의 한쪽 구석에 어린 정하와 보스의 어린 딸이 나란히 앉아 있다. 우울한 얼굴의 정하. 그런 정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린 딸. 수돗가에서 손을 씻다 둘을 발견하는 보스의 어린 아들. 씩씩거리며 정하에게 다가온다.

    어린 아들:(자기 동생을 잡아끌며)야, 너 얘랑 놀지 말랬지.

    어린 딸:(뿌리치며)오빠가 무슨 상관이야.

    어린 아들:(때리는 시늉을 하며) 이게, 어휴. (앉아있는 정하의 머리를 치며)너, 내 동생이랑 놀지마. 알았어?

    대답 않고 가만 있는 정하.

    어린아들:(머리를 툭 치며)이게 귀가 먹었나? 알았어?몰랐어?

    갑자기 폭발하는 정하. 상급생인 어린 아들을 잡고 밀어 붙인다. 같이 넘어지는 아들과 정하. 땅바닥에서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둘. 애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주위를 빙 둘러싼다.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딸

    68 .대저택 앞

    흙먼지를 뒤집어쓴 옷을 입은 채 벨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는 정하. 어머니께 꾸중들을 일이 걱정이다. 얼굴에는 제법 상처가 있다. 따끔거려서 얼굴을 찡그리는 정하. 마침내 벨을 누른다. 응답이 없다. 한 번 더 눌러보는 정하. 역시 응답이 없다. 대문을 살짝 밀어본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정하.

    69 .거실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오는 정하. 아무도 없는 듯 집안이 조용하다.

    정하:(불안감이 담긴 낮은 목소리로)엄마, 엄마

    역시 아무 대답이 없다.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정하.

    70 .정하와 엄마의 방

    아무도 없다. 가방을 방에 내팽겨치고 뛰어나가는 정하

    71 .이곳저곳을 엄마를 찾아다니는 정하

    정하:(큰 소리로)엄마!엄마!

    어디선가 물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다. 조용히 귀에 신경을 집중하는 정하. 욕실의 문이 약갼 열려진 것을 발견한다.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한걸음한걸음 천천히 다가가는 정하. 욕실문을 살짝 밀어본다. `끼익'하면서 열리는 문.

    72 .욕실

    욕조안에 깊이 잠겨있는 정하의 엄마. 욕조는 온통 핏빛이다. 수도꼭지에서는 계속 물이 흘러나오고 욕조의 핏물이 넘쳐 하수 구멍으로 자꾸만 흘러 들어가고 있다. 턱하고 숨이 막혀 오는 정하, `쿵'하고 그대로 쓰러진다.

    73 .정하와 엄마의 방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 세상의 빛이란 빛은 모두 소멸한 듯하다. 그 속에서 하나의 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천천히 눈을 뜨는 어린 정하. 마치 꿈을 꾼 듯한 기분이다. 눈을 깜박거려보는 정하. 그때 어둠을 가로질러 들려 오는 목소리

    (O. S. S.)보스:당신 조용히 하지 못해.

    부인:당신 어떡할 거예요. 내가 마지막이라며? 어떡할 꺼야? 사람을 죽게 만들어 놓고

    보스:입닥치지 못해. 죽고 싶어.

    부인:아이구, 독한 년, 그렇다고 목숨을 끊을 건 또 뭐야.

    보스:한번만 더 입 놀리면 죽여 버리겠어. 미친 것들. (내뱉듯이) 바보같은 계집.

    문틈으로 몰래 훔쳐보는 정하. 보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74 .정하와 엄마의 방-깊은 새벽

    살그머니 일어나 소리나지 않게 문을 여는 정하.

    75 .거실

    방에서 조심스럽게 나와 거실을 쥐죽은 듯이 걸어가는 정하.

    76 .현관문을 닫고 정원을 날쌔게 가로지르는 정하.

    77 .대문앞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으로 나오는 정하. 문을 닫고 멀리 달아나는 정하. 달아나다 말고 멈추어 서서 대저택을 증오의 눈으로 쳐다보는 정하. 길바닥에서 돌맹이를 하나 집어들고 창문쪽으로 집어 던진다. 힘이 부쳐 정원의 풀숲으로 떨어지는 돌멩이. 주먹을 꼭 쥐어보는 정하, 달려가기 시작한다.

    현실 부분



    #78. 단란 주점 내부-늦은 밤

    유난히 손님이 많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태준. 무대에서 누군가 잔잔한 발라드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드라마 `운명'의 주제가다. 한 테이블에서 드라마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여2: 어머, 이 노래 너무 좋아.

    남1:야,너 지난주꺼 봤냐? 요즘은 TV도 꽤 야해.

    남2:그래. 소문은 대개 많이 났더라. 한번 꼭 봐야 되겠는데.

    남3:그 여자 탤런트 정말 죽이더라. 청순한 듯 하면서도 뭔가 촉촉한--.

    남1:맞아. 탤런트 이보라의 매력이 바로 그거 아냐.

    여1:하여튼 남자들은 똑같아. 너무 불쌍하게 됐어, 그치?

    여2:그러게 말야.그리고 너무 잔인해.

    소연이가 태준에게 다가간다.

    소연:민수 오빠, 안 나왔어?

    태준,고개를 끄덕인다.



    #79.인터뷰 열-남1, 단란주점입구에서

    드라마, 잘 안 보죠.시시한 얘기를 많이 하니까요. 근데 그 드라마는 괜찮아요. 선정적인 게 시청률에 영향을 주는 거 같아요. 지루하진 않거든요. (친구들이 부른다. 친구들에게) 알았어, 갈께. 입구에서 일하는 사람요? 삐끼중 한 명요? 잘 모르겠어요. 누가 누군지. 밤이고 사람들도 많고 술이 취한 상태가 많으니까. 삐끼요? 귀찮을 때가 많죠. 걔들도 먹고 살려고 하겠죠. 하지만 없었으면 좋겠어요. 자주 마셔요. 스트레스 받는게 많으니까, 달리 풀 방법도 없고.



    #80.단란 주점 입구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사람들. 민수는 보이지 않는다.



    #81.방안

    TV를 보는 민수. TV에서는 심야토크쇼를 하고 있다.

    TV-남MC:요즘 드라마 `운명'의 인기가 대단하죠?

    여MC:네.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그러죠. 그리고 주제가 또한 각종 순위프 로그램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죠.

    남MC:맞습니다. 거리를 걷다보면 이 노래를 흔히 들을 수 있죠.

    여MC:여러분, 드라마` 운명'의 주제가를 불렀고, 남자 주인공 `정하'역을 맡고 있는 정우 영군을 모시겠읍니다.

    남MC:그리고 지금 인기폭발이죠. 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고 있는 아역 탤런트 김민호 군도 모시겠읍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박수를 받으며 걸어 나오는 탤런트 정우영. 그리고 아역의 김민호. 방청객들에게 인사하 고 자리에 앉는다.

    정우영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는 민수. 민수와 외모가 너무나 흡사하다. TV로 가까이 다가가는 민수.

    TV-여MC:정우영씨, 신인 탤런트로서 최고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은 소감이 어때요?

    정우영:물론 기쁘죠. 감독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남MC:아직 정우영씨는 등장하지 않았죠?

    정우영:예,아직까지 주인공 정하의 어린시절부분만 방영되었기 때문에 저를 드라마에서 는 보시지 못했을 거예요. 곧 드라마에서 저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저 의 분신 민호가 나오니깐요, (웃음) 많이 봐 주세요

    여MC:김민호군은 지금 몇 살이에요?

    김민호:12살요.

    여MC:연기 재미있어요?

    김민호:네, 너무 재미있어요.

    남MC:우영이형 어때요?

    김민호:엄청 멋있어요. 그리고 저한테 대개 잘해줘요. 연기 지도도 해주고요.

    남MC:앞으로 꿈이 뭐에요?

    김민호:(야무지게)우영이형같이 멋진 연기자가 되는 거요.

    남MC:연기뿐만이 아니라 가수로서 먼저 유명해졌죠?

    정우영:네, 제가 부른 드라마 주제가가 사랑받는 바람에 여러분들에게 가수로 먼저 알 려지게 되네요. 저야 영광이죠.

    남MC:어떻게 주제가를 부르게 됐어요?

    정우영:우연이었어요. 감독님과 스텝들, 그리고 출연진끼리 처음 뵙고 나서 신고식을 했 어요. 술을 먹고 나중에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 제 노래를 들으시더니 음악 담당하시는 분께서 제안을 하셨어요. 감독님도 좋다고 하시고 그래서 하게 됐죠. 운이 좋았죠.

    여MC:기왕 말이 나온 김에 주제가를 한번 불러 주시는 게 어떨까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온다. 정우영, 조금 멋적어하다가 몇소절을 부른다. 터져나오는 박수소리.

    남MC:네, 정말 노래를 잘하는군요. 그러면 정우영군이 맡은 `정하'라는 인물의 캐릭터 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 해주실래요?

    정우영:뭐랄까, 참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남자에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어린 나이에 감당하지 못할 일을 겪고 그 충격에 가출해서 갖은 고생을 다 겪죠. 고독하고 우울하고 그리고 타고난 싸움꾼이죠. (웃으며) 미리 아시면 재미없으실 거예요. 앞으로 드라마 보시면 모든 궁금증이 풀릴 겁니다.

    집요하게 TV에 몰두하는 민수, 정우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82.골목-밤

    하릴없이 골목을 걷고 있는 민수, 심각한 표정이다.



    #. 드라마

    83 .평범한 동네의 골목-새벽-(이 때부터 정우영씨가 정하역으로 출연)

    쌀쌀한 바람이 간간이 분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신문 하나를 담너머로 던진다.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정하. 새벽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도 있다.

    84 .허름한 방에 누워 있는 정하.

    천정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다.

    85 .주유소-밤,

    차가운 밤공기가 유난히 매섭다.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온다. 주유소의 사무실 안에서 정하가 나온다. 좀더 나이가 먹은 모습. 20살 가량.

    정하:얼마나 넣어 드려요.

    남자:가득 넣어

    숙달된 솜씨로 기름을 넣는 정하.

    정하:아저씨, 다 됐는데요.

    돈을 받는 정하. 사무실로 뛰어가 거스름돈을 갖다 주는 정하.

    정하:(큰소리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출발하는 차.

    86 .주유소 사무실안

    문을 닫고 들어오는 정하.

    경수: 야, 빨리 문 닫어. 찬 바람 들어와.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난로 가에 모여 있다.

    젊은이1: 야, 우리, 사장도 없는데 포카 한 판 어때.

    경수: 그거 좋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정하.

    경수:(카드를 돌리며) 지존이 오늘은 카드에 관심이 없나보네.

    몸을 돌려 카드판으로 다가오는 정하.

    87 .허름한 방-저녁

    특별히 가구라고 할 것도 없는 조촐한 단칸방. 혼자 누워 있는 정하. 문을 벌컥 열며 경수가 고개를 내민다.

    경수:(고개짓을 하며) 야, 나가자. 슬슬 준비해야지.

    문을 닫고 나가는 경수. 잠시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정하.

    88 .길거리-밤

    (O.S.S.)소매치기다! 저 놈들 잡아라!

    열심히 달아나는 정하와 동료 하나. 뒤쫓아 오는 피해자와 순경. 골목길에 숨어있는 경수에게 가방을 넘기고 계속 달아나는 정하와 동료. 엇갈린 길에서 서로 갈라지는 정하와 동료. 정신없이 도망가다 옆길에서 걸어나오든 사람이랑 부딧친다.

    정하:아이 씨팔, 눈도 없어?

    (O.S.S.):저녀석 잡아라!

    계속 쫓아오는 순경. 당황한 정하. 도망가는 정하.

    90 .허름한 방-아침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정하. 방문을 열고 돈뭉치를 `툭'하고 정하앞에 던지는 경수.

    경수:네 몫이다. 수고했어.

    가만히 돈뭉치를 바라보고 있는 정하.

    경수: 야, 좀 세어보기라도 해봐라. 너 지금까지 한번도 안 세 봤지? 참, 그리고 너 오늘 저녁에 나랑 어디 좀 가자.

    정하: 왜? 오늘 한탕 더 하게. 당분간 충분하잖아?

    경수: 아냐, 자식아. 중요한 일이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와. 너 맨날 이 짓거리만 할 순 없 잖아.

    91 .나이트 클럽 입구-저녁

    이른 시각이라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고 있는 나이트 클럽. 클럽 안으로 들어가려는 경수.

    정하:형, 여기는 왜?

    경수:(뒤돌아보며)너, 소매치기 계속 하고 싶냐?

    말없이 경수 뒤를 따르는 정하.

    92 .나이트 클럽 내부

    영업준비를 하고 있는 종업원들. 한쪽편 의자에 앉아 있는 짧은 스포츠형 머리의 사나이가 가만히 앉아 있다. 딱 벌어진 어깨가 운동 꽤나 했음을 짐작케 한다. 내부를 한번 살펴보는 경수. 사람을 발견한다. 정하를 데리고 스포츠형 머리의 남자 앞으로 가는 경수

    경수:(고개를 깊이 숙이며)형님, 저 경숩니다.

    덩달아 따라서 고개를 숙이는 정하

    스포츠 사나이: 어, 이 자식 오래만이구나. 그래 너 사업은 잘 되고 있고.

    경수: 네, 형님 덕택에요.

    스포츠 사나이: 참, 너 부탁할 꺼 있다고 했지? 그래, 뭐냐?

    경수: 아, 네.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하를 보고) 인석아, 제대로 인사드려.

    정하: (어색해하며)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정하라고 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정하.

    경수: 뭐, 다른게 아니라 이 놈 좀 거두어 주십사하고----.

    스포츠 사나이: 왜? 네 밑에서 쓰는 놈 아냐? 필요없어?

    경수: 아니, 이 녀석이 그 짓에 소질이 없어서--.

    정하: 아니, 형. 그게 무슨 말이야. 나보다 빠른 놈이 어딨어?

    경수: 이 자식이? 가만히 안 있어? (스포츠 사나이를 보고 읍하며) 죄송합니다. 형님

    스포츠 사나이:(정하를 아래위로 찬찬히 훑어본후 홀쪽을 향해) 상남아, 이 놈 데리고 가서 옷 입혀라. 오늘 저녁부터 일 시킬 거니까 간단하게 설명도 해주고.

    종업원 복장의 상남이라는 남자가 다가온다.

    스포츠 사나이:이 친구 따라가.

    따라가면서 경수를 한번 돌아보는 정하.

    93 .나이트클럽 주변 유흥가 골목-밤

    곳곳에 현란한 네온들. 쾌락을 찾아 떠도는 많은 사람들.

    94 .나이트클럽 내부-밤

    신나는 댄스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스테이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손님들이 들어오자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받는 정하.

    현실 부분



    #95.방안-밤

    TV를 보는 민수와 태준. 막 드라마`운명'이 끝난다. TV에선 광고를 하고 있다.

    태준:(민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근데 너 정말 그 남자탤런트랑 닮았다. 똑같이 생겼어. 대답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하는 민수.

    태준:근데 너 요즘 일도 안 나오고 뭐하냐? 안 보던 TV에 푹 빠져 가지고. 이 드라마 계속 챙겨 봤지. 혹시 남자 탤런트랑 너랑 무슨 어릴 적 헤어진 형제. 뭐 이런거 아냐?

    벌렁 드러눕는 민수, 묵묵부답이다. 잠시 후 벌떡 일어나 나가 버린다.

    태준: 야,야, 장난이야. 어디가? (문닫는 소리) 참, 그 자식, 이상한 놈이네.

    TV에서는 어느새 광고가 끝나고 가요순위 프로그램 인기가요30 을 하고 있다.

    TV-남MC: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폭발적인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운명'을 들어 봤 읍니다. 정말 노래좋죠? 김희숙씨?

    여MC:네. 그럼 이에 맞서는 또 다른 1위 후보곡을 들어보겠읍니다. `초이스'의 `BACK HOME'!

    무대에 등장하여 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초이스'. 어청난 박수와 환호성.

    따라하지 않고 심각하게 바라보는 태준. 밖으로 나간다.



    #96.공원-밤

    벤치에 앉아 있는 민수. 혼란스러운 표정



    #97.공중전화 박스안

    버튼을 누르는 태준. 신호음. `철컥' 전화받는 소리.

    (O.S.S.)여동생:여보세요

    대답하지 못하는 태준.

    (O.S.S.)여동생:여보세요,여보세요.(잠시 침묵)오빠지? 그치? 오빠지? 오빠!오빠!

    전화를 끊는 태준, 길거리를 걸어간다.



    #98.공원 입구-밤

    공원 입구까지 터벅터벅 걸어오는 태준. 입구에서 멈춰 서서 공원을 본다.



    #99. 공원벤치

    벤치위에 앉아서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는 민수.



    #100.공원 입구-밤

    민수에게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태준, 조금 가다 멈춘다. 잠시 서 있다 오던 길로 되돌아 가는 태준.



    #101.공중전화 박스-밤

    다시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오는 태준,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동전을 넣는다. 버튼을 누르는 태준. 신호음. 철컥 전화받는 소리.

    (O.S.S.)여동생:여보세요

    대답하지 못하는 태준.

    (O.S.S.)여동생:여보세요,여보세요?(잠시 침묵)오빠지? 그치? 오빠지? 오빠!오빠!

    태준:그래, 나야. 너가 받아서 다행이다. 부모님이 받으면 끊었을꺼야. 잘 지내니?

    (O.S.S.)여동생:응, 나야 괜찮지. 오빠는?

    태준:걱정하지마. 부모님은 잘 계셔?

    (O.S.S.)여동생:오빠, 집에 들어와. 사실은 오빠 집나가고 나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어. 아 빠도 엄마 간호하신다고 정신이 없으셔. 엄마, 아빠가 얼마나 오빠 걱정을 많 이 하는데.

    태준:(당황하며)그, 그래.

    (O.S.S.):오빠, 돌아올 꺼지. 응?

    태준, 대답하지 못한다.



    #102. 인터뷰 열하나-태준의 여동생, 자기 방에서

    전화 받고 무지 기뻤죠. 오빠 나가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죠. 엄마, 아빠가 충격을 많이 받으셨어요. 상상도 못 하신거죠. 우리 집 잘사는 편이죠. 갑부는 아니지만. 오빠요? 좀 엉뚱하긴 해도 나쁘진 않아요. 공부엔 관심이 없죠. 저는 달라요. 하긴 싫지만, 공부 못하면 대접 못 받아요. 싸움을 잘 하든지, 공부를 잘 하든지 둘 중에 하나는 잘 해야죠. TV요, 잘 안 봐요. 관심없어요. 주위에 한심한 애들도 많죠. 연예인 복장이나 헤어 스타일 흉내내고. 이해가 잘 안 가요. 가출요? 왜 해요? 집나가면 고생인데. 우리 오빠는 원래 좀 충동적인 면이 많아요.



    #. 드라마

    103 .다른 조직의 사무실-낮

    오피스텔의 15층. 두목으로 보이는 남자가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지만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매섭다.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긴 머리의 건장한 사내가 긴장된 자세로 서 있다.

    두목:(창밖을 보며)모든 준비는 됐겠지?

    긴머리 사나이:(읍하며)네, 지방에 있는 애들까지 불러 모았읍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두목:장사가 제일 잘 되는 데가 어디지?

    긴머리 사나이:@@나이트 클럽(정하가 일하는 곳)입니다.

    두목:좋아. 오늘밤에 거기부터 접수해.

    긴머리 사나이:네.

    물러나는 긴머리. 창밖을 보며 잔인한 미소를 짓는 두목.

    104 .도로-밤

    여러 대의 차량이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달리고 있다. 앞에는 한 대의 검은 승용차가 있고 그 뒤를 몇대의 봉고차와 짚차가 따르고 있다.

    105 .봉고차 안

    각목을 든 건장한 청년들이 단단하게 앉아 있다.

    106 .짚차안

    무기를 든 청년들.

    107 .검은 승용차안

    뺨에 흉터가 진 남자가 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옆에 좀전의 긴머리 사나이가 의자에 깊숙이 앉아 있다. 자신만만한 표정.

    108 .@@나이트클럽내부

    광란의 분위기. 춤추는 사람들로 무대는 터져나갈 것 같다. 강렬한 댄스 음악이 정신없이 쿵쾅거린다. 바쁘게 오가며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나르는 정하와 종업원들.

    109 .나이트클럽 내의 사무실

    창문을 통해 클럽의 상황을 보고 있는 스포츠 사나이, 의자에서 일어선다. 사무실 중앙쯤에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소파에 남자 대여섯명이 화투를 치고 있다. 영식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영식: 아휴, 씨발. 오늘 정말 사람 많네. (스포츠 사내에게 다가가)형님, 연일 장사도 잘 되는 데 저희들 용돈 좀 올려 주십쇼.

    스포츠 사나이:(심각한 어조로)지금 몇 시냐?

    상철 :12시가 거의 다 돼가는데요.

    스포츠 사나이: 뭔가 예감이 좋지 않은데. 조금 있다가 손님 내보내. 오늘은 일찍 문 닫자구.

    110 .나이트클럽 입구 주변

    멈추어 서는 검은 승용차. 그 뒤를 따라 조용히 멈추는 짚차와 봉고차. 짚차에서 재빨리 내리는 청년들. 검은 승용차에서 칼자국의 사나이가 내린다.

    칼자국의 사나이: 너희들은 정문으로, 그리고 너희들은 후문으로. 사정없이 박살내 버려.

    일사불란하게 달려가는 청년들. 검은 승용차로 다시 다가가는 칼자국.

    칼자국의 사나이: 형님, 준비됐읍니다.

    긴머리의 사나이: 차에 들어와서 잠시 기다려. 자네와 나는 잠시후에 가보지.

    씨익 웃는 긴머리 사나이. 따라서 웃는 칼자국.

    111 .나이트클럽 내부

    광란의 분위기. 갑자기 피투성이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쓰러진다.

    피투성이: (힘겹게) 기습이다! 기습.

    주위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 뒤를 이어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무기를 든 청년들. 혼비백산하는 사람들. 비상구로 도망가는 사람들. 나이트클럽의 주먹들(보스파)도 몇명 달려온다. 부딪히는 폭력.

    112 .클럽내 사무실

    뛰어 들어오는 보스파의 졸개

    졸개: 형님, 기습입니다.

    보스파 사람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뭐야!

    영식: 이 개새끼들.

    스포츠 사나이, 깊은 신음을 내쉰다. 일그러지는 얼굴

    스포츠 사나이: (단호하게)가자!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

    113 .클럽 내부

    마구 부수는 두목파 (정하쪽을 보스파, 반대편을 두목파로 칭함) 치고 받는 두목파와 보스파.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 얻어 터지는 종업원. 각목에 허리를 맞는 사내. 점점 밀리는 보스파. 이 때 사무실에서 나온 사람들이 합류한다. 각목을 피하고 상대방의 면상을 날리는 보스파의 영식. 병으로 두목파의 한놈을 박살내는 상철. 격렬한 반격에 약간 주춤하는 두목파.

    114 .클럽내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는 정하. 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갸웃하는 정하.

    115 .다시 클럽내부

    뒷문을 부수며 우루루 들어오는 한 무리의 두목파. 숫적으로 너무 열세인 보스파. 죽도록 맞서는 보스파. 그러나 점점 두목파에게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스포츠 사나이가 마구잡이로 각목을 휘두르는 졸개 한 명을 그대로 받아 버린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졸개. 정문 입구에서 드디어 등장하는 칼자국과 긴머리의 사나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긴머리 사나이: 흠, 제법 오래 버티는데

    칼자국의 사나이:(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칼날을 만지작거린다.)제게 맡기십시오.(나가려 한다)

    긴머리 사나이:(막으며)아냐, 아직 일러. 좀더 구경하자구.

    가까운 위치로 옮겨가는 두 사나이. 열심히 싸우는 보스파. 그러나 남아있는 숫자는 열명 남짓 뿐이다. 연거푸 두목파 졸개들을 때려눕히는 스포츠 사나이. 상대방의 발차기 한방을 얻어 맞는 보스파의 영식.

    116 .클럽내 화장실

    손을 씻는 정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손을 빨리 닦고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정하. 깜짝 놀라는 정하. 잠시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정하.

    117 .다시 싸움판

    긴머리의 사나이:(큰소리로)그만!

    싸움을 멈추는 두목파 청년들, 한 곳으로 모이다. 보스파들도 반대쪽에 모인다.

    스포츠 사나이:(이를 악물며)아니 저 놈이.

    긴머리의 사나이:저 분은 너희들의 상대가 아냐! 하하하, 망치형님, 잘 계셨읍니까? 여전하시 구만요.

    스포츠 사나이:(꾸짓는 투로)네 놈이 감히.

    긴머리의 사나이, 칼자국에게 고개짓을 한번 한다. 칼자국의 사나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번개같이 달려가는 칼자국. 상철이 그의 앞을 막아보지만 몇 합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칼에 복부를 깊게 찔린다. 영식도 맞서 보지만 날렵한 칼자국의 칼질에 허벅지를 베인 채 무릅을 꿇는다.

    118 .몸을 숨긴 채 칼자국의 사나이를 노려보는 정하.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119 .다시 싸움판

    피묻을 칼을 혀로 핥는 칼자국, 스포츠를 노려본다. 스포츠를 보호하려고 둘러싸고 있는 보스파. 스포츠, 부하들을 비키게 하고 칼자국과 마주한다. 팽팽한 긴장감. 부딪치는 시선. 번득이는 피묻은 칼날. 스포츠의 이마에 흐르는 땀. `쉭' 날카로운 칼소리와 함께 칼자국의 칼이 날아든다. 힘들게 피하는 스포츠, 칼자국의 빈 옆구리를 돌려차기로 가격한다. `철퍼덕' 엎어지는 칼자국. 그러나 다시 재빨리 일어난다. 재미있게 지켜보는 긴머리의 사나이. 칼을 다른 손에 옯겨 잡는 칼자국. 칼 한자루를 하나 더 꺼내 나머지 빈 손에 든다. 칼날에 반사되는 붉은 조명이 스포츠의 눈을 파고 든다. 순간, 전광석화같은 칼자국의 공격.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스포츠. 그러나 뒤이어 파고드는 다른 손의 칼. 옆구리를 베이는 스포츠, 비틀하며 신음 소리를 낸다.

    다시 한번 공격하는 칼자국. 피하고 반격의 발차기를 하는 스포츠, 그러나 잽싸게 칼로 허벅지를 베는 칼자국. 넘어지는 스포츠. 비틀대며 일어난다. 여유있게 잔인한 웃음을 흘리며 접근하는 칼자국. 다시 한번 파고든다. 이때 질풍같이 달려드는 정하. 테이블을 밞고 붕 뛰어넘어 칼자국의 턱을 날라 차는 정하. 갑작스런 기습에 쿵하고 쓰러지는 칼자국. 번개같은 정하의 등장에 일제히 놀라는 사람들. 일그러지는 긴머리의 얼굴. 힘들어 하면서도 놀라는 스포츠. 머리를 흔들어 보며 바닥에서 일어나는 칼자국, 충격을 먹었는지 다소 비틀댄다. 칼을 꽉 움켜쥐고 정하를 노려보는 칼자국. 빠르게 찔러오는 칼. 동물적인 몸놀림으로 피하는 정하. 칼자국의 손목을 걷어찬다. 공중으로 날아가는 칼. 순간, 매처럼 돌진하여 칼자국의 면상을 가격하는 정하의 무릅. 완전히 나가 떨어지는 칼자국. 처참하게 으깨어진 얼굴. 놀라는 스포츠, 그리고 보스파 사람들. 뒤로 주춤하는 두목파 청년들. 완전히 일그러지는 긴머리 사나이의 얼굴. 뚜벅뚜벅 걸어간다. 정하와 마주서는 긴머리 사나이. 웃옷을 벗는다.

    긴머리 사나이:형님이 무서운 애를 숨겨낳구만.

    부하들에게 고개짓을 한다. 한 녀석이 칼집에 담긴 일본도를 들고 온다. 칼집에서 천천히 일본도를 꺼내는 긴머리. 칼을 곧추 세우고 자세를 취한다. 살기가 뿜어 나온다.

    스포츠 사나이:(정하에게 작은 소리로)조심해, 잔인한 놈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하. 긴장된 모습이다. 순간 `번쩍'하고 칼이 바람을 가른다. 뒤로 물러서는 정하. 정하의 왼쪽 팔뚝에 피가 베어난다.

    긴머리: 재빠른 놈이군.

    춤을 추는 칼. 뒤로 밀리는 정하. 전광석화 같은 칼날. 두동강나는 테이블. 순간 붕 떠올라 공중 돌려차기를 하는 정하. 반사적으로 피하는 긴머리, 그러나 어깨를 맞는다. 약갼 주춤거리는 긴머리. 굳어지는 얼굴. 자세를 고쳐 잡는 긴머리. 마주선 채 서로의 약점을 살피는 정하와 긴머리. 먼저 공격하는 정하. 피하면서 칼을 내려치는 긴머리. 아슬하게 피하는 정하. 연이어 달려드는 칼날. 구석으로 몰리는 정하. 번쩍이는 칼날. 신음 소리를 내는 정하. 복부 부분을 베인 정하. 옷으로 피가 베어 나온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밀어 붙이는 긴머리. 뒤로 물러나다 벽에 기대게 되는 정하. 순간의 정적.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긴머리. 칼에 깊이 베일려는 찰나 벽을 타고 공중제비를 도는 정하. 벽을 베는 날카로운 굉음. 떨어지면서 긴머리의 목에 날아가는 정하의 손날. 착지와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는 정하. 피가 바닥에 흥건히 흘러나온다. 깊이 베인 옆구리 부분. 가만히 벽을 향한 채 서 있는 긴머리. `쿵'하고 떨어지는 일본도.

    현실 부분



    #120.방안

    TV-여 앵커: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운명'이 한국방송심의 위원회로부터 경고 판정을 받 았습니다. 지나친 애정묘사 때문에 한국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를 받았음에 도 불구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강도가 세어지고 있고 게다가 늘어나는 과도한 폭력장면 때문에 이런 강력한 태도를 취했다고 합니다.

    TV를 보고 있는 민수.



    #121.지하창고-밤

    몇몇의 젊은 남녀들이 제각각 놀고 있다. 뮤직 비디오를 보며 춤추는 애들, 껴안은 채 떨어질 줄을 모르는 남녀, 모여서 본드 마시는 애들, 대마 피는 애들도 있다. 엉겨 붙어 싸우는 놈들도 있다. 한쪽에선 포카판이 벌어진다. 태준은 술마시는 패에 끼어 있다. 잠시 후, 민수가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온다. 태준, 민수를 발견하고 손짓을 한다. 민수를 보고 같이 술마시는 녀석들이 아는 척을 한다.

    녀석1:야, 앉아. 진짜 오랜만이다. 그 동안 뭐 했냐?

    민수: 그래. 오랜만이다. 그냥 지냈어.(태준을 향해)무슨 일이냐?

    태준: (좀 망설이며)딴게 아니고---

    녀석2:(술이 취해)야, 민수아, 일단 술이나 한잔 받아라 (술을 따라준다) 근데, 너 정말 닮았다. 너 오기 전에도 그 얘기 했었는데.(옆의 녀석3에게)똑같지 않 냐?

    녀석3: 내가 말했잖아. 멋지게 생겼어.

    태준: (민수에게)여기선 안 되겠다. 나가서 이야기하자.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하고 따라나서는 민수.

    녀석들: 야, 너희둘 어디가?

    녀석2: 야, 탤런트. 오자마자 어디가?

    태준: 금방 올께.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



    #122.지하창고 주위의 길거리-밤

    민수: 무슨 일이야?

    가만있는 태준

    민수: 무슨 일인데? 안 좋은 일이야?

    태준: 안 되겠다. 술한잔 하면서 이야기 하자.



    #123.심야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는 태준과 민수. 자주 가던 가운데 쯤의 자리로 간다. 딴 곳에 비해 손님이 덜한 편이다.

    태준: 아줌마, 여기 진로 한병이랑 안주는 빨리 되는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소주와 기본 안주를 갖다주는 아줌마. 민수에게 한잔 따라 주는 태준,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따른다.

    태준: (잔을 들며)민수야, 일단 한잔 먹자

    잔을 부딪히는 민수. 끝까지 들이키는 둘. 다시 두개의 빈 잔을 가득 채우는 태준. 이번에는그냥 혼자 비운다. 그냥 지켜보는 민수. 다시 잔을 채워 연거푸 비우는 태준.

    태준: 민수야, 미안하다. 나 집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술을 비우는 태준. 멍하니 듣고 있던 민수, 자기 잔을 깨끗이 비운다. 빈 잔을 따라 주는 태준. 한 번 더 비우는 민수. 따라 주는 태준.

    태준: 너도 이런 생활 그만 두고-----,(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쉰다) 미안하다.

    술 한 잔을 더 비운 뒤 일어서서 나가는 민수.



    #124.인터뷰 열둘-심야술집 아주머니,그 술집에서

    장사? 그냥 그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사람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겄어. 두 학생? 잘 알지. 우리 집 단골인데. 둘이서만 오기도 혀고 아가씨들 데리고 오기도 혀지. 둘다 멀쩡한 총각들이여. 한 학생은 인물이 훤하고 한 학생은 싹싹했쟈. 내 새끼? 아들 하나 딸 둘이여. 아들놈은 대학 다니재. 그 뭐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 있잖여. 하여튼 공부는 제일 잘 혀. 딸년들은 고등학생이여. 한 년이 바람이 들어서 큰 일이여. 밖으로만 싸돌아 다녀.



    #125.방안

    켜진 채 지직거리는 TV. 널부러져 자고 있는 민수.



    #.드라마

    126 .병실안-낮

    침대에 누워있는 정하. 팔과 옆구리 부분에 붕대를 감고 있지만 많이 좋아진 상태. 간호원이 들어와 링겔을 갈아주고 나간다. 잠시 후 스포츠와 보스파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일어나려 하는 정하.

    스포츠: (정하를 누이며)그냥 누워있어. 괜찮아. 그래, 이제 좀 살 만한가?

    정하: 네.

    스포츠: 숨은 실력자를 몰라봤구만.

    정하: 그냥 저도 모르게 ----. 죄송합니다.

    스포츠: 죄송하긴, 완쾌되면 자네에게 부탁할 게 좀 있어.

    127 .지하 주차장의 차안-낮 뒷좌석에 앉아 있는 스포츠. 잠시 후 차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타는 정하.

    스포츠: 우리 드라이브나 좀 할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

    128 .도로를 질주하는 차, 쾌청한 날씨

    129 .교외부근의 한적한 들판에 멈추어 있는 차

    123 .차안

    스포츠: (포장이 된 선물 상자를 주며)우리 큰형님께서 자네에게 특별히 주는 선물일세. 열어 보게나.

    조용히 선물 상자를 받는 정하, 천천히 열어 본다. 섬뜩할 정도로 날이 선 단검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단검 아래에 사진 하나가 놓여 있다. 긴머리에게 명령을 내리던 그 두목의 얼굴이다. 고개를 들어 스포츠를 바라보는 정하.

    스포츠: (잔인하게 웃으며)일이 성사되면 큰 형님께서 자넬 직접 부를 걸세. (품에서 열쇠를 꺼내 주며)이건 내가 주는 것이네. 도움이 될 걸세.

    열쇠를 받아 쥐는 정하. 천천히 칼을 쥐어 보는 정하. 번쩍이는 칼날.

    124 .고급호텔의 객실

    침대 위의 격렬한 정사. 벌거벗은 두 남녀가 서로를 탐닉하고 있다.

    125 .엘리베이터를 타는 정하.

    126 .뒤엉킨 남녀

    127 .엘리베이터안의 정하. 긴장된 모습.

    128 .남녀의 정사.

    129 .뚜벅뚜벅 걸어오는 정하.

    130 .탐닉하는 남녀.

    131 .스포츠가 준 열쇠로 문을 여는 정하.

    132 .객실안

    정신없이 몰입하고 있는 남녀. 거친 숨소리. 소리 없이 접근하는 정하. 낌새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는 두목. 비명을 지르는 여자. 두목의 목을 가르는 칼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날. 멍하게 서있는 정하.

    133 .강둑

    강둑에 서서 강을 바라보는 정하. 바람이 거세게 분다. 우울한 얼굴의 정하.

    현실 부분



    #134. 병실안-저녁

    벽에 기대어 서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태준. 침대에 누워서 보고 있는 태준의 어머니. 밝은 표정. 그리고 옆의 의자에 앉아서 보는 여동생. 문이 열리고 태준의 아버지가 음료수를 사가지고 오신다. 화목한 분위기



    #135.인터뷰 열셋-태준, 병실에서

    녀석한테 미안하죠. 나한테 잘 대해줬는데. 말은 없어도 따뜻한 녀석이에요. 집에 돌아오길 잘했어요. 어머니도 좋아지고 계시고. 아버지도 많이 노력하세요. 제가 너무 철이 없었나 봐요. 하지만 공부는 여전히 못하겠어요.(부모님 눈치를 살핀 후 작은 목소리로) 그래서 학교는 잘 안가요. 부모님은 모르시죠. 녀석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어요. 방에도 가 봤는데 녀석은 없고 TV만 켜져 있더라구요. 일하러 안 나온지는 오래 되었나 봐요. 몸이나 건강해야 될 텐데. 보고 싶을 때가 많아요.



    #136.방안

    빈 방에 TV만 켜져 있다. TV에서는 뉴스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TV-여 앵커: 최근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운명'이 한국방송심의 위원회로부 터 두번째 경고 판정을 받았습니다. 선정성 짙은 애정묘사와 지나친 수위의 폭 력장면때문에 두 차례 경고를 받은 이 드라마는 그러나 놀랍게도 운명 신드룸 을 형성할 만큼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읍니다. 표현의 한계와 상업성, 시청 률과 파격적인 묘사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



    #137.공원-화창한 오후(환상)

    벤치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아기를 안고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다. 까르르 웃는 아기. 아기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여자. 그런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민수. 소리쳐 부르지만 여자는 듣지 못한다. 여자를 향해 달려가는 민수, 가까이 가 여자의 고개를 돌려 보는 순간. 여자의 얼굴은 사라지고 민수를 보고 잔인하게 웃는 보스의 얼굴. 울부짖는 아기. 잔인한 보스의 표정. 아기 대신 울부짖는 민수의 얼굴. 보스 대신 잔인하게 웃는 민수의 얼굴.



    #138.공원-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는 민수.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다.



    #139.방안

    지직거리는 TV의 빈 화면.



    #.드라마

    140 .지하 주차장의 차안-밤

    뒷좌석에 앉아 있는 스포츠. 주차장 한쪽 구석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정하. 소리없이 문을 열고 타는 정하.

    스포츠: 출발하지.

    141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

    142 .달리는 차안

    스포츠: 귀신같은 솜씨야.

    정하: 아닙니다. 운이 좋았읍니다. 놈이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서.

    스포츠: (기분좋게 웃으며)자네 솜씨가 이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는데. 조심해야 되겠어.

    다소 겸연쩍어 하는 정하. 껄껄 웃는 스포츠

    스포츠: 하하, 농담일세. 큰 형님이 자네를 보고 싶어 하시네.

    긴장하는 정하의 얼굴.

    143 .좌회전을 하는 차.

    144 .보스의 집앞.-밤

    몇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도착하는 차. 차에서 내리는 스포츠와 정하. 사내들이 인사를 한다. 집을 보고 놀라는 정하. 바로 어린 시절의 그 집이다. 그 자리에 못 박힌듯 그대로 서있는 정하. 들어가려다 멍하게 서있는 정하를 발견하는 스포츠.

    스포츠: (의아해하며)자네, 왜 그래?

    정하: (정신을 차리고)아, 아닙니다.

    문안으로 들어가는 스포츠와 정하.

    145 .마당

    넓은 정원을 가로지르는 정하. 보복에 대한 대비책으로 곳곳에 부하들이 지키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는 정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운다. 분노를 삭이는 슬픈 눈빛.

    146 .거실

    거실로 들어오는 스포츠와 정하, 그들을 맞이하는 주인 아줌마. 순간 당황하는 정하. 다행히 알아보지 못하는 사모님.

    사모님: 지금,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재로 향하는 두 사람.

    147 .서재입구

    스포츠: (입구에서)형님, 도착했읍니다.

    굳어 있는 정하의 얼굴.

    (O.S.S.)보스: 그래, 어서 들어와.

    148 .서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스포츠와 정하.

    스포츠: 형님, 바로 이 친굽니다. (정하를 향해) 인사드리게.

    정하, 고개를 깊숙이 꺽은 채 꾸벅 인사를 한다. 어둠에 묻어 두는 불같은 분노. 어금니를 꽉 다문다. 긴장한 채 고개를 드는 정하. 잠시 정하를 뚫어질 듯 쳐다보는 보스. 긴장감으로 굳어지는 정하. 알아보지 못하는 보스.

    보스: 음, 앉게나. 그래 자네 솜씨가 대단하다구. (스포츠를 향해) 자네만 하겠나?

    스포츠: (정하를 한번 쳐다보고)아닙니다. 귀신같은 솜씨입니다.

    보스: (정하를 자세히 쳐다보며)오,그래!

    이 때 문이 열리고 차를 가져오는 가정부. 가정부의 행동을 떨리는 눈으로 지켜보는 정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감추어둔 분노를 자극하여 밖으로 묻어나오게 한다. 인사를 하고 나가는 가정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보스.

    보스: (눈을 가늘게 뜨고 정하를 응시하며)우리, 전에 한번 본적이 없던가?

    정하: (눈을 내리깔며 딱딱한 목소리로)그럴리가 있겠읍니까?

    보스, 다시 한번 정하를 쳐다보다가 차를 한잔 마신다.

    보스: 그래, 내가 준 칼은 잘 들던가?

    정하: 네.

    보스: 항상 잘 갈아두게나. 언제 쓰일지 모르니까.

    호탕하게 웃는 보스. 안심하는 정하. 보스: 그리고 나를 자네 아버지처럼 편안하게 생각하게나.

    정하: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네, 명심하겠읍니다

    보스: (스포츠를 보고)저쪽에서 반격해 올지도 모르니까 철저하게 준비해.

    스포츠: 네. 알겠읍니다.

    스포츠와 대화를 나누는 보스를 숨죽인 채 노려보는 정하.

    150 .강둑

    강둑에 서있는 정하. 단호한 표정이다. 땅바닥에서 돌멩이를 집어 멀리 던진다. 멀리 날아가는 돌멩이. 강물에 작은 파문을 만드는 돌멩이. 절규하는 정하. 포효하는 정하.

    현실 부분



    #151.(드라마에서 보스가 관리하는)$$나이트클럽내부

    지직거리는 모니터 화면, 손으로 이리저리 건드리자, 제대로 나온다. 모니터 안에 비치는 나이트클럽의 실내모습. 촬영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기자재를 계속 나르고 있고 한쪽에는 엑스트라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조명기를 들고 나르는 조명부1.

    조명 감독:(조명부1을 향해)이 봐, 창용아 거기 말고 좀 더 오른쪽으로 가져가.

    조명기를 좀 더 오른쪽으로 옮기는 창용

    조명 감독: 그래, 일단 거기다가 조명기 갖다 놔. 규석아 너 빨리빨리 안 나르고 뭐해.

    감독: 성호야, 저기 흩어져 있는 엑스트라들 한 곳에 모아서 오늘 찍을 상황 간단하게 얘기 해 주고 와. 그리고 분장실에 가서 준비 다 됐는지 물어보고.

    조연출: 네.

    연출부 한 명을 불러 일을 지시하고 분장실로 가는 조연출



    #152.분장실

    분장사 둘이서 정하역의 탤런트 장우영씨와 보스역의 탤런트 장수길씨를 각각 분장해주고 있다.

    장수길: 자네 저번 액션씬 찍을 때 다친 손목은 괜찮나?

    정우영: 네. 약간 멍들었을 뿐인데요

    장수길: 아냐, 그래도 조심해야 돼. 하긴 자네 아직 펄펄할 때지.

    들어오는 조연출

    조연출: 두 분 분장 다 끝나가요?

    분장사1: (열심히 일을 하며)네. 조금만 있으면 돼요.

    조연출: (나가며)좀 더 서둘러 주세요.

    정우영: 정선배님은 조직의 보스역을 자주 맡으셨죠?

    장수길: 그치. 나이 조금 들면서 주로 그런 역이었지. 아무래도 내 인상 때문인가봐.(웃음) 근데 워낙 이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까 가끔은 내가 진짜 무슨 조직의 보스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 하긴 이 역할 때문에 실제 내 걸음걸이나 말투가 변하긴 했 어.

    정우영: 그래요?

    장수길: 아, 물론이지. 자네도 연기 생활 오래하다 보면 알게 될 걸세. 그리고 자넨 의욕이 넘치는 것 같애. 위험한 장면에서 대역도 안 쓰고. 하긴 신인 때 뭐든지 하고 싶을 꺼야.

    정우영: 제가 서투른 점이 많죠? 근데 선배님은 죽는 연기 몇 번이나 해보셨어요?

    장수길: 글쎄? 엑스트라였을 때, 그러니까 무명이었을 때는 하루에도 서너번 씩 죽었다 살았 다 했지.



    #153.나이트클럽내부

    다소 정리가 되어가는 모습. 조연출의 지시에 따라 불필요한 테이블및 의자를 치우고 재배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카메라 보조가 카메라를 가지고 온다.

    촬영 감독: 그래, 이쪽에다 일단 놔둬봐.

    촬영1: 야, 용수야 모니터도 갖고 와야지.

    감독: (촬영 감독에게)김감독, 저 우리 이 씬 헨드헬드로 가지. 내용이나 분위기랑 맞아 떨어 지는 거 같은데.

    촬영 감독: (잠시 생각하다가)음, 그래 괜찮겠는데요. 좋아요.



    #154.나이트클럽입구

    도착하는 발전차.



    #155.클럽내부

    조명부: (뛰어 들어오며)박감독님, 저 발전차 왔읍니다.

    조명 감독: 그래? 빨리 선 끌어가지고 와. 그리고 이 홀 말고 2층 안쪽 사무실 있지. 거기에 도 선 끌어 놔.

    조명부, 대답하고 다른 둘을 더 데리고 나간다. 한 켠에는 엑스트라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156.분장실 계속 분장을 하고 있다.

    장수길: 필름가지고 찍었는데 성공해서 다행이야. 방송국에서 하긴 엄청난 투자를 했지. 광고 도 많이 하고.

    정우영: 필름으로 찍으면 뭐 특별한 게 있나요?

    장수길: 물론이지. 비용은 훨씬 많이 들지만 화질을 따라갈 수 없지. 자네 TV로 봤을 때 좀 다르지 않았어?

    정우영: 네, 맞아요.색깔이 좀 독특했어요. 근데 정선배님은 어떻게 잘 아세요?

    장수길: 응, 젊었을 때 나도 감독 지망생이었어. 어쩌다 보니까 연기를 하게 됐지만.

    정우영: 그럼, 연출하신 작품 있으세요?

    장수길: 단편영화 몇 편 있지.

    정우영: 실례가 안 되신다면 왜 연기로 돌아서셨는지?

    장수길: 음, 글쎄. 너무 힘들더라구. 신경써야 될 것도 많구. 나랑 안 맞는 것도 같구. 내 능 력밖의 일 같기도 하구. 이런 갈등을 하고 있을 무렵, 친한 선배가 입봉하면서 나 에게 주연을 부탁하더라구. 이미지가 맞다고. 그래서 연기생활하게 됐지. 그 선배 단 편 영화에 배우로 출연한 적이 있었거든.



    #157.클럽내 사무실

    감독과 촬영 감독, 조명 감독이 모여 있다.

    촬영 감독: 여기서도 헨드헬드로 밀어 붙이자. 그거죠?

    감독: 그렇지. 격렬한 장면이니까 그게 제일 잘 맞는 거 같애.

    조명 감독: 그럼 조명도 거칠게 가야겠네.

    촬영 감독: 그리고 아주 차가운 분위기로 가자구.

    사무실 안으로 지선을 끌고 들어오는 조명부.

    조명 감독: 너, 창용이 좀 불러와.

    지선을 설치한 뒤 부르러 가는 조명부



    #158.클럽내부

    창용이, 밑의 애들에게 조명기 설치를 시키고 있다.

    창용이: 불한번 켜 봐.

    일제히 들어오는 조명기, 환해진다.

    조명부: 형, 박감독님이 불러.

    창용이: (뛰어 가며)너 재네들 좀 도와 줘.



    #159.클럽내부

    지직거리는 모니터, 누군가 만지작거리자, 셋팅된 실내가 보인다.

    감독: (조연출에게)자자, 엑스트라들 위치에 배치시켜.

    조연출: 여러분, 제가 위치 말씀 드렸죠. 각자 위치로 가 주세요.

    나이트클럽의 손님으로 분한 엑스트라들이 위치로 간다. 텅비어 있던 무대가 사람들로 가득차고 테이블에도 많이 앉는다.

    촬영 감독: 라이트 모두 켜보자구.

    조명 감독: 자, 라이트 모두 켜.

    주위가 환해진다. 눈을 파고드는 강렬한 불빛. 조명기 위치를 다소 조정하는 조명부. 각 조명기의 노출을 측정해보는 촬영1.

    감독: (조연출에게)배우들 데려와.

    촬영 감독: (카메라뷰파인더를 보면서)저쪽 조명기가 아슬아슬한데 헨드헬드라 잘못하면 나 오겠어. 좀 더 빼야 되겠는데.

    조명 감독: 그래요. 창용아! 그거 5k짜리 더 빼 버려.

    조명기를 움직이는 창용.

    촬영 감독: (카메라로 보며)좋아, 됐어.됐어.

    조연출이 정우영씨와 장길수씨를 데리고 나타난다.

    감독: 자, 장우영씨 전에 말씀드렸듯이 나이트클럽으로 들어와서 잠시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사무실로 가서 보스를 살해하는 겁니다. 감정 상태는 잘 아시겠죠. 그리고 장길수씨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만 당하고 마는 그런 상황입니다. 일단 장길수씨는 잠시 계시고 장우영씨만, 참 그리고 종업원맡은 사람 어딨어?

    단역: 여기요!

    감독: 그냥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술을 갖다주면 돼요. 자, 준비 다 됐읍니까?

    제위치로 가는 연기자들, 긴장된 표정들이다.

    촬영 감독: 잠깐만.됐어.

    감독: 자, 그럼 슛 갑니다. 레디, 카메라! 액션!



    #160.클럽내부

    나이트클럽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정하, 자리에 앉는다. 알아보고 인사하는 종업원.

    정하: 사장님 계시지

    종업원: 네.

    정하: 나, 술 좀 갖다줘. 아무거나.

    인사하고 술을 가지러 가는 종업원. 주위를 둘러보는 정하. 광란의 분위기,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리듬에 묻혀 몸을 흔들고 있다. 그들은 즐거워 보인다. 정하의 표정에 어두운 그늘이 비친다. 그러나 곧 단호한 결의가 자리 잡는다. 술한잔을 비우는 정하. 결연히 일어선다. 뚜벅뚜벅 걸어간다.

    감독: 컷! 좋았어. 좋았는데 말이야. 종업원 그 시선이 불안해. 그리고 정우영씨, 강한 분노와 복수심때문에 오히려 쓸쓸하게 보이는 그런 분위기여야 돼, 너무 노골적으로 분노만 나 오는 거 같애.

    촬영 감독: 송감독님, 저 이거 좀 더 잘게 나누는 게 어떨까요? 한 샷으로 가기에는 좀 무리 같은데?

    감독: (잠시 생각하다)우선 마스터로 이걸 찍어 놓고 다음에 필요한 샷들을 찍지. 자, 바로 슛 들어가자구. 준비됐죠! 레디, 카메라! 액션!



    #161. 클럽내부

    나이트클럽으로 걸어 들어오는 정하, 자리에 앉는다. 알아보고 인사하는 종업원.

    정하: 사장님 계시지?

    종업원: 네.

    정하: 나, 술 좀 갖다줘. 아무거나.

    인사하고 술을 가지러 가는 종업원. 그의 시선이 흔들린다.

    감독: 컷!, 안되겠어. 종업원 나오고, 그냥 정우영씨 앉아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자구. 자, 정우영씨 준비됐죠. 다들 준비됐죠?

    겸연쩍어 하면서 옆으로 물러나는 종업원역의 배우. 자리에 앉아 준비를 하는 정우영.

    감독: 레디, 카메라! 액션!



    #162. 클럽 내부의 테이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정하, 긴장된 얼굴로 주위를 살핀다. 경쾌한 댄스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드는 많은 사람들. 즐거운 비명들을 질러대고 있다. 정하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진다. 술잔을 단단하게 움켜쥐는 정하. 잔이 깨질 것 같다. 단숨에 잔을 비우는 정하, 서서히 일어서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O.S.S.) 감독: 컷! 좋았어. 오케이!



    #163.민수의 빈 방

    엉망이 된 방. 박살난 TV만 덩그렇게 놓여 있다. <br>


    #164.클럽내 보스의 사무실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정하. 뜻밖이라 다소 놀라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보스. 말없이 보스에게 접근하는 정하.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일어나려 하는 보스. 그의 배에 깊이 박히는 정하의 칼. 보스가 선물해 준 바로 그 칼. 배를 움켜 잡으며 꼬꾸라지는 보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연거푸 찌르는 정하. 피투성이가 된 보스와 피에 젖은 정하의 칼. 순간의 정적. 보스의 목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정하. 쓰러지는 보스. 칼을 떨어뜨리는 정하. 피에 젖은 손. 멍한 표정의 정하.

    감독: 컷! 좋은데, 좋은데 말야. 정우영씨,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것 같애. 음 뭐랄까? 칼을 찌르는 동작이 너무 기계적인 것 같애. 자, 다시 가자구. 장수길씨는 그대로 해주시 면 됩니다.

    감독의 말을 듣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정우영. 다소 긴장된 얼굴. 제자리로 돌아가는 장수길씨

    감독: 레디, 카메라! 액션!



    #165.클럽내 보스의 사무실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정하. 뜻밖이라 다소 놀라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보스. 말없이 접근하는 정하.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일어서려 하는 보스. 그의 배에 깊이 박히는 정하의 칼. 배를 움켜 잡으며 고꾸라지는 보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연거푸 찌르는 정하.

    (O.S.S.)감독: 컷!

    시선을 돌리는 연기자들.

    감독: (정우영에게 다가가며)우영씨, 자자, 편안하게 하자구. 문제가 뭐냐면 찌를 때 망설임이 보이면 안 돼.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모든 걸 결정했고 그 다음에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죽이는 거야. 잔인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정우영, 고개를 끄덕인다. 스스로도 답답한 표정이다.

    감독: 한번 더 갑시다.

    제위치로 가는 정우영씨.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해주는 장수길씨.

    감독: 레디, 카메라! 액션!



    #166.클럽내 보스의 사무실

    문을 열고 처천히 걸어 들어오는 정하. 다소 놀라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보스. 말없이 접근하는 정하.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일어서려 하는 보스. 그의 배에 깊이 박히는 정하의 칼. 배를 움켜쥐고 고꾸라지는 보스.

    (O.S.S.)감독: 캇!

    돌아서서 감독을 바라보는 연기자들 정우영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감독. 긴장된 표정의 정우영.

    감독:자자, 정우영씨. 일단 긴장을 풀어요. 자, 지금 정하는 말이에요. 자기 어머니에 대한, 그 러니까 어릴 때부터 묻어 두었던 그런 원한을 폭발하는 거예요. 그냥 무감하게 찌르는 게 아니라 분노와 절망을 품은 채 찌르는 거예요. (장수길씨를 가리키며)저 사람이 우영 씨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원수예요. 원수. 자, 잘해 봅시다.

    다소 의기소침해지는 정우영씨. 조금 짜증이 나는 장수길씨.

    감독: 레디, 카메라! 액션!



    #167.클럽내 보스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하. 반갑게 맞이하는 보스. 말없이 접근하는 정하.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보스. 일어서는 그를 찌르는 정하.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는 보스. 그를 일으켜 세우며 다시 찌르는 정하.

    (O.S.S.)감독: 컷!

    감독, 다소 짜증이 난다. 잠시 삭이다가 정우영씨를 부른다. 화가 난 정우영씨, 감독에게로 간다.

    감독: 우영씨, 힘냅시다. 우영씨가 완전히 정하라는 인물이 되어야 해요. 자신을 정우영이 가 아니라 정하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자라온 정하다. 어머니의 원수가 저기 있다. 알겠 죠? 지금 너무 기계적이고 굳어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멋있는 동작이 아니에 요. 당신은 지금 정하에요. 정하! 정하의 절망과 분노, 힘이 표출되야 해요.

    정우영: (구겨진 얼굴로)네, 알겠읍니다. 근데 저 집중이 잘 안 되거든요. 저 잠깐만 마음 좀 가다듬고 올께요. 잠시면 됩니다,

    감독: 네, 좋습니다. (스텝들을 향해) 5분간 휴식.



    #168.화장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우영씨. 거울을 쳐다본다. 담배를 한 대 피워문다. 매우 짜증이 난 표정이다. 거울속의 자신을 보며 담배를 한 모금 피운다. 화장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169.클럽내 보스의 사무실

    돌아오는 정우영씨. 사실은 민수이다.

    감독: 자, 됐읍니까? 우영씨?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민수. 무언가 결의가 가득찬 표정이다. 광기마저 보인다.

    감독: 네. 좋아요. 우영씨 이번 표정 보니까 이번엔 될 거 같애요.

    각자 자신의 위치로 가는 스텝과 배우

    감독: 자, 준비됐죠. 갑니다. 레디, 카메라! 액션!



    #170.클럽내 보스의 사무실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민수. 뜻밖이라 다소 놀라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보스. 말없이 보스에게 접근하는 민수.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일어나려 하는 보스. 그의 배에 깊이 박히는 민수의 칼. 배를 움켜 잡으며 꼬꾸라지는 보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연거푸 찌르는 민수. 피투성이가 된 보스와 피에 젖은 민수의 칼. 순간의 정적. 보스의 목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민수. 쓰러지는 보스. 칼을 떨어뜨리는 민수. 피에 젖은 손. 멍한 표정의 민수.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는 민수. (소리는 나지 않는다.) 감독의 컷하는 동작. OK,좋았어 라고 말하는 연출. 기뻐하는 스텝들. 계속 쓰러진 채 있는 장수길씨. 정신이 나간 듯이 서 있는 민수.



    #171.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정우영씨, 겉옷이 벗겨져 있다.



    #172.깨어져 있는 TV





    #173. 촬영 현장

    묘한 표정의 민수.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장수길씨한테 달려가는 스텝들. 무언가를 넋이 빠진 채 쳐다보는 민수.



    #174.공원-화창한 오후

    벤치 위에 앉아 있는 젊은 엄마. 아기를 안고 즐거워하고 있다. 까르르 웃는 아기. 미소짓는 엄마의 사랑스런 표정. 그런 모습을 부러운 듯이 넋이 빠진 채 쳐다보고 있는 어린 민수.



    #175. 학교 운동장

    텅 빈 운동장 한 가운데서 자신의 감광지를 들여다 보고 있는 어린 민수. 어느새 노을이 깔린다.



    #176.취조실

    뿌연 담배 연기가 온통 가득차 있다. 담배를 비벼 끄는 김형사. 착잡한 표정이다. 맞은 편에는 민수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다. 민수를 쳐다보는 김형사. 먼 곳을 응시하는 민수의 눈동자.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는 김형사. 문옆에 서서 경례를 붙이는 순경.

    김형사: (순경에게) 저 친구 일단 잘 감시하고 있어.

    순경: 네.



    #177.인터뷰 열넷-김형사, 걸어 나오는 경찰서 복도에서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사람을 죽인 건 죽인 거니까, 형을 받기는 받겠죠.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죽였는진 납득이 안 가요. 횡설수설하긴 하는데 말이 안 되는 소리에요. 어머니 얘기를 계속 하는데, 물어보면 어머니가 누군지도 말을 못하고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몰라요. 특히 어릴 때 기억은 깡그리 잊어 먹었나 봐요. 공원에 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요. 겨우 이름만 알고 있어요. 하긴, 그것도 정확한 자기 이름인지 알 수 없죠.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녀석의 말을 믿을 수 있어야죠. 정신 이상 판정요? 글세 그건 제 분야가 아니니깐요. 일단 받긴 받아야겠죠. 근데 웬지 미친 녀석 같진 않네요. 형사 생활 오래 하다 보면 느낌이 오거든요. 근데 이 인터뷰 방송에 나가는 거에요?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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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하

    이동하

    1972년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한국 영화아카데미 수료

    16mm 단편영화 '길위의 창' 등 각본연출

  • <나는 너다>를 뽑고나서

    - 이창동


    응모작 중에 동성애를 다루거나 연쇄살인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마도 정체성의 심각한 혼돈과 세기말적 위기감의 반영인 듯하다. 그런데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 대부분은 자기 성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접점, 즉 '커밍 아웃'의 필연적 계기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남상국, 박미영 공동창작인 '룸'과 문준기의 '처형'은 만만찮은 구성과 영화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극단적 소재를 택한 작품이 흔히 그렇듯 군데군데 억지스런 이야기 전개를 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끝까지 우열을 가리지 못해 고심하게 한 작품은 이동하의 '나는 너다'와 민병관의 '엔터' 였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 '엔터'는 차가운 사이버공간의 세계와 따뜻한 인간적 체온을 적절하게 배합한 작품이지만 굳이 흠을 잡자면 사건의 결말이 다소 싱겁게 느껴진다. TV드라마가 한 개인의 현실 속에 침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나는 너다'는 작자가 스스로 밝혔듯이 '삶으로 부터 멀어지고 심지어 영화 자체로부터 멀어지는' 영화의 위기에 대해 질문하면서 삶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요즘 세대의 비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평자가 대중적이고 쉬운 문법을 택한 '엔터'보다 굳이 '나는 너다'를 택한 것은 보다 도전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두 분의 정진을 빈다.
  • 이동하

    이동하

    1972년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한국 영화아카데미 수료

    16mm 단편영화 '길위의 창' 등 각본연출

    뜻밖의 당선 소식을 접하게 되어 조금은 당혹스러운 마음과 어리둥절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나의 글이 뽑혔다니 기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며칠 동안 밤에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해가 뜬 다음에야 잠드는 그런 생활을 했었다. 계속되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쉽게쉽게 글이 잘 풀리다가도 갑자기 암초에 걸린 배처럼 덜커덕 멈추어 버리고는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른 채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항상 되물어 보곤 했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초고를 완성하던 날,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맛보았던 꿀맛같은 단잠을 잊을 수 없다. 열심히 힘들여 쓰긴 했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진 아쉬운 부분도 많이 보인다. 계속 노력해서 좀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번 해본다.

    언제나 걱정해 주시는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글을 쓰는데 여러 도움을 준 친구들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승호형, 인터넷으로 글을 보내준 용권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에게도 감사드린다.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