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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과 사운드가 불러일으키는 매혹, 서사의 간극을 채우다-형사’  

by  이환미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끌림 혹은 사로잡힘.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휘몰아치는 폭풍우처럼 다가온다. 슬픈 눈의 자객과 좌포청의 열혈 형사 남순은 이렇게 서로에게 매료된다.

    '전설의 고향'을 보여 주듯, <형사 dualist>(이하 형사)는 달빛 여인에 대한 혼돈과 매혹을 구성지게 들려주는 봉출의 입담으로 시작했다가 이내 장터의 아수라장으로 안내한다. 오프닝의 이러한 '빗나감'처럼 <형사>는 줄곧 관객이 기대하는 정교한 내러티브 구축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위폐 제조 일당과 맞닥뜨린 좌포청의 형사들은 서로의 몸이 엉키면서 넘어지는 등 슬랩스틱을 구사하면서 우리가 무협물에서 흔히 기대하는 액션과는 저만치 비껴난다. 쫓고 쫓기며 정신없이 진행되던 추격 씬은 그러나 숨을 고르는 듯, 잠시 멈추고 남순과 귀면탈의 사내 슬픈 눈이 서로에게 사로잡히는 매혹의 순간으로 미끄러진다. 퓨전 사극을 표방한 <형사>는 그리하여 위폐를 둘러싼 '수사극'이라는 외피를 기꺼이 던져버리는 무협멜로이자, 남순과 슬픈 눈의 '사랑했으나 상실한 사랑의 기억'을 추억하는 연애담이 된다.

    이명세 감독은 <형사>의 이러한 이야기 서사의 분열 혹은 텅 비어있음을 영화 매체 본연의 매력인 '본다는 것' 그 자체의 매혹으로 채운다. 슬픈 눈이 노리개를 고르는 장면처럼 매혹적인 장면의 중심에는 언제나 조명을 받아 빛나는 완벽한 이미지의 그, 슬픈 눈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보통의 영화들에서 여배우를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와 다를 바 없는 시각화 전략이지만, <형사>에서는 이것이 역전되어 염색 천 너머로 언뜻 언뜻 보이는 슬픈 눈을 탐색하는 남순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형사>는 이처럼 인간 존재 자체를 유혹 대상으로서 제시하기도 하지만 여기에 빛과 어둠을 오가는 극명한 콘트라스트의 대비, 병조판서의 생일잔치 씬처럼 색채와 조명의 화려한 향연도 가담한다.

    <형사>는 시종일관 프레임을 넘나드는 황홀한 이미지 횡단과 함께 순간을 한없이 연장하거나, 멈추었다 싶으면 어느새 빨라지는 속도 변화로 시간과 이미지를 완급조절하면서 정지와 질주 사이를 오간다. 또한 클래식에서 테크노, 탱고를 넘나드는 웅장하면서도 애절한 사운드트랙의 고조는 이미지와 충돌하거나 수렴되면서 인물들의 정서와 욕망을 다양하게 변주해낸다. 여기에 이미지 위에 덧입혀진 인물들의 보이스오버는 이미지와 사운드트랙 사이에 긴장을 만들어내면서 영화 전반에 흐르는 비장하면서도 애절한 정서를 한없이 극대화한다. 이는 자신의 동료가 슬픈 눈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알게 된 남순이 슬픈 눈과 벌이는 대결 씬에서 두드러진다.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는 모습 위로 더해지는 남순의 보이스오버('니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해 봐')는 싸우고 있는 몸과는 정반대인, 그를 향한 그녀의 절절한 속내를 내비친다. <형사>의 서사화는 이처럼 사운드와 이미지 서사가 릴레이 하듯 서로 넘나들면서 영화 매체만이 전할 수 있는 매혹 지점과 무드를 점차 증폭시킨다. 즉 <형사>는 말해지지 않는 대화, 혹은 음성(보이스오버와 음악들)을 이미지 위에 새롭게 배치하면서 이미지만큼이나 사운드에게도 그만큼의 위치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이야기 서사이외에 이미지와 사운드 서사에 의한 영화보기 혹은 영화청취라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강렬한 이미지 연쇄와 쉼 없이 울려 퍼지는 사운드의 조각들로 누벼진 <형사>는 인물들의 격한 육체의 움직임과 대조되는 떨리는 눈빛, 숨결 그리고 욕망을 드러내는 내면의 목소리로 인해 슬픔으로, 거의 절망에 가까운 감정으로 애틋한 로맨스를 완성한다. 영화는 시작이 그러했듯 슬픈 눈과 남순의 대결이 '마치 달빛과 눈(雪)빛에 홀린 것처럼 서로를 애무하는 것 같았다'는 봉출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봉출이 본 그 기억 혹은 환상은 슬픈 눈에 대한 남순의 '기억의 스펙타클' 이자 '환상의 스펙타클'이다. 그리고 <형사>의 에필로그를 멋지게 장식하는 인상적인 마지막 씬의 반복. 슬픈 눈의 죽음 후 상실감으로 가득 찬 남순은 명암이 극명한 그 돌담길에 들어선다. 그 순간 어둠의 저편에서 슬픈 눈이 다시 등장한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듯 펼쳐지는 그들의 황홀경에 찬 검술 대결은 어느새 돌담길의 공간을 온전히 어둠과 눈 그리고 그들만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무화시키면서, 그들을 환상의 시공간으로 탈주시킨다. 이때 <형사>는 증오하면서도 사랑했던 슬픈 눈에 대한 남순의 애도이자, 그들만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에 대한 감각적인 추억하기가 된다.
    이환미

    이환미

    1980년 충남 홍성 출생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졸업

  • 우선 가작에 그쳐야 했던 2005년과는 달리 2006년은 당선작을 낼 수 있어 반갑다. 응모작은 작년에 비해 13편이 줄어든 28편에 불과했으나, 응모작들의 전반적 수준은 외려 다소 향상되었기에 가능했다. 그 점은 단평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만족할 만한 단평이 부재했다면, 올해는 인상적인 몇 편이 눈길을 끌었다. 제법 강렬하게. '비주얼과 사운드가 불러일으키는 매혹, 서사의 간극을 채우다'라는 요지의, 이환미의 영화 '형사' 단평도 그중 하나였다. 김영진은 '지나치게 무난하지 않느냐'며 왕자웨이 감독의 '2046'을 '크리스마스 이브에 따뜻한 뭔가를 바라는 이들에 관한 필름'으로 규정한 함돈균의 '주목할 만한' 단평을 적극 밀었으나, 영화 매체의 속성에 대한 고려나 글쓰기의 완성도 등에서 이환미가 한 수 위라고 판단해 당선작으로 최종 결정했다. 그 단평은 마치 영화 '형사'를 문자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시청각적 묘사가 출중하다.

    짐작했겠지만, 심사위원들은 심사의 무게중심을 단평 쪽에 두었다. 변별력에서도 그렇지만, 향후 평론가로서의 활동에 대중적·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지향해야 할 단평이 긴 호흡의 본격비평보다 더 중요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본격비평 쪽에 방점을 찍었다면 또 다른 선택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친절한 금자씨'와 '오로라 공주'를 내세워, "한동안 한국영화의 장에서 사라진 그 비천한 여자들이 '여성 복수극'을 통해 귀환하고 있다"고 주장한 이씨의 본격비평이 단평의 경지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비해 텍스트나 주제 선택에서 한층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진 응모자들에게 감사하면서 심사평을 마친다.
  • 이환미

    이환미

    1980년 충남 홍성 출생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졸업

    돌아보면, 영화는 언제나 내 우울을 그리고 절망을 멈춰주는 진정제와도 같은 존재였다. '영화이론'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할 당시에도 그랬다.

    '추락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어떻게 착륙하는 것이 나을까를 생각할 뿐.'(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 중에서) 이 울림은 성장통의 한복판에 있는 나를 흔들면서 그 길을 가도록 독려했다. 창작으로서의 비평과 영화 창작과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요즘,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만큼이나 조용한 좌절이었다. 글을 쓸라치면 인상주의 비평에 머무르는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나날들 속에 걸려온 뜻하지 않은 당선 소식은 끝난 줄 만 알았던 꿈이 다시 등 뒤로 다가온 듯, 부끄러움과 함께 묘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는 나로 하여금 다시, 영화라는 매체가 던지는 매혹의 황홀경에 빠질 수 있도록 한 영화였다. 그 멋진 찰나의 향연을 선사한 이명세 감독님과 이에 못 미치는 부족한 나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어른 사회에 동화하지 못하는 나를 늘 안타까워하시고, 지켜봐주시는 부모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여러 영화들에 대한 생산적이면서도 재기발랄한 장을 펼칠 수 있게끔, 즐거운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신 영상원 영상이론과 은사님들과 선배님, 후배님,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끝으로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말로서 이 벅찬 소감을 대신한다.

    '잊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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