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착한 어린이 이도영

by  강이경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선생님이 상장을 들고 들어오셨다.

    "지난번 교내 글짓기 대회 상이야. 지금부터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김병수!"

    김병수가 나가고, 그 다음엔 이보람이 나갔다. 나는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짝, 보람이가 자리로 돌아오자, 내가 말했다.

    "이보람, 너 상 되게 많이 받는다!"

    "뭐 이 정도쯤이야……. 왜? 너도 상 받고 싶어?"

    보람이가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튼튼하기만 하면 돼.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보람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선생님이 목청을 높이셨다.

    "모두들 주말 즐겁게 보내라. 참, 월요일에는 그림 그리기 대회가 있으니까 그림 그릴 준비 해 와."

    "네!" 하고 아이들이 대답했다.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아빠는 먹을 걸 사러 가시고, 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병실로 달려갔다.

    "그 동안 할머니 말씀 잘 들었어?"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 때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 한 분과 남자 아이 한 명이 들어왔다. 아이는 곧장 아주머니께 달려가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엄마, 이거!"

    "어머, 또 상 받았구나!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 병이 빨리 낫겠는걸."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엄마가 끼어드셨다.

    "아줌마는 참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상장도 받아 오고. 어디 저도 좀 보여 주세요."

    '치,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 놓고서… 순 거짓말쟁이….'

    나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빠가 먹을 걸 잔뜩 사가지고 오셨지만, 하나도 맛이 없었다.

    월요일 3교시, 모두들 그림을 그리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도무지 무얼 그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보람, 넌 뭐 그릴 거야?"

    "난 나무 그릴 거야. 넌?"

    "몰라."

    내가 말하자, 보람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보람이가 나무 두 그루를 그렸을 때, 내가 말했다.

    "나도 나무 그릴래."

    "안 돼. 넌 딴 거 그려!"

    보람이는 성질을 내며 저쪽으로 휙 가 버렸다.

    '나무가 다 자기 건가 뭐. 가다가 팍 넘어져라!'

    보람이는 넘어지기는커녕 어느새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보람이에게 갔다.

    "이보람, 나 좀 도와줘. 도와주면 너 대신 청소당번 할게."

    순간, 보람이 눈이 반짝였다. 나는 보람이가 마음을 바꿀까 봐 겁이 났다.

    "그림만 그려 주면 색칠은 내가 할게."

    보람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쓱쓱 하더니 나무들을 멋지게 그려 주었다.

    "색칠은 저기 가서 해. 내 옆에서 하지 말고."

    나는 신이 나서 도화지를 들고 멀리 갔다. 색칠을 하고 나니 나무들이 제법 그럴 듯했다. 색칠이 삐죽삐죽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그 정도면 훌륭했다. 그 때 그림은 멀리서 보는 거라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림을 세워 두고 뒤를 돌아 몇 걸음 걸어갔다.

    그림을 보려고 기분 좋게 뒤를 돌았을 때였다. 도화지가 바람에 날려 저만큼 가고 있었다.

    "안 돼!"

    나는 도화지를 잡으려고 냅다 뛰었다. 도화지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만 도화지를 밟고 만 것이다. 나는 천천히 발을 들었다. 나무 그림 위에 운동화 자국이 쿡 찍혀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저녁에 밥을 먹는데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난 수학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고, 글짓기도 못하고, 달리기도 항상 사 등밖에 못 해. 그리고 운도 없어! 죽을 때까지 상장 한 번 못 받을 거야…….'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 나는 이불을 휙 젖혔다. 어둠 속에서 모니터 전원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우리 반 민수와 함께 집으로 왔다.

    "우리 손자 인자 오나? 친구도 왔네. 어서 온나."

    할머니 목소리가 다른 날하고 달랐다. 할머니가 웃으며 나에게 눈을 흘기셨다.

    "아이고, 니도 참, 상장을 탔시마 말을 해야쟤, 그래 처박아 두면 우야노. 상장은 이래 액자에 넣어가 벽에 쫙 걸어 놓는 기라."

    할머니 뒤로 상장이 죽 걸려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전국 어린이 미술 대회 우수상, 교내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달리기 일등상, 착한 어린이상……. 상을 이래 마이 받고도 말을 안 하다이, 니가 속이 보통 깊은 아가 아인 기라……."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민수를 보았다. 민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나는 민수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저게 상이냐? 가짜로 인쇄한 거지! 하하하하……."

    민수가 겨우 웃음을 그쳤을 때, 내가 말했다.

    "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나는 민수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 카드를 주었다.

    다음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왕 천재님 오셨다!"

    "와하하하…."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민수를 노려보았다. 민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좀 조용히 하자. 너희가 만날 이렇게 떠드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지난 토요일에 교장 선생님이 일기장 걷으라고 하셨는데 까맣게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내일 일기장 꼭 가져와. 오늘 일기도 꼭 쓰고."

    그 날 저녁, 일기를 쓰는데 눈물이 뚝 떨어졌다.

    토요일 날 나는 엄마한테 가지 않았다. 아빠 차가 멀리 사라질 때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전화로 엄마 목소리만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더 보고 싶었다.

    오늘은 엄마한테 가려고 학교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자, 이름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또 상장인가 보았다. 무슨 상장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셨다.

    "이도영!"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리둥절했다. 보람이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큰소리로 상장을 읽으셨다.

    "상장. 최우수상. 2학년 1반 이도영. 위 어린이는 꾸준히 일기를 써서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에 상장을 줌. 양촌초등학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상장을 다 읽고 나서 일기장을 펼치셨다.

    "아이들한테 이 일기 좀 읽어 줄 수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는 아프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계신다. 수술도 받으셨다. 내가 일을 하나도 안 도와드려서 엄마 허리가 아픈 거라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다 나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상을 받아서 빨리 나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빨리 나으라고 컴퓨터로 상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민수한테 들켰다. 부끄럽고 화도 났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은데도 안 갔다.

    하지만 그 까짓 상장이 없어도 이번 토요일에는 엄마한테 갈 거다. 상장을 못 받는 대신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할 거다. 옷도 아무 데나 벗어 놓지 않고, 가방도 항상 제자리에 놓겠다고 약속할 거다. 그러면 엄마가 기분이 좋아져서 빨리 나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보람이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났다.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도 모르게 꾸벅 절을 했다.

    "수업 끝! 월요일 날 만나자."

    선생님이 웃으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상장을 안고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꾸 웃음이 났다.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강이경

    강이경

    본명:강혜경

    1963년 경기 파주 출생

    1986년 국민대 영문과 졸업

  • 김문기(아동문학가) 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

    대체로 예년에 비해 작품성이 훨씬 높아져 반가웠다, 두 심사위원은 신인들의 참신한 역량과 도전적 글쓰기를 소중히 여기며 작품들을 읽어나갔다.

    '할머니와 전기 새'는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소재로 삼은 발상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인물간의 소통보다는 언어의 유희만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점이 아쉬웠다.

    '엄마의 포장마차'는 이야기 전개가 능숙하고 구성이 탄탄하였다. 하지만 오빠의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결말이 쉽게 내다보이는 패턴으로 인해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꼬마 삼촌'은 재미있는 캐릭터 설정으로 이야기를 활달하게 이끌었고 어른 세계에 대한 이해와 화해의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시트콤 형식을 넘어서는 참신성을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망가진 리모콘'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약속을 파기하는 어른에게서 조종만 당하다가 독립을 선언하는 어린이 상을 그려내는 문제의식이 좋았다. 소통 단절을 선언한 후의 아이상은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의 아이 모습이 기대될 정도였다. 하지만 거의 대화체로 내용을 이끈 점이 절대적으로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뽑은 강혜경의 '착한 어린이, 이도영'은 이야기 전개가 활달하고 주제를 내세우는 솜씨도 좋았다. 반면에,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과 상장들을 복사하는 행위의 연결이 선명하지 않은 점이 작품의 결을 거칠게 했음을 밝힌다.

    이렇게 본심에 오른 작품들의 장단점이 엇비슷하여 당선자를 결정하기에 무척 어려웠는데 결국 아이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작품의 완성도에 좀더 비중을 두어 강혜경 씨를 당선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 강이경

    강이경

    본명:강혜경

    1963년 경기 파주 출생

    1986년 국민대 영문과 졸업

    우리 집은 산자락에 있습니다. 봄이 되면 벚나무가 환하게 꽃등을 켜고, 여름이면 푸르른 칡넝쿨 위로 솔솔 바람이 불어요. 가을이면 노란 유치원 버스가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꼬마들을 태우고, 오늘처럼 눈 내린 아침이면 야생 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내려오지요.

    베란다 밖을 내다보다가 오소리 가족과 눈이 딱 마주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지요. 오소리 가족도 그랬나 봐요.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어요.

    오소리 가족이 사는 걸 아시는 걸까요? 우리 동네에는 글 쓰는 분들이 많이 살아요. 그림 그리는 분들도 살지요. 어린이 책을 만드는 분도 살고요. 창밖으로 비스듬히 보이는 집에는 동화 쓰는 분이 산대요.

    꿈은 이루라고 있나 봐요. 저도 이제 동화를 쓰게 되었어요. 제 글이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 작가 교실 친구들,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태어나신 것 같은 정해왕 선생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름표를 달아 주신 동아일보에 가슴 깊이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으로, 힘겹게 사춘기를 보내는 나의 아들, 재우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