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비싼 사과의 맛

by  신은수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등장인물>
    환자

    교수

    의대생1

    의대생2

    의대생3

    의대생4

    간호사

    조교

    여자

    의대생들(관객석에 심어 놓은 배우.... 그들은 관객들도 자신들과 같이 되도록...)
    공연을 준비하듯....

    하지만 텅 빈 듯한 무대

    단지 한쪽에 놓인 테이블 위에 있는 화려한 화분

    간호사가 의자를 가지고 와서 무대 중앙에 놓는다.

    그 뒤로 박스를 들고 무대위로 올라오는 남자 (의대생2.)

    박스에서 사과를 꺼내 화분이 놓인 테이블 주변을 장식하듯 놓는다.
    마치... 이제 공연을 준비하는 스텝들의 모습을 보는 듯...

    객석에 앉아 있던 남자 (의대생3)가 일어나 다가간다.
    의대생3 : 야!

    의대생2 : 어! 선배.

    의대생3 : 뭐해?

    의대생2 : 준비하죠.

    의대생3 : 그걸 왜 니가 해? 간호사들이 하는 거 아니야?

    의대생2 : 그게 무슨 상관 이예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의대생3 : 그 문제가 아니야. 임마. 언제 이런 거 우리가 손 댄 적 있냐?

    의대생2 : 뭐 어때요.

    의대생3 : 그래도 자존심이란 거다.

    의대생2 : 별 걸 다...

    의대생3 : 그것도 소품이냐?

    의대생2 : 예. 하나 드려요?

    의대생3 : 하나만 던져 봐.

    의대생2 : (박스에서 사과하나를 던진다)

    의대생3 : (받고) 사과네. 씻은 거야?

    의대생2 : 아니요.

    의대생3 : 야!

    의대생2 : 예?

    의대생3 : (의대생2에게 다시 던진다.)

    의대생2 : (받고, 몇 개를 주변에 장식한다.)

    의대생3 : (잠시 보다) 전부 같은 거냐?

    의대생2 : 뭐가요?

    의대생3 : 사과.

    의대생2 : 네.

    의대생3 : 그래야 보기 좋겠지. 그 퍼런 사과가 가장 비싼 건가?

    의대생2 : 몰라요.

    의대생3 : 야, 그런데 오늘 가운 입지 마래?

    의대생2 : 저도 그렇게 전달 받았는데요. 여기 입고 온 사람 없잖아요.

    의대생3 : 이런, 여자 대려 왔는데...

    의대생2 : 우리과 학생이요?

    의대생3 : 아니, 다른학교. 여대.

    의대생2 : 혼나요. 외부사람 있으면.

    의대생3 : 몰라, 무슨 해부 실습도 아니고 사이코 드라마 하는데 어떠냐.

    의대생2 : 있어요?

    의대생3 : 화장실 갔어.

    의대생2 : 가운 입어야 폼 나요?

    의대생3 : 입을 줄 알고 어제 다려 놨는데...

    의대생2 : 선배만 입어요.

    의대생3 : 무슨 욕을 먹으려고. 나 내년 졸업이다.

    의대생2 : 외부인 데려 온 건 괜찮아요?

    의대생3 : 몰랐지. 오늘 학과장이 하는 건지. 그렇다고 오라고 했는데 다시 가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의대생2 : 선배도 정신과 쪽으로 가려고요?

    의대생3 : 그러고 싶은데...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너 본과 일 학년인가?

    의대생2 : 이 학년 이예요.

    의대생3 : 그랬나? 사이코 드라마 처음은 아니겠네.

    의대생2 : 네.

    의대생3 : 이번에도 연극하는 사람 데려 왔냐?

    의대생2 : 아니요. 이번에는 환자 상대자 역할 직접한데요.

    의대생3 : 뭐? 우리가?

    의대생2 : 그래 봤자 한 사람이예요.

    의대생3 : 누군데?

    의대생2 : 최선배.

    의대생3 : 누구?

    의대생2 : 선배 동기잖아요.

    의대생3 : 아, 그놈. (관객석 둘러보며) 어디 있어?

    의대생2 : 화장실 갔어요.

    의대생3 : 자기가 하겠대?

    의대생2 : 학과장님이 하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의대생3 : 그 녀석은 학과장의 총애가 참...

    의대생2 : 나쁠 건 없잖아요.

    의대생3 : 솔직히 말해서 학과장이니까...
    다른 쪽 객석에 앉은 여자, 의대생3을 향해 "야!"하고 부르며 손을 흔든다.
    의대생3 : (손 흔들어 주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사인)
    여자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사인하고 나간다.
    의대생2 : 예쁘네요.

    의대생3 : 넌 연락 오는 애들 없냐?

    의대생2 : 무슨 연락이 와요.

    의대생3 : 모르는 애들한테 전화나 메일 안 와? 여기 애들 다 그렇잖아.

    의대생2 : 관심 없어요.

    의대생3 : 만나서 놀아. 임마

    의대생2 : 그런데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죠?

    의대생3 : 고등학교 때까지 죽어라 공부해서 왔는데 지금 또 죽어라 공부해야 되는 보상이 라도 있어야지.

    의대생2 : 결혼 상대는 아니죠?

    의대생3 : 결혼은 무슨... 나중에 개인 병원 차려 준다면 하지.
    밖에서부터 그들을 향해 오는 의대생1
    의대생1 : 왔냐!

    의대생3 : 아이고, 이제 누구 신가?

    의대생1 : 학과장님 아직 안 오셨지?

    의대생2 : 못 봤는데요.

    의대생3 : 이번에 니가 사이코 드라마 한다며?

    의대생1 : (웃음)

    의대생3 : 학과장이 하라고 했다며? 연기 잘해?

    의대생1 : 해 봐야지.

    의대생3 : 왜 이렇게 축 처졌냐?

    의대생1 : 내가? 그렇게 보여?

    의대생3 : 상대 환자는 누군데?

    의대생1 : (들고 있던 서류 중 하나를 보여 준다) 이거.

    의대생3 : (보며) 아! 이 사람 알아. 하하하

    의대생2 : 누군데 그래요?

    의대생3 : 모르나? 그 있잖아. 자기 물건 자르고 들어 온 놈.

    의대생2 : 아! 누군지 알겠다.

    의대생3 : 축하한다. 조심해라.

    의대생2 : 그 사람 그림 그린 거 봤어요?

    의대생3 : 알아.

    의대생2 : 은근히 간호사들 자기 초상화 부탁하던데.

    의대생3 : 원래 미친놈들이 그렇잖아.

    의대생2 : 미친놈이 뭐예요...

    의대생3 : 그럼 미친놈이 미친놈이지.

    의대생1 : 학과장님 어디 게시니?

    의대생2 : 가시게요?

    의대생3 : 기다려. 올 거야. (대머리가 남은 앞머리로 겨우 붙여 가리는 흉내)
    객석의 의대생들(물론 객석에 둔 배우) 하나 둘 웃음을 터트린다.
    의대생2 : (웃으며) 보면 큰일나요.

    의대생3 : 나야 잘 보여 봤자 뭐하냐? 이뻐하는 사람이나 잘 보여야지.
    의대생3 의대생1의 어깨를 두드리고 객석의 자리로 돌아간다.

    어느새 의대생3의 여자는 객석에 앉아 있다.
    의대생2 : 선배 커피 한잔 뽑아 드려요.

    의대생1 : 괜찮아.
    두 사람은 객석에 앉는다.
    의대생2 : 갑자기 어디 갔었어요?

    의대생1 : 화장실. 속이 안 좋아.

    의대생2 : 긴장 되요?

    의대생1 : 긴장은 무슨...

    의대생2 : 학과장님이 추천해 주신대요?

    의대생1 : 추천은 무슨... 내가 시험을 잘 봐야지.
    의대생1의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의대생2 : (잠시) 안 받아요?

    의대생1 : 누군지 알아.

    의대생2 : 누군데요?

    의대생1 : 너도 알잖아.

    의대생2 : 잘 안 돼요?

    의대생1 : 화장실에서도 계속 싸웠어. 어제 생일이었단다.

    의대생2 : 어제 선배 계속 학교에만 안 있었어요?

    의대생1 : 그러니까...

    의대생2 : 학과장님 논문 작업?

    의대생1 : 말해도 이해를 못해.

    의대생2 : 학과장님한테 이야기하시죠.

    의대생1 : 그게 가능해?

    의대생2 : 이번 주 말까지는 계속 아니에요?

    의대생1 : 오늘도 당장 만나러 오래.

    의대생2 : 선배도 순정파는 아니네요.

    의대생1 : 아, 속 아파

    의대생2 : 자꾸 신경 쓰니까 그래요.

    의대생1 : 내가 사이코 드라마 한다니까 나보고 사이코래.
    의대생1 가지고 있던 서류 중에서 문득 꼬깃한 종이를 펴서 본다.
    의대생2 : 뭐예요?

    의대생1 : 몰라.

    의대생2 : 선배가 쓴 거예요?

    의대생1 : 화장실에서 휴지하고 날아 왔어.

    의대생2 : 네?

    의대생1 : 휴지가 없어서 밖에 있는 사람한테 부탁했어.

    의대생2 : 배가 뒤집혀... 외눈박이들이 살고 있는 섬에 표류했다? 외눈박이들은 나를 놀렸 다. 나는 그들이 병신이라 설득했다. 어디를 보아도 외눈박이들뿐이었다. 어느 날 우물가에서 물을 먹으려는 순간... 뭐예요?

    의대생1 : 몰라.

    의대생2 :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한쪽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교수(대머리)가 무대 위로 올라온다.
    교수 : (객석에) 오래 기다렸나? 조교. 조교!
    한쪽에서 달려오는 조교
    조교 : 예.

    교수 : 이게 전부야? 체크했어?

    조교 : 맞습니다.

    교수 : 그래? 적은 거 같은데... (관객석 의대생4에게) 어이, 자네 무슨 배짱이야?

    의대생4 : 예?

    교수 : 뭔 배짱이냐고? 그렇게 개념이 없어?

    의대생4 : 무슨... (문득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것을...) 예! 예! (다리를 급히 풀고)

    교수 : 예과야?

    의대생4 : (서서) 아니... 본과입니다.

    교수 : 알아. 여기 다 본과 학생들이야. 근데 자네는 예과냐고?

    의대생4 : 죄송합니다.

    교수 : 앉아. 앉아. 뒷사람들 불편해.

    의대생4 : (앉고) 죄송합니다.

    교수 : 여러분들 기본이 중요한 거야. 자네!

    의대생4 : (일어나) 예!

    교수 : 앉아. 앉아서 말해.

    의대생4 : (앉고)

    교수 : 집에서 뭐라 하나? 의대 가니까?

    의대생4 : 아주 좋아하십니다.

    교수 : 부모님이 막 자랑하고 다니시지?

    의대생4 : 예.

    교수 : 자네 지방에서 왔나?

    의대생4 : 예.

    교수 : 경사 났다고 안 그래?

    의대생4 : 많이 좋아하십니다.

    교수 : 왜 힘든 의사가 되고 싶은데?

    의대생4 : 그것은.... 수입도 그렇고...

    교수 : 수입! 그래 돈! 또?

    의대생4 : 무엇보다 사람들이 보는 인식이랄까...

    교수 : 인식! 사실은 그것이 가장 크지?

    의대생4 : 예.

    교수 : 여러분도 그렇죠? 주변의 인식. 쉽게 말해서 엘리트죠? 우리 사회에서 대표 적인 엘리트 집단하면 뭐예요? 판검사, 변호사, 그리고 의사. 그렇죠? 여러분이 아 직 의사는 아니죠.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의대에 진학한 이상 여러분은 분명 그 집단의 테두리에 들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됩니다. 아무나 못합니다. 여기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신이죠. 아니 신에 가장 가까운 대리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주변사람들이 여러분을 대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혹시 여기 학생들 중에 오늘 사이코 드라마 처음인 사람(교수 손을 든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교수 : 없죠. 하지만 학생 중에 저하고 오늘 처음 하는 학생도 있을 거예요. (의대생3을 향 해) 어이! 자네.

    의대생3 : 예... 예!

    교수 : 옆 사람하고 뭐 하는 거야?

    의대생3 : 죄송합니다.

    교수 : 가고 싶으면 가.

    의대생3 : 죄송합니다.

    교수 : 면담할 때 정신과 쪽으로 해보고 싶다고 안 그랬나?

    의대생3 : 죄송합니다.

    교수 : 갈래?

    의대생3 : 죄송합니다.

    교수 : 핸드폰은 왜 계속 만지작거려?

    의대생3 : 예! (핸드폰을 가방에 급히 넣는다)

    교수 : 여러분들 핸드폰 다 알아서 하세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십시오. 자네.

    의대생3 : 예.

    교수 : 자네 하나 때문에 설명하다 흐름이 끊겼잖아. 왜 피해를 주나.

    의대생3 : 죄송합니다.

    교수 :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이코 드라마를 하고 있는 이 공간에 바로 환자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여기 지금 일어나게 됩니다. 이곳에서 환자는 꿈을 꿀 수 있고 환상 을 살수도 있으며 죽음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보조자의 역할을 여러분 중에 한 사람이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그저 방관자이거나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참여자입니다. 환자에게 있어서 우리는 신이 되는 것 입 니다. 틀립니까? 자네, 어떻게 생각해?

    의대생3 : 맞습니다.

    교수 : 환자에게 있어서 우리는 마치 신이 되어 환자를 이끄는 것입니다. (한쪽에 서 있는 간호사에게) 대리고 와.
    간호사는 나간다.
    교수 : 환자가 오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조명 좀 조정해 줄 수 있나?
    조명 무대만 비추고 주위는 어두워진다.
    교수 : 조교, 학생들 환자 데이터 보여줬어?

    조교 : 예? 아직...

    교수 : 뭐 알았어. 간단하게 내가 이야기하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 나이는 이십오세, 태어날 때 자웅동체였고. 네 살때 여성의 생식기 제거 수술을 받고 계속 남자로 살았지. 동 거 남하고 도피 중에 동거 남은 자살하고 환자는 자기의 남자 생식기를 잘라 버렸 어.

    의대생4 : 교수님.

    교수 : 왜?

    의대생4 : 질문 있습니다.

    교수 : (사이) 야. 너 예과지?

    의대생4 : 예?

    교수 : 자네.

    의대생3 : 예!

    교수 : 내가 수업 전에 질문 받아 안 받아?

    의대생3 : 안 받으십니다.

    교수 : 나 안 받아. 알아?

    의대생4 : 죄송합니다.

    교수 : 끝나고 해.
    한쪽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데려 온다.

    환자를 구석의 자리에 앉힌다.

    환자는 팬과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간호사 : 교수님.

    교수 : (보고) 그래. 자, 지금부터 시작 할거야. 보조자는 우리 최군이 하자고.

    의대생1 : 예.

    교수 : (간호사보고) 시작하자.
    간호사 환자에게 가서 환자를 데리고 무대 위로 올라간다.

    무대로 앞서던 간호사 서류 파일들을 떨어뜨린다.

    흩어진 서류들을 주어 정리해 건네주는 환자
    교수 : 안녕하세요.

    환자 : 안녕하십니까.

    교수 : 요즘에 어떠세요?

    환자 :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교수 : 지금부터 무엇을 할지 알고 계시죠?

    환자 : 알고 있습니다.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은 모두 의대생들인가요?

    교수 : 그렇습니다.

    환자 : 그렇군요. 간호사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교수 : 말씀해 보십시오.

    환자 : 앞의 분들을 자세히 보고 싶은데 눈이 안 좋아서, 제 자리에 안경이 있습니다. 그걸 갖다 주시겠습니까?

    교수 :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수가 보면 간호사는 나간다.
    교수 : 앉으십시오.

    환자 : (의자에 앉고) 감사합니다.

    교수 : 요즘에도 그림을 그리십니까?

    환자 : 가지고 오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 :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습니다.

    환자 :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교수 : 요즘에는 무엇을 그리십니까?

    환자 : 사람입니다.

    교수 : 좋습니다. 우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 보십시오.

    환자 : 어떻게 하면 됩니까?

    교수 : 자유롭게 하십시오.
    환자는 스케치북을 열어 그림을 그린다.

    잠시 지켜보는 교수
    교수 : 무얼 하시죠?

    환자 : 그림을 그립니다.

    교수 :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싫습니까?

    환자 : 하고 있습니다.

    교수 : 말하기 싫으신 거군요?

    환자 : 선생님께선 꼭 말로 하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닙니까?

    교수 : (사이) 그렇군요.

    환자 : 선생님의 기분은 알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저에게 질문을 해 주십시오.

    교수 : 좋습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죠?

    환자 : (그림을 그리며) 스물 다섯입니다.

    교수 : 형제는 어떻게 되죠?

    환자 : 혼자입니다.

    교수 : 부모님은 모두 계신가요?

    환자 : 마리아가 저를 낳았죠. 아버지는 모릅니다. 처음부터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교수 : 어머니를 마리아라고 불렀습니까?

    환자 : 모두가 그렇게 불렀습니다. 저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교수 : 어머니의 이름이군요.

    환자 : (웃음)

    교수 : 어머니가 처녀의 몸으로 스스로 낳았다 생각하십니까?

    환자 : 분명한 건 아버지란 저에겐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수 : 묻겠습니다. 당신은 남자입니까?

    환자 : (웃음)

    교수 : 그럼 당신은 여자입니까?

    환자 : (웃음) 그림이 다 되었습니다. 여기 학생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교수 : 그렇게 하십시오.
    간호사가 안경을 가져온다.
    환자 : 고맙습니다. (안경을 쓰고 자신의 그림을 보여준다) 여러분의 모습이 환하게 보입니 다. 그림을 봐 주십시오. 이제 저를 아시겠습니까?
    환자의 그림은 사람이다. 하지만 얼굴은 아무것도 그려 있지 않다.
    교수 : 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환자 : 고추를 잘랐습니다.
    의대생3 웃음을 참으며 쿡쿡 거린다.
    환자 : (그쪽으로 시선 가고) 고추란 말이 우습습니까? 성기라고 해야 점잖습니까? 잠지라 는 말은 어떻습니까? 귀엽지 않습니까? 어른에겐 잠지라 하지 않지요? 여러분도 잠 지를 잘랐다는 것이 재밌습니까? 선생님도 재밌습니까?

    교수 : ....
    의대생3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간다.
    여자 : (따라 나가며) 오빠! 오빠!
    의대생들 그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동요한다.
    교수 : (급히) 최초의 분노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환자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십시오.
    교수 한쪽에 있는 신문지를 테이프로 둘둘 말은 것을 가져와 손으로 탁탁 치며
    교수 : 일어나십시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분노를 해소해 보는 겁니다.

    환자 : 구체적으로 말해 주십시오.

    교수 : 그 의자를 대상으로 생각하고 (건네며) 이것으로 마음껏 내리 치십시오.

    환자 : (받고 바라보며) 이걸로 말입니까?

    교수 : 의자를 박살내도 상관없습니다.
    환자 잠시 바라보고만 있다.
    교수 : 무얼 생각해요?

    환자 : (웃는다)

    교수 : 웃깁니까?!

    환자 : 죄송합니다. 단지... 실감이 안 납니다. 장난감 같지 않습니까?
    의대생들 "오호"하며 소리 죽여 동요.
    교수 : 그게 장난감으로 보입니까?

    환자 : 죄송합니다. 전 그냥 제 느낌을 이야기했습니다.

    교수 : 어떻게 하면 실감이 나겠습니까? 실감나게 칼이라도 주면 됩니까?

    환자 : 선생님께서도 농담을 하시는군요.

    교수 : 간호사. 사무실에 가면 과도 있을 거야. 그거 가져와.
    간호사 움직이고.
    교수 : (간호사에게) 저기, 거기 보면 쿠션 있어. 그것도 같이 가져 와.

    환자 : 저에게 여러 가지 신경 써 주시는군요.

    교수 : 실감이 안나 감정 이입이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환자 : 앉아도 되겠습니까?

    교수 : (다소 신경 섞인 끄덕임)

    환자 : 이 장난감은 저쪽으로 치우겠습니다. (다른 곳에 놓고 의자에 앉는다.) 기다리는 동 안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교수 : 제 지시에만 따르십시오.

    환자 : 죄송합니다. 그림을 이어서 그려도 되겠습니까?

    교수 : 좋습니다.
    환자는 그림을 그린다. 의대생들을 이리 저리 주시하는 교수

    간호사는 과도와 쿠션을 가져온다.
    환자 : (보고, 그림을 중단, 일어나서) 감사합니다.

    교수 : 이쪽에 서십시오. (쿠션을 의자에 끼워 놓고) 자, 칼입니다.

    환자 : (과도를 받아 한참 바라본다)

    교수 : 그것도 장난감으로 보입니까?

    환자 : 물론 아닙니다.

    교수 : 분노의 대상을 향해 마음대로 표출해 보십시오.

    환자 : 이야기하신 최초의 분노의 대상 말입니까?

    교수 : 그렇습니다. 모든 걸 틀어지게 만든 최초의 사람은 누구죠?

    환자 : 마리아.

    교수 : 마음대로 당신의 다른 생식기를 제거한 사람이죠?

    환자 : 그렇습니다.

    교수 : 그것이 완전체라 믿었던 스스로를 병신으로 만든 일이죠?

    환자 : 그렇습니다.

    교수 :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도 다른 모습이었겠죠?

    환자 : 그렇습니다.

    교수 : 좋습니다. 이제 그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십시오.

    환자 : (칼을 한쪽의 테이블 위에 놓는다.)

    교수 : 뭐하는 겁니까?

    환자 : 마리아를 원망하는 만큼, 마리아를 사랑했습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교수 : (사이) 뭐... 좋습니다. 그럼 마리아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의대생1에게) 최군.
    의대생1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교수 : 자, 이 사람은 바로 마리아입니다. 또 감정 이입이 안 됩니까?

    환자 : 아닙니다.

    교수 : 좋습니다. (의자의 쿠션을 빼고) 이리 앉아.
    의대생1이 의자로 가는 순간 주머니에서 핸드폰의 진동음이 울린다.

    당황한 의대생1은 핸드폰을 급히 꺼내 내려가 의대생2에게 준 후 다시 올라온다.

    의자에 앉은 의대생1

    잠시 말이 없는 교수
    교수 : 계속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죠?

    환자 : ...

    교수 : 마음껏 해 보십시오.

    환자 : ...

    교수 : 원망? 분노?

    환자 : ...

    교수 : 말해 보십시오.

    환자 : ...

    교수 :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질러 보십시오!

    환자 : ...

    교수 : 자, 해 보는 겁니다.

    환자 : 그림을 보여 주겠습니다.
    잠시 침묵하는 교수.

    교수, 알겠다는 듯 신경질 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간호사 보며 물을 달라는 손짓

    환자는 스케치북을 펴고 그림을 그린다.

    간호사는 물을 가져와 교수는 물을 마신다.

    의대생1에게 그림을 보여 주는 환자.

    의대생들에게 보여 주었던 얼굴 없는 사람의 그림에서 얼굴부분을 추가로 그렸다.

    큰 외눈박이. 그리고 비정상 적으로 큰 한쪽 귀
    의대생1 : !

    교수 : (의대생들에게) 모레노의 의견에 따르면 언어가 우리의 마음을 전달함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환자 : (스케치북에 계속 무엇을 그리는 듯)

    교수 : 따라서 사이코 드라마는 언어 뿐 아니라, 행동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지금처럼 그림 도 좋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환자 : (스케치북을 교수 뒤에서 펼쳐 보이면 외눈박이의 그림에 머리 부분을 대 머리로 그 렸다.)
    조금씩 "키득 키득" 웃는 의대생들,

    동요되는 의대생1
    교수 :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여러분은 한 사람도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참여자, 관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이) 보고서를 내십시오.
    교수 환자와 의대생1을 향해 돌아선다.

    손수건으로 문득 이마를 닦는 교수

    순간 터지는 웃음을 막는 의대생1

    그 바람에 객석의 의대생들도 동요되어 웃는다.
    교수 : !

    환자 : 선생님?

    교수 : 최초의 분노에 대해 말하세요.

    환자 : 선생님.

    교수 : 네?

    환자 : 그건 말씀드렸습니다.

    교수 : 그래요?

    환자 : 마리아에게 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교수 : 그걸로 해결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환자 : 아닙니다. 마리아는 마음에 해방이 되었습니다.

    교수 :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야죠.

    환자 : 제가 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교수 : 좋습니다. (파일을 넘기며) 동거했던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환자 : 요한을 말하시는군요.

    교수 : 그래요. 요한에 대해 이야기 해 봅시다. 자, 두 사람 마주 보세요.
    의대생1 일어나 환자와 마주 본다.
    교수 : 자, 그의 얼굴을 보십시오. 한 곳이라도 좋습니다. 요한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있습 니까?

    환자 : 이미 요한 입니다.

    교수 : 좋습니다. 열을 셀 동안 그는 당신의 요한으로 점점 변해 갑니다. 열... 아홉... 여덞... 일곱... 여섯...

    의대생1 : 쿡! (웃음을 참는다.)
    동시에 관객석의 의대생들도 동요되며 점점 "쿡! 쿡!"
    교수 : (사이).... 다섯... 넷... 셋...
    의대생 더 참기 힘든 웃음

    동요되어 관객석도 "쿡! 쿡!"거림이 심하다.
    교수 : 둘... 하나... 요한이지죠?!

    환자 : 요한 입니다.

    교수 : 요한을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환자 : 고등학교 때입니다.

    교수 : 남자 고등학교 였습니까?

    환자 : 네.

    교수 : 수술 이후에 그때까지 계속 남자로 살았군요.

    환자 : 외형상으로만 그랬습니다.

    교수 : 자신은 남자입니까?

    환자 : 이미 물어 보셨습니다.

    교수 : 그래요?

    환자 : 잊으셨군요.

    교수 : 아닙니다.

    환자 : 괜찮으십니까?

    교수 : 내가 좀 이상해 보입니까?

    환자 : 솔직히 그렇습니다.

    교수 : 저는 괜찮습니다. 요한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환자 : 네.

    교수 : 처음 만난 요한은 어땠습니까?

    환자 : 다른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교수 : 어떻게 달랐습니까?

    환자 : 다른 아이들은 나를 경애했지만 요한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교수 : 폭력을 썼습니까?

    환자 : 그때는 그랬습니다.

    교수 : (의대생1에게) 앉아. 그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환자 : 전 늘 앉아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교수 : 해 보세요.

    환자 : (스케치북을 펼쳐서 그림을 그린다.)

    교수 : 요한은 가서 방해를 하세요.
    의대생1 환자에게 가다가 환자의 스케치북 그림을 보고 웃는다.

    같이 동요되어 웃는 객석의 의대생들.
    교수: !

    환자 : 요한, 사실은 너도 내 그림이 마음에 드는 구나.

    의대생1 : (애써 웃음을 참는다) ...
    동요되어 같이 웃는 관객석의 의대생들
    환자 : 마음이 시원하지?

    교수 : 방해를 합니다.

    의대생1 : (다가간다)

    환자 : 난 특별하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마음의 탈을 벗는다.

    교수 : 방해를 합니다.

    의대생1 : (다가간다)

    환자 : 난 완전체로 태어났다. 더 좋은 그림으로 널 웃게 해 줄게.

    의대생1 : (웃는다)
    동요되어 같이 웃는 관객석의 의대생들.
    교수 : 중지!

    환자 : 선생님?

    교수 : 역할을 바꿔 보겠습니다.

    환자 : 제가 요한이 되는 겁니까?

    교수 : 네! 네! 그래야 상대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거울이라 생각하고 두 사람 마 주 보세요, 아니 됐어요. 바로 하겠습니다.
    의대생2가 가지고 있던 의대생1의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당황한 의대생2 핸드폰을 끄려 했지만

    잘못하여 벨이 울리게 된다.

    마음놓고 웃음을 터트리는 관객석의 의대생들.

    조교가 객석으로 와 의대생들을 진정시키려 애 쓴다.

    진정 되지 않는 분위기
    환자 : 선생님?

    교수 : !

    환자 : 시작하십시오.

    교수 : 당신이 요한 입니다.

    환자 : 알고 있습니다.

    교수 : 좀 전하고 바꿔서 해봅시다.

    환자 : 제가 저쪽으로 가겠습니다.

    의대생1 : (환자가 있던 곳으로 간다)

    환자 : (스케치북과 팬을 주며) 이것도.

    의대생1 : (앉아 스케치북을 펼치고 그 그림을 본 후 웃는다)
    동요되어 같이 웃는 관객석 의대생들.
    교수 : 하십시오!

    환자 : 무엇을 말입니까?

    교수 : 요한처럼 하십시오!

    환자 : 무엇을 말입니까?

    교수 : 말 한대로 하세요!

    환자 : 무엇을 말입니까?

    교수 : 폭력! 폭력!
    박수치며 환호하는 의대생들.

    " 폭력! 폭력!"을 외친다.
    환자 : (가만히 있는다.)

    교수 : 이렇게! (의대생1에게 간다) 이렇게! (스케치북을 내 던진다.)
    박수치며 환호하는 의대생들.

    " 폭력! 폭력!"을 외친다.
    환자 : (가만히 있는다)

    교수 : 이렇게! (테이블의 사과를 바닥에 던진다) 이렇게! (테이블의 화분을 의대생1에게 던 진다.)

    의대생1 : (피하고 벌떡 일어나 교수를 노려본다)
    박수치며 환호하는 의대생들.

    " 폭력! 폭력!"을 외친다.
    교수 : 바지 벗어.

    의대생1 : 예?

    교수 : 마지막으로 성기 자르는 부분만 해 보자.

    의대생1 : 예?

    교수 : 괜찮아. 그냥 사이코 드라마야.

    의대생1 : ...

    교수 : 못해? 반항하는 거냐?

    의대생1 : ...

    교수 : 뭐 하는 짓이냐?

    의대생1 : (돌아서 가려 한다.)

    교수 : 무릅 꿇어!

    의대생1 : (밖으로 나간다.)

    교수 : 너 때문에 사이코 드라마를 망쳤어! (의대생1을 따라 나간다)
    박수치며 환호하는 의대생들.

    환자, 바닥에 뒹구는 사과 하나와 주변 있는 과도를 가져다 의자에 앉는다.
    환자 : (사과를 깎으며) 배가 뒤집혀 외눈박이들이 살고 있는 섬에 표류했다. 외눈박이들은 나를 놀렸다. 나는 그들이 병신이라 설득했다. 어디를 보아도 외눈박이들뿐이었다. 어느 날 우물가에서 물을 먹으려는 순간... 두 눈을 가진 자신의 얼굴이 비치자 스스 로가 병신임을 알고 눈을 도려냈다. (다 깎은 사과를 한 입 먹는다.) 근사하고 비싼 사과도 껍질 벗겨 먹어보기 전에는 맛을 몰라.

    -막-
    시높시스>
    사이코 드라마가 곧 시작되는 무대.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 역시 모두 지금 이 사이코 드라마를 관찰하는 의대생이 된다.

    간호사와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의대생2

    선배인 의대생3은 그런 그에게 자존심이 없다며 핀잔을 준다.

    의대생3은 모처럼 애인을 몰래 대려 왔지만 의대생의 상징인 흰 가운을 입지 않는 것에 불만이다.

    이제 졸업이 가깝지만 학과장 교수에게도 잘 보이지 못했다.

    오늘은 특별히 환자의 상대자로 외부의 연극 배우가 아닌 학과장이 예뻐하는 동기 의대생1이 직접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화장실에 갔다 온 의대생1

    의대생1에게 오늘 환자가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온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림 솜씨도 뛰어난....

    의대생3은 장난을 치며 불만을 토하듯 대머리 학과장의 버릇을 흉내낸다.

    그것을 모두 아는 의대생(관객석의 심어 논 배우들 주동)들은 웃는다.

    하지만 결국 학과장 앞에서는 절대 내색할 수 없다.

    의대생1은 계속 속이 좋지 않았다.

    계속 되는 학과장의 논문 작업을 도와 주느라 만나지 못한 여자 친구와

    전까지 화장실 안에서 핸드폰으로 싸웠다. 지금도 걸려오는 전화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 부탁한 사람에게서 휴지와 같이 온 메모 "외눈박이 이야기"

    학과장 교수가 등장한다.

    의대생들 모습 하나 하나에 트집을 잡는 깐깐한 사람.

    자신들은 엘리트 집단에 속해 있음을 강조한다.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집단.

    사이코 드라마는 모두가 참여자이다.

    간호사가 데리고 온 환자.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있다. 말보다는 그림으로 전달하고 싶어하는 환자.

    시간이 갈수록 점점 교수를 짜증나게 하는 일들.

    진행되는 사이코 드라마...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절대 내색할 수 없는 것들이다.

    총애하여 무대에 일부러 세운 의대생1까지 그렇다.

    관객석의 의대생들 숨죽이던 웃음도 점점 드러내 놓고...

    환자를 둘러싼 사이코 드라마가 진행되지만... 시간이 흐르며 환자의 자리에 교수가 대신 서게 되는 분위기...

    환자를 주시하던 드라마의 진행은 어느새 의대생1을 교수가 공격하는 드라마로 진행된다.

    관객석의 의대생들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그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교수와 의대생1

    그들이 무대에서 떠난 뒤에...

    남은 환자는 뒹구는 사과를 깎아 먹으며 말한다.

    " 근사하고 비싼 사과도 껍질 벗겨 먹어보기 전에는 맛을 몰라."
    신은수

    신은수

    197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극작과 졸업

  • 심사위원 한태숙(물리 대표) 박근형(골목길 대표)

    문학은, 특히 희곡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듯 이번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응모한 작품들 역시 지금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많았다.

    상황에 억눌린 현대인의 위기의식이나 탈출구가 없는 공간에 갇힌 심리, 그리고 자아 정체성과 존재감, 소통부재의 희비극을 다룬 어두운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총 81편의 응모작 중에 무대라는 공간을 파악하고 희곡의 전문성을 확보한 희곡은 귀한 편이었다.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은 세 편이었다. 먼저 이미경의 '남편 세탁하는 날'은 무능한 남편에 대한 부인의 실망과 분노, 남편의 심리를 연극적 상황으로 잘 이끌어 갔지만 이야기가 단순하고 결말이 쉽게 짐작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김지훈의' 봄이 오면 얼굴에는'은 세상을 보는 작가의 생각이 원숙하고 호흡이 길며 유려한 대사 또한 강점이었으나 지나치게 관념적이며 극의 응집력이 다소 부족해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뽑은 신은수의 '비싼 사과의 맛'은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이 선명한 가운데 '사이코드라마' 라는 정형화된 틀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참신했다. 극의 도입부가 늘어진다는 것이 단점으로 대두되긴 했지만, 진행 과정의 발상이 돋보이고 단막극의 매력을 잘 살렸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희곡작가 신은수의 출발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마지막으로, 장재철 옹의 희곡 '북해의 비련'은 공연을 전제로 하기엔 무리가 있는 희곡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성이 전해지는 작품이라는 소견을 전해드리고 싶다.
  • 신은수

    신은수

    197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극작과 졸업

    문득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가 떠올랐습니다.

    밤에는 빌딩의 경비로 일하며 만화가를 꿈꾸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부터 청년에게 이상한 전화가 걸려 옵니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의 만화가 좋아요. 절대 포기하면 안돼요."

    이상한 전화로 생각하고 무시하던 청년은 공모전에 낼 원고를 만들다가 모두 포기하자는 마음에 원고를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그때 또 전화가 걸려오고 청년은 버렸던 원고를 다시 꺼내 완성합니다. 그 원고는 청년에게 만화가의 길을 열어 줍니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본래 저 아이의 전화는 없었다. 청년이 마음 속에서 만든 환상이다.

    작가는 실질적으로 세상에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합니다.

    단지…

    이 모순 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이 모순 된 세상에서 상처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그 모순 된 세상을 잠시 잊을 수 있는 환상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이 분에 넘치는 영광은 청년처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저에게 들려 올 것입니다. 전 그 환상의 자락을 놓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큰 환상으로 키우겠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영광을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가장 크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허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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