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옹이

by  곽경선

  • 작품전문
  • 시놉시스
  • 심사평
  • 당선소감
  • S#1. 빌라 / 오전
    회색빛 하늘, 5층의 오래된 빌라가 실루엣으로 무겁게 보인다. 빌라 외벽 곳곳에 시멘트가 벗겨져 있고 창살은 흉물스럽게 녹슬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조그만 놀이터는 부서진 놀이기구만이 자리하고 간간이 부는 바람에 모래가 날린다.

    S#2. 빌라(안)
    방안에 물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먹다 남은 땅콩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벽과 바닥은 피로 물든 손톱자국으로 어지럽게 찢겨 있다. 중년의 남자가 방문에 손을 뻗은 채 죽어 있다. 시체를 보면 허벅지에 쿼터칼이 꽂혀있다. 죽기 직전까지 문을 열고 나가려 했던 긴박하고 절실했던 상황이 엿보인다. 거실엔 과학수사대, 현장검증 하는 경찰들이 일을 처리하고 있다. 곽반장, 잔뜩 무게를 잡고 방안에 들어오면 분주한 가운데 젊은 이형사가 장갑을 낀 채 시체를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다.

    곽반장 어때?

    이형사,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곽반장의 눈치를 살핀다. 곽반장, 미간을 찡그리고 이형사를 바라보자 잔뜩 긴장한 이형사 고개를 젓는다. 곽반장, 시체쪽으로 다가가 유심히 살핀다.

    곽반장 뽑아
    이형사 ????
    곽반장 (무덤덤하게) 칼 뽑아

    이형사, 긴장과 두려움으로 시체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조심스레 움켜쥔다. 깊이 박힌 칼에 피가 응고되어 쉽게 빠지지 않는다. 바르르 떨며 한 번 더 힘을 줘 빼낸다. 순간 피가 벌컥 솟아올라 이형사의 얼굴에 튄다. 곽반장,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칼을 쥐고 있는 이형사의 팔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찬찬히 살핀다. 피로 물든 쿼터칼 뒷면에 싸인펜으로 무언가 쓰여 있다. 칼에 묻은 피가 뚝뚝 떨어지며 서서히 글자가 드러난다.

    인서트
    쿼터칼 뒤 ‘조까’ 라고 씌여 있다.

    S#3. 할머니 집 마당 / 낮
    일곱 살 된 남자아이가 팽이를 돌리고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한철. 오래전 실어증에 걸려 말 하지
    못 한다. 울퉁불퉁 굳어진 진흙 바닥에 팽이가 돌다 넘어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팽이를 감고 던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다. 한철의 시선을 따라 가면 서른 살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마루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한철의 삼촌 영철이다. 영철 옆으로 백발의 할아버지가 앉아 있다. 노인은 가만히 앉아 한철을 바라본다. 그러나 영철은 노인을 의식하지 못하고 기타를 연주한다. 한철은 할아버지를 멍하니 보다 등을 돌려 다시 팽이를 돌린다. 한철의 어깨너머로 보면 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오직 영철뿐이다. 한철은 팽이 돌리는 게 무료한지 고양이 마냥 웅크려 앉는다. 그리고 그 앞으로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 팽이로 찍어 죽인다. 벌레가 그대로 바닥에 터져 죽는다. 그 앞으로 낫을 들고 한철의 할머니가 지나간다. 꽉 다문 입, 무표정한 얼굴, 매서운 분위기가 흐른다. 그때 교복 입은 여학생이 휴대폰을 보며 들어온다. 예쁘장한 외모에 냉소적인 표정, 한철의 누나 지수다. 지수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곧장 들어간다. 곧이어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보온병을 들고 들어와 평상에 앉는다. 짙은 화장에 짧은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한철의 엄마 미숙이다. 미숙은 자리에 앉아 짜증스레 구두에 묻은 흙을 걸레로 닦아낸다. 조용하게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가족들, 어느 하나 주변을 돌아보거나 아는 척하지 않는다.

    S#4. 지수 방
    엄마와 함께 쓰는 방이지만 가구는 장롱과 좌식 책상이 전부다. 지수, 가방을 구석에 던지고 바닥에 눕는다. 오래된 천장에 알전등이 미동 없이 멈춰있고 낡은 벽지는 누렇게 빛바래있다.

    지수 N 이곳에 온지도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쫓기듯 서울을 떠나왔지만 나는 왜 그날 밤 도망치
    듯 이곳으로 와야 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죽기보다 더 이곳을 싫어했지만 결국 이곳을 선
    택했고 그날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딸년이 자신의 전철을 밟는다며 소금 한 바가지를
    엄마에게 집어 던졌다.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엄마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쥐들이 천정을 분주히 오가는 소리. 뒤이어 고양이 울음소리. 지수, 체념한 듯 눈을 감는다.

    S#5. 할머니 집 마당/ 저녁
    평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무표정하지만 살기가 느껴지는 할머니, 추리닝 차림의 지수, 깡마르고 불쌍하게 생긴 영철, 아이답지 않게 담담한 표정의 한철이 함께 밥을 먹는다. 달그락거리는 밥그릇 소리. 그때 가슴골이 드러나는 야한 옷차림의 미숙이 투덜대며 들어온다. 짜증스럽게 가방을 내려놓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정적을 깨고 뿌웅~ 방구소리. 화면 밖으로 낑낑대는 강아지 울음소리, 평상 아래를 보면 똥개 한 마리가 정색하고 울부짖는다. 영철, 재밌다는 듯 엉덩이에 힘을 주고 한 번 더 뽀옹~ 방귀 뀌자 똥개, 괴로운 듯 도망간다. 영철, 신나서 웃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죽일 듯 노려본다.

    할머니 문등이 자슥, 밥상머리 앞에서 밥이나 처먹지 콱 똥구녕을 찢어 버릴까부다

    영철,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입안으로 밥을 밀어 넣는다.

    S#6. 할머니 집 외경 /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마당, 금세라도 폭풍이 몰아질 듯 세차게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꺾일 듯 심하게 흔들린다. 음산한 분위기가 집 주변을 맴돈다. 이장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S#7. 영철 방
    바람 소리 음산하게 들리고, 방문이 바람에 부딪혀 덜컹거린다. 불 꺼진 방안에 동그랗게 말린 이불. 이불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 이불 안을 살펴보면 한철이 손전등을 켜고 벽에 귀를 바짝 대고 앉아 있다. 벽 안으로 무언가 긁는 소리. 한철, 쥐고 있던 팽이로 벽을 힘껏 찍는다. 정적이 흐르고 이불 안으로 풀어 헤친 긴 머리가 스윽 들어온다. 산발인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한철, 두려움 없이 담담히 바라본다. 점점 가까이 다가와 한철 코앞에 멈춘다. 한철,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추자 눈이 부신지 잔뜩 찡그린 영철의 얼굴.

    영철 (한철의 얼굴을 마주보며) 이 어린놈의 쉐끼, (버럭) 잠 좀 자라. 잠 좀 자.

    영철, 한철의 머리통을 쥐어박고는 코를 골며 그대로 쓰러져 잔다.

    S#8. 지수방/ 같은시간
    지수, 스텐드를 켜 놓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고, 그 뒤로 깊은 잠에 빠져 잠꼬대하는 미숙.

    S#9. 할머니 방 / 같은 시간
    이장, 방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저곳 손 볼 곳이 많다. 어지럽게 전선이 꼬여있고 벽 한가운데를 오래된 텔레비전이 낡은 서랍장 위에 놓여 있다. 이장, 쓰고 있는 가발이 불편한지 연신 머리를 만진다. 할머니, 이장을 밀쳐내며 걸레로 방을 훔친다.

    이장 (눈치를 살피며) 이참에 이 집 팔고 한몫 챙기는게 느즈막히 노인네 사는데 편할텐데...
    할머니 니 또 그 말 할라고 왔나?
    이장 (손짓하며) 저 짝에 골프장이 생기는데 시행사 측에서 요짝 토지 일부를 사들여서 리조트
    인지 호텔인지 짓는다고 팔을꺼냐 안팔을꺼냐 물어 보라카는데.. 골프장 주변 땅은 아무
    가치도 없다고 임자 있을 때 파는 것이 좋을기라 하는디 (눈치를 보며) 그쪽에서 일부
    땅만 사면 이도 저도 안 되고 마을 입구부터 저짝 뒷산까지 싹다 산다 하는디...
    할머니 (이장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주둥이 콱 쌔래 삐뿔라! 쌍놈의 자슥 왜 말 꽁무니는 잘라 처
    먹는데? 내가 니보다 다섯 살은 더 많다
    이장 아 글씨 누부 이 개똥같은 집 빨랑 팔아벌이고 그 돈 갖고 더 좋은데 가서 편히 살라
    안하나 이 동네 사람들 전부 다 인감이랑 등본이랑 띄어줬는데 누부만 안주니께 계약이
    지연되고 있다 안하나. 사람 고마 참 이기적이네
    할머니 이 집도 이 땅도 내는 절대 팔 생각이 없다. 괜히 더운데 땀 빼지 말고 들어가 봐라
    이장 (떼쓰며) 아, 누부 내 이래도 이 동네 이장인데 내 체면을 봐서라서 시원하게 계약합시
    더 내가 돈은 아쉽지 않게 챙겨줄게, 서울 사람들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사정사정
    하고 주머니에 돈두 (아차, 입을 막는다)
    할머니 뭐라꼬?
    이장 아니 그게 아니라 수고비로 막걸리 사 먹으라고 쫌 주는데 성의를 거절할 수 있나.
    내도 여기까지 오느라 욕보는데...
    할머니 막걸리?

    할머니, 분노에 이글거린다, 걸레를 이장에게 집어 던지고, 머리채를 잡으니 이장의 가발이 손에 잡힌다. 이장, 겁먹은 채 방문을 연다. 할머니, 나가려는 이장을 붙잡아 걸레로 목을 조르고, 방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S#10. 할머니집 마당
    이장, 손에 가발을 들고 도망치듯 문을 박차고 나온다. 얼굴엔 긁힌 손톱자국과 심하게 터진 입술. 단추가 뜯어져 풀어헤친 와이셔츠.

    할머니 (방에 앉아 소리치며) 한 번 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면 그 씨나락 주둥이에 콱 쑤
    셔 넣을 줄 알아라.
    이장 (가발을 바로 쓰며) 내 주둥이가 그냥 주둥인겨? 한번 처 넣어봐라. 이놈의 주둥이로 확
    다 까발릴랑께.
    할머니 저 염병할 놈 (이장의 신발을 집어 던진다)
    이장 (신발을 주워 가슴에 안고는) 이게 원래 누구 집인데 누부가 집주인 행세하고 있는겨? 그
    러면 못쓰제. 천벌 받지.

    할머니 옆에 있던 낫을 집어 들자, 이장 겁먹고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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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11. 학교 정문 / 아침
    지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꼿꼿이 서서 산을 바라보고 있다.

    마수 E 나 오늘 네 말대로 어제 죽을 뻔했어?

    지수. 마수의 말에 신경쓰지 않고 심각하게 산을 바라본다.

    마수 어제 담임쌤이 와서 죽일 듯 날 노려보는 거야. 그러다가 대뜸 헤드락을 거는데 가슴이
    벌렁벌렁 하고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모든 걸 체념하고 죽기만을 기다렸지. 그
    런데 갑자기 저승이 막 멀어지는 거야. 무슨 일인가 봤더니 애들이 휴대폰을 들고 담탱이
    를 찍고 있는거야. 난 그때 죽음은 한순간이라는 걸 깨달았어. 너의 예지력은 정말 대단
    한 것 같아.
    지수 너 저 산에 가봤어?
    마수 저기? 많이 가 봤지, 아부지랑 더덕도 캐고 밤도 따고 쑥도 뜯고...
    지수 무덤도 있니?
    마수 있지. (오버하며) 천지가 다 무덤이야.
    지수 (듣기 싫은 듯) 그럼 니 누울 곳은 있니?

    지수, 담담히 교실로 들어간다. 마수, 신발주머니를 떨어뜨리며 딸꾹질한다.

    S#12. 할머니 집 담장 밖 /낮
    바닥에 쪼그려 앉아 흙장난하며 놀고 있는 한철, 이장, 집안을 힐끔 보며 낮은 소리로 통화한다.

    이장 할망구가 고집이 워낙 쎄서 힘들겄다. 사람 좀 퍼뜩 보내야 쓰겄는디. 손 빠른 놈으로다
    가 이쪽으로 보내 줄 수 있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오늘 밤 읍내 술집으로? 검은
    옷에 모자 쓰고 눈빛이 매서운 사람? 알았다. 내 눈치가 빨라 사람 금방 찾는다. 뭐라꼬?
    이름이...브..블루스? 브루쑤? 알았다. 일만 잘 처리되면 수고비는 내 섭섭지 않게 챙겨
    줄기다. 그래 들어가봐라.

    이장, 전화를 끊고 놀고 있는 한철의 머리를 쥐어박고 간다. 한철, 아픈지 머리를 문지른다. 저 멀리 영철 오는 영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검은 봉지를 흔들며 뛰어온다. 한철, 고개를 갸웃하며 영철을 바라본다.

    영철 어이~~한철! 뭐 하고 놀아? 이 자식 시골 내려와서 촌놈 다 됐네?

    한철, 손가락으로 멀리 나무 밑을 가리킨다.

    영철 왜? 저기 뭐있어?

    한철, 고개를 끄덕인다.

    영철 엥? 뭐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데... 아~ 저기 가서 놀자고?

    한철, 고개를 젖는다.

    영철 아~ 답답하네. 말도 못 하고, 말도 못 알아듣고, 너는 정말 말을 못 하는 거냐? 아니면
    세상과 단절하겠다는 의미냐? (한철의 손을 잡고) 들어가자. 삼촌이 맛있는 거 사 왔어.
    한철이 젤 좋아하는 쭈쭈바.

    한철, 그 자리에 앉아서 꼼짝도 안한다.

    영철 (아이스크림을 꺼내들며) 너 이거 안 먹을 거야? 그럼 나 혼자 다 먹는다.

    한철, 아이스크림을 확 낚아채며 버드나무를 향해 뛰어간다. 똥개가 짖으며 쫓아간다

    영철 야! 어디가? (눈을 흘기며) 얍삽한 놈!

    영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메라 나무로 시선을 옮긴다. 나뭇가지에 보일 듯, 말듯,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여자가 영철을 내려다보고 있다.

    S#13. 산 길 / 낮
    지수, 산길을 걷고 있다. 비틀거리며 기진맥진 따라오는 마수. 지수, 마수와 달리 꼭 다문 입술, 비장한 표정이다. 마수, 앞서가는 지수를 쫓아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수풀 사이로 굴러떨어진다.

    지수 (짜쯩스럽게) 저 새끼 왜 따라와서는..
    마수E 아악... 지수야... 나 다리 ... 다리 삐었나봐. 아악... 다리가 돌아갔어...지수야.
    지수 (짜증스럽게) 이새끼 진짜, 가고 있어. 기다려.

    지수, 마수를 찾아 수풀 속을 헤치고 들어간다. 갑자기 뚝 끊긴 마수의 목소리

    지수 (걱정스럽게 소리치며) 야, 너 어딨어? 야,

    지수, 풀숲을 헤치고 마수를 발견한다. 마수, 죽은 듯 벌러덩 누워 있다.

    지수 (마수를 발로 툭툭 차며) 야..야..

    마수, 꼼짝도 하지 않고 죽은 척 누워있다. 지수, 마수를 발로 마구 걷어찬다. 마수, 동그랗게 몸을 움츠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막는다. 지수, 돌아서 가려 하자 지수의 다리를 붙잡는 마수.

    마수 나 버리지마.. 지수야..(울먹이며) 나 못 걷겠어.

    카메라 뒤로 빠지면 나무에 매달려있는 여자의 다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지수 (버럭) 병신새끼 왜 따라와서는 지랄이야 지랄이.

    S#14. 버드나무 밑 / 같은 시각
    버드나무 아래 한철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 옆으로 똥개가 나무를 올려다보며 컹컹, 짓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고요한 풍경과 함께 버드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S#15. 할머니 집 마당 / 저녁
    지수를 뺀 식구들이 평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순간, 끼익~ 문이 열린다. 돌아보면 지수가 마수를 업고 서 있다. 지수 온몸이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지수, 지친 기색으로 마수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마수 : (민망해하며) 죄송합니다. 어머님 제가 다리를 좀 다쳐서 따님을 좀 힘들게 했습니다.

    디졸브
    시간 경과, 온 가족이 밥상에 빙 둘러앉고, 그 안에 껴 있는 마수, 교복대신 할머니 나시와 꽃무늬 배바지를 입고 앉아 있다. 마수, 긴장하며 식구들의 눈치를 살핀다.

    영철 (협박하는 듯이) 뭘 보냐? 우리가 우습냐?
    마수 아.. 아닙니다. 그냥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수 너 안 잡아먹으니까 조용히 하고 밥이나 처먹어.
    미숙 (고상한척) 어머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친구한테..학생 이름이...
    마수 마수입니다. 어머니
    미숙 아.. 마수.. 마수군... 차리건 없지만 많이 들어요. 근데...아버님은 무슨 일 하시나?
    마수 소 키우십니다.
    미숙 몇 마리나? 요새 한 마리당 얼마나 하나?
    할머니 니가 그거 알아서 뭐하노? 와 간 빼먹을라고?
    미숙 아니... 엄마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할머니 또 허튼수작 부리다 걸리면 내 이번엔 소등에 상여 태워 보낼끼다 알았나

    마수. 점점 얼굴이 상기 되어 간다.

    영철 (당황하며) 엄마는 참, 손님 있는데 마수군 우리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들 아니야. 편히 밥
    먹어.
    지수 다 먹어라, 밥 남기면 죽는다. 남기면 우리 할머니 니 밥에 향 꽂는다.

    옆을 보면 한철,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수북이 담긴 쌀밥을 말없이 퍼서 먹는다. 마수, 긴장한 채 가족들을 둘러본다. 말없이 우걱우걱 밥을 먹는 가족들, 눈치 보며 밥을 한가득 퍼서 입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그러다 목에 걸렸는지 컥컥댄다.

    지수, 마수의 등짝을 세게 두드린다. 마수, 컥컥대며 입에 있는 걸 다 게워낸다.

    지수 (짜증스럽게) 이 새끼 드러워 죽겠네.

    모두 고개를 돌리고 밥 먹는 가족들.

    S#16. 터미널 / 저녁
    버스에서 내리는 곽반장과, 이형사. 곽반장, 휴대폰에 저장된 한 장의 사진을 확인한다.

    인서트
    밝게 웃고 있는 한 여자의 사진 (미숙의 성형 전 사진)

    곽반장 가족이 여기 산다고 했지?
    이형사 네. 어머니 혼자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곽반장 어머니는 뭐 하시나?
    이형사 예전에 조그만 점집을 하다 지금은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곽반장 또 다른 가족은?
    이형사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양평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며 근근히 지낸다고 합니다.
    곽반장 또 다른 건?
    이형사 아직 조사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살인했다는 정황도 없는데 이렇게 무작정
    와도 되는 겁니까? 정한길의 내연녀가 여럿인데 왜 김미숙을 찾아가는 겁니까?
    곽반장 마지막 내연녀, 마지막 관계, 마지막 직감...

    곽반장, 트렌치 코드 깃을 세우며 비장한 표정을 보인다. 그때 커다란 가방으로 곽반장을 세게 치고 지나가는 한 남자. 돌아보면 근육질 팔과 문신. 우람한 몸집이 보인다. 곽반장, 기분 상하지만 그 남자의 포스에 할 말을 잃는다. 그때 눈치 없는 이형사, 남자를 향해 소리친다.

    이형사 이봐요. 아저씨,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남자, 돌아보면 얼굴에 칼자국이 있다.

    이형사 (당당히) 아저씨, 사과 하시라구요.
    이춘삼 (눈빛에 살기를 뿜으며) 미안합니다.
    이형사 앞으로 조심 좀 하세요. 눈은 장식으로 있나

    곽반장,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코트에 넣는다. 이춘삼, 껌을 꺼내 잘근잘근 씹는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

    인서트
    연쇄 살인범 이춘삼의 현상수배 전단지.

    이춘삼, 포스터를 찢어 안쪽 주머니에 구겨 넣고 주변을 살피며 떠난다. 곽반장, 이형사, 이춘삼, 세 사람 서로 각자 방향으로 걸어가며 프레임 아웃.

    S#17. 할머니 방/ 늦은 저녁
    영철과 미숙, 지수, 마수가 나란히 벽에 기대앉아 뉴스를 보고 있다. 할머니는 저만치 떨어져 칼을 들고 마늘을 까고 있다. 한철, 그 곁에 앉아 한 손에 팽이를 움켜쥐고 깐 마늘을 집어 먹다 퉤퉤 뱉는다. 텔레비전이 오래돼서 화면이 깜빡인다. 할머니, 마늘을 까다 일어나 칼 등으로 텔레비전을 내리친다. 화면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진다. 당황스런 마수, 눈치를 살피다 슬쩍 일어나 텔레비전을 치려고 하자 갑자기 나타난 한철, 팽이로 텔레비전을 내리찍는다. 화면 다시 밝아진다. 마수, 두려운 눈빛, 점점 구석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수로에 처참히 살해당한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뉴스 보도가 흘러나온다.

    지수 칼로 찔렀을까?
    영철 글쎄... 목졸라 죽였을 수도 있지
    지수 어떻게 죽는 게 더 잔인할까?
    영철 (오버하며) 칼로 찌르면 피가 팍! 튀고 목 조르면 눈깔 팍! 튀어나오고,,,
    지수 목 졸라 죽은 사람 봤어?
    영철 (당황하며) 아니...넌 봤냐?
    지수 응

    일제히 지수를 바라보는 가족들.

    지수 언젠가 본 것 같아
    영철 멍청아, 너 데자뷰 말하는 거냐?
    지수 데자뷰 아니야.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말이야. 근데 정확히 어디서 본건지 모르겠어. 느낌
    은 있는데 실체가 없단 말이야.
    영철 야! 너도 그분이 오셨냐?
    할머니 (영철의 머리를 때리며) 니는 아한테 그게 할 말이가?
    영철 왜 요새 이런 불경기에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무당이 뭐 어때서? 그거 전문직이야. 전문
    직.. (마수를 보며) 어이 학생, 학생도 내가 못 할 말 했다고 생각하나?

    마수, 기절해 있다.

    미숙 학생, 벌써 잠들었네. 제는 애가 보면 볼수록 없어 보인다.
    영철 공부도 디게 못하게 생겼네...

    S#18. 길가 / 늦은 밤
    이형사 곽반장, 휴대폰 손전등을 비추며 길을 찾고 있다. 이미 어둑어둑한 밤거리, 꺼져있는 가로등, 이형사 뒤를 따라가던 곽반장, 갑자기 멈춰서 휴대폰 손전등으로 신발을 비춰보면 개똥이 묻어 있다. 곽반장, 짜증스럽게 한쪽 구두를 벗어 벽에 닦는다.

    곽반장 이 근처에 모텔이나 민박 없나?
    이형사 너무 외지라 등록된 숙소가 안보입니다.
    곽반장 그럼 가까운 파출소라도 가보지.
    이형사 네 검색해 보겠습니다.

    휴대폰 빛에 의지해 엉성하게 걸어가는 두 형사.

    S#19. 읍내 고기집 / 같은 시각
    허름한 술집. 이춘삼 혼자서 술을 들이켜고 있다. 그때 들어오는 이장, 주위를 둘러보다 이춘삼을 발견하고는 슬쩍 다가가 앉는다.

    이장 브루스?
    이춘삼 ?????
    이장 (이춘삼에게 술 한잔 따르며) 시간 잘 맞춰왔구만. 그래 계획은 잘 세웠나?
    바닥을 보면 크고 묵직한 가방이 보인다.

    이장 준비 하나는 기똥차게 했구먼.

    이춘삼, 험악하게 이장을 쏘아본다.

    이장 눈빛이 매서운걸 보니 아주 소문대로네

    이춘삼, 움찔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칼을 만지작거린다. 이장, 이춘삼 옷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준다.

    이장 아무래도 할망구가 집문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딨는지 잘 모르지만 할망구 방 어딘가
    숨겨놓지 않았겠나? 내 이미 자네 솜씨는 익히 들어 안다. 뭐 입으로 복잡하게 설명할 것
    까진 없고 그냥 니 알아서 눈치껏 잘 빼 와라. 이번 건만 잘 되면 내 잔금은 두둑히 챙겨
    줄기다. 시간은 니 편할대로 하고... 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리고 동네에 폐가가
    많으니까 아무데나 있어라.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내 틈틈이 들러볼테니까 항시 대기하고
    있고 알았나? (탁자 위로 종이를 건넨다.)

    인서트,
    할머니집 주소.

    이춘삼, 잔을 비운 뒤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이장, 주변 눈치를 보며 슬쩍 일어난다. 갑자기 이장 어깨를 잡는 가게 주인.

    가게주인 계산은?
    이장 얼만데?
    가게주인 (빌지를 주며) 이십사만 육천원
    이장 뭐 이리 많이 나왔노? 주제에 한우 처먹고 지랄이노. (카드를 주며) 3개월 할부

    이장, 계산하고 있는데 검은 옷에 모자를 쓴 마른 체구의 남자가 들어온다.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핀다. 브루스다. 나가려는 이장과 어깨를 부딪친다. 이장, 남자를 못마땅한 듯 훑어본다. 검은 옷이 군데군데 해져 있고 지저분하다. 이장, 그가 브루스임을 알아채지 못한다. 브루스 또한 이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노려본다.

    이장 (머리를 치며들며) 거지새끼가 눈깔 부릅뜨고 노려보는 어쩔낀데? 요새 것들은 개나 소나
    버르장머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제.

    브루스, 화를 참으며 구석진 곳에 가서 앉아 주변을 살피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한다.
    이장, 가게 문을 닫고 나서자 울리는 전화벨, 전화를 받는다.
    브루스 (입을 가리고 낮은 목소리로) 브루스입니다. 의뢰건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장 아는데 왜 전화질이고? 니 알아서 해결하고 일 끝날 때까지 나한테 당분간 연락하지 마
    라. 연락은 내가 한다 알겄나? 그리고 오늘 사용한 비용은 일 시작 전이니 잔금에서 뺄테
    니까 알고 있어라.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뚝 끊긴 전화를 보며 어리둥절해하는 브루스.

    S#20. 할머니 집 마당 / 늦은 밤
    평상 밑에서 자는 똥깨. 카메라 하늘을 올려다보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굵은 빗줄기가 하나, 둘, 세숫대야 안으로 떨어진다. 황토벽으로 빗물이 붉은 피처럼 흘러 내린다.

    S#21. 폐가 / 늦은 밤
    어두운 방안, 깨진 유리 조각, 쓰레기, 부서진 가구에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흉물스러운 모양을 드러낸다. 그 안에 멈춘 발걸음, 가방을 털석 내려놓는다. 순간 번개가 번뜩이며 얼굴이 드러난다. 이춘삼이다. 젖은 옷과 얼굴,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섬뜩하다.

    S#22. 길가/ 같은시각
    적막한 시골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억수같이 비가 내린다. 곽반장과, 이형사, 비를 맞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파출소 간판이 보인다.

    S#23. 파출소 일층 / 늦은 밤
    문을 열고 흠뻑 젖은 곽반장과 이형사가 들어온다.

    이형사 저기 실례 좀 하겠습니다.

    책상 위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의자가 반쯤 돌아가 있다.

    곽반장 (헛기침을 하며) 아무도 안 계십니다.

    그때 의자 밖으로 팔 하나 힘없이 툭 떨어지고, 주먹 진 손안에 핏물 같은 게 뚝뚝 떨어진다. 곽반장과, 이형사 놀라며 의자를 조심스레 돌린다. 박순경, 와이셔츠가 붉게 얼룩져 있다.

    이형사 (떨리는 눈으로) 반장님....
    곽반장 한 발 늦은 건가. 

    드르렁, 코 고는 소리,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일어난 박순경, 눈을 깜박이며 두 사람을 바라본다.
    박순경 옘병할,,,또 잠들었네. 근데 누구신데 어데서 그렇게 홀딱 젖었디야? (옷에 손을 닦으며
    민망한 듯) 복분자 좀 드릴까? 이거 먹으면 요강 깨지는디.

    이형사, 옷 안쪽의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려 하자, 곽반장, 제지하며 말을 돌린다.

    곽반장 저, 잠시 이곳에 묵고 싶은데 어디 없습니까?
    박순경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두 사람의 행색을 살피다 갑자기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아이고
    이거 제가 못알아 봤습니다.

    이형사, 곽반장 어리둥절.

    박순경 서울에서 오셨습니까. 이 동네 개발한다 어쩐다 하드만 떠도는 소문이 아니였네 (손님들
    을 소파로 안내하며) 공사는 언제쯤 들어가는 겁미까? 골프장은 면적이 얼마나 됩미까?
    저쪽은 리조트 하나 짓는 다는디...

    곽반장, 이형사 묵묵부답,

    박순경 (아니꼽다는 듯) 내가 뭐 돈 몇 푼 챙길라고 이러나? 공사 시작하게 되면 땅도 파고 길도
    어지러워지고 차도 막 지나다닐 텐데 그걸 알아야 내가 교통 정리도 하고 법적으로다
    사람들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할 거 아닙니까. (슬쩍) 근데... 유흥가 아니 먹자 골목
    은 어느 쪽으로 생깁니까?

    S#24. 할머니 집 마당 / 늦은 밤
    이춘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문 앞에 서서 질겅질겅 껌을 씹는다. 불 꺼지는 방을 바라보며 캠핑용 칼을 편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안으로 옮긴다. 갑자기 들리는 기척 소리, 벽 쪽으로 몸을 숨긴다. 방문을 열고 누군가 나온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어둠으로 얼굴이 자세히 안 보인다. 멀리서 보면 곱슬머리에 펑퍼짐한 몸빼 바지를 입고 있다. 얼핏 보면 할머니의 뒷모습 같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절뚝거리며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춘삼, 조심스레 그의 뒤를 밟으며 살며시 문을 열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이춘삼,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

    S#25. 할머니 집 마당 / 아침
    수돗가에서 영철이 긴 머리를 정성스레 감고 있다. 그 옆에 지수가 이빨을 닦고 있다.
    할머니, 밥상을 들고나와 평상에 올려놓는다. 냄비에 있는 닭백숙 꺼내 살을 바른다. 한철. 할머니 옆에서 침을 삼키며 바라본다. 평상 밑에서 똥깨가 낑낑대며 목이 빠지게 올려다본다.

    영철 (트리트먼트 통을 흔들며) 아이씨.. 이거 누가 다 썼어? 나 혼자 쓰려고 산건데, 이거 비
    싼건데, 이씨 (지수를 보며) 야 니가 썼어?
    지수 캬악- 퉤! (입를 행군다)
    영철 얼마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탈탈 털어 짜낸다)

    지수,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간다.

    할머니 밥 먹고 가라
    지수 늦었어요.

    미숙, 방문을 열고 비몽사몽 나온다.

    영철 (트리트먼트 통을 집어 들며) 누나가 썼어?

    미숙, 배를 긁적이며 신발을 구겨 신고 화장실로 향한다. 할머니, 한철에게 고기를 먹여 주는데 들리는 미숙의 비명소리.

    할머니 아침 댓바람부터 와 지랄이노?

    미숙 (맨발로 급하게 뛰어나오며) 화,,,, 화,,,, 장실....

    S#26. 화장실 안 / 아침
    바닥에 흥건한 피, 마수가 엎드린 채 휴지를 꼭 쥐고 있다.

    미숙 (떨리는 목소리로) 주....죽..죽었어?

    할머니,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수의 목에 손을 대본다.

    할머니 영철이 퍼뜩 오라케라.

    미숙, 서둘러 뛰어간다.

    S#27. 수돗가
    곱게 트린트먼트를 머리카락에 바르고 빗질하고 있는 영철.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쓸어 올린다.그때 미숙 달려와 영철의 뒷목을 잡고 끌고 간다. 꼬리처럼 내려오는 영철의 머리.

    영철 에이씨... (울먹이며 끌려간다.)

    S#28. 화장실
    할머니, 마수를 바로 눕히자, 이마에 칼자국이 있다. 미숙, 기겁하며 뒤로 물러선다. 영철, 터져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두 손으로 막고 쭈그려 앉는다.

    S#29. 학교 교실 / 아침
    지수,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는다. 교실을 빙 둘러보면 마수를 찾는다.
    S#30. 화장실 / 같은시간
    할머니, 미숙, 영철, 마수 시신를 가운데 두고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미숙 (짜증스럽게) 어떤 미친놈이 여기서 이런 짓을...
    영철 어떻게 이마 정중앙에 꽂았지?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혹시 킬러 아니야? 좀 사는 놈이
    다 싶어 확 꽂았는데 아니다 싶어 내뺀 거 아니야? (칼 던지는 시늉을 해본다)
    미숙 븅신, 왜 죽이고 도망가냐? 납치해서 몸값 받은 다음 죽여야지.
    할머니 (담담히 시신을 살피며) 간밤에 무슨 소리 못 들었나?
    영철 개 짓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신중하게)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는데요.
    할머니 (영철의 머리를 때리며) 니 뉴스에 얼굴 디비고 싶나?
    영철 (움찔하며) 그런식으로 데뷔하고 싶지 않아요.
    미숙 이 학생 어제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혹시 성적 비관... 뭐... 그런걸로 자살한 거 아
    니야?

    할머니, 매섭게 미숙을 노려본다.

    미숙 (손을 강하게 흔들며) 나....나.. 아니야....
    영철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할머니 창고 가서 쌀 포대 갖고 와라. 이 일은 우리 셋만 아는기다.
    미숙 싫어, 왜 누명 쓰고 벌벌대. 아니잖아.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할머니 그럼 니는 아니라는 증거 있나? 지난번 일 또 반복하고 싶나?

    미숙, 지난번 일이라는 말에 움찔한다.

    할머니 (짜증스럽게) 어떤 놈이 남의 똥숫간에서 사람을 처 죽이고 도망가노. 잡아다 똥숫간에 칵
    대갈박을 처박아야 다신 이런 짓 못하지.
    영철 (얼굴을 살피며) 이 학생은 우리 집에 와서 밥만 먹고 가네.
    할머니 이러고 있지 말고 우선 이 아좀 옮기자. 들어봐라.

    S#31. 마당 / 같은 시간
    한철, 혼자 평상에 앉아 닭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맛있게 먹고 있다. 똥개도 덩달아 닭고기를 먹으며 호강한다. 그 뒤로 할머니, 영철, 미숙이 커다란 쌀 포대를 질질 끌고 지나간다.

    S#32. 창고 / 아침
    쌀자루를 바닥에 내려놓는 가족들,

    할머니 당분간 아들은 이곳에 몬오게 해라.
    영철 이 학생은 어떻게 할 거예요? 바로 묻어 버릴까요? 태워버릴까요? 아니면 창고에 계속
    숨겨놓을까요?
    할머니 (영철의 머리를 때리며) 니는 뭐그리 잔인한 말만 골라서 하노? 니 그래 사람 함부로 다
    루면 영혼이 저승도 못 가고 지 몸뚱이 찾으러 구천만 떠돌다 들러붙는 거 모르나?
    영철 (잔뜩 겁먹은 채) 그...그럼.. 어떻게 해요..
    할머니 (담담하게) 잘 가라고 섭섭지 않게 천도제나 지내 줘야제..
    미숙 우리 셋이?
    할머니 (한심한 듯) 그럼 동네 사람들 다 불러서 굿이나하까?

    S#33. 파출소 일층 / 낮
    바둑을 두고 있는 이형사와 박순경

    이형사 (넌지시) 이 동네 주민이 얼마나 되나요?
    박순경 (손가락을 세며) 이 근처에 전파상 수철이네, 구멍가게 정할매, 소 키우는 마수네. 한철
    할머니, 옥수수밭 김할매, 이장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있습니다.
    이형사 그게 전부입니까?
    박순경 거기만 제 관할구역인데요?
    이형사 혹시...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은 없습니까?
    박순경 글쎄요... 전파상 수철네가 서울서 다 말아먹고 올라왔다는 소문도 있고 이장네 식구들이
    서울에 아파트가 있어서 왔다 갔다 한다는 소문도 있고... 근데 그걸 왜 물어봅니까?
    이형사 그냥 동네가 조용하니 살기 좋은 것 같아서 물어봤습니다.
    박순경 (흐뭇한 듯)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이만한 동네 찾기 힘들죠. 사람들 인심 좋지, 싸움한번
    안나지, 농사 잘되지, 물 맑지, 공기 좋지, 가끔 절도가 나긴 하지만,,,
    이형사 절도요?
    박순경 (바둑을 놓으며) 아 가끔 개념 없는 인간들이 수박이랑 옥수수 서리를 해서 가끔 출동하
    곤 합니다. 요즘 세상 무섭다니까요. 근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소실적에 서리 좀 하셨
    나? (음흉한 눈치) 나한테만 살짝 얘기해도 되는디,,

    이형사, 헛기침 하며 바둑을 놓는다.

    박순경 거참, 서울 사람 깍쟁이가 맞는가 보네.

    S#34. 옥수수 밭/ 같은 시각
    곽반장, 옥수수밭에 들어가 옥수수를 몰래 딴다. 주변을 살피며 옷 속에 주섬주섬 넣는다. 배가 옥수수로 채워져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그때 옆에서 들리는 부스럭 소리. 곽반장, 긴장하며 배를 움켜쥔다. 눈치를 살피며 옥수수 한 개를 더 꺾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 부딪힌다. 서로 등을 마주대로 서 있는 곽반장과, 이춘삼. 이춘삼의 배도 불룩하게 나와 있다. 그때 어디선가 빗자루를 들고 뛰어오는 아줌마.

    아줌마 이놈들, 돈 내고 처먹지 어디서 도둑질이노? 한번 더 기어 들어오면 니들 옥수수 다 나갈
    줄 알아라 (악을쓰며) 옘병할 놈들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이춘삼, 곽반장

    S#35. 폐가/ 낮
    곽반장과 이춘삼, 옷 안에 옥수수를 한가득 안고 들어온다.

    곽반장 (멋적어 하며) 여기 사십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지저분한 이불과 큰 가방이 바닥에 놓여 있다. 이춘삼,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 들어있던 것들을 꺼낸다. 망치, 전기톱, 도끼, 식칼, 청테이프, 쇠파이프, 삽, 장갑 등이 나온다.

    곽반장 건설업에 종사하시나 봅니다.

    이춘삼, 가방에서 휴대용 버너와 냄비를 꺼낸다. 멀뚱이 바라보는 곽반장에게 냄비를 내민다.

    이춘삼 물.

    S#36. 할머니 집 수돗가 / 같은 시각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 물장난을 치는 한철.

    할머니 (한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이놈 새끼, 니가 물 값 내나? 그만 못하나?

    할머니, 양동이 한가득 물을 채워 들고 간다.

    S#37. 화장실
    미숙이 볼일을 보고 있다.

    할머니E 물 받아 놨으니까 구석구석 닦아라.
    미숙 (휴지를 뜯으며 짜증) 맨날 나만 시켜. 이 새끼는 일할 때마다 어딜 기어나가는 거야.

    S#38. 길가 / 같은 시각
    영철, 어슬렁 어슬렁 주변을 둘러본다. 폐가를 힐끔 보니 연기가 피어오른다.

    영철 어? 저기 아무도 안 사는데? (폐가 안으로 들어간다.)

    S#39. 폐가
    옥수수를 먹고 있던 곽반장과, 이춘삼 둘 다, 영철을 경계하며 바라본다.

    영철 못 보던 주민이네, 여기 이사 오셨어요? 귀농하셨나? 유행이 맞긴 맞나 보네, 귀농민들을
    다 보고....
    디졸브
    시간 경과되고 나란히 앉아 옥수수를 먹고 있는 이춘삼, 곽반장, 영철.

    영철 역시 훔쳐먹는 게 더 맛나다니까요. 형님들 다음엔 제가 감자 쏠게요. 이장 아저씨네 감
    자밭 있거든요. 크크

    영철, 옥수수를 먹다 말고 가방에 올려진 삽을 발견한다.

    영철 어 삽이네?

    움찔하는 이춘삼, 순간 둘 사이 정적이 흐른다.

    영철 형님 저 삽 좀 빌려주시면 안 돼요? 묻을 게 좀 있는데.

    S#40. 길가 / 오후
    어깨에 삽을 걸치고 영철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온다. 맞은편에서 오는 지수.

    지수 뭐야?
    영철 (당황하며) 할머니가 빌려 오라고 해서...
    지수 근데 마수는 아침 일찍 나갔어?
    영철 (당황하며) 모... 모르겠는데
    지수 이 새끼, 학교도 안 오고 또 어디로 샌거야?

    S#41. 산길 / 초저녁
    잡목이 우거진 풀숲. 할머니 삽을 들고, 영철과 미숙, 쌀 포대를 들고 힘겹게 오른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다.

    S#42. 산속 / 저녁
    해가 진 산속, 으슥한 곳을 찾아 쌀 포대를 내려놓으며 주위를 살핀다. 할머니의 눈빛이 매섭다.

    할머니 (영철에게 삽을 건네며) 파라

    영철, 삽질을 하는데 자세가 영 어색하고 더디다.

    할머니 니는 대학까지 나온 놈이 삽질 하나 제대로 몬하나?
    영철 (땅을 파며) 대학만 나오면 뭐든지 다 잘할거란 편견을 버리세요.
    할머니 비싼 등록금 받아처먹으면서 삽질은 왜 안가르키노?
    미숙 엄마, 요새 대학생들은 머리가 커서 삽질 같은 거 안 해. 비트코인이나 주식하지.
    할머니 니는 대학도 안 나온 년이 우째 그리 잘 아노?
    미숙 대학 다닌 놈이랑 살아봤잖아.
    할머니 (어이없다) 아이구야. 자알~했다, 그래서 속 좀 풀었나?
    미숙 (씩씩대며) 나 아직도 쌓인 거 많아.

    미숙, 영철의 삽질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진다. 영철의 삽을 빼앗아 들고 무서운 속도로 탕을 판다.

    영철 (감탄하며) 누나 포크레인같아....

    디졸브, 깊은 구덩이에 쌀 포대를 던져 넣는다.

    S#43. 길가 / 밤
    식구들이 지친 상태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멀리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현숙), 치맛자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S#44. 지수의 방 / 밤
    지수, 바닥에 누워 있고, 한철은 책상에 앉아 누나의 공책에 낙서한다.

    지수 다들 어디갔어?

    한철, 못 들은 척 낙서만 한다.

    지수 (한숨쉬며) 코노도 가고 싶고, 핫플도 가고 싶고, 쇼핑도 하고 싶고, 한철아 넌 여기가 좋
    아? 넌 여기가 딱인가보다 적응도 잘하고...(한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넌 답답하지도
    않아? 서울에 장난감도 많고, 놀이공원도 있고, 친구도... 아! 너 친구 없지 (한숨 쉬며)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 한철아 누나가 가르쳐준 말 있잖아. 한 번만 해봐.

    한철, 공책에 무언가 써서 지수에게 보여준다.

    인서트
    공책을 보면 삐뚤삐뚤한 글씨로 크게 ‘조까’라고 써있다.

    지수 (뿌듯해하며) 잘 쓰네..

    대문 열리는 소리, 지수가 방문을 벌컥 연다. 할머니, 영철, 미숙 다들 땀과 흙 범벅에 지친 기색으로 들어온다. 할머니, 평상에 털석 주저앉고, 영철은 벌러덩 드러눕는다. 미숙은 수돗가로 가서 세수한다.

    지수 밥도 안 주고 어디 갔다와? (짜증내며) 밥줘 밥!
    할머니 알았다. 좀만 기다려라.
    지수, 짜증스레 방문을 쾅 닫는다.

    할머니 소금 한 바가지 퍼온다.

    미숙이 주방으로 들어가 소금 한 바가지 퍼온다.

    S#45. 대문 밖/ 밤
    곽반장이 대문 밖에서 쭈뼛쭈뼛 안을 지켜본다. 안쪽 주머니에서 미숙의 사진을 꺼낸다(S#16사진)

    곽반장 (나즈막이) 이 집이 맞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사진 속 여인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 소금 한 바가지를 문밖으로 뿌린다.
    서 있던 곽반장, 온몸에 소금을 뒤집어쓴다.

    할머니 아이구 깜짝이야, 누꼬? 누군데 오밤중에 괭이새끼마냥 남의 집 앞에 서서 뭐하는데?

    곽반장, 돌아서 사진을 급히 주머니에 넣는다. 할머니, 순간 눈빛 매서워지며 곽반장을 쏘아본다.
    곽반장, 기에 눌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할머니 (낮은 목소리로) 여긴 니 올 곳이 아이다. 그만 돌아가라. 아직 때가 아이다. 좀 더 시간
    이 필요하다.

    곽반장, 경찰 신분이 들킨 것 같아 흠짓 놀란다.

    할머니 난 살면서 아무것도 손댄 적 없다. 비록 빙신같이 생겨먹었어도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남한테 손 한번 안 벌리고 살았다. 그런 내가 제일 화 나는 게 뭔지 아나? 주
    제도 모르고 나대는 놈들이다. 그러니 퍼뜩 돌아가라. 이 문을 넘는 순간 니는 그냥 못
    돌아간다. 니 손에 피 묻히면 내 손에도 피 묻는다. 알겄나?

    곽반장, 당황하며 돌아서 간다.

    할머니 (소금을 탈탈 털어내며) 썩을놈의 개장수 새끼...

    S#46. 할머니집 마당 / 늦은저녁
    무거운 분위기로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들. 적막한 분위기를 깨며 울리는 집 전화. 미숙, 지수에게 전화 받으라는 눈치를 준다. 지수, 밥 먹다 말고 짜증스럽게 일어나 마루에 놓인 전화를 받는다.

    지수 여보세요? 네, 할머니, 할머니 전화 받으세요.
    할머니 누꼬?
    지수 몰라요.
    할머니 누가 밥 먹는데 처 전화질이고? 나중에 다시 하라고 해라.
    지수 할머니가 밥 먹는데 누가 처 전화질이냐고 나중에 다시 하래요.

    지수, 전화를 툭 끊고 돌아와 밥을 먹는다. 할머니, 영철에게 김치를 쭉 찢어 밥 위에 올려준다.

    할머니 (무뚝뚝하게) 간만에 고생 좀 했다.
    미숙 아들만 챙기는 거야? 나도 일해서 팔다리 떨리고 어깨쭉찌 빠질라고 해
    할머니 (노려보며) 그럼 이 늙은 에미가 하까?
    미숙 (밥 숟가락을 던지며) 그놈의 아들, 아들, 엄마는 이 새끼한테 여지껏 빤스 한 장 받아봤
    어? 하긴 돈을 벌어봤어야 쓸 줄도 알지. 대학까지 쳐 보냈더니 방구석에서 자빠져 자기
    나 하고 거지새끼마냥 머리털만 길러서 비듬이나 털구 앉았는데 뭐가 이쁘다고 상전이야,
    엄마는 본전도 못 찾고 있으면서, 지마누라 생기면 나몰라라 하는 게 아들이야. 결국
    뒤 닦아주고 치우는 건 엄마라고
    영철 (장난하며) 그럼 누나도 불알같고 태어나지... 크크
    미숙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내가 대학 보내달라고 사정할 땐 돈 없다고 하더니...
    할머니 소 판 돈 훔쳐서 야반도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대학 타령이노? 그 돈으로 대학가지
    뭐했는데?
    미숙 수술했어. 대학도 못 가는데 얼굴이나 반반해야 어딜가서 먹고 살지
    할머니 (노려보며 밥상을 친다) 썩을년 빨랑 숟가락 안드나?
    미숙 (훌쩍거리며 숟가락을 집어든다) 그럼 나 가게나 하나 차려줘
    할머니 (무시하며) 제사상 되기 싫으면 조용히 밥이나 묵어라.

    히죽히죽 웃는 영철, 미숙, 억울하다는 듯이 밥을 먹는다. 지수와 한철, 신경 쓰지 않고 밥 먹는다.

    S#47. 할머니 집 밖 / 같은 시각
    브루스, 몰래 집안을 엿보며 씩 웃는다. 그러다 흠짓 놀라 옆을 보면 여자(현숙)가 서 있다.
    여자,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브루스를 바라보다 사라진다. 브루스, 놀라 눈을 비빈다.

    S#48. 파출소 이층 숙직실 / 같은 시각
    어두운 방안, 이불 깔고 누워있는 이형사와 곽반장.

    이형사 반장님, 이제 슬슬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곽반장 기다려.
    이형사 그럼 잠복근무라도..
    곽반장 여긴 너무 한산해서 잘못하다 들킬 수 있어.
    이형사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감탄하며) 아 ~ 오늘 안 보이셨던 이유가 다 동네 정황을 살피
    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전 언제쯤 반장님의 치밀함을 배울 수 있을까요?

    곽반장, 찔리는 게 있는지 돌아눕는다.

    S#49. 할머니 집 마당/ 늦은 밤
    브루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다. 불 꺼진 마당, 적막이 흐른다. 마당에 잠들어 있던 똥개, 기척 소리에 으르렁. 브루스 놀라서 뒷걸음친다. 똥개, 브루스에게 달려들어 바짓자락을 물고 흔든다.

    할머니E 영철이냐?

    할머니 방 불이 켜진다. 브루스, 똥개를 내던지고 도망간다. 똥개, 바닥에 떨어지며 낑낑댄다.

    할머니 (방문을 열며) 이 개새끼, 낮엔 처 자빠져 자고 밤에 논다고 지랄이노? (문을 쾅 닫는다.)

    S#50. 파출소 일층/ 같은 시각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미숙, 한 손엔 보온병이 들려있다.

    박순경 미숙~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는가?
    미숙 할망구가 안 자잖아...
    박순경 (웃으며) 어머니한테도 커피 파나? (미숙의 볼을 꼬집는다)
    미숙 여기는 파리새끼 하나 안 보이네. 뭐, 이런 촌구석에 일이나 있겠어?
    박순경 쉿!, 조용히 해라.
    미숙 왜에?
    박순경 서울에서 사람 와 있다.
    미숙 서울사람? 왜? 사기 쳐서 도망 왔나?
    박순경 아 글쎄. 그게 아이고 건설사에서 왔다카는데 여기가 곧 개발된다 안 하나
    미숙 개발? 이 촌구석에 개발할 곳이 어딨어.
    박순경 거참, 미숙이는 커피만 잘 타제 세상 돌아가는 일엔 와그리 까막눈이고?
    미숙 지금 나 못 배운년이라고 무시하는거야?
    박순경 (당황하며) 아니... 그게 아이고...
    미숙 그게 아니면 뭐야? 남편 없는 년이라고 무시하는거야?
    박순경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왜 서방이 없노..
    미숙 (새침하게) 치, 무슨 개발하는데?
    박순경 (낮은 목소리로) 저 산 깎아서 골프장을 짓는다 안하나. 그러면 서울 사람들 다 여기와서
    골프치고 놀다가는 거제.
    미숙 (들떠서) 그럼 여기서 커피 팔면 되겠다.
    박순경 커피보다도 미숙이네 집이랑 땅만 팔아도 몇십억은 넘게 받을기다.
    미숙 (동공이 커지며) 며....몇십억????
    박순경 (미숙의 입을 막으며) 목소리 좀 낮춰라. 서울 사람들이 들으면 어쩔라고 저 사람들 약아
    빠져서 너무 싸게 말하면 얼씨구나 하고 그 값만 쳐준다. (쉿!)

    S#51. 파출소 이층 숙식실 / 같은 시각
    코를 드르릉 골며 곽반장과, 이형사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S#52. 지수 방/ 같은 시각
    불꺼진 방,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지수, 카톡을 보낸다.

    인서트
    이 새끼 너 어디야? 내 카톡 씹기로 작정했냐? 연락 안 하면 죽는다.
    전송되는 카톡
    지수,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닫는다.

    S#53. 영철 방 / 같은 시간.
    영철이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그 옆에 누워 있는 한철, 영철의 얼굴 위로 여자의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오며 점점 얼굴에 닿는다. 영철, 간지러운 듯 얼굴을 손으로 긁는다. 점점 더 가까이 내려와 마주 보는 얼굴. 한철, 그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S#54. 폐가 / 같은 시각
    이리저리 뒤엉켜 지저분한 폐가, 칼 가는 소리. 점점 소리를 따라 카메라 이동하면 이춘삼이 뒤돌아 앉아 도끼를 갈고 있다. 날을 들어보니 달빛에 번뜩인다. 그때 들어오는 쥐 한 마리, 잽싸게 뒤돌아 도끼를 던진다. 단박에 반토막 나는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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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55. 할머니 집 마당 / 아침
    평상에 앉아 있는 영철, 거울을 보며 긴 머리를 단정히 빗고 묶는다. 한철, 영철이 신기한지 옆에 앉아 바라본다. 그때 미숙이 푸짐하게 차린 밥상을 내려놓는다.

    미숙 (애교섞인 목소리로) 와서들 밥 먹어.
    영철 (놀라며) 누나가 웬일이야? 밥을 다 차리고, 오늘 뭔 날이야?

    마당에서 고추를 다듬던 할머니, 옷을 털며 와서 앉는다. 영철, 조기 한 마리를 집어 든다. 미숙, 영철의 조기를 잽싸게 빼앗아 할머니 밥 위에 올려놓는다. 할머니, 조기를 집어 한철의 밥 위에 올려놓는다. 미숙, 할머니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지만 애써 웃는다.

    미숙 오늘 날씨가 참 좋네. 산도 좋고, 공기도 좋고. 거리도 한산하고... 조용하고...
    영철 시골이 뭐 다 그렇지. 사람 많고 시끄러우면 그건 진정한 시골이 아니지. 가끔 개짓는 소
    리도 나고 할매들 욕하는 소리도 좀 나고 그래야 진정한 시골이지.
    미숙 (멋쩍게 웃으며) 여기 살면 살수록 참 좋은 것 같네.
    영철 못 살겠다며? 구멍가게도 한참 걸어가고 미용실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뭐 없는 거 천지
    라며?
    미숙 그래도 곧 그런 게 생기면 살만하지 않겠어? (할머니 눈치를 본다.)

    방문을 열고 교복 차림의 지수가 평상에 가방을 던지며 소리친다.

    지수 뭐야? 여기서 계속 살겠다는 거야? 이 촌구석에서?
    지수 (정색하며) 이년이 어디다 가방을 던지고 (멋쩍게 웃으며) 지랄이지? 하하... 버르장머리
    없이...
    할머니 갈 데 없으면 여기 살아야제
    지수 (소리치며) 촌구석 싫어.
    영철 (놀리며) 지수는~ 촌구석 사는~ 촌년이래요.~ 촌년이래요~~ 크크크
    미숙 기집애, 여기가 얼마나 좋아, 요새 애들 체험 학습이다 뭐다 비싼 돈 내고 시골 내려와서
    구경하는데 넌 천지가 다 돈인 줄 알아 이것아 (할머니 눈치를 보며) 근데 이 집은 시세
    가 얼마나 하려나...

    할머니, 모른 척 밥을 먹는다.

    영철 이 집값보다 (숟가락으로 평상 밑을 가리키며) 제가 더 비쌀껄

    가리키는 곳 보면 똥개, 허겁지겁 밥 먹고 있다.

    할머니 쓸데없는 생각 마라

    지수,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가방을 들고 나간다.

    영철 야! 밥 안 먹고 가냐? (지수의 밥을 국에 말아 넣으며) 요새 애들 쌀 귀한 걸 모르네.
    미숙 (투덜거리며) 매일 밥만 먹고 사는데 쌀 귀한 줄 알기나 하겠어? 떡도 만들고, 죽도 써먹
    고 튀밥도 만들어 먹어야 쌀 불리는 법도 알고 귀한 줄 알지. (못마땅하게 할머니를 보
    며) 촌구석에서 밥만 먹고 산 사람이 뭘 알겠어?

    할머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미숙을 노려본다.

    미숙 (순간 주눅들며) 뭐야.. 저기.. 이 집도 그래. 가만히 갖고 있는다고 해서 집 평수가 늘어
    나길 해, 새집이 되길 해. 집도 굴려야 재산이 불어나고 뽀대나는거지. 무작정 움켜쥐고
    있는다고 누가 알아줘? 더 오래되고 낡으면 개집이나 되지
    할머니 개집? 그럼 니는 개새끼가? 어데 밥 잘 처먹고 개소리 짓거리노? 죽이 되든 떡이 되든
    밥보나 좋은 건 없다. 등가죽 배에 달라붙기 싫으면 얌전히 밥이나 처 먹어라.

    미숙, 할머니기에 눌려 쀼루퉁해서는 밥 먹기 시작한다.

    S#56. 학교 앞 / 아침
    지수, 돌을 발로 찬다. 쓸쓸히 혼자 걷는 등굣길. 마수가 그립다. 문득 학교에 마수가 와 있을 거란 생각에 급히 학교로 뛰어간다.

    S#57. 파출소 일층 / 같은시각
    박순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해 흥얼거린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박순경 여보세요? 아 마수 아부지, 오랜만입니더.

    수건을 목에 두르고 양치하며 이층에서 내려오는 이형사

    박순경 마수가 계속 집에 안 들어온다고?

    이형사, 급히 달려가 수화기에 귀를 댄다. 박순경, 이형사가 귀찮은지 몸을 돌리지만 눈치 없이 달라붙어 엿듣는다.

    박순경 (이형사를 보며) 어허 거참..

    이형사, 눈치 보며 뒤로 물러나 양치한다. 하지만 온통 전화 내용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박순경 그 놈 자식 또 읍내가서 놀구 있는거 아닙니까? 지난번도 피씨방에서 밤새 게임하고 있
    는 거 모가지 끌고 왔다 안합니까...가보라고? (정색하며) 그건 순경이 할 짓이 아니지,
    바쁜데 농사나 거들면 모를까. 그놈도 돈 떨어지면 다 알아서 기어들어오겄지. 걱정하지
    마이소. (귀찮은 듯) 아, 알겠습니다, 가볼께요. 대신 담에 마수 아버지가 커피 한잔 사는
    겁니다. (귀찮은 듯 전화를 끊는다.)

    이형사, 입에 물고 있는 치약을 삼키며 동그란 눈으로 박순경을 바라본다.

    이형사 실종 신고입니까?
    박순경 (정색하며) 실종은 무슨... 이 동네 거기가 거긴데 무신 실종인겨?
    이형사 학생이 없어진 것 같은데..
    박순경 없어지긴, 밤낮 가출을 일삼는 불량 청소년이제. 여기 학상들 다 착하고 이쁜데 그놈만
    이 맑고 깨끗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말썽 피우는 놈입니더. 내 이놈 자식 잡히기만 하면
    머리털 싹다 밀어 버리든지해야지. 어린 놈이 싸가지 없게 툭하면 어른을 오라가라 하노.

    박순경, 모자를 쓰고 나갈 채비를 한다. 그때, 우당탕탕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소리. 돌아보면 곽반장, 팬티차림에 코피를 흘리며 계단에 쓰러져 있다.

    이형사 (다급히 다가가며) 괜찮으십니까 반장님?
    박순경 반장?

    곽반장, 순간 긴장한다.

    박순경 이 사람이 작업반장 입니까? 에이 진작에 알려주지. 뭐 숨길게 있다고 말도 안하고 참말
    로 서울 사람 깍쟁이네.

    곽반장, 일어나려 하지만 다리가 아픈지 이내 털썩 주저앉는다.

    박순경 거참 조심 좀 하지.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 무신 반장을 해먹는다고 쯧, 쯧,

    S#58. 파출소 밖 / 오전
    오토바이 탄 박순경과 그 뒤에 탄 곽반장.

    박순경 약간 삐끗한 것 같으니께 걱정하지 마소.
    곽반장 (이형사를 보며 비장하게) 부탁하네.
    박순경 금방 갔다올건데 무슨 폼을 그리 잡는데, 이따 전화나 좀 받아줘요.

    멀어지는 박순경과 곽반장

    S#59. 파출소 건물 뒤 / 같은 시각
    브루스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모자로 가린 얼굴 안으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S#60. 구멍가게 / 낮
    구멍가게 할머니, 부채질하며 티비에 집중하고 있다. 연쇄살인범 이춘삼에 대한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이춘삼, 아닌 척 귀를 기울이며 껌과 부탄가스, 라면, 통조림을 사고 있다.

    가게 할머니 아이구, 무서버라,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사람을 저래 막 죽일 수 있노? 안 그런가
    총각?

    이춘삼, 긴장한 듯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려놓는다.

    가게 할머니 칼로 막 쑤셔버렸다제? 아이구야,,, 뭘 처먹고 사는 놈이길래 저래 잔인한 짓을
    하구 사노? 쯧쯧, 저런 자식 낳은 부모는 얼매나 속이 터질고.. 그래도 아 났다고
    미역국은 먹었을거 아이가.

    이춘삼, 지그시 어금니를 깨문다. 할머니, 티비를 보며 비닐봉지에 물건을 주섬주섬 넣는다.
    이춘삼, 계산대 위에 만원을 올려놓는다. 할머니, 돈을 받아 들고 티비에 다시 집중한다.
    이춘삼, 잔돈을 기다리며 서 있다. 그러나 할머니, 신경쓰지 않고 티비만 본다.
    이춘삼 잔돈.
    가게 할머니 만원 맞는데? 봉투갑 백원도 포함 안하나? 젊은 사람이 계산하나 똑바로 몬하나?

    이춘삼, 가게 할머니를 쏘아본다.

    가게 할머니 (이춘삼 머리를 쥐어박으며) 젊은 놈이 어디서 눈을 부랴리노? 어른한테..

    이춘삼, 살인 충동을 느끼며 할머니를 쏘아본다.
    할머니 (비꼬며) 아이구야. 무서버라.... 돈 백원 갖고 사람 죽이겠네.

    이춘삼 화를 참으며 물건이 담긴 봉지를 들고 나간다.

    S#61. 학교 교실 / 같은시각
    방과 후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빈 교실. 지수가 홀로 앉아 창밖을 본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한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는 휴대폰.

    지수 이 새끼 보지도 않네.

    지수, 일어나 가방을 들자 열린 지퍼 사이로 한철의 공책이 떨어진다.

    인서트.
    공책을 넘기자 보이는 사람 그림. 꼬불거리는 머리에 서 있는 듯한 모습, 이마 중앙에 찢어진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얼핏 마수의 모습과 비슷하다.

    지수 : 에이씨, 지꺼 내 가방에 넣지 말라니까. (한철의 공책을 가방에 넣고 교실을 나간다)

    S#62. 길가 / 낮
    자전거를 타고 미숙이 온다. 그 앞으로 트렌치코트를 입고 생각에 잠겨 걸어가는 이형사, 바닥을 보며 걷다 문득 고개를 든다. 슬로우로 모션으로 자전거를 탄 미숙이 앞으로 달려오고 있다. 주변에 온통 후광으로 가득 차 미숙이 천사처럼 보인다. 이형사, 미숙에게 반해 입에 문 풀잎을 떨어뜨린다. 미숙,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미소 짓는다. 이형사, 그런 미숙을 멍하니 바라보다 있는 힘껏 쫓아간다.

    S#63. 파출소 일층/ 낮
    미숙이 의자에 앉아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는 이형사.

    이형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긴.. 헉...헉...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미숙 어? 못 보던 오빠네... 아~ 서울에서 온 오빠구나..어머 오빠 너무 땀 흘린다. 커피 한 잔
    줄까? 근데 이 시간에 박순경은 어딜간거야?
    이형사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습니다.

    미숙, 커피를 따라 이형사에게 건네고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받아 한 번에 들이키는 이형사.

    미숙 어머 오빠 커피 좋아하나봐.
    이형사 (부끄러워 하며) 아... 예...
    미숙 오빠, 내가 쿠폰 좀 줄까. 백번 시키면 한잔 공짠데...
    이형사 네! 주십시오.

    미숙, 책상에 있는 A4용지를 꺼내 칸을 그리고 이형사에게 건낸다. 이형사, 종이를 받아 들어 본다.

    인서트
    ‘몰랑드레’ 라는 제목과 함께 백 개의 칸이 그려져 있고 맨 아래 ‘김지혜’라는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다.

    이형사 김지혜씨,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근데 저기... 쿠폰은 마신 횟수로 찍어주는
    겁니까?
    미숙 (신이 나서) 마신 횟수만큼 ~ 한 번에 백 잔 다 마셔도 돼~
    이형사 최대한 많이 주십시오.
    미숙 (슬쩍 이형사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며) 오빠는 여기 어쩐일로 왔어?
    이형사 볼일이 좀 있어서 왔습니다.
    미숙 무슨 볼일? (넌지시) 뭐 찾으러 왔어?
    이형사 말씀 드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긴장하며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스스로 따라 마신다.)

    S#64. 할머니 집 밖 / 같은 시간
    이춘삼, 잘근잘근 껌을 씹으며 할머니를 훔쳐보고 있다. 할머니, 아무것도 모르고 마당에 고추를 닦아 널어놓고 있다. 이춘삼, 칼을 낮게 잡고 조심스레 대문을 연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에게 뛰어오는 한철. 이춘삼, 급히 칼을 주머니에 넣다 자신의 다리를 찌른다. 힘겹게 허벅지 박힌 칼을 뽑는다. 칼끝에 피가 뚝뚝 떨어진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허벅지를 부여잡는다. 바지에 붉게 물드는 피, 절뚝대며 집으로 돌아간다.

    S#65. 할머니 집 마당 / 같은 시간
    한철, 할머니를 따라 고추를 만지다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할머니 (한철의 손을 때리며) 매워서 못 먹는다. 나중에 바짝 마르면 그때 맛있는 거 해서 묵자.

    한철, 씨익 웃으며 고추를 할머니에게 집어 던진다.

    할머니 (고추를 주워다 놓으며) 한철아, 니 보는거 듣는거 말 못 하게 하려고 천지신명께서 입
    의 문을 막아 버리셨나 보다. 우리 한철이 나중에 많이 커서 눈도 깜깜해지고 입도 무
    거워지면 그때나 열어 주실란가... 우리 한철이 이 할매같이 되면 안되는디... 안되는
    디..... 불쌍한 내 새끼....(한철을 꼬옥 안아준다.)

    S#66. 길가 / 낮
    절뚝거리며 이춘삼이 걸어온다.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장, 맞은편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느릿느릿 걸어온다. 순간 이춘삼과 마주치는 눈빛, 이장, 부채를 펼쳐 들며 아는 척하지 말라는 듯 눈치를 보낸다. 이춘삼, 모른 척 이장 곁을 지나쳐 간다. 이장, 슬쩍 뒤를 돌아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춘삼을 바라본다.

    S#67. 할머니 집 마당 / 오후
    아무도 없는 마당으로 브루스가 날렵하게 담장을 넘어 들어온다. 뒤쪽으로 달려가 허리춤에서 밧줄을 꺼내 지붕 위로 던진다. 그러나 계속 떨어져 내리는 밧줄. 계속해서 던지자 드디어 굴뚝에 밧줄이 걸린다. 안심하며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데 순간 발밑에서 으르렁대는 소리. 내려다보면 똥개가 밧줄 끝을 잡고 흔들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브루스, 잠시 당황하지만, 주머니에서 쥐포를 꺼내 던진다. 똥개, 밧줄을 놓고 쥐포를 먹느라 정신없다. 다시 밧줄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자세를 낮춘다.

    이장E 다들 평안하신가...

    이장이 들어온다. 브루스, 몸을 숙이고 최대한 지붕에 납작 엎드린다.

    할머니 (방문을 열며 나온다) 또 헛소리 할라믄 그만 돌아가라
    이장 이미 끝난 일을 왜 입 아프게 또 이야기 하노?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능
    청스럽게 부채질하며) 시원한 거 있으면 한 잔 주소
    할머니 영철아, 영철아,

    부스스한 모습으로 영철이 방에서 나온다.

    할머니 고만 퍼 자고 물 한 바가지 퍼와라.
    영철 (엉덩이를 긁으며) 오셨어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부엌으로 간다)

    S#68. 할머니 집 부엌 / 같은 시각
    영철, 냉장고 문을 열어 안을 살핀다. 물병을 꺼내 부뚜막에 내려놓고 대접을 찾는다. 그런데 유달리 울퉁불퉁 튀어나온 한쪽 벽이 거슬린다. 노크하듯 벽을 살짝 두드리자 텅 빈 듯한 가벼운 소리.

    영철 다시 덧발라야 하나?

    그때 천장에서 날카로운 쥐의 울음소리와 함께 흙이 우수수 떨어진다.
    영철 (얼굴에 흙을 털어내며) 뭐야.. 퉷퉷, 고양이를 키우던가 해야지. 에이씨, 똥개새끼 쥐도
    못 잡고... (흙이 떨어진 대접에 물을 따라 들고 나간다.)

    S#69. 할머니 집 지붕 위 / 같은 시각
    브루스가 떨어지려는 기와장을 발끝으로 겨우 누르고 있다.

    S#70. 마당
    영철이 대접을 들고 와 이장에게 건넨다. 이장, 시원하게 들이키며 남을 물을 마당에 뿌린다.

    이장 고추 참 좋네...
    할머니 (고추를 펼치며) 좀 주까?
    이장 됐다. (빈정대며) 주인 손이 매워서 그런가 이 집 고추는 이상시럽게 조금만 먹어도 입에
    불이 난다.
    영철 그래요?

    영철, 생각 없이 고추를 한 움큼 입안에 넣는다. 오물오물 씹더니 혼비백산 수돗가로 달려간다.

    이장 (슬쩍 떠보며) 현숙이가 예전부터 안 보이던데...어디 몰래 시집이라도 보냈나? 갑자기
    우리 현숙이가 보고 싶네~

    할머니, 시선 흔들리지만, 감정을 누르고 묵묵히 고추를 닦는다. 수돗가에서 입을 닦는 영철, 순간 표정 바뀌며 긴장한다. 할머니, 엉덩이를 털고 무심하게 일어나며 이장을 쏘아본다.

    할머니 이 집구석 싫다고 지발로 나간 년을 뭐가 이쁘다고 입에 올리노?
    이장 현숙이가 쪼까 이쁘긴 했지. 지어미 닮아서...
    할머니 시끄럽다. 다 마셨으면 이제 그만 가봐라
    이장 (일어나며) 문 활짝 열어 놓드라고, 현숙이 언제 올지 모르니께. 현숙이 오면 이 집에 대
    해서 다시 상의해야 하지 않겄어? 그래도 제 지분이 있을텐데 현숙이 오면 다시 얘기하
    자고...

    이장, 천연덕스럽게 부채질하며 밖으로 나간다. 영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 : (나지막이) 저승까지 가져가라.

    S#71. 파출소 일층 / 저녁
    마지막 삼십 잔을 막 내려놓는 이형사.

    미숙 오빠 여기 골프장 생긴다는거 사실이야?

    이형사, 속이 메스꺼워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미숙 (화색이 돌며) 어머 정말? 언제?

    미숙, 이형사를 유혹하려 슬쩍 허리를 굽히자, 가슴 굴곡이 보인다. 이형사, 동공이 커지며 입을 틀어막다 결국 화장실로 뛰어간다. 미숙, 씁쓸하게 탁자 위에 쿠폰을 집어든다.

    인서트.
    꾹 눌러 찍히는 도장, 반이 도장으로 채워져 있다.

    S#72. 할머니집 마당/ 저녁
    평상에 앉아 밥을 먹는 가족들. 미숙, 뭐가 좋은지 희죽희죽 웃으며 밥을 먹고, 지수,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인다. 할머니 무뚝뚝한 표정으로 밥을 먹는다. 그러나 영철, 예전과 달리 무거운 표정으로 밥그릇만 보고 있다. 한철, 밥 먹다 고개 들어보니 화장실 앞에 마수가 쭈그려 앉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한철은 신경 쓰지 않고 밥을 먹는다.

    할머니 (한철의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며) 꼭꼭 씹어묵어라. 체한다.

    영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미숙 (놀라며) 어머머 제 왜 밥 안먹어? 미친거 아니야?
    할머니 저리 살려니 지도 깝깝한가 보다.

    스카이 라인,
    밥 먹는 가족들, 지붕위로 납작하게 엎드린 브루스, 기와장을 발끝으로 누르고 있다. 다리가 저린지 코끝에 침을 바른다.

    S#73. 길가 / 밤
    오토바이 한 대가 라이트를 켜고 달려온다. 박순경과 곽반장이다. 곽반장, 한쪽 다리에 붕대를 감고 박순경 허리를 움켜잡고 있다.

    박순경 이놈 새끼는 어디 기어들어가 있는겨, 똥빠지게 고생만 시키고, 어이 반장님! 깁쓰까지 해
    서 구만오천원 나왔으니까 까먹지 말고 바로 줘요. 내 기름값은 안받을랑께.

    곽반장, 슬쩍 손에 힘을 뺀다. 저 멀리 터벅터벅 걸어가는 영철이 라이터에 비춰 보인다.

    플래시백,
    풀숲 / 오후
    고등학생 영철, 광기어린 눈으로 현숙의 몸 위에 올라타 옷을 벗긴다. 발버둥 치는 현숙의 발,
    영철, 여자의 몸 깊숙이 자신의 몸을 밀어 넣는다, 그러자 풀을 움켜쥐던 여자의 손에 힘이 빠진다.

    영철,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뜯는다.

    박순경E 어이~ 영철

    영철, 뒤돌아보면 오토바이를 타고 온 박순경이 멈춰선다.

    박순경 어디 가나?
    영철 그냥 담배나 한 갑 사려구요.
    박순경 (멋쩍게 웃으며) 저기...식구들은 다 평안하신가?
    영철 네...
    박순경 미숙이도.... 잘 있나?
    영철 네.
    박순경 으응...그랴...내 나중에 집에 한번 놀러갈게.
    영철 네
    박순경 (수줍게 웃으며 영철을 툭 건드린다) 처남, 크큭... 들어가.

    박순경, 쑥스러운 듯 머리를 만지며 옆으로 지나간다. 영철, 멀어지는 박순경을 벙찐 표정으로 바라본다.

    S#74. 구멍가게 안/ 밤
    모자를 눌러쓴 남자 들어온다. 장갑 낀 손에 도끼가 들려있다. 가게 할머니, 티비에 정신 팔려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남자. 점차 등 뒤로 가려지고 퍽 소리와 함께 주인 할머니의 짧은 외마디 비명. 테이블 아래로 주인의 팔이 툭 늘어지고 피가 뚝뚝 떨어진다. 돌아서 미소 짓는 이춘삼. 껌 한 통을 꺼내 들고 계산대 위에 오백 원을 올려놓고 나간다.

    S#75. 길가/ 밤
    영철, 바닥에 돌을 차며 걸어온다. 구멍가게 불빛이 보인다. 그때 가게 밖으로 누군가 나오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영철, 신경 쓰지 않고 무심히 가게를 향해 걸어간다.

    S#76. 구멍가게 안 / 밤
    영철이 들어온다. 계산대를 보지도 않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깊숙이 선반 구석에 있는 트리트먼트를 들고 계산대 앞으로 간다. 트리트먼트에 써진 영양성분 등을 꼼꼼히 살핀다. 영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대선다.

    영철 (트리트먼트를 보며) 담배도 한 갑 주세요.
    가게 할머니 ............
    영철 이거 탈모방지인가....지난번 거는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지던데...
    가게 할머니 ..........

    영철, 아무 반응이 없자 계산대를 본다. 테이블에 흥건한 피, 도끼에 난자당한 가게 할머니가 쓰러져 있다. 놀라 트리트먼트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자신의 손을 보니 피가 묻어 있고 한쪽 슬리퍼를 들어 올려 보니 이미 피가 묻어 있다. 그때 쓰러진 가게 주인, 영철의 팔을 힘겹게 잡는다.

    가게 할머니 사......살....려...줘....

    영철, 놀라서 팔을 뿌리치다 뒤로 넘어지며 온몸에 피범벅이 된다.

    S#77. 할머니 집 마당/ 밤
    대문을 열고 혼비백산 뛰어 들어오던 영철, 문턱에 걸려 넘어진다. 아무도 없는 마당, 정신없이 달려가 할머니 방문을 벌컥 연다.

    S#78. 할머니 방 / 밤
    바느질하던 할머니, 고개를 들어보면 피범벅이 된 영철이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서 있다.

    영철 어.....엄마....

    S#79. 미숙의 방/ 같은 시각
    미숙,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든다. (S#16 곽반장이 들고 있는 사진)

    지수 (사진 보며) 진짜 용됐다~
    미숙 (사진을 벅벅 찢으며) 이젠 새롭게 살겠어.
    지수 그런다고 새사람 되겠어?
    미숙 이년아, 비싼 돈 들여서 뜯어고쳤으면 지난날 굴욕을 깨끗이 없애는 게 얼굴에 대한 예의
    야.

    지수, 엎드려서 휴대폰 게임을 한다. 끄때 벌컥 열리는 문.

    할머니 (근엄하게) 나와라.
    미숙 (눈을 흘기며) 짜증나.

    S#80. 구멍가게 안 / 밤
    미숙, 할머니, 영철이 계산대 앞에 서서 주인 할머니 시신을 내려다본다.

    미숙 아 짜증나! 어떤 새끼가 자꾸 이래~ 엄마 이건 진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거 연
    쇄살인 아니냐고...

    할머니, 눈을 흘기며 영철을 본다. 피범벅이 된 영철, 아니라며 손사래 친다.

    할머니 우선 잘 모셔라.

    영철과 미숙, 쌀 포대에 시체를 넣고 단단히 묶는다. 할머니, 가게 안을 둘러보며 무언가 떨어진 흔적이 없는지 살핀다. 미숙, 물티슈로 피 묻은 옷을 짜증스럽게 닦는다.

    미숙 (쌀 포대를 문 앞에 끌어다 놓으며) 이 새끼 내가 너 뒤치다꺼리 하려고 시골 촌구석으로
    다시 온 줄 알아? 매일 집구석에서 처 노는 새끼가 뭐 또 심심하다고 사고 치고 지랄이
    야. 여기가 니 나와바리냐? 아주 지 세상이야 지 세상, 서울서 쪽도 못 쓰는 새끼가 시골
    촌구석에서 아주 활보를 하고 다니는구나.
    영철 (답답한 듯 발을 동동구르며) 내가 안 했어 안했다고!
    미숙 그럼 누가 했는데? 그 옷에 묻은 피는 뭐고 (피 묻은 트리트먼트를 집어들며) 이건 뭔데?
    니가 아주 환장하는 거잖아. 목숨보다 소중한거. 왜 아줌마가 탈모 방지라고 거짓말이라
    도 했냐? 죽여버리게?
    영철 (닦던 휴지를 바닥에 던지며) 내가 안 했다니까. 진짜야 (머리카락을 잡으며) 난 결백해
    그 증거로 이 머리카락 확 잘라 버릴 수도 있어.
    미숙 잘라. 아주 잘됐네, 샴푸값도 아끼고 (트리트먼트를 테이블 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이딴
    거 쓸 일도 없고 좋네. (피 묻은 가위를 들며) 잘라, 빨리 잘라. 내가 확 잘라줄까?
    할머니 (미숙의 등짝을 때리며) 가시나 못돼처먹어가지고 어데 동생한테...다 치웠으면 가 퍼뜩
    옮겨라.
    미숙 (볼멘소리로) 내가 죽였어봐. 쫓아와서는 팔목아지 부러뜨렸을 거면서... 저 등신같은 놈만
    맨날 감싸고... 아이씨... 이놈의 집구석 내가 빨리 떠나야지...
    할머니 (미숙과 영철의 등짝을 때리며) 이것만 하고 언능 니 집으로 가라. 두 놈들 아주 귀찮아
    죽겄다.

    S#81. 구멍가게 밖 / 늦은 밤
    영철과 미숙이 쌀포대를 핸드카에 올린다.

    미숙 (핸드카를 보며) 이거밖에 없어? 무슨 약수터 물 뜨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 잔말 말고 끌기나 해라.
    미숙 (짜증스럽게) 뭐야 왜 맨날 나만시켜. 제가 죽였잖아.
    영철 (답답해하며) 내가 안 죽였다니까. 왜 사람 진심을 몰라. 됐어. 내가 할게. 건들지마.

    영철, 어설프게 손수레를 끌고 간다. 그러다 얼마 가지 않아 실어놓은 쌀 포대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할머니 미숙을 노려보자, 미숙, 영철에게 짜증스럽게 걸어간다.

    S#82. 할머니집 지붕 위 / 시간이 흐른 후
    잠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나는 브루스, 침을 닦고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조심히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다리가 저려서 넘어질 뻔. 몸을 웅크리고 앉아 숨죽이고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 방으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지수의 방으로 발을 옮긴다.

    S#83. 지수방
    불 꺼진 방안, 지수가 홀로 자고 있다. 브루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살그머니 한쪽 발을 넣는다.
    지수,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잠들어 있는 지수를 확인하고 방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시야에 보이는 지수의 맨다리. 음흉하게 지수 곁으로 다가가 이불을 걷는다. 지수의 잠옷 단추를 하나씩 풀어 내려간다. 지수,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자 야릇하게 웃고 있는 브루스가 보인다.

    S#84. 영철 방/ 같은 시각
    새근새근 한철이 자고 있다. 누군가 한철의 머리맡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는다. 죽은 가게 할머니의 뒷모습이 얼핏 비춘다.

    S#85. 지수방 / 같은 시각
    지수 (정색하며) 뭐야?
    브루스 (지수의 입을 막으며) 괜찮아... 괜찮아...

    지수, 놀라서 브루스를 발로 걷어차고, 뒤로 벌렁 넘어지는 브루스. 지수, 일어나 도망가려 하지만 브루스가 발을 잡고 쓰러뜨린다. 브루스, 광기어린 눈으로 지수의 옷을 헤집는다. 지수, 브루스의 팔을 물고 빠져나와 책상 위에 샤프를 집어 브루스의 머리를 힘껏 찍는다. 브루스, 얼굴에 피가 주르륵 흐른다.

    지수 (샤프를 들이대며) 이 새끼 어디서 수작이야.

    브루스, 피를 닦으며 놀라 뒤로 물러선다. 지수, 브루스에게 달려들고 사색이 된 브루스, 도망치다 문밖으로 굴러떨어진다.

    S#86. 할머니집 마당 / 같은 시각
    대문을 열고 할머니와, 영철, 미숙이 핸드카를 끌고 들어온다. 그때 굴러떨어진 브루스와 마주치는 가족들. 부서진 지수 방문. 미숙, 놀라서 지수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S#87. 지수의 방
    미숙, 문을 열고 들어와 머리가 산발 되고 옷이 엉망이 된 지수를 본다.
    미숙 (놀라서) 뭐야? 무슨 일이야? 누가 그랬어?

    지수, 손가락으로 브루스를 가리킨다.

    미숙 (눈이 뒤집혀서는) 죽여버릴거야 (달려나간다)
    S#88. 할머니집 마당 / 같은 시각
    미숙, 브루스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때린다.

    할머니 (단호하게) 고만해라.

    영철, 미숙을 말린다. 미숙, 씩씩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가 칼을 들고나온다. 브루스, 정신을 차리고 가족들을 보니 이곳저곳 피가 묻어 있고,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 겁에 질려 구석으로 뒷걸음친다.

    미숙 (칼을 들이대며) 공주같은 내 새끼 니가 저렇게 만들었어?
    브루스 (울먹이며) 고... 공주.... 아니던데요....
    미숙 내가 공주라면 공주야. 어디서 백정 나부랭이 같이 생긴게 남의 귀한 딸을 건드려?

    미숙, 칼로 브루스를 찌르려는 그때 브루스 머리 위로 내리치는 삽. 브루스,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그 뒤로 삽을 들고 비장하게 서 있는 영철.

    영철 (당황스러워 하며) 설마 죽은 거 아니지? 살짝 쳤는데?

    미숙, 급히 지수에게 뛰어가 지수의 몸을 살핀다.

    미숙 (흥분하며) 뭐야. 저놈이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어?
    지수 (머리를 묶으며) 별일 없었어.
    미숙 (살기어린 눈빛으로 칼을 들며) 죽여버릴 거야.
    할머니 그럼 못 쓴다.
    영철 어떻게 할거예요?
    할머니 우선 넣어놔라.
    영철 그런 다음 어쩔건데요?
    할머니 (영철의 머리를 때리며) 니는 대학 나온 놈이 왜 내한테 자꾸 물어보노? 머리가 빨리빨리
    안 돌아가나? 공부 젤 많이 한 놈이 머리 좀 써봐라. 우째할지. 아이고 나도 골치 아파
    죽겠다. 이 썩을 놈의 대학은 도대체 뭘 가르치노, 도대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쓸모
    가 없어.
    미숙 그러니까 여지껏 백수로 살지.
    영철 나 백수 아니야. 취업 준비생이야.

    순간, 꿈틀대는 브루스. 지수, 브루스 옆구리를 발로 힘껏 찬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다시 기절하는 브루스.

    미숙 빨리 옮기기나 해, 확 죽여버리기 전에...

    미숙, 영철, 브루스를 들고 옮긴다.
    S#89. 창고 / 늦은 밤
    미숙과 영철, 기절한 브루스를 내려놓는다. 영철, 그 옆으로 또 다른 쌀포대를 끌고 와 놓는다. 할머니, 브루스의 손발을 묶고 입에 테이프를 붙인다. 브루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쌀포대에 기대어 쓰러진다.

    할머니 (허리를 두드리며) 아이고 대다. 오늘은 여까지 하고 내일 마무리 짓자. 내 도저히 허리가
    아파서 몬하겠다. 이놈의 집구석은 와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노.

    할머니, 툭툭 옷을 털며 나가고, 영철,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나가다 문턱에 발을 찧고 걸려 넘어진다. 미숙, 씩씩대며 바닥에 놓인 칼을 기둥에 꽂는다.

    S#90. 대문 밖/ 같은 시각
    여자(현숙)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S#91. 파출소 일층 / 같은 시각
    박순경 (전화통화 하며) 마수 아부지? 마수 집에 왔습니까? 아직도 안왔습니까? 이놈 자식 미친
    개마냥 어딜 그래 싸돌아 댕기노? 내 읍내를 샅샅히 뒤져봤는데 떨어진 머리털도 못봤습
    니다. 혹시 다른 갈만한데는 있습니까? 몰라요? 그럼 내일까지 차분히 기다려 봅시다. 알
    겠습니다. 들어가이소.

    박순경, 전화를 끊고 라디오를 켠다. 흘러나오는 트로트 음악.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러다 못마땅하게 이층을 올려다본다.

    박순경 이 양반들 양심없이 여기가 여관인줄 아나, 성의라도 보여야 될거아이가

    S#92. 할머니방/ 늦은 밤
    불 꺼진 방에 할머니, 미숙, 영철이 동그랗게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할머니 (비장하게) 내일 밤 12시에 시작한다.
    영철 저 놈은요? 같이 묻어버릴까요?
    할머니 살인하면 못쓴다.
    영철 생매장하는 건 살인 아니예요. 공짜로 묘자리 만들어 주는 거지.
    할머니, 매섭게 영철을 노려본다. 풀이 죽는 영철. 그때 갑자기 번쩍거리는 불빛, 미숙, 할머니, 영철, 멈칫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할머니 이게 뭐꼬?

    영철,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는 효자손으로 바닥을 휘저으니 휴대폰이 나온다

    영철 누구 꺼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어본다)

    인서트
    휴대폰 액정에 한껏 멋부린 마수의 사진이 있다.

    영철 지수 친구 건데요?
    할머니 잘 챙겨 놔라
    미숙 (휴대폰 사진을 보며) 사진이 더 낫네... (전원을 끈다).

    S#93. 창고/ 같은 시각
    쌀포대에 얼굴을 묻고 기절해 있는 브루스, 서서히 눈을 뜬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브루스, 묶인 줄을 풀어보려 발버둥 치다 위에서 떨어진 호박에 맞고 기절한다.
    ----------------------------------------------------------------------------

    S#94. 창고 / 아침
    문이 활짝 열린다. 기절한 브루스가 보이고 바닥엔 깨진 호박이 널브러져 있다. 브루스, 눈을 뜨자 흐려진 시야가 점점 밝아지며 서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그 옆으로 노려보는 미숙, 주머니에 손을 넣고 쭈뼛쭈뼛 바라보는 영철. 할머니, 브루스의 입에 붙인 노란 테이브를 확 뗀다.

    브루스 (두려움에 떨며) 사....살려.. 주세요.
    할머니 (브루스에게 다가가 앉으며) 니 여기 왜 왔나?
    브루스 ............
    미숙 (브루의 멱살을 잡으며) 왜 온거냐고 묻잖아 이 새끼야!
    브루스 ..............
    할머니 이 집구석에 뭐 가져갈 거 있다고 기어들어 들어왔나?
    브루스 ..........

    미숙, 일어나 기둥에 꽃힌 칼을 확 뽑아든다.

    브루스 (정색하며) 무...무....문....서..
    미숙 (칼을 이리저리 살피며) 뭐라고? 말 똑바로 안해?
    브루스 (울먹이며) 지...입..무운.. 서..요.
    영철 문서? 무슨 문서 말하는 거예요?
    브루스 엉...엉...지..입 .엉..엉.지입.. 무운.엉...엉..서..
    영철 집문서?

    할머니, 짐작 가는 곳이 있는지 눈빛 매서워진다. 영철, 쭈뼛쭈뼛 다가와 브루스의 입에 테이프를 다시 붙인다. 가족들 밖으로 나가며 눈물범벅이 된 브루스의 얼굴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S#95. 폐가/ 같은 시각
    등지고 앉아 있는 이장과 이춘삼.

    이장 이제 가져올 때도 되지 않았나. 굼벵이 새끼마냥 굼떠서는 무슨 일을 그리 늦게 처리하노?
    주둥이로 밥은 잘 넘어가 가나? 그리 편히 살면 못쓰제, 조상들이 안카나. 일하지도 않는
    놈 처먹지도 말라고..

    이춘삼, 분노에 한쪽 눈이 움찔한다.

    이장 오늘까지 꼭 문서 가져와라, 내도 이제 더는 못 기다린다. 더 이상 늦어지면 착수금이고
    뭐고 싹 토해내야 할끼다. (이춘삼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러니 서로 좋게 좋게 해결해야
    하지 않겄나.

    이장,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다 가방 줄에 걸려 넘어진다.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발로 찬다.

    이장 꼭 공부 못하는 놈이 가방만 무겁지, 브루스? 유학파? 쳇, 유학파 좋아하시네, 꼭 한글도
    모르는 놈들이 영어로 처 씨부라싸지, 그기 다 돈지랄 하는거 아이가, 카악~ 퉤!!

    이춘삼, 움켜쥐고 있던 벽돌을 으스러트린다.

    S#96. 마당 / 아침
    지수만 빼고 온 가족 둘러앉아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먹는다.

    할머니 아는?
    미숙 개가 밥맛이 있겠어?
    영철 그치...밥맛 없지.. (발차기 시늉을 하며) 이 삼촌이 이단 옆차기로 날려 줬어야 했는데

    할머니, 한철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준다. 한철 잘 받아먹는다.

    할머니 있다가 뭐라도 좀 먹여라.
    미숙 냅둬. 배고프면 지가 알아서 먹겠지..
    할머니 서울에선 연락 없나?
    미숙 무슨 연락?

    할머니, 영철의 눈치를 살핀다.

    할머니 (영철에게) 다 먹었으면 가서 물 한 바가지 떠 와라.
    영철 네 (바지를 추켜 올리며 부엌으로 걸어간다.)

    한철, 갑자기 숟가락에 밥을 한가득 퍼서 지수 방으로 달려간다.

    할머니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아직 경찰들 눈치 못 챘나?
    미숙 (목소리 낮추며) 음, 아직...
    할머니 처신 똑바로 하고 댕겨라. 구미호가 왜 사람이 못 된 줄 아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서
    그리 안됐나?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고로 항상 덫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소식 없다
    고 끝난 거 아니다. 알겠나? 그리고 아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제?
    미숙 응 몰라, (분노하며) 뜯어 먹을 것도 없는 새끼, 괜히 물어서는 (분노를 누르며) 개자식,
    지새끼 아니라고 쓰레기처럼 쥐어패고 던지고, 그런 놈을 서방이라고 믿었다니 나도 등신
    같은 년이지. 엄마는 그때 나 좀 말리지 그랬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붙잡지 그
    랬어.
    할머니 (밥 숟가락으로 미숙의 머리를 치며) 기부스하고 처 도망간 년이 누군데 이제와서 내 탓
    을 하노? 아주 불구를 만들어 놔야 말 처 듣지..

    S#97. 지수방/ 아침
    지수,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죽은 시체를 덮어놓은 것 같다. 한철, 들어와 밥숟가락을 꼭 쥐고 밥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지수 곁에 앉는다. 지수, 꼼짝도 안 하고 누워 있다. 그러자 한철, 지수를 툭툭 친다.

    지수 (짜증스럽게) 학교 안 간다니까...

    한철, 지수를 또다시 툭툭 친다. 지수, 짜증스럽게 이불을 걷어내면 한철이 밥숟가락을 들이민다.
    지수, 한철을 바라보다 문득 서러움과 뭉클함에 울컥한다. 한철, 먹으라는 듯 숟가락을 들고 지수를 바라본다. 지수, 어쩔 수 없이 한 입 받아먹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는다. 한철, 씨익 웃으며 밖으로 뛰어나간다.

    S#98. 파출소 일층 / 낮
    박순경, 이형사, 곽반장, 나란히 앉아 중국 음식을 먹고 있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형사, 마지막 남은 군만두를 집어 입에 넣으려 하자.

    박순경 (버럭하며) 어허! 사람 참!!!
    이형사, 슬그머니 군만두를 내려놓는다.
    박순경 (흘겨보며)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제...

    그때 문 열고 들어오는 마수아버지, 한 손에 전단지가 들려있다.

    박순경 (일어나 반갑게 맞으며) 마수 아버지 오셨습니꺼?
    마수아버지 나 왔구먼. 밖에 쪼까 더워서 목 좀 축일라고 들어왔제. (두 형사를 보며) 누구신가?
    박순경 서울 손님.
    마수아버지, 가볍게 인사하고는 박순경을 구석으로 끌고 간다.

    마수아버지 마수가 친구랑 있는 거 같다. 박순경이 좀 알아보고 잘 타이른 다음 좀 데려와라..
    박순경 그놈 자식 내 말은 좀 잘 듣제..
    마수아버지 (박순경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며) 그놈새끼 경찰이라면 자다가도 벌벌 떠니께 말 안
    들으면 여기다 콱 묶어버려라.
    박순경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아니.. 뭐 이런걸 자꾸 줍니꺼.. 볼성 사납게.
    마수아버지 내가 동네 챙피해서 말은 몬하겠고 자네 아니면 어데가서 내가 이런 부탁을 하노? 그
    리고 이거 (전단지를 건내며) 읍내에서 좀 전해주라고 하드만, 꼼꼼히 벽에 붙이란다.
    박순경 (전단지를 보지도 않고 책상 위에 올려두며) 걱정 말고 들어가 보소.

    마수 아버지, 머쓱하게 인사하고 나간다. 박순경, 주머니에 돈을 확인하면 이만원이 들어있다.

    이형사 실종신고 해야되는거 아닙니까?
    박순경 무슨 실종신고를 합니꺼? 어디가서 처 자빠져 자고 있겠지, 어서 먹기나 하소. 지는 순
    찰이나 돌고 오겠습니다.

    박순경, 모자를 눌러쓰고 전단지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S#99. 길가 / 낮
    미숙, 풀잎을 흔들며 살랑살랑 걸어간다.

    미숙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시간이 흘러가면은... 그때서 뉘우칠거야..
    박순경E 어이~ 미숙이~

    오토바이를 탄 박순경이 미숙이 앞에 선다.

    박순경 여기서 뭐하노?
    미숙 알거 없잖아.
    박순경 서방님한테 까질하게 굴면 못쓰제, 혹시 니한테 커피 주문하는 사람 나말고 또 있나?
    미숙 왜?
    박순경 장사 잘 되나 궁금해서 그러제.
    미숙 잘 되면 내 등골 빼먹을려고?
    박순경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노. 내는 니 홍보도 해 주고 배달도 도와줄라 안하나
    미숙 노인네들 커피도 안 마시는데 누구한테 홍보해
    박순경 그럼 니랑내랑 읍내 가서 살까?
    미숙 읍내가서 뭐 먹고 살려고? 거기서 코 묻은 돈이나 받게?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서 내 입
    에 루즈라도 발라주겠어?
    박순경 (슬쩍 미숙의 손을 잡으며) 고깟 루즈 하나 못 사주겠나? 미숙이가 원하면 루즈 가게라도
    차려 줄 수 있제
    미숙 (화색이 돌며) 정말? 나 가게 하나 차려 줄꺼야? 지금 얼마나 있는데? 방 얻고 가게 하나
    차릴 정도?
    박순경 고정도는 아직 안되고... 좀 더 모아서 가야제...
    미숙 (손을 빼며 쿠폰을 들이민다) 아직 오십 번은 더 남았어. 다 모아지면 그때 얘기해....
    박순경 (더운지 옷을 들썩거리며) 우리 답답한데 읍내나 같이 갈까? 주류 사업 얘기도 좀 하고
    홍보도 좀 하고?
    미숙 어머? 내가 한가한 사람으로 보여? 지금 이꼬라지로 촌구석에 와 있지만 다 사업 구상으
    로 잠시 머물러 있는 거야.
    박순경 오늘 커피 네 잔 마실라구 하는디 (슬쩍 눈치보며) 다음에 먹어야 쓰겠네.
    미숙 먹던지 말던지..(돌아서 간다)
    박순경 뭐여? 튕기는겨? 여자는 튕기는게 맛이지.

    박순경, 오토바이에서 내려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인다. 이춘삼 지명수배 전단지.

    박순경 (벽에 붙이며) 이놈 잡으면 오천만원이여? 만나면 그냥 확 잡아서 조저 놓을 텐데...
    이놈의 촌구석에 무슨 살인범이 오겄어.

    S#100. 버드나무 길 / 낮
    박순경,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그 앞으로 세발자전거를 타고 한철이 달려온다.

    박순경E 한철아!

    한철,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박순경 (손을 흔들며) 이리와 봐라

    한철, 무시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멀어져 간다.

    박순경 지 에미 닮아서 지금 튕기는겨?

    박순경, 오토바이 타고 가던 길 간다.

    S#101. 파출소 일층 / 같은 시각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이형사와 곽반장. 라디오 음악만 흘러나온다. 곽반장, 자리에서 일어난다.

    곽반장 동네 좀 살피고 오겠네.
    이형사 몸도 편치 않은데 오늘은 좀 쉬시죠.
    곽반장 경찰에게 휴일이 어딨나?
    이형사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곽반장 함께 움직이면 위험할 수 있어. 자네는 여기 남아서 자리를 지키게..
    이형사 (내심 안도하며) 네. 알겠습니다.

    곽반장, 절룩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이형사, 창문을 보며 곽반장의 동태를 살핀다. 점점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이형사 지혜씨. 오늘 커피 열 잔 마실 수 있을까요?

    S#102. 폐가 / 낮
    장작에 불을 지피고 있는 곽반장, 얼굴에 그름이 묻어 새카맣다. 이춘삼, 밖을 살핀다. 그때 들어오는 영철, 온통 흙투성인 채로 씨익 웃으며 감자 바구니를 내려놓는다.

    디졸브
    시간경과...영철, 장작 사이를 막대로 헤집고 감자를 꺼내 하나씩 나눠준다. 다들 뜨거운 감자를 받아들고 먹느라 정신없다. 그때 갑자기 이춘삼 영철에게 말을 건넨다.

    이춘삼 삽.
    영철 아...제가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꼭 갖다 드릴께요. 갑자기 쓸 일이 좀 많아서.
    곽반장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가 올 것 같군.

    셋 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은 하늘에 구름 몇 점 떠 있다.

    영철 날씨 맑은데?

    셋 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감자를 먹기 시작한다.

    S#103. 파출소 일층 / 낮
    미숙이 보온병을 들고 들어오고 이형사, 미숙에게 다가가 얼른 보온병을 받아든다.

    이형사 지혜씨. 더운데 오라가라 해서 죄송합니다.
    미숙 (웃으며) 괜찮아, 일인데 뭘.
    이형사 다음엔 제가 그쪽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미숙 (겉옷을 벗으며) 여기가 더 시원하고 좋은데...

    미숙, 야한 옷차림으로 앉아 손으로 부채질한다. 이형사, 안절부절 눈을 어디로 둬야 할지몰라 난감하다.

    미숙 오빠는 여기 언제까지 있을거야?
    이형사 일이 끝나는 대로 올라갈 겁니다.
    미숙 (아쉬운듯) 언제 끝나는데?
    이형사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복잡한 문제가 좀 있어서
    미숙 그거 내가 해결해 주면 서울에 갈꺼야?
    이형사 네?... 아... 저....
    미숙 (체념어린 눈길로) 가려면 가던지 내가 뭐 남자 복이 있어야 말이지.
    이형사 (덥석 미숙의 손을 잡고) 지혜씨....저랑 같이 가주시겠습니다.
    미숙 (화색이 돌며) 같이 가자고? 지금 나한테 프로포즈하는 거야? (이형사를 와락 끌어안으며)
    서울 가서도 이맘 변하면 안돼, 알겠지? 근데 얼마나 마실거야?

    S#104. 할머니 집 마당 / 같은 시각
    할머니, 마당에 널어둔 고추를 닦으며 바구니에 넣고 있다.

    박순경E 어머니! 안녕하십니꺼.
    할머니 (움찔하며) 여기 왠일인가?
    박순경 더워서 물 한 잔 얻어먹으러 왔습니더. (평상에 앉는다)
    할머니 (일어서며) 좀 기다려 봐라.

    할머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방문을 열고 눈이 퉁퉁 부은 지수가 나온다.

    박순경 잘 있었나?

    지수, 본채만채 화장실로 간다.

    박순경 이 집구석은 왜 이렇게 튕기는겨. 사람 무안하게..

    똥개 달려와 박순경의 신발을 핥는다.

    박순경 반겨주는 건 개새끼 밖에 없네.

    할머니, 물 한 컵 박순경에게 건네고 박순경, 벌컥벌컥 물을 들이킨다.
    할머니 (말린 고추를 닦으며) 요새 별일 없는가?
    박순경 이 손바닥 만한 곳에서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가출 청소년 잡는 일밖에 더 있
    겠습니까.

    지수, 수돗가에 앉아 세수한다.

    박순경 지수야 너 고등학교 1학년이제? 느그 반에 혹시 마수라는 아 있나?
    지수 (비누칠한 얼굴로 박순경을 보며) 있는데 왜요?
    박순경 그 아가 며칠째 집에 안 들어오는데 혹시 주변에 친한 친구가 누군지 아는가 해서...
    지수 걔 친구 없어요.
    박순경 그랴? 친구 없게 생기긴 생겼다만.

    할머니, 박순경의 말을 주시하며 고추를 닦는다.

    S#105. 마당/ 같은 시각
    갑자기 창고에 문이 덜컥거린다. 할머니, 순간 창고를 주시하며 긴장한다. 똥개가 달려가 창고 문을 킁킁대며 긁는다. 모두의 시선이 창고에 집중된다. 순간 지수, 다가가 문짝을 힘껏 발로 찬다.

    S#106. 창고 / 같은 시각
    브루스, 문짝을 머리로 치다가 퍽 소리와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진다.

    S#107. 마당 / 같은 시각
    지수 (짜증스럽게) 고친다면서 왜 안 고쳐요. 문짝 떨어지려고 하잖아요.
    박순경 (일어나) 어머니 지가 좀 고치고 갈까요?
    할머니 둬라, 영철이 오면 금새 고치니께 바쁜데 고만 가봐라.
    박순경 그냥 온김에 제가 고쳐드릴께요.
    할머니 됐다. 그만 들어가 일봐라.
    박순경 아닙니다. 두 손갈 필요 뭐 있습니까. 제가 이런일엔 전문갑니다. 온 김에 단단히 싹 고치
    고 가겠습니다.
    할머니 (버럭) 가라니까
    박순경 (움찔 놀라서는) 아... 알겠습니더. 지가 불편하시다면야 고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박순경 머쓱하게 돌아서 나간다. 할머니, 박순경을 주시하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지수, 신경쓰지 않고 방으로 들어간다.

    S#108. 창고/ 낮
    바닥에 쓰러진 브루스, 손발에 묶인 끈을 풀려고 몸부림치지만 금새 지친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찾는다. 그때 벽에 걸린 낫이 보인다. 힘겹게 벽에 몸을 기대고 일어선다. 있는 힘껏 몸을 펴지만 역부족이다. 다시 바닥에 누워 쌀포대 쪽으로 기어간다. 쌀포대를 낫이 걸려 있는 벽까지 온 힘을 다해 밀고 간다. 다시 벽에 몸을 기대 일어선 다음 쌀 포대에 올라선다. 그리고는 힘껏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다 바닥에 고꾸라지며 쓰러진다. 그때 벽이 흔들리며 쌀 포대 위로 낫이 내리꽂힌다.

    S#109. 부엌/ 낮
    불 지핀 아궁이에 마수의 교복과 휴대폰을 던져 넣는다. 마수의 영혼이 할머니 옆에 앉아 타들어 가는 옷을 바라본다.

    할머니 좀 더 있다 가그라. 니 에미 에비 얼굴도 보고 핵교도 가보고 산으로 들로 강으로 구경
    많이 하다 가그라. 그래야 섭섭지않제.... 미안하다. 이렇게 보내서... 정말 미안하다.
    내 너무 미워하지 말고 조심히 잘 가그라.

    할머니, 쭈그려 앉아 무심하게 꼬챙이로 옷을 집어넣고 태운다. 점점 벌겋게 타들어 가는 마수의 교복. 쭈그려 앉아 있던 마수의 영혼,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S#110. 폐가/ 같은시각
    혼자 된 이춘삼, 가방에서 여러 가지 흉기들을 꺼낸다. 그중 도끼를 집어 든다. 칼날을 손으로 만지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S#111. 파출소 일층/ 같은 시각
    이형사, 마지막 50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미숙 (박수치며) 어머 오빠.... 벌써 백잔 다 채웠어...거짓말은 안하네..
    이형사 전 절대 거짓말 안합니다.
    미숙 그럼 아까 그 약속도 진짜지?
    이형사 지혜씨만 허락하신다면 평생 약속 지키겠습니다.
    미숙 그럼, 백 잔 다 채운 기념으로 나도 약속 지켜야지...
    (이형사의 넥타이를 잡고 이층 계단으로 끌고 올라간다.)

    S#112. 파출소 이층/ 같은 시각
    미숙, 들어오자마자 이형사의 옷을 벗기려고 한다. 이형사, 미숙의 행동을 제지하며 자신의 옷을 움켜잡고는 두려운 듯 뒤로 물러난다.

    이형사 제가 마음에 준비가 아직 안 됐는데요. 잠깐 청심환 좀 먹고 오면 안될까요?
    미숙 긴장 풀어. 나도 처음이야.

    미숙, 이형사에게 야릇한 미소를 날리며 다가간다. 이형사, 뒷걸음질 치며 구석으로 몰린다. 점점 두려움으로 일그러진다. 미숙, 이형사를 코너에 몰아넣고 마구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S#113. 파출소 일층 / 저녁
    박순경 (문을 열고 들어오며) 아무도 없나? 다들 어디갔나?

    남은 전단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털석 주저않는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 한 장을 주워 본다.

    인서트
    백번째 도장이 찍혀 있는 쿠폰

    박순경, 이상한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계단을 밟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S#114. 파출소 이층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불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이불 위에 떨어져 있는 미숙의 립스틱.
    박순경, 분노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종이를 구겨 움켜쥔다.

    S#115. 창고 / 저녁
    브루스, 낫을 입에 물고 묶인 끈을 끊어낸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두리번거리며 탈출구를 찾는다. 하지만 잠겨 있는 문과 조그만 창문이 전부다. 창문을 향해 뛰어오르지만 높아서 닿지 않는다. 쌀자루를 밟고 올라간다.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뛰어오르다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S#116. 할머니 집 앞/ 저녁
    이형사, 몸을 배배 꼬면서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른다.

    미숙 오빠 여기가 우리집이야
    이형사 집이 참 정겹게 보이네요.
    미숙 오빠 집도 가보고 싶다.
    이형사 저는 일 때문에 집에 자주 못가요. 워낙 야근이 많아서...
    미숙 (이형사의 엉덩이를 만지며) 난 혼자 있는거 싫은데... 그럼 내일 또 봐 (윙크)

    미숙, 집 안으로 들어가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형사. 그때 앞에서 똥개 한 마리 으르렁대고. 이형사, 움찔하며 벽에 붙어 있는 현상수배 전단지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S#117. 파출소 일층 / 저녁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오는 이형사. 분노에 이글거리는 박순경과 마주친다.

    박순경 어딜 갔다 오는가?
    이형사 (움찔하며) 바람 쐬러 다녀왔습니다.
    박순경 혹시 여기 누가 왔는가?
    이형사 모...모르겠는데요...

    박순경, 이형사를 창가로 몰아넣으며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바짝 다가선다.

    박순경 부반장 양반 커피 좋아하나?
    이형사 (잔뜩 겁에 질려서는) 아,,,, 아니요..
    박순경 방금 미숙이 왔다갔는가?
    이형사 미.....미숙이가 누군지...모르겠는데요.
    박순경 정말 모르는가? (창문을 힘껏 손으로 내리친다)

    창문 깨지며 박순경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박순경 곽반장은 어딜 가셨나?
    이형사 조사하러... 아니... 일하러...잠시 나가셨습니다.
    박순경 그 조사가 여자 치마 속은 아니겄제?
    이형사 아... 아닐 겁니다.
    박순경 (쿠폰을 들이밀며) 이거 본 적 있나?

    이형사, 자신의 쿠폰을 박순경이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이형사 모...모르겠는데요.

    박순경, 화를 참지 못하고 의자를 창문에 집어 던진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고, 놀란 이형사, 와들와들 떤다. 깨진 창문으로 광기어린 박순경의 모습이 비친다.

    이형사 갑자기 왜.. 이러세요?
    박순경 부반장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싶은데...
    이형사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박순경 몰라? 그럼 자네 아니면 곽반장이 알겄네

    박순경, 이형사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쓰러진 이형사를 마구 때린다.

    S#118. 할머니 집 앞/ 같은 시각
    곽반장, 담장에 몸을 빠짝 붙이고 집 안을 살펴본다. 수돗가에서 손 빨래하는 할머니와 평상에 앉아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 미숙이 보인다. 그때 울리는 곽반장의 휴대폰.

    곽반장 곽반장입니다. 네 지금 수사중입니다. 용의자 지문 결과는 나왔습니까 (미심쩍어하며)
    일치하는 지문이 없다구요? 네. 잠시만요.

    곽반장,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메모할 곳을 찾는다. 마침, 벽에 붙어 있는 전단지. 전화 내용을 받아 적으려다 문득 전단지를 본다. 이춘삼의 얼굴. 곽반장, 점점 창백해진다. 그때 갑자기 쏟아지는 물벼락, 할머니가 세숫대를 들고 멀뚱히 바라본다.

    할머니 니 누꼬? (금새 표정이 싸늘해지며) 개장수 아이가? 니 왜 또 와서 지랄이노? (곽반장을
    마구 때리며) 뭐 처 가져갈게 있다고 기웃거리노? 문등이 자슥, 썩 못 꺼지나.

    곽반장, 얼굴을 감싸고 도망간다, 할머니, 매섭게 곽반장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문을 걸어 잠근다.
    할머니 (나즈막이) 속 시끄럽소...이번만 그냥 조용히 넘어가게 도와주소...
    S#119. 파출소 일층 / 저녁
    곽반장,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온다. 난장판이 된 경찰서 안. 이형사, 만신창이가 되어 벽에 쓰러져 있고 곽반장, 놀라 이형사를 흔들어 깨운다. 이형사, 가늘게 눈을 뜨고 힙겹게 곽반장을 바라본다.

    곽반장 무슨 일인가?
    이형사 (힘겹게) 당했습니다.
    곽반장 누구 짓인가?

    이형사, 쿨럭하며 피를 토해낸다. 곽반장이 목을 움켜쥐고 있는 탓에 말을 잊지 못한다.

    곽반장 뭐야? 벌써 그 놈이....

    곽반장, 이형사의 목덜미를 놓는다. 이형사, 그제야 숨통이 트였는지 가쁜 숨을 몰아쉰다. 곽반장, 급히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곽반장 여기 급히 지원요청 부탁하네.
    이형사 아니... 그...그게 아니라...
    곽반장 (이형사의 입을 막으며) 그만 말하게. 더 힘들어지네. (통화를 하며) 이춘삼이 여기
    있습니다.

    S#120. 할머니집 앞 / 저녁
    광기어린 눈빛의 박순경이 거세게 문을 박차며 들어온다.

    박순경 김미숙 나와.. 김미숙!!
    영철 박순경님... 무슨 일이세요?
    박순경 (영철의 멱살을 잡으며) 미숙이 어딨나?
    영철 (당황하며) 왜 그러세요?

    소란스러운 소리에 부엌에 있던 할머니가 나온다. 박순경, 영철을 바닥에 힘껏 밀쳐내며 할머니에게 다가온다. 모자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할머니의 양 어깨를 꽉 잡고 흔든다.
    박순경 어딨습니까. 미숙이...어딨습니꺼.
    할머니 시방 어디서 행패고?

    할머니, 박순경을 뿌리친다. 그러나 꽉 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간다. 할머니 아파하며 일그러진다.

    미숙E 무슨 일이야?

    미숙, 짜증스럽게 방문을 열자 박순경, 분노에 찬 눈으로 미숙에게 다가간다.

    박순경 (쿠폰을 들이밀며) 어떤 새끼가? 어떤 새끼랑 붙어먹었나? (소리친다) 어떤 새끼냐고

    미숙,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박순경, 미숙의 머리채를 잡고 마당에 내 던진다. 미숙, 바닥에 나뒹굴며 머리를 세게 부딪힌다. 미숙, 일어나려고 하지만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박순경, 그런 미숙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 마구잡이로 밟는다. 미숙, 머리를 감싼 채 그대로 맞고 있다. 영철, 놀라서 황급히 박순경을 말리지만 이성을 잃은 박순경은 영철을 밀친다. 영철, 수돗가에 머리를 세계 부딪치고 아픈 머리를 만지자, 손에 피가 묻어난다.

    S#121. 창고 / 같은 시각
    브루스, 쌀 포대를 끌고 와 창가 벽 쪽에 세워두고 올라서지만, 쌀 포대와 함께 넘어진다. 그때 밖으로 툭 튀어나오는 피 묻은 손. 브루스, 정색하며 소리 지른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정신없이 벽을 타고 오른다. 작은 창에 몸을 밀어 넣고 발버둥 치며 빠져나간다.

    S#122. 할머니집 마당/ 같은 시각
    할머니, 박순경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박순경, 돌아서 할머니를 쏘아보며 목을 조른다.

    박순경 어머니도 똑같습니더. 자식이 나쁜 길로 가면 말리는 게 부모의 도리 아닙니꺼. 왜 보고
    만 있습니까? 왜 저렇게 있도록 그냥 나뒀습니까?

    할머니, 컥컥대며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지만 점점 더 조여온다. 그때 갑자기 박순경 머리 위로 장독 뚜껑이 와장창 깨지고 박순경, 그 자리에 쓰러진다. 영철,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할머니, 털석 주저앉으며 멍하니 바라본다. 미숙, 입술이 부르트고 피가 난 채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미숙 개새끼. 커피 몇 잔 팔아주고 어디서 서방 행세야.

    미숙, 부서진 항아리 조각을 움켜쥔다. 불끈 쥔 손에서 피가 흐른다. 모멸감에 이를 악물고 박순경에게 다가간다. 쓰러져 있는 박순경을 찌르려 달려든다. 할머니 미숙을 막아선다.

    할머니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미숙 (악을쓰며) 비켜. 이런 새끼는 똑같이 당해봐야 돼.

    영철, 다가와 미숙을 말린다. 미숙, 손에 쥔 조각을 떨어뜨리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할머니 (지친 기색으로) 영철아, 문 잠궈라.

    먹구름 낀 하늘 아래 녹슨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무겁게 닫힌다.

    S#123. 파출소 이층 / 밤
    곽반장, 이형사를 눕힌다. 이형사,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형사 지...지혜가... 위...위험해요.
    곽반장 지혜? 지혜가 누군가?

    이형사, 말하기 곤란한지 아픈 척한다.

    곽반장 거기가 어딘데???
    이형사 휴대폰 좀..

    이형사, 곽반장의 휴대폰으로 길 찾기 주소를 통해 위치를 알려준다.

    이형사 여기로 가서... 골목을 돌고... 버드나무 지나서 직진하면...여기가 지혜씨 집.

    S#124. 버드나무 길가 / 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는 브루스, 그 뒤로 똥개가 따라가며 짓는다. 브루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얼른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돌을 집어 똥개에게 던진다. 똥개, 낑낑대며 도망간다. 브루스 무작정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도망간다.

    S#125. 창고 안 / 밤
    영철, 박순경을 질질 끌고 들어와 눕힌다. 손을 털고 주변을 살피니. 시체가 반쯤 드러난 쌀 포대가 벽 쪽에 쓰러져 있고, 끊어진 밧줄과 낫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S#126. 마당 / 밤
    할머니, 된장을 미숙의 부르터진 입술에 바른다.

    미숙 (짜증내며) 좋은 약 많은데 왜 이런걸 처 발라.
    할머니 가시나, 고만 좀 다물어라. 이 귀한 거 주둥이로 다 들어간다.
    영철E (다급한 목소리) 엄마, 엄마. 그놈이 없어졌어요.

    할머니와 미숙, 놀라 창고로 뛰어간다.

    S#127. 창고 / 밤
    미숙 : (호들갑스럽게) 어떻게... 어떻게... 내가 죽여버리자고 했잖아. 신고라도 하면 어쩔거야.
    할머니, 곰곰이 주변을 살핀다. 바닥에 떨어진 낫을 주워 든다.

    할머니 신고할 사람은 있나? (박순경을 보며) 저 아나 묶어라.

    S#128. 페가 앞/ 밤
    브루스, 맨발로 급하게 뛰어와 폐가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S#129. 폐가 안 / 밤
    부서진 방문을 붙잡고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다. 그러다 이춘삼을 보고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진다.
    이춘삼, 도끼 낫을 갈고 있다. 뒤를 돌아보며 섬뜩하게 웃는다. 천둥 치며 도끼날이 번뜩인다.
    브루스, 몸을 떨며 뒤로 물러선다.

    S#130. 창고/ 밤
    기둥에 묶여 있던 박순경 서서히 눈을 뜬다.

    할머니E 이제 일어났나? 이 썩을 놈아.

    박순경, 서서히 고개를 들면 할머니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질겁하고 묶인 줄을 풀려고 안간힘을 쓴다. 할머니, 옆에 놓인 밥상을 박순경 앞에 놓는다. 박순경, 벙찐 표정으로 밥상을 본다.

    할머니 니 배 안고프나? (박순경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며) 밥도 안 먹구 이 난리를 치는 기가?

    박순경, 고개를 떨구고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할머니 아까는 미친소 마냥 날뛰더니 왜 이제와서 울고 지랄하노? 아까처럼 또 한 번 내 목
    졸라보지 그르나?
    박순경 손이.. 묶여 있는데 장난합니까...
    할머니 (머리통을 때리며) 니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이나? 그 줄 풀어주면 내 목 또 조를기가?

    할머니, 박순경의 손과 발에 묶인 줄을 풀어준다.

    박순경 (무릎을 꿇고 울며) 어무이 지가 죽일놈입니다. 지가 정신이 나가서 그만 금수만도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무이
    할머니 니 미숙이 많이 좋아하제?
    할머니 (박순경의 어깨를 토닥이며) 니 말 따라 다 내 탓이다. 내가 못나서 공부도 그것밖에 못
    시키고 옷 한 벌 사준 적 없어서 지금 저 꼬라지로 속 시끄럽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서 볼 때마다 물가에 내놓은 아처럼 걱정되고 가엽다. 니처럼 수더분하고 착한아가 우리
    미숙이 옆에 있어주면 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니 알제? 나 사람 잘 보는
    거, 내 오랫동안 니를 봐았지 않나? 니한테도 손해 보는 장사 아이다. 미숙이 저래 못되
    처먹어도 얼굴 하나는 반반하지 않나, 니 꼬라지에 어디 얼굴 이런 가시나 만나겄나.
    박순경 (엉엉울며) 어머니... 제가 앞으로 잘하겠습니더.
    할머니 그만 울어라 밥상머리 앞에서 무슨 눈물이고? 배 많이 고프제? 퍼뜩 처 먹어라. 이 쌍노
    무 새끼야.

    박순경,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밥숟가락을 뜬다. 할머니, 고기반찬을 박순경 밥 위에 올려준다.

    박순경 어머니.. 국이 차갑습니다.
    할머니 니는 뭘 그리 오래 처 자빠져 자노? 다 니 할탓이다. 그냥 묵어라. 그리고 오늘 내랑같이
    할 일이 좀 있다. 든든히 먹어둬라.
    박순경 (킁킁거리며) 근데.. 어머니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혹시 반찬 상한 거 아닙니까?
    할머니 무신 잔말이 그리 많노. 그냥 처먹어라. 이놈아는 무슨 주딩이를 그리 놀려 쌓노. 이빨 다
    뽑아내뿌려야 조용히 먹을끼가?

    박순경, 움찔하며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박순경 옆으로 피 묻은 쌀 포대가 벽에 기대 있다.

    S#131. 파출소 밖/ 늦은 밤
    곽반장, 담배를 물고 서 있다. 주변을 유심히 둘러본 뒤 비장하게 코트 깃을 세운다.

    S#132. 마당/ 같은 시각
    영철, 평상에 누워 입 벌리고 자고 있다. 그 옆으로 한철, 똥개의 앞발을 잡고 질질끌며 놀고 있다. 똥개 괴롭다는 듯 낑낑댄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미숙, 그 모습을 보며 킥킥대고 웃는다. 지수, 방에서 나와 미숙 옆에 앉는다. 한철, 똥개를 바닥에 팽개치고는 누나 옆으로 뛰어가 앉는다. 그때 한두 방울씩 빗방울 떨어지다 이내 우두둑 쏟아진다. 영철, 얼굴 위로 비가 퍼붓는다. 입에 빗물이 들어갔는지 컥컥대며 툇마루로 달려와 입고 있던 츄리닝을 벗어 얼굴과 겨드랑이를 닦는다. 똥개도 따라 처마 밑으로 들어와 배를 깔고 눕는다. 마루에 앉은 네 사람, 비 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평안이 감돈다.

    S#133. 창고/ 같은 시각
    박순경, 마지막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국그릇도 깨끗하게 비운다. 요란스럽게 들리는 빗소리.

    할머니 날 참 좋네...
    박순경 저도... 비오는 날이 좋습니더. (수줍게) 어머님...

    S#134. 마당/ 늦은 밤
    박순경, 세차게 비를 맞으며 무릎 꿇고 마당 한 가운데 있다. 영철, 지수, 한철 나란히 마루에 앉아서 박순경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S#135. 할머니방 / 같은 시각
    미숙 개자식,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뭐야? 엄마는 딸냄이 맞아 죽는 꼴 보고도 저 인간 받아주
    겠다고? 난 못해. 차라리 죽고 말지.
    할머니 (미숙의 등짝을 때리며) 죽어? 죽고 말어? 에미 앞에서 주둥이 자알 놀린다. 니는 이뻐서
    내가 여태 붙들고 있는 줄 아나? 남이면 당장 가서 묻어버렸다. 도대체 무슨 짓거리 하고
    돌아다니노? 니 그 버릇 아직도 못고쳤나?
    미숙 나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야.
    할머니 먹고 살자고 하는 짓? (등짝을 때리며) 먹고 살라고 아무한테나 빤스벗어 주고 다니나?
    그래 말 나온김에 들어나 보자. 와 그렇게 사는데?
    미숙 내가 사는 게 뭐 어쨌다고? 엄마도 우리 끼고 결혼했잖아. 그게 뜯어 먹을 게 있으니까
    그랬던거 아니야? 그 사람 죽고 딸도 쫓아내고 엄마 욕심대로 이 집 얻은 거 아니야?
    할머니 니 그리 말하면 속 편하노? 그래 내 서방 복 없어서 서방 먼저 보내고 니들 키우면서 살
    았다. 악착같이 안 해본 일 없이 살아도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 한 적 없다.
    미숙 나도 그렇게 사는 것뿐이야.
    할머니 제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좀 살아라. 이 에미 속 터져 죽는 꼴 보고싶나? 사람은 절대 혼
    자 살 수 없는기다. 서로 살 부벼 가면서 의지하고 사는기다. 내 언제까지 니 끼고 살줄
    아나?
    미숙 나도 엄마처럼 얻어터지면서 살라고? 난 그렇게 못살아
    할머니 박순경, 그럴 사람 아니다. 니만 똑바로 하고 살면 나중에 니 새 옷 입혀줄 사람이다.
    미숙 엄마가 어떻게 알아?
    할머니 내가 지금은 이래도 예전엔 무당짓 안했나?
    미숙 (볼멘소리로) 그럼... 이집 팔고 나 일억만 해줘.
    할머니 (미숙의 등짝을 때리며) 콱 영혼결혼식 올려줄까,

    S#136. 마당/ 늦은 밤
    문을 열고 미숙과 할머니가 나온다. 여전히 마당에 무릎 꿇고 비를 맞고 있는 박순경, 그를 지켜보고 있는 영철, 지수, 한철,

    박순경 잘못했다 미숙아. 내 니가 시키는데로 다 할게.
    미숙 그럼 죽어
    박순경 알았다. (자신의 목을 조르며 마당을 뒹군다.)

    미숙, 방문을 열고 나와 영철의 추리닝을 들고 박순경 앞에 멈춰선다. 그리고 추리닝으로 박순경의 목을 조른다. 박순경, 켁켁거리며 목에 감긴 옷을 움켜쥔다.

    미숙 (핏대를 세우며) 또다시 그러면 정말 죽여버린다.
    미숙, 추리닝을 풀고 박순경의 바라본다. 눈물과 빗물이 뒤섞인 박순경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아려온다. 들고 있던 추리닝으로 박순경의 얼굴을 닦아준다.

    박순경 미안하다 미숙아... 내 다시는 그럴 일 없을기다. 하늘에 맹새한다.

    박순경, 미숙을 꼬옥 끌어안는다. 번쩍이며 천둥번개가 내리친다.

    영철 (벙찐듯 둘을 바라보며) 지수야. 너 아빠 생겨서 좋겠다.

    지수, 짜증스럽게 우산을 펼치고 밖으로 나간다.

    영철 야 비오는데 어디가?

    한철,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S#137. 폐가 안/ 같은 시각
    젖은 옷깃을 털며 곽반장이 안으로 들어온다. 처참히 살해된 브루스의 시신이 바닥에 누워 있다.

    곽반장 또 시작인 건가? (옷깃을 여미며 급히 밖으로 뛰어나간다.)

    S#138. 할머니 방/ 같은 시각
    불꺼진 방, 촛불을 가운데 두고 영철과 할머니. 미숙, 박순경이 어색하게 앉아있다.

    할머니 (박순경을 보며) 니는 이제 내 아들이나 다름없다. 이제 박순경도 우리집 식구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박순경 (비장하게) 네 어머님.
    할머니 영철이 니가 박순경하고 같이 가라.
    영철 다음에 하면 안돼요? 비도 오는데...
    할머니 오늘이 손 없는 날이다. 퍼뜩 잘 보내주고 와라.
    미숙 무슨 이사가? 짐 나르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 잡귀 불러들이고 싶나?
    박순경 (말을 자르며) 근데 어머니 전기 좀 먼저 손보고 하면 안돼요? 어두워서 쪼가 눈이 침침
    하네요.

    가족들 싸늘이 박순경을 바라보자 박순경, 머쓱한지 시선을 회피한다.

    S#139. 창고/ 늦은 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박순경과 영철. 영철, 손전등을 들고 주변을 비춘다.

    영철 저기 쌀포대 드세요.
    박순경 (싱글벙글) 알았다. 크큭, 처남 (쌀포대를 들어 어깨에 걸친다.) 근데 뭐가 이리 무겁나?
    아이구 냄시야 고라니라도 잡았나? 썩은내가 진동을 한다. 이런거 잡았으면 빨리 치워야
    지 이렇게 뒀다가 벌레 꼬이고 난리난다.
    영철 (삽을 집어 들고는) 따라오세요.

    영철의 뒤를 따라 나가는 박순경.

    S#140. 구멍가게 안 / 같은 시각
    바닥에 빗물이 흥건이 고여 있다. 누군가 껌 한 통을 꺼내 포장을 뜯고 잘근잘근 씹는다. 한 손에 도끼가 들려있다.

    S#141. 구멍가게 안/ 늦은 밤
    지수, 우산을 접고 들어간다. 계산대를 보니 오백원 동전이 놓여 있고 아무도 없다. 지수, 안쪽으로 들어가 생리대를 찾는다.

    S#142. 길가/ 같은 시각
    비가 더욱 거세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 박순경, 쌀 포대를 어깨에 이고 영철 뒤를 따라간다. 길을 지나가던 이장, 우연히 둘을 발견하고 다가온다.

    이장 비 오는데 어딜 가는가?
    박순경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볼일이 좀 있어서요. 이장님은 어디 가십니까?

    영철, 이장의 눈치를 살피며 긴장한다.

    이장 응...(영철을 보며) 볼일이 있어서.
    영철 네. 그럼 살펴 가세요.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영철, 급히 박순경을 이끈다. 이장, 길을 가다 돌아서 그 둘을 본다. 뭔가 미심쩍은지 고개를 갸웃하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길을 걷는다.

    S#143. 길가 / 같은 시각
    이춘삼, 껌을 잘근잘근 씹으며 빗속을 헤치고 걸어간다.

    S#144. 경찰서 이층 / 같은 시각
    이형사, 안절부절 전화를 걸고 있다.

    이형사 지혜씨, 지혜씨, 전화 좀 받아봐요. 제발...

    이형사 (입술을 깨물며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지혜씨 내가 꼭 지켜 줄께요. (몸을 감싸고 밖
    으로 나간다.)

    S#145. 할머니방 / 늦은 밤
    미숙 이 집구석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벼락 맞았다고 전기가 나가냐. 근데 둘만 보내도
    괜찮은 거야?
    할머니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온 식구들이 구경가나? 괜히 아들 일하는데 방해만 된다. (자리에
    일어선다.)
    미숙 어디가? 무섭게..
    미숙, 할머니의 바지를 붙잡자, 스스륵 내려가는 바지. 할머니, 짜증스레 바지를 추켜 올린다.

    할머니 그래도 에미랑 이래 앉아 있으니 좋나?
    미숙 쭈그렁 망탱이 할망구랑 있는데 뭐가 좋겠어. (베시시 웃으며) 서방이랑 있어야 좋지
    할머니 옘병할년. (일어나 나간다)

    S#146. 버느나무 길 / 늦은 밤
    비를 맞고 걸어가는 이춘삼, 모자 아래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물웅덩이를 밟고 무심하게 걸어간다. 굳게 다문 입가에 살기가 느껴진다.

    곽반장E 이춘삼

    뒤를 돌아보면 저만치 가뿐 숨을 몰아쉬며 곽반장이 서 있다. 이춘삼, 살기어린 눈빛으로 곽반장을 바라본다.

    곽반장 (헐떡이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가 될 줄이야. (총을 겨눈다.)

    피식 웃는 이춘삼.

    S#147. 산 길 / 같은시각
    박순경, 비틀거리며 쌀 포대를 지고 올라간다. 영철, 삽을 어깨에 걸치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S#148. 산 중턱 / 늦은 밤
    박순경, 쌀 포대를 털석 던져 놓으며 주저 앉는다. 영철, 주변을 둘러보다 박순경에게 삽을 건넨다.
    박순경, 마지못해 삽을 받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디졸브
    영철, 쌀 포대를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는다. 박순경, 삽으로 흙을 퍼서 구덩이에 던진다. 영철, 손으로 흙을 밀어 구덩이 안으로 넣는다. 번개가 내리치며 둘의 모습이 번뜩인다. 카메라 뒤로 빠지면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시체가 빗물에 씻겨 드러난다. 번개가 번뜩이며 마수의 얼굴이 드러난다.

    S#149. 버느나무 길/ 같은시각
    이춘삼과 곽반장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다. 곽반장, 두려운지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이춘삼, 손에 든 도끼를 움켜쥔다.

    곽반장 이제 그만 하지.

    이춘삼, 도끼를 들고 곽반장에게 돌진한다. 곽반장,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고장인지 방아쇠가 움직이지 않는다. 총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춘삼, 광기어린 눈으로 곽반장을 향해 달려오며 도끼날로 힘껏 찍는다. 나무에 박히는 도끼날, 곽반장, 그대로 기절한다. 이춘삼, 섬뜩하게 웃는다.

    이춘삼 (곽반장의 귀에 대고) 기다려.

    기절한 곽반장, 아무런 미동도 없다.

    S#150. 할머니방 / 늦은 밤
    미숙, 텔레비전을 켜보려고 전원을 버튼을 여러 번 누르지만 켜지지 않는다.

    미숙 드라마 할 시간인데 왜 빨리 안 고쳐.

    미숙, 방문을 열고 밖을 살핀 뒤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들어와 집 이곳저곳을 뒤진다.

    미숙 도대체 어디다 놓은거야. 하여튼 노인네 누가 무당아니랄까봐. 귀신같이 잘도 숨겨
    놨네...

    S#151. 버드나무 길가/ 늦은 밤
    걸어오는 박순경과, 영철, 앞을 보니 나무 아래로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박순경, 달려가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박순경 아이구 비도 오는데 왜 이러고 있습니까.

    영철, 손전등으로 남자의 얼굴을 비춘다.

    박순경 어? 이 반장새끼? (흥분하며 멱살을 잡고 흔들며) 이 새끼 너지, 미숙이랑 붙어먹은
    놈이 너지?

    박순경, 멱살을 잡고 흔들자, 곽반장, 죽은 듯 축 늘어진다. 영철, 기겁하며 뒤로 물러난다.
    영철 (떨리는 목소리로) 주., 죽었어요?
    박순경 (가슴에 귀를 대보며) 숨은 쉬는데? (멱살을 잡고 흔들며) 이 쌔끼가 어디서 죽은 척이고?
    퍼뜩 몬일어나나.
    영철 그만하세요. 그러다 사람 잡겠어요.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요.

    영철, 곽반장을 박순경 등에 밀어 넣고 박순경, 얼떨결에 곽반장을 업는다.

    S#152. 부엌/ 같은 시각
    할머니 (촛불을 들고 두꺼집을 살피며) 이게 우째 내려갔노.

    할머니. 두꺼비 집을 올린다. 그러나 켜지지 않는 전등.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까치발을 들고 알전등을 만진다. 곧 깜빡거리더니 들어온 불. 할머니, 손을 털며 돌아서자 문 앞에 도끼를 든 이춘삼이 서 있다.

    S#153. 할머니 방 / 같은 시각
    미숙, 이곳저곳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텔레비전 켜지고 뉴스가 나온다.

    미숙 앗! 깜짝이야

    현상수배 중인 이춘삼에 대한 보도. 미숙 채널을 돌려 드라마를 본다. 화면이 고르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다.

    미숙 (티비를 치며) 에이씨, 노인네 돈 아껴서 뭐해. 티비나 좀 사지.

    S#154. 부엌/ 같은 시각
    도끼를 들고 있는 이춘삼, 할머니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할머니,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친다.

    할머니 니 누꼬?
    이춘삼 이춘삼
    할머니 여긴 뭐하러 왔나?
    이춘삼 일하러.

    S#155. 할머니 방 / 같은 시각
    미숙, 티비를 손으로 툭툭 친다. 그때 벽을 뚫고 나오는 도끼날, 깜짝 놀라 뒤로 벌렁 넘어진다.

    미숙 깜짝이야. (짜증스럽게) 노인네 눈치 하나는 빨라요. 더러워서 안 가져간다. 안 가져가.

    S#156. 부엌 / 늦은 밤
    이춘삼, 할머니를 향해 도끼를 내려친다. 할머니, 급히 다른 곳으로 피하고, 빗나간 도끼, 벽에 내리꽂히며 황토벽 한쪽이 부서져 내린다. 이춘삼 광기어린 눈으로 또다시 할머니를 향해 도끼를 내리친다. 할머니, 피하며 볼록 튀어나온 벽에 도끼가 찍힌다. 찍힌 도끼를 뽑으니, 벽이 우르르 무너지며 작은 나무상자가 드러난다. 이춘삼, 의아하게 바라보며 꺼내 든다. 할머니, 부엌칼을 집어 들어 이춘삼의 등을 찌른다. 이춘삼, 갑작스런 공격에 쓰러지며 들고 있던 상자를 떨어뜨린다, 상자 안에 든 집문서와 금반지가 바닥에 나뒹군다. 할머니, 집문서를 들고 황급히 밖으로 나가려다 앞에 서 있는 이장과 마주친다. 번개가 내리치며 웃고 있는 이장의 얼굴이 섬뜩하게 번뜩인다.

    S#157. 삼촌 방/ 같은 시각
    번개가 내리치고 소란스러운 와중에 편히 잠들어 있는 한철.

    S#158. 부엌 / 늦은 밤
    이장, 할머니를 밀치고 바닥에 놓인 집문서를 집어 든다.

    이장 (흥분에 들떠) 이게 여기 있었구만, 혹시나 현숙이 년이 들고 튄 줄 알았드만, 역시 누님
    이 챙겼었네... (능청스럽게 웃으며) 진작에 줬으면 서로 맘 상할 일 없을거 아닌가?

    할머니, 몸을 바르르 떨며 화를 억누르고 있고, 이춘삼, 이장 뒤에서 이 둘을 지켜보고 있다.

    이장 (할머니에게) 이 문서만 넘기면 공사 바로 시작되는 거제. 내가 돈은 부족하지 않게 챙겨
    줄 테니까 좋은 곳으로 이사 갈 준비나 하소. 삼억 정도는 챙겨줄 테니께 (비열하게 웃
    는다)

    이춘삼, 삼억이란 말에 움찔한다.

    이장 (이춘삼을 돌아보며) 자네는 이제 일 다 끝냈으면 그만 돌아가 봐라 (능청스레) 좀 살살하
    지, 힘없는 노인네도 생각해 줘야제..

    할머니, 몸을 바르르 떨며 이장한테 달려든다. 이장, 할머니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이장 이거 왜 이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이 집 성님이 현숙이
    년 앞으로 준거 가로챈거 아이가? 와? 내 말이 틀렸나? 쯧쯧... 저래 사니 서방 먼저 가
    고 자식 복 없이 그 꼬라지로 살지.

    할머니, 이를 악물고 이장을 노려본다. 그때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이장의 머리에 도끼가 찍히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할머니 무릎 위로 떨어진 집문서. 갑자기 들리는 미숙의 비명 소리. 미숙, 겁에 질려 뒷걸음친다. 할머니, 집문서를 움켜쥐며 일어나려 애쓰지만, 상처가 심한 다리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 할머니, 미숙에게 도망가라고 손짓한다. 이춘삼, 할머니를 향해 도끼를 내리친다.

    미숙 (소리치며) 엄마.
    짧은 총성, 이춘삼,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돌아보면 이형사가 총을 겨누며 서 있다. 이춘삼, 피 묻은 도끼를 들고 이형사를 노려본다.

    S#159. 할머니집 마당
    이형사 (겁에질려) 소....손들어. 너를 살인혐의로 체...체포한다. 너...너는 무..묵비권을 행,,행사..
    할 수 있으며...
    미숙 (떨리는 목소리로) 오...오빠...
    이형사 지혜씨... 괜찮으십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할머니, 미숙, 긴장하며 이형사를 주시한다. 모두 멈춰선 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형사, 총을 겨눈 채 꼼짝 안고 서 있다.

    영철 엄마... 엄마... 큰일 났어.

    영철, 삽을 어깨에 메고 다급하게 들어온다. 뒤이어 기진맥진한 채 곽반장을 업고 들어오는 박순경.

    영철 (이춘삼을 보며) 어? 형님 여기는 어쩐일로... 삽 받으러 오셨어요?

    박순경, 부엌을 보니 이장이 피를 흘리고 죽어 있다.

    박순경 (이춘삼을 가리키며) 현상수배범?

    이춘삼, 다리에 피를 흘리며 영철을 올려다본다. 박순경, 팔에 힘이 빠지며 곽반장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곽반장,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움찔하지만 기절한 척한다.

    이형사 (놀라며) 반장님!!!
    영철 (이형사를 보며) 뭐...뭐야?...총?..경찰이야?

    미숙, 일어나 천천히 뒷걸음친다. 마당에 놓인 맥주병을 들고 이형사에게 다가간다. 이형사, 총을 움켜쥔 채 이춘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미숙, 천천히 다가가 이형사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친다.
    이형사, 그 자리에 바로 쓰러지고, 박순경, 놀라 미숙을 바라본다.

    미숙 개새끼 날 속여? 남자새끼들 다 똑같아 입에 발린 말로 꼬셔서 옷이나 벗겨보려고 지랄
    들 하지. 결국 단물만 먹고 버릴거면서.
    박순경 (기겁하며) 미...미숙이...
    영철 (놀라며) 누나... 왜... 또 그래...

    할머니, 떨어진 총을 잡으려 마당으로 기어간다. 이춘삼, 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할머니, 총을 집는 순간 멈춰 선다. 어깨를 보니 도끼가 찍혀있다. 이춘삼, 일어서 할머니를 노려본다.
    미숙 (경악하며) 어....엄마...

    이춘삼, 할머니를 향해 한 번 더 도끼를 내리친다. 그때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이춘삼 그 자리에 쓰러진다. 박순경, 부들부들 떨며 이춘삼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또 다른 허벅지에 총을 맞은 이춘삼, 박순경을 노려본다. 미숙, 울먹이며 질퍽이는 마당 가운데로 할머니를 끌고 온다. 할머니, 얼굴 위로 빗방울이 거세게 떨어진다.

    미숙 (손에 묻은 피를 보며 울부짓는다) 아악! 엄마..... 어떻게.... 어떻게.... 엄마,,,,어떻게....
    할머니 (문서를 건낸다) 니끼다. 니... 자알 사는거 보고.. 줄라고 했다. 이거 들고 가서.. 에미
    노릇...똑바로..하면서..(쿨럭이며 피를 토한다) 자알... 살어라. 나처럼 살지 말고..
    남들처럼.. 제발... 자알... 살아라.
    미숙 (울부짓는다) 엄마.... 엄마... 안돼... 엄마......

    할머니, 힘겹게 앞을 본다. 뿌옇게 흐려지며 대문 앞으로 서 있는 여자(현숙)가 보인다. 할머니, 여자를 안쓰러운 듯 바라보지만 여자, 무심하게 할머니를 본다.

    플레쉬백 (할머니 집/ 마당)
    - 젊은 날의 할머니가 남편에게 발길질을 당하며 맞고 있다. 그 와중에 평상에 앉아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열 살의 현숙.
    - (방안) 중학생이 된 현숙, 마루에 앉아 공부를 한다. 그를 지켜보는 어린 영철과 미숙, 꼬질꼬질한 모습에 늘어진 옷을 입고 있다.
    - (마당) 아버지의 장례식이 한창이다. 고등학생이 된 현숙, 상복을 입고 눈물을 훔친다.
    할머니, 뒤에서 안타깝게 현숙을 바라본다.
    - (집 마당, 새벽) 현숙, 가방을 들고 집을 나간다. 할머니, 현숙의 팔을 붙잡는다.
    할머니 미안타.... 미안타...
    현숙 더러운 손 치워.

    할머니를 뿌리치며 경멸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얀 현숙의 원피스가 바람에 나부낀다. 현숙,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

    할머니 얼굴 위로 빗물이 고인다.

    할머니 (허공을 보며) 미안타...미안타... 니 한테는... 내가...(피를 토하며) 참말로... 미안타.
    같이...가자...가서... 다...풀어라.

    할머니, 눈을 감았다 뜨면 겁에 질린 지수가 문 앞에 서 있다. 지수, 할머니를 지켜보다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할머니, 눈을 감는다. 미숙, 할머니를 안고 꺼억꺼억 울어댄다.

    영철 (멍하니) 어....엄마....
    영철, 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성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이춘삼을 정신없이 삽으로 내리친다. 박순경, 급히 영철을 붙잡고 막는다. 영철, 삽을 바닥에 던지며 울부짖는다. 이춘삼, 얼굴에 피범벅이 된 채 웃는다. 곽반장. 기절한 척 실눈 뜨고 모든 상황을 지켜본다. 그러다 주변을 살피는 박순경과 눈이 마주친다.

    박순경 (곽반장 귓가에) 이춘삼은 당신이 잡은 걸로 할테니까 오늘 일은 못 본 걸로 합시다.
    우리 이 시간 이후로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겁니다..

    곽반장, 바닥에 얼굴을 묻고 꼼짝도 안한다.

    박순경 (권총을 곽반장 머리에 겨누며) 같은 처지에 밥그릇 싸움하지 말고 우리 여기서 쉽게 끝
    냅시다. 내는 계급장도 현상금도 필요 없는 놈입니더. 반장님 다 갖고 입만 다물어 주면
    내도 무덤까지 갖고 갈랍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면 지금 같이 무덤까지 갖고 가든
    가.

    곽반장, 고개만 끄덕인다. 방문을 열고 눈을 비비며 나오는 한철. 포화 속 같은 마당을 본다. 대문을 보니 한 여자가 걸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철, 마루에 앉아 무덤덤하게 모두를 바라본다.

    페이아웃, 페이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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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160. 할머니 집 마당 / 아침
    평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지수, 한철, 영철, 박순경. 할머니.
    박순경, 달걀프라이를 한철 밥 위에 올려준다. 한철,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서 함께 입에 넣는다. 미숙, 숭늉을 들고 와 밥상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예전과 달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

    박순경 늦지 않게 애들 학교 보내고 (오만원 두 장을 밥상 위에 놓으며) 옷이라도 하나 사 입어.
    날도 좋은데 읍내가서 바람도 좀 쐬고.
    미숙 (주머니에 넣으며) 알았어..
    박순경 처남은 오늘 일 없으면 가게 좀 봐라. 물건도 좀 챙겨 넣고.
    영철 네
    지수 돈 주세요. 참고서 사야돼요.

    박순경,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준다.

    지수 더 주세요.

    박순경, 만원 한 장을 더 건네고 지수, 받아서 주머니에 넣는다. 할머니, 생선 살을 발라서 한철 밥 위에 올려놓는다. 한철, 할머니를 보며 씨익 웃으며 밥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는다. 그러다 목에 걸렸는지 컥컥댄다. 미숙, 한철에게 물을 먹인다.

    지수 (꾸벅 인사하며) 다녀오겠습니다.

    지수 가방을 메고 대문 밖으로 간다. 그러다 돌아서 할머니 방을 보면, 활짝 열린 방 안으로 할머니 영정사진과 제사상이 놓여 있다.

    S#161. 구멍가게 안 / 낮
    한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혼자 자전거를 타고 밖에서 놀고 있다, 영철, 계산대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멍하니 한철을 지켜보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온다.
    앵커E 서울지역 부녀자 연쇄살인범이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연쇄살인범 이씨는 경찰의 추적
    중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경상도 일대를 오가며 납치 살해하는 대범함을 보여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지수,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영철 옆에 앉아 멍하니 뉴스를 본다.
    앵커E 이씨는 경상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남학생 한 명과 노인 세 명, 남성 한 명을 흉기로
    살해하고 산에 매장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지수, 선반에 놓인 땅콩 한 봉지를 뜯는다. 영철, 땅콩을 함께 먹으며 뉴스를 본다.

    앵커E 이에 따라 경찰은 이날 이씨의 가방을 수색해 당시 사용했던 흉기를 증거품으로 압수하
    는 한편, 30일 오전 11시 브리핑을 통해 자세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한철, 가게 안으로 들어와 땅콩을 한주먹 집어 밖으로 나간다.

    앵커E 또한 경찰은 경상도 한 야산에 목매단 채 숨져 있는 백골 여성의 시신을 두고 이 사건에
    대해서도 관련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수, 순간 영철을 바라본다.

    영철 (당황하며) 뭐? 더 먹을래?

    지수, 고개를 돌리고 다시 땅콩을 먹으며 티비를 본다.

    S#162. 빌라 안 / 낮 / 씬1의 빌라.
    방안으로 들어서는 곽반장. 사건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고 바닥엔 하얀색 마커로 그 당시 시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곽반장, 주변을 둘러본다. 이형사, 따라 들어온다. 머리에 붕대가 감겨있다.
    이형사 마땅한 증거도 없는데 그냥 사고사로 처리하시죠?

    곽반장, 날카롭게 주변을 살핀다. 순간 선반 위에 꾸깃꾸깃 접힌 종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종이를 펼치고 찬찬히 살펴본다.

    인서트
    아이가 그렸을 법한 그림.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이 있고 그 옆으로 몇몇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곽반장 (그림을 이형사에게 보여주며) 무슨 그림 같나?
    이형사 글쎄요. 눈 내리는 건가?
    곽반장 그림을 들고 바라보다 문득 바닥에 그려진 시신의 모습과 번갈아 본다. 종이의 그림과 바닥에 마커로 그려진 시신의 모습이 얼핏 일치한다.

    S#163. 구멍가게 밖 / 같은 시각
    한철, 땅콩 한 주먹을 입에 털어 넣고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 END -
    곽경선

    곽경선

    1984년 서울 출생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1. 로그라인
    사람을 죽이고, 강간을 해도 괜찮아 우린 가족이니까. 아픈 손가락이 유일하게 뭉치는 시간, 은폐와 은닉이 난무한 사건의 중심에 가족이 뭉쳤다. 반사회적 경향이 유일하게 묵인되는 시간,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다. 우연히 마주한 살인 현장과 시신들 그들은 서로 의심하지만 아니라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점점 조여오는 탐욕에 눈먼 사람들, 계속해서 마주하는 살인사건들과 늘어가는 시신들, 하필 또 그곳에 휘말리며 오합지졸 가족들이 머리를 맞댄다. 가족을 향해 조여오는 의문의 그림자와 그들을 노리는 타인들, 가족들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2. 캐릭터소개
    1) 할머니 : 70세, 전직 무당. 현재 주부, 첩으로 들어와 가족을 위해 희생. 욕쟁이에 무뚝뚝한 성격. 평생 첩으로 살면서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왔다. 오직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며 모든 사건을 은폐한다.
    2) 미 숙 : 40세. 커피 배달 아르바이트. 돈 많은 남자 만나 한몫 챙기는 게 꿈, 대학 못 간 게 한이지만 결국 여자는 예뻐야 어딜 가든 먹고 살 수 있다는 철칙을 갖고 시골집을 떠나 서울로 도망쳤지만,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자식을 데리고 시골집으로 내려와 도피 생활을 이어간다.
    3) 영 철 : 37세, 대졸, 백수, 가족이 모르는 비밀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이복 누나를 향했던 갈망과 돌이킬 수 없는 실수, 그리고 그녀의 죽음. 그런 그가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백수일대 최대의 위험과 마주한다.
    4) 지 수 : 고1 여고생. 시크한 왕따. 죽은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사차원 여고생, 주변에서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의 실체를 찾고자 움직인다.
    5) 한 철 : 10살. 남자아이, 실어증. 영혼을 봄.
    6) 박순경 : 45살. 노총각, 작은마을 순경. 가장 큰 숙제는 미숙의 마음을 사서 결혼하는 것.
    7) 이 장 : 60세. 동네이장. 표리부동으로 사람들을 꼬드겨 이익을 취하려고 갖은 모략을 쓴다.
    8) 곽반장 : 50세. 강력계 반장. 토강여유. 항상 직감을 믿음.
    9) 이형사 : 30살. 곽반장을 추종하는 신참 형사.
    10) 마 수 : 고1 남학생. 순정파. 모자라지만 예의 바르고 착함. 전학 온 지수를 짝사랑하지만 약하고 허술해 오히려 지수에게 귀찮은 존재, 이춘삼에 의해 살해됨.
    11) 이춘삼 : 40세. 연쇄살인범,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죽여버림.
    12) 여자(현숙) : 영철의 이복 누나. 가녀리고 청초한 외모.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 고1 때 영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야산에서 자살.
    13) 브루스 : 35세. 흥신소 직원, 할머니 집문서를 훔치려 하지만 실패. 이춘삼에게 살해당함.

    3. 줄거리
    애초에 없었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위해 가족이 뭉쳤다.
    할머니 혼자인 집에 하나둘 자식들이 모여들며 피곤해지려고 할 때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동거남의 죽음에 연루되어 도피 중인 미숙, 예전 이복누나를 성폭행했던 영철, 할머니는 또다시 살인사건에 자식들이 휘말릴까 신고도 하지 않고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다. 그 시각 서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곽반장, 이형사는 유력한 용의자로 동거녀 미숙을 주목하고 미숙의 고향 집에 무작정 내려와 은밀한 조사를 시작한다. 한편,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도피하던 이춘삼은 우연히 마을로 들어오게 되고 동네 이장을 만난다. 이장은 이춘삼을 흥신소 직원으로 오해해 착수금을 건네고 할머니네 집문서를 훔칠 것을 지시한다. 이춘삼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마을 폐가에 자리 잡고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마을 주민들을 하나둘 살해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처참히 살해된 시신과 마주하게 되는 가족들, 그들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하드코어적인 행각을 벌이며 새삼 가족애를 느낀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형사들과 할머니를 노리는 잔혹한 살인범, 재산을 훔치려는 음흉한 이장 사이에서 그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결국 할머니는 이춘삼의 도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고이 간직했던 집문서를 미숙에게 주며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눈을 감기 직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집 주변을 떠돌던 현숙과 마주한다. 고된 삶 가운데 현숙을 품지 못하고 그녀의 죽음을 방관했던 시간을 사과하며 그녀와 함께 먼 길을 떠난다. 그 후 가족들은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고즈넉한 시골집을 지키며 살아간다. 할머니의 뜻대로 새롭게 구성된 가족은 과거 루저의 모습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도 자신을 유일하게 지켜주는 울타리이자 모든 것이 허용되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가화만사성을 이뤄내기 위해 살아간다.
    곽경선

    곽경선

    1984년 서울 출생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오정미 작가·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올해 본심에 올라온 열한 편 시나리오는 절반씩 드라마와 장르로 나뉘었다. ‘인간의 자격’은 수능 날의 의문사를 파헤치는 교훈적 이야기로, 순진한 호러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드라마인 ‘디어 마이 패밀리’, ‘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고’는 평범한 이의 죽음을 다루는 태도와 시각화가 꽤 인상적이나 어디서 본 듯한 길을 가는 안전주의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B급 코미디인 ‘사나이 테스트’ 또한 자기만의 병맛 유머로 결국 도식적 코미디를 복제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편 ‘나혜석, 나혜석’에서 두 나혜석이 사는 시공의 기계적 배합은 치명적 약점이다. 그럼에도 실존 인물 나혜석 일생의 결정적 장면들을 관념에 얽매임 없이 바라본다는 점, 한 사람의 예술가를 예술가로서 존중해 낸다는 점은 이 작가의 작가다운 그릇을 상상하게끔 한다.
    당선작 ‘옹이’는 끔찍하고 웃기는 코믹호러스릴러다. 각종 강력범죄가 총집합된 소동극은 짜임새 있고 지루한 부분이 없다. ‘대체 이런 음산한 이야기를 낄낄거리며 써내는 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의문을 남기기는 하지만, ‘영화란 게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라는 시각에서는 그저 흔쾌히 받아들여질 만한,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작품이다.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타고난 듯한 이 작가에게 남기고픈 질문은, ‘작가로서 어디까지 욕심내시는지?’이다. 심사자들은 그가 내민 생뚱맞은 제목 ‘옹이’에 기대를 걸어본다. 나무속에 마치 암처럼 숨어 있다 어느새 폭 튀어나오는 그 꼬인 놈, ‘옹이’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것이 혹여 그의 작가적 숙명이라면, 더 거칠게 서슴없이 막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보시기를.
  • 곽경선

    곽경선

    1984년 서울 출생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결혼 후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낯선 환경과 마주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서울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저에게 바람과 소금으로 채색된 바닷가 마을은 늘 설렘이었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동네는 숨을 고를 준비의 시간을 주었으며, 온통 사과나무로 이어진 가로수길은 열매의 시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첫 시작은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이방인이 아닌 풍경의 일부가 되었고, 그 끝은 언제나 감동이었습니다. 함께 숨 쉬고 같은 질문을 던지는 우리에게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라며 각자의 길 위에서 희로애락을 만들어 갔습니다.
    시나리오 역시 저에게는 그런 낯선 첫걸음이었습니다. 시와 소설로 활자에 머물러 있던 이야기들이 시나리오에서는 움직이는 장면과 실체로 다가왔고,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부족함 앞에 주저앉기도 했지만, 문학은 장르의 경계가 아닌 연결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무지함에 부끄러웠고, 배워 가는 과정에 행복했습니다.
    첫 투고로 이처럼 큰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쁨보다도 책임의 무게를 먼저 느낍니다. 이 소중한 기회를 발판 삼아 사람과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작가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이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무언다정 성희규 님, 설백무결 김춘자 님, 자유난방 곽난수 님, 따숨강철 곽경미 님, 순둥철인 송규욱 님, 차온겸비 이희숙 님, 똘망귀욤 민준·민규·민성이, 찐친 동지 빛의 동역자들, 영원히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열어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작품전문
  • 시놉시스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