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루빅스 큐브

by  김근희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donga.com

    직원은 다섯 번의 밀린 수술비 결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말을 끝낸 직원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답변을 고민하다 보니 와이셔츠 깃이 목을 조여 왔다. 병실의 침묵 사이로 엄마의 숨소리가 밀려들었다. 손톱을 만지작거리다 엄마의 귀가 열려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짓으로 직원에게 바깥을 가리켰다. 여닫이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직원에게 대답했다.
    “돈은 꼭 구해 보겠습니다. 우선 다음 수술까지만 안 될까요?”
    직원으로서도 방도는 없을 것 같았다. 지침이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들은 적 있었다. 엄마는 가사도우미 일을 삼십 년 했고 그래서 권한 없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아랫사람들의 말에는 힘이 없어. 집에서 바느질을 하며 엄마는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재량도 많이 없지. 그저 그렇게 하라고 배웠을 뿐이야.
    난처해진 직원의 안내를 받아 원무과에 가봤다. 줄은 길지 않았다. 사무적인 얼굴의 다른 직원은 펜을 까딱거리며 물었다. 차상위 계층이세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럼 방도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병원 앞뜰에 나와 담배를 피웠다. 정장 외투를 벗어 벤치에 걸쳐 놓았다. 엄마의 수술비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정장이 보였다. 정장. 나는 직장이 없었다. 직장이 없는데도 왜 정장을 입는지 묻는다면 답할 수 있었다. 버릇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정장을 입어야 하는 직장에 취직한 적도 없었다. 정장은 엄마의 몸통에 관 세 개가 삽입되고 나서 입기 시작했다. 엄마가 가기 전엔 적어도 번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은 거짓말로도 작은 불꽃이 살아날 수 있어서였다. 희망이라기보다는 태도였다. 중요한 건 태도라고, 어렸을 적 친구에게 들었던 적 있었다.


    담배를 필터 끝까지 피웠다. 열감이 손가락에 닿을 때까지도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는 병원에 들어온 뒤로 이 년을 더 살아있었다. 지칠 리 없었다. 엄마가 살아있을 수 있다니 즐겁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정장을 입는 것은 조금 버거웠다. 쇠사슬로 허벅지와 가슴을 휘감는 감각이 싫었다. 그래도 방도는 없었다. 비슷한 정장 하나를 더 샀고 최대한 돌려 입었다. 엄마는 아팠고 그런 것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담배를 비벼 끄고 걸었다. 정신을 차리니 팔 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건널목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옆 여자의 목덜미에는 이슬 같은 땀이 맺히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두 명의 학생은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 상상해 봤다. 이대로 차도를 건너면 어떻게 될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차들이 공기를 찢으니 걸어간다면 찢기는 건 내 쪽일 테다. 쿵 소리가 나고 찢어지는 비명이 들릴 것이다. 아연실색한 운전자가 나오고 행인들의 얼굴에 경악이 덮칠 것이다. 도로에 널브러진 채 마지막으로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해졌다. 가능하다면 지금의 쨍한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각도에 따라 아스팔트가 마지막일 수 있었다. 아플까? 엄마보다도 더 아플까? 순간적이라는 점에서 엄마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신호등이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몸이 뒤로 쏠리는 것처럼, 주변의 사람들은 앞으로 향했다.
    500에 30인 월세방을 빼는 것은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미봉책이었다. 수술비로도 부족했고 사는 곳이 없다면 미래도 없었다. 젖은 눈을 비볐다. 금산에 사는 사촌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했지만 병충해로 죽어가는 깻잎 얘기를 들은 게 지난달이었다. 큰 금액을 융통해 준 이모에게 연락하는 것은 못 할 짓이었다. 중학교 친구들은 나의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니, 친구들은 분명 나를 피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 하늘을 봤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삼십 년 전 우리를 버리고 떠난 지 오래였고 지금은 생사를 몰랐다. 그것을 곱씹을수록 나는 엄마를 놓칠 수 없었다. 엄마가 삼십 년 동안 가사도우미 일을 해서가 아니었다. 엄마가 인생의 한 부분을 불꽃처럼 태우면서 나를 위해 헌신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다. 엄마와 같이 헤쳐간 저녁이 소중했다. 지금도 엄마와 나는 저녁마다 통화를 한다. 무엇을 먹었는지, 아침 온도는 어땠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를 차분하게 얘기한다. 나는 오늘 건널목의 초록불이 유독 빨리 바뀌었고, 어떻게 내가 건널목을 즐겁게 걸어갈 수 있었는지 말할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기침하고 답할 것이다. 그거참 괜찮았네, 하고. 엄마가 답하면 나는 답할 수 있었다. 그래요 그거참 괜찮았죠, 하고.
    500에 30인 월세방 앞 도로는 경사가 가팔랐다. 낡은 빌라 앞 경사를 따라 그림자가 늘어졌다. 그림자는 경사를 따라 커졌다. 걸어가는 내내 커졌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경사 끝에 도착하니 보라색 구름이 눈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아스팔트 언덕에서 핸드폰을 쳐다봤다. 다리의 뻐근함을 느끼며 결국 전화를 걸었다. 곧 신호음이 들렸다. 어지러운 기분도 잠시였다. 이어지는 음은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 여보세요? 하고 젊은 남성이 응답했다. 나는 망설였다.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품어왔음에도 꺼내지 못했던 말을 떠올린 뒤 그 말을 전화기 너머로 공손하게 뱉어봤다.
    안녕하세요 치록님. 혹시 기억하시나요? 김순자 가사도우미님 아들 되는 김현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전화번호는 어머니의 수첩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요, 잠깐 괜찮으시면 통화 가능하신가요?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의 풍경은, 엄마의 직장인지도 모르고 놀러 갔던 거대한 담의 집이었다.
    치록이와 마지막으로 같은 공간에 있었던 건 이십여 년 전이었다. 황치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장님 아들과는 친했다. 사모님과 사장님은 친절했다. 내게 초콜릿과 장난감을 자주 건네주기도 했다. 엄마는 사모님과 사장님을 고마운 어른들이라고 불렀다. 그때의 엄마는 젊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였다고 엄마는 종종 회상하기도 했다.
    우리가 갔던 마지막 계곡도 기억난다. 우리라고 하면 황치록과 그의 가족, 그리고 엄마와 나였다. 서늘한 물방울이 부서지는 여름, 포근하게 감싸 안는 파라솔과 그 아래의 서머 체어. 올림머리를 한 엄마는 분주했고 매끈한 피부에는 투명한 선크림이 반짝거렸다. 피부에 맺히는 땀도 반짝였다. 선명한 구슬이 사방의 경사를 따라 이리저리 굴러가는 것 같았다.
    체구가 크지 않던 황치록과는 구슬 놀이를 자주 했다. 멀리서부터 굴린 구슬을 맞히면 상대의 구슬을 따는 게임이었다. 눈치가 없지 않던 나는 늘 예의를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방향은 틀릴 수 없었다. 구슬 놀이에서 황치록은 대부분 이겼다. 자의와 타의로 승리를 쟁취했다. 이겼을 때마다 떠오르는 치록의 웃음은 환했고 순수했다. 그것은 앞으로 이어질 치록이의 몇십 년 환호를 짧게 요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치록이와는 왜 그렇게 틀어졌을까? 치록이의 남다른 경계심 때문에? 우리가 했던 몇 번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확실한 건 있었다. 구슬 놀이의 패배가 나의 참을 수 없는 것을 건드리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즐거워하는 치록을 보는 것이 오히려 나는 즐거웠다. 치록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았고 충만한 행복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숨겨진 선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승리감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수박을 깨고, 하얀 자기에 새빨간 과육을 공평하게 나누고, 서늘함을 베어 무는 것은 그 후로도 여름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해의 사장님은 새로 구매한 독일산 텐트를 설치했고 엄마는 사장님을 따라 평상을 깔고 폴대를 폈다. 벌레조차 분주하지 않은 계곡에서 사장님과 엄마만이 분주했다. 사모님은 시냇물을 가리키며 개구리의 삶 같은 사소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을 뿐.
    “이게 뭔지 알아?”
    그리고 그때, 치록이가 어디선가 구해 온 루빅스 큐브를 들고 말하기도 했다.
    “루빅스 큐브야.”
    치록이의 손에는 온갖 색으로 혼재된 상자가 있었다. 아니, 사실은 여섯 개의 색만 칠해진 단순한 상자. 치록이는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이거 한번 맞춰 볼래?”
    그리고 나는, 여전히 우리의 관계가 루빅스 큐브로 인해 파탄 났다고 생각한다.


    “루빅스 큐브요? 그런 건 없는데.”
    치록이를 보기 전 나는 루빅스 큐브를 들고 가고 싶었다.
    동네를 돌아다녀도 큐브 파는 곳은 없었다. 손차양을 그리며 생각했다. 왜 없을까? 병원에서는 참 좋은 장난감인데. 큐브는 스도쿠나 트럼프보다도 생산적인 장난감이기도 했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눈동자를 굴리고, 고심한 선택의 결과를 그려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장난감이었으니까.
    같은 병실의 어린 학생이 큐브에 집중하고 있으면 나는 큐브를 가장 빨리 푸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졌다. 학생도 엄마와 같은 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엄마와 다르게 학생은 작고 어린 손으로 하루에 한 번은 큐브를 만졌다. 큐브를 풀 때마다 학생은 언제나 매끄러운 이마를 일그러뜨렸다. 여러 각도를 살펴보고 계속되는 선택을 해봤다. 하지만 학생의 한쪽 면은 거듭할수록 엉망진창으로 됐다. 그러면 학생은 싫증이 난 듯, 큐브를 병상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내가 했던 첫 큐브 맞추기도 학생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계곡 평상에 앉은 치록이는 내가 큐브 맞추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물가를 등지고 열중하는 나의 모습이 안쓰러운 개구리 같았을지도 몰랐다. 계곡에서의 치록이는 그렇게 해야지, 좋은데? 오, 와, 하는 추임새를 몇 번이나 넣었다. 쉽게 풀리지 않는 퍼즐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계속되는 참견에 치록이의 목소리가 거북해졌다.
    그래서 나는 입을 내밀고 치록이에게 큐브를 건네며 말했다.
    “이제 네가 해볼래?”
    치록이는 기다렸다는 듯 응, 그래, 하면서 큐브를 받았다. 그리고 가만히 둔 상자를 돌려보다가 알지 못할 손짓을 하더니 예상보다 금방 큐브를 맞추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 딱 하나, 모든 면이 통일된 색으로 된 풍경은 분명 아름답지 않을 수 없었다. 치록이의 실력이 괜찮을 거라고 예상했음에도 놀라움이 쏟아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신기함은 곧 홍수처럼 범람하여 다른 감정의 지류로 쏜살같이 흘러 들어갔다.
    혹시 내가 모르는 비겁한 수를 쓴 것이지 않을까? 하고.
    마지막 계곡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나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해가 서산의 경계를 태운 뒤였다. 모두가 바비큐를 구워 먹을 때 나는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어두운 텐트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큐브는 치록이의 장난감 가방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의심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큐브를 손에 들었다. 터질 듯한 긴장을 참으며 상자를 살펴봤다. 그렇지만 이번엔 예상과는 달랐다. 그곳에 비겁한 수 같은 건 없었다. 큐브는 견고했고, 정교했다. 어떤 부분에 힘을 주든, 어떤 식으로 조작하든, 큐브는 저항 없이 색색의 면을 윤기 있게 회전할 뿐이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치록이가 어떻게 큐브를 맞췄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달려오면서 흐른 땀으로 보라색 상의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무슨 일이니? 묻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발갛게 상기된 볼에는 검은 그늘 같은 숯검정이 묻어 있었다. 드럼통 안에는 붉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사장님과 사모님은 번들거리는 얼굴로 고기를 뜯고 있었다. 치록이는 언덕의 높은 바위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하얗게 있었다. 하얗게. 이제 곧 떠오를 달처럼 하얗게. 그래서 치록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현이라고? 정말? 연락해 줘서 고마워! 당연히 통화할 수 있지. 잘 지내고 있었어?” 하면서 우리를 기억한다고 대답했을 때, 하얀 달 아래의 치록이가 떠오른 것은 그 반가운 대답이 고마워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십 년 넘게 상상해 왔던 치록이의 목소리를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치록이는 이미 달처럼 높은 곳에 가버린 건 아닐까, 하고. 그러고 보면 치록이는 상상조차 못 할 다른 삶을 살아왔겠구나, 하면서.


    나는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집을 찾아와 달라는 치록이의 부탁이 진심이었던 것 같았으니까.
    근황을 얘기했던 첫 전화가 끝나고 치록이는 다시 전화했다. 치록이는 다른 사람 같았다. 치록이는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말했다.
    “현아, 이렇게 된 거 정말 볼래? 너라면 꼭 시간을 내고 싶어. 괜찮겠어?”
    핸드폰 너머의 치록이는 내게 적극적인 호의를 베풀었다. 나는 방금의 충동적인 선택이 실제적인 무엇으로 귀결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 날 보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난 뒤에도 나는 회색의 벽을 한동안 멍하게 바라봤다.
    치록이를 만나러 간다는 상황이 나는 실감 나지 않았다. 치록이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도, 나는 의심했다.
    단독주택이 모인 미로를 통과하고 수십 개의 모퉁이를 돌면서는 치록이의 세계로 돌입하는 감각이 들었다. 성곽 같은 집들이 드러났다. 치록이의 집은 그런 집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집으로 가득한 구역에서 주소 하나를 찾고 벨을 눌렀다. 치록이가 손수 문 앞까지 나와서 맞이해 주었다. 나보다 약간 더 큰 키와, 윤기 있는 머리칼을 하고, 좋은 원단의 반소매 티를 입은 치록이는 경제 뉴스에서 본 사진과 다르지 않았다. 흔치 않은 치록이의 이름을 미리 찾아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록이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다, 타이밍이 좋았어. 얼마 전까지 뉴욕에 있었거든. 전화했으면 받지 못했을 거야.”
    “그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치록이에게 존댓말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다행이다. 나도 연락할까 망설였거든.”
    “일단 들어와. 고생 많았겠다.” 치록이는 내 어깨에 친근하게 손을 올렸다. 운동으로 다져진 듯한 크고 두꺼운 손.
    치록이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손님의 접대를 위해 가꾸어진 곳 같았다. 내가 소파에 앉자 치록이가 준비된 과일이 많다면서 어떤 걸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과일?” 잠깐 생각하다 우리가 함께 먹던 수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박은 어떠려나?”
    치록이는 좋은 생각이라면서 손뼉을 쳤다.
    “좋네, 마침 어제 들어왔을 텐데. 잠깐만 현아, 부탁하고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치록이가 문을 나서기 위해 옆을 스쳐 가는 순간, 좋은 향기가 났다.
    주인이 사라지고 난 방은 순식간에 적막에 빠졌다. 나는 그제야 좋은 향이 응접실 곳곳을 떠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긴장한 이들의 등을 쓸어내리는 듯한 선택된 향기.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치록이와 놀러 갔던 옛날 계곡의 물 향기 같았다.
    치록이가 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다. 큰 수박 하나를 가슴에 안은 채로.
    “어렸을 때 생각난다. 그치?”
    “그러게.” 나는 불편한 옷의 감각에 저항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장님이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셨는데.” 내 목소리는 반가움에 한껏 높아진 상태였다. “그거 알아? 나는 그분들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걸 잊을 수 없어.”
    “엄마랑 아빠가 그랬어? 영광이네,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거니까.”
    “당연하지.” 나는 치록이가 과도를 들고 수박을 자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치록이의 손은 혈색이 도는 건강한 손이었다. 손이 어떻게 하야면서 빨갈 수 있을까? 저 손으로 큐브를 맞춘다면 어떤 느낌일지 순간 궁금해졌다.
    “맞다, 사장님이랑 사모님은 잘 지내시지?” 내게 두 분의 환한 웃음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치록이는 아, 하더니 말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치록이는 목소리를 낮게 했다. “어머니는 옛날에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이 년 전 갑자기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아예 한국으로 돌아온 거야.”
    나는 미간을 모았다. “미안해. 그런지도 모르고.”
    “네가 뭐가 미안해. 자, 수박이야. 아주 맛있을 거야.”
    치록이가 접시를 건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도우미가 제일 좋은 수박이라고 건네줬거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공유하고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꺼냈다. 그런데 다르게 기억하는 사건이 많아서 신기했다. 이를테면 치록이가 가장 친하게 생각한 사람이 나였다는 이야기. 치록이가 구슬 놀이에서 더 많이 졌다고 기억하는 이야기. 아니면 계곡에서 내가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
    “내가?”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계곡에서 죽을 뻔했다고?”
    “응. 아빠가 물에 뛰어들었잖아. 너희 어머니는 소리도 지르셨는데?”
    “전혀 기억 안 나.” 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랬어? 내가?”
    거기까지 닿으면서 고마웠던 건 따로 있었다. 치록이가 갑작스러운 전화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치록이의 대응에 나는 편안해졌다. 좋은 향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치록이가 사람을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교육된 덕분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렇게 발현된 것인지 짐작 가지 않았다. 옛날 한순간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안다는 생각이 오만이라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순간의 치록이는 없다는 것. 단면이라기보다는 입체로서의 치록이가 있다면 있을까.
    치록이가 와인 냉장고에서 좋은 술을 꺼냈던 것은 수박을 해치우고 서로에 대한 긴장도 풀린 후였다. 치록이가 일어나 안내를 해줬다. 우리는 손에 와인을 한 병씩 들고 고요한 집을 둘러보았다. 치록이의 집은 복잡했지만 넓고 편안했다. 곳곳의 방을 구경하면서는 치록이의 프랜차이즈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노력과 정성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럼 가게들이 전국에 몇 개나 있는 거야?”
    “몰라. 한 천 개?”
    치록이의 프랜차이즈는 친근하고 소박한 이미지로 잘 알려진 식당이었다. 엄마와도 가본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치록이는 고맙다고 웃기만 했다.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치록이를 바라봤다
    “치록아 근데,”
    “어? 현아 벌써 술이 떨어졌다. 일단 이층으로 갈까?”
    그리고 이 층의 검은 방에서 두 번째 자리를 시작하면서는 치록이가 지금까지 모아온 온갖 것들을 내게 보여줬다. 로마 시대 금화, 난파선에서 얻은 청자, 마르크스의 손가락 같은 것을.
    “사람 손가락이 있다고?”
    “응. 얼마나 어렵게 구했는지, 넌 상상도 못 할걸.”
    치록이가 와인을 들이켰다. 허술해 보이는 유리 진열대 안에 작은 막대기가 있었다. 까맣게 탄 것처럼 보이는 막대기는, 검지인지 중지인지도 불명확할 정도로 볼품없었다. 손가락이라고 듣지 않으면 결코 손가락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치록이의 얼굴이 수박처럼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건 그렇게 온갖 수집품을 소개해 주면서였다. 특이한 것들을 자랑하는 모습에서 어렸을 적의 치록이가 떠오르긴 했다. 새로운 장난감이 오면 내게 먼저 소개했던 치록이. 신나게 되면 몇십 분을 혼자 얘기할 수도 있었던 치록이.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치록이를 끊으면서 엄마 얘기를 하기엔 그리 좋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걸.
    그러다 치록이가 사진첩을 찾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거의 모든 방을 돌아다닌 것 같은 즈음이었다. 치록이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현아, 이리 와 봐, 하더니 처음 간 이층 방으로 이끌었다. 어두운 조명의 방에서 치록이는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무엇을 찾았다. 이윽고 검은 자개장을 뒤적거리더니 크고 견고한 사진첩 하나를 꺼냈다. 그렇게 꺼낸 사진첩은 치록이와 어울리지 않게 낡고 초라했다. 오래되고 더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곧 사진첩의 특별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엔 이제는 하나도 없는 젊었을 때의 엄마 사진이 있었다.
    사장님의 뒤에, 사모님의 옆에, 혹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의 사진.
    일을 하는 엄마. 집중하는 엄마. 다소곳한 엄마.
    치록이가 와인을 들이켰다.
    “사실 최근까지 엄청 힘들었거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노력을 많이 했어. 머리칼이 잔뜩 빠질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사진첩을 보게 된 거야.”
    치록이는 사장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거라 다들 자신을 무시했었다고 했다.
    “우습게도 죽고 싶을 때가 많았어. 아빠가 이룬 곳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싫어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거든.”
    “정말?”
    “응.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치록이는 벌레가 달라붙은 것처럼 고개를 털었다. “그거 알아? 심지어 그땐 달리는 차에 뛰어드는 상상도 자주 했어. 차도로 뛰어들고 싶은 강렬한 충동 말이야. 차에 치이면, 차라리 그게 편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치록이는 비뚤어진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그게 정신적으로 위험하단 증상이더라고.”
    치록이는 콧등을 긁었다. 도로에 뛰어들고 싶은 건, 그저 현실을 피하고 싶은 충동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하루는 옛날 사진들을 보고 깨달은 거야. 너와 놀던 시절을 보고 떠올렸던 거야. 어렸을 때 우리는 기억보다 더 잘했다는 걸.”
    치록이는 수학경시대회에서 금상을 탔던 순간과 미국에 정착하며 겪은 언어장벽 같은 것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했다. 배낭여행 중 지갑을 잃어버린 섬뜩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저 마른 손가락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했는지도.
    “거기까지 하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
    치록이는 사장님과 사모님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펼쳤다. 치록이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아빠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부모님들도 많은 걸 알지는 못했지만,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해왔을 거잖아.”
    “그래?”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치록이의 말을 그렇게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왔다는 것.
    “물론 요즘 사회가 열심히 해선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치록이가 취한 발음으로 덧붙였다. “그래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지. 하지도 않고 불평한다는 게 말이 되냐? 너는 SNS나 미디어가 문제라고 보지 않아? 헐뜯고 비난하는 게 너무 많지 않아?”
    “그런가.”
    “당연히 내가 계급을 대표하지는 않아.” 치록이는 내 어깨를 굳게 잡았다. “나라는 이유만으로 대표 되는 것도 있을 텐데 그조차도 난 대표하고 싶지 않아. 그냥, 여러 불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각자의 위치에서 잘하자. 좋은 태도를 가져보자. 이런 게 제일 중요할 수밖에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록이는 많이 취한 것 같긴 했지만, 나는 누군가의 기분을 건드리는 일에 이젠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그런데 치록이는 어느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치록이의 질문에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유리구슬같이 투명한 치록이의 눈빛. 저 눈알 뒤에는 총명함과 자신감이 들어 있겠지. 명확한 논리와 통찰이 들어 있겠지. 왠지 나도 무엇을 말해보고 싶긴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 하니 궁금해졌다. 정말로 치록이는 내 생각을 궁금해할까.
    “미안, 재미없는 얘기를 했네.”
    치록이는 요란하게 기침했다. 그는 내 어깨를 다시 세게 두들겼다.
    “아무튼 다 네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나?” 순간 의아해져서 소파에 기댄 치록이를 바라봤다. “내가 왜?”
    “당연하지!” 치록이는 팔을 넓게 벌렸다. “사진첩을 본 게 최근이었어. 근데 사진첩에 있는 이십 년 전 친구에게 이십 년 만에 연락이 오다니!”
    치록이는 아플 정도로 나의 손을 꽉 잡았다.
    “너무 반가웠어. 우리가 요즘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거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징조가 아닐까? 좋은 일일 수밖에 없잖아!”
    나는 치록이를 바라봤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치록이에게 승리감을 선사한다는 자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남아있는 아주 약간의 승리감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치록이는 여기까지 오도록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는가.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이루었던 치록이의 일들은, 치록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고, 치록이의 헌신과 열정이 들어간 일이니까.
    “그래서 확신할 수도 있었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걸. 감사하게도 난 인복이 참 많은 것 같아.”
    “인복.” 나는 중얼거렸다. 인복.
    “그런 점에서 넌 좋은 친구야. 내가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도.”
    그 순간 치록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치록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좋은 친구는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대답 대신 엄마의 사진을 넘겼다. 사진첩에는 오래된 것 특유의 쿰쿰한 향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절을 함께 보냈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치록이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의 긴 수술과 그녀만의 헌신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같은 것들을.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그럼에도 나는 말해야 했다. 나는 치록이를 바라봤다.
    “치록아.”
    하지만 깨달을 수 있었다. 치록이에게서 대답이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사진첩을 보고 있는 그 잠깐의 순간, 치록이는 잠들어버렸다. 검은 소파에 널브러진 치록이는 두 손을 내린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의 그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안락하기까지 했다. 나는 마른 입술을 물었다. 치록이를 흔들었다. 반응은 없었다. 나는 하얀 치록이를 바라봤다.
    우리의 침묵 속으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세차게 밀려들었다.


    집주인이 잠든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나오지는 않았다. 어두운 방을 서성였다. 자주 앉았다가 일어났다. 치록이의 뺨을 때려봐도 깨어날 기미는 없었다. 치록이를 두고 갈까 했으나 걸리는 것이 많았다. 주위를 둘러봤다. 문 옆에 인터폰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낮은 여자 목소리가 대답했다. 도우미는 오 분도 되지 않아서 방으로 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가사도우미는 어리고, 체구가 작았고, 가냘파 보였다. 갑자기 등장한 도우미였음에도 나는 그녀가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록이가 잠든 후에야 볼 수 있었던 도우미는 난처한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도우미의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널브러진 집주인과 육중한 그의 몸. 나는 도우미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모를 수 없었다. 나는 침실로 데려다주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도우미는 놀란 듯 나를 바라봤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다. 도우미의 보조로 치록이를 업을 수 있었다. 묵직한 무게감을 딛고 나아가니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큐브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치록이가 루빅스 큐브의 공식이 있다는 걸 알려준 적이 있었다. 외우기 쉽지는 않지만 외운다면 큐브의 모든 면의 색을 통일시킬 수 있는 공식이었다. 계곡에서 알려준 건 아니었다. 우리가 큐브를 가지고 몇 번이나 내기하고 논 뒤였다. 왜 그렇게 큐브가 재밌고 좋았는지는 몰랐다. 나는 맹렬히 연습했다. 그런데 공식도 모르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한 번은 치록이를 이겨버렸다. 그것도 우연히 이기는 것도 아닌, 반박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고 철저하게. 그때 치록이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어렵고 더 빠른 공식을 외워 온 것 같았다. 그때부터 치록이를 한 번도 이길 수 없게 됐다. 나는 매일 내기에서 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은 내게 싫증 난 치록이가 말해줬던 것이다. 공식이 있었다고. 루빅스 큐브를 푸는 데에는 다양한 공식이 있고, 그걸 모르면 결코 풀 수가 없다고.
    가끔 생각하긴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나는 치록이를 이길 수 있었을까? 운이었나?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진심이었고, 그저 큐브를 아름답게 맞추고 싶어 성실하게 연습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치록이에게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남김없이 패배하고 공식의 존재에 대해 들었을 때, 나를 엄습한 건 분노와 허탈 같은 감정만은 아니었다. 심심함에 잠긴 치록이를 바라보며 나는 치록이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치록이의 방법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내겐 늘 가슴에 품어왔던 방법도 있었지만, 단지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렸던 나는, 큐브들의 겉면을 모두 모닥불에 검게 불태웠다. 지금까지 들인 큐브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담아서. 검은색 큐브를 만드는 것이, 공식을 모른다면 가장 빠른 방법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그녀의 안내대로 간 치록이의 방은 멀지 않았다. 도착한 치록이의 방의 한쪽 면에는 서양화 하나가 걸려 있었다. 방 한쪽 면이 환한 일출처럼 되어버린 광경은 큐브의 한 면처럼 매끄럽고 아름다웠다.
    “‘노럼 성 일출’이라는 그림이에요.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작품이죠.”
    도우미가 눈치챈 듯 설명해 주었다. 때마침 치록이가 뒤척였고 내겐 치록이의 집을 나오는 일만이 존재했다.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지만, 그래도 도우미에게 공손히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그 방에 다시 갈 수 있느냐고. 놓고 온 것이 있다고 하면서.
    도우미는 잠깐 고민하더니 괜찮다고 했다. 방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치록이와 어렸을 때 친구라는 말을 해봤다. 이십 년 만에 만난 친구이며, 어머니가 치록이 부모님의 도우미를 하셨다는 사실 또한. 도우미는 의외로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지금은 매우 편찮으며, 여기에 온 것은 오랜만에 치록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다고도 말해줬다. 나는 치록이의 어렸을 때 모습도 설명했다. 체구가 작았고, 승부욕이 있었던 치록. 우리가 계곡에 놀러 갔던 이야기와 사장님과 사모님이 얼마나 착하셨는지도. 그리고 어머니가 치록이의 집에서 평생 일하실 줄 아셨지만, 큐브로 인한 소란으로 끝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던 이야기까지.
    “아이들 싸움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요?”
    도우미가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검은 방에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제가 큐브를 가져온 것입니다. 미안했다는 의미에서요. 근데 치록이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거 같더라고요.”
    나는 낡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큐브를 꺼내 도우미에게 보여줬다.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도우미의 눈썹이 흔들렸다. 나는 치록이의 수집품 방에 큐브를 놓았다. 도우미에게 이것을 잘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
    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큐브를 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열대 위에 놓인 사진첩을 혼자 열어봤다. 혼자. 그곳에서 잘 나온 엄마의 사진을 찾았다. 웃는 엄마. 행복한 엄마. 즐거워하는 엄마. 엄마의 말대로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젊었고 아름다웠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사진을 꺼내고 싶었으나 낡은 사진첩은 의외로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틈새를 손톱으로 긁었지만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비닐을 찢으려던 순간, 멀리 인기척이 느껴졌다. 급한 마음에 진열대 안의 아무것이나 잡고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어느새 돌아온 도우미가 공손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급하게 다녀온 듯, 도우미의 호흡이 거칠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내게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혹시 불편하신 것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나는 잠깐 고민한 뒤 공손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수박이 맛있었고, 향이 좋았습니다, 하고. 그러자 도우미는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가요, 그거참 다행이네요, 하고.
    도우미는 이제 나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드린다고 했다. 나는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했다. 나가는 길 정도는 외울 수 있었다고 하면서.
    도우미의 배웅을 받으며 치록이의 집을 나왔다. 가슴팍의 뜨거운 이질감을 느끼며 심호흡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성곽 같은 집들 사이엔 걸어가는 사람이란 보이지 않았다.
    김근희

    김근희

    199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산업공학과(주전공) 및 국어국문학과(부전공) 졸업, 변리사

  • 최윤·성석제 소설가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다. AI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소설이 인간다운, 인간적인, 인간의 삶과 삶의 다채로운 국면을 정련해 전달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에 훈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본심에 진출한 12편의 작품 심사에 임했다.
    ‘이해의 이해’는 이야기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사소한 실수가 거의 없다는 점도 호감이 간다. 이 작품만 가지고는 아직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충분치 않아 보이지만, 언젠가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삶의 역사를 이야기해줄 것이라 예측하게 만든다.
    ‘루빅스 큐브’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선이 화자가 처한 곤란한 상황, 소품과 어울려 간단치 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난감하고 불안한 상황을 드러내는 다채로운 묘사와 ‘(성공의) 공식’이 아닌 끈기와 시도(노력)를 큐브 맞추기에 연결시키는 이야기 방식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에는 곤란한 상태에 빠진 현재와 ‘과거의 선택과 행위’에서 나온 질문만 있을 뿐 기승전결 방식에 따르는 해답이 없다. 독자가 답을 찾아냈다고 여기는 순간, 이 작품은 오히려 의미를 잃고 쭈그러들지도 모른다. 외계에서 날아든 별똥별처럼 이상하고 낯선 이 작품이 우리 소설의 또 다른 영역을 열게 되기를 기대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게 된 분들의 정진을 기원한다.
  • 김근희

    김근희

    199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산업공학과(주전공) 및 국어국문학과(부전공) 졸업, 변리사

    왜 아직도 쓰냐는 질문을 받으면 자주 했던 답변이 있었습니다. 제가 쓴 게 제일 재미있는 것 같고, 쓰면 쓸수록 느는 것 같아서요. 이 두 개면 어떤 대양도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보면 무척 성긴 문장 같습니다. 사실 읽기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끔찍한 글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헤엄칠 수 있던 건, 저 치기 어린 문장이 가진 부력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바다를 건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잠깐 전화를 받고 섬에 도착했고요. 섬에서 들리는 축하는 얼떨떨합니다. 신기하고, 눈부시고, 불안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잘 헤엄쳐 왔다는 격려만큼은 소중해서 껴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긴 헤엄을 떠올리면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갑니다.
    이 글은 대양에서 만났던 고마운 분들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뼈 같은 글을 만져준 혁우와 현승, 재미없음과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해준 이갑수 선생님, 그리고 재미없는 글을 읽어준 고마운 문우들. 그 시선들이 밤바다의 별처럼 소중했습니다.
    제 소설 쓰기는 늘 빚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을 함께 건너온 총문학연구회 친구들과 민규 시온 석화 재인 성우 신엽 미르, 글의 기쁨을 알려준 전영애 선생님, JD, 혁, 해권 재용, 독모독모 동료들까지. 함께 유영한 이들의 몸짓이 떠오릅니다.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길어 올려 준 심사위원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 뜨겁게 좋아해 준 충주의 서태원 박문자 님과, 사랑하는 법을 사랑으로 알려준 김상민 아빠와 김은주 엄마, 김도연 동생네에게는 푸른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삼촌과, 친척들과, 팀원들과, 미처 명명하지 못하는 고마운 이들에게도요.
    그리고 헤린. 바다를 품은 당신에게는 가장 깊고 넓은 파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삶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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