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깜상이와 자전거

by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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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선소감
  • “우와, 하하하…” 아이들이 또 소리를 질러대며 웃기 시작합니다. 유나는 오늘도 뜀틀을 넘지 못했습니다. 넘기는커녕 구름판 앞에서 발 한 번 구르고는 한밤중에 거울에서 제 얼굴보고 놀란 사람 마냥 우뚝 서 버렸습니다.

    뜀틀뿐만이 아닙니다. 피구시합을 할 때도 폭탄이라도 피하는 양, 내내 비명을 지르는 쥐처럼 도망만 다니다가 머리에 공 한 방 맞고 찔끔찔끔 울기 일쑤입니다.

    유나는 체육시간이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걱정이 되곤 했습니다. 아니 이제는 체육시간이 없어지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난 정말 운동에는 소질이 없나봐.’

    공부는 곧잘 하는 유나였지만 운동이라면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유나는 4학년이 되도록 자전거 타는 법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미꾸라지 손가락 사이로 빠지듯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달리는 친구들을 보면 그 신비롭기까지 한 기술을 자기가 받은 상장 열 개와도 맞바꾸고 싶었습니다.

    ‘나도 한 번 저렇게 타 봤으면…’.

    사실 유나가 자전거 배우기를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출발도 하기 전에 넘어지는 통에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이 긁히기는 예사였습니다.

    ‘10m만 갈 수 있다면, 아니 5m만. 아니 출발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유나의 소망은 넘어가는 해 마냥 점점 희미해져 갔고 실망의 그림자는 점차 짙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 하얀 무릎에 실지렁이 같은 핏물이 배어 나오던 어느 날, 유나는 무언가 모를 서러움에 북받쳐 소리쳤습니다.

    “나, 이제 다시는 안 해. 안 한다구!”

    그리고는 반딧불처럼 빛나는 야광 장식물을 자전거 바퀴에 붙이고 바람처럼 달리고 싶은 꿈을 자전거와 함께 마당 한구석에 내동댕이치고 말았습니다.

    저녁마다 근처 공원으로 운동하러 나가시는 아버지가 오늘도 유나를 구슬려 봅니다.

    “유나야, 아빠가 뒤에서 잘 잡아 줄 테니 한 번만 더 해보자.”

    “싫어요.”

    유나는 아버지가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기미를 보이자 갑자기 소파에서 돌아누우며 소금 빠진 찌개 마냥 대답합니다.

    “조금만 연습하면 탈 수 있다니까!”

    “안 해요.”

    “오늘 한 번만 더 해보면 될 거야.”

    “……”

    유나는 깊은 잠이라도 자려는 듯 눈꺼풀을 꼭 붙이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 유나야. 한 번만 더 시도해봐. 응?”

    이제 엄마까지 거들기 시작합니다.

    “싫어요, 나 안 할래요. 난 원래 운동신경이 둔해서 안 될 게 뻔해요.”

    “그렇지 않다니까. 응?”

    이쯤 되면 유나는 제 방에 쏙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유나는 까만 색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디딤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엄마! 웬 강아지예요?”

    “아, 글쎄 시장 갔다 오는 길에 보니 전봇대 옆에서 낑낑거리고 있잖니? 아직 어린 녀석 같은데 누가 갖다 버린 모양이야, 쯧쯧쯧….”

    유나는 연탄이, 깜깜이, 먹물떼기 등등의 이름을 놓고 고심하다가 깜상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마당 구석에 신문지를 깔아 화장실을 마련해 주었지만 깜상이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여 여기저기에 마구 실례를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엄마가 상추를 심으려고 가꾸어 놓은 작은 텃밭도 헤집고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안 되겠다. 가엽기는 하지만 좀 묶어둬야겠구나.”

    엄마는 1m쯤 되는 줄을 구하여 깜상이를 묶어두기로 하였습니다.

    깜상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유나의 몫이었습니다.

    유나가 밥그릇을 들고 나타나기만 하면 깜상이는 두 발로 일어서며 폴짝폴짝 뛰어 올랐습니다. 유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펄쩍 앞으로 뜀박질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목줄이 깜상이를 잡아채면서 깜상이는 유리벽에라도 부딪혀 튕겨 나간 듯이 나뒹굴었습니다.

    “끼잉, 끼잉.”

    그 모습을 보며 유나는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네가 아무리 뛰어봤자 소용없다구. 줄에 매여 있는 걸 몰라? 약 오르지?”

    유나는 반지름 1m쯤 되는 반원을 좌우로 그려대며 숨넘어가는 소리로 재촉하는 깜상이를 놀려댑니다.

    그러길 10여 일이 지났습니다. 이젠 깜상이도 밥그릇을 가지고 오는 유나의 모습을 봐도 전처럼 뛰어 오르지 않습니다. 뛰어 봤자 별 수 없다는 걸 아는 모양입니다. 엉덩짝에 붙은 먼지라도 떼어 내는 듯 그저 꼬리만 살래살래 흔들 뿐입니다.

    한두 가지 동작밖에 못하는 로봇인형처럼 얌전해진 깜상이를 보니 유나는 왠지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유나의 다리를 부여잡기도 하고 뒤꿈치를 물어뜯으며 안달을 했을 텐데 말입니다.

    사냥감을 앞에 둔 치타처럼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싶어진 유나는 깜상이의 목줄을 슬그머니 풀어 주었습니다.

    “깜상아, 이리와. 누나가 쥐포 줄게.”

    유나는 깜상이가 제일 좋아하는 쥐포를 깜상이 코앞에서 두어 번 흔들어 대고는 디딤돌 위에 걸터앉아 깜상이를 불렀습니다. 깜상이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하게 커졌습니다. 하지만 깜상이는 제자리에 선 채로 엉덩이만 세게 흔듭니다.

    “깜상아, 이리 오라니까.”

    깜상이는 두 발로 일어서며 허공을 허우적대기만 합니다.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못합니다.

    “먹고 싶으면 빨리 이쪽으로 오라니깐. 줄이 안 매여 있단 말이야!”

    유나의 목소리가 커져갑니다.

    깜상이가 낑낑대는 소리도 점점 커져갑니다.

    “아유, 바보 같은 것! 줄도 안 매여 있는데, 한 발짝만 떼면 되는데. 한 발짝만 떼어보라니깐!”

    마침내 유나는 고함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한 번만 해봐! 한 발짝만 떼어 보라구! 한 번만!”

    그런데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치던 유나의 눈에 무엇인가가 언뜻 비쳤습니다. 마당 구석에 세워 둔 자전거였습니다. 여전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허공만 긁어대는 깜상이의 모습 뒤로 그토록 폼 나게 달려 보고 싶었던 자전거가 잠자듯이 벽에 기대 서 있었습니다.

    유나는 잠시 멍한 듯 앉아 있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전거 핸들을 부여잡았습니다.

    “엄마! 나 자전거 타러 가요. 자전거 타는 법 배워 올거라구요! 오늘은 꼭 타고 만다구요!”

    유나는 무어라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부리나케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제서야 깜상이도 유나를 따라 뛰쳐나갔습니다.
    박영희

    박영희

    1968년 부산 출생

    1991년 진주교육대 졸업

    2001년 울산대 교육 대학원 상담교육학 석사

    현재 울산 호계초등학교 교사

  • ‘너도 할 수 있다’는 교훈 잘 삭여

    김경연(아동문학평론가)
    김문기(아동문학가)


    문학의 숲에서 길을 묻는 것은 이제껏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새로운 모색을 그리며 응모작들을 꼼꼼히 읽었다.

    ‘떡시루 속의 콩나물들’(이우식), ‘꿈꾸는 개구리’(이상근), ‘경주남산 아기부처’(장은채) 등의 동시가 눈에 띄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화 쪽에 좋은 작품이 많아 동화에서 당선작을 내게 됐다.

    동화는 아이들의 생활과 관계된 작품들이 주를 이뤘고 질병, 치매, 따돌림, 실업, 학교 폭력 등 아이들이 만나는 문제 상황도 엇비슷했다.

    최종 검토 대상은 다섯 편이었다.

    ‘얼룩말 나무가 있는 숲’(문지영)은 강요하는 어른의 의지에 대항하는 동기와 방식이 비교적 신선하게 다가왔으나 결말이 내다보이고 문장에 대한 성찰이 크게 요구됐다. ‘지하철역에서 살다보면’(김희진)은 걸인의 부정(父情)이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이를 그리마의 눈으로 담아내야 하는 억지스러움이 걸렸고, ‘연필도 아프다’(조수빈)는 글이 깔끔하고 구성도 좋았으나 교훈을 날 것으로 드러내는 관행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치매를 다룬 ‘불꽃놀이’(박숙정)는 도입부나 전개에 흡입력이 있을뿐더러 아이의 갈등이 생생하여 드물게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지만, 문제 해결 방식이 비약적이고 안일했다.

    ‘깜상이와 자전거’(박영희)는 글의 흐름이 단락단락 끊기는 흠이 있었으나, ‘너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아이의 눈으로 깨닫게 하는 드문 장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 박영희

    박영희

    1968년 부산 출생

    1991년 진주교육대 졸업

    2001년 울산대 교육 대학원 상담교육학 석사

    현재 울산 호계초등학교 교사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는 한 통의 전화에 진부하기까지 한 이 표현을 밤새도록 읊조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내 독후감 쓰기 대회에서 수상한 이후로 20여 년 만에 처음, 남들 앞에 내 보인 글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당선작 ‘깜상이와 자전거’는 몇 해 전 내가 겪었던 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작품에 나온 그대로, 목줄이 풀어진 줄도 모르고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깜상이의 모습을 보고 사실 난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 인간도 그 깜상이처럼 스스로에게 목줄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신춘문예에 투고한 것도 그 깜상이의 공이라면 공이다. 꿈도 꾸지 못했던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은 그 어리석었던 깜상이의 잔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이름 외에 또 다른 이름표를 나의 가슴에 달아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리며 깜상이에게서 얻은 그 교훈을 가슴 깊이 담아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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