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
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
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
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
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이영옥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2002년 경남신문사 신춘문예 시 당선
2004년 계간 ‘시작’ 신인상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짧은 분량에도 많은 것 담아내
황동규(서울대 명예교수·시인) 정진규(시인)
(예심=반칠환 박형준)
예심에서 올라온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을 거듭 읽고 검토한 끝에 남은 작품이 배대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코드(CODE)’ 외 9편과 이영옥의 ‘단단한 뼈’ 외 4편의 시들이었다. 다른 응모시들이 지니고 있는 상대적 결함들이 이들 시에서는 극복되고 있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분명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까닭 없는 우회나 굴절이 야기하는 몽상의 어눌한 언어들을 자제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특히 이른바 화자 우월주의에 빠져 시를 수다스러운 설명으로 이끌거나, 대상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독단의 왜소성으로부터 깔끔하게 벗어나 있었다.
장고 끝에 우리는 이영옥의 ‘돛배 제작소’와 ‘단단한 뼈’로 의견을 압축했다. ‘돛배 제작소’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선 안과 밖을 하나로 짚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호감이 갔다. ‘설계도면에는 오래된 고뇌까지 꼼꼼히 그려져 있었고/돛배가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그의 환멸은 정교해져 갔다’ 같은 대목 말이다. 그러나 ‘단단한 뼈’에서 더욱 중요한 대목들을 확인했다. 짧은 분량으로도 많은 것을 담아내는 자재로움과 절제된 감정이입을 통해 죽은 것들을 또 다르게 살려내는 전환의 힘, 그 핵을 이 시는 지니고 있다.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는 비극적 삶의 전력에 대한 암시도 놀랍지 않은가. 이 시를 읽고 나면 ‘섬쩍지근한’ 침묵 같은 것이 남는다.
배대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코드(CODE)’ 등은 언어의 활달성, 또는 뜨거움을 지니고 있었다. 순수한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천착도 돋보였다. 그러나 표현의 조밀함이 모자라 적잖이 설명으로 기운 흠이 있었다. 지니고 있는 정열의 운용에 따라서는 새로운 시를 열 가능성이 보인다.
이영옥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2002년 경남신문사 신춘문예 시 당선
2004년 계간 ‘시작’ 신인상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함께 있어도 인식하지 못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 밖에서 서성거리게 했던 내 외로웠던 시들아!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문제는 늘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본 죽음이란 것은 또 하나의 완벽한 실존이었다. 그는 뼈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바람의 울음을 듣고 있었다. 세상의 빛들은 일순간 그를 위해 적막해졌다.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린 삶과 죽음의 근사치에 대해, 근접해 있는 존재와 소멸의 함량에 대해, 세포처럼 끊임없이 분열하는 것들을 쓰고 싶었다. T S 엘리엇은 말했다. 시는 언제나 모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면 나의 도전은 무모했다. 시의 중심을 알 수 없었던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난 후, 성탄 캐럴이 울리는 번잡한 거리를 혼자 걸었다. 마치 동굴에서 탈출한 크로마뇽인처럼…. 나는 그날, 화석 속에서 튕겨져 나온 구석기인처럼 외로웠다.
나를 믿고 지켜봐 준 남편과 자신감을 뿌리 깊게 심어주신 하현식 교수님, 이재무 선생님, 감사합니다. 호된 비평가인 딸 다혜와 아들 정빈이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두 분께 내 안의 혹독한 다짐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