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운명과 예술

by  유정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여기 두 인물들이 있다. 조각을 하는 여자와 건축을 하는 남자. 이들의 공통점은 이 두 남녀가 “삶보다 죽음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136)라는 점이다. 조경란의 신작 장편 소설 ‘복어’가 놓여있는 지점은 여기다.

    이 작가가 ‘운명’이라고 명명한 것은 다름아닌 “유전적인 우울증” 혹은 그로 인해 자살로 이어지는 집안 내력과 맞닿아있다. 여자의 할머니가 가족들 앞에서 손수 끓인 복엇국을 먹고 자살했고, 그 여파로 삼촌과 고모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도 죽음에 이르게 된 것. 그리고 남자에겐 선천적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있고, 그의 형이 창문에서 뛰어내렸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언제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립자가 따라다니고 있었다”(39)로 요약되는, 이 작가가 이 작품에서 주조해놓은 운명의 양상인 셈이다.

    우울, 불안, 무기력, 이런 정서들에 -가족력이라는- 뿌리가 있다는 것이 운명을 말하면서 그 근원을 내세우는 조경란의 어법이라고 한다면, 이를 토대로 이 작가는 죽음 충동을 견디는, 그리하여 “그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그 파괴의 욕구에 관한 노력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90)를 하는 행위로써 예술의 본질을 얘기한다.

    “예술가란 자살의 충동을 이겨낸 것만으로 유명해지지는 않아요.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규모가 방대하면서도 단순한 작품에 손대기 시작했어요. 아마 충동을 견디느라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게 됐죠. 더 아름답고 고요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게 그녀의 마지막 욕망이 됐어요.”(156-57)

    그러나, 어찌보면 지나치게 심리학적으로 환원되고 말았을 뻔한 이 주제에, 작가는 삶에 대한 “관용과 깊이”를 입혀, 독자에게 전달되는 감동의 깊이를 마련한다. 그녀가 “감각의 새 조건”(142)이라고 명명한 “복어”가 이를 가능케 하는 작인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복어”에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죽은 할머니와의 동일시를 하게 하는 운명의 메타포이자, "형체는 없지만 꼭 있어야 하고 살아서라면 영원히 좇아야 한다고 믿고 있던 것"(65)이라는, 예술에 대한 메타포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복어’가 중요한 것은 조각가인 그녀에게 죽음에서 삶으로의 방향을 전회하게 만드는 “도약”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나아가서, 운명과 예술 사이에서 “도약과 추락을 반복해야”(59) 했던 주인공 여자에게 “앞으로 살게 될 삶”이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의 이야기”(303)로 귀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는다”(60)며 스스로의 세계에 칩거했던 여자가, 건축가인 남자를 통해 “자신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발견의 기대”(240)와 다시금 조우하게 될 것이라는 대단원의 여운으로 직결된다. 그러므로 “나는 죽음에 쫓겨 다니는 게 아니라 내 작품 세계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을 내가 끌고 다니는 거야”(280)라는 그녀의 친구 사임의 말은 발화의 주체를 그녀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 ‘복어’는 운명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설 수밖에 없는 작가, “타인에게 언어로 다가가는 사람”(18)의 본령에 대한 작품으로 읽혀진다. 운명과 예술이라는 일반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주제를 다룬 이 소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저러한 생을 견디는 인물들의 과정이 치열하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유정

    본명 황유정

    1977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전문사과정 졸업

    네덜란드 라이던대 한국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2006년 ‘연극평론’으로 등단, 연극평론가

  • 김인환 문학평론가·오생근 문학평론가

    11편의 응모작이 전반적으로 치밀한 분석 능력과 단단한 문장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학술논문 같은 평론, 모호한 개념을 전제로 논술한 평론, 작품보다 작가에 대하여 더 많이 언급한 평론을 일단 제외하고 우리는 김영하, 이청준, 배수아, 편혜영에 대한 평론을 거듭 검토하였다.

    네 편의 평론은 좌우 어느 쪽의 단선적인 시각을 넘어서는 복합적 현실의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화자 위치와 문체 특징의 해명을 전경에 두고 있었다. 모두 높은 수준의 평론이라고 판단하고 어떤 글이 당선되어도 무방하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네 편의 평론에서 결점을 찾아보았다.

    김영하론에서는 후기자본주의 비판이 전적으로 고진과 랑시에르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배수아론에서는 부정확한 문장 때문에 모름을 내세우는 인물형상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이, 이청준론에서는 작자와 평자의 거리가 적절하게 확보되지 못하였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추(醜)를 재료로 서정적 이미지를 주조하는 감수성과 출구 없는 세상에서 몰락을 자초하는 윤리가 작품에 근거하여 비교적 무리 없이 연관되고 있다고 판단하여 우리는 ‘사라짐 혹은 버려짐의 세계-영도로 살아가기’를 당선작으로 선택하는 데 합의하였다.
  • 유정

    본명 황유정

    1977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전문사과정 졸업

    네덜란드 라이던대 한국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2006년 ‘연극평론’으로 등단, 연극평론가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 아득하기만 해서 진저리를 치곤 했다. 얼떨결에 당선 통보를 받고 보니, 어느덧 이 겨울이 이만큼이나 지나고 있었다. 늘 무미건조했던 내게 당선 통보를 받은 크리스마스 연휴가 의미 있었던 날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행운이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부족함이 많은 글을 뽑아주신 두 분의 심사위원 김인환 선생님과 오생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라는 따끔한 격려일 것이라고 믿는다. 미덕보다 결점이 많은 제자를 언제나 믿고 지켜봐 주시는 이미원 선생님과 김윤철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이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한 시간들을 함께 견뎌준 승현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녀의 덕분이다. 정말 몇 안 되는 벗들에게도 이들이 있어 참으로 든든하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랜 공백 끝에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나를 한없이 보듬어준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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