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수퍼댁 역도대회 나가다

by  안정희

  • 작품전문
  • 시놉시스
  • 심사평
  • 당선소감
  • 씬1. 초등학교 운동장(낮)

    매미소리 맴 맴 맴
    아무도 없는 썰렁한 운동장 위로

    세나(e) 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씬2. 교실

    초등학생들이 앉아있고
    그 앞에서 기 막히다는 표정의 한선생님

    한선생 강 세나…
    세나 우리 가족들, 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한선생 그런 말 하는 게 아냐. 가족은 아주 소중한 거야.
    세나 왜 소중해요?
    한선생 왜 소중하냐니… 생각해 봐. 이 시간에도 아빠는 세나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고…

    씬3. 시청 앞

    정문 앞에서 일인 시위 중인 샌드위치 맨 택조.
    샌드위치 판에 쓰인 커다란 붉은 색 글씨
    ‘고급 아파트는 사람 살고 임대 아파트는 쥐가 사나’
    밑으로 쭈욱 내려가면
    ‘평화아파트 가로등 교체하라. 교체하라’
    평화 수퍼 앞 가로등이 꺼져있는 사진이 붙어있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흙탕물이 확 튀고
    샌드위치 판과 택조, 졸지에 흙투성이가 된다.

    씬4. 초등학교 교실

    세나, 한숨을 푹 쉰다.

    한선생 세나 어머니도 일하신다며? 이 더운 날 얼마나 힘드시겠니?

    씬5. 서민 임대 아파트

    낡고 허름한 임대 아파트 촌.
    매미소리 맴 맴 맴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이층짜리 상가 건물.
    이층에는 세탁소, 치킨 집, 미장원, 일층에는 평화 수퍼, 부동산, 문구점이 있다. 수퍼 앞에는 과일들과 쌀부대와 보리, 기정, 수수, 팥 등의 잡곡들도 진열되어 있다.
    수퍼 옆에는 ‘쌀 배달’ 입간판이 서 있다.
    누런 똥개 한 마리에 쌀 배달 입간판에 오줌을 싼다.

    씬6. 평화수퍼

    열 평 남짓한 조그만 수퍼.
    파리가 윙윙 날아 선반의 고물 티비 위에 앉는다.
    티비에서는 ‘세계를 가다’ 방송이 흘러나오고
    다시 윙윙 파리가 날아 납작한 수퍼댁의 코에 앉는다.
    수퍼댁, 앞으로 꾸벅 꾸벅. 고개를 돌려 옆으로 다시 꾸벅꾸벅.

    한선생(e) 세나는 언니도 있다고 했지? 언니한테 여자로서 살아가는 법 도 배우고.

    씬7. 세나의 집 방

    바닥에 흐트러진 미니스커트.
    그 위로 남자 청바지가 휙 날아온다.
    격렬한 남자와 여자의 신음소리. 휙 위로 드는 발.
    두나와 백작이 섹스 중이다.
    청바지 위에서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

    두나 오빠 나 임신했다?
    백작 뻥치지 마.
    두나 진짜라니까.
    백작 너 지난번에도 임신했다고 뻥 쳤잖아.
    두나 맞아. 뻥이야.

    그 위로

    한선생(e) 오빠는 세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거고.

    씬8. 골목길

    지독하게 못 생기고 바짝 마른 왕비호. 삐딱하게 서서 껌을 질겅거리며 삐딱한 얼굴로 화면을 삐딱하게 노려본다.

    왕비호 만원 있냐?!

    그 앞에 서서 부들부들 떠는 하나. 옆에 전동자전거가 넘어져 있다.
    하나의 덩치가 두 배는 더 크다.
    왕비호, 삐딱하게 하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공중에서 휘리리릭 돌리더니 손으로 탁 잡는다.
    하나, 덜덜 떨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데 우르르 아래로 떨어진다.
    만 원짜리 지폐.

    하나 이.…이게 다…다야. 정말이야. 그러니까 때리지 마…

    그 위로

    한선생(e) 세나는 정말 행복하겠다.

    씬9. 교실

    한 선생, 쓸데없이 감격한 얼굴로 화면을 그윽하게 본다.
    그런 한 선생을 한심하다는 얼굴로 보는 세나, 한숨을 푹 쉰다.

    세나 선생님
    한선생 으응?
    세나 우리 가족 사실래요? 만원만 주면 선생님한테 팔께요!
    한선생 어…?! 강 세나…

    한선생, 기 막히다는 표정으로 세나를 본다

    씬10. 평화상가 이층

    치킨 집 앞에 선 세나. 슬쩍 문을 연다.
    택조, 꼬꼬댁과 딱 붙어서 손으로 엉덩이를 더듬으며

    택조 꼬꼬야. 난 너 없으면 못 산다.
    꼬꼬댁 엉덩이에 마누라 깔고 뭐하는 짓이야. 이 손 치워.

    택조, 번쩍거리는 금목걸이를 손으로 쓰윽 꺼낸다.
    꼬꼬댁의 표정이 싹 바뀌는데…

    꼬꼬댁 요즘 금값이 얼만데…이렇게 누런 걸.
    택조 꼬꼬야 난 널 위해 못해 줄 게 없어. 말만 해. 뭐든지 다 해 준다.

    택조, 앞을 보다가 놀라 꼬꼬댁을 훌쩍 밀어낸다.
    세나가 치킨집으로 들어선다.

    택조 세…세나야…니가 여긴 왜…?! 아…아빠가 말야. 상가번영을 위해 일을 하다 보니까 목도 마르고…
    세나 (손 확 내민다)…
    택조 뭐?
    세나 (휙 돌아서며) 엄마 아래 있지?
    택조 (후다닥 지갑 꺼내 천원 꺼내며) 아빠가 안 그래도 우리 세나 용돈 좀 주려고 했는데…맛있는 거 사 먹고.
    세나 (돈 확 받고는 꼬꼬댁 아래위로 보더니) 아빠 눈 디게 낮다.

    세나, 꼬꼬댁을 확 노려보고는 나간다.
    고꼬댁, 기분 나쁜 얼굴로 나가는 세나를 본다.

    꼬꼬댁 딸년은 도둑년이라더니 벌써부터 뜯어 가냐.
    택조 조용히 좀 해. 아… 그러니까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잖아.
    꼬꼬댁 좀 있다가 단체 손님 있단 말야. 자기가 오늘 매상 다 올려줄 거야?
    택조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택조, 먼 곳을 바라본다. 슬쩍 금목걸이를 잠바 주머니 안에 넣는다.
    꼬꼬댁, 금목걸이를 침을 꼴깍 삼키며 본다.

    꼬꼬댁 집에 아무도 없긴 한데…

    씬11. 평화상가

    이층에서 내려오는 세나.
    가방에서 손바닥만한 둘리 가방에 천원을 구겨 넣는다.
    주위를 쓱 보고는 평화수퍼로 들어간다.

    씬12. 평화수퍼

    수퍼댁, 턱 괴고 멍하니 앉아 티비를 본다.
    세나, 들어와 과자 봉지 하나를 들고는 확 뜯어서 먹기 시작한다.

    세나 이혼해
    수퍼댁 (드라마에 집중하며) 들어가서 숙제나 해.
    세나 이혼하라니까!

    수퍼댁, 미동도 않은 채 천하장사를 하나 뽑아 세나에게 준다.
    세나, 천하장사 얻어서 둘리가방 안에 넣는다.
    드라마가 끝나자 수퍼댁, 일어난다.

    수퍼댁 가게 잘 보고 있어.

    가게 한 쪽에 있는 이십 킬로 쌀 푸대를 두 푸대씩 양쪽 어깨에 멘 수퍼댁. 거뜬하게 들고는 밖으로 나간다.
    수퍼댁이 지나가자 진열대에 쌓여 있는 과자들이 우르르 떨어진다.
    떨어진 과자를 가방 안에 옹골차게 집어넣는 세나.

    씬13. 아파트, 두나의 방

    두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앉아 우유를 마신다.
    백작, 옆에 앉아 담배를 한 모금 빤다. 휴대폰이 울리지만 안 받는다.
    발신자는 ‘마귀할멈’이다.

    백작 엄만 왜 널 싫어하실까.
    두나 내가 니네 엄마라도 나 싫어해.
    백작 도망가서 살까.
    두나 진심… 이야?
    백작 당빠 농담이지. 백수 둘이 도망쳐 뭐 하냐. 기껏해야 주유소 편의점인데 벌어봤자 월세도 못 낼 거고. 그러다 애라도 가짐…
    두나 (긴장) 애라도 가짐…
    백작 완전 신세조지는 거지.
    두나 (짜증난다) 넌 생긴 건 고품격인데 생각은 왜 그 따위니? 얼굴값 진짜 못 한다.
    백작 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많이들은 소리가 얼굴값 못한다는 거야.
    이 때 문이 열리고 세나가 들어온다.
    황급하게 일어나는 백작,
    세나는 두나와 백작을 번갈아보고는 얼굴 찌푸린다.

    백작 세나 오랜만이다.
    두나 (백작과 나가며) 집 잘 보고 있어.

    두나와 백작, 나간다.
    세나, 둘리 가방에서 천 원짜리들을 꺼내 장롱 문을 열고 신문지 뭉치를 꺼낸다. 뭉치 안에 돼지저금통이 있다. 저금통에 천 원짜리를 밀어 넣고 신문지로 다시 싼다. 장롱 안에 넣으려는데 문에 신문지 조각이 끼었다. 신문지 조각을 쭉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세나 언니보다 내가 더 예쁜데. 오빤 보는 눈도 없어.

    세나,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간다.
    쓰레기통 안에 든 신문지 조각에 오계장의 얼굴이 찍혀있다.

    씬14. 장미란 체육관 앞

    사진에서 쑥 빠지면 오계장의 긴장한 얼굴이 보이고
    그 앞으로 고양시장과 고양 시의원들, 체육진흥과장 홍과장, 장미란 선수, 그 외의 많은 인사들이 서서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다.
    테이프가 툭 잘리고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계장,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열심히 박수를 친다.

    씬15. 장미란 체육관

    고양시장이 장미란과 함께 체육관을 걷고 있고
    그 뒤로 수행원들이 따라간다. 오계장이 얼굴도 보인다.

    장미란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방법이 없을까요?
    시장 아. 방법이야 찾으면 있겠지요.
    오계장 (혼잣말) 방법이야 쉽지. 상품 빠방하게 걸고 일반인 역도대회 열면 끝인데 뭘 고민하시는지…

    순간 분위기가 싸해 진다.
    다들 오계장을 돌아보는데
    놀란 오계장, 얼굴이 굳는다.

    장미란 좋은 방법인데요. 시장님
    시장 일반인 역도대회라…자넨 누군가
    오계장 (긴장해서 딸꾹질 시작) 딸꾹…체…체육…진흥…딸꾹…과 계장인 오계…딸꾹…오계…딸꾹…딸꾹…
    시장 오골계? (인상 쓰며) 음…오골계…자네가 맡아서 진행하게.
    오계장 네? 제가…넵! 목숨을 다 바쳐 진행하겠습니다.

    오계장, 구십도로 인사를 한다.

    시장 그런데 아마추어 여자 역사들이 있습니까?
    장미란 남자 역도인 동호회들은 좀 있는데 여자는…거의 없을 거예요.
    시장 오골계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없으면 만들어오겠지요.

    오계장, 순간 비틀거린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다.

    씬16. 몽타주

    - 체육관
    벽에 커다랗게 ‘고양시 아마추어 역도 대회 참가자 모집’ 포스터 붙어있다.
    포스터 앞에 빈 의자가 놓여있다.
    - 고양시 거리
    오계장, 포스터를 여기저기 직접 붙이고 다닌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포스터 위에 캬바레 포스터가 붙는다.
    - 체육관
    포스터 밑에 빈 의자가 놓여있다.
    빈 의자에 앉은 오계장, 옆에 놓은 커다란 스카치테이프로 자기 목을 둘둘 감는다. 당장이라도 목을 매어 죽어 버리겠다는 표정이다.

    씬17. 설렁탕 집

    오계장과 백 코치, 설렁탕을 먹고 있다.
    백 코치, 휴대폰을 꺼내는데 뽀로로 스티커가 붙어있다.

    백코치 부상만 안 당했으면 전병관 선수 자리에 제가 있었을 겁니다.
    오계장 저런…안타까운 일이.
    백코치 지금은 비록 마누라 유치원 봉고 모는 신세지만…
    오계장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오직 마누라가 유치원 원장이어야 가질 수 있는 직업, 아닙니까.
    백코치 (감격) 맞습니다. 결혼도 능력!입니다.
    오계장 (흑) 그…렇지요. 쯔읍…아무튼 우리 역도를 국민체육으로 만들기 위해 이 한 몸 불태워봅시다.

    이 때 백코치의 휴대폰 벨 소리‘승리의 함성’이 울린다.
    휴대폰을 받는 백코치, 휴대폰 위에 뽀로로 스티커가 붙어있다. ‘

    백코치 (비장하게) 애들 데리러 갈 시간입니다.

    백코치, 비장하게 일어나다가 수육을 들고 오던 미자와 탁 부딪힌다.
    수육이 공중으로 붕 날아가 오계장의 얼굴위로 탁 떨어진다.
    오계장, 머리에 떨어진 수육을 집어먹으며 오미자를 본다.
    유니폼 위의 명찰에 ‘오미자’라고 쓰여있다.

    오계장 아가씨 이름이 오미자인가.
    오미자 네. 왜요?
    오계장 (오미자를 요리조리 뜯어보며) 참 싸가지 없이 생겼구만.
    오미자 (이런 씨…) 아저씨가 내 싸가지 없이 생긴데 보태준 거 있어요?
    오계장 힘 좋아 보인다. (흐뭇한 표정)…

    씬18. 평화수퍼(밤)

    수퍼댁, 혼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티비에서는 8시 뉴스를 하고 있다.

    씬19. 아파트, 거실

    열다섯 평 정도의 낡은 임대 아파트이다.
    콧구멍만한 방이 두 개 이고 거실에 파티션을 단 방이 하나 더 있다.
    상을 들고 수퍼댁이 들어온다.
    조그만 상에 둘러앉은 사람은 택조와 세나, 두나.
    하나는 방을 가로질러 높이 달아놓은 봉을 이용해 목하 팔 운동 중이다.

    수퍼댁 와서 밥 먹어.
    하나 근육은 매일 매일 단련시켜야 해. 안 그러면 늘어져.
    세나 (혼잣말) 반 토막 같은 애한테 삥 뜯기는 백수주제에.
    택조 너는 언제 취직하냐
    하나 아빤 언제 취직해요?
    택조 아무리 청년실업 백만 시대라지만 취직하는 녀석들은 다 한다.
    두나 오빤 청년 백수 백만 이전부터 쭉 백수였어요.
    하나 트럭 사 주면 채소 장사라도 할 께요.
    수퍼댁 트럭?!
    하나 네. 트럭요. 예전부터 쭉 장사하고 싶었어요. 채소 장사도 좋고 과일 장사도 좋고…

    상 위에는 고등어통조림에 고춧가루만 뿌려 지진 것과 구운 햄, 참치 넣은 김치찌개가 놓여 있다.
    두나는 숟가락을 탁 놓는다.

    두나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짜증 나.
    수퍼댁 먹어도 안 죽어. 독 있어도 어려서부터 먹여서 면역 돼 괜찮아.
    두나 (배 슬슬 만지며) 웰빙 반찬 없어?

    수퍼댁, 대꾸도 안 하고 하나만 뚫어져라 본다.
    우람한 근육이 힘 꽤나 쓸 것처럼 보인다.

    씬20. 주방

    설거지를 하는 수퍼댁. 멍하니 수돗물만 바라본다.
    옆에서 그릇을 닦는 두나.

    수퍼댁 트럭 얼마 하나
    두나 오빠 핑계 대는 거야. 엄마가 절대 트럭 못 사줄 거 알고서.
    수퍼댁 넌 어째 오빠 일이라면 쌍심지를 켜.
    두나 엄마!

    씬21. 평화 수퍼 앞

    수퍼 앞에 과일 트럭이 서 있고, 직원이 수박을 트럭에서 내린다.
    트럭을 유심히 보는 수퍼댁.

    씬22. 아파트, 안방

    큰 대자로 뻗어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자는 택조.
    살금살금 장롱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머니에 넣는 두나.
    택조의 팔 다리를 피해 방에서 나간다.

    씬23. 아파트 앞

    두나, 조그만 가방을 든 채 집을 쓸쓸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세나(e) 언니 가출해?

    놀란, 두나 돌아보면
    세나가 천하장사를 졸졸 빨며 서 있다.

    두나 (놀라며) 세…세나야…그게…
    세나 (손 쑥 내민다) !
    두나 (지갑에서 천원 꺼내 주며) 언니 없더라도 잘 지내야 해.
    세나 한 장 더.

    두나, 천원을 한 장 더 주며 편지도 준다.

    두나 엄마한테 전해 줘. 언니 간다.

    두나, 급하게 간다.
    세나, 무표정하게 돈과 편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으로 들어간다.

    씬24. 거실(아침)

    수퍼댁은 밥상을 차려 들어오고
    하나는 팔굽혀펴기를, 택조는 하품을 찍 하며 신문을 본다.
    밥상에는 어제 먹던 김치찌개와 햄 구이, 고등어통조림이 그대로 놓여있다.
    세나, 밥상머리에 앉으며 수퍼댁에게 편지를 준다.

    수퍼댁 뭐야?
    세나 언니 편지. 어제 언니 가출했어.

    밥숟가락을 뜨려던 식구들, 일제히 멈춤 상태로 세나를 본다.
    잠시 멈춤 상태였다가 다시 밥을 먹는 식구들, 별 일 아니라는 얼굴들이다.
    수퍼댁, 편지를 읽지도 않고 옆으로 확 밀어놓는다.

    수퍼댁 가출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면서 편지는 왜 쓴다니. 안하던 짓 하네.
    하나 미안했나보지 뭐. 고등어가 너무 짜잖아. 몸에 안 좋단 말야.
    수퍼댁 물 말아 먹어. 당신도 짜요?
    택조 아냐. 난 딱 맞아. 키울 근육도 없고.

    씬25. 골목길(낮)

    멍한 얼굴의 백작, 울 거 같은 얼굴이다.
    그 앞에 선 세나, 조금이라도 키가 더 커 보이려고 돋움 발을 한다.

    백작 두…두나가 가출을 해? 왜! 뭐 때문에!
    세나 오빠, 우리 언니요. 계절만 바뀌면 가출해요. 계절병이에요. 언니가 행실이 쫌 그래요.
    백작 나한텐 한 마디 말도 안 하고.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하지.
    세나 가출할 땐 원래 말 안하고 가는 거예요.
    백작 혹시…뭐 남긴 거 없어?
    세나 편지요. 원래 언니 편지 이런 거 안 쓰는데…언니두 오빠처럼 필기구하고 진짜 안 친하거든요. 암튼 이번엔 편지두 썼어요.
    백작 뭐라고 썼는데?
    세나 몰라요.
    백작 몰라! 왜! 읽었을 거 아냐.

    씬26. 아파트, 거실

    백작과 세나가 편지를 찾고 있다.

    백작 가족이란 사람들이 딸이 가출하고 편질 남겼는데, 그걸 안 읽어.
    세나 가출 한두 번 한 게 아니라서…
    백작 두나야…내가 더 안아줬어야하는데.
    세나 (우씨) 오빤 충분히 안아줬거든요. 언니가 가출한 건 오빠랑 헤어진다는 뜻이라구요. 언니가 바람났을지도 몰라요. 원래 우리 집에요. 저만 빼고 다들 바람기가 있거든요.

    백작, 방 구석구석을 익숙하게 뒤진다.

    택조(e) 너 거서 뭐 하냐.

    세나와 백작이 돌아보면
    택조와 수퍼댁, 하나가 함께 들어온다.

    세나 꼭 이런 때 들어와.
    하나 수퍼 앞에서 만났다. 밥때잖아.
    수퍼댁 너 점심은 먹었냐
    백작 (울먹울먹) 애인이 가출했는데 밥이 지금 입으로 넘어가요.
    택조 우는 거 보니 사귄지 얼마 안되었구만. 지난 번 놈은 울지도 않던데, 그래도 너는 순정은 있다.

    수퍼댁, 구석에 놓아둔 방석을 꺼내자 편지가 나온다.
    백작, 놀라 편지를 왈칵 움켜잡는다.

    세나 찾았다.

    백작,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가족들, 관심 없다. 택조는 앉아서 신문을 읽고, 하나는 봉으로 운동하고 , 수퍼댁은 참치 통조림 깡통을 확 뜯어 접시에 담는다.

    백작 (편지를 읽는다. 두나 톤 흉내 내어) 엄마, 미안. 이럴 수 밖에 없었어. 나중에 다 해결되면 돌아올게. 돈이 없어서 몇 개 가져가.

    일동, 스톱. 백작을 쳐다본다.

    백작 (계속 편지를 읽는다) 엄마가 아끼던 금반지, 내가 가져가…미안해.
    수퍼댁 금반지…그거…가짠데. 돈도 안 될걸.
    백작 오빠가 아끼는 전동자전거. 중고로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미안해. 내가 챙겼어.

    하나, 일어나 창밖을 본다.
    자전거가 안 보인다.

    하나 (충격으로 멍) 내 자전거…이런 나쁜 년.
    백작 그리고 세나가 아끼는 돼지저금통. 내가 배 땄어.

    놀란 세나 일어나, 옷장 안을 본다.
    돼지저금통이 창자를 드러내고 죽어 있다.
    세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다.

    백작 마지막으로 아빠.
    택조 난 가져갈 거 없어. 있음 벌써 내가 다 팔아치웠다.
    백작 아빠 잠바 안에 있던 여자 금목걸이. 순금이더라. 고마워.
    함께 금목걸이!
    택조 아냐. 내가 그런 게 왜…?

    놀란 택조,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간다.

    수퍼댁 목…걸이라니! 무슨 목걸이요.
    백작 네. 편지에는…순금이라는데요.
    택조 스토옵!
    수퍼댁 여보…?
    택조 어? (놀라 세나에게 구원의 눈길 보내며)…그…게…
    세나 (쓰윽 외면한다)…
    하나 아빠, 바람 폈어?
    택조 내가 무슨 바람을! 택도 없는 소리. 그 목걸인 그러니까…
    세나 엄마한테 선물할 거래.

    일동, 놀라 세나를 본다.
    세나. 자기도 자기 말에 놀라 눈이 땡그렇게 변한다.

    수퍼댁 여보?
    택조 (에라 모르겠다) 아. 진짜야. 내가 당신한테 생일…선물하려고 산거야.
    수퍼댁 생일은 아직 구 개월이나 남았는데.
    택조 미리 사 놓은 거지. 세일기간에…
    수퍼댁 (뚱하게) 그 돈으로 고기나 사 올 것이지. 쓸데없이. (나간다)

    택조와 세나, 눈이 마주친다.
    택조, 만원짜리를 꺼내 슬쩍 세나에게 준다.
    하나, 이 모습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본다.

    씬27. 주방

    햄 통조림을 뚝 따서 프라이팬에 굽는 수퍼댁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수퍼댁 웬일이래. 저 양반이. 평생 안하던 짓을 다 하고.

    그래도 기분이 좋다. 햄에 참기름을 푹푹 친다.

    씬28. 체육관

    체육관에 앉아 라면을 먹는 백코치와 오계장
    앞에는 김치가 아니라 어린이용 도시락이 두 개 놓여있다.
    곰돌이 모양으로 잘라진 과일꼬치와 머스타드 소스가 발린 줄줄이 비엔나 등이 보인다.

    오계장 라면하고 참 안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백코치 유치원에서는 다 이렇게 먹어.
    오계장 여기는 유치원이 아닌데요.
    백코치 어렵게 쌔벼 온 거야. 마누라한테 들키면 나 죽어.
    오계장 저 가난합니다. 한 달에 들어가는 적금만 해도 열 개가 넘는데다…
    백코치 그러지 말고…(미자 갈기 키며) 재한테 설렁탕 좀 가져오라 그래
    오계장 설렁탕 집 그만 뒀답니다. 역도에 올인 한답니다.

    비쩍 마른 오미자, 제일 작은 바벨을 질질 끌고 가고 있다.
    옆으로 조금 옮긴 후 힘이 드는지 바닥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백코치 청년실업 백만인데 한 명 더 양성할 일 있나. 그냥 설렁탕 집 가라 그래.
    오계장 안됩니다. 지금 한 명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인원수 땜빵 하려면 쟤라도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뭐…누굴 섭외해 오시던지.
    백코치 아 씨…가르치려 해도 제자가 없어. 제자가.
    오계장 사모님이라도…
    백코치 우리 마누란 나 먹여 살려야지!
    오계장 아. 네 죄송합니다. (혼잣말) 아…결혼이라도 했으면 마누라라도 동원하는 건데…(죽을 맛이다) 날짜는 다가오고. 여자 역사는 없고.

    이 때 자장면 배달부가 들어온다.
    지독하게 못 생긴 여자 순옥, 껌을 찍찍 씹고 들어와 테이블에 자장면을 휙휙 던지다시피 한다. 자장면 파편이 휙 튀어 오계장의 얼굴에 탁 붙는다.
    배달부 순옥, 자장면은 관심 없고 핸드폰으로 목하 통화중이다.

    오계장 식성 좋으십니다. 라면에 도시락에 자장면까지.
    오미자 그거 제 껀데요. (자장면 비닐 벗기며) 숙식 제공이라고 했죠?
    오계장 이거 다 얼마야.
    공순옥 (전화기에 대고) 야. 니네 편의점 일당 얼마야.
    오계장 얼마냐니까.
    공순옥 (전화기에 대고 버럭) 이런 씨이…얼마냐고 묻잖아.
    오계장 (으씨) 야. 짱께배달.
    공순옥 니미. 짱깨배달 오늘부로 확 짤렸다 그랬잖아. 어디 숙식만 제공되는 거면 뭐든 다 한다 내가.

    오계장, 눈이 번쩍 뜨인다.
    공순옥을 뚫어지게 본다. 지독하게 못 생겼다.
    오계장, 인상을 팍 찌푸린다.

    씬29. 평화수퍼

    수퍼댁, 턱을 괴고 앉아 티비를 돌린다.
    ‘세계를 가다’가 나오자 채널 고정한다.
    이 때 꼬꼬댁과 미장원 민원장이 수퍼로 들어온다.
    예쁘장한 목욕바구니를 나란히 옆에 끼고 들어와 우유를 산다.

    민원장 수퍼댁, 뭐 좋은 일 있나봐.
    수퍼댁 제가 좋은 일이 뭐가 있겠어요.
    민원장 아닌데,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는데. 뭐야. 말해 봐. 응? 혹시 어젯밤에 저기 번영회장님하고 (박수 짝짝 치며) 오랜만에. 응?
    수퍼댁 어휴 민원장님도 참…남사시럽게.
    꼬꼬댁 우유가 왜 이래. 유통기한 지난 거 아냐.
    수퍼댁 오늘 아침에 들여 논 거예요.
    민원장 어휴 거긴 금술도 좋아. (은근 꼬꼬댁 들으라는 투로) 번영회장님이 은근 글래머를 좋아한다니까.
    수퍼댁 제가 좀 에스자이긴 하지만서두…
    꼬꼬댁 (민원장과 키득거리며) 에스이긴한데 울트라 초특급 수퍼에스 라서.
    민원장 (웃음을 참고) 뭐야. 응? 말해 봐.
    수퍼댁 참… (웃음 참고) 세나 아빠가 절 위해 선물을 다 샀더라구요. 별 건 아니고 조그만 금 목걸인데…순금 같기도 하고…
    민원장 순금!!! 요새 금값이 마누라값보다 더 비싸다는데.
    꼬꼬댁 (짚이는 게 있다) 디자인이 뱀 줄에다 가운데 사슬무늬가 있는…
    수퍼댁 어머, 뱀 줄에다 사슬무늬…맞…는데. 그걸 어떻게.
    꼬꼬댁 나쁜 자식.

    꼬꼬댁, 목욕바구니를 내팽개치고 급하게 수퍼를 뛰어나간다.
    민원장과 수퍼댁 무슨 일인가하고 마주본다.
    수퍼댁, 급하게 따라간다.

    씬30. 아파트, 거실

    택조, 바지를 갈아입으려는데 현관문이 확 열린다.
    놀란 택조, 바지에 다리를 꿰다말고 휙 넘어진다.
    현관문을 열고 다짜고짜 밀어닥친 꼬꼬댁,

    꼬꼬댁 어디 있어.
    택조 자…자네가 여긴 왜에?
    꼬꼬댁 내 목걸이 내 놔.
    택조 목…걸이? (헉) 아니 그게 말이야. 내가 자네 주려고 여기 잠바에다 넣었는데…
    꼬꼬댁 넣었는데.
    택조 그게 저기…말이야.
    꼬꼬댁 분명 내 꺼라 그랬잖아. 그래서 우리집까지 가고 그래놓고. 이럴 수가 있어! 내일 준다며! 꼭 준다며!

    택조, 앞을 보고 놀란다.
    수퍼댁이 현관문 앞에 서 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다.

    택조 여…여보?

    수퍼댁, 꼬꼬댁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씬31. 아파트 앞

    이 때, 바람이 휘리릭 불면서 검은 비닐봉지가 휘리릭 날리고.
    석양의 무법자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수퍼댁의 통굽 구두가 떡 버티고 선다.
    팔을 둥둥 걷은 수퍼댁, 골리앗이 걸어가듯 성큼 성큼 계단을 올라간다. 그 뒤로 민원장과 세나, 동네 아줌마들이 줄줄이 따라간다.

    씬32. 이층 복도

    복도에 떡 버티고 선 수퍼댁
    저 멀리 꼬꼬치킨의 입간판이 보인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수퍼댁, 입간판 앞에 선다.

    씬33. 꼬꼬치킨

    꼬꼬댁, 눈물콧물 찍어내며 앉아있고
    그 옆에서 택조,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꼬꼬댁 내 ….목걸이…
    택조 다시 하나 사 줄게.
    꼬꼬댁 싫어.
    택조 더 비싼 걸로. 지난번은 순금 아녔어. 십사케이였는데 이번엔 진짜 순금으로. 응?
    꼬꼬댁 진짜 순금?
    택조 그럼…

    꼬꼬댁, 택조의 품으로 사르르 안기려는 찰나,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린다.
    문 앞에 수퍼댁이 서 있다.
    놀란 택조, 꼬꼬댁을 확 밀치고 도망을 가려고 한다.
    수퍼댁, 치킨집으로 들어오려는데 입구 통로 양쪽으로 맥주박스들이 쌓여있다. 그 사이 좁은 통로를 들어가려던 수퍼댁, 그만 몸이 딱 끼고 만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맞춤처럼 꽉 끼어버린 몸.
    꼬꼬댁, 기 막혀 팔장을 끼고 수퍼댁을 본다.
    뒤에서 구경을 하던 민원장과 동네 아줌마들, 키득키득거린다.
    졸지에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수퍼댁,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간다.

    꼬꼬댁 (큰 소리로) 어머, 너무 뚱뚱해서 몸이 끼었어.
    수퍼댁 너 이년…
    꼬꼬댁 출렁이는 뱃살…어떻게 해. (택조의 어깨에 팔 슬쩍 올리며) 우리 오빠 같은 미남하고 살려면 관리를 했어야지.
    수퍼댁 (택조를 돌아본다) … 여보?
    택조 (무안하다) 에…에헴. 거 참 민망하게.

    꼬꼬댁과 택조, 치킨집 뒷문으로 나간다.
    민원장과 동네 아줌마들, 수퍼댁을 경멸하는 얼굴로 보며 간다.
    세나, 열이 받아 휙 돌아서 가버린다.
    아무도 없고 수퍼댁 혼자 몸이 낀 채 서 있다.

    씬34. 평화상가 마당

    꼬꼬댁과 택조, 계단에서 내려온다.
    그 뒤로 동네사람들이 따라 나온다. 세나도 따라 나온다.
    택조, 꼬꼬댁의 손을 슬쩍 뿌리치며 헛기침을 한다.

    택조 (들으라는 듯) 마누라가 오해를…거 참…수퍼나 잘 지킬 것이지…

    뒤에서 민원장과 동네 아줌마들, 꼬꼬댁을 마땅치 않은 얼굴로 본다.

    꼬꼬댁 뭐요? 난 잘못한 거 없어요…

    이 때, 상가 이층에서 맥주 박스가 바닥에 떨어진다.
    파편들이 여기저기 튀고
    놀란 꼬꼬댁,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꼬꼬댁 옴마야!

    놀란 사람들과 꼬꼬댁, 하늘을 본다.
    이층에서 수퍼댁이 맥주 박스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다시 던지려 한다.
    놀란 꼬꼬댁과 아줌마들., 모두 비명을 지르며 피한다.

    수퍼댁 으아아!!!
    세나 엄마…

    씬35. 꼬꼬치킨 앞

    수퍼댁, 맥주박스를 내려놓고 씩씩거린다.
    얼굴에 난 땀을 닦는다. 땀이 아니라 차라리 눈물이다.
    수퍼댁, 속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꾹꾹 삼키며 걸어간다.
    그 뒤로 보이는 사람, 오계장이다.

    씬36. 상가들

    아파트 상가들이 많은 곳을 걸어가는 수퍼댁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오계장.
    문득 멈춰 선 수퍼댁,
    놀란 오계장, 숨는다는 게 하필이면 가로수 뒤다.
    수퍼댁, 거리의 쇼윈도우에 자신의 몸을 비춰본다.
    뚱뚱하고 못 생겼다.
    그 옆으로 날씬하고 예쁜 여자가 옆에 서서 같이 몸을 비춰본다.
    여자, 수퍼댁을 흘낏 보고는 피식 경멸의 웃음을 보내고 간다.
    수퍼댁, 고개를 푹 숙인다.

    오계장 퍼펙트!

    씬37. 아파트 거실

    밥상 앞에 놓고 상념에 젖은 수퍼댁
    세나는 슬슬 눈치를 본다.
    하나는 그러던가 말던가 밥 먹느라 정신이 없다.
    밥 먹는 와중에도 다리를 흔들어 근육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씬38. 아파트 안방(밤)

    수퍼댁, 혼자 이부자리에 누워있다.
    이리저리 뒤척뒤척하는데
    밖에서 들리는 쾅! 문을 발로 차는 소리
    수퍼댁, 몸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간다.

    씬39. 거실

    수퍼댁 방에서 나온다.
    택조가 술이 취해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하나는 놀라며 택조를 본다. 그리고 슬슬 피하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세나 역시 방으로 쪼르르 들어간다.

    씬40. 세나의 방

    세나, 방으로 들어온다.
    수퍼댁이 문을 꼭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택조(e) 남편 개망신시킬 일 있어! 내가 사람들한테 뭐가 돼! 당신 그렇게 생각 없는 여자야!
    수퍼댁(e) 애초에 당신이 바람을 피니까 이런 일 생긴 거잖아요.
    택조(e) 어디서 여자가 소릴 빽빽 질러.
    수퍼댁(e) 내가 없는 소리 했어요! 내가! 어디까지 갔어! 어디까지 갔냐니까.

    철썩, 뺨 때리는 소리 나고
    방문 쾅 닫는 소리가 나고

    택조(e) 내가 이러니까 당신하고 살기 싫은 거야. 알아! 내가 바람피우는 거 다 당신 탓이야!
    수퍼댁(e) 왜! 왜 그게 내 탓이야!
    택조(e) 눈이 있음 거울 좀 봐. 당신 몰골이 어떤지. 어떤 남자가 당신하고 자고 싶어 해!
    수퍼댁(e) 그럼 그년하고 자면 좋은가보지. 아주 미칠 거 같은 가보지.
    택조(e) 그래. 좋다. 아주 미치겠다.
    수퍼댁(e) (비명을 지르며) 악!

    택조, 방문을 쾅 닫는 소리가 난다.
    뒤이어 수퍼댁의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세나, 이불을 푹 뒤집어쓴다.

    씬41. 몽타주(낮)

    - 평화수퍼
    수퍼댁, 무표정하게 과자를 진열대에 놓는다.
    오계장, 살짝 들어와 과자를 사는 척하며 수퍼댁을 본다.
    - 임대 아파트 마당
    20킬로짜리 쌀푸대를 양 어깨에 두 개씩 지고 걸어가는 수퍼댁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이 안 간다.
    - 임대 아파트 계단
    수퍼댁, 등에 양문 냉장고를 지고 혼자 계단을 올라간다.
    그 밑에서 인부들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다.
    오계장은 완전히 반한 얼굴로 수퍼댁을 본다.

    씬42. 평화수퍼(밤)

    수퍼댁, 턱을 괴고 앉아 티비를 본다.
    세나, 천하장사를 먹으며 수퍼댁을 본다.
    티비에서는 ‘개그 콘서트’가 나온다.
    수퍼댁, 티비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막 웃는다.
    웃는데 눈에서 자꾸 눈물을 닦는다.

    씬43. 평화수퍼 앞(밤)

    불이 켜진 평화수퍼.
    안에서 수퍼댁이 티비를 보며 웃는 모습이 어쩐지 처연해 보인다.
    세나는 수퍼댁의 옆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다.
    수퍼 옆 가로등이 지지직 하더니 툭 하고 꺼진다.
    오계장, 가로등 밑에서 수퍼댁을 지켜본다.

    세나(e) 난 진짜 엄말 모르겠어. 오빠.

    씬44. 공원(밤)

    백작,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있고
    그 옆에 딱 붙어서 세나가 앉아있다.
    세나, 가로등 불빛에 비친 백작의 잘 생긴 얼굴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세나 아빤 얼굴 말곤 볼 게 하나도 없거든. 남자 외몰 왜 따져. (백작의 옆모습을 보며 침 꼴딱 삼키고) … 오빠…
    백작 두나 친구들 다 물어봤어.
    세나 언니가 친구가 있어? 꼴통이 친구도 다 있네
    백작 있어. 한 명. 두나보다 더 꼴통. 전화했더니 잡히기만 하면 머리털을 다 뽑아버릴… (눈물을 흘리며) 거라고…
    세나 혹시 그 언니, 우리언니한테 돈 뜯겼대?
    백작 아니.
    세나 그럼…혹시 오빠랑 사귀었다고?
    백작 응.
    세나 언니가 학교에서 왕따였던 것도 오빠 때문이겠구나.
    백작 여자애들은 왜 그럴까. 왜 날 가만 안 둘까. 난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랑 사귈 자유도 없어. 내가 두나 좋다는데 그냥 가만 놔두지.
    세나 (침을 꼴딱 삼키며) 그 언니들 진짜 이해돼.
    백작 (기어이 눈물 터지고) 두나야….흑…

    세나, 위로하는 척하며 백작의 몸에 손을 대려는데

    세나 오빠 쫌만 기다려. 내가 얼른 커서 돈 벌어서…

    백작, 고통스러운 얼굴로 일어나더니 집으로 가버린다.
    세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백작의 뒷모습만 아련하게 바라본다.

    씬45. 평화수퍼 앞(낮)

    아래위로 양복을 쫘악 빼 입고 포마드까지 쫘악 발라 넘긴 촌스러운 오계장, 수퍼 앞 창문에 자기 얼굴을 요리조리 비춘다.

    씬46. 평화수퍼

    티비를 보며 턱을 괴고 앉은 수퍼댁
    문 앞에서 오계장의 하는 짓을 보니 우스꽝스럽다.

    수퍼댁 참 촌스럽다.

    수퍼댁, 다시 티비를 보는데
    문이 열리고 오계장이 들어온다.
    오계장, 긴장을 하고 뭘 사는 척하며 수퍼댁을 흘낏흘낏 본다.
    수퍼댁, 마치 도둑인양 오계장을 감시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수퍼댁의 시선에 오계장의 뺨이 발그레 변한다.
    과자를 사려다가 그대로 놓고 또 수퍼댁을 흘낏 보고, 또 옆으로 가서 뭘 집다가 수퍼댁을 흘낏 보고, 결국은 물건을 집어오는 오계장.
    오계장, 물건을 카운터에 내민다. 이런 여자 생리대다.

    수퍼댁 이걸 엇다 쓰게요?
    오계장 제가 쓸 겁니다. 그것보다 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오계장, 수퍼댁의 손을 확 잡는다.

    오계장 당신은…(감격에 겨워) 완벽합니다.
    수퍼댁 에?
    오계장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시다가…(눈물 찍) 이제야 제 눈앞에…
    수퍼댁 (헉) !
    오계장 (눈물 한 방울 뚝 흐르고) !
    수퍼댁 저…장판 안 삽니다.
    오계장 에? 자…장판이라하심은…?
    수퍼댁 안 사요. 옥장판이든 금장판이든 안 산다구요.
    오계장 그게 아니라…

    수퍼댁, 생리대와 오계장의 얼굴을 번갈아본다.
    오계장, 그제야 카운터에 놓은 물건이 여성용 생리대인 걸 알고는 놀라 생리대를 확 던져버린다.

    오계장 이…이게 여기 왜…
    수퍼댁 나가세요.
    오계장 오햅니다. 오해…저는 (명함 꺼내며) 고양시청 체육진흥과…
    수퍼댁 당장 나가시라구요!

    수퍼댁, 깡통으로 오계장의 뒤통수를 내려치려한다.
    오계장, 놀라 도망치려고 문으로 다가가는데
    마침 문이 확 열리면서 그대로 오계장의 이마와 정면으로 쾅 부딪힌다.
    뒤로 벌러덩 넘어진 오계장, 일어나는데 코에서 피가 주르르 흐른다.
    오계장의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이 바닥에 뚝 떨어진다.

    씬47. 체육관

    한쪽 눈이 밤탱이가 된 오계장, 코 위에는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그 밑에 솜으로 틀어막았다.
    체육관에는 말라 비틀어진 오미자가 거울을 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계장, 이대로 땅으로 꺼지고 싶다는 얼굴이다.
    이 때, 오계장의 시야를 가리는 한 여자
    김장 무통 같은 튼튼한 다리와 더 튼튼한 허벅지, 불룩한 뱃살에 밋밋한 가슴, 그 위로 더 올라가니 얼굴이 보인다. 주근깨가 잔뜩 앉고 눈이 쫙 찢어진, 딱 보기에도 심하게 성질 드러워 보이는 얼굴의 공 순옥. 껌을 쫙쫙 씹더니 바닥에 확 뱉는다.

    순옥 뭘 봐. 못 생겨서.
    오계장 악!!! 나 말리지 마요,

    오계장, 그대로 창문으로 달려가 뛰어내리려한다.
    백코치가 다가와 오계장을 붙든다.

    백코치 오! 참아 참으라고!
    오계장 죽어야 해.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해!
    백코치 (순옥에게) 당장 잘못했다고 빌어!
    순옥 내가 왜!
    백코치 못 생긴 얼굴 들이밀고 협박했잖아.
    순옥 지는 북어대가리같이 생겨가지고.
    오계장 (다시 창문으로 뛰어내리려한다) 나 죽을 꺼야.
    배코치 참아. 참아 오. 장가는 가고 죽어야지.

    씬48. 꼬꼬댁의 집 골목(밤)

    수퍼댁, 장을 보고 걸어오다가 멈춰 선다.
    허름한 집을 올려다보더니 살금살금 마당으로 들어간다.

    씬49. 꼬꼬댁의 집 마당

    수퍼댁이 들어온다.
    마당 빨랫줄에 브레지어며 속옷들이 걸려있고
    열린 현관문 안쪽에서 히히덕거리는 웃음소리가 난다.
    어지럽게 널린 신발 중에서 택조의 신발을 찾아내는 수퍼댁

    꼬꼬댁(e) 오빠아…간지러. 아우 그만해.
    택조(e) 아우 귀여운 것. 여자란 자고로 이렇게 남자 품에 포옥 안기는 맛이 있어야지.
    꼬꼬댁(e) (까르르 웃으며) 오빠, 코끼리하고 어떻게 평생 살았대. 응?
    택조(e) 그래도 젊었을 땐 이뻤어. 애 낳고 살이 쪄서 그렇지.
    꼬꼬댁(e) 쳇. 젊었을 때 안 이쁜 여자 있나…

    수퍼댁,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한다.
    현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옆모습. 너무 뚱뚱하고 추해 보인다.
    거울을 노려보는 수퍼댁, 획 돌아선다.
    마당 빨래건조대에 널린 꼬꼬댁의 브레지어와 팬티들.
    땡땡이 무늬의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브레지어와 팬티이다.
    수퍼댁, 땡땡이 브레지어를 집어 자기 가슴에 대 본다. 턱도 없이 작다.
    브레지어를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돌아서는 수퍼댁. 이를 앙다문다.

    씬50. 아파트, 거실(아침->낮)

    수퍼댁, 밥을 먹지 않고 티비만 보고 있다.
    하나가 밥상을 들고 들어와 바닥에 놓는다.
    세나는 슬쩍 수퍼댁의 눈치를 보고, 택조는 신문을 본다.

    택조 신문에 오탈자 많은 거 봐라. 월급 멀쩡하게 다 받아먹고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하는 꼬락서니하고는, 내 당장 전화를 해서…
    세나 아빠 지금 밤이야.
    택조 이것들이 지금 시국이 어떤데 신문사가 정시퇴근을 해. 정신을 못 차려도 유분수지. 이러니까 나라가 이 꼴이 나는 거야.
    수퍼댁 나 좋다는 남자…있어요.
    하나 어.
    택조 무슨 드라만가.
    수퍼댁 (버럭)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나 좋다 그랬다구요!

    택조와 하나, 세나,. 놀란 얼굴로 수퍼댁을 본다.
    다들 믿지 않는 얼굴로 수퍼댁을 보고는 도리질을 한다.

    수퍼댁 진짜 있어! (지갑 뒤지면) 있다는데 왜 안 믿어.

    수퍼댁 거실로 나간다.
    택조와 하나, 세나는 아니라는 표정으로 도리질한다.

    (시간경과)
    오계장, 양복을 차려입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다.
    그 앞에 택조와 하나, 세나가 앉아있고 그 옆으로 수퍼댁이 앉아있다.
    이건 마치…장인장모 앞에 결혼허락 받으러 온 사위 꼴이다.

    오계장 저는… 건강한 여자가 좋습니다.

    택조, 옆에 놓인 베개를 오계장의 머리를 향해 확 던진다.
    오계장, 묵묵히 베개세례를 맞는다.

    택조 너 군대 나왔냐.
    오계장 특전사 출신입니다.
    택조 (헉) 에헤헴!
    수퍼댁 (오계장에게) 일어나요. 더 말 섞을 필요 없고. 나갑시다.
    택조 어딜 나가. 이 괴상한 상황에서.
    수퍼댁 그럼 여기서 살림 차려요!
    오계장 (주섬주섬 일어나며) 두루두루 평안하십시오.

    수퍼댁과 오계장이 나란히 나간다.
    택조와 하나, 기 막혀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다.

    씬51. 평화수퍼

    오계장이 우유를 마시며 앉아있고
    그 앞에서 수퍼댁, 일 리터까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수퍼댁 오늘 고마웠어요.
    오계장 아…아닙니다. 저는 정말 꿈만 같습니다.
    수퍼댁 약속은 꼭 지킬께요. 그니까 오계장님도 약속…지키세요.
    오계장 (흥분) 기다리겠습니다.

    오계장, 뜨거운 눈길로 수퍼댁을 본다.
    수퍼댁과 오계장이 있는 수퍼 창문으로 세나의 머리카락 꽃핀이 보인다.

    씬52. 평화수퍼 앞

    세나, 안을 훔쳐보지만 소리는 안 들린다.

    세나 아…답답해 뭐지?
    백작(e) 뭐해
    세나 옴마야.

    세나, 놀라 돌아보면
    백작이 세나 바로 등 뒤에 서 있다.
    마치 세나를 뒤에서 껴안는 폼이다.

    백작 (세나의 귀 가까이 대고) 두나는 소식 없지?
    세나 네 오빠…

    세나의 얼굴이 점점 홍조를 띈다.
    심장소리가 점점 커진다. 심장이 튀어 나갈 것만 같다.

    세나 오빠…살이 많이 빠진 거 같아요.
    백작 응. 그리움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
    세나 (혼잣말) 멋지다.

    백작의 모습이 햇살에 더욱 빛난다.
    세나, 백작의 숨소리를 귓가로 느낀다.

    백작 두나야…

    씬53. 편의점

    편의점 앞치마를 입고 대걸레로 바닥을 싹싹 닦는 두나.
    문이 열리자 후다닥 뛰어가 인사한다.

    두나 어서 오세요.

    남자손님, 카운터 옆의 뜨거운 오뎅을 꺼낸다.
    오뎅 냄새를 맡은 두나, 바코드기를 집다가 그대로 헛구역질을 한다.

    씬54. 수퍼

    우유를 사서 계산대로 가는 두나
    뚱뚱한 수퍼아줌마가 티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우유에 바코드를 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두나.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두나 아줌마. 이름이 뭐예요?
    수퍼아줌마 (기분 나쁜 얼굴로 두나를 보더니 다시 티비로 시선 돌린다) …!
    두나 그냥 이름이 궁금해서요

    씬55. 평화수퍼

    전화기가 울린다.
    카운터에 팔을 기대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하나. 전화기가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전화기가 끈질기게 울리자 받는 하나

    하나 여보세요?
    두나(e) … 오빠…
    하나 너 누구냐? 혹시 두나.
    두나(e) 응…
    하나 이 미친 년, 너 내 자전거 안 가지고 와. 빨리 가져와. 흠집이라도 냈단 봐. 너 아주 죽을 줄 알아!

    전화가 뚝 끊긴다.
    하나, 뭐야? 하는 얼굴로 전화기를 본다.

    씬56. 체육관

    백코치, 수퍼댁의 요모조모를 꼼꼼히 뜯어본다.
    쭈쭈바를 쪽쪽 빨며 삐딱한 얼굴로 선 순옥, 미자는 자장면을 먹는 중이다.
    그 옆에서 세나도 자장면을 먹고 있다.
    오계장은 일 리터짜리 생수병을 몇 개 안고 싱글거리며 들어온다.
    백코치, 수퍼댁의 팔을 손으로 만져보고는 감탄을 한다.

    백코치 짧고 굵은 다리에 땅에서 그대로 솟아난 듯한 굵은 허리. 굵고 짧은 팔, 짧은 목. 큰 얼굴…아. 이건 판타지야. 판타지.
    수퍼댁 그렇게 노골적으로 뚱뚱하다고 말 안 해도 뚱뚱해요.
    오계장 칭찬입니다. 칭찬.
    수퍼댁 누가 칭찬인지 몰라서…(뭔가 이상하다) 잠깐! 여기 뭐하는 덴가요? 그냥 운동하는 덴 아닌 거 같은데.
    백코치 여기 역도 하는 곳입니다. 모르고 오셨습니까.
    수퍼댁 역도요!
    오계장 (앗차!) 아…아니 그게…
    수퍼댁 전요. 역도할 생각 없습니다. (세나에게) 가자.
    세나 엄마.

    오계장, 수퍼댁을 막아서며

    오계장 역도가 절대로 나쁜 운동이 아닙니다.
    수퍼댁 비키세요.
    오계장 제 말을 믿으십시오. 정말 좋은 운동이고…앞으로 국민체육으 로 …
    수퍼댁 그렇게 좋으면 오계장님이나 많이 하시라구요. 아셨어요!

    수퍼댁, 오계장을 확 밀치고 나간다.
    오계장,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는다. 후다닥 따라 나간다.

    씬57. 평화수퍼(밤)

    수퍼댁, 수퍼로 들어온다.
    하나, 운동을 하다가 수퍼댁을 보고 그대로 넘어지고 만다.

    수퍼댁 동사무소 가서 해. 신경 거슬려.
    하나 (나가며 천하장사 한 큼 집어 주머니에 넣고) 쌀 배달 있어.

    하나, 슬쩍 눈치보고는 나간다.
    수퍼댁, 카운터에 앉는다. 리모콘으로 티비를 켠다.
    티비에서는 세계를 가다…를 방송하고 있다.
    외국의 모습을 멍한 얼굴로 보는 수퍼댁, 한숨을 푹 쉰다.

    씬58. 아파트, 거실

    택조, 좋아죽겠다는 얼굴이다.

    택조 역도! 크하하하…그럼 그렇지….아이구. 내가 다 창피하다.
    세나 아이 씨…이게 아닌데…

    세나, 손에 쥔 오천원을 원망스레 본다. 괴롭다.

    씬59. 꼬꼬치킨 앞(낮)

    민원장이 세탁물을 들고 걸어오고 있다.
    이 때 안에서 꼬꼬댁의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민원장, 뭔가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씬60. 평화상가. 몽타주

    - 수퍼댁, 이십킬로짜리 쌀 두 푸대를 든다.
    - 민원장과 꼬꼬댁, 다른 아줌마들에게 소곤소곤 소식을 전한다.
    - 쌀 두 푸대를 마치 역기처럼 끄응하고 양 어깨에 지고 걸어간다.
    뒤에서 이 모습을 보고는 키득키득거리는 동네 아줌마들.
    수퍼댁, 알지만 일부러 외면해버린다.
    - 수퍼댁, 평화수퍼 카운터에 앉는다. 그리고 티비를 켠다.
    개그콘서트가 나온다. 수퍼댁, 티비에서 웃음소리가 나지만 웃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씬61. 동사무소 체력단련실

    운동기구도 몇 개 없는 초라하고 조그만 체력단련실이다.
    비쩍 마른 할아버지가 아령 하나를 들고 끙끙거리며 운동하고 있고
    그 옆에 아기가 기어 다니고 있다.
    움직일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가 나는 낡은 러닝머신 위를 뛰는 하나.
    오계장, 그 옆에 나란히 있는 러닝머신을 함께 뛰고 있다.
    오계장, 곧 쓰러질 거 같다.

    오계장 자넨 뭘 하고 싶은가.
    하나 뭐…특별한 기술도 없고… 트럭 한 대 사주면 채소장사라도 할 생각인데 트럭 값이 어디 한두 푼도 아니고.
    오계장 그렇지. 꽤 하지. (하나를 아래위로 보며) 근데 참 몸 좋아.
    하나 (오계장을 아래위로 보며) 살기 불편하실 거 같은데.
    오계장 (자존심 상하고) 불편하지. 아주 많이…바람 불면 날아갈까…비 오면 녹을까…눈 오면 묻힐까…
    하나 아줌마가 무슨 역도를. 말이 되는 소릴.
    오계장 타고난 재능은 나이가 들어도 눈에 띄는 법이지.

    오계장,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뒤로 스르르 넘어간다.

    씬62.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 나란히 앉은 오계장과 세나
    세나에게 천원을 주는 오계장
    이미 세나의 손에는 천원짜리가 잔뜩 들려있다.

    오계장 그래서 언니는 가출중이고.
    세나 근데요 아저씨. 더 궁금하신 거 없으세요?
    오계장 (세나를 빤히 보며) 너 몇 살이냐
    세나 먹을 만큼 먹었는데요.
    오계장 역시 인터넷이 문제야.

    오계장, 일어나 세나를 등지고 간다.

    씬63. 평화수퍼 앞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면서 한 곳에 모여 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가면
    수퍼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사람은 바로 오계장이 보인다.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상품 트럭, 점심제공, 방송인터뷰 보장’ 이라고 쓰여 있다.

    오계장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썩히지 마십시오.

    사람들 웅성웅성한다.

    오계장 역도, 좋은 운동입니다. 균형 감각이 필요한 운동입니다. 역도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만약 저라면 일년 삼백 육십 오일 수퍼에서 티비만 보면서 살다가 죽으면…너무 억울할 거 같습니다.

    수퍼의 문은 아직도 닫혀있다.
    비가 주룩주룩 온다.
    사람들이 다들 비를 피해 도망간다.
    오계장, 계속 비를 맞고 앉아있다. 비 맞은 생쥐 꼴이다.

    씬64. 평화수퍼

    우산을 든 수퍼댁, 나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한다.
    이 때, 전화가 울린다.

    수퍼댁 여보세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수퍼댁, 전화를 끊으려다가 뭔가 번 듯 스치는 생각. 정신 차리고

    수퍼댁 두나지. 두나 맞지?
    두나(e) (울먹이며) 엄마…
    수퍼댁 두나야. 가출 너무 길어지면 못 써. 대충하고 들어와.
    두나(e) (우는 소리) … 나…나…
    수퍼댁 (불안하다) 왜 울어? 너 혹시…무슨 일…있어?
    두나(e) 나….임신했어.
    수퍼댁 뭐…이…임신…임신!
    두나(e) 근데 떼라고 할까봐…무서워서 도망쳤어.
    수퍼댁 (침을 꿀꺽 삼키고) 애 아빠가 누구니? 혹시 백작이니?
    두나(e) 엄마. 미안해.

    두나, 전화를 끊었다.
    놀란 수퍼댁, 전화기를 멍하니 본다.

    수퍼댁 두나야. 두나…

    씬65. 평화수퍼 앞

    비 오는 속에 앉은 오계장, 일어나려는데
    수퍼의 문이 벌컥 열린다.
    놀란 오계장, 다시 수퍼 앞에 앉는다.
    수퍼댁, 오계장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옆을 휙 스쳐 지나간다. 무시당한 오계장, 속상한 얼굴로 가는 수퍼댁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비가 뚝 그친다.

    씬66. 백작의 집 앞

    꽤 부잣집이다. 담장으로 고풍스러운 소나무가 보인다.
    자다 일어난 얼굴의 백작, 트레이닝복 차림에 샌달을 신고 나온다.
    주먹을 꽉 쥔 수퍼댁, 백작에게 다가간다.

    백작 (인사) 안녕하세요…
    수퍼댁 자다 일어났냐.
    백작 네…
    수퍼댁 대낮에 잠은…

    수퍼댁, 백작의 모습을 뚫어지게 본다.
    환한 햇살을 받으며 선 백작의 얼굴이 너무 아름답다.
    백작, 눈꼽을 떼며 수퍼댁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수퍼댁 어째 잘 생긴 남자 좋아하는 거까지 엄말 빼 닮았을까…
    백작 네?
    수퍼댁 (돌아서서 간다) … 들어가라.
    백작 (뛰어오며) 두나한테 연락 왔죠? 맞죠?
    수퍼댁 (길게 본다) … 두나가 니 애 가졌어. 그래서 가출했다.
    백작 (놀라 멍하니 서 있다) … 애…임신…?
    수퍼댁 들어가서 자던 잠 마저 자라.

    백작, 수퍼댁을 바라보다가 다리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씬67. 골목

    수퍼댁, 혼자 걸어간다.
    머리 위에 내려 쏘는 햇살을 올려다본다. 눈이 부시다.

    수퍼댁 날 참 좋다…

    씬68. 아파트 거실

    세나, 편지를 읽고 있고
    그 앞에서 택조, 마치 시를 감상하듯 눈을 감고 편지내용을 듣는다.
    하나는 아령을 들고 팔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

    세나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저는 혈기왕성한 스물세 살에 조국을 위하여 이 한 몸 바치겠다는 충심으로 해병대에 들어갔으며, 제대를 한 후에도 이 한 몸 동네의 발전과 무궁한 번영…
    택조 계속 읽어.
    세나 무궁한 번영을 위해 저는 원치 않았으나 동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저를 상가번영회 회장으로 추대를 하여…오늘도…
    세나 아빠, 근데 이 주소로 보내면 진짜 대통령한테 가.
    택조 당연하지. 주소가 청와대잖아! 내가 대통령한테까지 진정을 해야 이것들이 정신을 차리지. 자고로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정신상태가 글러먹었어요. 내가 안 나서려고 해도 안 나설 수가 없어.

    수퍼댁, 밥상을 가지고 들어와 바닥에 놓는다.
    택조와 하나, 세나가 밥상 앞에 앉는다.
    수퍼댁, 택조의 편지와 세나를 번갈아본다. 하나의 아령도 번갈아 본다.

    수퍼댁 너, 트럭 사 줄까?
    하나 (별 생각 없이) 트럭?
    수퍼댁 지난번에 그랬잖아. 트럭만 사 주면 채소 장사라도 시작한다고.
    하나 아…그거. 뭐 사 주기만 하면이야…
    수퍼댁 알았다.
    택조 (눈을 반짝이며) 당신이 돈이 어디서 나서 트럭을 사.
    수퍼댁 밥이나 드세요.

    택조, 마땅치 않은 얼굴로 수퍼댁을 보다가 밥을 먹는다.

    수퍼댁 역도 대회…그거 나가려구요.

    택조와 하나, 세나 일동 스톱.
    황당하다는 얼굴로 수퍼댁을 본다.
    수퍼댁, 그러던가 말던가 개의치 않고 밥만 먹는다.

    택조 하…역도는 아무나 해. 그 사람들 뚱뚱해 보여도 다 근육이야. 당신은 비곗덩어리잖아. 못해. 절대 못해.
    하나 역도대회 나가면 트럭 준대요?
    수퍼댁 일등 하면. 상품이 트럭이야.
    택조 주제에 무슨 일등을. 하…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아니 웃는 게 아니지 트위스트 춤을 춰. 동네 창피하게. 역도는 무슨,
    수퍼댁 어차피 한 번 창피 당한 거 두 번이면 어때요.
    택조 미쳤구만 미쳤어.
    수퍼댁 (물 먹고) 아무튼 나갈 테니까 수퍼는 당분간 하나가 맡아.

    수퍼댁, 물컵을 탁 내려놓고 나간다.
    가족들, 어이없다는 얼굴로 수퍼댁을 바라본다.

    씬69. 고양시청 마당

    오계장, 자판기 커피 두 잔을 양 손에 들고 후다닥 뛰어나오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 디뎌 넘어진다. 커피가 앞으로 쫘악 쏟아진다.
    오계장의 흰 와이셔츠에 커핏물 얼룩이 진다.
    그래도 싱글벙글 웃는 오계장

    수퍼댁 괜찮으세요?
    오계장 아 이거…요기 삼층 자판기 커피가 맛있거든요. 한참 줄 서서 뽑아온 건데. 잠깐 기다려보세요. 제가 다시 가서 뽑아오면
    수퍼댁 역도경기…그거 나갈께요.
    오계장 (놀라며) 네? 방금 뭐라고…
    수퍼댁 거기 놓고 간 판넬에 보니까 트럭도 주고 방송출연도 시켜준 다 그러던데
    오계장 아. 네. 트럭은 일등을 해야 타는 거지만 출전하는 선수가 세 명 밖에 안 되기 때문에…나가면 일등입니다.
    수퍼댁 그래요? 그럼 방송출연은?
    오계장 처음으로 열리는 시민역도경기라서 무슨 리포터가 와서 찍어갈 건데 일등을 하면 인터뷰를 하니까 그때…
    수퍼댁 그땐 아무 얘기나 해도 되죠.
    오계장 그럼요. 뭐 집 나간 딸한테 돌아오라고 하던가…
    수퍼댁 됐네요. 좋아요. 해요. 하자구요.
    오계장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울먹울먹) … 고맙습니다.

    씬70. 평화수퍼

    하나가 우유를 먹고 있고 그 옆에 백작이 앉아있다.
    과자를 사러 온 여고생들,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더니 백작에게 다가온다.
    백작, 과자를 계산하고는 여고생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놀란 여고생들. 저희들끼리 좋다고 키득거리더니 한 여학생이 전화번호를 놓고 후다닥 나간다.
    창문 밖에서 세나가 잔뜩 부은 얼굴로 이 모습을 본다.

    하나 매상 늘어나면 반땅 해 줄게.
    백작 (전화기 보며) 두나 전화 오겠죠?
    하나 보기보다 순정파야.

    씬71. 평화수퍼 앞

    여고생들 까르르 웃으며 핸드폰에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간다.
    세나, 잔뜩 화가 났다.

    세나 이게 다…엄마 때문이야.

    씬72. 체육관

    공 순옥, 삐딱하게 서서 껌을 찍찍 씹으며 수퍼댁을 본다.
    미자는 자장면을 먹고 있다.

    순옥 뭘 봐.
    수퍼댁 너 체육관 뒤로 좀 나와라.
    순옥 나오면 어쩌게…
    수퍼댁 시끄럽고. 일단 나와.

    수퍼댁, 앞서서 가고
    그 뒤로 순옥이 따라간다.
    오계장이 자장면 단무지와 양파를 들고 나오다가 두 사람을 본다.
    백코치는 훈련계획표가 붙은 흰 종이를 들고 들어온다.

    백코치 다 어디 간 거야
    미자 수퍼 아줌마 군기 잡으러 갔어요.
    백코치 군기를 왜 자기가 잡아. 내가 코친데.
    미자 체격으로 보나 카리스마로 보나…수퍼 아줌마가 딱이죠.
    백코치 이런 씨…

    (시간경과)
    흰 면티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똥 싸는 포즈로 서 있는 수퍼댁과 미자, 순옥. 한쪽 눈탱이가 밤탱이다.
    커다란 나무 봉을 앞으로 쭉 뻗어 잡고는 위로 올리는 폼을 연습중이다.

    수퍼댁 잘 해라. 어.
    순옥 (얌전하게) 네.
    수퍼댁 넌 내 상대가 아냐. 나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 남편이 있어. 아들딸이 있어.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수퍼도 있고 나이도 너보다 많고 밥도 더 많이 먹었어. 또 까불면 확 그냥…
    순옥 아 씨…갈 데만 생겨봐. 당장 그만둔다.
    수퍼댁 그리고 하나 더. 그만둬도 혼 날 줄 알아. 우린 얄짤 읎서.
    백코치 역도는 균형의 운동이다. 따라서 폼이 가장 중요하다. 폼을 잘못 잡으면 허리 팔 다리 등등의 부상을 입기 쉽다. 알았나
    수퍼댁 알았습니다.
    백코치 엉덩이를 좀 더 확실하게 뒤로 쫙 빼. 안 그러면 허리 다친다.

    미자, 뽀오옹 하고 방귀를 뀐다.
    수퍼댁과 순옥, 백코치와 오계장까지 코를 쥐고 괴로워한다.

    미자 다이어트 한다고 청국장을 먹었더니…

    씬73. 아파트, 거실(밤)

    나무 봉을 앞으로 잡고 엉덩이를 뒤로 쫙 내밀고 똥 싸는 포즈로 선 수퍼댁, 봉을 위로 올리는 폼을 계속 연습중이다.
    택조와 하나, 세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수퍼댁을 바라본다.

    하나 엄마, 그거 하면 쌈 잘 하게 돼?
    수퍼댁 몰라. 그냥 하는 거야. 재능 있다잖아.
    택조 재능은 개뿔. 그 놈 그거 돈 욹어낼라고 그라는 거얏!

    택조, 방으로 들어가면서 세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

    씬74. 체육관(낮)

    세나, 가방에서 천원을 꺼내 보고는 다시 넣는다.
    수퍼댁과 순옥, 미자가 엉덩이를 뒤로 쫙 빼고 폼 훈련을 하고 있다.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다.
    백코치, 20kg 역기를 수퍼댁의 앞에 밀어놓는다.

    백코치 아직 무리라는 건 아는데…가장 가벼운 이게 가능…

    백코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역기를 끙 하고 드는 수퍼댁,
    발을 앞으로 내딛지도 않고 위로 들어올린다.
    놀란 백코치, 헉 하며 뒷걸음질한다.

    수퍼댁 더 무거운 거 없어요?
    백코치 (마땅치 않은 얼굴로) 계속 그런 폼으로 쌀푸대 들어왔어요?
    수퍼댁 왜요. 맘에 안 들어요?
    백코치 무릎…안 아팠어요? 허리는요? 아무래도…(세나보더니) 애도 셋이나 낳고 했으니 일단 골다공증 검사한 번 해 봅시다.
    수퍼댁 그런 거 필요 없고 그 폼이나 알려줘요. 왜 용상인거 그거 할 때 발을 앞으로 착 내밀고…
    백코치 일반인 여자 경기는 인상 밖에 없어요. 뭐…체급도 없고, 기냥 무거운 드는 사람이 장땡입니다.
    세나 (끼어들며) 아저씨 그러면 우리 엄만 나가면 바로 일등이에요?
    백코치 뭐 그런 거지. 일등 상품이 트럭이다.
    세나 와…
    미자 우리두 수퍼댁 아줌마하고 같이 들어요? 불공평하잖아요.
    순옥 이건 아니죠.
    백코치 선수 세 명에 무슨 체급을 나눠. 남자들도 한 체급으로 하는 데.
    미자 아. 진짜 상금타면 옷 살라고 그랬는데.

    백코치, 수퍼댁의 무릎을 걱정스럽게 본다.
    무릎에 쑥뜸자국이 보인다.

    씬75. 꼬꼬치킨

    택조 소형 트럭!

    택조, 치킨을 입에 물고 있다가 확 던지며 일어난다.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는 꼬꼬댁.
    그 앞에서 세나가 천원을 손에 쥐고 남은 치킨을 집어 먹는다.

    세나 (발끈) 우리 엄마가 거기서 제일 잘해요. 알지도 못하면서.
    꼬꼬댁 참가만 하면 트럭이 생긴다! 어머 오빠…,완전 남는 장사야.
    택조 그래도…에헴. 마누라를 그런 대회에…

    씬76. 고양시청 앞(택조의 상상)

    소형 트럭에 새빨간 현수막
    ‘잘못된 주차구획선, 사고를 부른다. ’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트럭 위에 군림하듯 서 있는 택조.
    계란 차 스피커처럼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
    ‘주차구획선을 잘못 그어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 고양시장은 반성하라. 반성하라’
    시장이 얼른 뛰어나와서 놀란다.

    씬77. 일식집

    도미회의 눈알을 쏙 빼먹는 사람은 택조.
    그 앞에 시장이 무릎 꿇고 앉아 정종을 한 잔 건넨다.

    시장 자 한 잔 쭉 드십시오.
    택조 내가 어지간하면 그냥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어째 일을 그렇게 할 줄 모르요. 에? 어째 좋은 대학들 나와서 주차구획선 하나도 제대로 못 긋습니까. 이 더운데 내가 이런 거 다 만들어서 이래 설쳐야 나라가 제대로 잡히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요.
    직원 (더럽고 치사하지만 꾹 참고) 오죽하시겠습니까.
    택조 똑바로들 허요. 에?

    택조, 회를 커다랗게 한 점 집어 먹는다.

    씬78. 아파트, 거실(현재)

    택조의 입에서 스르르 흐르는 미역국.
    행복한 미소가 줄줄 흐른다.
    세나, 택조를 의아하게 보다가 다시 하나를 돌아본다.
    하나, 숟가락을 든 채 역시 몽상중이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

    소리(e) 계란이이이 와써요. 싱싱하고 큼직한 계란이이이 와써요…

    씬79. 골목(하나의 상상)

    지독하게 못 생긴 왕비호, 삐딱한 얼굴로 화면을 노려본다.

    왕비호 만원 있냐.

    그 앞에 선 하나, 비웃음을 흘리고는 뒤로 간다.
    잠시 후, 트럭을 몰고 오는 하나, 비호가 깜짝 놀라며 옆으로 비킨다.
    비호를 지나며 총으로 쓱 죽었으! 표시하는 하나.
    신나게 달려간다.

    씬80. 골목(현재)

    계란트럭에서 계란을 사는 하나. 트럭을 마치 연인인양 손으로 쓸어본다.
    계란장수, 별 거지같은 인간이라는 얼굴로 하나를 본다.
    그 옆에서 택조, 트럭의 스피커를 정겹게 본다.
    세 사람의 뒤편 전봇대에 포스터가 붙어있다.
    ‘고양시 주최 일반인 역도대회’
    포스터 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미니쿠페 사진.
    그 옆에 ‘1등 BMW’라는 선명한 글씨.

    씬81. 고양시청 시장집무실

    ‘고양시 주최 일반인 역도대회’ 포스터가 화면 가득 보이고
    포스터를 기분 좋게 보는 시장.
    그 뒤로 보이는 건 오계장,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시장 역시 외제차가 폼이 나지.
    오계장 저는 아무래도 소형 트럭 두 대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만…예산도 넉넉지 않은데…지난 번 꽃박람회 때 협찬 받고 남은 트럭도 두 대 있고.
    시장 오계장, 넓게 보라구. 국내 최초로 열리는 일반인역도대회, 이슈가 확실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나.
    오계장 상품이…
    시장 그렇지. 상품이 아주 근사하고 확 눈에 띄어야지.
    오계장 남자부는 그렇다 치고 여자부는 참가하는 선수도 몇 명 없고…
    시장 벌써 섭외해 놨네.
    오계장 서…섭외라 하심은…
    시장 점심이나 같이 하지.

    시장, 웃으면서 나간다.
    오계장, 죽겠다는 얼굴로 따라간다.

    씬82. 체육관(밤)

    거울을 보며 엉거주춤 서서 역기를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수퍼댁. 5kg 짜리 역기를 어렵게 위로 올렸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는 미자.
    순옥은 역기를 들다가 빙글빙글 돌고는 그대로 바닥에 던진다.

    백코치 다리에 힘을 팍 주고 허벅지와 허리 엉덩이 힘으로 올린다… 실시.
    오계장 많이 늘었습니까?
    백코치 천부적인 재능이야. 어려서 역도 했으면 아마 지금쯤 제2의 장미란은 됐을 거다.
    오계장 좀 더 쎄게 훈련을 시켜야하지 않을까요? 구십킬로짜리를 든 다던가.
    백코치 너 수퍼댁 무릎 작살 낼 일 있냐.
    오계장 아 씨… 트럭을 타야하는데
    수퍼댁 걱정 붙들어 매세요. 며칠 뒤에 트럭 타면 입 싹 닦지는 않을 테니까.
    오계장 미치겠다.

    수퍼댁, 역기를 드는데 빠지직 무릎에서 소리가 난다.
    무릎을 살짝 떨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역기를 머리 위로 올린다.

    씬83. 삼겹살집

    불판에 지글지글 타는 삼겹살
    그걸 바라보는 오계장의 마음도 지글지글 타오른다.
    백코치, 삼겹살을 굽기 바쁘게 먹는다.

    미자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젤 싫어하는 게 그냥 상 위에다 이런 거 버리는 손님들이거든요. 아 재수 없어.
    오계장 그래. 너 참 예의바르…

    오계장, 허거걱 놀란다. 신문의 오린 부분이 바로 체육대회 광고사진.
    옆의 신문을 보니 대문짝만하게 ‘고양시 주체 일반인 역도대회’광고와 미니 쿠페 사진이 실려있다. 그 위에 눈에 띄는 글자 ‘아마추어 여자 역도인의 신청쇄도’
    오계장, 놀라 신문을 후다닥 뜯어서는 급한 김에 질겅질겅 씹어 먹는다.

    미자 여기 상추 많은데…
    오계장 난 원래 삼겹살을 신문지에 싸 먹는다. 맛 죽여.
    미자 (안에 대고) 이모, 여기 못 쓰는 신문지 좀 가져다줘요.
    오계장 이런 씨…

    수퍼댁이 소주를 한 잔 마시자 그걸 확 빼앗아 먹는 백코치
    미자가 옆자리의 신문을 쭉 찢어 그 위에 삼겹살의 오돌뼈를 확 뱉는다.

    백코치 경기 전까진 술 일체 금물.
    수퍼댁 네. 알아모시겠습니다.
    순옥 아줌마 이름이 뭐야?
    수퍼댁 (순간 당황) 이…이름은 왜
    순옥 그냥 궁금하잖아.
    수퍼댁 별 걸 다…
    백코치 그러고 보니까 이름을 모르네. 어차피 경기에 나가면 본명으로 해야 하는데 뭐요…이름이…
    수퍼댁 내 이름은….(기어들어가는 소리) 새…봄…
    백코치 에? 안 들려. 뭐?
    수퍼댁 (더 작은 소리) 새…봄
    백코치 새 … 뭐?
    수퍼댁 (버럭) 아 새봄이라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백코치 새…새봄…이 새봄

    백코치와 미자, 순옥 모두 배꼽을 잡으며 웃는다.
    수퍼댁, 얼굴이 붉어지면서 어디 구석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일어나 나가려는데 오계장, 벌떡 일어나 수퍼댁의 손목을 잡는다.

    오계장 이 새봄이 뭐!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이야! 난 좋다. 끝장나게 좋아! 내 이름은 더 해. 내 이름은 징어야. 오 징어!

    사람들 다들 풋풋거리다가 포복절도를 한다.
    다른 사람들도 웃겨 죽겠다고 여기저기서 넘어지는 사람까지 나온다.
    수퍼댁, 참으려 하나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비식비식 나온다.

    씬84. 골목

    오계장, 바람을 쏘이며 앉아있다.

    수퍼댁 오계장님.

    수퍼댁이 삼겹살집에서 나와 오계장의 옆에 선다.
    오계장, 어쩐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기분도 요상하다.
    오계장, 수퍼댁을 돌아봤다가 눈이 마주치자 허걱 놀라며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하늘만 줄창 바라본다.

    오계장 달도 밝다.
    수퍼댁 고마워요. 조금 전에…
    오계장 아. 뭐…그냥 저도 모르게…
    수퍼댁 진짜 본명이 오징어…예요? 명함엔 오대보…라고 되어있던데
    오계장 개명한 겁니다. 오징어에서.
    수퍼댁 네에…. 살면서 처음이에요. 누가 내 편 들어주는 거….
    오계장 (아이처럼 맑게 웃는다) … 아…뭐…제가…그냥…

    이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에 오계장의 맑게 웃는 얼굴이 순수해 보인다.

    수퍼댁 빨리 장가가세요.
    오계장 .주변머리가 없어놔서…(뒷머리 긁적긁적) 생긴 것도 이렇고
    수퍼댁 생긴 게 어때서요. 인물만 허여멀건 놈한테 속아보니 알겠던데요. 속이 꽉 찬 놈이 살긴 더 좋다는 거.
    오계장 그 말은 제가 속이 꽉….(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된다) …
    수퍼댁 어떤 여자가 좋으세요? 제가 소개해 드릴께요.
    오계장 소개는 무슨…전…(정색하며) 마른 여자가…싫습니다.
    수퍼댁 네에?
    오계장 제가 말라서…푸짐한 여자가 좋습니다. 엄마처럼 이렇게 포근하게 안 길 수 있고… 배…뱃살 배고 누워서…하늘도 보고…

    오계장, 수퍼댁과 눈이 마주치자 어쩔 줄 모르고는 귀까지 빨개진다.
    수퍼댁,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쿵 쿵 쿵 쿵

    씬85. 평화수퍼 앞

    여전히 비가 내리고
    택시에서 내린 오계장과 수퍼댁, 문을 닫은 평화수퍼 처마 밑으로 뛴다.

    수퍼댁 그냥 가시지 괜히 여기까지…비도 오는데
    오계장 아…아닙니다. 그래도 밤에 위험합니다. 여자 혼자 다니기엔.
    수퍼댁 (웃으며) 제 덩치를 보세요. 무슨 일 일어나겠어요?
    오계장 왜 자기 자신을 폄하…합니까.
    수퍼댁 저도 거울은 볼 줄 아네요.
    오계장 아닙니다. 새봄씬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오계장, 수퍼댁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바들바들 떨고 있다.
    손의 떨림이 느껴지는 수퍼댁,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오계장을 정면으로 본다. 그리고는 오계장을 팍 껴안는다.
    수퍼댁에게 폭 안긴 오계장, 처음엔 놀라더니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수퍼댁, 오계장을 바라보더니 기어이 키스를 한다.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빗소리와 수퍼댁의 심장 소리만 들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산을 쓰고, 다른 우산 하나를 든 세나, 돌아선다.

    씬86. 아파트 거실

    수퍼댁, 걸레질을 하다가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세나 엄마.
    수퍼댁 응?
    세나 나 이제 새 아빠랑 살아야 해?

    수퍼댁, 잠시 세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이 때 전화가 온다.

    택조 여보세요…(사이) 여보세요…아. 누구야. 누군데 하루 종일 장난 전화질이야! 너 걸리면 죽을 줄 알아!

    수퍼댁, 뭔가 마음에 짚이는 게 있다. 걸레를 확 던지고 택조에게 달려가 전화기를 빼앗는다.

    수퍼댁 여보세요. 두나…두나지. 두나 맞지?
    두나(e) (흐느끼고) …
    수퍼댁 몸은 괜찮고…어디 아픈 덴 없고…
    두나(e) 엄마…
    수퍼댁 어디야…엄마가 갈게…어딘지만 말해…어?
    두나(e) 미안해…(전화를 끊는다) …
    수퍼댁 두나야. 두나…

    수퍼댁, 전화를 끊고 멍하니 있다.

    택조 그년은 왜 안 들어와. 들어오기만 해 봐라. 내 다리몽둥이를.
    하나 뭔 일 있나. 왜 자꾸 저래.

    수퍼댁, 마음이 착잡하여 창밖만 본다.

    (시간경과)
    달빛만이 교교하게 거실을 비춘다.
    수퍼댁, 베란다 앞에 턱을 괴고 기대앉아 달빛을 본다.

    수퍼댁 내가 미쳤지…잠시…정신이 나갔어…

    세나, 잠옷을 입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수퍼댁을 본다.
    달빛을 받으며 앉아있는 수퍼댁의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세나 엄마…?
    수퍼댁 일루 와.

    세나, 수퍼댁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그리고 잠이 든다.

    씬87. 아파트 앞

    두나, 멀리서 집을 바라보며 서 있다.

    씬88. 거실(아침)

    수퍼댁과 택조, 하나와 세나가 티비를 보면서 아침을 먹고 있다.

    아나운서(e) 고양시 주최 일반인 역도대회가 많은 시민들의 호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의 여자 역사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화면에 등록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놀란 택조와 하나, 티비 볼륨을 키운다.

    아나운서(e) 일등 상품으로 BMW와 상금 천만 원을 내건 고양시는 이번 체육대회가 성공으로 치러질 경우 매년 시민역도대회를 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 등록된 남자 시민 역사는 백 명, 여자 역사는 삼십 명에 이르며 그 중에는 전국체전 금메달을 딴 여자 역사 왕은지선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씬89. 체육관(낮)

    백코치와 오계장, 순옥과 미자, 긴장한 얼굴로 앞을 본다.
    수퍼댁, 아대를 차고 벨트를 죄이고는 역기 앞에 선다.
    오늘은 60 KG이다.
    탄산 마그네슘을 묻힌 수퍼댁, 기합을 넣는다.

    수퍼댁 하!
    백코치 긴장하지 말고 육십 킬로도 할 수 있다! 아자.

    수퍼댁, 탄산 마규네슘 가루를 묻히고 그 앞에 선다.
    합! 기합을 넣고 역기를 잡는다.
    숨을 고른 수퍼댁, 역기를 든다. 서서히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백코치와 오계장이 박수를 친다.

    오계장 와. 들었다. 들었어.
    수퍼댁 (좋아하며 그 자리에서 폴짝 뛴다) 성공이야!
    미자 아줌마 왕짱이다. 나는 못 들 줄 알았는데.
    순옥 (미자 머리 탁 때리며) 당연히 들지 왜 못 들어.
    백코치 (수퍼댁의 등을 두들겨주며) 무릎은 괜찮습니까.
    수퍼댁 문제 없어요.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도 경기에 나온다면서요?
    오계장 아…그게…(고개 숙이고)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수퍼댁 오계장님.
    오계장 입이 열 개라도…
    수퍼댁 오계장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저는 그냥…인터뷰만 할 수 있으면 돼요 우리 두나한테 제가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오계장 네. 그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사시키겠습니다.

    수퍼댁, 웃으며 탈의실로 간다. 무릎을 약간 전다.

    씬90. 탈의실

    수퍼댁,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무릎을 찔끔하더니 의자에 간신히 앉는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수퍼댁
    무릎을 손으로 살살 만진다. 그 위로…

    의사(e) 퇴행성 관절염입니다. 아침에 팔다리가 쑤시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무리한 운동은 절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안 그러면 무릎 못 쓰실 수도 있습니다.

    수퍼댁, 팔 다리를 스트레칭 한다.

    수퍼댁 며칠만 버텨라. 며칠만…우리 두나 찾을 때까지만…

    씬91. 아파트 거실(아침)

    밥을 먹는 수퍼댁과 택조, 하나와 세나.

    수퍼댁 오늘 시합 나가요.
    택조 잘 하고 와.
    수퍼댁 (아쉽다) …티켓은…
    택조 오늘 해병대 전우회 모임이 있다. 내가 회장인데 가 봐야지.
    하나 오늘 수퍼 쉬어야 하나
    택조 그걸 왜 쉬어!
    세나 엄마…사실은 오늘 영어 연극 발표회야. 엄마가 바빠서 말 안 했어.
    수퍼댁 … 미안하다.

    수퍼댁,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열심히 밥을 먹는다.

    씬92. 어울림누리 체육관 전경

    ‘고양시 주최 일반인 역도대회’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수막 아래에 건물 앞에 전시된 것은 BMW
    그 앞에 ‘1등 상품’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타이탄 트럭이 서 있고 그 앞에 ‘2등 상품’ 이라는 푯말
    김치 냉장고가 보이고 그 앞에 ‘3등 상품’ 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사람들 쿠페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난리다.

    씬93. 대기실

    백코치가 수퍼댁의 어깨 근육과 팔 근육, 다리 근육을 풀어주고 있다.
    수퍼댁의 주변으로 여자 역도 선수들이 많이 보인다.
    유독 눈에 띄는 선수는 바로 왕 은지. 딱 보기에도 체격이 우람하다.
    수퍼댁, 무릎을 가늘게 떨고 있다.

    백코치 긴장하지 마. 잘 할 수 있어.
    수퍼댁 전국체전 금메달이 여긴 왜 나와. 국가대표로 나갈 것이지.
    백코치 스캔들 일으켜서 짤렸는데 그럼 어쩌냐. 배운 게 이건데 여기라도 나와야 쟤도 먹고 살지.
    수퍼댁 남 걱정해요?
    백코치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이 때, 가족들과 함께 걸어오는 강 장재가 보인다.
    앳된 얼굴에 체격도 수퍼댁보다 더 좋다.
    수퍼댁의 옆에 앉은 강 장재, 옆에 더 큰 덩치의 남편과 아들까지 있고 그 옆으로 정코치가 서 있다.

    백코치 오랜만이군
    정코치 어…! 이게 누구야. 잘 지냈고. 역도 그만 둔 줄 알았는데.
    백코치 머…그렇게 됐지. (강장재를 턱으로 가리키며) 자네 선순가.
    정코치 응. 대학 때까지 역도선수였어. 옆에는 남편이고 그 옆엔 남동생인데 다 역도선수들이지.
    백코치 실력이 만만치 않겠구만.
    정코치 왕은지도 강장재한텐 안 될걸. 실력이 대단해. 아마추어가 아니라 진짜 프로거든.

    수퍼댁, 강장재를 돌아본다.
    가족들이 강장재를 둘러싸고 온 몸을 풀어주고 남편은 자세 교정코치까지해 주고 있다. 수퍼댁, 부러운 눈으로 본다. 무릎이 더 떨려온다.
    밖에서 떠나갈 듯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모니터를 보니 미자가 20킬로를 들고 빙빙 돌다가 그대로 앞으로 팍 고꾸라진다. 수퍼댁, 차라리 눈을 감고 만다.

    수퍼댁 아무래도 나…화장실에 좀…

    수퍼댁, 사색이 되어 화장실로 뛰어간다.

    씬94. 화장실

    수퍼댁, 휴지를 꼭 붙들고 부들부들 떤다.

    수퍼댁 할 수 있어. 그래…할 수 있다. 해 낸다. 반드시…해 낸다.

    수퍼댁, 나가려다가 다시 다리 힘이 빠져 변기 위에 앉는다,
    밖에서 두들기는 소리
    수퍼댁, 심호흡을 한다.

    씬95. 경기장

    수퍼댁, 떨면서 경기장에 들어선다.
    순간 정적이 감돌고 수퍼댁의 숨소리만 들린다.
    눈앞에 순간적으로 새까맣게 변하는 수퍼댁,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그제야 사람들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고 이어서 크게 들린다.
    심장 소리 둥 둥 둥 둥…
    눈앞에 역기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진다.
    벨트를 다시 꽉 조이고 탄산 마그네슘을 묻히고 기합을 넣는다.
    그리고 역기에 손을 댄다.
    수퍼댁, 기합을 넣고 역기를 올리고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툭 던진다.
    옆의 전광판에 ‘실패’ 라고 뜬다.
    안타까움의 소리가 들리고 돌아서는 수퍼댁, 다리가 덜덜 떨린다.

    씬96. 대기실

    들어오는 수퍼댁, 의자에 철퍼덕 앉고는 머리를 감싼다.
    백 코치, 수퍼댁의 등을 쓸어준다.

    백코치 아직 기회가 있다. 두 번이나 더 기회가 있으니까…
    수퍼댁 못 하겠어요.

    백코치, 수퍼댁의 뺨을 철썩하고 때린다.
    수퍼댁 놀라 백코치를 본다.

    백코치 정신 차려! 당신이 저 여자들보다 뭐가 못해! 애도 셋이나 낳았고, 나이도 더 많고 밥도 더 많이 먹었고, 거기다 남편도 있잖아! 수퍼도 있고! 쟤들보다 백 배 낫네. 그러니까 해! 임신해서 집 나간 딸도 찾고 백수로 노는 아들도 사람 노릇 시켜야 할 거 아냐!
    수퍼댁 (백코치를 노려보더니 일어난다) …
    백코치 (다행이다) … 그렇지. 힘 내고.
    수퍼댁 코치님. 오계장님 어디갔어요.
    백코치 글쎄…왜? 부를까?
    수퍼댁 만나면 가만 안 둔다 전해요. 왜 남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다 불고 다녀.
    백코치 (픽 웃는다) 아까 역기 들 때 엉덩이가 덜 빠졌고 왼쪽 균형이 무너졌어. 들 때 발로 땅을 쾅 차고 그 힘으로 일어나! 아합!
    수퍼댁 (고개를 끄덕이며 기합) 아합!

    씬97. 경기장

    강 장재, 역기 앞에 서 있다.
    관중석에서 플랫카드가 보인다. ‘대한민국 최고의 역도선수 강 장재 파이팅’ 강 장재, 씩 웃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역기 앞에 선다.
    전광판에 40kg 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끄응 하고 역기를 들지만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역기를 던진다.
    플랫카드가 쑥 내려가고, 강 장재는 울면서 들어간다.

    씬98. 대기실

    강 장재가 목을 떨군 채 들어온다. 그리고 의자에 퍼질러 엉엉 운다.
    수퍼댁의 팔과 다리를 미자와 순옥이 풀어준다.

    순옥 이번에도 못 들면 아줌마 가만 안 둬.
    미자 어제 내가 쌔벼 온 수육 다 먹었으니까 꼭 들어야 해요.

    수퍼댁, 일어나며 아대를 다시 찬다. 그리고 경기장을 향해 걸어간다.

    씬99. 경기장

    수퍼댁, 경기장으로 들어온다.
    다리가 떨리고 주위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퍼댁의 긴장된 숨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탄산 마그네슘이 확 튀고
    심장소리가 둥 둥 둥 둥 터질 듯이 난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수퍼댁, 역기를 보다가 고개를 든다.
    관중석이 보인다.
    그 때 관중석에서 느린 화면으로 무언가가 위로 올라가는 게 보인다.
    플랫카드이다.
    ‘최고의 역도선수 평화수퍼 수퍼댁 파이팅’
    플랫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은 바로 택조와 하나, 그리고 세나이다.
    수퍼댁의 눈이 커다랗게 변한다.
    이어 관중석 맨 위에 펼쳐지는 초대형 플랫카드
    ‘사랑합니다. 이 새봄씨.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플랫카드를 들고 있는 오계장의 얼굴이 보인다. 미소도 보인다.
    수퍼댁, 활짝 웃는다.
    사람들의 소리와 환호가 다시 들리고
    역기가 보인다.
    수퍼댁, 숨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가 뜬다.
    이어 기합을 넣고 역기를 들어서 올리기 시작한다.
    무릎이 약간 흔들리고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지만 다시 힘을 내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다.
    전광판에 ‘성공’ 이 찍히고 역기를 내린다.
    수퍼댁, 자기도 모르게 좋아하며 펄쩍 펄쩍 뛰고
    관중석의 택조, 하나 세나도, 오계장도 눈물을 흘리며 좋아한다.

    씬100. 대기실

    수퍼댁, 들어와 백코치와 포옹을 한다.
    백 코치 좋아하며 수퍼댁의 등을 쓸어준다.

    백코치 됐어. 이제 됐어. 잘 했어.
    수퍼댁 고마워요….정말 고마워요.

    택조와 하나, 세나가 수퍼댁에게 달려온다.
    세나, 바로 수퍼댁에게 안긴다.
    수퍼댁, 무릎이 아파 비틀거리지만 꾹 참고 세나를 안는다.

    세나 엄마…축하해.
    수퍼댁 그래. 고맙다. (택조에게) 어떻게 된 거예요? 못 온다더니…
    택조 에헤헴…거 뭐…그래도 마누라가 경기하는 건 보러와야지.
    하나 엄마가 이등 맞죠? 트럭 타는 거 맞죠?
    수퍼댁 아마 그럴걸.
    백작 수고하셨어요. 아줌마. 정말 멋져요.
    수퍼댁 고맙다.

    이 때 오계장의 모습이 보인다.
    수퍼댁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계장의 뒤로 방송국 카메라와 리포터가 보인다.
    오계장, 약속 지켰다는 뜻으로 손가락을 든다.

    씬101. 주유소

    차에 기름을 넣는 직원,
    그 뒤로 휴지를 들고 뛰어오는 여직원은 바로 두나.

    두나 (인사하며) 안녕히 가세요.

    차가 떠나고
    두나는 주유소 사무실로 뛰어간다.

    씬102. 주유소 사무실

    사무실로 뛰어온 두나, 먹던 컵라면을 마저 먹는다.
    다른 몇몇 직원들도 티비를 보면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티비에서 경기장의 모습이 나온다.

    리포터(e) 여기는 우리나라 최초로 열리는 일반인 역도대회 현장입니다. 중년에 역도를 시작한 새내기 역사가 있어서 잠깐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역도를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티비에 수퍼댁의 모습이 나온다.
    두나, 컵라면을 먹다가 옆에 놓인 김치를 쏟고 만다.
    휴지로 바닥에 떨어진 김치 국물을 닦는 두나.

    (티비화면)
    수퍼댁, 리포터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수퍼댁 집 나간 딸을 찾으려고 시작했습니다.
    리포터 딸을요? 특이한 동기인데요. 그럼 따님이 지금 이 프로를 보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따님하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 주세요.
    수퍼댁 두나야. 엄마 말 잘 들어. 엄만 두나가 애 가져서 좋다. 엄마도 그 나이에 하나 낳았으니까. 이 나이에 할머니 되는 게 좀 억울하긴 해도 뭐 어떠냐.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아서 잘 기르면 되지.

    두나, 일어나 티비 앞으로 간다. 그리고 티비를 본다.

    (티비화면)
    수퍼댁 엄만 두나하고 같이 그 애 기르고 싶어.

    이 때 수퍼댁의 뒤로 기절을 하는 세나가 보인다.
    그리고 세나를 밀치고 카메라 앞으로 얼굴을 내미는 사람은 바로 백작
    백작,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힌다.

    백작 두나야. 나 아직 뭐가 뭔지 모르지만 뭐 이렇게 된 거 애 낳아. 애 낳으면 우리 부모님도 어쩌겠어. 그냥 밀어 붙이자구. 만약 쫓겨나도 걱정마. 내가 얼굴로 먹고 살면 돼. 보고 싶어.

    두나,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운다.

    씬103. 대기실

    택조가 백작의 뒤통수를 빡 때린다.

    택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애를 건드려. 애를.
    백작 죄송해요…
    택조 너 어디서 애 만들었어. 바른 데로 말 못해
    백작 집에서요. 두나 집…방에서.
    택조 이게 내 집 안에서 감히 … 니네 집 부자야?
    백작 네?
    하나 아빠,, 얘네 집 부자는 아닌데 아버지가 고양시청에 근무하셔.
    택조 (반색하며) 고양시청! 음…자네 나하고 나가서 진지한 이야길 좀 하지. 우리 두나의 미래와 태어날 아이의 장래를 위해…

    이 때 꼬꼬댁이 대기실로 살짝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택조를 보고는 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택조, 수퍼댁이 거울을 보고 있자 얼른 백작의 손을 잡고 나간다.
    수퍼댁, 나가는 택조를 거울로 다 보고 있다.
    무릎이 아파 손으로 꽉 움켜잡고 있다.

    하나 엄마, 트럭은 언제 가져갈 수 있대?!
    수퍼댁 상을 타야 가져가지. 아직 경기도 안 끝났어.
    하나 어차피 엄마껀데 뭐.
    수퍼댁 트럭 생기면 …무슨 장사 할 거냐.
    하나 글쎄…뭐 생각 안 해 봤는데 이제부터 생각해 보지 뭐. 팔면 얼마 나오려나.
    수퍼댁 너 트럭 안 사줘서 장사 못한다며
    하나 엄만 그 말을 믿었어?

    하나, 한심하다는 얼굴로 수퍼댁을 보고는 간다.
    수퍼댁 그런 하나의 등을 뚫어지게 본다.
    세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수퍼댁을 본다…

    수퍼댁 (무릎이 아파 고통스러워한다) … 세나야 왜 울어?
    세나 (울음이 터진다) 몰라….

    씬104. 관중석

    택조, 백작의 어깨에 다정하게 팔 두르며 간다.
    그 앞으로 꼬꼬댁의 신나하며 걷는다.
    두 사람과 엇갈리며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오계장

    택조 어이 오계장님.
    오계장 네? 아…네. 안에 수퍼댁 있습니까.
    택조 그럼 있죠. 아 수고 많으셨습니다. 트럭은 언제쯤 …
    오계장 경기 끝나고 이벤트 회사에서 다음 주 쯤 전달할 겁니다,
    택조 (화색) 그렇군요. 아…네. 그리고 조금 전의 플래카드…고마웠습니다. 마누라가 그렇게까지 감격할 줄은 몰랐는데…아무튼 오계장님의 공이 아주 컸습니다. 청와대에 편지를 잘 써 드리겠습니다.
    오계장 청…와대? (떨떠름한 웃음) 아…네…뭐.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택조가 백작과 함께 걸어가며 휘파람까지 분다.
    오계장, 그런 택조가 영 마땅치 않다.

    씬105. 대기실

    선수들이 대부분 나간 썰렁한 대기실.
    앞에는 왕 은지 선수 혼자 앉아있다. 허리가 아픈지 계속 허리를 만진다.
    수퍼댁도 무릎이 아파 고통스러워한다.
    파스를 하나 붙이고는 왕은지에게 내민다.

    수퍼댁 받아요.
    왕은지 (보더니 안 받는다) …
    수퍼댁 (손에 쥐어주고) 받아요. 어른이 주는 건 받는 거야.
    왕은지 (억지로 받는다) … 고맙습니다.

    왕은지, 고맙다는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그런 왕은지를 길게 바라보는 수퍼댁.
    오계장이 수퍼댁의 옆에 서 있다.

    오계장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수퍼댁 저 나이 때 난 뭘 했나 싶어서요.

    씬106. 경기장

    경기장에서 왕은지가 역기를 번쩍 든다.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지고
    전광판에 ‘75kg’ 아래에 ‘성공’이라는 글자가 뜬다.
    왕은지, 인사를 하고 나간다.
    관중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택조와 백작, 세나와 하나도 일어난다.
    이 때 전광판에 ‘80kg’ 이 뜬다.
    사람들 놀라 웅성거리며 손으로 경기장을 가리킨다.
    택조와 하나, 세나와 백작도 경기장을 본다. 그리고 경악한다.
    수퍼댁이다.

    세나 엄마…?
    택조 저 여자가…미쳤나. 트럭 탔으면 됐지 뭐하는 거야 지금.
    하나 아까 무릎 다치신 거 같던데…계속 주무르시는 거 보니까.,
    백작 아줌마…

    수퍼댁, 허리 벨트를 쪼이며 역기 앞으로 간다.
    아대를 고치고 탄산 마그네슘을 탁 친다.
    공중으로 흘뿌려지는 탄산 마그네슘. 그 사이로 백코치의 얼굴이 보인다.
    백코치, 박수를 탁탁 치며 기운을 북돋운다.
    역기 앞에 선 수퍼댁, 숨을 고른다.
    앞에 오계장이 서서 엄지를 들어 보인다.
    기함을 넣는 수퍼댁, 번쩍하며 역기를 든다.
    무릎이 비틀거리고 팔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끝내 위로 드는 수퍼댁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수퍼댁의 환희에 찬 얼굴에서 스톱.

    씬107. 평화수퍼 앞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린다.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는 사람은 세나와 백작.
    앞에 번쩍 번쩍 윤이 나는 신형 BMW 가 서 있다.
    세나, 백작의 손을 아쉽게 놓는다.
    차 옆에 선 사람은 택조와 하나이다.

    하나 트럭이라며!
    택조 (뒤통수 빡 때리며) 트럭보다 더 좋은 차 탔잖아. 자식이…근데 여보…이거 그냥 놔두자구. 당신 혼자 어딜 간다 그래. 운전도 장롱면허고…내가 운전해 줄 테니까 다음 주…아니 이번 주 토요일 날 드라이브나 가자구.
    수퍼댁 차에 치고 싶지 않음 비켜요!
    택조 어?

    수퍼댁, 차에 시동을 켠다. 엑셀을 쾅 밟는 바람에 앞범퍼가 쓰레기통을 팍 친다. 택조, 놀라 차의 구겨진 부분이 없다 살핀다.

    택조 이게 얼마짜리 찬데…!
    수퍼댁 장롱면허면 어때. 직진만 할 줄 알면 되는 거 아닌가. 다른 건 뭐 운전하면서 배우지 뭐.
    택조 운전하면서…아흑…진짜.
    수퍼댁 그리고 하나 너. 왕비혼지 걔 조폭 아들 아냐. 뼉다구집 아들이다. 덩치로 확 뭉개버려. 그러기 전까진 엄마 안 돌아와. 알았어!
    하나 걔 무서워.
    수퍼댁 (세나에게 천원 주며) 집 잘 봐. 아빠가 수퍼 잘 보는지도 수시로 보고하고. 알았어?
    세나 나 돈에 약한데. 알았어.
    수퍼댁 잘들 지내…가끔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어 보낼게.

    수퍼댁, 급후진을 하자
    사람들이 치일 뻔 한다. 놀라 뒤로 확 도망가고
    수퍼댁, 엑셀을 밟는다. 출발하는 차, 아슬아슬하게 동네를 벗어난다.

    수퍼댁 (큰소리로) 와후!!! 이 차 죽이는데! 야호!

    수퍼댁, 환호성을 지르며 달린다.

    씬108. 고양시청 앞

    오계장, 설렁탕을 먹는다.
    미자가 설렁탕 그릇을 툭 놓고 수육 한 접시를 그릇에 쫘악 부어주고 간다.

    미자 많이 드세요.

    오계장, 씩 웃는다.
    핸드폰 동영상이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화상통화화면)
    핸드폰으로 수퍼댁의 얼굴이 뜬다. 얼굴이 넓어 화면에서 짤린다.

    수퍼댁 고향이 어디예요?
    오계장 부산인데요. 부산 해운대…
    수퍼댁 오케이. 제가 한 바퀴 쫘악 돌고 부산 가서 기다릴 테니까 와요. 회나 먹자구요. 아 그리고 이 차 너무 죽여요. 야호!
    오계장 (픽 웃으며) 가서 기다릴께요.

    오계장, 핸드폰을 끄고 즐겁게 웃는다.

    씬109. 주유소

    두나, 도착하는 차로 뛰어온다.

    두나 얼마요?

    차문이 스르르 내려가고, 얼굴을 든 선글라스의 여인
    선글라스를 벗으면 둥글넓적한 수퍼댁이다.

    두나 엄마?
    수퍼댁 니 직장이야? 여기가? 옛날에 나보다 낫다. 좋은데
    두나 어떻게…이 차는…
    수퍼댁 상품이야. 엄마 일등했다. 아…뒷 좌석 문 열어봐.

    두나, 뒷좌석 문을 연다.
    백작이 머리에 리본을 달고 앉아있다.
    두나,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백작, 차에서 내려 두나를 보더니 꽈악 껴안는다.
    두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수퍼댁 이 녀석한테 돈 좀 맡겼으니까 그걸로 방 얻고 애 낳아.
    두나 엄마…
    수퍼댁 애 낳을 때 연락해. 엄마가 산후 조리하러 올 테니까. 꼭 애 낳고 가슴에 이렇게 안고 들어가야 해. 그래야 시댁에서 안 쫓겨나.
    두나 응…엄마 어디로 갈 거야?
    수퍼댁 글쎄…일단은…신나게 달릴 거야.

    수퍼댁, 선글라스를 쓴다.
    차문을 닫고는 엑셀을 밟는다.
    BMW 신형 미니쿠페가 질주한다. 붉은 노을을 향해…

    씬110. 에필로그

    골목길이다.
    비딱하고 못생긴 왕비호가 앞을 보며 삐딱하게 말을 한다.

    왕 비호 만원 있냐?

    그 앞에 역도 아대를 차고 벨트를 꽉 조인 하나.
    비호를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들어 비호를 휙 들더니 빙글빙글 돌려 내던진다.
    골목 구석에 내던져진 비호, 화도 안 내고 일어나더니 흙을 털털 턴다.

    하나 만원 없어.
    비호 없음 말고.

    비호, 삐딱하게 화면을 보더니 다시 삐딱하게 왔던 길로 돌아간다.
    하나, 허탈하게 서서 비호의 등만 바라본다.

    하나 별 것도 아닌 게 똥폼만 잡고. 씨이…

    골목 위에 떨어진 것은 만원. 그 만원이 하늘로 쉬웅--- 날아간다.
    쉬웅 날아가는 만원을 손으로 탁 잡는 사람 세나이다.
    세나, 만원을 잡더니 조그만 가방 안에 꽁꽁 구겨 넣고는 화면을 향해 씩 웃는다.

    THE END.
    안정희

    안정희

    1970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졸업

    프리랜서 방송작가

  • 컨셉

    남편과 자식에게 무시당하며 살던 서민아파트 상가의 여주인 수퍼댁이 우연한 기회에 시민역도대회에 참가하면서 가출한 딸도 찾고 잊어버렸던 꿈도 찾는다는 성장코미디드라마이다.

    기획의도

    어느 동네를 가든지 항상 수퍼가 있고
    동네 수퍼에는 항상 주인이 있고, 주인은 항상 고물 티비를 보고 있다.
    수퍼의 주인여자들은 대부분 뚱뚱하고
    유감스럽게도 남편은 대부분 백수이다.
    자식들은 자꾸 속을 썩이고, 개나 고양이는 새끼를 많이 질러댄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명절날 아침 제사상 차릴 때 빼고는 도무지 쉬지 않는 수퍼. 대한민국의 수백만 명의 수퍼댁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등장인물

    수퍼댁 (45세, 여) 평화수퍼 여주인. 믿거나 말거나 본명은 이새봄. 팔십 킬로가 넘는 우람한 체구에 짧고 굵은 팔다리, 네모진 목의 소유자. 힘이 장사인지라 쌀푸대 몇 개쯤은 아무렇지 않게 든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명절날 아침만 빼고 수퍼에서 일한다. 유일한 낙이라면 수퍼 선반 위의 고물 티비 보기.

    강 택조(43, 남) 수퍼댁의 남편. 허우대만 멀쩡한 백수. 돈 버는 능력은 없지만 씨잘데기 없는 정의감만 많아 구청 앞에서 씨잘데기 없는 일로 일인시위하고, 씨잘데기 없이 청와대에 편지 보내고 한다. 바람피우지 않는 걸 고마워하라며 수퍼댁에게 큰 소리 치며 살지만 실은 상가 이층 꼬꼬댁과 그렇고 그런 사이이고 싶어 한다.

    강 하나(25세, 남) 수퍼댁의 아들. 머리 나쁜 데다 겁도 많다. 공부도 못해 늘 꼴찌만 하며 그나마 고등학교 졸업한 후 쭉 백수. 조폭 아들 왕비호한테 구타당한 후 절치부심 하루 종일 동네 구민 헬스장에서 근육만 키운다. 입으로는 트럭만 사주면 채소장사라도 한다고 말하지만 이건 다 핑계.

    강 두나(20살, 여) 수퍼댁의 둘째 딸. 백수 김백작과 연애를 시작, 스무살에 벌써 임신과 가출을 한다.

    강 세나(11살, 여) 수퍼댁의 막내 딸. 이 영화의 화자이며 주인공. 아빠는 고발꾼, 오빠는 백수, 엄마는 수퍼댁, 언니는 색녀라고 여긴다. 돈에 대한 조기교육이 잘 된 탓에 천원만 주면 뭐든지 다 하는 초딩.

    꼬꼬댁(40세, 여) 번영상가 이층 꼬꼬치킨의 여사장. 과부라고 말하지만 실은 이혼녀. 허우대 멀쩡한 택조가 마음에 들어 빼앗을까 궁리중이다.

    고 백작(20세, 남) 두나의 애인, 백수. 두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철부지.

    오 계장(45세, 남) 고양시청 체육진흥과 계장. 무려 열 번이나 떨어지고 이혼까지 당한 후에야 공무원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명퇴이고, 제일 끔찍한 건 해고이고, 제일 두려운 건 사오정이다. 해고 안 당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여성 역사를 모으려 한다. 뚱뚱한 여자의 뱃살에 급 흥분하는 이상한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다.

    백 코치(52세, 남) 전직 역도선수. 현직 유치원 봉고맨. 전병관 선수와 함께 올림픽 금메달 기대주였지만 훈련 중 부상으로 역도를 포기. 유치원 교사인 아내를 도와 유치원 버스를 운전한다. 역도에 대한 열정을 안고 있다가 수퍼댁을 본 후 드디어 폭발. 열정을 다해 가르친다.

    그 외의 인물들

    왕 비호(18살, 남) 동네 깡패. 지독하게 못 생겼고 비쩍 말랐고 키도 작은데 형이 조폭이고 아빠도 조폭인 조폭 가족이다. 물론 다 뻥이다.

    왕 은지(20살, 여) 국가대표 역도선수였다가 동료 남자선수와 스캔들을 일으켜 대표자격을 박탈당하고 체대를 그만두었다. BMW 때문에 참가한다.

    강 장재(25살, 여) 아마추어 역도선수. 남편은 메달리스트.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역도대회에 나온다.

    오 미자(25살, 여) 설렁탕집 종업원. 설렁탕 나르다가 역도경기에 참가.
    공 순옥(19살, 여) 껌 좀 씹고 침 좀 뱉다가 짤린 날라리. 지독하게 못 생겼다. 자장면 배달하다가 역도대회 참가.

    한선생, 민원장, 정 코치, 임대아파트 동네 주민들. 기타 등등.

     시놉시스

    초등학생인 세나는 가족들이 싫다. 아빠는 잘못된 주차구획선, 가로등 교체 같은 씨잘데기 없는 일로 구청 앞에서 일인시위나 하고 있고, 오빠는 일 년 삼백 육십오일 동사무소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도 멸치같이 마른 생긴 놈한테 삥이나 뜯기고 산다.
    언니는 더 심각하다. 스무살 백수 주제에 같은 백수오빠랑 대담하게도 집에서 섹스를 한다. 세나가 정말 열 받는 건 언니가 섹스하는 그 남자 백작이 세나의 짝사랑이라는 거다. 엄마 수퍼댁은 이 모든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 종일 수퍼에서 티비만 보고 있다.
    세나는 가능하다면 단 돈 만원에 가족들을 다 팔아버리고 싶다.

    어느 날 언니 두나가 가출을 한다. 계절만 바뀌면 개 털갈이 하듯 가출을 하는지라 가족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이번엔 집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죄다 들고 나가버렸다. 언니는 나가면서 쓸데없이 누구한테서 뭘 가져갔는지 일일이 편지까지 써 놓았는데 이게 문제의 발단. 두나가 들고 나갔다는 물건들 중에 생소한 물건이 있으니 그건 바로 아빠의 잠바 안에 들어있던 여자 순금목걸이!
    꼬꼬댁에게 줄 선물 순금 목걸이가 엉겁결에 엄마에게 줄 선물로 둔갑을 하고 만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엄마는 온 동네 자랑을 하고 다닌다. 이 소식을 들은 꼬꼬댁은 화를 참지 못하고 집에 들이닥치는데… 결국 목걸이 주인이 꼬꼬댁임이 드러나고 만다.
    화가 난 엄마 수퍼댁은 꼬꼬댁에게 달려가지만, 아. 엄마의 불행이란… 뚱뚱한 몸이 그만 꼬꼬치킨의 좁은 통로에 꽉 끼어버리고 말았으니.
    졸지에 포획당한 산 돼지 신세가 된 엄마 수퍼댁, 엄마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아빠의 바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평화수퍼 카운터에 앉아 티비만 줄창 본다. 엄마는 늘 그랬다. 거기서 티비를 보며 희로애락을 해결했다. 개그콘서트를 보는 엄마 수퍼댁의 웃음이 어쩐지 세나는 슬퍼 보인다.

    고양시 체육진흥과 과장인 오계장은 지금 곤란한 처지에 있다. 육 개월 전, 장미란 체육관이 개관하는 날 고양시장님께서 장미란 선수와 기념사진을 찍으신 후 의욕이 너무 넘쳐 역도를 국민체육으로 활성화 시킬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그 일이 하필이면 오계장에게 떨어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철밥통 지키며 살고 싶은 오계장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 만약 이 일을 못하면 죽음보다 더 무서운 감봉 혹은 징계가 따를지도 모른다. 오계장은 전전긍긍하는데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육 개월 동안 시민역도대회에 참가신청서를 낸 고양시 거주 역사는 한 명도 없는데.
    대회는 한 달 앞으로 나가오고…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오계장은 급기야 설렁탕집 종업원에다 자장면 배달 고삐리까지 동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속이 타 맥주나 마시려고 들어간 치킨 집에서 수퍼댁을 발견한다. 완벽한 역도몸매를 지닌 그녀 수퍼댁. 오계장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역도체육관으로 데려오기에 이른다.

    한편 세나는 엄마 수퍼댁이 아빠에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자 깜짝 놀란다. 혹시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던 말라비틀어진 그 남자! 심지어 엄마는 그 남자 오계장을 집에까지 데리고 오는데… 아빠에게 쁘락찌 비용을 받은 세나는 사실 확인을 위해 엄마를 따라간다. 그리고 엄마가 실은 그 오징어 같은 남자, 오계장에게 역도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쪼르르 아빠에게 일러바치고 만다. 이 사실을 아빠는 온 동네 떠들고 다니고, 졸지에 엄마는 놀림감이 되는데…
    엄마는 다시 평화수퍼 티비 속 세상으로 긴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퍼댁이 무슨 생각인지 역도대회에 나간다고 한다.이유인 즉 상금인 트럭을 타서 오빠에게 주면 배추장사라도 할까 싶어서였고, 또 다른 이유는 말썽장이 언니 두나가 임신을 하고 가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승하면 메스컴을 탄다는 말에 언니를 찾는 영상 메시지라도 띄울 생각인 거 같다.
    참가 여자선수는 딱 세 명. 이건 참가만 하면 일등이다. 이 사실을 안 아빠와 오빠는 각자 몽상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데… 하필이면 시민역도대회의 일등 상품이 BMW로 바뀌면서 전국체전 우승을 했던 여자선수까지 참가를 하고 만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엄마는 무릎부상까지 입고 만다.
    경기 당일, 첫 시도, 엄마는 역기를 들지 못하지만 다행히 두 번째 시도에서 역기를 든다. 성공이닷!!! 다른 선수들이 모두 실패를 하고 엄마의 2등이 확정된다.
    엄마는 방송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 도중 소원대로 두나에게 영상메시지를 띄운다. 아이를 낳으라고, 엄마도 그 나이 때 하나를 낳았다며 기쁘다 말한다. 1등은 BMW, 2등은 트럭. 여기서 그만두면 두 가지 소원을 다 이룬다. 그런데… 엄마가 가지 않는다. 다시 세 번째 도전을 한단다. 아픈 무릎을 끌고 다시 역도경기장에 들어서는 엄마.
    그리고 환하게 웃는 엄마… 그날 세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발견하는데…
    안정희

    안정희

    1970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졸업

    프리랜서 방송작가

  •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장준환 영화감독

    당선작 ‘수퍼댁 역도대회 나가다’는 시나리오 장르에 요구되는 형식적 완결성을 갖춘 작품이다. 이야기 규모에 적합한 구성을 엮어낼 줄 아는 균형감도 탁월했다.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가 특별히 뛰어나다기보다는 앞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작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보인다는 의견을 전하고 싶다. 특히 신선한 캐릭터를 활용해 독특한 유머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았다. 등장인물 중 일부만 뽑아내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좀더 변화를 주면 실제 영화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늘 상업영화 시나리오만 들여다보는 사람으로서 놀란 점은 저소득층, 혼혈인구 등 다양한 소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개 시나리오로서의 기본적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 재미난 아이디어에 상상력을 보태 소재를 가공하고 설정을 짜내는 솜씨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 몇몇 있었지만, 플롯 구성과 극작 진행이 엉성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없어도 될 지문이나 불필요한 대사를 장황하게 써내려간 것도 많았다.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신춘문예는 아이디어 공모전과 달리 한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사 앞날을 축복하는 데 의의가 있다. 당선작은 이런 취지에 잘 맞는 작품이다.
  • 안정희

    안정희

    1970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졸업

    프리랜서 방송작가

    먼저 이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바칩니다.

    감염성 화농 척추염으로 3개월째 일산 백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는 엄마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 상이 엄마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백병원 9A병동 정형외과 의사 간호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분들 덕분에 울어야 할 때 웃으며 글 썼습니다.

    박진숙 작가님, 지상학 작가님, 김영섭 감독님, 구본근 CP님, 유소정 작가, 곽지아, 위정훈, 이루리, 미선 언니, 로스앤젤레스의 언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힘들 땐 힘든 것 잊으려고 글 쓰고, 기쁠 땐 기뻐서 글 쓰고, 외로울 땐 친구가 그리워서 글 쓰고,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땐 살려고 글 쓰고, 가난할 땐 돈 벌려고 쓰고, 대부분은 글이 날 불러서 쓰다가 이젠 써야 할 글이 부채처럼 많아서 쫓기는 도망자처럼 글 씁니다.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쓰고 있고 내일도 쓰겠지만, 이 길의 군데군데 이렇게 행복한 선물들이 먹이처럼 뚝뚝 놓여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2010년이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당선통보를 받은 날 활짝 웃었습니다. 큰 선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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