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담요

by  손보미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한과 만났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내가 ‘난 리즈도 떠날 거야’를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소설가로서 내 인생을 평가한다면, 그게 누구더라도, ‘난 리즈도 떠날 거야’를 내 삶의 전환점으로 다룰 것이라고 확신한다. 등단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별 볼 일없는 무명소설가였던 내게『난 리즈도 떠날 거야』는 돈과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이 내게 준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친구인 한과의 절교였다. 한은 ‘난 리즈도 떠날 거야’를 읽고 몹시 화를 냈고, 결국 나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상사인 장의 사적인 이야기가 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그것이 장에게 큰 상처가 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은 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직장 상사 험담 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장 이야기를 하는 한의 표정은 장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 가득했다. 나는 장에 대한 이야기를 수 십 번도 넘게 들었다. 너무 사소하고 하찮은 것까지 이야기해서 저런 것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내가 한의 이야기에 성실히 귀 기울였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장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장은 우리의 대화를 위해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 사이에 앉아 있다가,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면 사라져버리는 ‘이야기 속의’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한이 “넌 그 분의 인생을 훔쳤어! 그게 얼마나 치졸하고 역겨운 짓인 줄 모르는 거야?” 하고 말했을 때에는, 한이 지나치게 화를 낸다는 생각에 조금 어리등절하기도 했다. 한은 내 전화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 쪽에서도 그렇게까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므로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게다가 나는 그 때 내 성공에 완전히 도취되어 있었다. 이 년 후, 한이 죽을 때까지 나는 한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한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장을 보았다. 누군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그가 장이라는 것을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로부터 일 년 후, 겨울이 막 끝나갈 무렵, 허름한 술집 안에서 나는 장과 마주앉아 있게 된다.


    장은 한이 근무하던 파출소의 소장이었다. 한에 따르면 장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좋은 쪽으로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대단한 미남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별 어려움 없이 경찰대에 입학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졸업 후 의경 기동대에서 의무 복무한 후 곧바로 중앙청의 정보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만약 장의 부모님이 자신들의 작고 귀여운 아들의 사주를 보았다면, 그들은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 작고 예쁜 아이의 인생은 삼십 대 중반부터 엉망진창이 될 겁니다.” 장은 성실한데다가 업무능력이 뛰어나서 상관들의 총애를 받았지만, 경감 승진을 앞두고 있던 해에 스캔들에 연루되었고, 결국 도시 외곽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파출소로 발령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후로 장은 중앙청으로 나가거나 승진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으며, 변두리에 있는 파출소를 전전해야만 했다. 당시 그 사건은 연일 매스컴에 보도됐고, 고위간부 여러 명은 경찰복을 벗었다. 장의 지인들은 장이 이런 일을 겪기 전에 아내가 죽은 게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의 아내는 장이 한직으로 좌천되기 일 년 전에 죽었다.

    장의 아들은 그 당시 일곱 살이었다. 장의 아내는 아들을 임신했을 때 이미 병에 걸려 있었다. 그 몸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건 무리였다. 장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아이를 지우라고 했지만, 장의 아내는 고집을 부렸다. 모두 장의 아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건 마치 자살기도 같았다. 출산을 감행한다면 산모와 아이 모두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사가 경고했지만, 실제로 출산 때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의 아내는 산송장에 불과했지만, 그리고 그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수년을 더 살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 수년이 너무 오래 지속된다고 느꼈다. 나중에 술집에서 장을 만났을 때, 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모두 그녀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소. 아무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장의 표현을 따르자면, 장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이 세상에 “덩그렇게 남겨졌다.”

    아내가 죽고, 스캔들에 휘말리고, 파출소로 좌천되었던 사건은 장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했고, 장은 그때마다 자신의 무언가가 변해간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이 실질적으로-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는-장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죽은 후에도, 십 분 일찍 출근하는 장의 습관은 여전했다. 술을 절제했고, 절망하는 기색도 없었으며, 우울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완고함을 유지했고, 나약하게 굴지 않았으며,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 파출소로 근무지를 옮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변명이나 하소연을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면은 사람들의 동정을 샀다. 함께 근무하는 순경들은 장을 좋아했고, 존경했으며 잘 해 주려고 애썼다. “그렇더라도 소장님은 혼자였어.” 한은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그게 전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누군가는 혼자야, 혹은 인간은 혼자야, 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 좋아한다. 나조차도 그랬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거야, 살아봤자 별거 없어.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겪어본 사람들, 문자 그대로 혼자가 되어본 사람들은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정말로 혼자가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런 말을 잘도 내뱉는다.

    장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장의 아들은 열두세 살 때부터 이미 록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특히 록밴드 파셀(PARCEL)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장은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되던 날, 아들을 데리고 파셀의 콘서트에 갔다. 나중에 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콘서트 날과 우리 아들의 생일이 같았다는 게 정말 기막힌 우연 아니오?” 사람들은 그날 이후로 장이 변했다고 말한다. 한은 이렇게 말했다 “소장님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떨어져나간 것 같아.”

    그 날, 장은 아들을 잃었다.

    콘서트는 일곱 시 사십오 분에 시작되었다. 초겨울이었지만 공연은 실외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고, 장은 담요를 준비해갔다. 적당히 두꺼우면서도 그리 무겁지 않은 갈색 담요였다. 아들의 코트 위에 담요를 덮어주면서 장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감기에 걸린다 해도 너를 보살펴 줄 사람이 없잖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장의 아들은 거의 혼자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혼자서 밥도 잘 차려먹었고, 혼자서 숙제도 척척 하고, 혼자서 잠도 잘 잤다. 그 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찾으러 파출소로 오는 법이 없었다. 여덟 살 때부터 쭉 그랬다. 한을 비롯한 파출소 순경들은 그 애의 얼굴을 잘 몰랐다. 그 애가 죽었을 때, 장은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아무도 그 아이의 영정사진을 볼 수 없었고, 장의 부하들은 그 애의 얼굴을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무대 밑에 설치된 스모그 머신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무대 뒤쪽에 세워진 전광판 가장자리를 둘러싼 백열램프에 번쩍번쩍 불이 들어왔다. 파셀의 멤버들은 크레인 리프트를 타고 공중에서 등장했다. 크레인 리프트가 관객석을 한 바퀴 빙 돌자, 관객들은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폴짝폴짝 뛰었다. 장은 아들을 위해서 첫 번째 줄의 표를 샀다. 그 표를 구하기 위해 장은 기꺼이 발품을 팔았고, 실제 표 값의 세 배를 지불해야 했다. 그 자리는 무대와 불과 십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만약 그렇게 무리해서 앞자리의 표를 구하지 않았다면 내 아들은 죽지 않았을 거라고요.” 파셀이 크레인 리프트에서 무대로 내려왔을 때, 장은 고개를 돌려 아들의 얼굴을 봤다. 장은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렇게 들뜬 표정은 처음 봤소.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이라고나 할까. 그게 내가 본 아들의 마지막 표정이라는 게 어떻게 생각하면 다행이지요.” 하지만 아들의 행복한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늘 그 아이가 죽은 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알아요. 당신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죠. 많은 사람들이 그 애가 죽은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소. 하지만, 그렇다면 그게 누구의 잘못일까요? 그날 죽은 사람은, 내 아들과 록밴드의 보컬을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소. 그건 물론 많은 숫자지. 하지만 콘서트 장에는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소. 그렇다면 그들 중 유독 그 여섯 명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거요?” 파셀은 첫 곡으로 ‘I Kissed You’를 선택했다. 그들이 전주 부분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더욱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녹색 외투를 걸친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무대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곧이어,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총소리를 들었다. 탕, 탕, 탕. 세 발이 먼저 발사됐다. 툭, 하고 보컬이 쓰러졌고, 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무대 위를 적셨다. 경호원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잠시 후 또 다시 네 발이 더 발사됐다. 무대와 아주 많이 떨어져 있던 관객들도 전광판을 통해 그 상황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영 점 몇 초 동안 정적-대단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순간의 정적을 기억했다-이 흐른 후 관객들은 두려움에 비명을 질러댔고, 비상구로 빠져 나가기 위해 우왕좌왕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우리 아들은 그 밴드의 라이브 연주를 단 한 곡도 제대로 듣지 못했어. 그 이유를 알겠나? 그 개새끼가 첫 곡도 끝나기 전에 총을 쏴 버렸기 때문이야.” 이것은 언젠가 술에 취한 장이 한에게 했던 말이다. 장이 술에 취한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은 덧붙였다. 나는 이 말을 조금 수정해서 ‘난 리즈도 떠날 거야’에 실었다. 아마, 한을 무척 화나게 만든 장면 중 하나였으리라.

    장은 경찰대에서 훈련을 받았고, 진짜 총은 수도 없이 만져 봤고, 사람을 쏘아본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저 힘없는 가장일 뿐이었다. 장은 아들이 무대 위로 달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대신 장은 아들의 어깨 위에서 담요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들의 어깨 위에서 떨어진 담요는 장에게 몹시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그 후, 장은 담요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게 된다. 담요를 가지고 출근했고, 책상에 앉아있을 때는 담요로 자신의 무릎을 덮었다. 여름이라도 상관없었다. 밥을 먹을 때는 곁에 두었고, 퇴근 후에는 도로 집으로 가지고 갔다. 화장실에 갈 때도 가지고 갔고, 밤에는 덮고 잤다.

    당시 신문과 뉴스는 그 사건을 연일 보도했다. “보컬이 쓰러진 후 몇몇 사람들이 무대 위로 뛰어 올랐어요.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나중에 이 사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어떤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울었다. 그날 밴드의 보컬과 경호원 한 명, 그리고 시민 두 명(그 중 한 명이 바로 장의 아들이다)이 즉사했고, 스물일곱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 스물일곱 명 중 두 명이 수 시간 후 병원에서 죽었다. 장과 나는, 수 시간 후 죽은 두 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은 아내가 출산을 앞두었을 때, 의사가 했던 경고-출산을 감행했다가는 엄마와 아들 둘 다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던-가 결과적으로는 맞은 것이 아니냐고 내게 반문했다. 수 시간 후 죽은 두 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왜 신은 그들에게 단 몇 시간의 삶을 더 주신 걸까요?”



    “도심의 공연장에서 총기 난사사건 발생”

    이것은 사건 당시, 신문에 실렸던 가장 전형적인 헤드라인이다. ‘난 리즈도 떠날 거야’를 쓸 때, 자료 때문에 여러 번 도서관에 갔었고, 그 사건과 관련된 신문기사나 사진은 대부분 복사해서 보관해두었다. 한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그리고 장을 현실에서 실제로 본 날, 나는 그 자료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난 리즈도 떠날 거야’를 탈고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책장 구석에서 파일 케이스를 꺼내서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자료가 들어 있는 비닐 속지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보았다. 잠시 후 나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봤을 리가 없다. 나는 모든 자료를 스무 번도 넘게, 아니 서른 번도 넘게 꼼꼼하게 봤다. 모든 기사와 사진들이 ‘난 리즈도 떠날 거야’의 배경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이 사진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리라. 스무 번도 넘게, 아니 서른 번도 넘게 봤으면서도.

    이 사진을 다시 보고,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나중에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변기를 붙잡고 토하기 시작했다. 경찰차가 여러 대 멈춰 있고 다친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나온다. 절망한 사람들의 표정.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들과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버린 남자들. 하지만 그 사진의 포인트는 경찰차의 경광등이다. 흑백사진인데도, 쉴 새 없이 반짝이는 경광등의 빨간 불빛과 파란 불빛이 실제로 보이는 것 같다. 사이렌 소리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경찰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항상 그렇듯이 사람들은 무력했다. 그날, 도심의 공연장에는 아무런 도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관객들은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감전이 일어나듯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잿투성이로 변했다고 느꼈다. 그들은 아주 오랜 후까지 그 광경을 기억했다. 앞서 말했던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온 다른 한 명의 목격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 자리는 아주 뒤쪽이었어요. 그런 자리밖에 구하지 못한 남자친구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자리였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빨리 비상구로 나갈 수 있었던 거예요. 거기서 빠져 나왔을 때,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죠. 우리 모두 울었어요.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울기만 했어요.”


    ‘난 리즈도 떠날 거야’에서 화자인 ‘나’는 ‘리즈’라는 열여덟 살짜리 여자애에게 긴 이야기를 해 준다. 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내와 함께 간 공연장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고, 그곳에서 탐정은 아내를 잃는다. 총을 쏜 범인은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 탐정은 범인이 총을 쏜 이유를 찾아 평생을 바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무엇을 쫓아 평생을 허비했는지도 모른 채 자살한다는 내용이었다. 긴 이야기를 끝내고 ‘나’는 ‘리즈’를 떠난다. ‘난 리즈도 떠날 거야’에 대해 한 평론가는 “죽음과 삶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성찰이 돋보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 작품”이라고 추켜세웠다. 한은 “옹졸하고 치사하며 거짓투성이”라고 비난했다.

    한은 집 앞으로 찾아왔고, 놀이터, 정확하게는 놀이터 중앙에 있는 미끄럼틀 앞에 서서 내 쪽으로 책을 집어던졌다. 새벽 두 시였고, 우리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마주보고 서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내 책인 줄도 몰랐다. 책을 집어 들고 모래를 털어내고 있을 때, 한이 내게 말했다.

    “이게 너의 소설이야? 남의 삶을 네 멋대로 비웃고 평가하는 게, 바로 너의 소설이야?”

    나는 누구의 삶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누구도 비웃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장을 비웃었을까? 그의 삶을, 죽은 아들의 담요를 끌어안고 사는 장을 멍청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그 때까지만 해도, 삶과 죽음에 대한 나만의 훌륭한 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이 죽고 난 후, 나는 내 관점이 그저 졸렬한 말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연락을 끊은 후, 한은 경찰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만약 한이 죽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 한의 장례식장에서 장의 얼굴을 보고, 나는 곧바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장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마술이 아니었다. 장은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한 명의 진짜 인간이었다. 나는 그때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는데, 마치 몸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 더욱 심해졌다. 이번에는 내 몸 모두가 사라지고 뇌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 기분은 거의 일 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일 년 동안 소설을 쓸 수 없었다. 잠을 자려고 침대 위에 누우면 내 몸의 일부가 사라져 버리고, 남아있는 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계속 부풀어 올라서 곧 터질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 집에 가서 며칠 머물러 보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모든 것이 정상 같았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여자들도,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게 문제가 있다고 느낀 사람은 출판 관계자들이었으며, 내 소설의 팬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끝장났다고 말했다. 나는 종종 공원 벤치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의 장례식 후에 보았던 그 사진에 대해 생각했다. 사진의 강렬한 이미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있게 된다. 어느 누구도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뭔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돌이킬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가끔씩은 부모님이나,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 친구들을 떠올렸다. 한에 대해 생각했고, 한의 장례식 때 본 장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한에 대해서 생각했을 땐, 즐거웠던 기억조차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억은 너무나 단편적이었고, 기억하고 있는 것조차도 몹시 적었다.

    만약 그런 삶이 계속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장의 전화를 받았다.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제대로 못 잔 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장은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내 전화번호는 출판사에 문의했으며, 무례했다면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을 꼭 만나고 싶어요.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말이오.”


    아들이 죽은 후, 장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딱 한 번, 회식자리에서 만취했을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장은 아들을 잃은 후, 두 가지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담요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이 겪은 다른 한 가지 변화는 그가 야간 순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장은 순찰 코스를 네 군데에서 일곱 군데로 늘렸다. 그리고 자신의 야간 순찰 횟수를 늘렸다. 장은 도보 순찰은 하지 않았고, 차를 몰아서 자신의 순찰 구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는 것을 즐겼다. 운전대는 자신이 직접 잡았는데, 그와 함께 차에 탄 부하 직원은 상관이 직접 운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사실 그건 하찮은 문제였다. 낮 근무를 하는 장과 밤 근무를 하는 장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순찰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사실 장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는 차를 운전하는 동안에도 무릎을 덮고 있는 담요를 만지작거렸다.

    가끔씩은 혼자 순찰을 돌기도 했다. 장이 그러고 싶을 때도 있었고, 파출소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혼자 순찰을 도는 날이면, 장은 언제나 그랬듯이 순찰차를 몰고 자신의 순찰 구역 끝까지 갔다. 그리고 둑길 위에 차를 세워두고 자신의 작은 동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리 오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순찰 중이었기 때문이다. 둑길 건너편에는 아파트 단지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는데, 몇몇 집들은 아주 늦은 시간까지도 전등을 끄지 않았다. 장은 아무 생각 없이 전등이 켜진 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전등이 꺼지는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무언가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슴이 몹시 두근두근댔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모든 집의 전등이 꺼지고 나면 이번에는 장 자신이 이 세계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면, 장은 담요에 얼굴을 묻었다.

    장은 육년을 그런 식으로 보냈다.

    장은 겨울을 싫어했다. 장은 결국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건 아들이 죽은 계절이 겨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좀 더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차 유리에 끼는 성에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 장을 화나게 했다. 순찰차는 너무 낡았다. 장은 유리에 낀 성에를 닦아내기 위해 자주 차를 멈춰야 했다. 그날은 그해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장은 마른 헝겊으로 유리에 낀 성에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선명해진 차 유리를 통해 마을 앞 놀이터에 두 남녀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네에 앉아있었다. 여자는 갈색 모직 재킷과 검정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얇은 살색 스타킹만 신은 것 같았다. 남자는 검정색 피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그리 두꺼워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옷깃을 여민 채, 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무언가 소곤거리고 있다가, 장이 다가가자 말하던 것을 멈추었다. 장은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깜짝 놀랐는데, 둘 다 너무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열아홉, 스무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앳된 얼굴이었다. 그들의 발밑에는 빈 맥주 캔과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다. 장은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며 그들에게 몇 시 인줄 아냐고 물었다.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고, 여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척 보기에도 그들은 취한 상태였다.

    “글쎄요, 주위가 이렇게 깜깜하고, 아무도 다니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잠든 시간인가 보죠?”

    여자는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혀가 꼬인 채로 대답했다.

    “그래요, 새벽 두 시 이십오 분.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나?”

    추위 때문에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여자가 “왜 반말이세요?” 라고 물었다. 그리고 “경찰이에요?” 라고 덧붙였다. 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경찰이라서 반말을 한 건 아니오. 아가씨, 이렇게 추운데 여기서 뭐하는 거요? 얼어 죽으려고 그래요?”

    “우리를 심문할 거예요?”

    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남자를 힐끗 보았다.

    “아니, 아가씨랑 아가씨 남자친구를 집으로 보내려고 그래. 아까 라디오에서 지금 체감 온도가 영하 이십 도라고 그러더군. 술도 많이 마신 것 같고,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요.”

    체감 온도가 영하 이십 도라고 라디오에서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장은 순찰차를 탈 때 라디오 같은 건 듣지 않았다. 그는 항상 침묵 속에서 차를 몰았다.

    여자가 하, 하고 웃고 약간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우린 부부랍니다.”

    “그래요?”

    “네, 그러니까, 우리는 성인이고, 결혼도 했고, 물론 결혼식은 못 올렸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어요. 정말 아무런 문제없어요. 여기는 자유국가니까, 여기서 얼어 죽는 것도 우리 마음이에요. 그렇지, 자기야?”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동의를 구했다. 그녀의 손은 추위 때문에 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들은 장갑조차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여자는 몸을 최대한 움츠렸고, 남자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장은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일거야.”

    장은 아주 잠깐 아들을 떠올렸다. 남자는 혀로 입술을 핥은 후, 팔짱을 꼈다. 그리고 거만한 표정으로 장에게 물었다. 남자는 여자보다는 덜 취한 것 같았다.

    “자식이 있어요?”

    장은 추위 때문에 빨개진 그의 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장이 입을 열었다.

    “아들이 한 명 있소. 올해 스물한 살이 되었어요. 어릴 적에 지 엄마가 죽고, 내가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했지만, 아주 잘 자라주었지.” 게다가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했다. “아들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같이 가본 공연이라고는, 파셀의 콘서트밖에 없었어요. 그게 참 미안하오.”

    장은 왜 자신이 그렇게 말했는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나에게 말했다. 장이 파셀 이야기를 하자 여자는 작은 소리로 짧게 비명을 질렀다.

    “아, 알아요. 보컬이 죽었잖아요. 그 보컬 진짜 잘생겼었는데.”

    여자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지만, 바람 때문에 불이 붙지 않았고, 결국 담배 피는 걸 포기했다.

    “아마 육 년 전의 일이지? 우리나라에 얼마 없는 정통 록그룹이었는데.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는 엉망진창이었죠.”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안으며 잘난 척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은 한숨을 내쉰 후 대답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날 콘서트는 없었어요. 그는 한 곡도 못 불렀으니까. 나와 내 아들은 바로 그 공연장에 있었소.”

    남자와 여자는 동시에 장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죽었죠.” 남자가 약간 주눅 든 채로 말했다.

    “사람들이 죽었어.” 여자가 남자의 말투를 흉내 냈다.

    “그래, 그날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누군가의 아내도 죽었고, 누군가의 부모도 죽었고, 또 누군가의 아들도 죽었을 거요.”

    여자와 남자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 여기에 계속 있을 겁니까?”

    어린 부부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로 앉아있었고, 장 역시 재촉하지 않았다. 그들 셋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멀뚱히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곧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너무 춥네요. 사실은 너무 추워서 귀가 아플 지경이죠. 그러니까 곧 돌아갈 거예요.”

    잠시 후 남자가 재킷의 옷깃을 여미며 대답했다. 그리고 팔을 뻗어 여자의 손을 꼭 잡았다. 어린 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채로 장을 올려다보았다.

    “다행이군.”

    장은 이렇게 말하고 순찰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순간, 자신이 어린 부부와 대화를 하는 동안 담요를 몸에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은 조수석에 놓인 담요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차 유리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죽 둘러보았다. 불이 켜진 건물은 없었다. 그리고 장은 놀이터에 앉아있던 어린 부부를 다시 보았다. 장은 일 분쯤 차 안에서 꼼짝하지 못했는데, 그건 심장이 너무나 심하게 뛰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장은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그 어린 부부에게 다가갔지. 그리고 내 담요를 주었소.”

    “담요를 주었다고요?”

    “그래요. 그냥 주고 싶었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나는 그들에게 담요를 덮으라고 했지. 추위가 좀 가실 테니까. 생각해봐요, 그렇게 추운 날 얇은 스타킹 하나만 신고 거기에 앉아 있자면 얼마나 춥겠어요? 그게 두 달 전의 일이오.”

    그때 우리는 허름한 술집에 함께 있었다.

    “자, 이제 내 이야기는 다 끝났소.”

    장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분명히 장이 화를 내거나, 나를 비난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 주시는 겁니까? 저에게 화가 나지 않으셨습니까?”

    장은 소주잔을 집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건 담요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랐어요.”

    “담요의 죽음이라고요?”

    “그렇소.”

    나는 장이 비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을 때, 장은 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난 리즈도 떠날 거야’는 아주 흥미로웠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가 죄송합니까? 나는 소설 같은 거 몰라요. 문학, 예술 그런 것들, 난 몰라요. 하지만 ‘난 리즈도 떠날 거야’는 재미있었어요. 그 소설에서 마음에 안 드는 유일한 부분은 주인공이‘리즈’를 떠나는 거였어요. 그것만 빼면 다 좋았어요.”

    나는 소주잔만 만지작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 울고 싶었다. 장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어린 부부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테죠. 이봐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내가 당신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도 모르겠소. 그냥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소. 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알 수 있지 않겠소? 그 모든 것들의 이유를.”

    나는 결국 울먹이며 장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가 죽을 때가 되면 뭐든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농담이죠.”

    장은 불콰해진 얼굴로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 후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표한 작품에 대해 한 평론가는 이렇게 평가했다.“그의 소설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여전히,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여전히, 몸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밤이 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장이 야간 순찰을 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창 밖의 건물을 죽 둘러본다. 그리고 장이 나와 헤어지기 직전 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날, 우리가 헤어지기 직전에 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부부에게 왜 담요를 주었냐고 아까 물었죠? 사실 내가 순찰차로 돌아오기 직전, 어린 부인이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소. ‘아들과 다른 공연을 보러 가세요. 사람들이 죽지 않은 콘서트요. 사람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 그런 콘서트 말이에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행복한 노래만 흘러나오는 곳이요. 나도 그런 곳에 가고 싶거든요.’나는 차 안으로 돌아왔고, 조금 울었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되돌아갔소. 그랬더니 그 어린 부인이 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요? 어린 부인은 이렇게 말했소. ‘우린 인간쓰레기예요.’라고.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소. 다만 그 부부의 머리를 잠시 동안 쓰다듬어 보았소. 그 작고, 동그랗고, 차가운 아이들의 머리를 말이오.”
    손보미

    손보미

    1980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2009년 계간 ‘21세기문학’ 단편소설 부문 신인상 수상

  • 성민엽 문학평론가·성석제 소설가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에서 대중문화가 객체가 아닌 주체의 일부가 되었음을 확인했다. 그와 함께 소설에서 1인칭 시점이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자체가 개탄할 일도 아니고 염려스러울 것도 없으나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엄밀성이 줄어드는 것과 전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셋, 그 중에서 김주화 씨의 ‘홀로캐스트’는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효과적으로 섞어서 잘 구사하고 있고 실수가 거의 없다는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주인공을 제외한 주변인물이 너무 전형적이고 단순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설득력이 부족했다. 이준경 씨의 ‘각도기’는 섬세한 묘사와 단단한 문장이 강점이다. 다만 상당한 폭발력이 있을 두 인물의 죽음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마무리가 선명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인 손보미 씨의 ‘담요’는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예기치 않은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산 사람들의 반응이 강렬한 단층적 대조를 이루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마지막의 반전은 서늘하며 강렬하다. 아무쪼록 정진하여 거듭 충격을 안겨주는 작가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 손보미

    손보미

    1980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2009년 계간 ‘21세기문학’ 단편소설 부문 신인상 수상

    이사한 동네에는 구립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구립도서관의 ‘어학문학실’ 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가진 장소에 자주 가곤 했다. 사람들의 조용한 숨소리, 사사샥 책장 넘기는 소리가 근사했다. 그 시절 소설을 읽었다. 활자가 그려내는 세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이 세계가 엄청난 신비를 품고 있구나, 느꼈던 순간이었다. 작가란 멋진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구나, 했다. 하지만 열여섯 살 소녀였던 나는 소설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단연코, 절대,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머릿속으로 문장을 되뇌고, 노트북의 빈 화면을 보며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하고, 문장을 쓰는 괴로움 때문에 울기 시작한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은 내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툭, 왔나 보다. 나도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다. 유치하더라도, 좀 우스꽝스럽더라도 괜찮아.

    조해룡 김종회 김수이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나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무서운 선생이기도 한 물고기군과 정아, 희정, 효진, 선일, 우현, 승원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합니다. 아빠, 엄마, 미호, 민주, 감사합니다. 가족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겁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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