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긴 하루

by  김마리아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오빠, 놀이터 가자.”

    수정이가 또 귀찮게 한다. 난 초등학교 1학년이고 수정인 다섯 살이다. 수준이 맞을 리 없다. 둘이 놀이터에 가봤자 만날 미끄럼틀만 타다 온다.

    미끄럼틀은 하도 타서 질렸다. 시소는 균형이 안 맞아 제대로 탈수도 없다.

    “싫어. 난 숙제할 거야.”

    공부하는 것도 별로지만 수정이랑 놀이터 가는 것보단 차라리 공부가 낫다.

    “수철아, 숙젠 이따 하고 놀이터 좀 다녀오지 그래.”

    엄마가 상냥하게 말한다.

    “내가 가게 볼게. 엄마가 다녀오면 안 돼?”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 말투가 더는 곱지 않다. 별 수 없이 수정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분식점을 하는 엄마는 저녁 일곱 시가 돼서야 아르바이트하는 누나랑 교대하고 퇴근한다. 그때까지 수정이를 돌보는 일은 내 차지다.


    놀이터에 애들이 많다. 얼음땡 놀이를 하는 애들도 있고, 축구하는 애들도 있다. 나는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맘에 축구하는 애들에게 다가간다.

    “같이 놀자.”

    애들이 수정이와 나를 번갈아 본다. 수정이가 내 바지자락을 잡고 있다.

    “축구하려면 동생은 집에 두고 와.”

    치사한 맘이 들어 축구는 안 하기로 한다. 이번엔 얼음땡을 하는 애들에게 간다.

    “나도 붙여라. 내가 술래 할게.”

    수정이가 여전히 내 바지자락을 잡고 있다. 애들이 수정일 물끄러미 보더니 대꾸도 없이 저희들끼리 뛰논다. 나는 바지자락을 잡은 수정이 손을 힘껏 친다.

    “너 땜에 만날 이게 뭐냐? 친구들하고 놀지도 못하고!”

    수정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

    “오빠… 우리 축구하까?”

    “너, 축구는 할 줄 알아? 그리고 공이 없는데 어떻게 축굴 하냐? 얼른 미끄럼틀이나 타. 열 번만 타기다!”

    쟨 자존심도 없다. 내가 그렇게 화를 냈는데도 미끄럼틀을 탄다. 난 미끄럼틀 밑에 서서 숫자를 센다.

    “열 번 됐거든? 가자, 엄마한테.”

    미끄럼틀에서 내려온 수정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릴 또 한다.

    “오빠, 얼음땡하까?”

    “됐거든?”

    수정이가 너무 밉다. 내 머릿속은 수정이만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수정이만 없으면… 수정이만 없으면… 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수정아, 우리 얼음땡할까?”

    “응.”

    “멀리 가서 하자. 오빠 친구들이 놀릴지도 모르니까.”

    “응.”

    ‘응’밖에 모르는 수정이가 오랜만에 예뻐 보인다. 한참을 구불구불 걸었다. 수정이 혼자선 집을 찾을 수 없을 만한 낯선 골목으로 왔다.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한다. 물론 내가 이겼다.

    “오빠가 ‘얼음’하면, 그때부터 오빠가 ‘땡’할 때까지 넌 계속 얼음이야. 절대 움직이면 안 돼!”

    “응.”

    난 들뜬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얼-음.”

    수정이가 꼼짝도 않는다. 난 살금살금 수정이 뒤로 간다.

    “땡할 때까지 절대 움직이면 안 돼?”

    “응.”

    나는 뒤도 안 보고 뛰며 생각한다.

    ‘수정아, 미안. 나도 어쩔 수 없어. 너 땜에 너무 힘들거든. 이담에 어른 되면 니가 오빠 귀찮게 안 할 테니 그때 널 찾을게. 니 팔뚝에 커다란 빨간 점 있으니까 찾기 쉬울 거야.’

    어느새 분식점 앞에 왔다. 유리창너머로 엄마가 보인다.

    ‘수정인 어디 있냐고 엄마가 물으면 뭐라고 하지? 동생 잃어버렸다고 나까지 내쫓으면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고 단숨에 문을 열어 분식점으로 들어간다. 엄만 내가 왔는지도 모르고 일만 한다. 책가방을 메고 엄마 앞으로 간다.

    “엄마! 나 집에 가 있을게.”

    “그래. 근데 수정인?”

    불이 붙은 것처럼 가슴이 뜨끔하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잡아뗀다.

    “몰라.”

    엄마가 피식 웃으며 김밥 두 줄을 가방에 넣어준다.

    “또 까분다. 얼른 가서 수정이랑 깨끗이 씻고 김밥 먹고 숙제해. 퇴근시간 다 됐으니까 엄마도 곧 갈게.”

    이대로 집에 가면 수정일 영 못 찾을 거다. 그럼 난 자유다. 근데 이상하다…. 맘과 다르게, 수정일 두고 온 곳으로 발길이 간다.

    ‘수정이가 없어진 걸 확인하고 집에 가지, 뭐.’

    골목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정이 울음소리가 커다랗게 들린다. 나도 모르게 뛴다. 씨름선수 만한 아저씨가 수정일 번쩍 안고 있다. 수정이가 몸부림치며 운다. 조용히 사라지길 바랐는데 쟤가 결국 납치범 눈에 띈 거다. 그동안 너무 귀찮긴 했지만, 동생이 납치범에게 붙잡힌 걸 보니 눈이 튀어나올 만큼 끔찍하다. 어쩌지? 난 너무 작아서 납치범을 이길 자신이 없다. 갑자기 온몸에서 땀이 난다. 납치범이 수정이를 달래는 척한다.

    “꼬마야. 그만 울어. 아저씨 나쁜 사람 아냐.”

    ‘납치범이 나쁜 사람 아니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과연 누굴까?’

    납치범이 수정일 안고 걷기 시작한다. 나는 무작정 달려가 납치범의 다리를 힘껏 물어뜯는다.

    “으아악!”

    납치범이 수정일 내려놓는다. 던지지 않아 다행이다.

    “누군데 아저씨 다릴 물어, 이 녀석아!”

    수정이가 구세주를 만난 듯 나를 부른다.

    “오빠!”

    “니가 이 꼬마 오빠냐?”

    “내 동생 아무 데도 못 데려가요.”

    나는 수정이의 손을 꽉 잡는다.

    “이제라도 오빨 찾아 다행이네. 울음소리에 창문을 내다봤더니 꼬마 혼자 한참을 울잖아. 그래서 경찰서 데려다 주려던 참이야.”

    할 말이 없다. 나는 수정이를 데리고 골목을 빠져나온다. 울음을 그친 수정이가 흐느끼는 소리로 말한다.

    “오빠, 나 이제 땡이야?”

    “뭐?”

    “오빠가 ‘땡’하면 움직이는 건데, 난?”

    “으응. 너… 이제 땡이야.”

    목이 아파온다. 눈물도 찔끔 난다. 얘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아직도 얼음땡만 생각한다.


    집에 왔다. 수정일 욕실로 데리고 가 얼굴을 씻긴다. 눈물자국으로 얼룩졌던 수정이 얼굴이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해졌다.

    “배고프지?”

    “응.”

    “오빠가 김밥 가져왔어.”

    가방에서 꺼낸 김밥을 수정이 입에 넣어준다. 김밥을 오물거리는 작은 입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볼록한 입이 새삼 귀엽다.

    미안한 맘을 씻기 위해, 수정일 기쁘게 해주고 싶다.

    “오빠가 그림책 읽어줄까?”

    “응.”

    수정이가 그림책을 무지 많이 가져온다. 나는 숙제도 미루고 그림책을 읽어준다.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 수정이는 새로운 그림책을 펼친다.


    엄마가 들어왔다. 수정이가 쪼르르 달려가 엄마 품에 안긴다.

    “우리 수철이, 동생 보느라고 고생 많았지?”

    “아니….”

    수정이가 엄마 품에서 재잘거린다.

    “오빠랑 얼음땡했떠. 오빠가 책도 읽어줬떠.”

    “그래서 재밌었어?”

    가슴이 철렁한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정이 입만 쳐다본다.

    “응.”

    엄마가 수정이에게 또 묻는다.

    “수정인 엄마가 좋아 오빠가 좋아?”

    “응… 응… 오빠!”

    바보. 엄마보다 내가 좋다니.

    엄마 품에 안긴 수정이가 날 보며 생긋 웃는다. 미안한 마음에, 오늘 하루를 싹둑 잘라버리고 싶다. 머릿속으로 가위를 그린다. 오늘을 잘라본다. 아무리 잘라도 골목에 가득했던 수정이 울음소린 사라지지 않는다.

    단숨에 잘라내기엔 오늘이 너무 길다.
    김마리아

    김마리아

    1967년 의정부시 출생

    2000년 월간 문예비전 신인상(시 부문) 수상

    2004년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 예년에 비해 소재와 접근방식이 다양해졌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능숙해진 작품이 늘어났다. 특히 어른의 입장에서 뭔가 가르치려는 목소리가 날 것으로 드러나는 작품이 크게 줄어들어 우리 동화가 훈장의 태도를 벗으려 애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은 네 편이었다. ‘깜나리’(장보영)는 필리핀인을 아빠로 둔 혼혈아를 다룬 작품으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당당하고 용기 있는 혼혈아 인물상을 제시했고 이를 ‘문제아’인 화자의 내면과 대비시켜 긴장감을 살렸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의 생략과 비약이 심한 것이 흠으로 지적됐다. 비양심적인 짓을 할 때마다 꼬리가 자라는 ‘꼬리 긴 아이’(김성진)는 능청스러울 정도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좋았다. 그러나 길어진 꼬리를 어떻게 처리하자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판타지 기법을 도입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정리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할아버지와 라면땅’(이시구)은 사자 문고리 대문집 앞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노숙자임을 알게 되면서 강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는 아이의 마음결을 잘 잡아내었다. 그렇지만 마무리가 상투적이고 묘사의 세세함에 상응하는 의미 설정을 채우는 데는 미흡했다.

    ‘긴 하루’(김마리아)는 거추장스런 동생을 종일 따돌리는 이야기로 초등학교 1학년 화자의 조숙함이 마음에 걸렸지만 깔끔한 구성과 생동감 있는 대화, 아이 심리의 문학적 포착,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를 높이 사게 되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큰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
  • 김마리아

    김마리아

    1967년 의정부시 출생

    2000년 월간 문예비전 신인상(시 부문) 수상

    2004년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과분한 상을 받게 됐습니다. 가장 먼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음지에 소박하게 피어난 들풀이거나, 길모퉁이에 박힌 볼품없는 돌멩이에게도 자기만의 언어가 있다고 믿습니다. 무엇 하나 소홀히 않고 살피려고요. 그리고 써내려가렵니다. 세상이 들려준 많은 언어들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 보렵니다.

    글 쓰는 일이 좋습니다. 쓰는 동안 혼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요. 동화에 풍덩 빠지고 싶습니다. 풀이 되어 바람에 휘청 날려도 보고 돌멩이가 되어 아이의 무심한 발길에 채이고도 싶습니다.

    동화를 써 보라고 적극 권유한 정숙 언니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당선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하며 축하를 아끼지 않은 한국문인협회 의정부지부 문우들과, 믿고 격려해 준 사랑하는 이들에게 뜨거운 고마움을 전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하는 작가로 남길 바란다는 덕담을 전하셨습니다. 노력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내가 배달하는 동화들이 누군가의 가슴속에 내려앉았을 때 기분 좋은 파문을 일으키는 선물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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