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약속

by  정순신

  • 작품전문
  • 시놉시스
  • 심사평
  • 당선소감
  • 1. 벽제 화장터 (오후)

    2005년 5월 봄.
    1번 창구 뒤쪽 계단에 단발머리, 하얀 소복의 30대 초반의 여자가 앉아 있다.
    화장도 안한 그 여자 옆에 40대 중반의 경사가 서 있다.
    여자와 경사는 창구 중앙에 있는 검정양복과 하얀 소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있다.
    중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경찰 영정사진이 보인다.

    경사 : 서연아, 영철이 나왔다.
    한서연 : 네.

    화장터 직원이 침대를 밀고 1번 출구 쪽으로 간다.
    경사가 1번 창구로 간다. 창구 중앙에 있던 가족들과 조문객들도 1번 창구로 온다.
    그들 뒤를 다른 경사가 오고 마지막으로 경장이 임신 7개월의 여자 손을 잡고 온다.
    한서연은 경장과 임신한 여자를 본다.
    경장은 화난 눈으로 임신한 여자는 측은한 눈으로 한서연을 본다.
    1번 창구로 작은 항아리와 영정사진이 나온다. 우는 사람들.
    임신한 여자는 측은한 눈길로 한서연을 뒤 돌아 본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드는 한서연. 울고 있다.
    양손가락으로 눈물을 닦는다. 눈물은 손을 타고 흐른다.
    계속 닦는 한서연. 눈물이 손보다 빠르게 흐른다.
    억지로 울음을 멈추려 한다. 그러나 안 된다. 다시 시도 한다. 또 안 된다.
    아래 입술을 깨문다. 피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아래 입술을 입 안으로 넣는다. 억지로 울음을 멈춘다.
    눈썹이 눈물에 젖어 있다. 눈도 깜박거리지 않는다.
    썬글래스를 쓴다. 썬글래스 알 안으로 그녀의 또렷한 눈이 보인다.

    ( OFF SOUND )
    (영철) : 서연아, 약속 꼭 지켜야 해 !


    2. 송파서 교통계 (점심)

    2007년 7월 여름.
    창구에 한서연이 앉아있다.
    그녀는 정복을 입고, 화장을 하고, 긴 머리를 하고, 상의 카라에 경장 마크를 하고 있다.
    한서연은 밝은 표정으로 20대 여자 민원인과 얘기 하고 있다.

    한서연 : 이날 오셔서 면허증 찾아 가시면 돼요.
    여자 민원인 : 네.
    한서연 : 안녕히 가세요.

    “임주서” 란 이름표를 한 여자 순경이 한서연 에게 온다.

    임순경 : 한 경장님, 점심 먹으러 가요.
    한서연 : 응.


    3. 송파서 근처 식당 (점심)

    식당 안에 손님이 가득 하다. 한서연과 임순경이 냉면을 먹고 있다.

    임순경 : 여름휴가 갈수 있을 까요?
    한서연 : 그럼.
    임순경 : 못 갈지도 모른다고 하니깐 신경이 쓰여요.
    한서연 : 못 갈 때 못 가더라도 간다고 생각해. 무조건. 그래야 기분이 좋아져. 휴가 때 뭐 할 건데? 계획은 세웠어?
    임순경 : 계획은 딱 하나. 차 없는 곳이면 돼요!
    한서연 : 최고 계획이네!
    임순경 : 한 경장님은 뭐 하실 거예요?

    옆 테이블 손님이 나간다.

    한서연 : 친구들 하고 상의 해야지. 몇 칠 있다가 만나기로 했어. 휴가비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
    임순경 : 이번에도 조금 주면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한서연 : 어떻게 하려고?
    임순경 : 퇴근하고 강남 가서 음주 단속 할 거예요!
    한서연 : 아 ~~~~ 하! 삥 뜯기 쉽지 않을 텐데!
    임순경 : 어떻게 아세요? 쉬운지, 안 쉬운지. 해 보셨구나!
    한서연 : 5년전 인가? 역삼동 단란주점 앞에서 한적 있어. 내가 삥 뜯는 거 가르쳐 줄까?
    임순경 : 내가 냉면 산다!
    한서연 : 제대로 된 가게 앞에서, 혼자 온 20대 뺀질뺀질한 놈으로 잘 골라야 해. 잘못 고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결정이 되면 차번호를 외우고 그 차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나왔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옆에 여자가 있는지를 확인해야해.
    임순경 : 어떻게 알아요?
    한서연 : 그래서 삥 뜯기 어려워. 눈이 좋아야 해. 순간을 보고 정확히 판단해야 해.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는 단속을 많이 하다보면 알게 되고, 귀한 집 자식이 술집여자와 놀았다고 하면 집안 망신이잖아. 잡는 타이밍은 차에 타서 시동 걸때, 그때 차 앞에 서 있어야 해. 그럼 “너 뭐야?” 하거든, 다 똑같아. 천천히 가서 신분증 보여주고 “음주운전 하셨습니다.”하면 그것으로 끝이야. 확실히 못 박음질 하려면 “아가씨가 예쁘네요.” 하면 돼. 돈은 알아서 주니깐 걱정 안 해도 되고, 진짜 주의해야 할 것은, 꼭 수표 이서 받아야 해. 자필로! 그래야 내가 살아! 그냥 듣기엔 재미있고 쉽지만, 안 하는 것이 좋아. 가자. 커피는 내가 살게.

    임순경이 나가려고 하다가 옆자리를 보고 놀란다. 40대 남자가 보고 있는 거다.
    한서연도 이 남자를 본다. 반가워한다.
    2년 전, 화장터에서 한서연 옆에 서 있던 경사 이다.

    한서연 : 안녕 하세요. 주임님.
    감찰주임 : 겨자 좀 주고 가.

    한서연이 겨자통을 준다.

    한서연 : 언제 오셨어요? 부르시지!
    감찰주임 : 삥 뜯기 어려울 때부터!

    감찰주임이 임순경 손에서 계산서를 뺏는다.
    긴장한 임순경. 웃는 한서연.

    한서연 : 잘 먹었습니다. 다음엔 사드릴게요.

    한서연이 임순경의 손을 잡고 빨리 나간다. 감찰주임은 냉면을 먹는다.


    4. 송파서 교통계 (오후)

    한서연이 자리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교통계장이 온다. 들고 있던 서류를 준다.

    교통계장 : 이 사건 다시 해야겠어.
    한서연 : 네?
    교통계장 : 쌍방이 합의 한데.
    한서연 : 이미 접수 했는데,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교통계장 : 취소 시켜.

    한서연이 가만히 앉아 있다.

    교통계장 : 알아서 취소해.
    한서연 : 이유가 뭐예요?

    한서연 휴대폰 진동이 온다. 번호가 보인다. 베터리를 빼버리는 한서연.

    교통계장 : 할거야? 말거야?

    기다리는 교통계장. 서류를 잡는다.

    교통계장 : 임 순경, 이 사건 취소 시켜.

    가버리는 교통계장. 한서연은 가만히 앉아 있다.


    5. 동네 재래시장 (저녁)

    한서연이 네모 형태의 가방을 메고, 검정 비닐 몇 개를 들고, 생선가게 앞에 서 있다.
    바구니에 작은 오징어가 3개씩 담겨 있다. 그중 한마리만 손으로 가리킨다.

    한서연 : 아주머니 이것만 주세요.
    생선 아줌마 : 다 사. 냉장고에 넣어 두고 나중에 또 먹어.
    한서연 : 이것만 주세요.

    아주머니는 오징어를 집는다.


    6. 한서연 원룸 (밤)

    13평 원룸. 츄리닝에 라운드 셔츠 차림의 한서연.
    거실에 있는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9시 뉴스를 보면서 저녁을 먹는다.
    오징어 볶음, 김치, 두부, 사과가 반찬이다. 휴대폰 진동이 온다. 낮에 왔던 번호이다.

    한서연 : 여보세요?
    (김태훈) : 저 김태훈 입니다.
    한서연 : 아까는 죄송했어요. 회의 중이라 급해서 베터리를 그냥 뺐어요.
    (김태훈) : 괜찮아요. 뭐 하세요?
    한서연 : 저녁 먹어요. 식사 하셨어요?
    (김태훈) : 같이 먹으려 했는데, 저도 먹어야겠네요.
    한서연 : 또 죄송하게 됐네요.
    (김태훈) : 주말에 맛있는 걸 같이 먹죠.
    한서연 : 네. 어디서 만날까요?
    (김태훈) : 제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한서연 : 네. 그럼 들어가세요.

    한서연은 다시 밥을 먹는다.


    7. 한서연 원룸 (밤)

    한서연이 책상에 앉아있다.
    책상위에는 교통 법규 책과 예전에 사고 처리한 서류들이 있다.
    특히 나무로 만든 미니카들은 눈에 띤다.
    한서연은 교통사고 난 사진, 진술서, 최종 결과 등을 보면서 컴퓨터에 정리를 하고 있다.


    8. 한서연 원룸 (한밤중)

    원룸이 한눈에 들어온다.
    옵션 상태에서 더 있는 것은 TV, 컴퓨터, 침대, 책, 큰 책상이 다다. 사진도 없다.
    불 꺼진 방, 침대에 한서연이 누워 있다. 창밖을 보고 있다. 눈을 감고 잠을 잔다.


    9. 송파서 근처 식당 (점심)

    2년 전, 화장터에 있던 경사 중 한명인 1반 반장과
    임신한 여자의 손을 잡고 가던 경장이 부대찌개를 먹고 있다.
    경장은 밥을 먹고, 부대찌개를 먹고,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왼쪽 끝까지 있는 반찬을 하나씩 다 먹는다. 계속 반복이다.
    1반 반장은 짠 음식을 한곳으로 뺀다.
    경장은 테이블에 있는 반찬들만 똑같은 방법으로 먹는다.

    반장 : 밥 더 먹을래?
    경장 : 이거면 돼요.

    밥을 다 먹은 경장은 주머니에서 4년 전 모델의 손때 묻은 담배를 꺼낸다.
    비닐이 뜯겨진 담배 갑을 손으로 돌린다.

    경장 : 담배 피우고 싶다!

    1반 반장은 신경도 안 쓰고 밥을 먹는다.


    10. 송파서 강력계 (오후)

    경장은 지저분한 책상에서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고 있다.
    옆자리에 있는 문대현이 경장을 본다.

    문대현 : 각칠이 형, 커피 마시러 가죠!


    11. 송파서 내 외부 휴게소 (오후)

    조각칠, 문대현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문대현 : 여자친구 생일 인데, 뭐가 좋을까요?
    조각칠 : 생일날 만나는 것이 제일 좋은 선물이지.
    문대현 : 그게 안 되니까 선물하려고요. 꼬실 때도 어려웠는데 사귀는 건 더 어렵네요. 결혼을 못할 거 같은 생각만 들어요.
    조각칠 : 생일이 언제니?
    문대현 : 다음 주 일요일이요.
    조각칠 : 아직 시간 있잖아! 포기 하지 말고. 만나서 뭘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문대현 : 저녁에 술 한잔 하실래요?
    조각칠 : 3반 지원 나가서 안 되겠다.

    문대현 휴대폰 진동 소리 들린다.

    조각칠 : 먼저 간다.


    12. 송파서 주차장 (저녁)

    조각칠이 차에 타고 있다. 차밖에 3반 반장이 서 있다.

    3반 반장 : 주소, 사진 확인 했지?
    조각칠 : 네.
    3반 반장 : 꼭 잡아와!

    조각칠이 출발 한다.


    13. 박 산부인과 수술실 입구 (한밤중)

    벽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킨다.
    조각칠은 휠체어를 옆에 놓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14. 박 산부인과 수술실 입구 (새벽)

    새벽 4시 30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여의사가 나온다. 조각칠이 여의사에게 간다.

    조각칠 : 산모가 김인순씨 맞나요? 38세.
    여의사 : 네 맞습니다. 초산이라 굉장히 고생했습니다. 아들입니다. 축하합니다.

    조각칠은 휠체어를 밀고 수술실로 들어간다.


    15. 박 산부인과 수술실 안 (새벽)

    조각칠을 보고 간호사가 놀란다. 조각칠은 경찰 신분증을 들고 있다. 산모에게 간다.

    조각칠 : 김인순씨, 마약 반입 공범죄로 체포 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조각칠은 산모를 휠체어에 앉히고 수갑을 채운다.
    아기 낳는데 온힘을 다 쓴 산모는 눈물만 흘릴 뿐 끌려간다.


    16. 송파서 강력계 (새벽)

    휠체어를 밀고 조각칠이 들어온다. 강력3반 반장이 놀란다.

    조각칠 : 김인순씨 입니다.
    3반 반장 : 어디서 오는 거야?
    조각칠 : 산부인과요. 아들 낳았답니다. 보고서는 저녁 6시까지 해 드릴게요.

    조각칠이 밖으로 나간다.


    17. 조각칠 아파트 욕실 (새벽)

    깨끗한 욕실.
    칫솔 2개, 아기 욕조, 아기 비누, 수건 3개, 신발 2개, 여성용 샴푸 세트 등이 보인다.
    장판에 발바닥 달라붙는 소리가 들린다. 맨발로 조각칠이 들어온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소변을 본다. 일어나 옷을 입는다. 물을 내린다.


    18. 조각칠 아파트 안방 (새벽)

    25평 아파트. 화장품, 화장대, 더블 침대가 보인다.
    집안에 먼지가 있다. 그러나 물건들은 너무나도 정돈이 잘 되어있다.
    화장대 위에 조각칠과 아내, 백일 된 아기와의 가족사진, 결혼사진이 있다.
    아내는 2년 전, 화장터에서 한서연을 측은히 바라보던 임신한 여자 이다.
    방문을 열고 조각칠이 들어온다. 사진 앞에 담배, 라이타, 지갑, 열쇠를 놓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가서 앉는다. 창밖을 본다. 여명이 보인다.

    조각칠 : 담배 피우고 싶다.


    19. 중학교 운동장 (새벽)

    한서연이 운동장을 뛰고 있다. 옷이 땀에 젖어 있다. 계속 달린다.


    20. 송파서 강력계 (오후)

    조각칠이 1반 반장에게 고지서를 준다.

    조각칠 : 고지서요.
    반장 : 어제 산모 일단 병원으로 이송 했단다. 보고서 봤는데 지나쳤어.
    조각칠 : 할 얘기가 없네요. 고지서 어떻게 해요?
    반장 : 니가 직접 교통계가서 처리해. 과장 보러 가기 싫다.


    21. 송파서 교통계 (오후)

    조각칠이 교통계 안을 본다. 한서연이 조각칠을 본다.

    한서연 : 안녕하세요.
    조각칠 : 안녕하세요.

    조각칠이 고지서를 준다.

    조각칠 : 제 차 고지서 예요.
    한서연 : 많네요. 놓고 가시면 제가 처리해 드릴게요.
    조각칠 : 네. 수고하세요.

    조각칠이 나간다.
    한서연이 고지서를 본다. 주차위반, 과속, 신호위반, 안전벨트 미착용, 휴대폰 사용 등.


    22. 시내버스 안 (저녁)

    한서연이 가방을 안고 버스 안에 앉아 있다. 러쉬아워로 길이 막힌다.
    한서연은 창밖을 본다. 담배를 버리는 사람, 무단횡단 하는 사람,
    교차로에 차를 붙이는 차들, 엉키는 사거리. 한서연 휴대폰에 진동이 온다.

    한서연 : 여보세요?
    (김태훈) : 김태훈 입니다.
    한서연 : 네.
    (김태훈) : 어디세요?
    한서연 : 퇴근하는 길이예요.

    한서연은 통화 하면서 계속 밖을 본다. 좁은 차 사이를 가는 오토바이 등.

    (김태훈) : 잘 됐네요.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어요. 저녁 같이 먹어요.
    한서연 : 어디로 갈까요?


    23. 고급 고기 집 (밤)

    넓은 홀의 식당. 9시 뉴스가 방송 하고 있다.
    한서연과 김태훈이 홀 중앙에 앉아 있다. 그들 사이로 TV가 보인다.
    여직원이 고기를 다 자르고 간다. 한서연은 뉴스를 보고 있다.

    김태훈 : 저녁이 늦었네요. 많이 드세요.
    한서연 : 아니에요. 이 시간이 저 저녁 먹는 시간이에요.
    김태훈 : 늦게 드시네요.

    한서연은 밥 먹고, 뉴스 보고, 밥 먹고를 반복 한다.

    김태훈 : 저어 ....
    한서연 : 네?
    김태훈 : 휴가 언제세요?
    한서연 : 7월말, 8월초?
    김태훈 : 함께 여행 가실래요?
    한서연 : 네? 어디로요?
    김태훈 : 일본 어떠세요?
    한서연 : 해외여행 얘기 인가요?

    한서연은 얘기를 들으면서 뉴스를 본다.
    김태훈이 한서연이 보는 곳을 본다.

    김태훈 : 뉴스 보시는 거예요?
    한서연 : 10년간 계속 뉴스 보면서 밥을 먹었거든요. TV가 없으면 괜찮은데 있으면 저도 모르게 보게 돼요. 고쳐야 할 습관인데 ....
    김태훈 : 아침은 드세요?
    한서연 : 그럼요!


    24. 김태훈 차 안 (밤)

    한서연 집으로 가는 도로.
    김태훈이 운전을 하고 보조석에 한서연이 앉아 있다.

    김태훈 : 여행 가실 거예요?
    한서연 : 아뇨!
    김태훈 : 걸리는 거 라도 있나요?
    한서연 : 많죠!

    횡단보도 신호에 노란불이 들어온다. 차가 선다.

    한서연 : 저 자신을 설명 할게 많아요.
    김태훈 : 여행가서 하면 되잖아요.
    한서연 : 여행 가서요?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다. 차가 출발한다.

    김태훈 : 20대도 아니고, 솔직해 지는 것이 좋잖아요. 서로를 확인 하려고 노력하는 것 보다 내 감정을 말하는 것이 낫잖아요.

    한서연이 생각한다.

    한서연 : 그렇죠!
    김태훈 : 저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좋았어요.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좋을 거예요.
    한서연 :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실래요?

    사거리 신호가 노란불이 켜진다.
    순간 답답해진 김태훈은 신호를 못보고 사거리를 진입한다. 빨간불이다.

    한서연 : 어? 신호 위반 했어요!
    김태훈 : 딱지 띠실 건가요?
    한서연 : 음 .... 봐 드릴게요!

    김태훈이 한서연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풀린다.

    김태훈 : 위반해서 걸렸을 때 어떻게 하면 봐 주나요?
    한서연 : 교통 법규를 지키는 걸 생각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차가 달린다.


    25. 송파서 강력계 (밤)

    맞은 고1학생과 화가 난 부모, 때린 고1학생이 있다.
    문대현은 조서를 치고 있고, 1반 반장과 조각칠은 얘기를 하고 있다.
    갑자기 강력계 철문이 열리면서 40대 중년남자가 들어와 때린 학생에게 간다.
    가자마자 따귀 7대를 때린다. 모두 놀라 본다. 중년남자가 문대현에게 간다.

    중년남자 : 형사님, 죄송합니다. 제 아들놈입니다.
    문대현 : 피해자에요.

    중년남자가 피해자 부모에게 간다.

    중년남자 :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문대현 : 심하게 때렸어요.
    중년남자 : 봐 주세요. 형사님. 제가 교육 단단히 시키겠습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한번만 봐 주세요.
    사모님 : 귀한 아들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용서해 달라고요? 용서 못해요!

    중년남자는 아들에게 간다. 조각칠은 계속 보고 있다.

    중년남자 : 이 무식한 새끼!

    중년남자가 아들을 때린다.
    중년남자는 사모님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자리를 잡고, 발로 차고, 때린다.
    1반 반장과 문대현이 중년남자를 말린다. 떨어지는 중년남자. 숨을 몰아쉰다.

    중년남자 : 사모님, 죄송합니다. 차라리 제 손으로 저놈을 끝장내죠!

    다시 달려드는 중년남자.
    때린 학생의 얼굴이 퉁퉁 부었다. 사모님이 학생을 본다.

    사모님 : 됐어요!

    중년남자가 멈춘다. 사모님이 아들을 데리고 나간다.
    1반 반장이 문대현을 본다.

    반장 : 내 보내.

    순간 당황 하는 문대현.

    중년남자 : 감사합니다. 형사님.

    중년남자는 아들을 데리고 아주 빠르게 나간다. 조각칠은 보고만 있다.
    1반 반장이 자리에 앉는다.

    반장 : 자식 키우기 힘들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1반 반장이 펼쳐져 있던 서류들을 정리한다.

    반장 : 감찰 주임이 .... 아니다.
    조각칠 : 뭐요?
    반장 : 말 하면, 들을래?
    조각칠 : 들리긴 하는데, 기억이 안돼요.
    반장 : 사격교육 있는 건 아냐?
    조각칠 : 네.
    반장 : 그 전까지 은행 털이범 잡아야 해.
    조각칠 : 네.


    26. 송파서 정문 (밤)

    조각칠이 차를 타고 정문으로 나온다. 정문 한쪽에 빈 택시가 문이 열린 채로 서 있다.
    갑자기 두 중년남자가 서로의 허리띠를 잡고 기둥에서 튀어 나온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조각칠.

    택시 손님 : 메타기 조작 했잖아? 10만원이 말이 돼?
    택시 기사 : 술 처먹고 생때야? 내가 만만해 보여?
    택시 손님 : 파출소 가! 끝장 보자고!

    택시손님이 택시기사를 경찰서 반대편으로 끌고 간다. 택시기사가 끌려간다.

    택시 기사 : 이리 와! 경찰서 안 보여?

    이번에는 택시기사가 택시손님을 경찰서 쪽으로 끌고 온다.

    택시 손님 : 파출소 가라잖아!

    둘은 계속 당긴다. 두 사람의 벨트는 가슴아래까지 올라 와 있다.
    조각칠은 차에서 그냥 보고만 있다. 그들은 힘껏 서로를 잡아당긴다.
    조각칠은 후진을 한다. 운전이 매우 능숙하다. 주차를 하고 걸어간다.


    27. 한서연 동네 횡단보도 (아침)

    횡단보도 초록 신호등이 깜박거린다. 한서연이 가방을 메고 걸어와서 선다.
    오른쪽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운동화 소리가 들린다.
    여중생이 가방을 메고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려 한다.
    한서연은 여중생의 가방 뒤를 잡는다. 여중생이 휘청한다.
    길 건너편에 버스 한대가 빨간색 신호로 되자마자 휙 지나간다.
    여중생은 한서연을 본다.

    한서연 : 내가 위험 하다고 했지!
    여중생 : 언니, 저 버스 놓치면 지각해요!
    한서연 : 벌금 4만원 낼래? 안전하게 다음 신호에 건너.

    포기하는 여중생. 발을 동동 구룰 뿐이다.


    28. 송파서 정문 (아침)

    감찰주임이 안내실에 앉아 있다. 시계를 본다. 8시 58분.
    걸어오던 직원들이 감찰주임을 보고 뛴다. 직원들이 인사하며 들어간다.
    감찰주임이 길 건너 횡단보도를 본다. 조각칠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주머니 안을 만지작 한다. 동전을 꺼내본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다.
    조각칠은 건너지 않고, 근처에 있는 자판기로 가서 캔커피를 사서 마신다.
    감찰주임이 시계를 본다. 9시. 감찰주임은 수첩에 조각칠 이름을 쓴다.


    29. 송파서 주차장 (점심)

    한서연이 차 앞쪽이 완전히 구겨진 소나타 차량을 보고 있다.
    그녀는 작은 스케치북과 볼펜 3개를 들고 스케치를 하고 있다.
    감찰주임이 한서연에게 온다.

    감찰주임 : 서연아!
    한서연 : 어? 주임님. 점심 드셨어요?
    감찰주임 : 지금 가는 중이야. 밥 먹었어?
    한서연 : 네.
    감찰주임 : 뭐 해?
    한서연 :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 보는 중이에요. 어제 새벽에 들어 왔어요.
    감찰주임 : 운전수 살았겠나! 전담반에서 뭐래?
    한서연 : 아직 보고서 안 왔어요.
    감찰주임 : 만난 김에 부탁 하나 하자. 조각칠, 입사해서 지금까지의 고지서 내역서 좀 갖다 줄래?
    한서연 : 네.

    감찰주임이 점심 먹으러 간다.
    한서연 휴대폰 진동이 온다.

    한서연 : 미경아!
    (미경) : 바쁘니?
    한서연 : 괜찮아.
    (미경) : 내 차 라이트 깨졌어.
    한서연 : 잠깐만.

    한서연이 스케치북을 땅에 놓고 앉는다.

    한서연 : 어, 미경아. 사고 난거야?
    (미경) : 주차장에 세워 놓았는데, 점심 먹으러 나와 보니깐 보조석 쪽이 깨져 있더라고. 아 ~~~ 씨 속상해.
    한서연 : 깜박이가 아니라 라이트가 깨졌다는 얘기지?
    (미경) : 응.
    한서연 : 얼마나 깨졌는데?
    (미경) : 다 깨졌어. 전구도 깨지고, 본네트도 찌그러졌어.

    한서연은 BMW MINI 앞모양을 그리고, 라이트와 본네트 깨진 것도 그린다.
    파란색 볼펜을 일자로 놓고, 빨간색 볼펜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시킨 다음
    뒤로 후진해서 주차시키는 모양으로 파란색 볼펜 앞부분과 부딪혀 본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와 주차시키는 모양으로 부딪힌다.

    (미경) : 외근 하고 조금 전에 들어 왔어. 10분 사이에 이게 뭐야!
    한서연 : 보조석 쪽이 주차장 입구니?
    (미경) : 응.

    한서연은 10분에 동그라미를 친다.

    한서연 : 입구 바로 앞에 주차 했구나!
    (미경) : 응. 두 번째 칸에 했어.

    한서연은 주차장 공간도를 그린다.

    한서연 : 확실 하지는 않지만 범퍼가 높은 차가 그랬을 거야. 찾을 가망은 거의 없지만 혹시 주변에 주차 했을지 모르니까 찾아봐. 트럭이나, 벤, 지프, SUV 차가 있나 보고, 보조 범퍼를 했나 초보운전 붙어 있나 보고, 운전석 뒤 쪽에 너 차 페인트 색이 묻었나 봐봐. 그리고 본네트 뜨거운가도 보고. 알겠지?
    (미경) : 알았어. 내 이놈 잡기만 해봐. 너 내차 수리비 많이 나오는 거 알지?
    한서연 : 알지. 어떻게 됐는지 만나서 알려 줘.
    (미경) : 확실히 휴가 언제야? 그 날짜 맞아?
    한서연 : 그럼! 무조건 그 날짜야.
    (미경) : 틀리면 어떻게 하려고?
    한서연 : 너 결혼하기 전 마지막 여행인데 무조건 가야지.
    (미경) : 알았다. 저녁에 보자. 밥이고 뭐고 이놈 꼭 잡는다. 수고해.
    한서연 : 그래.


    30. 커피 숍 (저녁)

    커피숍 문을 열고 미경이가 환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미경 : 얘들아 ~~~~ !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서연과 근혜가 일어나 마중을 한다. 미경이가 둘을 안는다.

    미경 : 서연아, 뭐 사줄까?
    근혜 : 잡았구나!
    미경 : 잡았지! 앉아 얘기해 줄게.

    셋은 앉는다.

    미경 : 범인은 김 팀장.
    한서연 : 진짜?
    미경 : 이 인간이 올 휴가는 낚시가 어떻고 제트 스키가 어떻고 하더니 .... 짚차를 샀더라고.
    근혜 : 어떻게 찾았어?
    미경 : 서연이 말대로 했지. 일층부터 지하 4층까지 다 뒤졌지. 어디 있었냐면, 맨 아래층 맨 구석자리에 예쁘게 세워 놨던데! 앞, 뒤로 보조 범퍼 하고, 지붕에 난간 올리고, 할 건 다했어! 운전석 뒤 범퍼에 라이트 조각 하고 페인트칠이 있는 거야. 라이트조각을 들고 김 팀장 자리에서 들어올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날 보더니 “미경씨 왜? 식사 했어?” 라고 친절히 묻던데. 책상 위에 살짝 라이트조각을 올려놓고 “보험으로 하실래요? 현금으로 하실래요?”

    셋이 웃는다.

    근혜 : 너무 했다. 나중에 보복 당하면 어쩌려고?
    미경 : 그 인간 하고는 니가 죽냐! 내가 죽냐야! 서연아 뭐 먹을래?
    한서연 : 비싼 거 먹어도 돼?

    미경이가 핸드백을 툭툭 친다.

    미경 : 늦어서 미안해. 김 팀장 하고 은행 들렸다 오느라 늦었어!

    셋이 또 웃는다.


    31. 석촌 호수 벤치 (밤)

    호수와 함께 불 꺼진 롯데월드가 보인다.
    한서연, 미경, 근혜가 앉아 있다.

    한서연 : 드디어 결혼 하는구나!
    미경 : 해야지. 잘 살아야지! 너네, 돈 많이 내라?
    근혜 : 부잣집 딸이 그런 소리하면 안 돼지!
    미경 : 요새 이 교정 많이 하던데! 엄살 부리지마.
    근혜 : 난 정해진 월급만 받을 뿐. 피곤해.
    미경 : 근혜야, 실력 좋은 성형의사 하나 소개 해 줘라.
    근혜 : 왜? 코 높이게?
    미경 : 서연이 눈가 주름 제거 수술 해 주려고!
    한서연 : 왜? 왜? 왜? 주름 많아?
    미경 : 거울을 보긴 보냐?
    한서연 : 그럼. 매일 화장 하는데? 듣고 보니 화가나내. 뭐가 문제인데?
    미경 : 근혜야, 봐봐.

    근혜가 자세히 본다. 한서연은 눈을 살짝 크게 뜬다.
    그와 동시에 입이 살짝 열려 이가 보인다.

    근혜 : 스케링은 해야겠다.
    한서연 : 미치겠다!
    미경 : 교통계 간지 1년 반이 됐지!
    한서연 : 응.
    미경 : 재미있니?
    한서연 : 내근만 하니까 미치겠어. 정보과 있을 때는 대모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강력계 지원도 나가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정보 수집 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 벌금 받으면서 앉아 있으려니 심심 해.
    근혜 : 교통사고 나면 막대기에 바퀴 달린 거 들고 나가잖아?
    한서연 : 교통사고 전담반에서 해.
    근혜 : 뺑소니는?
    한서연 : 뺑소니도 전담반에서 해.
    미경 : 서연아, 오늘은 뺑소니지?
    한서연 : 뺑소니지!
    미경 : 구속 되냐?
    한서연 : 맘먹으면 구속 될걸?
    미경 : 서연아, 맘 한번 먹어라. 구속시키자! 구속이 안 되면 구류라도 시키자!

    셋은 웃는다.

    근혜 : 그 김팀장 너무했다. 같은 직원차면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니? 미경 : 그러게 말이다. 운전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못된 건만 먼저 배우니 .... 작은 차 타다가 큰 차 타니 지 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을 거다. 고마워. 서연아.
    한서연 : 너가 잘한 거야. 말하는 건 쉽지만 일일이 찾아다니는 건 어려워. 운도 좋았고. 오늘은 너무 재미있었어! 집에 가자. 12시다.


    32. 올림픽 공원 내 경륜장 경주권 판매소 (오후)

    판매소에 많은 사람들이 경주권을 사기위해 줄서 있다.
    조각칠도 그 줄 안에 서 있다. 조각칠은 두리번거리면서 사람들을 본다.
    옆줄에 있는 50대의 중년남자가 손을 비비고 있는 걸 본다.
    한손에 구매카드가 들려 있다. 50대의 중년남자가 조각칠 눈과 마주친다.

    경주권 남자 : 뭘 봐?

    조각칠은 구매카드를 뚫어지게 본다.

    조각칠 : 몇 번에 거실 거예요?

    50대의 중년남자는 구매카드를 손 안으로 숨기고 말도 않고 앞만 본다.
    조각칠은 또 두리번거린다. 조각칠이 판매소 앞에까지 왔다.
    조각칠은 손을 들어 판매원에게 잠시 표시를 한다.
    옆줄에 있던 50대의 중년남자가 표를 산다.

    경주권 남자 : 1번, 4번.

    조각칠은 표기 하지 않은 구매카드를 준다.

    조각칠 : 1번, 4번 주세요.

    50대의 중년남자는 조각칠을 흘겨본다.


    33. 올림픽 공원 내 경륜장 경주권 판매소 (오후)

    조각칠이 경주권을 들고 판매소 한구석에 서 있다. 줄서 있는 사람들의 등이 보인다.
    조각칠은 구석구석을 본다. 전광판에 경륜 결과가 나온다. 조각칠이 전광판을 본다.
    1번, 4번 표시가 보인다. 조각칠은 다시 사람들을 확인한다.


    34. 송파서 주차장 (저녁)

    조각칠이 차에서 내린다. 감찰주임이 온다. 조각칠은 고개만 꾸벅 한다.
    감찰주임이 차안을 본다. 차안에 구매카드와 경주권이 널려 있다.

    감찰주임 : 경륜장 갔다 오나?
    조각칠 : 네.
    감찰주임 : 돈 좀 땄어?
    조각칠 : 20만원이요.
    감찰주임 : 오늘은 사람 제대로 만났나 보네. 들어가 봐.

    조각칠은 또 고개만 꾸벅하고 간다.


    35. 송파서 강력계 (저녁)

    1반 반장과 문대현이 앉아 있다. 조각칠이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다.

    반장 : 수고했어.
    조각칠 : 애들 장소 바꾸었나요?
    반장 : 걔네들도 너 보기 지겹겠지. 마음 고처 먹을 수도 있고.
    조각칠 : 그럴리가요! 대현아, 저번 주 출소 맞지?
    문대현 : 네.
    조각칠 : 식사 하러 가시죠.
    문대현 : 따셨어요?
    조각칠 : 20만원.


    36. 송파서 주차장 (저녁)

    조각칠, 1반 반장, 문대현이 조각칠차로 오고 있다. 조각칠이 한서연을 보고 머뭇거린다.
    한서연이 가방을 땅에 놓고 사복 차림으로 조각칠차 보조석 문을 보고 있다.
    조각칠차는 여러 곳이 찌그러지고 긁혀 있다.

    반장 : 한 경장, 아직 퇴근 안 했어?
    한서연 : 네. 근처에서 약속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예요.

    한서연이 보조석문 가운데에 은색으로 찍혀있는 곳을 가리킨다.

    한서연 : 얼마 안 된 거 같아요. 택시가 문을 열다가 찍은 거 같아요. 자세히 보면, 은색 안에 검정색이 있어요. 문에 붙인 광고 시트지 같아요.

    1반 반장이 다가가서 본다. 은색으로 찍혀 있는 곳, 끝부분에 검정색이 나 있다.

    반장 : 각칠아, 경륜장에서 그랬나 보다.
    한서연 : 오늘 경륜하는 날이죠?!

    한서연이 조각칠을 본다.

    한서연 : 잃으셨어요?
    조각칠 : 아뇨. 20만원 땄어요.
    한서연 : 우아 ~~~~. 좋은 신 사 신으세요!
    반장 : 함께 갈래? 각칠이가 밥 산대.
    한서연 : 약속이 ....
    반장 : 아 ~~~~. 다음에 또 보자고.
    한서연 : 네. 들어가세요.


    37. 아웃백 (저녁)

    한서연과 김태훈이 앉아 있다. 물 두잔, 넵킨, 빵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한서연 : 여기 자주 오세요?
    김태훈 : 저희 은행 카드가 할인이 되고, 가끔씩 식사권도 나오고 해서 기회가 되면 와요. 직장 동료나 친구들하고 안 오세요?
    한서연 : 친구들을 가끔 만나요. 그래서 기회가 별로 없어요. 저 친구가 두 명 밖에 없어요. 한명은 치과 의사 이고 한명은 회사원 이예요.

    한서연이 손가락을 두 개 피다가 물 컵을 엎는다.
    김태훈은 재빨리 컵을 세우고, 넵킨을 물 위에 놓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는다.
    한서연은 김태훈의 행동을 보고만 있다.

    한서연 : 가끔 물 컵을 잘 엎어요. 혹시 컵이 깨지거나 엎어진다고 해서 징크스가 있나요?

    생각하는 김태훈.

    한서연 : 저는 없어요. 제가 또 그러면, 그냥 조심성이 없다고 생각 하시면 돼요.
    김태훈 : 또 있나요?
    한서연 : 시간만 나면 동네 주차된 차, 경찰서에 주차된 차를 유심히 봐요. 차 주인한테 오해를 받기도 해요. 혹시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직업병이려니 하시면 돼요. 어떤 습관이 있나요?
    김태훈 : 숫자에 민감해요. 아침에 지갑에 있는 돈과 집에 들어와서의 돈이 안 맞으면 심하게 고민하죠. 한번은 공항에서 환전을 하는데, 그 직원이 계산 실수를 하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주판 드릴까요?” 그래 버렸죠.
    한서연 : 주판이요? 나무 알 있는 거 말이죠?
    김태훈 : 네. 아버지 영향이죠. 지금도 제가 계산 실수 할 때면 그러세요. 아직도 집에 주판이 몇 개 있어요. 제일 오래된 건 아버지가 신입 사원 때 쓰시던 거예요. 재미로 지금도 쓰세요.
    한서연 : 어렸을 때 타고만 다녔었는데 .... 맞아요. 주판이란 게 있었지요!
    김태훈 : 음식이 늦네요.

    김태훈이 종업원을 찾는다. 한서연은 젖은 넵킨과 손수건을 본다.

    김태훈 : 저기요, 음식 더 기다려야 하나요?


    38. 한서연 원룸 가는 길 (밤)

    한서연이 가방을 메고 김태훈과 걸어온다.
    김태훈이 한서연의 손을 잡는다. 놀라는 한서연.
    김태훈은 한서연의 손을 꼭 잡는다. 한서연은 손을 뻣뻣하게 펴고 있다.
    두 사람은 계속 걷고 있다.

    김태훈 : 이번 휴가는 친구 분들에게 양보하죠. 대신, 뭐 해주실 거예요?
    한서연 : 춤 추워 드릴까요?
    김태훈 : 네?
    한서연 : 놀라셨군요.
    김태훈 : 춤추는 거 좋아하세요?

    김태훈은 한서연을 보고 걷는다. 한서연은 손을 계속 의식 하며, 앞만 보고 걷는다.

    한서연 : 학교 다닐 때, 제가 기분이 안 좋아 있으면 친구들이 제 기분 풀어 주려고 “뭐 해줄까?”하고 물었어요. 저는 매번 춤추어 달라고 했어요. 춤추는 거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김태훈 : 그 두 명의 친구 분들 말이죠?
    한서연 : 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친구들 춤추는걸 보다가 이젠 내가 친구들 기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춤추어 주는 것이 좋아졌어요.
    김태훈 : 저 혹시 그네에 앉아 있는 학생 알아요? 계속 보고 있네요.

    한서연이 횡단보도에서 가방을 잡아당긴 여중생이 노려보고 있다.
    한서연은 손을 급히 빼면서 여중생에게 간다.
    김태훈은 자기 손을 보고 굳은 표정으로 한서연을 따라 간다.


    39. 놀이터 (밤)

    한서연이 반가운 얼굴로 선다.

    한서연 : 로운아, 나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로운은 김태훈을 보고 있다. 그리고 한서연을 본다.

    이로운 : 아뇨! 담배 피우려고요!

    외출복 차림의 이로운. 발밑에 있는 가방에서 아직 뜯지도 안은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다.

    한서연 : 기말 시험 끝났구나.
    이로운 : 안 보고도 잘 아시네요. 저 아저씨 누구세요?

    한서연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한다. 김태훈이 서운해 한다.

    이로운 : 아저씨, 서연이 언니 언제부터 만났어요?
    김태훈 : 6개월 전에 만났는데.
    이로운 : 6개월 요?

    이로운이 한서연을 본다.

    이로운 : 벌써 6개월이나 됐어요?

    이로운이 담배를 뜯는다. 담배 하나를 꺼낸다.

    한서연 : 담배 안 피우기로 했잖아.
    이로운 : 언니도 피우잖아요! 6개월이라 .... 양심에 안 찔리세요?

    이로운은 한서연을 똑바로 본다. 한서연도 눈을 피하지 않는다.

    이로운 : 할 말이 없겠지! 하던 일 계속 하세요!

    이로운이 가방을 들고 한서연이 걸어 온 길로 가 버린다.
    바라보는 한서연. 한서연을 보는 김태훈.

    한서연 : 담배를 정말 못 참겠으면 저랑 같이 피우자고, 제가 그랬어요.


    40. 한서연 원룸 (한밤중)

    한서연이 책상에 앉아 있다.
    사건보고서와 소나타 사고 차량의 카다로그를 비교한다.
    보고서에 쓰여진 대로 미니카를 손으로 달리게 하고 부딪쳐 본다.
    보고서 사진과 미니카에 찌그러지는 부분이 다르다. 두 미니카를 덩그러니 놓는 한서연.
    이로운의 “양심에 안 찔리세요?” 란 말이 귀가에 맴 돈다.
    한서연은 미니카를 잡는다. 그리고 다시 부딪쳐 본다.


    41. 송파서 강력계 (오후)

    조각칠이 혼자 앉아 담배 갑을 돌리고 있다.
    유일한 사람은 입구에 있는 데스크 직원과 그 앞에서 사건일지를 보는 젊은 남자뿐이다.
    조각칠 휴대폰 진동이 온다. 젊은 남자가 조각칠을 본다.

    조각칠 : 여보세요?
    (반장) : 뭐 해?
    조각칠 : 그냥 있어요.
    (반장) : 집이냐?
    조각칠 : 경찰서 요.
    (반장) : 거긴 뭐 하러 갔어?
    조각칠 : 쉬러 나왔어요. 일요일은 아무도 없고 조용하잖아요.
    (반장) : 밥은 먹었냐?
    조각칠 : 네.
    (반장) : 무식한 새끼. 그렇게 갈대가 없냐? 우리 집에 와.
    조각칠 : 일 얘기 싫어요. 오늘 쉬는 날 이예요.
    (반장) : 안 할게! 와!

    조각칠이 철문으로 나간다. 젊은 남자가 조각칠을 슬쩍 본다.


    42. 송파서 현관 입구 (오후)

    조각칠이 서서 주차장을 본다.
    한서연이 평상복에 가방을 놓고 주저앉아서
    사고 난 소나타 차량의 운전석문 아래를 그리고 있다.
    한서연은 차 앞으로 와서 그린다.
    조각칠은 뒤돌아 후문으로 간다.


    43. 신발 가게 (밤)

    1반 반장이 신발을 고르고 있다. 조각칠은 그 뒤에 서 있다.

    반장 : 왜 이렇게 늦었어?
    조각칠 : 버스 타고 왔어요.
    반장 : 차는?
    조각칠 : 주차장에 있어요.
    반장 : 드디어 고장 났냐?
    조각칠 : 타고 올까 하다가 그냥 버스 탔어요.
    반장 : 주차장에 있는 소나타 봤지? 단순 교통사고로 보이지?
    조각칠 : 오늘은 일 안 해요.
    반장 : 알았다.

    형수가 운동화 하나를 들고 조각칠에게 온다.

    형수 : 이거 어떠세요?
    조각칠 : 이거면 돼요 형수님. 밖에서 기다릴게요.


    44. 신발 가게 입구 (밤)

    조각칠이 입구에 서 있다. 창 너머로 1반 반장부부가 신을 고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조각칠 앞에, 긴 머리를 세운 남자 고등학생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친구들을 부른다.

    도로 학생1 : 빨리 와!
    남고생 두 명이 무단 횡단을 한다. ‘끽’소리 들린다.
    앞에 뛰던 학생이 차에 치일 뻔 했다. 두 남고생이 조각칠 앞으로 건너온다.

    도로 학생2 : 뒤질 뻔 했네.
    도로 학생1 : 보고 뛰어야지. 새끼야!
    도로 학생2 : 빨리 오라며?
    도로 학생1 : 늦었어. 씨발. 애들 기다린단 말이야. 뛰어!

    남고생 3명이 뛰어간다. 조각칠은 보고만 있다.


    45. 송파서 주차장 (오전)

    1반 반장, 3반 반장, 형사계장, 조각칠이 사고 난 소나타에 있다.

    3반 반장 : 우리 바뻐!
    반장 : 누군 한가한가? 몇 칠 있다 총 쏘러 가야 돼.
    3반 반장 : 누군 안 쏘나?
    형사계장 : 단순 음주사고는 아니라고 피해자 가족이 그러니깐, 수사 해. 누가 할 거야?

    일요일 날 강력계에서 조각칠을 보던 젊은 남자가 다가온다.

    출입기자 : 계장님, 형님들 안녕하세요.

    모두 못 본 척 한다.

    출입기자 : 조 형사님도 계시네요. 그 왜 마약 사건 있잖아요?
    반장 : 묻지 말고 조서 봐!
    출입기자 : 보여 주셔야 보죠.
    반장 : 안 보여 주는 거 쑤시고 잘 보잖아! 알아서 해.
    형사계장 : 일단 들어가지.

    출입기자만 남겨두고 들어간다.


    46. 송파서 교통계 (오후)

    한서연이 20대 초반의 여자 민원인에게 운전면허증을 준다.
    여자 민원인 : 어? 제 꺼 아닌데요?

    한서연이 확인 한다.

    한서연 : 죄송합니다.

    운전면허 상자에서 다시 찾아 준다.

    한서연 : 죄송합니다.
    여자 민원인 : 주민등록증도 주셔야죠.

    한서연이 책상에서 허둥지둥 찾아 준다.

    한서연 :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안 드린 거 없죠?

    20대 여자 민원인은 한심해 하면서 나간다.


    47. 송파서 내 외부 휴게소 (오후)

    한서연이 의자에 앉아 있다. 주먹을 쥐고 머리 옆을 통통 친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려고 한다. 가만히 있는 한서연. 그냥 덮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서연을 보고 있던 조각칠. 돌아서 간다.


    48. 송파서 강력계 (오후)

    1반 반장이 앉아 있다. 조각칠이 들어와 앉는다.

    반장 : 차종이 뭐래?
    조각칠 : 모른데요.

    1반 반장이 조각칠 얼굴을 자세히 본다.

    반장 : 표정이 없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있나?! 물어 보긴 한 거야?
    조각칠 : 네. 모른데요.
    반장 : 차가 아작 났으니 증거가 남았겠나!

    문대현이 온다.

    문대현 : 뺑소니 신고 들어온 거 없다는데요. 증인신고도 없데요.
    반장 : 같이 사고 낸 차도 음주운전인가? 본 사람이 있을 텐데 .... 이거 또 길어지겠네. 도난차량이나 렌트 쪽도 없어?
    문대현 : 아직은 없는데요. 국과수에 넘길까요?
    반장 : 넘겨. 수사 접수를 하려면 빨리 하던가, 몇 칠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누가 죽였다고 하면, 씨발, 어떻게 하라고?

    조각칠은 담배갑을 돌리고 있다. 문대현이 1반 반장에게 서류를 준다.

    반장 : 보험도 많이 들었네. 담보도 없고 은행 빚도 없고 .... 하던 대로 해야지. 집부터 가봐.

    조각칠과 문대현이 나간다.


    49. 놀이터 (밤)

    한서연이 운동복 차림으로 그네에 앉아 있다. 손에는 담배와 라이터가 들려 있다.
    자동차 한 대가 어둠속에서 온다.

    한서연 : 신형 소나타?

    한서연 앞을 지나간다. 신형 그렌져XG 차량이다. 고개를 숙인다.
    한서연은 이선희의 <자전거> 노래를 부른다.

    한서연 : 아무리 바래도 이뤄질 수 없는걸 알면서 어쩌다가 그댈 내 맘에 담아두게 됐는지. 아무리 바래도 생각에 끝에 그대가 오고 그 후로 부터는 그리움 병을 앓고 있네. 이제껏 잘 지네 왔는데 너무 자유로 왔는데 이 사람 사랑만을 얻고 싶을 뿐. 난 바라죠 욕망 하죠 그와 함께 살 수 있기를 원하죠. 허나 나는 용기 없죠 누구보다 그를 사랑 하면서도 멈추고 싶어.
    이제껏 잘 지내왔는데 모든 게 의미가 없어 이 사람 사랑만을 얻고 싶을 뿐. 난 바라죠 욕망 하죠 그와 함께 살 수 있기를 원하죠 허나 나는 용기 없죠 누구보다 그를 사랑하면서도. 난 바라죠 욕망 하죠 그와 함께 살 수 있기를 원하죠 허나 나는 용기 없죠 누구보다 그를 사랑하는 맘은 커져만 가요. 난 자전걸 탔죠 (사랑이란 건) 좀 타본 자전거 같은 거 (내가 어떻게 될 진) 멈춰봐야 알 뿐이죠 (지금 난) 난 달리고 있죠.

    한서연은 담배와 라이타를 그네위에 놓고 간다.


    50. 한서연 원룸 (밤)

    한서연이 식기를 헹구고 있다.
    설거지를 끝내고 책상에 앉아 소나타 교통사고 서류들을 본다. 눈에 안 들어온다.
    한서연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창밖을 본다. 눈을 감는다.


    51. 이 건축 사무실 안 (오후)

    조각칠, 문대현이 30대 후반의 남자 회사동료와 접대실에 앉아 있다.

    문대현 :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군요.
    회사동료 : 네. 현장에서도 인부들하고 다툰 적도 없고 친절 했었어요. 상사에게 욕먹긴 했지만 술자리에서 풀었어요.
    문대현 : 술을 좋아 했군요.
    회사동료 : 좋아했다 기보다는 그냥 마신 거죠.

    접대실 문이 열리고 50대 남자가 소리친다.

    직장상사 : 하루 종일 그러고만 있을 거야?

    셋은 놀란다. 50대 남자는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고 나간다.

    문대현 : 빨리 물을게요. 여자를 좋아 했나요?
    회사동료 : 좋아 했죠. 그래도 돈 든다고 단란주점은 안 다녔어요. 가자 그러면, 자기는 됐다고 가버렸어요.
    문대현 : 사귀는 여자는 없었나요?
    회사동료 : 그건 모르겠어요.

    문대현이 전화번호들이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을 보여준다.

    문대현 : 여기서 아는 전화번호 있나요?

    회사동료가 종이를 본다.

    회사동료 : 없어요.
    문대현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사동료가 나간다.

    문대현 : 각칠이형, 어때요?
    조각칠 : 레이스 한 거 같아.
    문대현 : 갑시다. 전화번호 주인들 하나씩 만나러 갑시다.


    52. 선릉역 근처 작은 빠 (밤)

    테이블이 8개, 스텐드 의자가 6개 놓인 작은 빠.
    조각칠과 문대현은 스텐드 의자에 앉아 있다.
    40대 초반의 여주인이 죠니워커 블랙 750ml 병을 들고 와 앉는다. 4분의1 정도가 들어있다.
    여주인은 살짝 통통하고 지적인면을 지니고 있다.

    여주인 : 이술 이예요.
    문대현 : 이 술만 마셨나요?
    여주인 : 네. 항상 이술만 마셨어요.

    여주인이 잔을 놓고 술을 따른다. 문대현이 본다.

    여주인 : 제가 그 분에게 해드린 것은 가끔 술을 따라 드린 것 뿐 이었어요. 안 됐어요.

    여주인은 술을 반잔 마신다.

    문대현 : 혹시 저희가 빼먹고 묻지 않은 것이 있나요? 아니면, 하고 싶은 얘기라든가 ....
    여주인 : 아까 말씀드린 것이 다예요.

    여주인은 남은 잔을 마신다. 문대현이 본다.

    문대현 : 남은 술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주인 : 어떻게 해야 하죠?

    자기 질문이 잘못 됐다는 걸 안 문대현은 조각칠을 본다.

    조각칠 : 저희가 가져가죠.


    53. 문대현 차 안 (밤)

    경찰서로 들어가는 길. 잠실야구장 라이트가 켜져 있는 것이 보인다.
    문대현은 운전을 하고 조각칠은 보조석에서 불 켜진 야구장을 보고 있다.

    문대현 : 키핑빠 치곤 초라하죠?
    조각칠 : 여주인이 차분하고 조용하네. 티 내지 않고 오래 다니려면 저런 곳이 낫지.
    문대현 : 키핑은 발렌타인 21년 이상 해야 하는 곳을 다녀야 자세 나오는데!
    조각칠 : 그런데서 카드 쓰면 마누라한테 바로 걸릴 걸! 그 아줌마 보통내기가 아니야. 들어가서 술집 얘기는 하지 말자.
    문대현 : 술 요. 버릴 거면, 여주인 마시게 그냥 두시죠. 그 여주인 은근히 끌리던데요!

    문대현이 조각칠을 살짝 미소 지으며 본다. 조각칠은 환한 야구장을 보고 있다.
    문대현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문대현 : 레이스 하다가 그럴 수 있겠는데요?

    조각칠은 야구장만 보고 있다. 차가 경찰서를 향해 달린다.


    54. 송파서 감찰반 (점심)

    한서연과 감찰주임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감찰주임 책상 위에는 조각칠이 작성한 사건 보고서, 출퇴근 내역서,
    민원신고 내역서등으로 가득 하다.

    감찰주임 : 내용 봤니?
    한서연 : 자세히는 못 보고 확인 하면서 대충 봤어요.
    감찰주임 : 아이 하고 아내 죽기 전하고 죽고 난 후하고 차이가 없니?
    한서연 : 그 전부터 차를 험하게 타고 다닌 건 유명했잖아요. 저는 가끔 지나가다가 인사만 하는 정도지 말 해본적은 없어서 모르겠어요. 말 수가 적어진 거 정도? 참, 사람이 지저분해 졌어요. 전에는 정말 깨끗했었는데 .... 산모 건, 문제가 커졌나요?
    감찰주임 : 그래! 지저분해 졌어! 나도 감찰반으로 옮긴지 1년이 넘어서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제수씨가 정말 매일 옷 갖다 주었는데 .... 왜 변한 걸 몰랐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 놈을 책상 건너로 보고 있을 때는 저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았는데 .... 그 놈 독사였는데.... 그 놈, 구렁이는 아니었는데 .... 구렁이는 ....

    앗 차 하는 마음으로 감찰주임이 한서연을 본다. 웃고 있는 한서연.

    한서연 : 죽은 제 남편이죠! 항상 흐물흐물 집에서도 흐물흐물 맨날 흐물흐물 다녔죠. 잠깐 한눈팔면 어느새 흐물흐물 다가 와 있어서, 한두 번 놀란 게 아니죠.
    감찰주임 : 너가 지원 나와서, 역삼동 삥 뜯을 때 차에 타고 있던 접대부년 확보 못해서 한참 과장한테 쪼이고 있는데, 소리도 없이 나타나선 “이 년 찾아요?” 하면서 실실 웃는데 미치겠더라. 지겨운 새끼!

    한서연이 웃다가 벽시계를 본다. 1시 5분.

    한서연 : 어? 1시 넘었어요.

    감찰주임이 내선 전화를 건다.

    감찰주임 : 저 감찰주임 입니다. 한 경장, 얘기 좀 하다가 보내겠습니다.

    수화기를 바로 끊는다.

    한서연 : 항상 일방통보, 예전에도 일방통보, 지금도 일방통보 받는 사람이 기분이 어떻겠어요!
    감찰주임 : 이게 안 고쳐진다. 형사 짓 하던 놈은 말을 바꾸어 타도 안 돼.
    한서연 : 오랜만에 땡땡이?
    감찰주임 : 어디 갈까?
    한서연 : 백화점 쇼핑이 최고죠!


    55. 송파서 감찰반 (저녁)

    감찰주임이 앉아 있다.
    발 옆에는 신던 구두가 놓여 있고, 끈 없는 검정색 새 운동화를 신고 있다.
    감찰주임은 한서연에게 받은 서류를 볼펜으로 정리해 논 도표를 보고 있다.
    민원 신고 도표, 출퇴근 도표, 입출금 도표, 사건 해결 도표들도 넘겨 가며 보고 있다.
    2006년 7월 전까지의 과속 도표를 보면 사건 해결 시기 때와 맞 물려있다.
    어떤 날은 몇 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나도 없다.
    사건 보고서와 비교해 보면 대부분 사건 해결되기 전까지의 교통 딱지 이다.
    새로운 사건을 맡기 전까지는 교통 딱지가 한 장도 없다.
    그러나 2006년 7월 이후로는, 사건 보고서와는 관계없이 교통딱지가 있다.
    출퇴근표도, 민원신고도 사건 보고서와는 관계없이 들쑥날쑥 하다.
    은행 입출금표는 2006년 7월 이후, 내야 할 세금 외엔 거래가 거의 없다.
    신용 카드 내역도 거의 없다. 휴대폰 사용도 강력계 형사 치고는 매우 적다.
    2006년 7월을 기점으로 해서, 사건과 관련 된 조각칠의 서류들
    그리고 사건과는 무관한 조각칠의 서류들로 양분된다.
    감찰주임은 계속 도표를 보면서 고민 한다.


    56. 송파서 강력계 (밤)

    감찰주임이 강력계로 들어온다. 1반 반장이 앉아 있다.

    감찰주임 : 1반이 오늘 당직인가?

    감찰주임은 조각칠 자리에 앉는다. 책상은 여전히 지저분하다.

    반장 : 네.
    감찰주임 : 각칠이 어디 갔어?
    반장 : 소나타 사건 때문에 나갔어요.

    감찰주임은 조각칠 자리를 자세히 본다.

    감찰주임 : 이놈이 어디에다 놓았지?

    감찰주임은 서랍을 열어본다. 지저분하다.

    반장 : 산모 때문 인가요?
    감찰주임 : 아니야. 자체적으로 문제는 없어. 기자 때문에, 형식적으로 시늉은 하래잖아. 각칠이놈, 면도기 어디에다 둔거야?

    감찰주임이 마지막 서랍을 닫는다. 1반 반장이 면도기를 건네준다.
    감찰주임은 면도를 한다.

    감찰주임 : 운이 좋았지. 기자 놈이 조금만 빨랐어도 문제가 커졌을 텐데, 각칠이가 나가는 것만 봤대. 다행이지. 그 기자 놈, 기억력이 좋아. 그 순간에 각칠이 바지에 묻은 피를 기억해 내데. 1반은 총 쏘러 언제가?
    반장 : 다음 주 목요일 요.

    면도기를 1반 반장에게 준다.

    감찰주임 : 면도기 좋은데! 수고해.

    감찰주임이 나간다.


    57. 한서연 동네 횡단보도 (아침)

    깜박이던 초록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다. 차들이 지나간다.
    한서연이 가방을 메고 오른쪽 길을 본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다.
    건너가는 한서연.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너 왔다. 뒤돌아보는 한서연.
    작은 길에서 뛰어 나오는 이로운. 한서연과 눈이 마주친다. 초록신호가 깜박 거린다.
    이로운이 다시 작은 길로 뛰어 간다. 한서연이 이로운을 따라 간다.


    58. 작은 길 (아침)

    한서연이 작은 길로 뛰어 들어와 선다. 반대편 가게 유리를 본다.
    이로운이 골목길에 숨어서 유리를 통해 한서연을 보고 있다.
    둘은 유리를 통해 보고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는다.
    한서연의 눈이 빨게 진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한서연은 뒤돌아서 가 버린다. 이로운은 그저 보고만 있다.


    59. 송파서 근처 식당 (오후)

    조각칠만 식사를 하고 있다. 그 앞에는 출입기자가 앉아 있다.

    출입기자 : 식사를 특이하게 하시네요.

    조각칠은 식사만 한다.

    출입기자 : 맞죠? 병원에서 바로 연행한 거 맞죠? 간호사 하고 얘기 다 했어요.
    범인 이라고 해도 산모 인데,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요?

    조각칠은 계속 밥만 먹는다.

    출입기자 : 조만간에 기사 나갈 겁니다.

    출입기자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이때 감찰주임이 출입기자 옆에 선다.

    감찰주임 : 가려고?

    감찰주임이 조각칠 옆자리에 앉는다.

    감찰주임 : 앉아 봐.

    출입기자가 앉는다.

    감찰주임 : 각칠아, 너 찾느냐고 경찰서 다 뒤졌다.
    조각칠 : 찾으셨어요?
    감찰주임 : 면도기 어디에다 놓았냐?
    조각칠 : 면도기요 .....

    말 없는 조각칠.

    출입기자 : 형님, 사적인 얘기이면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순간 딱딱해 지는 감찰주임.

    감찰주임 : 중요한 얘기야! 이 놈, 앞뒤 안 가리는 놈이 아닌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생각이 없어졌어.

    감찰주임이 조각칠을 본다.

    감찰주임 : 왜, 전화 안 하고 산모를 경찰서로 연행 했어?
    조각칠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감찰주임 : 너 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말이 없는 조각칠.

    감찰주임 : 면도기는? 면도기는 어떻게 했어?

    말이 없는 조각칠.

    감찰주임 : 면도기도 너 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

    말이 없는 조각칠.

    출입기자 : 면도기가 뭐 ....
    감찰주임 : 중요한 얘기라고 했지! 그 순간을 참고 못 기다려? 너 언제까지 출입기자 할래? 몇 년째야?

    출입기자도 말이 없다.

    조각칠 : 면도기, 집에 있어요.
    감찰주임 : 경찰 그만 두려고?
    조각칠 : 그건 아니에요.
    감찰주임 : 그럼?

    머뭇거리는 조각칠.

    감찰주임 : 똑바로 말 안 해?
    조각칠 : 아내하고 아기를 잊어 보려 구요.
    감찰주임 : 이번 달이 기일 이지?
    조각칠 : 네.
    감찰주임 : 각칠아, 하나만 기억해라. 너 가, 내 반이 아니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거!

    감찰주임은 신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감찰주임 : 이 신 서연이가 골라 주었어. 봤어?

    감찰주임은 신발을 내린다.

    감찰주임 : 니 신발 봐라. 이 새끼야! 범인 잡겠다고? 괜히 씨발, 힘없는 년이나 들고 오고, 경륜장가서 잡은 새끼나 또 잡으려고나 하고, 계속 주워 먹을래? 서연이 봐, 새끼야. 걔도 지 남편 잃었어. 그래도 꿋꿋하게 자기 할 일 하면서 살잖아. 걔는 속이 좋을 거 같아?

    식당 안이 정말 조용하다.

    조각칠 :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나요.
    감찰주임 : 내가 기억나게 해 줄게. 아무 때나 내 책상으로 와. 넌 진짜, 내 반이 아닌 게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넌 죽었어! 밥맛은 아냐?
    조각칠 : 아뇨. 배만 아파요.
    감찰주임 : 배에서 꼬로록 소리 날 때까지 굶어. 그럼 밥맛 날거다. 계속 그딴 식으로 먹으려면 내 눈에 띄지 말고 먹어. 걸리지 마.


    60. 조각칠 아파트 거실 (밤)

    츄리닝과 반팔셔츠를 입고 조각칠이 소파에 앉아있다. 샤워를 했는지 깨끗하다.
    테이블 위에는 담배, 재떨이, 라이터가 있다.
    조각칠은 담배를 보고 있다. 담배를 잡는다. 뚜껑을 연다. 20개가 들어있다.
    뚜껑 접히는 앞부분에 여자 필체로 글씨가 쓰여 있다.
    “나 죽으면 피워”
    조각칠은 이 글씨를 본다.
    조각칠은 뚜껑을 덮고 책상을 톡톡 치면서 돌린다. 다시 뚜껑을 연다.
    가운데 담배를 들어 올린다. 필터 부분이 올라 왔다. 거기서 멈춘다.
    조각칠은 손가락으로 눌러 넣는다. 뚜껑을 덮고 테이블 위에 놓는다.
    화장실로 간다.


    61. 조각칠 아파트 욕실 (밤)

    불 꺼진 욕실. 신발 1개, 칫솔1개, 수건1개, 비누, 면도기, 남자 스킨로션만 보인다.
    여성용과 아기용품은 없다.
    장판에 발바닥 달라붙는 소리가 들린다. 조각칠이 들어온다.
    변기로 온다. 변기 의자를 들어 올린다. 바지를 내린다. 가만히 있는 조각칠.
    조각칠은 변기 의자를 내린다. 변기에 앉는다. 고개를 숙이는 조각칠.


    62. 중학교 운동장 (새벽)

    여명이 올라온다. 운동장을 한 사람이 뛰고 있다. 한서연 이다.


    63. 한서연 원룸 (아침)

    한서연이 오이냉국, 밥, 김치, 김, 계란말이를 먹고 있다.
    화장만 빼고는 출근 준비가 다 되어 있다.


    64. 조각칠 아파트 방 (아침)

    침대에서 조각칠이 눈을 뜬다. 이불을 갠다. 옷을 갈아 입는다.
    화장대에 있던 사진, 화장품이 보이지 않는다. 담배, 라이타, 열쇠, 지갑을 집는 조각칠.
    바로 출근 한다.


    65. 송파서 주차장 (아침)

    차에서 조각칠이 내린다. 조각칠은 현관 쪽으로 걸어오다가 반대편을 본다.
    경찰복을 입은 한서연이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유심히 보면서 다닌다.
    조각칠은 한서연을 보고 있다.


    66. 송파서 근처 식당 (점심)

    경찰들과 손님으로 가득 찬 식당.
    조각칠과 문대현이 식사를 하고 있다. 문대현도 오늘은 얼굴빛이 나쁘다.
    밥을 반쯤 남긴 조각칠이 무심히 반대편에 시선을 둔다.
    한서연과 임순경이 얘기 하면서 밥을 먹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한서연이 웃는다.
    문대현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밥을 깨작깨작 먹고 있다.


    67. 문대현 차 안 (점심)

    차가 송파서 정문을 나온다. 문대현이 운전을 하고 보조석에서 조각칠이 창밖을 보고 있다.
    한서연과 임순경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다정히 걸어오고 있다.
    조각칠은 둘을 보고 있다.

    문대현 : 각칠이 형, 선물로 반지 어때요?
    조각칠 : 선물?

    문대현이 한숨을 쉰다.

    문대현 : 여자 친구 생일 선물 요!
    조각칠 : 만나는 게 제일 좋아.
    문대현 : 시간이 안 되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 미친년, 지 남편 타살이라고 우기잖아요. 같이 레이스 한 놈 잡아 오라잖아요. 자기가 직접 확인 한다고! 니가 가서 잡아 오라고 말도 못하고 .... 아이고 참 .... 답답 하내 ....
    조각칠 : 생일이 언제인데?
    문대현 : 일요일 요! 진짜 기억 안 나요?
    조각칠 : 무슨 기억?

    문대현은 조각칠을 보면서 운전을 한다.

    문대현 : 저번 주에 형한테 물었잖아요. 여자 친구 생일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지금하고 똑같이 물었어요.

    문대현은 화가 났다. 조각칠은 정면을 본다.

    조각칠 : 기억이 안나.

    오른쪽 차선에서 승용차 한 대가 끼어 들어온다. 문대현은 속도를 줄인다.
    승용차가 들어 왔다. 거리를 유지 한다. 문대현의 시선은 거의 조각칠에 있다.

    문대현 : 사건들은 기억 하면서 왜 다른 건 기억이 안나요? 그게 말이 돼요?

    사거리가 보인다. 문대현은 우측 깜박이를 켜고 우측 차선으로 이동 한다.
    보낼 차는 먼저 보내면서 차들 사이로 스며들어 간다.
    시선은 조각칠. 얘기는 끊이지 않는다.
    조각칠은 정면과 좌측 차를 슬쩍슬쩍 본다.

    조각칠 : 경찰일 만 기억 하나 봐. 머리가 기억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 하나 봐.

    문대현이 우회전을 한다. 좌측 깜박이를 넣고 좌측 차들 사이로 스며들어 간다.
    시선은 아직도 조각칠 쪽에 훨씬 있다.

    조각칠 : 경찰 한지 올해로 10년 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것만 했어. 수도 없이 반복해서 그런가 봐. 지금 너 가, 나 보면서 운전 하는 거와 같은 건가 봐. 사실 직감도, 감각도 없어. 내가 뭘 하는지 .... 몸만 계속 움직여.

    문대현은 어느새 앞을 보고 운전한다. 조각칠도 이젠 창밖을 보고 있다.

    조각칠 : 잘 될지 모르겠지만 선물 생각해 볼게.

    조각칠은 수첩을 꺼내
    ‘7/15 일요일 대현이 여자 친구 생일 선물 - 7/14 토요일 저녁 6시 까지 통보’라고 쓴다.


    68. 소나타 차량 사고 난 고가도로 (저녁)

    가방을 메고 사복의 한서연이 앞쪽에 있는 무인 카메라를 보고 있다.
    대형 트럭이 한서연 옆을 지나간다. 강한 바람과 열기가 분다. 옷과 머리가 날린다.
    한서연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차들을 본다.
    무인 카메라 앞에서 차들이 속도를 줄였다가 지나고 나면 다시 속도를 올린다.


    69. 소나타 차량 사고 난 고가도로 (밤)

    어두워진 도로. 한서연은 아직도 달리는 차들을 보고 있다.
    많은 차들 속에서 차 한 대를 유심히 본다. 차가 점점 가까워 온다.
    손을 든다. 그 차는 갓길에 선다. 차로 달려가는 한서연.


    70. 김태훈 차 안 (밤)

    한서연이 보조석 문을 연다. 김태훈이 운전석에 앉아있다.

    한서연 : 잘 찾아오셨네요.
    김태훈 : 그렇게 있으면 위험하지 않아요?
    한서연 : 가면서 얘기해요.

    김태훈이 차를 출발한다.

    한서연 : 아까 거기에서 차 사고가 나서 40대 남자 한명이 죽었어요. 우리는 모르는 차와 레이스를 하다가 사고가 났고 다른 레이스한 차는 사고 내고 도주 했다고 생각 하는데, 유가족은 누군가가 자기 남편을 고의로 사고사 시킨 거라고 조사를 의뢰 했어요.
    김태훈 : 담당부서가 있지 않나요?
    한서연 : 형사과 하고 교통사고 전담반에서 해요.
    김태훈 : 그런데 왜 ....
    한서연 :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김태훈은 한서연의 이 말에 화가 난다.

    김태훈 :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해요? 이거 보여주려고 여기로 약속장소를 정한 거예요?

    잠깐 말이 없는 한서연.

    한서연 : 죄송해요. 전 제가 하는 일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김태훈 : 담당부서가 있다면서요?

    또 잠깐 말이 없는 한서연.

    한서연 :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김태훈 : 차 위험한 건 저 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말이 없는 한서연. 김태훈도 잠시 말이 없다.

    김태훈 : 저녁은 드셨어요?
    한서연 : 아뇨.
    김태훈 : 저녁 먹으러 가요.
    한서연 : 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있다. 잠실야구장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다.
    한서연이 야구장을 보고 있다.


    71. 일식 집 (밤)

    한서연과 김태훈이 정식 2인분을 놓고 식사를 하고 있다.

    한서연 :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나요?
    김태훈 : 네.
    김태훈이 한서연을 본다. 한서연 앞에 빈 그릇들만 있다. 김태훈이 젓가락을 놓는다.

    한서연 : 다 드신 거예요?
    김태훈 : 네.
    한서연 : 다 드세요!
    김태훈 : 아까는 너무 위험했어요. 경찰복도 안 입고, 그렇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 위험한 곳을 가요?

    한서연은 가만히 있다.

    김태훈 : 어떻게 가신 거예요?
    한서연 : 걸어 올라 갔어요.

    김태훈이 또 놀란다.

    김태훈 : 차를 한대 사 드릴까요?

    한서연은 손을 내짓는다. 김태훈은 젓가락을 집는다. 그러나 다시 내려놓는다.

    김태훈 : 부모님이 서연씨를 보고 싶어 하세요.

    한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김태훈 : 서연씨 얘기 안 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가 사귀는 여자가 누구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어머니 눈에는 티가 나나 봐요.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시는데, 그렇고 보니, 우리 사진 찍은 적이 없더라고요. 저희 부모님, 언제 보실래요?

    뜸을 드리는 한서연. 기다리는 김태훈.

    한서연 : 어렵네요.
    김태훈 : 아직도 저만 서연씨를 사귀고 있는 거군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사실 갑작스럽다는 건 알아요. 전화 통화나 만남의 횟수가 잦아진 건 저번 달 부터였고,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모르겠어요. 제 마음이 급격히 흘러가요. 생각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이 서연씨에게 흘러가 버렸어요.
    한서연 : 사랑 인가요?
    김태훈 : 네.
    한서연 : 인연을 믿으시는군요. 저는, 상대를 알아가고 그를 위해서 내가 해줄 것이 있나, 없나, 해줄 것이 있으면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해요. 난 태훈씨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예요. 물론 태훈씨에게 저를 알려주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제가 태훈씨를 계속 만나게 된다면 ‘경찰을 못 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대신 ‘날 떠나진 않겠다.’ 는 생각도 했어요. 아직도 보여줄게 많고 볼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인연의 제일 문제점이요, 기다림에 약해요.

    김태훈이 물컵을 꽤 오랜 동안 보고 있다.

    김태훈 : 뭐 하나 물어 봐도 돼요?
    한서연 : 네.
    김태훈 : 담배는 언제부터 피우신 거예요?
    한서연 : 중학교 때요.

    말이 없는 김태훈.

    한서연 : 친구들하고 탑건 이란 영화를 보러 갔었어요. 극장 앞에 갔는데, 줄이 굉장히 길게 서 있는 거예요. 표를 사려고 친구들이랑 줄을 따라 가는데 금발에 정말 예쁜 외국인 한명이 줄 안에 서 있었어요. 너무 예뻐서 계속 그 외국인 언니만 보고 걸어갔어요. 눈이 파란 게 어찌나 신기 하던지 그 언니 손이 입으로 가는 것도 몰랐어요. 파란 눈 사이로 담배가 있는 거예요. 연기가 ‘훅’ 하고 나오는데, 그 자리에 섰어요. 굉장히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더라고요. 그 언니가 너무 멋졌어요. ‘나도 담배 저렇게 피워야지!’ 그 때 마음먹었죠. 영화 보고 친구들 하고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 담배 사서 피웠어요. 그게 시작이에요.
    김태훈 : 안 걸리셨어요?
    한서연 : 말씀 드렸잖아요. 그 언니처럼 피울 거라고.
    김태훈 : 그럼. 대놓고 피우셨어요?
    한서연 : 네.
    김태훈 : 그럴 수 없는 시대였잖아요?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가만 두지 않았을 텐데 ....
    한서연 : 해결책이 집 마당에서만 피우는 거였어요.
    김태훈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다.

    한서연 : 제가 미쳤죠. 정말 많이 맞았어요.
    김태훈 : 그 이후로 지금까지 피우시는 거예요?
    한서연 : 네.
    김태훈 : 저는 왜 한번도 못 봤죠? 참으셨던 거예요?
    한서연 : 피우고 싶으면 바로 피워요. 참지 않아요. 부모님한테 맞을 때도요 “피우고 싶을 때만 피우면 되잖아!” 하고 맨날 대들었어요. 다행이도 그렇게 되 버렸어요. 그게 너무 좋아요. 최근에 피운 건 한달 정도 됐을 거예요.
    김태훈 : 무슨 일 때문에 피우신 거예요?
    한서연 : 태훈씨가 저 좋다고 한 날에요.

    김태훈이 생각한다. 한서연은 테이블 위에 양팔을 올려놓고 앉아 있다.

    김태훈 : 조금은 우리 가까워진 건가요?
    한서연 : 네.

    김태훈은 젓가락을 들고 남은 음식을 먹는다. 한서연은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72. 송파서 감찰반 앞 (저녁)

    감찰반으로 조각칠이 걸어온다. 지나가던 문대현이 조각칠을 본다.

    문대현 : 각칠이 형.

    문대현이 조각칠에게 온다.

    문대현 : 감찰반은 왜요?
    조각칠 : 주임님이 오라 그래서.
    문대현 : 퇴근 하고 없을 텐데 ....
    조각칠 : 들어가 보면 알겠지.
    문대현 : 자리에 가 있을게요. 끝나면 오세요.

    문대현이 강력계로 간다.

    조각칠 : 대현아!

    문대현이 돌아본다.

    조각칠 : 잊어 버릴까봐 생각 날 때 바로 얘기하는 거야. 여자친구 선물, 너의 미니 사진첩 어떠니?
    문대현 : 사진첩이요?
    조각칠 :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내 사진을 작은 앨범에 넣어서, 연애 할 때 아내에게 주었거든. 자주 못 보니까 미안하다고, 사진을 통해서라도 보고 싶다고 했었어.

    조각칠이 문고리를 잡는다. 주춤하는 조각칠. 문대현을 본다.

    조각칠 : 대현아, 그래도 얼굴 보여 주는 것이 제일이야.

    조각칠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73. 송파서 감찰반 (저녁)

    서늘하고 어두컴컴한 기운이 도는 감찰반 안. 아무도 없다.
    책상이 달랑 4개만 있다. 조각칠이 들어온다.
    조각칠은 감찰주임 책상 앞에 서서 벽을 보고 읽기 시작한다.
    벽에는 1997년부터 2007년 지금까지의 사건수사, 출퇴근 현황, 은행계좌 내역,
    교통고지서, 민원신고 건수, 휴일 수, 근무시간 등의 도표가 프린트 되어 붙어 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업무 평가가 파악된다. 끝부분에 있는 종합평가 표를 본다.
    2006년 7월을 기점으로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린다.
    2006년 9월부터 2007년 6월 까지 곡선의 기울기는 완만하게 떨어져 있다.
    곡선 상으로는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2006년 6월과 2007년 6월과의 곡선의 기울기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조각칠은 맨 끝에 있는 사건 진행표를 본다.
    타반 지원, 재범 검거, 경범 검거 등에는 검거율 기록이 있지만,
    5대 강력범죄나 개인 검거율은 제로 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엔 경륜장 소매치기, 서울 분당 간 도로 차량 사고 사건이 전부이다.
    퇴폐 안마 단속, 송파 은행 강도 사건, 거여 방화 사건, 오금동 여관 살인 사건,
    장지 폭력 사건 등은 현재 중지 상태이다.
    조각칠은 감찰주임 책상을 살핀다.
    조각칠의 보고서와 사건서류들이 쌓여있다. 의자 옆 바닥에는 구두가 있다.
    감찰주임 자리에 앉는 조각칠. 책상 달력이 보인다.
    7월 21일 날짜에 각칠이 1년 이라 쓰여 있다.
    조각칠은 달력을 넘긴다. 8월 25일 영철이 생일, 9월 14일 조감찰 생일,
    10월 8일 서감찰 생일, 11월 6일 아내 생일 등, 기록이 적혀 있다.
    조각칠은 반대로 넘긴다. 5월 4일 서연이 생일, 5월 1일 영철이 2년.
    조각칠은 7월에 달력을 맞추어 논다. 7월 21일에 시선이 간다.

    조각칠 : 영철이 형은 벌써 2년 인데 .... 난 왜, 아직도 1년 이지?


    74. 한서연 원룸 (오후)

    한서연이 츄리닝과 라운드 셔츠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있다.
    책상 위에는 소나타 차량의 전체 사진, 부분 사진, 한서연이 직접그린 소나타 차량 그림들, 마카 펜, 크레용, 물감, 스케치북, 사인 펜, 사고 보고서,
    컴퓨터, 연필, 볼펜, 휴대폰
    등이 한가득 바닥 까지 널려 있다. 물론 미니카도 있다.
    한서연은 사고 차량 색깔이 모두 칠해져 있는 스케치북 위에,
    다양한 종류의 색깔들과 다양한 재질들의 필기구류들을 그 위에 덧칠하고 있다.
    손은 이미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다.
    한서연은 돋보기를 들고 사진들을 더욱 유심히 본다. 머리가 흘러내린다.
    물감 등을 닦아 더러워진 수건들 중, 그나마 깨끗한 손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묶는다.
    다시 돋보기를 본다. 한서연 휴대폰 진동이 온다. 손만 휴대폰을 찾는다.

    한서연 : 여보세요?
    (김태훈) : 김태훈 입니다.
    한서연 : 어? 안 바쁘세요?
    (김태훈) : 오늘 제헌절 이예요.
    한서연 : 그렇군요.
    (김태훈) : 어디세요?
    한서연 : 집이예요.
    (김태훈) : 아직도 그 사고 난 차 사진보고 계시는 거예요?
    한서연 : 네. 단서를 못 찾겠어요. 어떤 차가 그랬는지 알아야 하는데, 안 보이네요. 혹시, 열 반응에 대해서 아세요?
    (김태훈) : 열 반응이요?
    한서연 : 네.

    김태훈의 회답 목소리가 없다.
    한서연은 아차 하는 생각에 돋보기에서 눈을 땐다.

    한서연 : 죄송해요. 식사는 하셨어요?
    (김태훈) : 점심이요? 저녁이요?

    한서연이 시계를 본다. 4시 35분.

    한서연 : 제 질문이 잘못 됐군요.
    (김태훈) : 저녁 같이 먹어요.
    한서연 :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김태훈) : 계속 굶고 하시는 거예요?
    한서연 : 아뇨. 밥은 꼭 먹어요. 저녁도 먹을 거예요.
    (김태훈) : 제가 집 앞으로 갈게요.
    한서연 : 오시면 ....
    (김태훈) : 저녁만 먹을게요. 도착해서 전화 드릴게요.


    75. 한서연 동네 중국집 문 앞 (저녁)

    보행도로 길을 따라 상가들이 즐비하게 있다.
    중국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과일 파는 트럭이 있다.
    중국집 문에서 정장을 입은 김태훈이 나온다.
    조금 후에 라운드 셔츠와 츄리닝 바지를 입은 한서연이 지갑을 들고 나온다.

    김태훈 : 잘 먹었습니다.
    한서연 : 후식은 뭘 사 드릴까요?

    김태훈이 주위를 둘러본다.

    김태훈 : 여기 좋은 곳이 있나요?
    한서연 : 기다리세요.

    한서연은 과일 트럭으로 가서 아저씨와 얘기 한다.
    어느새 한서연 손에 과도가 들려 있고 사과를 들고 깎는다.
    김태훈은 한서연에게 간다. 한서연은 과일을 잘 깎는다.


    76. 놀이터 (저녁)

    한서연과 김태훈이 벤치에 앉아있다.
    한서연은 한쪽 손에 빈 일회용 접시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사과를 먹고 있다.
    한서연은 집에서 손을 씻었지만, 여전히 손은 형형색색 이다.
    김태훈도 사과를 먹고 있다.

    한서연 : 들어가 볼게요.
    김태훈 : 네. 오늘은 서연씨 동네에서 대접을 받았으니, 이번에는 우리 동네에서 대접을 받으실 차례에요.
    한서연 : 네. 기대 할게요.

    두 사람은 일어난다. 한서연은 일회용 접시를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한서연 : 차는 어디에 두셨어요?
    김태훈 : 택시 타고 왔어요.
    한서연 : 택시 타는데 까지 안내를 해 드려야겠네요.

    한서연이 뒤 돌아 걸어가려고 하는데, 김태훈이 한서연의 손을 잡는다.
    놀라는 한서연. 김태훈을 본다.

    김태훈 : 손, 잡고 싶어서 차 안 타고 왔어요.

    한서연이 침을 삼킨다. 김태훈은 한서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김태훈이 한서연의 팔을 자기 쪽으로 당긴다. 한서연이 버틴다.
    한서연은 김태훈의 눈을 피한다. 김태훈이 한서연에게 다가가서 안는다.
    한서연은 차렷 자세로 뻣뻣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있다.
    김태훈이 한서연을 놓는다. 한서연이 김태훈을 본다. 김태훈도 한서연을 본다.
    한서연의 표정이 굳어있다. 부드러웠던 김태훈의 표정이 괸한짓을 했다는 표정으로 바뀐다.
    땅을 보는 한서연.

    한서연 : 택시 타시려면 이쪽으로 가셔야 해요.

    한서연이 뒤 돌아서 간다.

    김태훈 : 서연씨?

    한서연이 선다. 김태훈을 본다. 두 사람은 다섯 걸음 떨어져 서로를 본다.

    김태훈 : 제가 서연씨를 안은 게 잘못인가요?
    한서연 : 아니에요.
    김태훈 : 그런데 왜, 제가, 죄 지은 기분이 들까요?

    한서연이 가만히 있다.

    김태훈 : 그렇게 있지만 말고 말을 해 보세요. 제가 싫은 가요?

    한서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김태훈 : 제가 좋은가요?

    한서연이 말이 없다. 몸짓도 없다.
    김태훈은 한서연의 무반응에 눈빛만 날카로워 진다.

    한서연 : 태훈씨 마음을 머리로는 받아 들여 지는데, 몸은 거부를 해요.
    김태훈 : 결벽증 있으세요?

    한서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한서연 : 문제는 저에게 있어요. 그 문제를 태훈씨 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기 위한 용기가 저에게는 아직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화내지 마세요.
    김태훈 : 얘기 해 보세요. 함께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 봐야 알잖아요.

    생각하는 한서연.
    한서연이 김태훈의 얼굴을 본다. 눈, 코, 입, 머리, 다시 눈.

    한서연 : 저 결혼 했었어요.

    김태훈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한서연은 차분하고 정확하게 말을 한다.

    한서연 : 5년 전에 같은 경찰서에 있는 강력계 선배 하고 결혼 했어요. 아기는 없었고요. 이혼으로 그 사람과 헤어진 것이 아니라, 사고로 죽었어요. 미망인 된지는 2년 됐어요. 이게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에요.

    김태훈의 시선은 땅으로 가 있고, 한서연의 시선은 김태훈에게 가 있다.

    한서연 : 태훈씨?

    김태훈은 대답도 움직임도 없다.

    한서연 : 저는 태훈씨를 선택할 용기가 없어요. 선택할 용기는 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태훈씨에게 있어요.

    역시 어떤 말도 없는 김태훈. 기다리고 있는 한서연.

    한서연 : 안녕히 가세요.


    77. 한서연 원룸 (한밤중)

    컴퓨터 저장키를 누르고 한서연은 거실 정리를 한다.
    사진은 사진끼리, 그림은 그림끼리, 그림재료는 재료끼리 모아서 치운다.
    깨끗해진 거실. 한서연은 눕는다. 잠을 잔다.


    78. 송파서 강력계 (점심)

    한서연이 서류철을 들고 강력계로 들어온다.
    조각칠을 찾는다. 강력계 내에 아무도 없다. 데스크 옆 보드판을 본다.
    ‘1반 사격’이라 쓰여 있다.


    79. 경찰 특공 훈련장 (오후)

    맑은 하늘. 바람도 없다. 너무 더워서 새소리도 없다.
    파란 하늘, 초록나무 그리고 총성만 있다. ‘탕 탕 탕 탕 탕 탕’



    80. 경찰 특공 사격장 안 (오후)

    문대현이 사격을 한다. ‘탕 탕 탕 탕 탕 탕 ’ 그 뒤로 1반 반장과 조각칠이 보인다.
    조각칠 앞 테이블에는 권총과 총알 6발 그리고 탄피들이 있다.
    조각칠은 권총을 보고 있다. 손을 뻗어 총구를 자기 방향으로 놓는다.
    문대현이 나오고, 1반 반장이 사격 하는 곳으로 간다.
    조각칠은 총알 하나를 집는다. 총알을 내려놓고 권총을 집는다.
    탄창을 열고 총알을 하나씩 하나씩 넣는다. ‘ 탕 탕 탕 탕 탕 탕’
    1반 반장 사격 소리 들린다. 조각칠은 권총을 테이블에 놓는다.
    또 살짝 총구 방향을 자기 쪽으로 놓는다. 총구를 본다.
    1반 반장이 자리로 온다. 조각칠이 권총을 들고 일어난다.
    사격 하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권총을 든 오른 손을 몸에 붙이고
    총구를 비스듬히 심장 쪽으로 맞춘다. 사격 하는 곳에 선 조각칠.
    콧바람 소리가 격하게 난다. 타겟을 응시하고 있는 눈. 심장을 향한 총구.
    조각칠의 콧바람 소리가 격하게 난다.

    반장 : 그 정도면 됐다.

    조각칠은 가만히 있다.

    반장 : 감찰주임이, 너 , 사격장 데리고 가지 말라 그러더라. 내 새끼는 내가 아니까 신경 끄라 그랬다. 각칠아, 빨리 쏘고 집에 가자.


    81. 송파서 강력계 입구 (점심)

    한서연이 서류철을 들고 강력계로 온다. 문 앞에서 1반 반장과 마주친다.

    한서연 : 안녕하세요.
    반장 : 어! 어쩐 일이야?
    한서연 : 각칠씨 있나요?
    반장 : 각칠이 년차 냈어. 월요일에 와.
    한서연 : 그렇군요.
    반장 : 왜?
    한서연 : 사고 차량 때문에요. 이것 좀 주려고요.
    반장 : 아! 이 새끼 구라에 당했네. 월요일에 출근해서 와.
    한서연 : 네.


    82. 조각칠 아파트 주차장 (오후)

    무더운 날씨.
    조각칠이 차문 앞에 서서 길을 본다.
    차 열쇠가 손에 들려 있다. 조각칠은 걸어간다.
    다시 돌아오는 조각칠. 차문 앞에 멍 하니 서 있다.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차를 타고 간다.


    83. 송파서 교통계 탈의실 (저녁)

    한서연과 임순경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임순경 휴대폰이 울린다.

    임순경 : 어.
    (친구) : 뭐해?
    임순경 : 퇴근 하는 중이야.
    (친구) : 나 극장 앞 인데 몇 시 표를 살까?
    임순경 : 밥 먹고 나면 8시 정도 되지 않을까? 8시에서 9시 사이에 상영 하는 걸로 보자.
    (친구) : 표는 내가 산다?!
    임순경 : 알았어. 밥 살게.
    (친구) : 빨리 와.

    임순경이 휴대폰을 닫는다. 한서연은 옷을 다 갈아입었다.

    한서연 : 영화 보러 가?
    임순경 : 네. 한경장님은 어디 안가세요?
    한서연 :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어디 갈지 생각 해 봐야지. 먼저 갈게.

    한서연이 가방을 메고 나간다.


    84. 시내버스 안 (저녁)

    한서연이 가방을 메고 버스에 서 있다.
    자가용 한 대가 한서연이 서 있는 창가 옆에 선다.
    한서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자가용으로 간다. 자가용 운전석 창문이 내려온다.
    젊은 남자 운전수의 머리가 창밖으로 나온다. 가래침을 바닥에 뱉는다.
    머리는 다시 들어가고 자가용은 출발한다.
    버스도 출발한다. 한서연은 그 차에서 시선을 띠지 않는다.
    자가용은 우회전을 한다. 올림픽 공원 입구가 보인다.


    85. 올림픽 공원 안 (저녁)

    한서연이 공원길을 걷고 있다. 갑자기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한서연은 함성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간다.


    86. 올림픽 공원 내 경륜장 입구 (저녁)

    한서연은 입구에서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 표정이 굳어 있다.
    한서연은 입구 안으로 들어간다. 머리를 갸우뚱 하는 한서연.
    조각칠이 걸어 나오고 있다. 한눈팔고 나오던 조각칠이 한서연을 본다.
    놀라는 조각칠.

    한서연 : 년차 냈다고 들었어요.
    조각칠 : 교통 지원 나오신 거예요?
    한서연 : 퇴근 했어요. 버스 타고 가는데, 공원입구에서 차 창문을 열고 운전수가 가래침을 뱉잖아요. 잡으러 왔죠.
    조각칠 : 잡았어요?
    한서연 : 가족끼리 놀러 왔나 봐요. 유모차 밀고 가 길래 봐 줬어요.
    조각칠 : 여기까지 꽤 먼데 어떻게 온 거에요?
    한서연 : 갈 곳도 없고, 집에 가긴 싫고, 에잇, 공원이나 구경하자 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소매치기 단속 나온 거예요?

    조각칠은 말이 없다.
    종소리, 방송 소리, 함성 소리 들린다.

    한서연 : 잃으셨어요?
    조각칠 : 안 했어요. 경륜 볼 거예요?
    한서연 : 참, 소나타 차량 사건 때문에 할 얘기가 있어서 강력계에 갔었어요.
    조각칠 : 조용한 곳으로 갈까요?
    한서연 : 네.


    87. 올림픽 공원 내 경륜장 주차장 (저녁)

    차들이 많이 주차 해 있다.
    조각칠과 한서연이 차에 앉아있다. 조각칠이 차를 출발 하려 한다.

    한서연 : 아! 야구 보러 가요.
    조각칠 : 건너 야구장이요?
    한서연 : 네. 저녁을 사서 야구 보면서 얘기해도 괜찮죠?
    조각칠 : 어디로 갈까요?
    한서연 : 먼저, 치킨 사러 가요.

    차가 출발한다.


    88. 잠실야구장 (밤)

    환하게 밝혀진 야구장. 외야 스탠드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우측 스탠드 중간에 한서연과 조각칠이 앉아있다.
    한서연과 조각칠 사이에는 KFC 치킨과 콜라 2개, 감자튀김이 있다.
    한서연은 햄버거를 먹으면서 야구를 본다.
    조각칠은 햄버거를 먹으면서 의자 밑에 있는 봉투를 본다.
    김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초코렛, 과자, 음료수, 포도.
    ‘따악’소리 들린다.

    한서연 : 야구장 와 봤어요?
    조각칠 : 거의 기억이 ....
    한서연 : 저는, 올해는 처음이에요.

    한서연이 햄버거를 다 먹고 콜라를 마신다.

    한서연 : 이런 거 좋아해요? 전, 좋아해요.
    조각칠 : 자주 먹어요?
    한서연 : 아뇨. 밥을 먹지요.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먹어요. 그럼 정말 맛있어요.

    한서연이 가방에서 스케치북, 사진첩, 서류를 꺼낸다.

    한서연 : 사고 난 소나타 차를 봤는데요.

    한서연이 서류를 준다.

    한서연 : 차종은 모르겠어요.

    한서연은 소나타의 운전석문과 뒷문 중간에 있는 차체 바닥 사진과
    검정색 바탕에 여러 가지 색을 덧칠한 스케치북 한 장을 펼쳐서 앞자리에 걸어 놓는다.

    한서연 : 여기 사진을 보면 바닥이 긁혀 있죠. 차가 구루더라도 이 부분은 긁힐 수가 없는데, 칠이 묻어 있죠.

    한서연이 스케치북을 가리킨다.

    한서연 : 비슷한 색이라도 찾으려고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쇠 하고 종이 하고 틀리고, 칠 하는 방식, 재료재질이 틀리니까, 그리고 열 이라는 것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는,

    ‘따악’소리 들린다. 함성소리 들린다. 한서연이 좌익수 쪽을 본다.
    조각칠이 한서연을 보고, 한서연이 보는 쪽을 본다. 타자가 2루로 뛰고 있다.
    한서연 : 아예 모르겠어요. 혹시 열 반응에 대해서 아세요?

    조각칠 : 몰라요.

    조각칠이 서류를 넘겨본다.

    조각칠 : 외제차는 왜요?
    한서연 : 어떤 차는 어느 정도의 속도까지 가면 차체가 약간 가라앉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진짜에요?
    조각칠 : 타 본적이 없어요.

    ‘딱’소리 들린다. 한서연이 운동장을 본다. 조각칠도 따라서 운동장을 본다.
    타자가 번트를 하고 1루로 뛴다. 2루 주자는 3루로 뛴다. 한서연은 다시 조각칠을 본다.

    한서연 : 사고 난 장소에 과속 카메라가 있더라고요. 속도를 급격히 줄이다가 도주 차량이랑 부디 쳤을 때 도주 차량 차체가 더 낮아 밑으로 들어간 거 같아요. 차체 높이는 거의 비슷하니까, 스포츠카나 튜닝한 차량 일거라 생각이 들어요. 튜닝을 했다면 그런 모양이 아닐까? 하고 그린 거예요. 거기 있는 것들이 관련된 사이트 하고 차종별 차체 높이, 업소들이에요.

    조각칠이 스케치북을 잡는다. ‘따악’소리 들린다.
    한서연이 본다. 우익수가 공을 잡는다.
    한서연은 김밥과 유부초밥을 뜯어 치킨 옆에 놓고 먹는다.
    조각칠이 스케치북을 한장 한장 넘겨본다.
    사고 난 차의 전체 그림, 찌그러진 부분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서연 : 드세요.

    조각칠이 김밥을 집어 먹는다. 둘은 사진첩을 본다. 그림과 똑같은 사진들 이다.
    ‘따악’소리 들린다. 한서연이 유격수를 본다. 조각칠은 방향을 찾지 못한다.
    한서연이 보는 곳을 본다. 유격수가 공을 잡아서 1루로 던진다. 조각칠이 한서연을 본다.

    조각칠 : 사진만 있어도 되지 않나요?
    한서연 : 상대 차량이 있으면 맞아요. 헌데, 상대 차량을 찾아야 하니까, 그림을 그려 나가다 보면 무엇이 변화를 주었는지 상상 할 수 있게 해 줘요. 직접 해 보면 좋겠지만, 답답한 민원실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조각칠은 소나타의 전체 사진과 전체 그림을 앞자리에 걸어 놓고 보고 있다.

    조각칠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서연 : 정보과에 있을 때, 중요한 사진을 찍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못 알아보겠더라고요. 수사용 디카가 한계가 있잖아요. 국과수에 보내려고 하는데, 영철 선배가 ‘뭐해?’하더라고요. ‘이놈의 카메라 하나 살까?’했더니, ‘가자’하고 온 곳이 야구장 이었어요. 음식을 잔득 사서 야구는 안 보고 먹기만 하는 거예요. ‘따악’소리 나면, 우익수, 1루, 3루 파울만 하는 거예요. 보면, 공이 그 근처에 있어요. 영철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형사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보이지 않는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알아내는 가’였대요. 보이는 것은 잡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보려고 하다가 보면 놓친대요. 그래서 청력 키우려고 야구장엘 오게 됐대요. 정보과는 위치 선정이 중요하다면서, 야구장 안에서 한 사람을 정해 놓고 몰래 가까이 가서 찍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고 했어요. 시간만 나면 둘이서 여기 왔었어요. 사건 얘기, 결혼 얘기, 옛날 얘기, 이런 저런 얘기 하면서 먹고,

    한서연이 외야 관중석 맨 위에 있는 통로를 가리킨다.

    한서연 : 영철 선배는 저 위에서 뛰고, 저는 야구장에서 몰래 사진 찍는 연습을 했어요.
    조각칠 : 뭐든 했군요. 8월 25일이 영철이형 생일 이죠.
    한서연 : 어떻게 아셨어요?
    조각칠 : 주임님 달력에서 봤어요.
    한서연 : 그렇군요.
    조각칠 : 영철이 형이 마약 운반책 검거 지원 나왔을 때가 있었잖아요. 문 밖에서 가만히 있다가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이 형광등 덮개를 여는 거였어요. 그 안에 마약이 펼쳐 있었어요. 심문 과정 없이 바로 연행 했어요.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어요. 난, 내가 영철이형 보다 못 하다고 생각 하지 않았거든요. 내가 틀렸더라고요. 그 날 이후 이 인간 내가 꼭 잡겠다고 마음먹었죠. 그 전에는 내가 버릇없어서 형한테 인사 안 했고 그 이후로는 오기로 안 했어요.
    한서연 : 집에서 동료들 얘기를 안 했어요. 좋다, 나쁘다 도 없었어요. 지원 갔다 오고 나서 각칠씨 얘기는 했어요. 각칠씨 고졸이라고 자기도 고졸이라고, 그 날 신났었어요.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좋대요.

    한서연이 가방을 뒤진다. 가방을 다시 자리에 놓는다.

    조각칠 : 뭐 찾아요?
    한서연 : 담배가 없어요.

    야구를 보는 두 사람. 한서연이 조각칠은 본다.

    한서연 : 담배 가지고 계시죠?

    한서연이 손을 내민다.

    한서연 : 그 날, 영철 선배한테 담배 얘기도 들었어요. 선배가 각칠씨에게 담배 좀 달라고 했는데, 이건 피우는 거 아니라고 아내 하고 약속한 담배라고. 저도 보여 주세요.

    조각칠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준다. 한서연이 뚜껑을 연다.
    ‘나 죽으면 피워’란 글씨를 본다.
    한서연은 담배 한 개를 뺀다. 그리고 조각칠에게 담배 갑을 준다.
    한서연은 그 손을 내밀고 있다.
    조각칠은 담배 갑을 쥐고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내 준다.
    한서연은 오른손엔 담배를 왼손에는 라이타를 쥐고 있다.

    한서연 : 영철 선배가 각칠씨 담배 얘기하고 나서, 약속 하나 하자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바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거래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은 지켜줄 수 있지만, 자기가 죽으면 못 지켜 준다고. 그땐, 자기를 잊고 좋은 사람을 만나래요. 내가 죽으면 자긴 그렇게 꼭 할 거라고 하면서, 약속 꼭 지키래요. 바보 같이 약속 해 버렸어요. 지금 너무 담배가 피고 싶어요.

    한서연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를 피우는 한서연.

    조각칠 : 내일이 아내 기일이에요.
    한서연 : 저는 1년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 생각 했는데, 그 다음 해에는 더 길어 졌어요.
    조각칠 : 잊을 수 있을까요?
    한서연 : 잘 안돼요.

    두 사람은 야구를 본다.

    한서연 : 추억은 생각나도 괜찮은데, 보고 싶은 건 못 참겠어요.

    조각칠이 담배 뚜껑을 연다. 정 가운데 담배가 빠진 자리를 보고 있다.

    조각칠 : 내가 경찰이 된 건 단순해요. 약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였어요. 지금은 왜 하는지, 계속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서연 : 잘못된 일에 간섭 할 수 있어서, 전, 이일을 해요. 누가 봐도 저 사람이 잘못 해서 ‘너 가 잘못 했어’라고 하면,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잖아요. 영철 선배가 ‘넌 경찰 왜 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오래돼서 기억나지 않아. 해야 하는 일이 돼 버렸어.’라고 했더니, 그럼, 안 된대요.‘분명하지 않으면 그만 두던가, 재미없어진다’고 했어요. 시간이 흐르니까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누가 물어 보더라도 이일을 왜 하는지 분명히 얘기 할 수 있게 할 거에요.

    한서연이 조각칠에게 라이타를 준다.

    한서연 : 그 담배 피우던가, 버리던가 하세요. 담배는 그냥 담배일 뿐, 당신의 아내가 될 수는 없어요. 내 건강을 위해서 끊던가, 피우던가 하세요.


    89. 송파서 강력계 (저녁)

    1반 반장, 조각칠, 문대현이 앉아있다. 그들 손에는 한서연이 만든 서류가 들려있다.

    반장 : 이제 다 된 거지. 스포츠카 사람들 하고 튜닝 전문가들 연락 됐고. 이번 주 안에 끝내자. 저녁 먹고 출발 해.
    조각칠 : 대현아, 스포츠카 해. 튜닝 내가 할게.
    문대현 : 갑시다.
    조각칠 : 퇴근 시간이라 길 막혀서 먼저 출발 할게.


    90. 송파서 주차장 벽길 (저녁)

    조각칠이 쇠기둥으로 연결된 담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담 건너 길에서 여자의 거친 목소리와 남자의 애걸 하는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조각칠은 들으면서 걸어간다.

    (튼튼 여자) : 미친 놈. 내가 준다.
    (마른 남자) : 잠깐만.
    (튼튼 여자) : 이 팔 안 놔?
    (마른 남자) :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
    (튼튼 여자) : 이 팔 놓으라고 했지?

    조각칠 시야에 싸우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50대 중반의 작고 마른 남자, 40대 후반의 왼팔에 기브스를 한 크고 튼튼한 여자,
    40대 후반의 긴 치마를 입은 평범한 여자가 보인다.
    마른 남자는 기브스를 한 팔에서 손을 뺀다.

    튼튼 여자 : 병신 새끼. 오죽 못났으면 마누라가 돈 찾으러 오냐.
    내가 쪽팔려서, 이런 일로 경찰서 까지 오고 ....

    조각칠은 그들을 담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다.
    튼튼한 여자가 뒤 돌아서 가려고 한다.

    마른 남자 : 안 줘도 돼.

    마른 남자가 튼튼한 여자의 기브스를 한 팔을 다시 잡는다.
    튼튼한 여자는 팔을 확 뿌리치면서 뒤 돌아 서서 마른 남자의 따귀를 때린다.
    마른 남자 뒤에 서 있던 긴 치마를 입은 여자 얼굴이 더욱 구겨진다.

    튼튼 여자 : 팔 잡지 말라니까? 야 이 병신 새끼야, 마누라 하나 잡지 못해서 마누라가 돈 찾으러 와? 내가 너한테 돈 달라 그랬어? 니가 줬잖아! 술만 쳐 먹고 가지, 쥐뿔도 없는 새끼가 팁은 .... 씨. 내일 와. 돈 다시 돌려줄 테니까.
    마른 남자 : 김마담. 이러지마. 내가 용서 빌게.
    튼튼 여자 : 마누라한테나 잘해라. 이 새끼야. 내가 미쳤지. 저런 놈 돈을 받았으니 ...

    마른 남자가 튼튼한 여자의 오른손을 잡는다.

    튼튼 여자 : 이 새끼가 아직 덜 맞았나?

    튼튼한 여자가 손을 빼면서 마른 남자의 따귀를 또 때린다. 뒤로 물러서는 마른 남자.
    튼튼한 여자는 따라가면서 때리려 한다. 이것을 보고 있던 조각칠이 소리치려 하는데,

    (젊은 여자) : 아줌마!

    쇠봉을 고정 시키는 벽돌기둥에서,
    가방을 메고 사복을 입은 한서연이 긴 치마를 입은 여자 옆으로 온다.
    한서연은 화장도 안 하고, 얼굴에 혈색도 없다.

    한서연 : 아까부터 듣고 있었는데, 너무 하시네요. 이 아저씨가 잘못 했지만, 부인이 바로 옆에 있는데, 같은 여자로써, 자기 남편이 맞고 있는 거 보면 속상 하지 않을까요? 화가 나서 욕하는 거 까지는 인정 하겠어요. 하지만, 부인이 보고 있는데서 꼭 때려야겠어요? 너무 하시잖아요!

    온통 얼굴이 찌그러져 있던 긴 치마를 입은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치마 여자 : 내 남편이 맞을 짖을 했지만, 어느 여자가 자기 남편 맞는 걸 보고 싶겠어요? 왜 때려요? 당신도 피하던가 같이 때려! 왜 바보 같이 맞고만 있어?
    튼튼 여자 : 알았으니까 부부 싸움은 집에 가서 해.
    한서연 : 사과 하세요. 이 아주머니에게 사과 하세요.

    튼튼한 여자는 무시하고 뒤 돌아 가려 한다.
    한서연이 튼튼한 여자 앞에 선다.

    한서연 : 저 아주머니에게 사과 하세요.
    튼튼 여자 : 참 ....

    튼튼한 여자가 옆으로 가려고 한다. 한서연이 앞을 막는다.

    튼튼 여자 : 뭐야 너?

    한서연은 말도 않고 튼튼한 여자를 똑바로 보고 있다.
    조각칠이 쇠 봉 사이로 신분증을 꺼낸다.

    조각칠 : 아줌마!

    한서연과 주위 사람 모두 바라본다. 쇠 봉 사이로 경찰 신분증이 보인다.

    조각칠 : 아줌마, 그 분도 우리서 직원이야. 나도 아줌마가 때리는 거 봤어. 폭행은 어렵지만 벌금은 가능해. 다시 들어올래?
    한서연 : 사과 하세요.

    튼튼한 여자가 긴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본다.

    튼튼 여자 : 미안 합니다.

    튼튼한 여자가 뒤 돌아서 간다. 한서연이 자리를 비켜준다.
    긴 치마를 입은 여자도 뒤 돌아간다. 마른 남자도 부인을 따라간다.

    한서연 : 퇴근 하세요?
    조각칠 : 튜닝 전문으로 하는 곳 탐문 가요.
    한서연 : 저녁은 요?
    조각칠 : 거기 가서 먹어야죠. 어디 가세요?
    한서연 : 집에 가야죠. 주말 내내 잠만 자느라 집 청소도 빨래도 못 했어요. 오늘 가서 다 해야죠.
    조각칠 : 미안해요.

    한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조각칠 목소리가 작아진다.

    조각칠 : 영철이형 장례식날 서연씨를 보고 싫었어요. 그날 이후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는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예 얼굴 보기도 싫었어요. 근데, 아내와 아기를 잃고 나니, 내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게 돼버렸어요. 미안해요. 난 당신이 못된 여자라고 생각 했어요. 전에는 당신이 너무 잔인해서 피했고, 다음에는 당신을 오해한 게 미안해서 피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조각칠이 한서연에게 인사를 한다.

    한서연 : 말해줘서 고마워요.

    눈가가 빨게 져 있는 한서연.
    한서연이 담장 가까이 와서 담장 너머로 조각칠의 신발을 본다.
    그리고 다시 조각칠을 본다. 한서연이 웃는다.

    한서연 : 좋은 신 사세요.


    (끝)
    정순신

    정순신

    1972년 충남 대천 출생

    2002년 용인대 연극영화과 졸업

  • [ 등장인물 ]

    한서연 : 33세, 여자, 교통계 (경장)
    조각칠 : 33세, 남자, 강력계 1반 (경장)

    송파서 직원들

    감찰주임 : 40대후반, 남자, 감찰반 (경위)
    반장 : 40대중반, 남자, 강력계 1반 (경사)
    문대현 : 29세, 남자, 강력계 1반 (순경)
    임순경 : 27세, 여자, 교통계 (순경)
    3반반장 : 40대중반, 남자, 강력계 3반 (경사)
    형사계장 : 40대후반, 남자, 형사계 (경위)
    교통계장 : 40대초반, 남자, 교통계 (경사)
    데스크직원 : 40대초반, 남자, 강력계 (경사)

    그 외 인물들

    김태훈 : 37세, 남자, 은행원 (부지점장)
    이로운 : 중3학년, 여자
    미경 : 33세, 여자, 회사원
    근혜 : 33세, 여자, 치과의사
    출입기자 : 33세, 남자

    때린학생 : 고1학년 / 중년남자 : 40대중반
    맞은학생 : 고1학년 / 사모님 : 40대초반
    여자민원인 : 20대초반 / 영철 : 34세
    김인순 : 38세 / 임신한여자 : 28세
    택시기사 : 50대초반 / 택시손님 : 50대초반
    경주권남자 : 50대초반 / 판매원 : 20대후반
    여직원 : 30대중반 / 친구 : 27세
    여의사 : 40대초반 / 간호사 : 20대중반

    도로학생1 : 고3학년 / 도로학생2 : 고3학년 / 도로학생3 : 고3학년
    튼튼여자 : 40대후반 / 마른남자 : 50대초반 / 치마여자 : 40대후반
    여주인 : 40대초반 / 회사동료 : 30대후반 / 직장상사 : 50대중반
    생선아줌마 : 50대후반 / 과일아저씨 : 40대후반 / 형수 : 40대초반
    운전수 : 30대초반

    [ 줄거리 ]

    2005년 5월.
    정보과 경찰, 한서연은 강력계 선배 이자 남편인, 영철의 장례식을 치룬다.
    “약속 꼭 지켜야 해!” 란 남편과의 약속을 기억한다.

    2007년 7월.
    한서연은 교통계에서 일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민원 일을 보는 내근 근무자 이다.

    강력계에, 4년 전 모델의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가지고만 다니고,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고, 식사를 특이하게 하는 형사가 한명 있다.
    조각칠 이다.
    그는 1년 전에 아내와 아기를 사고로 잃는다. 그 이후로 그는 매우 형식적인 형사로 산다. 조각칠은 마약운반 공범을 잡기 위해서 3반 지원을 나가게 된다.
    공범은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방금 낳는다.
    조각칠은 산모를 병원에서 바로 경찰서로 연행을 한다.

    은행을 다니는 김태훈은, 한서연을 좋아한다.
    한서연은 이런 김태훈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지를 고민한다.
    김태훈은 점점 한서연에게 다가오고,
    한서연은 자기가 미망인 이란 걸, 말 할 때를 기다린다.

    서울 분당간 도로에서 소나타 전폭 사고로 40대 남자가 죽는다.
    경찰은 레이스 하다가 난 단순사고로 보는데, 사망자 아내는 타살이라고 조사를 의뢰한다. 조각칠은 사건을 맡게 되지만 사건에 의욕이 없다.
    아내와 아기를 잃은 후부터 조각칠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사는지 모른다.

    교통사고 담당이 아닌 한서연은, 퇴근 후, 독자적으로 소나타 사건을 연구하고 조사한다.

    아내와 아기 기일 9일 전.
    조각칠은 가지고 다니던 담배를 피우려고 뚜껑을 연다.
    거기엔 “나 죽으면 피워” 란 아내의 글씨가 있다.
    아내와 약속한 담배. 조각칠은 아내의 죽음을 인정 하지 못한다.

    김태훈은 휴일날, 한서연 동네를 간다. 저녁을 먹고 놀이터에 앉는 두 사람.
    김태훈이 한서연에게 더욱 다가간다. 한서연은 말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김태훈에게 결혼한 사실을 말한다.

    아내와 아기 기일 2일 전.
    조각칠은 사격훈련을 한다. 조각칠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
    10년간 함께 지낸 반장이 조각칠은 달랜다.

    한서연은 독자적으로 한 소나타 사건 조서를 가지고 조각칠을 찾아간다.
    조각칠은 년차를 냈다. 퇴근 후 갈 곳이 없는 한서연은 우연히 경륜장까지 온다.
    그리고 조각칠을 만난다. 두 사람은 야구장을 간다. 음식을 사서 야구를 보는 두 사람.
    한서연은 조각칠에게 소나타 사건 조서를 준다.
    조각칠은 한서연에게 내일이 아내 기일 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기 심정을 토해 낸다.

    2년 전, 남편을 잃은 아내.
    1년 전, 아내와 아기를 잃은 남편.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두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 하고 격려 한다.
    정순신

    정순신

    1972년 충남 대천 출생

    2002년 용인대 연극영화과 졸업

  • 이승재 LJ필름 대표

    시나리오 부문은 예년에 비해 응모작 편수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작품 수준은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공모에는 스릴러나 특정 장르영화를 흉내 내는 작품들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전체 80여 편 중 과반수가 보편적인 드라마를 다루는 내용이었다. 최근 한국영화가 보다 다양한 장르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기준으로 최종 4편을 후보로 선정했다. 이중 ‘쌔드무비 1969’(김현식)는 맹목적인 남북대립 시절에 횡횡하던 간첩색출을 둘러싼 사회적 강박관념을 코믹하게 잘 포착했으나, 스토리 디자인의 안정성이 매우 부족해서 아쉬웠다. ‘대평리 방앗간에는 참새가 없다’(박연혁)는 미모의 여성이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군상의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리는 구조는 흥미로웠으나, 이야기 전개가 평이했다. ‘친애하는 당신’(김경모)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인용하는 프롤로그에서 보이듯 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태도로 포르노그라피에 접근했으나, 작가의 지나친 자의식이 스토리와 캐릭터를 압도해버렸다.

    ‘약속’(정순신)은 응모작 중에서 단연 완성도가 높아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교통과에 근무하는 여자경찰과 강력계의 남자형사를 두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두 사람의 아픔과 갈등을 긴 시간에 걸쳐 차분한 속도로 섬세하게 묘사하는 독창성이 돋보였다. 경찰이 주인공이면서도 흔히 보아온 장르영화가 아니라 일상적인 캐릭터 드라마로 끌어간 점이 흥미로웠다. 다소 밋밋해 보이는 대사와 인물의 성격을 좀더 가공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정순신

    정순신

    1972년 충남 대천 출생

    2002년 용인대 연극영화과 졸업

    우체국에서 등기를 보내는 순간, 정성을 다 해서 쓴 글이 내 손을 떠나는 그 순간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머리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 불안감을 빨리 잊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볼까? TV를 볼까? 누군가를 만나서 지칠 때까지 수다를 떨까? 이 불안감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글이 너무 쓰고 싶은데…’ 그 순간 할 일이 생겼습니다.

    다음날부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이 불안감은 도서관까지 따라 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 불안감은 소리도 없이 가 버렸습니다. 갑자기 이 불안감이 다시 저를 찾아 왔을 땐 ‘당선’을 친구로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은 다시 새로운 시나리오의 인물에 빠져 있습니다. 즐겁습니다. 제가 글 쓰는 즐거움에 더 빠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동아일보사,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명준이 형, 한경국 선배, 김진돈 선배, 용구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글 쓰는 즐거움에 빠지도록 지켜주신, 지켜주실 가족. 너무 고맙습니다.
  • 작품전문
  • 시놉시스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