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집으로 〈가족의 탄생〉

by  김남석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가족의 탄생〉은 교묘한 로드무비이다. 채연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점은 더욱 명확하다. 채연은 어려서 ‘고무신’을 찾아 집을 나왔다. 어린 채연이 당도한 집은 춘천의 어느 ‘골목집’이다. 대문을 열면 마당까지 긴 통로가 뻗어 있는 작은 집. 채연은 이곳에서 머물기와 떠나기를 반복한다.

    경석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아이였다.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의 아버지였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여자였다. 그나마 어머니가 죽자 그는 피가 반만 섞인 누나의 손에 자라야 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적대시하던 누나. 때로는 정이 들어 보내기가 싫어지기도 했던 누나이지만, 처음부터 다정하거나 살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더구나 누나의 삶도 어머니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녀들의 삶에 볼만을 품고 자랐던 경석은, 자신의 애인 채연에게서 동일한 삶의 방식을 발견하자 당혹해한다.

    경석이 채연과 함께 하는 여행, 즉 귀가 길은 채연의 삶을 용인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이에서 고민하는 도정이다. 그 도정의 끝에서 경석은 ‘미라’와 고무신이 만든 이상한 삶의 방식을 구경한다.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집. 그녀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경석은 “어머니는 헤픈 여자가 아니라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선경의 논리를 되새긴다. 과연 누나나 엄마의 삶이 헤픈 것인가? 아니면 그녀들의 마음이 지향한 아름다운 결과인가?


    경석이 채연의 집으로 진입하는 길은,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삶을 살피는 시각과 어떤 측면에서 동일하다. 긍정적 측면에서 경석은 세파로부터 채연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행동했다. 하지만 어느새 경석은 채연을 다른 남자로부터, 아니 타인들로부터 분리시켜, 자신의 울타리에 가두고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를 막고 있었다. 경석이 생각했던 ‘집’은 집주인의 의지에 의해 동거인을 가두는 집에 불과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채연 가족의 비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 영화는 채연 가족의 구성원들을 통해 남성적 소유욕이나 폭력적 시선을 일깨우고자 했다. 작가는 여성들로만 구성된, 그것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명의 엄마와 한 명의 딸을 통해, 이 사회가 오랫동안 독점적으로 정의했던 가족의 개념에 침착하게 도전했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집안의 이야기를 다룬 〈안토니오스 라인〉처럼, 이 영화는 대안 가족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미래에 꼭 있어야 할 것은 가족 구성원 간의 자율성이다. 특히 성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편협한 집착은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위협할 소지가 크다고 해야겠다. 경석의 시선을 다시 빌리면, 경석은 채연 가족의 불가사의한 결합을 확인하며 자신의 엄마와 누나가 쌓아 올렸던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경석은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란 비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상에 건설하려 했던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경석의 깨달음은 곧 이 영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 했음을 시사한다.

    영화의 엔딩에서 경석이 채연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경석은 어느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채연 가족의 일원이 되어버린 듯,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과 함께 또 하나의 대안가족을 이루었던 누나의 삶을 관조하게 된다.

    선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석의 마음을 통해, 이 영화가 경석의 마음속에 집을 지으려 한 영화임을 또한 시사한다. 경석은 선경과 함께 이루었던 집을 완성하기 위한 긴 여행을 한 것이고, 그 의미와 가치를 깨달음으로써 채연과 미래에 세울 가정의 설계도를 발견한 것이다. 경석이라는 남자에게도 이제는 여자들이 지은 집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김남석

    김남석

    1973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 김영진(영화평론가), 이상용(영화평론가)

    올해 응모작들은 전년도에 비해 상당한 교양과 이론적 식견을 갖춘 글이 많았다. 20,30대뿐만 아니라 다수의 40대 응모자들도 눈에 띄었다. 그만큼 영화비평의 저변이 넓어진 점을 짐작할 수 있어 반가웠다. 글의 대상이 된 영화들은 ‘괴물’ ‘왕의 남자’ ‘해변의 여인’ ‘시간’ ‘가족의 탄생’이 주를 이뤘다. 올해 100 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개봉됐지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작품은 되레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응모작들 상당수가 지젝과 들뢰즈의 이론에 기대어 있는 것도 영화비평의 화술들 역시 점점 협소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장문 비평의 경우 보통 수준 이상의 평론이 많았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드러내거나 안정된 문장의 호흡을 보여주는 것은 드물었다. 단평의 경우 정해진 매수를 지키지 않거나 용두사미로 끝나는 글들도 적지 않았다. 독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흡입력은 자기 생각에 매몰된 글의 호흡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에게도 자기 글을 이해시키려는 배려나 배짱 대신, 아카데미의 폐쇄성이나 자기도취의 한계를 어쩌지 못하는 글들은 아쉬움을 줬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은 송효정 씨의 ‘이상한 가족 수학’과 장민수 씨의 ‘경박한 관객들’이다. 송효정씨는 ‘가족의 탄생’을 탄력 있는 문체로 풀어냈고, 장민수씨는 홍상수 영화에 대해 관객성의 문제를 끌어들이면서 달리 보기를 시도했다. 결국 정확하게 자기 관점을 전달하는 장민수 씨의 평론을 높이 사기로 했다. 단평의 경우에도 장민수씨의 글이 더 돋보였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이상용 영화평론가
  • 김남석

    김남석

    1973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영화는 나에게 세상이었고, 만남이었고, 때로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였으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 중 하나이다. 그러던 지금, 이 길에 새로운 의미 한 겹을 덧씌우려 한다. 나는 영화(이론)를 깊이 공부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만을 위해 살겠다는 말도 함부로 못하겠다. 영화평론가가 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모르겠다. 다만 주어진 길을 덜 후회스럽게 걸어가고 싶다는 결심만 밝힐 수 있을 따름이다.

    신춘문예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하지만 정작 더 힘든 일은 그 다음이다. 지금까지는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제 세상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도 조금쯤은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발언을 해야 할 때도 올 것이다. 그 때마다 소신 있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내가 실망시켰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서연호 윤석달 송명희 선생님, 새로운 길을 열어 준 지인들,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준 사랑하는 이들과, 이 글에 대한 영감을 불어 넣어준 책들의 저자에게 감사한다. 그러고도 남은 기쁨이 있다면 서울에서 빈집을 지키고 계실 어머님께 모두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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