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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청산(靑山) 가자 -어머니에게

by  강석현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인물>
    아이, 여인(엄마), 도깨비1·2, 할미

    <무대>

    엄마와 아이가 살고있는 단칸 방(房).

    방구들 한쪽에는 보자기로 덮어놓은 밥상이 놓여져 있다.

    무대 오른쪽의 방벽엔 괘종시계가 걸려있고, 그 아래로 솜이불을 개어놓은 궤가 보인다.

    관객 쪽을 향한 정면의 벽에는 병풍이 세워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오래되어 낡은 4폭 짜리 병풍이다.

    (병풍의 그림은 각각 다음과 같다 -좌측부터 호랑이를 그린 민화와, 두 명의 도깨비가 그려져 있는 그림과, 대나무 숲의 밤 풍경화와, 마지막으로 삼신할미인 듯한 노파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막이 오르면-방에 엎드려 누워있는 아이.

    아이: (무서운 꿈을 꾸고있는지)엄마...엄마...엄마!(소리를 지르고 깨어난다)엄마?(주위를 둘러보면)

    텅 비고, 어두운 방안의 세계.

    아이: (몸을 움츠리고)엄만 왜 이렇게 늦지?(모로 누우며)엄마...빨리 와. 나 혼자 무서워. 심심해.(장난감 배를 손에 쥐고 움직인다)통-통-통-통. 통-통-통-통. 여긴 바다야. 넓은 바다야. (일어나)난 지금 배타고 엄마 찾으러 간다.(방안을 몇 바퀴 돌다가 멈추고)으응? 저기 섬이 보이네?

    통-통-통-통.(밥상 있는 곳까지 가서)나는 지금 섬에 도착했어.(장난감 배를 밥상에 올려놓는다)그런데?(주위를 살피고)여기는 어딘데 이렇게 조용하지?(낮은 목소리로)여보세요? 아무도 없어요?(사이)칫, 아무 대답도 없잖아. 아이, 배고파.(밥상 위에 덮어놓은 보자기를 치우고)맛있겠다.(침을 삼키며 수저를 든다)

    아이는 배가 상당히 고팠던지, 밥그릇을 금방 깨끗이 비워버린다.

    그러나 그것으론 양이 차지 않아 아이는 김치를 손으로 찢어,

    입에다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김치까지 다 먹어버린 아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보자기로 밥상을 덮는다, 다시 장난감 배를 갖고 논다.

    아이: (일어나 방안을 몇 바퀴 돌며)통-통-통. 나는 이 배의 선장이야. 통-통-통-통.(멈추면)아이, 어

    지러워라.(비틀대고)그런데 여긴 어디지? 왜 이렇게 조용해?(사이)아이, 기분 나빠. 꼭 뭐가 나 올 것만 같애.(뒷걸음친다)난 돌아갈래. 통-통-통-통.(다시 방안을 돈다)...(멈추어)여긴 또 어딜까? 왜 이렇게 깜깜하지? (사이)여보세요? 아무도 없어요?(사이)치, 모두 다 어디로 간 거야? 아, 생각났다!(손뼉을 치고)이렇게 깜깜한 걸 보면 여긴 아프리카야.(주위를 살피며)그런데? 원주민들은 왜 하나도 안보일까?(천장을 쳐다보며)이봐, 너희들. 모두 어디에 숨었니? 괜찮아. 해치지 않을게. 나하고 놀자.(사이)같이 놀재두.(사이)으응? 왜 대답이 없지? (중얼거리고)너희들 나하고 놀기 싫단 말이지? 흥! 그럼 나도 너희들하고 안 놀아, 뭐. 잘 있어. 난 도로간다.(방안을 돈다)통-통-통-통.(사이)...(멈추고)아이, 재미없어. 심심해.(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사이)...(괘종시계가 울린다)...(시계를 쳐다보고)그런데. 엄만 왜 이렇게 늦지?(사이)졸려.

    (방바닥에 눕는다)...(깊은 잠에 빠진다)

    병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대나무 그림을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도깨비 그림을 비추는 조명.

    도깨비1(소리): 녀석이 잠들었어.

    도깨비2(소리): 그래.

    도깨비1(소리): 답답한데. 우리 나가볼까?

    도깨비2(소리): 그럴까?

    도깨비1,2 방망이를 손에 들고 나타난다.

    도깨비1: 쉿, 조심.

    도깨비2: 조심.

    도깨비1: (아이를 바라보다)얘, 정말로 자냐?(발로 툭 차고)

    아이: ...,(꼼짝 않으면)

    도깨비1: 정말로 자나봐.

    도깨비2: 꼬마야.(귀를 잡아당기며)내 말 들리니?

    아이: ..,

    도깨비2: 꼬마가 깊이 잠들었군.

    도깨비1: 안심해도 되겠지?

    도깨비2: 그래.

    도깨비1: 난 온몸이 근질거려.

    도깨비2: 나도 그래.

    도깨비1: 저 좁은 병풍 속에 몇 백년을 갇혀 지냈더니.

    도깨비2: 온 몸이 다 쑤셔오지 뭐야.

    도깨비1: 너도 그렇지?

    도깨비2: 응, 그래.(생각난 듯)그런데?

    도깨비1: 그런데, 뭐?

    도깨비2: 이 집 아줌마는 오늘 어디 갔다고?

    도깨비1: 키키. 황부자집 부엌일 하러 갔지.

    도깨비2: 그래? 그거 잘됐군.

    도깨비1: 돌아오려면 한참이나 걸릴 거야.

    도깨비2: 그 아주머니는 도통 잠이 없어서 말야.

    도깨비1: 맞아. 우리가 저 병풍 속에서 빠져 나와 놀 틈이 없지.

    도깨비2: 그 아주머니는 매일 바느질, 물레질. 그리고 또 뭐지?

    도깨비1: 한숨질.

    도깨비2: 맞아. (한숨)매일 그렇게 한숨질이지.

    도깨비1: 그런데 이제부터 뭐하고 논다?

    도깨비2: 글쎄. 뭐하면서 놀아야 잘 놀았다고 할 수 있을까?(궁리를 하다가)...(잠든 아이의 얼굴에

    시선이 쏠리고)큭큭.(웃는다)

    도깨비1: (역시)킥킥. 그럼 너도?

    도깨비2: 그래,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도깨비1: 그럼. 어디 시작해볼까?

    도깨비2: 좋아.(방망이를 머리 위로 들고)붓나와라, 뚝딱!(바닥에 내리친다)

    도깨비1: (사이)...이상하다? 왜 여태 아무런 반응이 없지?

    도깨비2: 글쎄. 그 동안 사용을 안 했더니 이 방망이도 이젠 고물이 다 됐나?

    도깨비1: 에이, 설마? 조금 더 기다려 보자구.(천장 위를 쳐다보면)

    아이, 일어난다. 도깨비들의 옆으로 가서 같이 천장을 본다.

    무대 위로 붓이 던져지면-

    도깨비2: 저기 있다!

    도깨비1: 어서 가져와.

    도깨비2: (붓을 가져와)자, 여기.(도깨비1에게 건네면)

    아이: (곁에서)그게 뭐야?

    도깨비1: 응, 이거?

    도깨비2: 임마, 넌 붓도 모르니?(아이를 보고)으악!

    도깨비1: 꼬마다!(붓을 던지고)어서 도망가자!

    도깨비들, 병풍 뒤로 달아나면-

    아이: 가지 마.(쫓아가 도깨비1의 다리를 붙잡고)나하고 같이 놀자.

    도깨비1: 뭐? 같이 놀자구?

    아이: 응. 나 심심해.

    도깨비1: 꼬마야. 지금 한가하게 그런 농담할 때가 아니야.

    도깨비2: (병풍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그래.

    아이: 농담 아니란 말야. 난 심심해 죽겠단 말야. 그러니까 나하고 놀아 줘.

    도깨비1: 얘가 정말인가 보네.

    도깨비2: 그러게.

    아이: 안 그러면.

    도깨비2: 안 그러면 뭐 어쩔 건데?

    아이: 엄마한테 모두 이를 거야.(병풍을 가리키며)저기에 도깨비 있다고 엄마 오면 다 말할 거야.

    도깨비1: (심각해져)너는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냐?

    도깨비2: 글쎄. 그러면 안되지.

    도깨비1: 그냥 같이 놀아줄까? 우리도 오랜만에 바깥구경 하잖아.

    도깨비2: 그럼, 그럴까?

    도깨비1: 그러자.

    아이: 이제 나하고 노는 거지?

    도깨비1: 응. 방금 그러기로 결정했다.

    아이: 정말이지?

    도깨비2: 그래.

    아이: 도망가면 안돼.

    도깨비1: 넌 속고만 살았니? 놀아 줄 테니 이젠 고만 이것 좀 놓아주겠니?

    아이: 약속했다.(다리를 놓아준다)

    도깨비1: 휴, 백년 감수했네. 근데 꼬마야.

    아이: 왜?

    도깨비1: 너는 참 이상하다.

    아이: 뭐가?

    도깨비1: 애들은 우리 얼굴만 보면 기겁을 하고 놀라서 도망가는데 말야.(도깨비2의 얼굴을 잡고)넌

    이 얼굴을 보고서도 무섭지 않니?

    아이: 아니.

    도깨비1: 그래?

    도깨비2: 거봐, 안 무섭다잖아.

    도깨비1: 그것 참 별일이네.(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이: (도깨비1의 손을 잡아 흔들며)아이, 우리 빨리 놀아.

    도깨비1: 그러자. 그런데 뭐하면서 놀지?

    아이: 재미있는 얘기 해줘.

    도깨비1: 난 그런 거 모르는데.(도깨비2에게)넌 아는 것 있냐?

    도깨비2: 나도 없는데.

    아이: 그럼 뭐하지?

    도깨비1: 그럼, 우리 춤출까?

    도깨비2: 그러자!

    아이: 응, 좋아. 춤 춰.

    아이와 도깨비들, 춤을 추기 시작한다.(그러잖아도 몸이 근지럽던 도깨비와 몹시 심심했

    던 아이는 어울려서 한바탕 춤을 춘다.)

    병풍 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대나무 그림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호랑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순간, 방문 앞에 나타나는 그림자 하나!

    소리: 얘야.

    도깨비1:(놀라 멈추고)뭐, 뭐야?(도깨비2의 등뒤로 숨어)누가 왔지?

    도깨비2: 글쎄. 아주머니가 그새 돌아왔나?

    도깨비1: 뭐, 아주머니?

    도깨비2: 응.

    도깨비1: 그럼 큰일이잖아!

    도깨비2: 큰일이지.

    도깨비1: 그럼 뭐해? 빨랑 들어가야지!

    도깨비2: 그래야지.(먼저 뛰어간다)

    도깨비1, 뒤따라 서둘러 병풍 쪽으로 뛰어 들어간다.

    다시 방에 혼자 남은 아이.

    아이: 누, 누구야?(방문 앞에 다가가)밖에 누구야?

    소리: 나다.

    아이: 엄마?

    소리: 응, 그래.

    아이: 엄마구나!

    소리: 그래 어미다. 어서, 문을 열어주렴.

    아이: 응,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엄마.(걸쇠를 풀고 방문을 열면)

    머리수건을 쓰고 얼굴은 한쪽으로 돌린 채, 방문 앞에 서있는 여인.

    아이: 엄마.

    여인: 그래. 잘 놀았니?(방안으로 들어온다)

    아이: 아니. 심심해서 죽을 뻔했어.

    여인: 그래? 누구 찾아 온 사람은 없었고?

    아이: 없어. 그런데 무지 배고파, 밥부터 줘.

    여인: 밥?

    아이: 응. 빨리 엄마.

    여인: 그런데 어떡하지? 엄마가 오늘은 무척 피곤하구나. 그러니 오늘밤은 그냥 자렴.

    아이: 치, 그런 게 어딨어? 난 지금 무척 배고프단 말야. 그러니까 빨리 밥 줘. 밥 안 해주면 나

    또 엄마 말 안 듣는다. (여인의 한쪽 팔을 붙잡고)그래도 좋아? 싫지? 그러니까 빨리 밥해

    줘.(떼를 쓰면)

    여인: (놀라)아니, 얘가? 이거 얼른 치우지 못하겠니?(아이의 팔을 뿌리친다)

    아이: 엄마...?(뒤로 물러나면)

    여인:(너무했다 싶어)얘야, 그건 말이지.

    아이: 칫, 엄마 미워! (뒤돌아서 훌쩍훌쩍 운다)

    여인: 그렇다고 우니?

    아이: 몰라, 엄마 미워!

    여인: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아이: 몰라!

    여인: (아이를 달랠 방법을 생각하다가)...!(방바닥에 떨어진 붓을 발견하고)...(놀라)이 붓! (붓을 들

    고)이것 어디서 났지?

    아이: (뒤돌아 힐끔 보고)나도 몰라, 뭐. 안 가르쳐 줘.

    여인: (한참동안 붓을 바라보다가)...(부드럽게)배 고프댔지? 내 얼른 부엌에 가서 밥 해 가지고 오마.

    아이: 싫어, 먹기 싫단 말야!

    여인: 그래, 내가 잘못했다.

    아이: (못 이기는 척)정말...?

    여인: 그렇대두.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풀렴.

    아이: 히힛.(뒤돌아)메롱. 엄마, 나한테 또 속았지?

    여인: (정색하고)너 그럼?

    아이: 빨리 밥 줘, 엄마. 정말로 나 배고파 죽겠단 말야.

    여인: 나를 감쪽같이 속이다니! (노려보면)

    아이: 엄마.(여인의 한 팔을 잡고)빨리 바압...(계속 보채면)

    여인:(기겁을 하고)알았다. 알았으니, 제발 이 손은 놓거라.

    아이: 정말이지? 이번엔 진짜지?

    여인: 알았다.(옷매무새를 고치고)내 얼른 밥해 가지고 올 테니 넌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거라. 알

    았지?

    아이: 알았어 엄마. 난 꼼짝 말고 방에 있을 테니까 엄마는 빨리 부엌에 나가서 따뜻한 밥하고 맛있

    는 반찬도 만들어 줘.

    여인: 그래 알았다. 우선 이 밥상부터 치우고.(밥상을 들고)...(나가려다)참, 얘야.

    아이: 응?

    여인: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기 다만. 내가 부엌에 있는 사이에 말이다. 저 병풍에다 붓 같고 장난하

    면 안 된다. 알았지?

    아이: 붓?(병풍과 붓을 번갈아 바라보며)왜?

    여인: 그러면 큰일 나요!(성을 내면)

    아이: 아이, 깜짝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여인: 아무튼, 내 말 알아들었지?

    아이: 알았어 엄마. 장난 안 할게.

    여인: 암, 그래야지.(밖으로 나간다)

    아이: (문 밖에 고개를 내밀고)...(밖을 쳐다본다)...(문을 닫고)히히. 장난쳐야지.(붓을 주워 들고)...(병

    풍에 다가간다)

    병풍 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부엌에서는, 숫돌에 칼 가는 소리.

    아이: 무슨 소리지?(뒤돌아보면)

    대나무 그림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호랑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아이: (병풍 그림을 보고)어흥! 호랑이는 무서워.

    호랑이 그림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도깨비 그림을 비추는 조명.

    아이, 도깨비 그림 앞으로 이동한다.

    아이: 킥킥.(웃고)

    도깨비1의 이마에 수많은 점들을 찍어놓고,

    도깨비2의 턱에다 수염을 그려 놓는다.

    아이가 장난을 하고있을 동안,

    도깨비 그림의 조명 사라지고 할미의 그림을 비추는 조명.

    할미(소리): 얘야.

    아이:(뒤돌아)누구야?

    할미(소리): 얘야.

    아이: 거기 누구야?

    할미(소리): 얘야, 조심하거라.

    아이: 응? 어디서 나는 소리지?(병풍의 뒤쪽을 살펴본다)

    할미 그림을 비추던 조명 꺼지고 대나무 숲의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 (병풍 앞으로 나와)이상하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할미(소리): 얘야.

    아이(소리): 또 들리네?(병풍 뒤쪽으로 걸어가)누구세요?

    대나무 숲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할미의 그림을 비추는 조명.

    할미: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와)몸조심해라.

    할미를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대나무 숲의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방문 앞에 나타나는 호랑이 그림자!

    할미: (놀라)얘야, 위험하다! 어서 피해! (병풍 뒤로 모습을 감춘다)

    대나무 그림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호랑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아이(소리): 누구세요?

    방문이 열리자, 여인이 밥상을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여인: (아이가 안 보이자)아니, 이 아이가 어디 갔지?(밥상을 내려놓고)얘야? 어딨니?(두리번거리며)

    밥 해왔다. 밥 먹어야지.

    아이(소리): 엄마야?

    여인: 그래, 너 지금 어딨니?

    아이(소리): 나 여기 있어 엄마. 지금 나갈게.(병풍 뒤에서 나온다)

    여인: (놀라)아니, 너!

    아이: 엄마.

    여인: 너 대체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었지?

    아이: 이상해.

    여인: 이상하다니?

    아이: 어디서 자꾸 무슨 소리가 들려.

    여인: 무슨 소리라니?

    아이: 나도 몰라.(밥상을 보고)야, 맛있겠다.(밥상머리에 앉아 먹는다)우와, 맛있다. 근데 엄마는 밥

    안 먹어?

    여인: (생각하다)으응? 방금 뭐라고 말했지?

    아이: 엄만.(오물오물)밥 안 먹냐구?

    여인: 난 됐으니 너나 많이 먹으렴.

    아이: 그럼 엄마.(오물오물)그곳에서 맛있는 것...많이 먹고 왔어?

    여인: 그래. 난 그곳에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왔으니까 너나 많이 먹어.

    아이: 응, 엄마.

    여인: (밥 먹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뒤돌아 서서)...(팔 소매 안에 감춰진)...(날카로운 손톱을

    꺼내 든다)

    아이: (먹다말고)엄마.

    여인: 응?(다시 손톱을 감추고)왜 그러니?

    아이: (김치를 들고)이 김치 좀 찢어 줘. 너무 길어서 먹기가 불편해.

    여인: (코를 막고)에구, 난 그 신내나는 고약한 냄새가 싫더구나. 그러지 않아도 그걸 땅속의 장독

    에서 꺼낼 때, 얼마나 역겹던지.

    아이: 왜?

    여인: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오니까 그렇지.

    아이: 헛구역질?

    여인: 그래, 그러니까 네가 직접 찢어 먹으렴.(등을 돌리고 앉아)아까도 말했지만, 엄마는 오늘 따라

    꽤 피곤하구나.

    아이: (걱정스러운 듯)엄마, 진짜 많이 아퍼?

    여인: 아니, 그렇게 많이는 안 아프고. 조금.

    아이: 그럼 내가 밥 먹은 뒤에. 엄마 등 두드려주고, 다리도 주물러 줄까?

    여인: 아, 아니다! (질색하고)어서 밥이나 먹으래두 그런다.

    아이: 응, 엄마.(다시 수저를 움직이면)

    여인: (안도의 한숨)...,

    아이: 나 하루종일...(오물오물)엄마 기다리느냐고. 심심해 죽을 뻔했어.

    여인: 그랬니?

    아이: 응.

    여인: 왜? 동구밖에 나가, 아이들하고 같이 뛰어놀지 않고서?

    아이: 싫어, 난.

    여인: 왜 싫은데?

    아이: 걔들이 막 놀리니까 그렇지.

    여인: 뭐라고 놀리는데?

    아이: 아빠 없다고 막 놀려.

    여인: 그래도 아이들하고 같이 뛰어 놀아야지.

    아이: 난 싫단 말야.

    여인: 그래도 이렇게 방안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잖니?

    아이: 그건 그렇지만...(숟가락을 놓고)나 이제 그만 먹을래.

    여인: 아니 왜, 더 먹지 않고서?

    아이: 이젠 먹기 싫어졌어.

    여인: 그러렴. 먹기 싫으면 먹지 말아야지.(일어나 밥상을 들고)...(문 앞에 선다)문 좀 열어 주겠니?

    아이: (시무룩한 얼굴로 일어나)...(방문을 연다)

    여인: 조금만 기다리렴. 설거지 끝나면 엄마가 이부자리 깔아 줄 테니.

    아이: 응...,(여인이 방을 나가자)...(방문을 닫고)...(방바닥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병풍 속의 할미그림을 비추는 조명.

    할미(소리): 얘야.

    아이: ...누구야?

    할미(소리): 조심해야 해.

    아이: 무슨 소리지?

    할미(소리): 얘야, 위험하다.

    아이: (귀를 막고)이상해. 자꾸 무슨 소리가 들려와.

    할미 그림을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가 병풍 쪽에 다가가 선다.

    이때, 방문 앞에 나타나는 호랑이 그림자!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아이: (중얼거린다)엄마...이상해...귓속에서 자꾸...무슨 소리가 들려와...바람소리 같은 것이...자꾸만

    내 귀에...들려.

    여인: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스르륵, 사라지는 대나무 그림의 조명.

    여인:(아이를 보고)너 거기서 뭐 하고 있니?

    아이: 이상해.

    여인: 뭐가 이상하다고 그래?(이부자리를 꺼내들고)밤이 깊었다.(방바닥에 이불을 깐다)이젠 자야지.

    아이: 정말 이상해.

    여인: 뭐가 또?

    아이: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

    여인: (이부자리를 펴다말고)이상한 소리라니?(잠시 귀기울이고)...내 귀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아이: 난 들려. 지금도 누가 나를 부르고 있는 걸.

    여인: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니가 잘 못 들었겠지.

    아이: 아닌데...,

    여인: 아니긴.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거의 하루종일을 방안에 혼자 있다보니. 그만 네 귀속에서 환청

    이 들리는 거야.

    아이: 환청? 그게 뭐야?

    여인: 상상이란다.

    아이: 이렇게 똑똑히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여인: 그게 바로 환청이란다.

    아이: 그래도 이상해, 나는.

    여인: 얘긴 그만하고. 자, 어서 누우렴. 이젠 자야지.

    아이: 응.(옷을 벗고 잠자리에 든다)

    여인: 어서 자렴.(이불을 덮어주며)꿈나라로 가야지.

    아이: 재미있는 얘기해 줘.

    여인: 이야기?

    아이: 응.

    여인: 엄만 피곤하대두 그러네.

    아이: 싫어. 난 꼭 듣고 잘래.

    여인: 알았다, 그 황소고집을 누가 말리겠니? 그럼 무슨 얘기를 해준다? (생각하고)반달 곰 이야기

    해주련?

    아이: 아니. 그건 들었어.

    여인: 그럼 슬픈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아이: 아니. 그것도 들었는걸.

    여인: 그럼 무슨 얘기를 해준다?

    아이: 아이, 빨리 재미있는 이야기 해줘.

    여인: 알았다. (생각하고)그럼 불쌍한 호랑이 부부 이야기는 들어봤니?

    아이: 아니, 그건 못 들었는데. 그거 해줘.

    여인: 좋아, 그럼 눈부터 감으렴. 이야기는 꿈나라로 가면서 들어야 재밌지.

    아이: 응.(눈을 감고)나 눈 꼭 감았어.

    여인: 지금으로부터 옛날, 아주 옛날에.

    아이: 응, 아주 옛날에.

    여인: 이 땅위엔, 이 바다 위엔 말이다.(아이에게)아직 잠 안 들었지?

    아이: 응, 나 아직 잠 안 들었어.

    여인: 어서 자려무나.

    아이: 어서 이야기.

    여인: 옛날에 말야, 호랑이 부부가 살고 있었어.

    아이: 살고 있었는데.

    여인: 넌 말하지 말고 가만히 듣기만 해야지. 잠은 안 잘 거야?

    아이: (눈을 떠)그럼 얘기는 언제 듣고?

    여인: 그래도 이 녀석이?(노려보며)그럼 이야기는 안 해준다.

    아이: 알았어.(도로 눈감고)가만있으면 되잖아.

    여인: 진작 그래야지.

    아이: 어서 이야기.

    여인: 아비 호랑이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단다.

    아이: 호랑이가 바다에 나갔어?

    여인: 그래, 옛날에 그랬대.

    아이: 무슨 호랑이가 그렇지?

    여인: 또 말한다.

    아이: 알았어. 이젠 듣기만 할게.

    여인: 녀석.(아이의 얼굴을 내려보다가)...(쓰고 있던 머리수건을 벗는다)

    아이: 아이, 뭐해? 어서 이야기.

    여인: 응?(가볍게 놀라)그래,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하다 말았지?

    아이: 호랑이가 바다에 나갔어.

    여인: 오, 그래. 거기까지 얘기했구나.

    아이: 그런데 불쌍한 호랑이지 뭐야. 산에도 먹을 것이 많을 텐데, 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먹지?

    여인: 그러게 말이다.(한숨짓는다)

    아이: 아이, 뭐해 엄마?

    여인: 으응?

    아이: 어서, 이야기.

    여인: 그래, 알았다.(일어나)...(방안을 걸으며)니가 듣고 싶다니. 말해주마. 호랑이 부부의 기구한 사랑

    의 얘기를.(노래한다)

    옛날 이 땅위엔 이 바다 위엔

    한 쌍의 호랑이 부부가 살고 있었지

    그들의 사랑만큼 꼭 껴안아도 좋을 아름다운 이 땅덩어리와

    그들의 행복만큼 서로를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괜찮을

    푸른 저 바다 위에서

    그들은 하루마다 돌아오는 생이별을 나누었지

    아비는 노를 저어 먼바다로 고기 잡으러 나가느라 집을 비우고

    어미는 호미를 들고 깊은 숲 속의 돌밭을 가느라 방을 비우고

    동쪽 아침의 해가

    서쪽 하늘의 산머리 아래로 떨어져 내릴 때까지

    여인: (뒤돌아)얘야, 듣고있니?(아이에게 다가가)드디어 잠이 들었군. 이제야 말로 내가 기다리던 순

    간이 다가왔구나.(손톱을 꺼내)미안하다, 얘야. 너는 이제 죽은 목숨. 그러나 너는 나를 원망하

    지 말거라. 내가 살자니 너를 죽일 수밖에 없구나. 어쩌겠니. 이것이 너의 운명인 것을.(아이의

    목을 조른다)

    병풍 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할미(소리): 얘야, 어서 일어나!

    대나무 그림을 비추던 조명이 사라지고 할미 그림을 비추는 조명.

    여인, 고개를 홱 돌리고 병풍 쪽을 쳐다본다.

    여인: 아까부터 누군가 했더니!(일어나)이놈의 할미, 또 내 일에 방해를 놓아?(노려보며 병풍 뒤로 사

    라진다)

    병풍이 몹시 흔들리고, 호랑이의 사나운 포효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할미의 비명소리.

    할미(소리): 아악-!

    여인: (병풍 뒤에서 걸어나와)못된 할망구 같으니.(손에 움켜 쥔 머리카락을 바닥에 떨군다)...(다시

    아이에게로 다가가)...(아이의 목을 다시 조르면)

    할미: (머리는 산발이 된 채)...(병풍 뒤에서 나타나)그만 두지 못해?

    여인: (노려보며)이 할망구. 정말 귀찮게 굴 거야?

    할미: 제발 부탁이야. 아이를 놓아줘. (애원한다)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

    여인: 흥! 그럼, 내가 배고픈 건 무슨 죄지?

    할미: 좀 참아. 아니면 다른 먹이를 찾아보던가.

    여인: 다른 먹이를 찾아보라고? 대체 지금 먹을 것이 어디에 있단 말야?

    할미: 저 산과 들에.

    여인: 호-호! (웃음을 그치고)저 산에 먹을 것이 있으면, 내가 왜 여기까지 내려와서 인간의 피를

    보려고 하지?

    할미: 그건 알지만. 그러나, 아무튼. 이 아이는 안돼.

    여인: 또 방해할 생각은 말아, 할미. 당신의 말은 이젠 지긋지긋하니까!

    할미: 너는 도대체 언제라야 정신을 차리겠니?

    여인: 내가 언제 정신을 차리겠냐구? 흥!(일어나)할망구는 좋을 거야. 인간들이 갖다바치는 음식 때

    문에, 할미는 죽을 때까지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하지만 난 다르단 말야. 난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짐승이란 말야.

    할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불쌍한 아이까지 죽이면. 얘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여인: 그야 내 알 바 아니지. 배고픔을 모르는 할미가 참견할 일이 아니란 말야.(손톱을 들어)새벽닭

    이 울기 전에, 난 어서 이 아이를 잡아먹어야 겠어. 그러니까 얼른 썩 비켜서, 할망구!(다가가

    면)

    할미: 안돼.(옆으로 피하며)그건 안 돼.

    여인: 안돼? 그 말은 그럼 나하고 붙어보겠단 말야?

    할미: 할 수 없지. 나도 이 아이를 지키려면.

    여인: 깔-깔-깔! 정말 나와 싸우겠다구? 늙은 할망구가?

    할미: 못할 것도 없지.

    여인: 좋아. 그럼 어디 덤벼보시지.

    두 여자, 아이를 가운데 놓고 서로 노려보며 둥그렇게 원을 그린다.

    여인이 먼저 할미에게 달려들면, 무대 급하게 암전-

    암전 속에서 호랑이의 포효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할미의 비명.

    (아주 오랜)사이, 서서히 명전-

    병풍 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대나무 그림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도깨비 그림을 비추는 조명.

    도깨비1(소리): 아이고. 씨끄러워서 어디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도깨비2(소리): 그러게 말야. 나도 그만 잠에서 깼지 뭐야.

    도깨비1(소리): 근데 무슨 일로 저 난리를 피우는 거야?

    도깨비2(소리): 글쎄...,이젠 아주 조용한데?

    도깨비1(소리): 그러게?

    도깨비2(소리): 어떻게 된 거지?

    도깨비1(소리): 궁금한데. 우리 나가볼까?

    도깨비2(소리): 그럴까?

    방망이를 어깨 위에 얹고 등장하는 도깨비1,2.

    (그들의 얼굴은 아이의 장난으로 인해 우습게 되었다)

    도깨비1: 싸움들 하다말고 다들 어디 갔지?

    도깨비2: 글쎄 말야.

    도깨비1: 야, 꼬마야.(발로 툭 찬다)

    도깨비2: 꼬마는 깨워서 어쩔려구?

    도깨비1: 깨워서 물어 보려고.(발길질)야, 꼬마야. 그만하고 일어나.

    아이: (부시시 깨어나)누구세요? (눈을 비비며)엄마야?

    도깨비2: (얼굴 갖다대고)너는 내가 엄마로 보이니?

    아이: 으음.(다시 쓰러진다)

    도깨비1: 어라? 이 놈 좀 보게. 깨웠더니 또 금방 자?

    도깨비2: 자는 게 아니라 내 얼굴 보고서 기절한 거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중얼거리면)

    도깨비1: (갑자기)큭큭-.

    도깨비2: 왜 웃어?

    도깨비1: 그러고 보니. 니 얼굴이 정말 우습게 되었다.

    도깨비2: 내 얼굴이? 내 얼굴이 뭐 어때서?(얼굴을 만지다가 도깨비1을 보고)큭큭! 그러는 네 놈

    은. 얼굴이 그게 뭐냐?

    도깨비1: 내가 뭐 어때서?

    도깨비2: (손거울을 꺼내)이 거울 좀 봐라.

    도깨비1: 으악! (놀라고)누가 그랬어, 내 얼굴!

    도깨비1,2, 거울 속의 얼굴을 보며 킬킬대며 웃는다.

    도깨비 그림의 조명 사라지고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도깨비1: ...이게 무슨 소리지?

    도깨비2: 글쎄. 기분이 어째 으슬으슬한데.

    순간, 방문 앞에 나타나는 호랑이 그림자!

    도깨비1: (그림자를 보고)으악! 호랑이다!

    도깨비2: 도망가자!(먼저 뛰어가고)

    도깨비1, 뒤따라 병풍 뒤로 사라진다.(사이)

    여인,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여인: (방에 들어와)...(맨 바닥에 엎드려 잠든 아이를 보고)차돌아, 자니?

    아이: 엄마...?(일어난다)

    여인: 그래, 엄마야. 그런데 왜 이렇게 자니? 이부자리 펴고 편히 자야지.

    아이: 나 졸려.

    여인: 엄마가 빨리 이부자리 펴주마.(이부자리를 펴고)

    아이: 나 무서운 꿈 꿨어, 엄마.(다시 쓰러져 눕는다)

    여인: 그래, 엄마 왔으니 됐다.(베개를 갖다놓고)자, 됐다. 이부자리 깔았으니까 이리 와, 자렴. 차돌

    아?(아이를 보면)

    아이: (금세 잠들어 있다)...,

    여인: (다가가)...(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녀석두.(머리카락을 쓸어주며)그새를 못 참고.(아이를 안

    아서)어이구, 무거워라.(잠자리에 눕힌다)녀석, 언제 이렇게 컸누.(아이의 이마에 입 맞추고)

    불쌍한 내 새끼.(옷을 벗고 불을 끈다)

    (아주 오랜)사이, 무대 명전- 여인이 다시 옷을 입고있다.

    문 밖에서는 황량하게 불어오는 찬 바람소리.

    여인: ...,(밖을 보며 깊은 한숨)

    아이: (일어나)엄마. 일 나가?

    여인: (고개 돌려)깨어났구나.

    아이: 응.(하품)

    여인: 왜 좀 더 자지. 아직 날 밝으려면 멀었어.

    아이: 엄마. 오늘 반찬은 뭐야?

    여인: 녀석두. 그저 먹는 생각뿐이지.

    아이: 아직 안 했어?

    여인: 이제 부엌에 나가서 해놓을 거야.

    아이: 뭔데, 오늘 반찬은?

    여인: 뭘까? 알아 맞춰 보렴.

    아이: 콩나물?

    여인: 아니, 차돌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아이: 오뎅이야? 아이, 신나라.(손뼉을 친다)

    여인: 녀석, 그게 그렇게 좋니?

    아이: 응. 얼마나 맛있는데.

    여인: ...,(물끄러미 아이를 쳐다보다)그런데 차돌아.

    아이: 응?

    여인: 아니다. 아무 것도.

    아이: 뭔데, 엄마?(다가가면)

    여인: (아이를 꼬옥 안고)차돌아.

    아이: 응?

    여인: 우린 이제. 어떻게 살아가지?

    아이: 왜?

    여인: 주인이, 이 집주인이.

    아이: 할머니가 왜?

    여인: 할머니가 있지? 글쎄 이 달 말까지 밀린 방 값을 모두 내라는 구나.

    아이: 밀린 방 값?

    여인: 그래, 방 값. 만약 그때까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이 방을 비워달라는 구나.

    아이: 그럼 돈주면 되잖아.

    여인: 그런데 엄마는 돈이 없지 뭐니. 아무리 애를 쓰고, 시장에 나가 나물도 팔고, 떡도 팔고. 사방

    공사 일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해도. 너와 나, 달랑 두 식구 입에 풀칠하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눈물을 보이면)

    아이: 엄마. 울지마.

    여인: 차돌아, 우린 이제 어쩌면 좋지?

    아이: 괜찮아. 차돌이가 이 다음에 돈 많이 벌어오면 돼.

    여인: 녀석두.(아이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병풍 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여인: (방문 쪽을 보며)밖엔 지금 저렇게 매운 고추바람 불어오고. 무서운 동장군이 우뚝 버티고 섰

    는데. 이 엄동설한에, 우리 모자는 집도 없이 밖에 나가서 어떻게 살지?

    아이: 엄마...,

    여인: (한숨짓고) 엄마는 그게 걱정이구나.

    아이: 엄마...,

    여인: 차돌아.(아이를 꼭 안는다)

    무대 깊은 암전.

    (아주 오랜)사이- 다시 무대 명전.

    텅 빈 방안, 아이가 엎드려서 숙제를 하고있다.

    병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대나무 그림을 비추던 조명이 사라지고 할미 그림을 비추는 조명.

    할미(소리): 얘야.

    아이: (고개 들어)누구야?

    할미(소리): 나다.

    아이: (일어나)...(방문을 열면)

    문밖에서 아이를 째려보고 서있는 할미.

    할미: (건조하게)엄마는?

    아이: 일 갔어요.

    할미: 언제 오는데?

    아이: 몰라요.

    할미: 엄마 돌아오면 내가 좀 보잔다고 해라.

    아이: 무슨 일인데요?

    할미: 넌 몰라도 돼. 꼭 전해. 까먹지 말고.

    아이: 알았어요.(아이가 문을 쾅, 닫는다)...(연필을 던져놓고)...(장난감 배를 들어)통-통-통-통.(방안

    을 몇 바퀴 돈다)...(멈추고)...(시무룩한 얼굴로)...(병풍 앞에 다가간다)...(호랑이 그림을 보며)엄

    마. 주인집 할머니가 엄마 오면 보재.

    순간, 방문이 '왈칵' 열리고 다시 얼굴을 내미는 할미.

    아이: (놀라)...!

    할미: 엄마 들어오면, 오늘까지 밀린 방 값 모두 내야한다고 해라.

    아이: ...,

    할미: 꿀 먹은 벙어리냐? 왜 대답이 없어?

    아이: (울먹이며)예.

    할미: 잊지 말고 꼭 전해.(거칠게 방문을 쾅, 닫아버린다)

    아이: 엄마.(뒤돌아 등을 보이고)...(방벽에 기대어 서서 운다)

    병풍 속의 대나무 그림을 비추는 조명.

    어디선가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대나무 숲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할미 그림을 비추는 조명.

    아이: 엄마...,

    할미(소리): 울면-안돼-얘야-울지-마라.

    벽에서 괘종시계가 울린다.

    할미 그림을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호랑이 그림을 비추는 조명.

    방문 앞에 여인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幕-
    강석현

    강석현

    1969년 강원도 고성 태생

    강원대 졸업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공후인' 무대공연(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 이윤택

    단막희곡의 미학은 문체와 압축된 구성력에 있다. 자신만의 문체가 형성되지 않고 한편의 삶의 상징으로 제시되지 않는 소재주의적 발상으로 희곡은 쓰여지지 않는다.100편이 넘는 응모작 중에서 자신만의 문체와 자신만의 시각을 갖춘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극적 소재나 발상으로 희곡을 쓰려는 것이 문제고,극적 행위와 공간이 없는 일방적 말의 성찬은 사적 요설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야 청산 가자'(강석현),'저녁'(윤형섭) 2편을 놓고 고심했다. 우리의 아름답고 무서운 전래 설화가 한편의 희곡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야 청산 가자'는 무척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그러나 극적 구성력의 결함은 끝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남는다.너무 현실적 알레고리에 집착하지 말고 고쳐 써 보기를 권한다. '저녁'은 아비세대의 폭력성과 어미세대의 집착을 살해하면서 해방을 꿈꾸는 끔찍한 성년의식,절제된 문체,빼어난 공간 구성력 또한 갖추고 있어서 문학성과 연극성의 조화를 기대해 봄직 하다.그러나 이런 작품에서 우려되는 것이 정서의 박탈감이다.잔혹을 위한 잔혹이 아니라,얼음 속에 묻혀있는 따뜻한 정서의 불씨를 되살려 낼 수 있는 극적 장치가 필요할 듯 하다. 고심 끝에 '아이야 청산 가자''저녁' 2편을 가작으로 추천한다.2편 다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고,공연을 통해 수정 보완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무엇보다 두사람 신인들의 상상력이 매력적이다.
  • 강석현

    강석현

    1969년 강원도 고성 태생

    강원대 졸업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공후인' 무대공연(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솔직히 전력을 기울여서 글을 쓰지 못했다.

    다시 어둠인가, 했는데 연락이 왔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새해 선물이다.그러나 마냥 기쁘지만 않은 것은 왜인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또 부족한 글을 가작으로 뽑아주신 이윤택심사위원님께 송구한 마음이다. 고향의 겨울 바다가 보고싶다. 삶이 힘들 때 문학에의 용기를 북돋워주신 서준섭 교수님,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는 박은희 선생님, 나의 지음(知音) 장덕순, ‘테오’처럼 나를 부양해준 동생 석훈, 많이 고생하시는 아버님에게 마음의 절을 드린다.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