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말! 말? 말…

by  서인경

  • 작품전문
  • 줄거리
  • 심사평
  • 당선소감
  • - 등장인물 -  
    국어학자(74)   이름은 유영철. 대학 강단에서 국어학을 강의하다가 명예퇴직하고 나서도 꾸준히 국어학을 연구하며 생을 보내고 있다. 이 연극에서 '국어학자'라는 호칭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름을 대신하여 '국어학자'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로 하겠다.

    유 달 해(45)   국어학자의 아들로 '달과 해'라는 우리말 이름을 지녔다. 해외를 오가며 중계무역을 하는 실력 있는 무역회사 사장으로, 유창한 외국어 실력의 소유자이다.

    김 옥 자(43)   국어학자의 며느리(아들 유달해의 아내)로 일제시대 잔재로 남은, '옥자'라는 이름을 지녔다. 남편의 무역회사에서 사무를 보며 맞벌이를 하고 있다. 전라도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유창한 외국어 실력은 아니지만 무역에 관한 서류를 꾸미는 데 있어 전문성을 띠는 일을 한다.

    유 한 별(20)   국어학자의 장손녀로 "큰별'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 이름을 지녔다. 대학교 1학년. 컴퓨터 인터넷 채팅에 빠진 채팅 광.

    유 한 뫼(17)   국어학자의 손자로 "큰산"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 이름을 지녔다. 고딩(고등학생)만의 세상에서 은어·비속어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유 가 람(10)   국어학자의 손녀로 "강"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 이름을 가졌다. 늦둥이로 낳은 유가람은 정신적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려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한 의사소통을 나누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 안에서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두루 갖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에 살아간다. 가족 구성원은 지독한 국어학자와 국어학자의 아들 부부, 그리고 그 부부의 자식인 세 명의 손자·손녀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극은 한 가족을 통해 언어의 탄생과 성장, 혼류(훼손), 소멸의 과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탄생'  

    푸른빛의 무대. 무대 중앙에는 무덤이 놓여있다. 조명 핀이 그 무덤을 비추고, 그 주위는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대 밖에서 한 사내가 나무지팡이를 무대바닥에 두들겨대는 소리 들려온다. 그 소리는 일정한 장단의 가락을 지녔다. 무대바닥을 두들겨대는 소리는 점차 그 수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내뱉는 말과 쉼 없이 지팡이를 두들겨대는 소리는 조화롭게 리듬을 탄다.

    사내   (약간은 어설픈 발음으로)북!... 거...! 내!... 를!... 머!... 머!... 워!... 놓!... 라!... 구!... 아!... 니!... 북!... 서!... 거!... 으!....

    사내가 내뱉는 말은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자음과 모음이 만나 이루어진 글자 따위에 불과하다. 각 글자가 독립된 존재로서 여겨지도록 정확하게 딱딱 끊어진다는 느낌으로 글자를 뱉는다. 말이 아닌 의미 없는 소리를 뱉는 느낌이 나도록,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중얼거려도 상관없다.

    모두   (사내의 방식으로 똑같이) 아!... 구!... 를!... 북!... 니!... 놓!... 리!... 북!... 거!... 으!... 서!... 면!... 라!... 아!... 거!... 리!... 워!...

    이때, 무대 밝아오면 지팡이를 쥔 사람들이 무대로 등장한다. 원시적인 옷차림을 하고 지팡이를 두들겨대는 사람들은 모두 맨발이다. 이들은 사내가 하는 행동을 좇아서 무덤을 중심 축으로 둥글게 원을 형성하며 돌기 시작한다. 도는 내내 그들은 끊임없이 지팡이를 두둘기며, "아!... 구!... 를!... 북!... 니!... 놓!... 리!... 북!... 거!... 으!... 서!... 면!... 라!... 아!... 거!... 리!... 워!..." 계속해서 반복한다.

    사내   아니!... 거북!... 내놓아라!... 를!... 거북!... 먹으리!... 아!... 구워서!... 아!... 머리!... 내놓으면!... 먹으리!...

    사내는 좀 전에 글자 따위를 내뱉던 것과는 다르게 뱉는다. 사내가 내뱉는 소리는 글자가 아닌 낱말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까 전보다는 끊어진다는 느낌이 덜하지만, 여전히 '낱말'이라는 의미를 지닌 채 각기 따로 뱉어진다.

    모두   (사내가 하는 대로 똑같이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며) 아니!... 거북!... 내놓아라!... 를!... 거북!... 먹으리!... 아!... 구워서!... 아!... 머리!... 내놓으면!... 먹으리!...

    무덤을 돌던 사내는 신들린 듯한 몸짓으로 의식을 거행한다. 무대의 조명은 붉은 빛으로 변한다.

    사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아니 내놓으면
    구워서 먹으리!...
    - <구지가> 전문 -

    사내는 이제 끊어진다는 느낌이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문장의 '말'을 뱉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사내와 똑같이 말을 뱉는다. 그리고 장단에 어우러져 나무지팡이를 바닥에 두들기거나, 휘두르는 등의 몸짓을 한다.

    모두   거북아, 거북아/머리를 내놓아라/아니 내놓으면/구워서 먹으리

    행위가 어느 정도 극에 달아오르는데, 갑자기 천둥번개 치는 소리가 무대 가득 울려 퍼진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요란한 굉음과 함께 번쩍이는 불빛들에 놀란 사람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리고 무서움과 두려움에 바닥에 엎드리고는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몸을 파르르 떤다. ..... 굉음과 번쩍이는 불빛들이 서서히 줄어들면 노란빛이 강렬하게 무덤을 비춘다. 잠시 후, 그 빛을 보며 일어서는 사내는 넋이 나간 듯 무덤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그리고 무덤 위에 고개를 내민 거북이의 머리를 격식을 갖춰 신중하게 들어올린다. 겁이 나서 무대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은 살며시 사내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사내가 거북의 머리를 들어올리는 순간 몸뚱이를 일으키고 일제히 환호하며 기뻐한다.

    거북의 머리를 들고 있던 사내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온다. 전통적 가락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재빠르게 사내의 원시적인 옷을 벗기고 현대적인 양복을 입힌다. 볼록한 돋보기 안경도 씌우고, 구두도 신긴다. 또한 거북의 머리 대신 국어사전이라고 쓰여진 두꺼운 사전을 건네준다. 이제 사내는 원시부족국가의 익명의 존재가 아닌 현대 사회의 지식을 겸비한 국어학자로 변한다. 국어학자는 오른쪽으로 걸어가면서 사전을 뒤적거린다. 그리고 전통적인 가락이 낮게 깔리는 소리와 어우러지게 시를 노래하듯 '훈민정음 어지'를 크게 읊조린다.



    국어학자가 '훈민정음 어지'를 읊는 동안, 사람들은 무대 벽면을 덧씌운 천을 벗긴다. 천을 벗겨낸 벽면에는 비문, 오문, 외래어, 순우리말의 낱말과 문장들이 여기저기 뒤섞여 쓰여져 있다. 무대 중앙에는 칠판이 놓여 있다. 천을 벗겨낸 후, 무대 오른 편에는 책상과 의자를 갖다놓고, 서재 느낌이 나도록 의자와 탁자 등을 놓는다. 책상다리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바퀴를 달아서 식탁(3장에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사람들이 무대를 꾸밀 동안 국어학자는 계속해서 '훈민정음 어지'를 낭독한다. 그리고 무대를 꾸미는 사람들도 국어학자와 함께 '훈민정음 어지'를 읊는다. 2장의 무대가 어느 정도 준비되면 조명 서서히 암전.

    2. 언어를 배우다 - '성장'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훈민정음-어지'를 읊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린다.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줄어듦과 동시에 무대 밝아온다. 무대에는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가람과 책상 위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는 국어학자가 있다.



    말을 마친 국어학자는 빨간 빛깔의 먹음직스러운 사과와 빨간 색연필, 손잡이와 거울 뒷면이 빨간 색으로 칠해진 손거울을 들고, 가람에게 다가간다.

    국어학자   (탁자 위에 색연필과 손거울을 올려놓고, 사과를 가리키며) 이게 뭔지 말해봐라. 말하면 너 주마.
    가 람   (입을 벌리고 말을 하려 애쓰나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얼굴을 찡그린다.)
    국어학자   (사과를 가람의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냐.
    가 람   (몸을 비틀어대며 입 모양을 삐죽이면서 간신히) 스으아...와아아.
    국어학자   입 모양을 좀더 바로 하고..... ('사과'라는 말을 잘 뱉도록 가람에게 직접 입 모양을 크게 해서 보여주며)
    가 람   사아아아그으아아
    국어학자   그래 잘했다! 그렇게 하는 게다.

    가람은 국어학자가 "그래 잘했다"라는 말을 하자, 얼른 손을 내밀며 사과를 달라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국어학자는 사과를 허리 뒤쪽으로 감추고는 거울을 가람의 얼굴이 비치도록 보여준다.

    국어학자   어이구! 우리 가람이 예쁘구나. 이걸 뭐라고 하지?
    가 람   (아주 힘겨운 노력 끝에) 그으어우우
    국어학자   할비 입을 잘 보고 말해 보거라. 거울!
    가 람   그으어우우
    국어학자   (받침에 서투른 가람이 소리를 제대로 못 내는 것이 아쉬워서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울을 내려놓으며 빨간 색연필을 들어 보인다) 이번엔 이걸 말해보자. 가람이 그림 그릴 때 이걸로 그리면 좋겠구나.
    가 람   스으으으에...(소리를 내보지만 받침 때문인지 뜻대로 되지 않자 국어학자를 향해 못하겠다는 신호로 박수를 두 번 친다)
    국어학자   (답답한 듯 소리를 높이며) 제대로 된 말을 해!
    가 람   (못하겠다는 강력한 반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으며 박수를 계속해서 쳐댄다)
    국어학자   (가람의 행동을 보며 이제껏 참던 화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듯)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야! 그까짓 박수로 모든 걸 말하려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가람을 향해 소리치며) 그림은 그려서 뭐에 쓰려고?

    몹시 화가 난 국어학자는 가람의 옆에 놓여진 그림장을 빼앗으려 한다. 가람은 울먹이며 국어학자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양끝의 모서리가 가람의 손과 국어학자의 손에 쥐어진 그림장의 겉장이 찢어지고 만다. 국어학자는 그림장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가람은 국어학자가 그림장을 손에서 놓자, 반동에 의해 바닥으로 넘어지고 만다.

    국어학자   (마음의 흥분을 완전히 가라앉히지 못한 음성으로) 왜 말을 안 하는 게야! ..... 자폐증아이처럼 그림만 그리는 이유가 뭐냐고!.... (국어학자와 거리를 둔 가람은 약간의 울먹임을 지닌 채, 바닥에 떨어진 연필을 쥐고 그림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 가람을 힘없이 바라보다가, 한 손을 배에 가져다대고 다른 한 손은 숟가락을 쥐고 밥 먹는 시늉을 하며, 가람이 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으으아---! 배고프다! (박수를 한 번 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 (박수를 두 번 치며 고개를 저으며) 싫다! ....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정말 기막힐 노릇이군.

    국어학자는 책상 위에 놓여진 국어사전을 들어서 칠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관객을 향해 말한다. 마치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인다. 조명은 국어학자가 서 있는 자리에만 켜 있다.

    국어학자   이 사전 안에는 몇 개의 낱말이 살고 있는 줄 아십니까? 백과사전 겸용의 이 대사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우리말이 아가리를 내밀고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보다 작은 사전도 있습니다만... 암튼 전 이놈들을 연구합니다. 많은 논문도 발표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익히 알려진 언어학자죠. (사이) 그런데 사실 전 이 어휘라는 것을 연구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우리말을 연구하는 학자면서도 혹 평소에 외래어를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을 대할 때 쓰는 말들이 오문·비문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국어학자가 말을 마치면 조명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암전 된 무대에는 소리 들려온다. 무대 중앙 위 공간에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장면마다 배우들이 뱉는 대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광판(스크린)이 있어 관객이 마치 채팅을 하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소 리   (마우스를 눌러대는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밝은 음악이 깔리며 컴퓨터의 전자 음성이 들려온다. 음성은 곧바로 글이 되어 전광판에 적혀, 관객은 소리와 동시에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장치한다)
    2개의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또다시 '찰칵'하는 소리 들려오면, 첫 번째 메일을 보낸 남자아이의 목소리로 메일을 읽는다. 메일을 읽는 소리는 글이 되어 전광판에 적힌다)
    광녀누나! 나 7번에서 기둘고 이써여~~ 어솨여! 자판이 뽀사지도록 ㅃ ㅓㅃ ㅓ 해여져 :-D ...
    (또다시 '찰칵'하는 소리 들려오면, 두 번째 메일이 좀 전과 동일한 남자아이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전광판에는 읽혀지는 메일이 글이 되어 그대로 적힌다)
    얼레리여! 잠수탔낭? 증말 사람지기네 :-( 삐쳐서 나갈까부당!! ...
    (잠시 후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컴퓨터의 전자 음성이 들려오고, 음성은 전광판에 글이 되어 적힌다) 광녀님, 입장하셨습니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밑에 깔리며, 한별의 소리 들려온다. 유한별의 목소리는 전광판에 글이 되어 적힌다)
    아쿠! 넘 미안~~! (^.^) 마니 열났니?? 미얀- 꾸벅꾸벅^^

    '소리'가 끝나면 무대 밝아온다. 조명을 통해 세 공간을 알기 쉽게 표시하고, 그 세 공간의 조명이 전체적으로 밝아온다. 좌측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며 채팅을 하고 있는 한별의 공간이고, 우측은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려놓는 편한 자세를 취하고, 핸드폰에다 이어폰을 연결하여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한뫼의 공간이며, 무대 뒤쪽 칠판이 놓여진 곳은 국어학자의 공간이다. 세 공간의 무대가 동시에 밝아오는 순간, 세 공간에 있는 국어학자·한별·한뫼의 모습 보이다가, 좌측 한별의 공간과 우측 한뫼의 공간 암전 된다.

    국어학자   (자료지를 살피며 칠판에 무언가를 적는다. 요즘 학생들이 쓰고 있는 언어들을 조사한 자료지를 살피던 언어학자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혼란한 표정을 짓는다.)'글쿠'?..... (어법에 어긋난 말을 칠판에 적어가며 수정한다)음.. 이건 '그렇게 하고'가 맞겠고, ......'시퍼서'가 아니라 ......'싶어서'지. (자료지를 살피며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휴! 이런... (아주 한심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대학생이나 돼 가지고 어법도 제대로 모른단 말인가. 한 두 명도 아니고......(자료지를 자세하게 바라보던 국어학자는 '생까다'라는 말을 보자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생까다'? ..... 정말이지 이해가 안가.....

    이때 한뫼의 공간 밝아온다.

    한 뫼   (무대 밝아옴과 동시에, 의자에 거의 누워있다시피 앉아 전화통화를 하며) 찐따새끼. 너 어디서 다구리 뜨고 왔지?
    국어학자   (칠판에 어휘를 적으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다구리?
    한 뫼   열나 전화 때려두 안 받구... 쫌만 늦었음 나한테 존나게 밟힐 뻔했다.
    국어학자   (칠판에다가 자료를 보며 틀린 어휘들을 고친다. 즉 한뫼가 하는 말을 재빨리 칠판에 적는 것이다. '열나'라는 말을 적고 'X'표 표시를 하고 '계속'으로, '때려두'→ '걸어도', '받지두'→ '받지도', '않구'→'않고', '쫌만'→'조금만', '늦었음'→'늦었으면', '존나게'→'셀 수도 없이 많이', '밟힐 뻔했다'→'맞을 뻔했다'로 고쳐간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말이 빨라서 틀린 어휘들을 모두 고치지 못하고, 중간중간 넘어가기도 한다.)
    한 뫼   웃기지마 새꺄! 너 다구리 안 뜨면
    국어학자   (칠판에 적으나 무슨 뜻인지 몰라 고치지 못한다)안 뜨면???
    한 뫼   지금껏 뭐하구 방방거리고 돌아다녔는데?
    국어학자   (역시 무슨 뜻인지 몰라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며 혼란스럽다는 듯)방방거리고??... 쯧쯧... 한 두 개도 아니고, 모두 어디서 나온 말들인지.....

    국어학자의 공간은 암전되고, 한뫼의 공간에만 조명 비춰진다.

    한 뫼  오늘 학교 땡땡이 쳤어. ...... 기분이 꿀꿀해서. ...... 간만에 스타 한 판 붙고, 쫄쫄이나 한 잔 적실랬더니, 씨방새 연락두 안 되구. .......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리를 땅에다 내리고 바른 자세로 앉으며 약간 성깔을 부린다)너 찐따냐? ...... 왜긴 왜야. 문자 날리구 전화 때리구 지랄을 해두 귓구녕이 막혔는지 꿈쩍도 않더니. ......... 새끼, 놀고 있네. 지가 언제부터 책상 앞에 엉덩이 붙여 놓았다구. ...... 그런다구 기름 밥 먹을 놈이 펜대 굴릴 줄 아냐? ...... (책상 위에 놓여진 담배 갑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씨방아 나 오늘 대갈통 빠개지는 일 터졌단 말야.
    한별소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낮게 깔리면서 채팅 방에서 채팅을 즐기고 있는 한별의 말이 들린다. 한별의 말은 무대 중앙 위 공간에 놓여진 전광판으로 글이 되어 적힌다.) 쫌매만 기둘려∼
    한 뫼  저 새낀 중요한 대목에서 꼭 초친다니까... (일어서서 주위를 서성이다 책상 위에 걸터앉는다.)

    한별의 공간 밝아온다. 양측 공간에서 이야기를 하는 한별과 한뫼의 말은 뜸 없이 줄기차게 오가며 이어진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나, 한별은 채팅을 나누는 연하의 고등학생에게, 한뫼는 같은 반 친구라는 각기 다른 상대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속어·은어·채팅 용어가 뒤섞인 둘의 말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한 두 군데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고 낯설고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한별은 채팅 방에서 채팅을 즐기고 있는 중이기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낮게 깔리면서 한별의 말이 들린다. 또한 한별의 말은 채팅을 하는 내내 무대 중앙 위 공간에 놓여진 전광판으로 글이 되어 적힌다.

    한 별   (무대 밖에서 잔을 들고 등장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블랙 우유 좀 뽑느라꼬.. 그려, 몬 일인 뒤??
    한 뫼   쪈이 말라서 중딩 세 명을 갈궜걸랑. 10원에 한 대씩 센타까기 전에 돈 좀 보태라고.
    한 별   코 무든 애들 모 빠라 머글 거 있다고?
    한 뫼   이빨 까지마, 씨방아. 너만 연결됐어도 그 짓 안 했어... ... 근데 요즘 새끼들 간 커졌더라. 돈 없다구 졸라 뻐기질 않나.... 씨발, 야마돌아서 밟으려는데, 젠장 그 새끼들 담탱이가 지나갈 게 뭐야.... (짜증난다는 듯)한 30분을 지랄 까더라. 이름 대라, 집 전화 대라... 좇같아서...
    한 별   어머머! 그랴서 어케??
    한 뫼   어떻하긴. 깡다구로 버텼지. 눈 하나 꿈쩍 않고 씹었더니, 지쳤는지 애들 데리고 가더라.
    한 별   날라려, 너 정말 울트라 나이스 짱이당. 역시 파릇한 젊음이여~~!!
    한 뫼   그런 거 한 트럭 갖고 와봐라. 내가 꿀리나.
    한 별   머찐 날라려 화이링! 야!∼야!∼야!!!
    한 뫼   씨발, 화이링이구 나발이구 그냥 토낄 걸 그랬어.
    한 별   니 얼굴 아라볼까봐앙?
    한 뫼   학교 찾아오면 바로 정학 먹는 단 말야....
    한 별   증말? 한번 더 정학 먹음 짤린담쉬?
    한 뫼   짤리는 게 문제냐. 집에서 알게 되는 게 짱나서 그러지. 으씨, 졸라 열받네..
    한 별   핵교 찾아 옴 기냥 비러라. 쫌만 버티믄 쯩 하나 따자나.
    한 뫼  찐따새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 존나 꼽다!
    한 별   맨나서 술이나 풀까? 나두 23프로가 부족헌지 자꾸 몸탱이가 알쿨 달라꼬 졸라.
    한 뫼  안돼.
    한 별   와이(why)?
    한 뫼  저녁에 깔치 만나기로 했거든.
    한 별   취~~ 나 우러버린당!! 흐-흐-흑∼
    한 뫼  한동안 안 봐서 삐졌단 말야.
    한 별   누나바께 없다더니 공갈이었쥐?
    한 뫼  뭐, 찾을 땐 코빼기도 안보이더니만....
    한 별   니 깔 이뻐어?
    한 뫼  안 이쁨 키우겠냐? 짜식, 셈 내긴..

    한뫼의 공간 암전되고, 한별의 공간에만 조명 밝아있다.

    한 별   글쿠 보니 내가 20개구 니가 18개면, 니캉 내캉 2개 바께 차이 안 나네. 누나란말 징글하당. ...... 걀걀걀훗훗... (^-^) 그려. 우리 말 노치 머어. ...... 차암! 울 맨남은 은제 할꼬? ...... 아예 낼 벌까? ...... 당근으루 내가 쏘쥐 머어. ...... 잘 됐당! 낼은 널럴하걸랑. ...... 올나이트?? ...... 오케바리 구웃. ^ ^ ...... 낼 나한티 핸폰으루 문자 날려라아! ....... 고럼 꿈 쏘개서 바아~! 빠빠~

    한별의 공간 암전. 사이. 무대 전체적으로 밝아오면 옥자는 지쳤는지 무대 좌측에 있는 탁자에 서류꾸러미를 놓고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는다. 그때 옥자의 뒤를 이어 달해 등장한다. 약간은 화가 난 듯 옥자가 앉아있는 소파 주변을 왔다갔다한다.

    달 해   (옥자를 보며)Confirming bank에서 I.C.가 setting 안 됐다고 언제 연락 왔어?
    옥 자   ......
    달 해   (좀 전보다 언성을 높이며)Confirming bank에서 언제 연락 왔냐구?
    옥 자   (마지못해서)...어저께 왔서라.
    달 해   그럼 나한테 바로 Inform 했어야지!
    옥 자   ......
    달 해   이건 한 두 번도 아니고 nego할 때마다 무슨 꼴이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Checking하고 또 Checking 하랬잖아.
    입이 닳도록 말해도 B/L No.는 숫자 하나 정돈 빼먹는 게 습관이고, Carrier name 철자 하나 제대로 못써서 함브르그호가 햄버거호로 되는 게 십상이니......
    그렇게 Mistake가 많으면 누굴 믿고 일을 하라고...
    옥 자   지만 나무라지 말랑께요. 미스김은 갤혼 준비헌다고 멤이 뒤숭숭허지, 미스리 가는 들어 온지 을매 안 디야서 미스리가 쎄팅헌 세류들을 일일이 채킹허는 디도......
    달 해   (감정이 격해져서)그럼 누굴 보고 얘기하라고? 애들 아버지에게 맡겨가며 일하면 그런 거쯤은 알아서 처신해야 하는 거 아냐? 밑에 있는 직원한테만 맡기고 나 몰라라 할 게 아니라, 신경 좀 쓰란 말이야. 올해 들어 도대체 몇 건이야?
    Less Charge도 떨어지고 환율도 내려가서 이익도 줄어드는 판국인데....
    참, 이번 주에 들어온 L/C는 T/T야 NEGO야?
    옥 자   NEGO 요.
    달 해   Document Setting은 다했구?
    옥 자   고럼 세류도 안 꾸미고설랑 놀았단 말이당가!!
    달 해   사사건건 하는 일마다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 그러잖아.
    옥 자   ......
    달 해   (미심쩍은 듯)안되겠어. L/C 좀 줘봐.
    옥 자   (남편의 행동이 못마땅한지 뾰로통해서는 피곤한 몸을 억지스레 일으켜 탁자 위에 있는
    서류봉투 안에서 L/C를 꺼내 준다.)
    달 해   잠을 못 자는 한이 있어도 Checking 해야 맘이 편하지.... 다른 서류도 줘봐.
    INVOICE랑 PACKING이랑 Setting 해놓은....
    옥 자   (짜증난다는 듯 달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서류들을 건네준다. 그리고는 차라리 안 보는 게 편하다는 듯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피곤이 누적되어서인지 쉽게 잠이 든다)
    달 해   (L/C에 명시된 조건들을 자세하게 살피며 구비서류들과 L/C의 내용이 정확하게 적혀있는지 확인한다)
    ISUUING BANKING..... SHIPPER도 맞고... NOTIFY는 "SEMI ENTERPRISE"고..... (사이)
    PORT OF LOADING...... PLACE OF DELIVERY는 일본이구.......
    CONTAINER NO.는 15까지 있고....... 이런, CONSIGNEE가 안 적혀 있네.... (사이)
    (서류를 살피는데 열중한 달해는 옥자가 잠이 든 걸 모르고)
    PLACE OF RECEIPT는 "BUSAN CY"가 맞아 아님, "BUSAN C.F.S"가 맞아? 저번에도 이거 틀려서 연락 왔잖아? ....
    (대답이 없자 옥자를 쳐다본다)으휴- 지금 잠이 와? .... (사이)
    RATE는..... FREIGHT PREPAID AT..... DATE OF ISSUE는 7월 6일 맞고..... CARRIER NAME도 맞고...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혼자말로)INVOICE랑 PACKING이랑 해서 선사(船社)에 notify는 했나 모르겠네. 오늘 정도는 했어야 NEGO 날짜에 맞게 B/L이 올 거 아냐? 그나저나 환율이 불안정해서.....

    암전.

    3.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을 없애고 - '혼류' -  

    휴일을 맞아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국어학자 앞에는 늘 손에 들고 다니는 사전이 놓여있다.

    달 해   참, NEGO 서류 선사에 Notify했어?
    옥 자   여유 있응께 낼 혀도 될 란가 싶어서......
    달 해   여유 있긴! 지금 환율이 왔다갔다 얼마나 불안정 한데...
    서류 Setting 해 놓고 오를 때 바로 NEGO 해야 하는데 그....
    옥 자    (귀찮다는 듯)아따, 알았구만요.
    달 해   그리고 어제 서류 checking 해 보니까 INVOICE NO가 그저께 T/T한 서류 INVOICE랑 똑같더군.
    CONSIGNEE도 안 적어 놓고! 일을 대강대강 얼버무리지 말고 정확하게 하라구.

    가람이 옥자에게 국그릇을 보여주며 국을 더 달라는 몸짓을 한다. 그러자 달해의 말을 건성으로 듣던 옥자는 국을 뜨러 잠시 밖으로 나간다. 한별이 하는 말은 무대 중앙 위쪽에 놓여진 전광판에 글이 되어 적힌다.

    한 별   (한뫼에게)어제 너네 담쌤한테 텔레폰 왔당. 부모님과 기니 상의할 꺼 있다믄서.
    한 뫼   (약간은 움찔해서)다른 얘기는 없었구?
    한 별   으응. 너 또 사아고오친 거이 맞쥐?
    한 뫼   (국어학자와 달해의 눈치를 보며)사고는 무슨..... 내가 요즘 얼마나 범생인데.
    한 별   범생이 가라는 핵교는 안 가구 맬 모하는 뒤?
    달 해   한뫼 너....
    한 뫼   (부정하며)아니에요. 누나가 괜히 그러는 거예요.
    달 해   그럼 왜 담임선생님께서 부모님과 상의할 게 있다고 전화까지 하신 거야?
    한 뫼   때되면 가정 방문하듯이 안부전화정도일 거예요.
    옥 자   (국을 뜬 그릇을 가람의 앞에 놓으며)자, 묵어.

    가족이 대화하는 동안 국어학자는 눈에 거슬리는 어휘 사용에 대해 묵묵히 참으며 말없이 식사를 한다.

    한 뫼  (한별에게 복수나 하려는 듯)누나. 어제 뭘 했길래 술이 곤드레만드레 되가지고 거실에서 자고 있었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에서 완전히 뻗어있던데....
    달 해   너 어제 늦게 들어왔어? 새벽 세시까지 서류 보면서도 몰랐네.
    한 별   (한뫼에게 눈을 흘기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다가 흐린다)초딩 칭구들 정팅이 있어 가따가, 주는 술 안 머글 수 엄써서.....
    국어학자   정팅?
    한 별   넷 상에서 맘 맞는 사람들끼리 얼굴 이키고 그런 거 이써여.
    달 해   그걸 누가 몰라서 묻냐? 공부해서 회사일 거들 생각은 않고, 쓰데 없는 거에 신경 쓰고 다니니까 그렇지.
    옥 자   요새 들어 솔찮이 안그런다냐... 기집이 남사시럽게 술 잔뜩 취혀서 꼭두새벽에 들어와? 참, 잘허는 짓이다아.
    한 별   고런 거 아니에여. 담쌤 전화온 거 때메 한뫼가 날 걸고 너머지는 거라구여.
    한 뫼   (한별에게 못 참겠다는 듯)아, 머리에 열이 팍팍 꼬친다, 꼬쳐!
    국어학자   (혼자 말로) 열이 꼬쳐???
    한 별   너는 나 안 글거 놔써?
    옥 자   남매라고 있는 것들이 항시 못 잡아 묵어서 안달이구마안..... 고만 허구 뱁이나 먹어이잉.

    식사를 마친 가람이는 식탁에서 내려와 한 쪽에서 그림 그리기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다. 국어학자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비문이나 오문 등을 혼자말로 툭툭 내뱉으며 고치기 시작한다.

    한 별   야리꼬리 아삼삼하네..
    국어학자   이상하네.
    옥 자   또 뭣 땜시 그런다냐?
    달 해   지난 달 LESS CHARGE 떨어진 거 말야.
    국어학자   레스 차지??
    한 별   한뫼 담쌤이 기냥 전화 때렸을 리가 없담 말이에여.
    국어학자   담임선생님... 전화 걸었을 리가 없는데
    옥 자   허긴 그라지... (한뫼를 가리키며)선상님께서 전화허신 이유를 솔직히 말허랑께!
    한 별   빨랑 말해라. 담쌤이 왜 전화 때렸는쥐.
    국어학자   때리긴 뭘 때려 전화를 걸었지.
    손 자   .......
    달 해   LESS CHARGE가 얼마나 나간 거야?
    한 별   울 엄마 머리에 스파크 튄다.
    국어학자   엄마 화나셨다.
    한 별   야. 얼릉
    국어학자   얼른!!
    한 별   마라는 게 조을 거 가터.
    국어학자   말하는 게 좋을 거 같다!!.
    한 뫼   내가 그런 거 아니란 말야.
    옥 자   고럼 누가 헌 일이다냐??
    한 뫼   우리 반 찐따새끼 하나가
    국어학자   친구
    한 뫼   중딩 세 명
    국어학자   중학생.
    한 뫼   삥 뜯다가 센타까려는데
    국어학자   돈 빼앗다 때리려는데
    한 뫼   좀만한 것들 담탱이한테 걸렸어.
    국어학자   그 학생들 담임 선생님
    한 뫼   그 씨방새가 야구리까서
    국어학자   같은 반 친구가 거짓말해서
    한 뫼   누명쓴 거야.

    지금부터는 국어학자, 달해, 옥자, 한별, 한뫼의 말이 동시에 나와서 조금씩 겹쳐져도 상관없다. 서로 자신의 말로 대화하려는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 국어학자는 비문이나 외래어가 섞인 어휘나 문장을 고쳐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바뀌어지는 어휘의 사전적 의미까지 줄줄 읊으며 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 달해, 옥자, 한별, 한뫼는 서로가 뒤질세라 조금씩 소리를 높여간다. 그리고 점점 격양되어 뱉어지는 그들의 말은 몸짓과 더불어 과격해 진다.

    옥 자   니가 혀 놓고 아그들 데리고설랑 거짓꼴하는 거 아닌감?
    국어학자   거짓말-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꾸며대는 말! '아닌감'은 표준말이 아니다!
    한 뫼   구라 아냐!
    국어학자   거짓말- 명사로서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꾸며대는 말이라고!
    한 뫼   씨부댕이새끼.. 졸라 열받네. 담탱인지 뭔지 그 자식 다구리 뜰거야.
    한 별   안 들어도 비디오다. 담쌤이 을메나 짱 났음 집에다 전활 때렸겠어?
    달 해   이러다가 LESS CHARGE로 왕창 뜯기겠군.... 내 손으로 직접 setting 해야겠어..

    이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만큼 각자 자신의 말을 마구 내뱉는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의 말을 없애고, 우리말이 사라지고 알아듣지도 못할 이상한 말들은 불어나고.... 가족은 미친 사람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신의 말을 뱉는다. 조명도 각자 자신의 말을 뱉기에만 빠져버린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혼란스럽게 곳곳을 비추며 깜빡거린다. 첫째, 국어학자는 국어사전을 들고서 사전에 담겨진 어휘의 뜻을 읊기 시작한다. 때로는 두 팔을 휘두르며 때로는 고함을 꽥 질러대며 무대 구석구석을 헤돈다. 둘 째, 달해는 무역 용어를 계속 읊어대며 외우려고 몸부림친다. 셋째, 한별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몸짓을 취하면서 뜸을 들이나 단호하게 말을 뱉는다. 넷째, 옥자는 전라도 사투리를 써가며 야단스럽게 웃는다. 그러다가 우스워 배꼽을 움켜쥐고 흥분하다가 웃음이 막히고 다시 고통스럽게 떠들어댄다. 다섯 째, 한뫼는 어깨로 한별이를 밀어붙인다거나 의자를 발로 차버리는 등의 과격한 몸짓을 하며, 무대 위에서 정신없이 달려가다 비틀거리며 쓰러 지기도 하고, 몸을 앞뒤로 뒤흔들리다가 비틀거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가람이는 다른 사람은 아랑곳 않고 그림장에 색연필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가슴을 치며 몸부림친다거나 서로가 부딪힐 정도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무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세계 안에 있는 말들을 내뱉는다.

    한 뫼   찐따새끼, 씨방새, 씨방아, 씹새끼들
    한 별   하이루, 빠빠루, 빵가루
    달 해   CONSIGNEE - 신용장에 명기된 문구를 기재한다.
    B/L NO. - 선사가 임으로 규정한 표시번호를 기재...
    국어학자   가격(價格)-값, 간략(簡略)하게-짧게, 고수부지(高水敷地)-둔치, 기후(氣候)-날씨
    옥 자   맨날 뱀을 꼴딱 새며 일 할랑께 을메나 힘든지 아는감? 그런디 고로코롬 일을 혀도 이러타 저러타 욕만 먹음시롱... 난 못 살겄당께..
    한 뫼   다구리뜰거야, 센타까서 10원에 한 대씩 맞는다, 트럭으로 가져와 봐, 깡다구로 버틸 거야, 방방거리고 싸다니기는, 똥야구리 까지마, 너 나한테 뒤진다
    국어학자   도구(道具)-연장, 대비(對比)하여-맞견주어, 동일(同一)한-같은, 사용(使用)-씀,
    한 별   자판이 뽀사지도록, 이구궁, 쩝쩝, 어솨여, 따룽해, 마저, 함 보장, 힘 드러, 광녀에엽, 모가, 바부가터, 주글레, 무찌마, 짜짱나, 쥐집애 이쁨다야
    국어학자   병용(倂用)-아울러 씀, 부분(部分)-한쪽, 만찬(晩餐)-저녁밥, 매번(每番)-번번이,
    달 해   BENEFICIARY, SELLER, EXPORTER, SIPPER, CONSIGNOR,
    DRAWER, ACCOUNTER, PAYEE는 모두 수익자를 이르는 말.
    국어학자   미숙(未熟)-서투름
    한 뫼   나이가 몇 갠데
    한 별   니 똥이다
    달 해   B/L, L/C, I.C,
    한 뫼   비려, 쌩이냐, 쌩까냐, 깔, 깔치, 쫄쫄이, 토끼다, 쪽팔려, 담탱이, 말 씹는다, 아가리 닥쳐, 니 똥이다, 눈깔 후리지 마, 빡 도네, 찐따새끼, 씨방새, 씨방아, 씹새끼, 다구리뜰거야, 센타까서 10원에 한 대씩 맞는다, 트럭으로 가져와 봐, 깡다구로 버틸 거야, 방방거리고 싸다니기는, 똥야구리 까지마, 너 나한테 뒤진다
    한 별   자판이 뽀사지도록, 글케, 코 묻은 아가들 뭐 빠라 머글 거 이따꼬, 고롬 셈 나쥐, 울 맨남 은제루 할껴?, 이구궁, 쩝쩝, 어솨여, 따룽해, 마저, 함 보장, 힘드러, 광녀에엽, 모가, 바부가터, 주글레, 무찌마, 아뒤가 뭐여?, 고롬 셈 나쥐-울 맨남 은제루 할껴?, 낼 벌까아?, ㅃ ㅓ ㅃ ㅓ ㅎ ㅏ ㅈ ㅏ!
    달 해   confirming bank - 확인은행. 수출상이 개설은행의 신용을 믿지 못하여 신용있는 제3의 은행으로 하여금 당해 신용자의 대금지급을 재차 확인하도록 요청할 경우 이에 따라 개설은행과 동일한 지위를 맡게되는 은행을 말하며, 대금지급의 책임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개설은행과 동일한 신용장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국어학자는 칼로 국어사전을 한 장씩 갈기갈기 자르고 뜯어버리기 시작한다. 광기 어린 눈빛으로 여기저기 비틀거리며 서성이다가 엎어지고, 다시 국어사전을 낱낱으로 쪼개고 빙빙 원을 돌며 칼을 마구 휘두르기도 한다. 그때 그림을 그리던 가람을 보더니 칼과 국어사전을 가지고 가람에게 다가간다. 이때 달해, 옥자, 한별, 한뫼의 목소리는 줄어들며 작은 중얼거림으로 변한다. 그림을 그리던 가람은 국어학자의 손에 보이는 칼을 보고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뒤로 물러선다. 붉은 조명 전체적으로 깔리며 극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국어학자   (미소를 띠며 가람에게)이게 뭔지 말해 봐.
    가 람   (강렬히 거부하는 몸짓으로 박수를 마구 쳐대며 고개를 젓는다)
    국어학자   (가람에게 칼을 점점 가까이 갖다대며)칼! (소리가 커지며) 칼! (더 큰 소리로 미친듯이)칼이란 말야!!

    가람은 국어학자의 칼을 보고 도망치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국어학자의 칼에 가슴을 찔리고 만다. 가람의 비명과 함께 암전.

    4. 말이 사라지다 - '소멸'  

    국어학자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식탁 위에는 케이크와 생일 상이 차려져 있다.

    달 해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옥 자   아버님 생신상도 지대로 챙겨드리지 못 허고 죄송혀서 우짠당가요.
    국어학자   일을 하면 다 그렇지....
    달 해   그래요. 이번에는 좀 그렇고, 내년에는 아버님 벌쓰데이날...... 여행이라도 가요.
    옥 자   한뫼야, 뭐한다냐! 케이크에다 촛불 켜야지.
    한 뫼   아 예 그러죠! (촛불을 켜면서)친구놈 생일이었음 생일 빵으로 열나 다구리..........
    한뫼가 말을 하자 모두 놀란 눈빛으로 한뫼를 바라본다. 무안한 한뫼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촛불을 켠다. 가족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끝나자 국어학자는 춧불을 끈다.

    모 두   생일 축하드려요.
    한 별   열나 울트라캡숑 나이스 짱으루 추카추카 부라보오...(이야기를 하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는)아..아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 자판이 뽀사지도록 잼나게.. 허걱!!(말을 내뱉자 마자 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말을 정정한다) 아니 이 즐거운 마음을 다하여 재미있게.... 74개의 나이를 머근 할아부지의......(말을 뱉던 한별은 말을 제대로 못하다가 결국 크게 한숨만 쉬다가 고개 숙이고 밥을 먹는다)
    한 뫼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며)야! 씨방새..(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놀라서 입을 가린다. 그리고 말을 하는 게 점점 어설프고 뜸을 많이 들여 내뱉게 된다.) 어.. 담탱.....임선생님이 뭐라는데?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뭐? 중딩새끼 집에 가서 무릎꿇고 빌라고? 씨발 좇같아서...(국어학자가 숟가락을 '탁탁'치자 놀라서 주눅이 들은 작은 소리로)오늘? .... 담.....임 선생님이? ....씨....넌? ..... 어어..... 그렇지... 음...... 음...... 응... 응.
    한 별   모라쿠우..(말을 하려다 말을 잇지 못한다)
    한 뫼   나 학교 오래.
    옥 자   오늘?
    한 뫼   응
    달 해   WHY?.....
    한 뫼   (말을 하려는 듯 멈칫거리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기를 그만둔다.)
    옥 자   (식탁 아래 놔두었던 선물꾸러미를 꺼내며)아버님.....
    한 별   못 샀는데......
    한 뫼   죄송해요....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묵묵히 생일상의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국어학자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
    달 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
    옥 자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
    한 별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
    한 뫼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
    촛불을 끄고 난 후 식탁 옆에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던 가람이 국어학자에게 다가가 그림장을 준다. 가람이 준 그림장을 받은 국어학자는 그림을 보고 나서 약간은 놀란 듯이 가람을 바라본다. 그림 장에는 열 살 짜리 아이답게 그려놓은 국어학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 밑에는 "생일 축하드려요!!"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여전히 사람은 있되 마치 죽은 시체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대화가 없고 말이 사라진 텅빈 느낌의 공간에서 밥을 먹는다.
    서인경

    서인경

    1976년 서울 출생

    1995년 서울산업대학 입학

    교내 연극동아리 활동

    제5회 교지 문학상 단편소설 입선

  • 1장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 '탄생'

    (1) 언어탄생의식
    언어의 탄생을 김수로왕의 건국신화인 '구지가'로 보여준다. 푸른빛의 무대 위에는 불룩한 무덤이 중앙에 놓여있다. 원시부족을 상징하는 옷차림의 사내 다섯 정도가 무덤을 빙빙 돌며 언어 탄생을 위한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이 끝날 무렵 사내가 무덤 위에서 거북의 머리를 들어올리며 문명의 시작을 알리면 그 외에 사람들은 그 사내에게 현대적인 양복을 입히고 그 사내는 곧 국어학자가 된다. 국어사전을 낀 국어학자는 훈민정음 어지를 읊조린다. 그 동안 그 외의 사람들은 국어학자를 따라서 함께 훈민정음 어지를 읊으며 무대를 현대적 모습의 서재로 꾸민다.

    2장 언어를 배우다 -'성장'

    (2-1) 국어학자와 벙어리
    무대 중앙과 옆벽에는 비문, 오문, 순우리말의 낱말과 무장들이 여기저기 쓰여있다. 무대 중앙에는 칠판이 놓여있고, 책상과 의자로 서재분위기를 연출한다. 국어학자는 가람(막내손녀)에게 날마다 언어를 가르치나 가람은 '으으아--'라는 소리밖에 내지 못한다. 화가 나서 고함을 쳐도 소용없다. 결국 포기하고 마는 국어학자는 '으으아-'라는 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가람을 언어학적으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람은 아무 생각 없이 줄곧 그림만을 그린다. 국어학에 조예가 깊고 언어를 소중히 여기는 국어학자는 늘 사전을 끼고 다니며 언어를 연구한다. 그러는 중 그는 눈에 거슬리는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2-2) 채팅광과 고딩
    무대는 세 공간으로 나뉘어진다. 좌·우측은 책상 위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한별(손녀)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한뫼(손자)가 있고, 무대 중앙 뒤쪽에 칠판이 놓여진 곳에는 국어학자가 있다. 한별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연하의 고등학생과 이야기를 하는데, 채팅 용어를 쓰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듣기 거북스럽다. 또한 한뫼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고딩 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역시 한별과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듣기 거북한 말들이다. 국어학자는 논문 준비를 위한 자료집을 살펴보는데, 자료집에 있는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칠판에 바쁘게 적는다. 그리고 간혹 가다 머리를 긁적이며 점점 얼굴이 굳어져간다. 이 셋의 대화는 서로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비속어·은어·채팅 용어가 뒤섞인 둘의 말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한 두 군데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고 낯설고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한별은 채팅 방에서 채팅을 즐기고 있는 중이기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낮게 깔리면서 한별의 말이 들린다.

    (2-3) 무역회사사장인 아들과 사투리를 사용하는 며느리
    2장과 같은 서재. 맞벌이를 하는 달해(아들)와 옥자(며느리)가 늦은 시간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집에 와서도 여전히 회사 일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데,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달해는 말끝마다 무역에 관한 전문용어들을 사용하고, 옥자는 전라도 방언까지 사용함으로 인해 그들의 대화는 관객이 알아듣지 못할 언어 투성이다.

    3장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을 없애고 - '혼류'

    (3) 흔들리는 가족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 휴일을 맞아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국어학자 앞에는 늘 손에 들고 다니는 사전이 놓여있다. 말을 못하는 가람이 국을 더 달라는 몸짓으로 시작되는 저녁식사는 한뫼와 한별의 다투는 대화와 무역서류에 관해 이야기하는 달해의 대화가 뒤범벅된다. 국어학자는 그들이 말하는 비속어·은어·외래어 등을 우리말로 바르게 고쳐준다. 국어학자, 달해, 옥자, 한별, 한뫼는 서로가 뒤질세라 조금씩 언성을 높인다. 특히 국어학자는 일일이 사전을 찾으며 어휘의 해석까지 말하면서 편집증적 모습을 보여준다. 가람은 관심 없다는 듯 식탁에서 내려와 무대 바닥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아주 격양되고 고조된 그들의 말은 몸짓과 더불어 과격해진다. 국어학자는 한쪽 손에 사전을 다른 한쪽 손에는 칼을 들고 나와서는 이리저리 서성이며 정신적 발작을 일으키더니, 그림을 그리는 딸을 일으켜 세우고는 "말을 하라고! 제대로 된 말을!!!"하며 칼로 가람의 몸을 찌른다. 비명과 함께 암전.

    4장 말이 사라지다 - '소멸'

    (4) 언어의 부재
    3장과 동일한 식탁. 국어학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이 잔치를 열고 있다. 잔치를 하면서 달해, 한별, 한뫼 등은 자신이 습관적으로 사용한 언어들이 말하는 중간 중간에 튀어나와 말을 멈추곤 한다. 가족이 공유할 수 없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가족은 말을 뱉다가 눈치를 보며 그만두고, 말을 하려는 듯 하다가 다시 입을 다문다. 침묵... 이때, 말을 하지 못하는 가람이 국어학자에게 정성껏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그림 안에는 국어학자의 모습과 "생신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이 써있고, 그것을 본 국어학자는 잠시 당황함과 놀라움에 가람을 바라본다.
    서인경

    서인경

    1976년 서울 출생

    1995년 서울산업대학 입학

    교내 연극동아리 활동

    제5회 교지 문학상 단편소설 입선

  • <말! 말? 말…>을 뽑고나서

    윤호진(연극연출가)

    단편 희곡의 맛은 압축과 상징에 있다. 많은 것을 담아 내자니 그릇이 너무 작고, 안전하고 보기 좋게 담자니 먹을 것이 없다. 그래서 주제를 선택해서 마지막 대사를 창조해 낼 때까지 긴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순수 연극이 공연 계 전체에서 점점 그 활력이 저하되고 있는 요즘 희곡의 중요성도 점차 퇴색되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희곡을 쓰고자하는 젊은이들을 접하게 되니 심사기간 내내 신선한 활력을 되찾는 기분이었고 당락을 떠나서,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니, 계속 정진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응모한 희곡 작품들은 경향을 좀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소재에서부터 시대 혹은 등장인물들에 이르기까지 개성들이 뚜렷했다. 아쉬운 점은 희곡의 코드를 모르는 응모작들이었다. 영화 시나리오나 TV드라마와 구분되어지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대다수의 작품들이 제목과 주제 그리고 구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혹, 구조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도 압축 능력이 떨어져 마무리가 확실하지 않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번에 희곡부문 당선작 '말!말?말…'은 무엇보다도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치 희곡 '유리동물원'을 연상시키듯 소제목을 달아 글의 짧은 미래를 알리는 서사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은 극을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큰 힘이 되고있다.

    또한 이 구조는 자칫 의미 없어질 수 있는 문체의 나열에 공간의 가치를 부여해준다. 할아버지에서부터 손녀에 이르기까지 세대에 따른 혹은 교육정도에 따른 성격구축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갈등 구조는 '말'에서 비롯되는 에피소드를 탄력 있게 창출해 내고 있다.

    이런 부딪힘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 바로 코믹과 위트다. 읽으면서 즐겁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인터넷 시대에 급증하는 언어변화의 물결 속에서 있음직한 소재를 젊고 건전하게 잘 다듬어 냈다.

    다만 앞으로 희곡을 계속 집필할 시, 문체 자체에서 풍겨나는 맛을 찾을 수 있는 깊이를 확장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작품과는 사실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아직 젊으니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믿어 마지 않는다. 부디 황무지 희곡의 땅에 봇물이 되는 인물로 성장하길 바란다.
  • 서인경

    서인경

    1976년 서울 출생

    1995년 서울산업대학 입학

    교내 연극동아리 활동

    제5회 교지 문학상 단편소설 입선

    엄마와 도자기

    며칠 전 엄마는 요상한 도자기 하나를 집으로 들고 오셨다. 그 도자기만 집에 있으면 가족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무턱대고 사들고 오신 도자기.... 그 도자기를 보자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한 난, 투덜거리다 결국 엄마와 심한 말다툼 끝에 집을 나와버렸다. 하지만 지금껏 허리디스크로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보약 한 첩 해 들이지 못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랬다. 이제 내 나이 스물 다섯. 그러나 6년째 늘 학생이기를 바라는 나에게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바라보시는 엄마. 그나마 엄마의 작은 희망을 담을 수 있는 도자기를 난 왜 그토록 비난했는지, 마음속에 밀려오는 후회들로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러! 다!...... 도자기가 뿜어내는 광채 속에 담겨진 엄마의 사랑이 전해오는, 희망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당선 소식!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일의 불안함을 향해 다가서는 난, 소식을 듣는 순간 엄마의 행운의 도자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사랑해요!"

    연극과 나

    이제 '연극'은 내 인생에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그 무엇이 되기 위한 출발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늘 초조해하면서도 소중한 그 무엇을 위해 열정을 바칠 이유가 있다며 최면을 걸어오던 나는 아직 출발선에 서 있긴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함으로 하루를 열 수 있는 자신감을 지닐 수 있게 된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행복한 인연

    고등학교 때 문학에 대한 꿈을 마음에 알알이 새겨주신 대원여고 현재호 국어선생님! 저 선생님 잊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이라는 인연으로 아낌없는 격려로 응원해주신 김복섭 가정선생님! 늘 감사하고 사랑해요. 음향에서 배우·기획·연출에 이르기까지 '연극'이라는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연극동아리 '어의실험극회' 선배님과 동기와 후배들! 졸업이 늦다고 이젠 나무라지 마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음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또한 못난 나를 늘 믿고 따라준 혜경·창훈·찬현아! 정말 고맙다!! 마지막으로 '희곡'을 쓴다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가르쳐 주신 김미도 교수님과 미흡하게 써 낸 글을 뽑아주신 윤호진 선생님께 이 영광을 바칩니다.
  • 작품전문
  • 줄거리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