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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촌리 겨울 -이육사 생가에서

by  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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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시대의 회상처럼 원촌리 겨울이 오면
    탱자 숲 언 가시도 기다림에 지쳐 눕고
    철 잃은 어린 동박새 귀소(歸巢)하는 빈 하늘.
    마른 살 스스로 발라 푸른 재 흩뿌리고
    뼈마디 꺾어꺾어 광야에서 보낸 생애,
    가두고 물길 돌려도 긋지 않던 그 혼불.

    터지고 갈라진 틈에 생명의 풀씨는 자라
    바람 시린 능선따라 오색 깃발 세워 놓고
    청포도 그리운 날들을 알알이 물고 있다.

    청녕 봄이 다시 오지 않아도 좋다.
    덜 녹은 잔설 위로 서리 깊게 내려앉아
    나목들 초록 깊은 넋, 그 넋으로 또 다시.
    정경화

    정경화

    1962년 대구 출생

    1983년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학과 졸업

    1997년 시조 동우회 '한결' 동인

    1999년 대구시조 공모전 입선

  • 유재영(시조시인·'동학사' 대표)

    시조에 있어서 정형의 의미는 우리 문자문화의 정신적 증명이라는 데 있다. 정형의 가치가 바로 시조의 가치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시조를 쓰는 데 형식이 표현의 장애로 남지 않기를 희망한다. 아무리 훌륭한 형식이라도 형식의 지배를 받는 것은 문학의 본질과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 응모작 대부분은 이러한 형식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지만, 아직도 형식을 극복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상도 결코 적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당선작을 놓고 겨뤘던 작품은 정종철씨의 '나도 풍란에게 갔다'였다. 그러나 앞서 말한 형식의 문제에서 많은 논의의 여지를 남겼다. 이미지나 상징 그리고 시적 재능이 결코 당선작에 뒤지지 않았지만 여러 군데가 시조의 형식과 어긋나 있었으며, 정씨의 다른 작품 '저수지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음보의 중요성이 먼저 인식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끝내 떨칠 수 없었다.

    그와 달리 당선작인 정경화씨의 '원촌리 겨울'은 다른 응모작들에 비해서 정형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고, 시적 정취에서도 앞서 있었다. 당선작 '원촌리 겨울'은 시인 이육사의 생가에서 느낀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질곡의 깊이를 시로 형상화하는 데 조금도 무리가 없었다. 특히 서정의 흐름이 고르며, 감성의 폭이 넓고 활달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당선자에 대한 신뢰이기도 했다.

    그의 다른 작품 '사막의 강'도 기교와 세련미에 있어서 뒤지지 않았으나, 다소 관념으로 흐른 것이 흠이 되었다. 2001년, 우리의 민족문학인 시조의 새아침이 당선자의 기쁨과 함께 밝아오길 기대하며 대성을 바란다
  • 정경화

    정경화

    1962년 대구 출생

    1983년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학과 졸업

    1997년 시조 동우회 '한결' 동인

    1999년 대구시조 공모전 입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 혼자 흔들리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 했다. 나 역시 얼마나 많은 날을 흔들려 왔던가. 흔들리다가 결국 범람해 버릴 때 그 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이 시조였다.

    처음엔 그러한 내 감정을 카타르시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고 그 착각에서 하나 둘 벗어나면서부터 시조의 멋과 향기에 어느새 매료당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시조를 창작한다는 것은 사물을 보는 것(見)만으로는 부족하며 인식의 확장(觀)을 획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긍정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힘든 부분이 역사관이었다. 도도한 남강의 흐름 속에서 논개의 혈흔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다부동 격전지에서는 그 날의 총성을 들을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원촌리에 가면 육사의 가슴을 그대로 내 가슴에 담을 수 있어야 했다. 현장에서의 느낌 뿐만이 아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소리와 또한 그 내면의 소리까지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미 공감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색다른 의미로 승화시켜야 할지 막막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물꼬를 틔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바로 민병도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시조 한 편을 완성하려면 얼마나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지를 언제나 몸소 실천해 보여주셨다.

    처진 어깨를 달래며 귀가하는 시간이었다. 동아일보로부터의 당선 소식은 입석표 한 장을 겨우 구해 들고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또 다른 이정표로 다가왔다. 그리고 출발 1초 전의 기차를 붙들어두고 호각을 마구 불어댄다. 단숨에 올라타는 내 모습이 보인다. 두렵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마냥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이따금 멈추어 가는 간이역에선 계절을 잊은 마른 들풀들이 나를 위로해 주리라 믿는다.

    창밖에 첫눈이 내린다. 내가 잠시라도 사랑했던 사람들 또 잠시라도 미워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저 눈발이 그들의 잠든 머리맡에 하이얀 축복으로 스며들기를 바라며 내 이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큰 용기를 준 동아일보사와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도 언제나 더 나은 작품으로 보답할 것을 함께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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