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실종

by  최문애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등장인물
    학생
    남공무원(일명 6급)
    여공무원(일명 7급)
    팀장(일명 5급)
    학생의 동료(일명 학생2)

    무대
    어느 국가기관의 사무실


    현대

    무대
    후면 가운데에 사무실 출입문이 있다.
    무대 왼쪽에 5급과 6급의 책상이 있다.
    5급과 6급의 자리 뒤쪽으로 창문이 있다.
    무대 오른쪽에는 7급과 학생의 책상이 있다.
    학생의 책상이 문가에 있다.
    무대 중앙에는 손님용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사무실 출입문 조금 열려 있다.
    그 틈으로 학생이 얼굴을 내민다.
    학생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노크를 한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학생은 조금 큰 소리가 나도록 노크를 한다.
    역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학생, 그냥 들어간다.
    그러나 사무실 안 사람들은 하던 일을 계속 할 뿐이다.

    학 생: 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학생, 여자 공무원(이하 7급)에게 가서 말한다.

    학 생: 저… 저기요…
    7 급: (그제야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든다) 어떻게 오셨죠?
    학 생: 오늘부터 업무 도우미를 하게 된…
    7 급: 아!
    학 생: 안녕하세요? 저는…
    7 급: 주임님!

    등을 돌리고 앉아있던 남공무원(이하 6급), 돌아본다.

    7 급: 여기…
    6 급: ?
    7 급: 업무 도우미…
    6 급: 어서 와요.
    학 생: 안녕하세요? 저는…
    6 급: 아차차! 잠깐만 여기 앉아 있어요.

    6급, 급하게 나간다.
    학생, 손님용 의자에 앉는다.
    사이
    7급, 문득 생각났는지 학생에게 다가온다.

    7 급: 차 한 잔 줄까요?
    학 생: 네, 주세요.
    7 급: 커피? 녹차?
    학 생: 녹차 주세요.

    7급, 나간다.
    학생, 어색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기다린다.
    7급, 들어와서 학생 앞에 종이컵을 내려놓는다.

    학 생: 고맙습니다.
    7 급: (학생을 딱하게 바라보며) 요즘 취업하기 힘들죠?
    학 생: 글쎄요. 취직하려고 해본 적이 없어서…
    7 급: 쯧쯧.
    학 생: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7 급: 왜 노력을 안 해요?
    학 생: 네?
    7 급: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되지.
    학 생: 아니, 그냥 전……
    7 급: 얼른 자리를 잡아야지. 부모님도 말씀은 안 하시지만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나이 들면 다른 거 없어. 얼른 자리 잡아서 부모님 안심시켜드리는 게 최고지.
    학 생: 그런가요?
    7 급: 그럼.
    학 생: 네…
    7 급: 마셔요.

    7급, 살짝 미소 짓고 제자리로 간다.
    짧은 사이
    6급, 들어온다.

    6 급: 오늘 오리엔테이션 있는 건 알죠? 일단 인사부터 합시다.
    학 생: 네.

    학생, 일어선다.
    6급, 헛기침을 하면 여공무원 일어선다.
    팀장(이하 5급)도 일어선다.

    6 급: 이번에 업무를 도와주러 온……(혼자 중얼) 아, 이름이 뭐랬지?
    학 생: 저요?
    6 급: (서류를 뒤적거리며) 어디 있더라…
    학 생: 저는…
    6 급: (못 찾겠다) 이쪽은 이번에 업무를 도와주러 온 학생입니다.
    7 급: 반가워요.
    6 급: 이쪽은 김 기자에요. 주로 김 기자하고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김 기자가 쓰면 교정 보고… 알았죠?
    학 생: 네. 안녕하세요.
    6 급: 이쪽은 팀장님.
    학 생: 안녕하세요.
    5 급: 잘했어요.
    학 생: 네?
    5 급: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안 되지. 밖에 나가서 청소를 하든 서빙을 하든 일을 해야 해. 일을!
    학 생: 아, 네.
    5 급: 앞으로 잘 해봅시다.
    학 생: 네.
    6 급: 그럼, 인사는 끝났으니까 이리 와요. 아, 대학졸업증명서하고 교정교열센터 수료증 가지고 왔죠?
    학 생: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다) 여기…
    6 급: (받으며 서류를 살핀다) 됐어요. (7급 옆자리를 가리키며) 앞으로 저 자리 쓰면 되요. 가서 앉아 있어요. (나간다)
    학 생: (자리에 앉는다)
    7 급: 나랑 짝꿍 됐네. 짧은 기간이지만 잘 부탁해요.
    학 생: 네, 저도요.
    7 급: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에 몰두한다)

    6급, 손에 서류를 들고 들어온다.

    6 급: (손에 든 서류를 학생에게 건네며) 뭐 따로 오리엔테이션 할 필요 있나. 읽어보면 대충 알 거예요. 일 힘들 거 별로 없어요. 요새 청년 실업자들이 하도 많잖아요. 굳이 설명할 필요 없죠?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 텐데.
    학 생: 네, 뭐…
    6 급: 국가적인 차원에서 남아도는 인력을 어떻게 좀 활용해볼까 하고 도입한 게 이 제도고요. 그냥 우리가 해도 되는 일인데, 조금 떼서 나눠 주는 거예요.
    학 생: 네.
    6 급: 그러니까 크게 부담 갖지 말고 일하면 되요. 그리고 중간에 좋은 취직자리 생기면 언제든지 그만 둬도 되니까 얘기하고요. 여기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거니까. 안 그래요?
    학 생: 네.
    6 급: 그럼 앉아서 일 봐요.

    6급, 자리로 돌아가서 서류를 분류한다.
    5급, 복사를 한다.
    7급, 기사를 쓴다.
    다들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한다.

    7 급: 다 썼다! (학생에게) 이거 교정 좀 봐줄래요?
    학 생: 네.
    7 급: 빨간펜으로 보면 되요. 연필꽂이에 있죠?
    학 생: (찾아본다) 여기 있네요.

    학생, 교정을 본다.
    7급, 책을 읽는다.
    사이

    7 급: 아, 뭐야!
    학 생: (돌아본다)
    7 급: 어쩌다 찢어졌지?
    학 생: 무슨 책인데요?
    7 급: (책표지를 보여주며) 이 책 알아요?
    학 생: 그 책…
    7 급: 하긴 워낙 유명하니까.
    학 생: 좋아하는 작가에요.
    7 급: 그래? 나랑 취향 비슷한가보다.
    학 생: 어느 부분인데요?
    7 급: (보여주며) 여기…
    학 생: 아…
    7 급: 애지중지 다뤘는데… 에휴, 속상해.
    학 생: 뒷부분 궁금하세요?
    7 급: 어머…
    학 생: 왜요?
    7 급: 꼭 아는 것처럼 얘기하네.
    학 생: 그게…

    이때, 학생 책상 앞 전화벨이 울린다.

    7 급: 뭐해?
    학 생: 네?
    7 급: 전화 오잖아.
    학 생: 제가 받아요?
    7 급: 그 전화기에 써 있는 거 안 보여?
    학 생: 여기엔 그냥…
    7 급: 끊어지겠다.
    학 생: 아…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7 급: 왜?
    학 생: 끊어졌어요.
    7 급: 그러게. 동작이 빠릊빠릊해야지. 안 그럼 나중에 취직해서도 고생해.
    학 생: 네.
    7 급: 학생은 전공이…
    학 생: 문창이요.
    7 급: 네?
    학 생: 문예창작이요.
    7 급: 국문과 아니고?
    학 생: 네.
    7 급: 전에 일하던 학생은 국문과였는데.
    학 생: 그랬어요?
    7 급: 그래서 아는구나.
    학 생: 뭘요?
    7 급: 아까 그 작품.
    학 생: 꼭 그런 건 아니고요.
    7 급: 이런 거 많이 배우죠?
    학 생: 이런 거라니요?
    7 급: 그러니까 (책을 가리키며) 이런 거…
    학 생: 아…
    7 급: 그렇죠?
    학 생: 그 작가 작품도 배웠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 배우는 게 아니라…
    7 급: 아! 아까 내가 준 거 다 했어요?
    학 생: 네?
    7 급: 아까 내가 준 거.
    학 생: 잠깐만요. 한 문장만 더 보면 되요. (종이를 건네며) 여기요.
    7 급: 음…….
    학 생: 혹시 제가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7 급: 말해 줄까?
    학 생: 많아요?
    7 급: 여기… 여기 좀 봐봐.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이건 붙여 써야 하고, 이건 단어 선택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너무 손을 안 댔다. 더 고쳐야지. 빨간색이 더 보여야 해. 아예 많이 뜯어고쳐. 그 중에 괜찮은 걸로 내가 추리게. 알았지?
    학 생: 그래도 쓴 사람 문체는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7 급: 전에 일하던 학생이 한 거 보여줄까?
    학 생: 네, 그럼.
    7 급: (보여준다) 자, 봐.
    학 생: 와…
    7 급: 왜?
    학 생: 아니요. 너무 빨개서요.
    7 급: 이렇게 해줘. 응?
    학 생: 이렇게요?
    7 급: 그래.
    학 생: 그래도 이건…
    7 급: 내가 다시 볼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해요.
    학 생: 네…

    6급, 급하게 나가다가 멈춰 선다.

    6 급: 어려워요?
    학 생: 아니요.
    6 급: 잔소리 많이 듣네.
    학 생: 처음이라…
    6 급: 국문과 나오면 뭐하고 사나?
    학 생: 저 국문과 아닌데…문창과…
    6 급: 그게 그거지, 뭐.
    학 생: 아니, 그게 좀 다른데…
    6 급: 그거나 저거나 나와서 돈 못 버는 건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요?
    학 생: 아니에요. 출판사에도 취직하고, 방송국에서 작가로도 많이들 일 하고요…
    6 급: 그것도 소질이 있어야 하지.
    학 생: 네?
    6 급: 어디 작품 써서 내보고 그랬겠네요?
    학 생: 좀…
    6 급: 아무래도 힘들죠? 전국에서 다 달려들 것 아니야.
    학 생: 쉽진 않죠…
    6 급: 번번이…
    학 생: 네?
    6 급: 그냥 공무원 공부나 하세요.
    학 생: 아니, 전…
    6 급: 물론 쉽지 않겠죠. 하지만 남들이 6시간 자면 4시간만 자고, 책 한 권 보면 난 두 권, 세 권 보고! 열심히 하면 안 될 게 어디 있어요? 안 그래요?
    학 생: 전 별로 관심이…
    6 급: 몇 살이죠?
    학 생: 스물아홉이요.
    6 급: 자기만 생각할 나이는 지났는데…….
    학 생: 네?

    6급, 나간다.
    7급, 또 기사를 준다.
    학생, 받아서 교정을 본다.
    6급, 다시 들어와 하던 일을 한다.
    5급, 또 복사를 한다.
    복사한 종이를 한 장씩 나눠준다.

    5 급: 자, 읽어들 봐요. 특히…
    학 생: (시선을 느끼고) 저요?
    5 급: 그래요.
    학 생: 왜 제가…
    5 급: 잘 읽어봐요. 도움이 될 테니까.
    학 생: 네, 나중에…
    5 급: 지금 읽어 봐요. 미루다 보면 안 읽게 돼.
    학 생: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
    5 급: 어허!
    학 생: 네?
    5 급: 소리 내서 읽어 봐요. 겸사, 겸사 다 같이 읽게.
    학 생: 전…
    5 급: 어서요.
    학 생: 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 될까?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과는 노동 시간에 비례한다. 일본인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면 연구한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노벨상을 휩쓰는 거다. 그 뿐이다. 한국인은 선진국 사람보다 훨씬 덜 연구하고 공부한다. 한국 성인 1인당 독서량이 192개국 중 166위라는 유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5 급: 좋아요.
    학 생: (다시 하던 일을 하려고 한다)
    5 급: (학생을 쳐다본다)
    학 생: (시선을 느끼고는) 왜 그러세요?
    5 급: 열심히 해요. 알았죠?
    학 생: 뭘 열심히 하라는 말씀인지…
    5 급: 무조건! 무조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종소리를 들은 학생은 두리번거린다.
    다들 나갈 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선다.

    5 급: 오늘은 어디로 가지?
    7 급: 그 집 어때요?
    6 급: 어디?
    7 급: 어제 먹었던 데.
    5 급: 거기보다는 그 옆집이 낫지.
    7 급: 그런가요?
    6 급: 그제 먹었던 데는 어때요?
    7 급: 난 그 앞집이 더 낫던데…
    5 급: 그럼 그리로 가지.
    7 급: 혹시 그 옆에 새로 생긴 집 가보셨어요?
    5 급: 그럼 거기로 갈까?
    6 급: (학생에게) 오늘은 우리랑 같이 먹어요. 내일부턴 어떻게 먹을지 궁리해 보고.

    학생, 그제야 일어서서 따라 나간다.
    텅 빈 사무실.
    점심시간이 흐른다.
    5급, 6급은 들어와 제자리에 앉는다.
    7급, 학생2를 데리고 들어온다.
    학생2,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7 급: (종이컵을 앞에 학생2에게 내려놓는다) 마셔요.
    학생2: 감사합니다.
    7 급: 취업하기 힘들죠?
    학생2: 요샌 다들 힘들잖아요.
    7 급: 그렇지. 혼자만 힘든 거 아니야. 다들 그런 걸.
    학생2: 그래도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는 게 어디에요.
    7 급: 가만 보니 관상이 아주 좋네.
    학생2: 어디 가서 물어 보면 다 좋대요.
    7 급: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요.
    학생2: 아유, 포기라니요! 전혀요!
    7 급: 그래요. 아주 좋은 자세야.
    학생2: 열심히 살아야죠. 그러는 수밖에 더 있나요.
    7 급: 잘 될 거예요.
    학생2: 그렇겠죠?

    학생, 들어온다.

    7 급: 아, 이제 와?
    학 생: 화장실 좀 갔다 오느라…
    7 급: 심심할까봐 친구 데리고 왔어.
    학 생: 아이, 감사합니다.
    7 급: 둘이 얘기해요.
    학 생: 네.

    7급, 자리로 가서 앉는다.

    학생2: 안녕하세요?
    학 생: 저 위 부서에서 일하는…
    학생2: 네.
    학 생: 점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학생2: 직원 식당 가서 먹었어요.
    학 생: 같이 일하는 분들이랑요?
    학생2: 우리 부서에는 업무 도우미가 아홉 명이나 있잖아요.
    학 생: 좋겠다.
    학생2: 네?
    학 생: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학생2: 다들 일하느라고 얘기도 잘 못 해요.
    학 생: 그래요?
    학생2: 얘기하다가 웃고 조용하다가 또 누구 하나 얘기 꺼내면 와 하고 웃었다가 조용해지고…….
    학 생: 식당 멀어요?
    학생2: 좀 걸어야 되더라고요. 십 분 정도?
    학 생: 내일부터 저도 같이 가요.
    학생2: 그러세요.
    학 생: 괜찮아요?
    학생2: 그럭저럭 먹을 만해요. 근데 나이가…
    학 생: 스물아홉이에요.
    학생2: 그럼 졸업한 지 꽤 됐겠네요?
    학 생: 아니요. 학교를 좀 늦게 들어간 데다 휴학을 자주 해서…
    학생2: 그럼?
    학 생: 올해 했어요.
    학생2: 정말요?
    학 생: 네.
    학생2: 그럼 아예 취직하고 졸업하시지 그랬어요? 나이도 있고, 그래도 학생이면 좀 나을 텐데…
    학 생: 뭐 별로…
    학생2: 전 스물다섯이에요.
    학 생: 아아… (주머니를 뒤적이며) 저, 전화번호 좀… (핸드폰을 건넨다)
    학생2: (전화번호를 누른다) 통화 누를게요.
    학 생: 내일부터 부탁해요.
    학생2: 네. 언니, 이름이 뭐예요?

    이제부터 둘은 소곤거리면서 대화한다.

    학 생: 난 이름이 둘이에요.
    학생2: 네?
    학 생: 이름이 둘이라고요.
    학생2: 어째서요?
    학 생: 하나는 작가가 되면 쓰려고 아껴두고 있어요.
    학생2: 작가요?
    학 생: 네, 작가.
    학생2: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풉.
    학 생: 왜 그래요?
    학생2: 아니에요.
    학 생: 꼭 비웃는 것 같이…
    학생2: 아니, 비웃는 건 아니고요. 좀…
    학 생: 말해 봐요.
    학생2: 아니에요.
    학 생: 괜찮아요.
    학생2: 그럼…
    학 생: 말해요.
    학생2: 언니도 나랑 마찬가지네요.
    학 생: 마찬가지라니요?
    학생2: 전 공무원 준비하거든요. 저 위에 아홉 명도 마찬가지고요.
    학 생: 그래서요?
    학생2: 집에 있을 때는 혼자라서 불안하고, 두렵고, 막막하고 그랬는데 여기 와 보니까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안심이 되더라고요.
    학 생: 나 같은 사람이요?
    학생2: 우리 같은 사람이요.
    학 생: 우리 같은 사람?
    학생2: 네.
    학 생: 그게 뭔데요?
    학생2: 백수.
    학 생: 뭐라고요?
    학생2: 백수요.
    학 생: 난…
    학생2: 아니라고요?
    학 생: 그렇다고 다 같은 건…
    학생2: 지금 여기 있잖아요.
    학 생: 그래도…
    학생2: 돈 벌어요?
    학 생: …아니요.
    학생2: 봐요.
    학 생: 난 지금도 작가에요.
    학생2: (이상하게 쳐다본다)
    학 생: 적어도 난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해요. 매일 글을 쓰거든요. 정해진 분량을 못 쓰면 밥도 안 먹어요. 잠도 안자고요.
    학생2: 그래서요?
    학 생: 네?
    학생2: 그게 밥 먹여줘요?
    학 생: 그건 아니지만…
    학생2: 뭐 먹고 살려고요?
    학 생: 제게 글은 밥보다 더 신성해요.

    순간,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 갑자기,

    학생2: 언니!
    학 생: 네?
    학생2: AB형이죠?
    학 생: 아니요. 왜요?
    학생2: 이상하네. 되게 특이한 것 같은데…….
    학 생: 네?
    학생2: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전 올라가 봐야겠어요.

    때마침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린다.
    학생2, 나간다.
    학생, 다시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한다.
    다들 제자리에 앉아서 맡은 일을 한다.
    6급은 서류를 분류한다.
    5급은 복사를 한다.
    7급은 학생과 기사를 주고받는다.
    반복되는 일들.
    긴 사이

    7 급: (교정지를 받으며) 이제야 좀 제대로 하네.
    학 생: 네?
    7 급: 잘했어.
    학 생: 괜찮아요?
    7 급: 아주 좋아요.
    학 생: 전 너무 많이 손댄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7 급: 많이 늘었어.
    5 급: 일한 지 벌써 꽤 됐잖아.
    7 급: 한 달 넘었죠?
    학 생: 네.
    6 급: 벌써 그렇게 됐나?
    7 급: 그러니까요. 꼭 오늘 온 것 같은데.
    5 급: 봐요. 하니까 되잖아.
    7 급: 그렇죠?

    학생 자리의 전화벨이 울린다.

    학 생: (신속하게 전화를 받으며) 감사합니다. 어느 국가기관입니다.
    7 급: (5급에게) 보셨죠?

    5급과 7급은 서로를 바라보며 뿌듯하게 웃는다.
    6급, 서류를 가지고 학생에게 다가간다.

    6 급: 나 좀 봐요.
    학 생: 네?
    6 급: 심부름 좀 갔다 와야겠는데…
    7 급: 주임님, 꼭 지금 보내야 돼요?
    6 급: 왜? 많이 바빠?
    7 급: 아시잖아요.
    6 급: 급한 거라서…
    5 급: 잠깐만 양보해요. 급한 거야. 중요하고.
    7 급: 할 수 없죠, 그럼.
    학 생: 어디로 가면 되요?
    6 급: 좀 먼데…(교통카드를 건네며) 차비는 이걸로 써요. 다리를 건너야 해서…늦으면 오늘은 거기서 바로 퇴근해도 좋아요. (서류를 내민다) 자, 여기. 거기 써져 있는 데로 가서 그 분한테 주면 되요.
    학 생: 아, 여기 이 분이요?
    6 급: 그렇지. 아까 팀장님 하신 말씀 들었죠?
    학 생: 네.
    6 급: 중요한 거예요. 신경 좀 써줘요.
    학 생: 알겠습니다.

    6급, 창밖을 쳐다본다.
    학생, 가방을 챙긴 후 서류를 들고 나가려고 한다.

    6 급: 잠깐만.
    학 생: 네?
    6 급: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네.

    6급,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6급은 비닐봉투를 들고 들어온다.

    6 급: 여기에 넣어서 가는 게 낫겠어.

    6급은 서류를 비닐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단단히 봉한다.

    6 급: 됐다!
    학 생: 네.
    6 급: 잘 다녀와요.
    학 생: 거기서 바로 퇴근해도 되는 거 맞죠?
    6 급: 아까 내가 뭐라고 했죠?
    학 생: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학생, 나간다.
    6급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잠시 후, 학생2가 들어온다.
    학생2는 학생이 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7급에게 말을 건다.

    학생2: 저기요.
    7 급: (쳐다본다)
    학생2: 언니 어디 갔어요?
    7 급: 언니?
    학생2: 이 자리에서 일하는…
    7 급: (조금 생각하다가) 아아, 학생!
    학생2: 네.
    7 급: 심부름 갔어요. 오늘은 거기서 바로 퇴근할 것 같던데… 무슨 볼 일 있어요?
    학생2: 급한 건 아니고요.
    7 급: 마침 잘 왔다.
    학생2: 네?
    7 급: 지금 바빠요?
    학생2: 아니요.
    7 급: 그럼 일 좀 도와줄래요? 지금 한창 바쁠 땐데 일손이 모자라네.
    학생2: 전 소속이 위에…
    7 급: 내가 잘 말해줄게.
    학생2: 그래도…
    7 급: 위에는 사람 많잖아.
    학생2: 그렇긴 하죠.
    7 급: 국문과?
    학생2: 아니요.
    7 급: 뭐 괜찮아요.
    학생2: 제가 해도 돼요?
    7 급: (학생 자리를 가리키며) 일단 앉아요.
    학생2: (앉는다)
    7 급: 거기 기사 쌓여 있는 거 보이죠? 그거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교정 하면 되요.
    학생2: 실수 하면 어쩌죠?
    7 급: 어차피 내가 한 번 더 보니까 마음 놓고 해요.
    학생2: 위에다 전화 꼭 해주셔야 해요.
    7 급: 걱정 말래도.

    학생2, 일을 하기 시작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사무실 풍경.
    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6급, 전화를 받는다.

    6 급: 감사합니다. 어느 국가기관입니다. (사이) 네?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사이) 이럴 수가! 학생!

    학생2,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학생2: 네!
    7 급: 깜짝이야!
    6 급: 학생이 실종 되었대요!
    5 급: 뭐라고? 학생 저기 있잖아.
    6 급: 저 학생 말고요. 원래 우리 부서에 온 학생 말이에요.
    7 급: 심부름은요?
    6 급: 도중에 사고가 난 모양이야.
    7 급: 어쩌다가요?
    6 급: 다리가 무너져서 학생이 탄 버스가 강에 빠졌대!
    7 급: 어머나! 어떻게 해요!
    5 급: 어떡하나. 그거 중요한 서류인데…….
    7 급: 그 버스에 우리 학생이 타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대요?
    6 급: 우리가 준 교통카드 있잖아.
    7 급: 아!
    6 급: 탑승자 명단에 어느 국가기관이라고 적혀 있대.
    5 급: 카드 때문에……!
    6 급: 근데 일이 참 난감하게 됐습니다. 글쎄 하교 시간이라 버스에 온통 학생들이 타고 있었답니다.
    5 급: 이럴 수가!
    6 급: 우리 학생을 어떻게 찾죠?
    7 급: 학생이 가지고 온 서류 있잖아요. 거기에 이름이 있을 거예요.

    6급, 책상 서랍을 뒤진다.
    학생이 건네준 서류를 찾는다.
    서류철을 꺼낸다.
    엄청난 양이다.

    6 급: 여기서 일했던 학생들이 이렇게 많았나?
    7 급: 이게 다?
    6 급: 이 일을 어쩌나?
    7 급: 학생은 가장 최근이니까 맨 위에 있지 않아요?
    6 급: 그게… 바로 가나다 순서대로 정리를 해버려서… 성이라도 알면 추릴 수 있을 텐데…
    7 급: 가만, 학생은 국문과가 아니었는데…
    6 급: 그랬어? 그럼 일단 국문과 아닌 사람들만 추려 봐야겠군.

    6급, 빠르게 서류를 분류해낸다.
    분류해낸 서류가 금세 쌓인다.

    6 급: 이런…난 여태까지 학생들이 다 국문과인줄 알았는데…
    7 급: 완전히 모래 안에서 금가루 찾기네요.
    5 급: 전혀 기억 안 나나?
    6 급: 글쎄요. 전 기억은 믿지 않아서요.
    학생2: (혼자 중얼거린다) 자기는 이름이 둘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작가가 되면 쓰겠다고…
    7 급: 작가?
    학생2: 분명히 그랬어요.
    7 급: 그럼 이름이 두 개라는 게……하나는 작가고, 하나는 학생인가?
    5 급: 이봐! 그걸 말이라고 해?
    7 급: 학생이 남겨놓은 거라고는 학생이 학생이라는 것뿐이잖아요.
    5 급: 이 사람들이!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응!
    7 급: 학생의 이름은 뭐였을까요? 학생은 몰라요? 줄곧 점심 같이 먹었잖아.
    학생2: 한 번도 이름 불러 본 적 없어요. 그저 언니라고 불렀죠.
    7 급: 세상에!
    학생2: 저보다 더 오래 언니랑 같이 있었잖아요. 옆 자리에.
    7 급: 나도 이름 불러본 적 없어. 그저 학생이라고 불렀지.
    6 급: 사실 확인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 외에 또 필요한 일이 생길 줄 몰랐어. 아이, 참. 이 많은 학생들 속에서 어떻게 학생을 찾지?

    6급, 분류해낸 서류가 더 높이 쌓인다.
    결국 포기하고 만다.

    6 급: 그런데 학생 나이가 몇이었지?
    7 급: 스물아홉 아니었어요?
    학생2: 맞아요.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으니까.

    6급, 나이에 따라 다시 분류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역시 너무 많아 포기한다.

    5 급: 학생이라기엔 나이가 너무 많네.
    6 급: 설마 학생이 정말 학생은 아니었겠지?
    7 급: 그 나이까지 학생이었을라고요.
    학생2: 학생은 이 일 할 수도 없어요.
    5 급: 누가 애초에 학생을 학생이라고 부른 거야? 응!

    전화벨이 울린다.
    6급, 급히 전화를 받는다.

    6 급: 감사합니다. 어느 국가기관입니다. 네? 학생을 발견했다고요? 버스 안에는 온통 학생들이었다고 들었는데요. 그 학생이 우리 학생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죠? 뭐라고요? (사이) 학생…….

    6급, 전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다.
    약간 흐느끼는 듯하다.

    5 급: 왜 그래? 응!
    7 급: 주임님… 왜 그러세요?
    6 급: 학생을 찾았대.
    7 급: 정말이요?
    6 급: 응.
    7 급: 어떻게요?
    6 급: 우리가 심부름 보낸 서류…그 서류를…….
    5 급: 그 서류가 왜? 응!
    6 급: 학생이 그 서류를 꼭 끌어안고 있었대요.
    7 급: 세상에!
    5 급: 그럼 그 서류 때문에……!
    6 급: 네, 그 서류 때문에 그 학생이 우리 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대요.
    5 급: 학생!
    7 급: 그 학생 그렇게 안 봤는데…….
    학생2: (뭔가 불길하다)
    5 급: 학생은 어떻게 됐대?
    6 급: 병원으로 이송 중이지만 가망은 없어 보인다고…
    7 급: 어머나!
    5 급: 학생 목숨을 서류와 바꾼 거로군.
    6 급: 생각해 보면 학생은 손이 참 빨랐어. 일을 시키면 뚝딱 얼마나 잘해내는지. 간혹 실수가 있어도 그 실수도 참 금세 만회하고는 했지.
    7 급: 교정도 얼마나 꼼꼼히 잘 봤다고요. 학생 교정지에는 틈이 없었어요. 온통 빨간색으로… 요샌 실수도 거의 없었는데…….
    5 급: 학생의 죽음은 우리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군.
    6 급: 학생을 이대로 학생인 채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7 급: 맞아요.
    5 급: 왜 이런 일이 학생에게……!
    6 급: 우리가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5 급: 분명히!
    7 급: 뭐가 있을까요.

    공무원들, 심각해진다.
    그러다 불쑥,

    6 급: 학생을 명예공무원으로 추대하면 어떨까요?
    학생2: (점점 불길해진다)
    5 급: 명예공무원!
    7 급: 그래요. 죽어서나마 공무원이 된다면 학생의 억울한 혼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5 급: 좋은 생각이야! 당장 상부에 보고해야겠어.

    5급, 나간다.
    전화벨이 울린다.

    6 급: 감사합니다. 어느 국가기관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는다) 아, 이거 큰일이네. 마감이 얼마 안 남았는데, 학생이 없으니…
    7 급: 그러게요. 학생이 못 본 것도 잔뜩 쌓였는데…
    6 급: 어떡하지. (학생2에게) 학생!
    학생2: 네?
    6 급: 학생은 왜 여기 있지?
    학생2: 도와달라고 하셔서…
    6 급: 그럼 국문과?
    학생2: 아니요.
    6 급: 안 되겠군.
    7 급: 학생은 소속이 다르잖아요.
    6 급: 그렇지.
    7 급: 대기자 명단 있잖아요.
    6 급: 전화해 봐야겠군. 당장 와줄 수 있는지. (대기자 명단을 찾는다) 여기 있군.
    7 급: (명단을 보더니) 대가자가 어쩜 이렇게 많아?
    6 급: (전화를 건다) 아, 여기 어느 국가기관인데요. 자리가 비어서요. 혹시 당장 일 하실 수 있는지요.
    7 급: 된대요?
    6 급: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아, 그렇군요. 네, 오시는 길은… 아신다고요? 네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7 급: 올 수 있대요?
    6 급: 올 수 있대.
    7 급: 잘 됐네요.
    6 급: 학생, 안 올라가봐?
    학생2: 네?
    7 급: 하던 일 다 했죠?
    학생2: 아니, 아직 좀 남았는데…
    7 급: 괜찮아요. 이제 사람 온다고 했으니까 올라가 봐요.
    학생2: 그래도 아직…
    7 급: 누가 해도 상관없으니까 걱정 말고 올라가요.
    학생2: 네…

    학생2,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인다.
    6급과 7급은 다시 하던 일을 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른다.
    5급, 들어온다.

    6 급: 오셨어요? 어떻게 됐습니까?
    5 급: 명예공무원으로 추대하기로 했지. 내가 가기도 전에 결정이 났더라고.
    학생2: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은 이름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7 급: 학생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6 급: 벌떡 일어나서 살려고 할 텐데.
    7 급: 죽었어도 벌떡 일어날 걸요.
    6 급: 일어나기만 해? 덩실덩실 춤도 추겠다.
    7 급: 가만, 근데 학생 어떻게 됐대요?
    6 급: 아직 숨넘어간 건 아니었지!
    7 급: 가서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6 급: 그러게. 그럼 진짜 살아날지도 모르잖아.
    5 급: 이미 늦었어.
    7 급: 그래요?
    6 급: 아깝네요.
    7 급: 죽을 때 죽더라도 이 소식을 알아야 하는데.
    5 급: 장례는 공무원장으로 치르기로 했어.
    7 급: 공무원장? 그런 게 있었어요?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네. 역시 공무원 되길 잘 했다니까요.
    6 급: 그래서 내가 학생한테 그렇게 충고를 했건만…
    7 급: 괜찮아요. 학생도 이제 공무원이 됐잖아요.
    6 급: 그래, 정말 잘 됐지?
    7 급: 그럼요. 뭘 더 바래요.
    6 급: 아무렴 학생보다야 공무원이 훨씬 낫지.
    5 급: 뿌듯하군.
    7 급: 학생! 아직도 안 갔어?
    학생2: 그게…
    5 급: 학생!
    학생2: 네?
    5 급: 학생도 열심히 하라고.
    학생2: (실망하여) 네…
    5 급: 무조건, 무조건!

    학생2, 그제야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긴다.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 맡은 일에 열중한다.
    사이
    노크 소리
    다들 일에 열중하느라 듣지 못한다.
    열려진 문 사이로 새로 온 학생이 얼굴을 내민다.
    새로 온 학생은 전에 그 학생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학 생: 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학 생: 저기요…
    6 급: 아!
    학 생: 아까 전화 받은…
    6 급: 어서 와요.
    학 생: 안녕하세요?
    6 급: (학생 자리를 가리키며) 자리는 저기에요. 지금 한창 바빠서…… 세세한 설명은 생략할게요. (7급에게) 아까 학생이 하던 일 이어서 하게 설명 좀 해줘.
    학 생: (7급에게) 안녕하세요?
    7 급: 일단 바쁘니까 인사는 생략하고요. 보시면 아시죠? 거기 있는 기사들 맞춤법이랑 띄어쓰기 확인하면 되요. 바쁘니까 빨리 좀 해줘요. 그렇다고 실수하면 안 되니까 꼼꼼히 좀 봐줘요. 부탁해요.
    학 생: 네. 알겠습니다.

    다시 예전과 같은 사무실 풍경.
    5급, 복사를 한다.
    6급, 서류를 분류한다.
    7급, 기사를 쓴다.
    학생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린다.
    한참동안 울리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다.

    7 급: 전화 안 받아요?
    학 생: 제가 받아야 하나요?
    7 급: 그래요.
    학 생: 제가 왜요?
    7 급: 거기 전화기에 뭐라고 씌어 있는지 안 보여요?
    학 생: 여긴 그냥 학생이라고 씌어 있는데요?
    7 급: 그래요.
    학 생: 전 학생 아닌데요.
    7 급: 받아요. 그러다 끊어지겠어.
    5 급: 거 시끄럽네. 왜 전화 안 받아요?
    6 급: 그러게요. 좀 받아요.

    전화벨, 요란하게 울린다.

    7 급: 학생!

    학생, 상관하지 않고 하던 일을 한다.
    전화벨, 더욱 요란하게 울린다.

    6 급: 학생!

    학생,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전화벨, 더더욱 요란하게 울린다.

    5 급: 학생!

    더더욱 커지는 전화벨 소리.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최문애

    최문애

    1980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과정 재학 중

  • 심사위원 한태숙(극작가·연출가) 박근형(극작가·연출가)

    문학과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응모작은 현실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물과 패륜, 도박, 사기 등을 다룬 이야기가 넘쳐났다. 그러나 무대를 염두에 둔 인간본연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은 적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가운데 안은경의 '언니의 아들'은 언니가 돼지를 출산한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출발했으나, 엉성한 진행과 에피소드 부재로 무게감을 상실하고 소재의 신선함을 발전시키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유예진 작 '뢴트겐 행 열차를 기다리며'는 시적사유가 넘치는 대사와 풍부한 비유와 상징을 심어 놓아 서늘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허약한 구성과 소년이 등장하는 설정이 식상했다. 권현진의 '논리적인 이중씨'는 이중이란 독특한 인물을 통해 어긋난 가족 이야기를 날카롭게 펼쳐보였다. 그로테스크한 대사와 대사가 비켜가며 오묘한 에너지가 발생하는 참신한 희곡이지만, 시종일관 동일한 진행 패턴이 답답함이 되고 결국에는 '지루한 이중씨'가 되는 약점을 보이고 말았다. 앞날을 기대한다.

    최문애의 '실종'은 극의 진행이 선명하고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학생의 실종사건을 무심히 다루는 냉소적인 시각이 뛰어 났으며 기성세대의 비겁함과 무능, 추악함을 통렬하게 비꼬는 수작이다. 다가올 무서운 미래를 암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실종"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 최문애

    최문애

    1980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과정 재학 중

    얼마 전 스물아홉 살 무직자를 보는 시선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것에 난감해 하더군요. 처음엔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지만 참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변해갑니다. 처음엔 백수였다가, 다음에는 건달, 심지어는 (실)업자. 재밌습니다. 인간을 어떤 단어에 가둔다는 게.

    그 어떤 호칭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건, 희곡을 쓰기 때문입니다.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너무나 소중하고 즐거운 일. 하지만 혼자만의 사적인 글쓰기가 되지 않길 바랐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아직도 실감나지 않지만 주위에서 기뻐하는 걸 보니 마음이 벅차옵니다. 그간 쓰려고 준비해두었던 이야기들을 더 힘을 내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설픈 작품을 뽑아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간 가르침을 주신 연극원 극작과 선생님들께도 감사 말씀 전합니다. 희곡분과를 함께 했던 그 시절 사람들, 예술문창 동기들, 연극원 극작과 하나뿐인 나의 동기와 선후배들, 집요, 내 친구들 그리고 석진 오빠 모두 고맙습니다. 지난 가을 함께 일했던 수많은 학생들, 잘 지내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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