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연어를 꿈꾸다

by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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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선소감
  • 시작이 끝이었나, 물길이 희미하다
    매일 밤 고향으로 회귀하는 꿈꾸지만
    길이란 보이지 않는 미망迷妄 속의 긴 강줄기

    바다와 강 만나는 소용돌이 길목에서
    은빛 비늘 털실 풀듯 올올이 뜯겨져도
    뱃속에 감춘 꿈 하나 잰걸음 꼬리 친다

    내 다시 태어나면 참꽃으로 피고 싶다
    붉은 구름 얼룩달록 켜켜로 쌓인 아픔
    흐르는 물속에 풀고 가풀막을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저한 역류의 몸짓
    마지막 불꽃이 타는 저녁 강은 황홀하다
    비로소 바람에 맡겨 눈감고 몸을 연다
    김영희

    김영희

    1967년 대구 출생

    열린시조학회 회원

  • 심사위원 이근배(시조시인)

    새로 태어나는 모국어를 위해 시조는 오래 숨겨온 가락의 새 목청을 뽑는다. 응모작들에서 껍질을 깨려는 사나운 부리를 본다. 다만 발상의 자유로움과 형식미를 찾아내는 데에 끝까지 돌파하지 못함이 눈에 띄었다. 예년에 비해 당선권에 들어선 작품들이 높은 기량을 갖춰 당선작을 뽑는데 거듭 읽어야 했다.

    당선작 '연어를 꿈꾸며'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시의 모천(母川)에 이르는 역류가 눈부시다. 회귀를 꿈꾸는 건 연어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그를 낳아준 어머니의 땅으로 돌아가려 온 몸을 던진다. 오래 두고 써왔던 낡은 글감을 전혀 새것으로 빚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서두르지 않고 시적 대상을 안으로 끌어들여 차분하게 시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시조의 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익숙하게 운용해 나가는 힘이나 낱말의 쓰임새도 고르게 놓여있다. "비로소 바람에 맡겨 눈감고 몸을 연다"의 매듭이 더욱 빛난다. 그러나 시의 감도를 높이려면 외연보다는 내면의 공간을 좀더 깊이 천착했어야 했다. 지금부터가 출발점이고 시조의 넓은 수면에 역류의 속도를 더욱 내주기를 바란다.

    마지막까지 겨뤘던 작품으론 박해성의 '빗살무늬토기', 배종도의 '청자압형수적', 황윤태의 '돌아오지 않는 소리', 설우근의 '흡수불량증후군', 배용주의 '자전거는 둥근 것을 좋아한다' 등이 실험정신을 곁들인 탄탄한 역량을 보여줬음을 부기한다.
  • 김영희

    김영희

    1967년 대구 출생

    열린시조학회 회원

    응모작품을 퇴고하고서 몹시 아팠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부끄러움과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한 재능을 탓하며 온몸이 무거웠습니다. 제 마음에 드리워진 무게는 결국 이틀 밤낮을 꼬박 앓게 했지만, 제 마음을 비우게도 했습니다.

    신춘문예를 통과하고 문학 내공의 키도 훌쩍 자라 언젠가 시집을 내게 된다면 모든 이가 호응할 시조를 쓰리라 다짐했습니다. 이제 그 꿈을 향해 한 발을 내딛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꿈의 문을 열어준 동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시 쓴다는 핑계로 거실이며 안방 여기저기 널브러진 책과 잡동사니들을 기꺼이 눈감아주고 치워주기까지 한 그이와 아들 지성, 지강을 뜨겁게 포옹해주고 싶습니다. 시조의 세계로 이끄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윤금초 선생님, 시의 깊이를 일깨워 주신 이지엽 선생님, 처음 시조를 접하게 해준 주영숙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격려와 관심으로 용기를 북돋워준 민족시사관학교 선배 문우들, 함께 습작한 친구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헛헛한 세상과 쓸쓸한 영혼들을 달래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나를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주어진 길을 걷겠다는 다짐으로 오늘의 벅찬 희열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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