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자모의 검

by  여정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혹자가 말하길,입속은 자객들의 은신처란다.그들이 즐겨쓰는 무기는 ‘ 영혼을 베는 보검’으로 전해오는 자모의 검이란다.을씨년스런 날이면 자 객들은 검은 말을 타고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어느 심장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단다.천지를 울리는 말발굽소리 어느 귓가에 닿으면 그들은 어김없 이 이성의 칼집을 벗어던지고 자모의 검을 빼어든단다.바람을 가르는 소 리 한 영혼의 목을 뎅거덩 자르고나면 자객들은 섬¿한 미소로 조의금을  전하고 또 다른 심장을 향해 말 달려간단다.그날에 귀머거리는 복 있 을진저,자객들의 불문율에 있는 ‘귀머거리의 목은 칠 수 없다’는 조항 에 따름이라.

       혹자가 말하길,자모의 검에 찔린 사람들은 귀부터 썩어간단다.귀가 썩 고 뇌가 썩고 심장이 썩고,썩고 썩어 생긴 가슴의 커다란 구멍으로 혹 한기의 바람이 불어대고 수많은 까마귀 떼의 날개짓이 장대비처럼 내린단 다.그 부리에 생살이 뜯기고 새하얀 뼈를 갉히며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 져 버린단다.그날에 수다쟁이는 화 있을진저,더 많은 까마귀 떼를 불러  들임이라.

       자객들의 말발굽소리 요란한 날이면 너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두손으 로 귀부터 틀어막고 묵직한 바위 뒤에 숨어 최대한 몸을 낮춰라.그리하 면 자객들이 탄 검은 말들이 너희를 비켜가리니,자모의 검일망정 결코  너희를 해(害)치 못 하리라.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이 말로 더불어  너희가 그날에 ‘복 받았다’일컬음을 받을지니,부디 그날에 너희에게 복  있을진저,혹자의 말이니라.
    여정

    여정

    본명 박택수

    70년 대구 출생

    계명전문대 경영학과 졸

    현재 '시나인'동인

  • 시/최승자 이남호

    마지막으로 두명의 응모자를 두고 논의를 하였다.김충규와 여정은 각각 대조적인 개성과 장 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의 시를 당선시킬 것인가가 쉽지 않았다.두사람 다 시적 역 량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김충규의 시들은 안정감이 있다.응모작 가운데서 '성''우물''낙타'같은 작품들이 돋보인다.개성 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돋보인다.그러나 김충규의 시들은 내 용에 걸맞는 형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산문시의 형식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 미나 감정의 구조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불필요한 진술들이 언어의 긴장을 해 치는 곳이 종종 눈에 뜨인다.
    여정의 시들은 강렬하다.그 강렬함은 아마도 체험의 강렬함에서 오는 듯하다.여정의 시들은 형식이 오히려 서툰 것처럼 보이지만 그 형식은 내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음 식환상'이나 '비가'같은 작품들이 특히 그러하다.언어나 형식에 대한 성실한 천착이 부족한 듯 하면서도 내용과 상상력이 언어나 형식을 압도해 버리는 측면이 있다.
    한편한편의 완결성과 안정감을 취한다면 김충규의 시가 앞선다.반면,시적 인상의 강렬함이라 는 면에서는 여정의 시가 앞선다.단 한편만을 뽑는 신춘문예의 속성을 고려한다면 김충규의 '낙타'를 뽑아야했을 것이다.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여정의 시에서 좀 더 많은 가능성을 보았 다.
    고심 끝에 여정의 '자모의 검'으로 정했다.여정이 당선된 이유의 대부분은 '자모의 검'에서 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자모의 검' 한편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여정의 다른 작품 또는 앞으 로의 활동을 지켜봐주기를 부탁드린다.당선자의 문운을 빈다.
  • 여정

    여정

    본명 박택수

    70년 대구 출생

    계명전문대 경영학과 졸

    현재 '시나인'동인

    크고 헐렁한 옷, 그 뜻을 헤아려

    막상, 당선 소식을 듣고 나니, 내 옷이 너무 커져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이렇게 큰 옷을 마련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 뜻을 헤아려 앞으로 살찌우기에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언젠가 그 옷에 잘 어울리는 모습 으로 그 분들을 뵙고 싶다.

    지난 몇년을 돌이켜 보면, 현실과 부대끼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투병이 벌어 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책을 읽고 동인 활동을 하는 게 전부였다. 시에 가까이 가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시란 놈은 늘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더 멀리 달아나 버리곤 했다. 혼란과 좌절이 거듭됐다.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이끌어준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시나인 동인, 그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혼란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것은 내 시가 너무 미흡하다는 것, 그리고 갈 길이 너무 멀다는 것, 그래서일까? 그동안 쓴 시들을 다듬어 신춘문예에 응모하면 서도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았다. 뜻밖의 소식을 듣고, 솔직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족이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갔고, 아버지의 모습이,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랐었던 형님, 그리고 형수님, 누나, 조카인 효민이 소희까지.

    많은 분들께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그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특히 시작에 많은 도움을 주신 시와반시 문예대학의 강현국, 구석본, 박재열, 세 분 선생님과 문인수, 송종규 선생님, 앞선 기수의 선배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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