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그녀들의 저녁식탁

by  오화영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프롤로그 주방, 밤

    경쾌한 뮤지컬 M.

    상추며 야채의 물기를 턴다. 슬로우 모션. 물방울.

    마치 성찬을 차리듯이 접시며 테이블을 세팅한다.

    수저며 젓가락, 크리스탈 물잔과 냅킨.

    반찬이 든 접시를 테이블에 하나, 둘 놓는다.

    밝은 불빛. 맛있는음식이 빚어내는 동화적인 분위기.

    S#1 도로, 밤

    정신없이 뛰는 혜리.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횡단보도를 인도를 뛰어가는 혜리. 불밝힌 상점의 모습들이 배경.

     

    S#2 주방식탁, 밤

    잘차려진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정자. 시계의 초침 소리만 재깍거린다. 눈을 감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정자. 뚱뚱한 몸매에 후즐그레한 차림, 파마기가 다 풀어진 단발머리를 하고있다.

     

    S#3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밤

    안내려온다. 발을 동동 구르는 혜리. 비상계단으로 뛰어간다.

    이후, 비상계단을 연신 뛰어오르는 혜리.

     

    S#4 주방식탁, 밤

    냅킨으로 수저를 서서히 닦는 정자. 벽시계는 여덟시 오초전.

    '쾅' 눈을들면 땀에 절은 얼굴로 히죽웃고 있는 혜리. 식탁에 앉으면

    재깍, 12에 달라붙는 초침.

    말없이 수저를 드는 정자, 혜리.

     

    S#5 거실

    뮤지컬 '캣츠' 공연실황 비디오. 경쾌한 뮤직, 화려한 무대.

    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 넋을 잃고 바라보는 정자.

    따라 노래하고 몸을 흔든다.

    정자 (N) 나의 꿈은 브로드웨이의 여가수였다. 코리아가 아닌 뉴욕의.

    S#6 음악실, 회상

    몸을 흔들며 노래중인 정자. 크게 벌린 입 C. U. 단정한 교복. 피아노 반주중인 이선생. 입을 헤벌리고 듣고있는 순이. 모두 스톱.

    상기된 정자. 감탄한 이선생.

    선생 넌 타고난 뮤지컬 배우야. 부럽구나. 내가 살리메르라도

    된 기분인데?

    정자 ...... (수줍게 웃는다)

    순이 무대의상은 나한테 맡겨. 기성복은 맞는게 없을테니까.

    정자 (N) 누구나 나의 재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단 두 사람...

    ...

     

    S#7 식탁, 회상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혜리, 한씨 (20년 전). 뿌뜻한 정자.

    혜리 농담이지?

    한씨 뭐 잘못먹었니?

    정자 대학교만 들어가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학비는 제손으로 벌께요.

    조금만 도와주세요. 엄마. 제발요~

    혜리 (벌떡 일어나며) 엄마, 과외비 줘.

    한씨 싱크대 서랍에 있어. 꺼내가.

    정자 혜리가 받는 과외비 오분의 일만 들면돼요~ 음악선생님이 특별지도 해주신다고 그랬어요.(애원한다)

    한씨 안돼. 길가는 강아지를 붙잡고 물어봐라. 너한테 배우가 어울리기나 하니?.....

    정자 엄마......

    한씨 시끄러! 주제를 알아야지!

     

    S#8 정자방, 밤, 회상

    크게 벌린 입 C. U. 노래하는 정자. 문을 벌컥여는 혜리.

    혜리 시끄러! 공부 방해되잖아!

    정자 나도 공부중이야.

    혜리 공부는 무슨~ 순 날라리 주제에.

    정자 ....... (윽박지른다)

    한씨 애 공부하는데 좀 조용히 해. 그렇게 악쓸래면 차라리 운동장에라도

    가든지...... 잰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몰라, 지겨워.(뒤돌아 간다)

    정자 ...... (참담하다)

    혜리 ...... (메롱한다)

     

    S#9 슈퍼마켓 야채코너, 현실

    혀를 메롱거리는 남아1. 시식용 녹두전을 우물거리는 정자, 남아1을 째려본다. 찔금 무서워하지만 혀를 '메롱'하는 남아1.

     

    S#10 슈퍼마켓 안

    쇼핑카트에 수북히 쌓이는 노인용 기저귀. 남아1, 계속 정자를 따라 다니면서 온갖 표정으로 정자를 놀린다.

    정자 (E)버르장머리 없는애들은 딱 질색이다.

     

    S#11 거실

    신문을 보는 김사장, 혜리가 김사장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좋아죽겠는 김 사장, 그러나 신문을 보기가 어렵다.

    뚱뚱한 정자(단발머리), 연신 사과를 먹으면서 혜리를 째려본다.

    사과를 깎던 한씨, 그런 정자를 노려본다.

    한씨 애좀 봐~ 아주 사람 잡아먹겠네.

    정자 아빠가 신문을 못보시잖아요.

    혜리 바보!

    한씨 애교도 못떠는 주제에...... 쯔쯧......꼴을 못봐요.

    김사장 음음!

    한씨 빨리가서 설겆이나 해! 어서!!

    정자 ...... (풀죽어서 일어난다)

    혜리 잰 곰같애. 그치~ 아빠~

     

    S#12 슈퍼마켓 계산대

    '띠띠' 바코드 입력중인 계산원. 이제 남아1은 여자1의 치마꼬리를

    분잡고 늘어진다. 뒤에선 정자.

    남아1 딱 하나만 엄마~ 잉잉잉......

    여자1 안돼. 이빨 다 썩었잖아.

    계산원 오만 이천원입니다. 손님.

    여자1 못살어. 빨리 하나 가서 집어와.

    계산원 오만 이천원입니다.

    여자1 조금만 기다려요......(지갑을 열며) 얼마라구요?

    계산원 ...... 오만 이천원인데요.

    정자 ....... (눈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남아1 여기!!

    뛰어오는 남아1. 순간적으로 발을 거는 정자. 와당탕 넘어지는 남아 1. 놀란 여자1. 회심의 미소를 짓는 정자.

    정자 (E) 애새끼 교육 잘 시키란 말야. 이 여편네야.

     

    S#13 구내식당

    나란히 식판을 들고 음식을 덜어넣는 김우식, 혜리.

    같은 회사 명찰이다. 준수한 외모의 김우식. 주변을 의식한듯

    살피는 혜리. 주책없이 자꾸붙는 김우식, 장난스럽다.

    혜리 (나즈막히)떨어져.

    김우식 우리 심사부에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 영순위가 뭔지알어?

    혜리 (웃으며) 그걸 말이라고해? 대기업 부실채권이잖아?

    김우식 넌센스로 맞춰봐.

    혜리 알았다. 우리는 왜 멍청할까?덕분에 보따리 싸게 생겼지.

    김우식 바로 너야.

    혜리 ...... (찡그린다)

    김우식 저녁 여덟시만 되면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집으로 뛰어가는

    미녀.

    혜리 (속삭인다)한마디만 충고할께.

    김우식 ...... (어깨를 으쓱)

    혜리 남의 일에 상관하지마. 불쾌해.

     

    S#14 커피자동판매기앞

    늘씬한 혜리 다리 C.U. 커피를 마시던 정부장, 능글맞은 눈으로 탐색한다. 무표정한 혜리, 일부러 모델같은 워킹자세로 걸어간다.

    S#15 복도

    늘씬한 다리. 하히힐 C. U. 세련된 모습의 혜리.

    맞은편에 다가오던 김우식, 윙크하며 메모쪽지를 혜리의 화일안에 쑤셔넣는다.

    김우식 (E) 305호. 로즈버드.

     

    S#16 305호실

    반대편 침대에 걸터앉아 각각 옷을 입는 혜리, 김우식.

    시계를 들어보는 혜리, 한숨을 쉰다.

    태평한 김우식, 콧노래까지 부른다.

    쿠션을 김우식에게 던지는 혜리, 짜증났다. 장난스럽게 피하는 김우 식.

    S#17 안방

    창문에 매달려있는 한씨. 풀어헤친 머리에 피골이 상접한 몰골.

    번들거리는 눈으로 창문을 잡아제낀다. 안열린다. 계속 잡아제낀다.

    손에 피가 날정도인데. 오열하는 한씨.

    한씨 우......우......죽......

     

    S#18 현관앞

    문손잡이를 잡아주는 최씨. 양손에 짐을 들고 최씨를 바라보는 정 자.순간 묘한 긴장감. 서로를 꿰뚫어 보는 듯한 표정들.

    불편한 정자. 차분히, 계속 정자를 바라보는 최씨.

    최씨 잘 계시나?

    정자 누구 말씀이세요? ....... 물론 아주 잘계세요.

    최씨 그냥 궁금해서. 얼굴 잊어버릴꺼 같애.

    정자 그 얼굴이 어디 가겠어요? 조금만 쾌차 하시더래도 친구분들을 초대 했을 텐네요......

    최씨 잘 있다니. 다행이군. 들어가지?

    정자 그럼, 살펴가세요. (이를 앙다문다)

    최씨 (가다가)어쩌면 이사를 할지도 모르겠어.

    정자 (E)듣던중 반가운 소리네. 끈질긴 영감태기 같으니라구.

     

    S#19 안방문 앞

    '쾅쾅쾅' 계속 두드린다. 잠시 노려보는 정자, 슬쩍 지나친다.

     

    S#20 엘리베이터 안

    '윙' 올라간다. 따로 떨어져서 나란히 서있는 김우식, 혜리.

    풀린 표정의 김우식과 반대로 야무진 표정의 혜리.

    김우식 괜찮았지?

    혜리 정신차려. 적진에 들어왔다구.

    김우식 포로로 투항하고 싶은 심정이다. 헤헤......

    혜리 차라리 자폭해. 그럼 깨끗하잖아.

    김우식 가풍이 그런거야? 은근히 살벌한데.

    혜리 (E) 우리집 생존방식이야.

     

    S#21 주방

    칼을 든 정자. 도마위에 놓인 고등어를 노려본다. 번뜩이는 광기.

    내려친다. 휴지를 뜯어 칼에 묻는 고등어 피를 닦는다. 이때, 쾅쾅 두드리는 소리. 그대로 도마에 칼을 꼿는 정자. 충격에 흔들리는 칼

    자루.

     

    S#22 안방

    맨다리인 한씨. 우왁스럽게 시트를 끌어덥는 정자. 기저귀를 뭉쳐서 쓰레기통에 던진다. 불안에 떠는 눈으로 정자를 바라보는 한씨.

    정자가 돌아서는 찰나에 손목을 억세게 잡는다.

    한씨 .......약 줘...... 제발......

    정자 난 살인자가 아냐. 엄마. (음산하다) 죽고싶으면 혼자서 죽어.

    날 끌어들이지 말란 말야!

    한씨 제발....... 약.......

    정자 고 이쁜년한테 죽여달라구 해봐. 눈도 깜짝 안하고 베란다밑으로 손가락 하나로 밀어버릴껄!

    한씨 아냐! 그럴리가.......

    정자 모처럼 제정신이 드셔서 하는 말인데 이쁜년이 엄마가 싫대. 미워 죽겠데. 아니! 죽이고 싶대! 몰랐지?

    한씨 ...... (두려움에 고개를 흔든다)

    정자 아직도 여전히 이쁜년이야! 십오년동안 똥걸레 빨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준게 누군데? 엄마말대로 정말 싹수가 없군!

    한씨 ....... (두렵다)

    정자 난 절대로 엄말 안죽여. 웬지 알어?

    한씨 .......

    정자 뿌린대로 거두는 거야. 엄마. 엄마는 짐승처럼 살 자격이 있어~

    (으르렁)

     

    S#23 레스토랑, 회상

    희희낙낙하는 혜리. 그옆에 이뻐죽겠다는 듯이 혜리의 머리를 만지는 한씨. 맞은편에 아버지(김사장), 흡족한 표정.

    말없이 냅킨만 잡아뜯는 정자.

    한씨 십이대 일이었어요. 굉장했어요~

    혜리 엄만, 내가 누군데......

    김사장 역시 아빠 딸 답다.

    정자 ....... (고개만 숙인다)

    김사장 정자는 재수할꺼냐?

    한씨 재수는요. 아무나 재수해요~ 취직 자리나 알아봐야죠.

    정자 ...... (노려본다)

    김사장 절대로 딴따라 학과는 안돼. 단념하고 얌전히 공부나 하던지 아니면

    아빠 회사에 나와. 할일은 많으니까.

    혜리 재가 무슨 일을해요?

    한씨 싹수가 있는 애라면 자기 자신은 헤아릴줄 알야야지~

    정자 ...... (노려본다)

    한씨 복사나 하고 심부름이나 하면 되겠네. 됐어. 머리썩이고 공부할

    필요없어. 넌 공부 체질도 아니잖아?

    정자 ....... (눈물이 그렁그렁)

    김사장 축배나 들자구!

     

    S#24 같은장소, 회상

    공중에 부딪히는 세 개의 와인 글라스.

    정자 (N) 난 그때의 피빛 액체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들은 기쁨에 취해 내 심장이 터져 나가는 소릴 듣지못했다. 난 와인대신 내 피를 마셨다.

     

    S#25 엘리베이터 안, 회상

    촌스러운 정자. 세련된 대학생 혜리. 따로 나란히 서있다.

    혜리 옷좀 사입어. 월급타서 다 뭐해?

    정자 ...... (앞만본다)

    혜리 하긴 파는 옷들은 맞는게 없겠지? 그치?

    정자 한번만 이라도 언니라고 불러봐.

    혜리 웃겨......치!(웃는다)

    순간, 혜리의 뺨을 갈기는 정자. 뺨을 잡은 혜리, 충격받았다.

    정자 이래도 웃기니?

     

    S#26 도로, 밤, 현실

    차량으로 꽉 막힌 도로. 빵빵거리는 차들. 수신호로 교통정리중인 경찰관.

     

    S#27 자동차 안, 밤, 현실

    연신 시계를 확인하는 혜리, 손톱을 물어뜯는다. 안절부절.

    같이 불안한 김우식.

    김우식 혹시 수녀원에서 출퇴근하는거 아냐?

    혜리 지금 농담할 기분 아냐.

    김우식 완전히 크레믈린이군.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문같애.

    혜리 내 작전이 성공했다는 소리같이 들리는데.

    김우식 도대체 왜그러는거야? 한번 속시원하게 말좀 해봐.

    혜리 우리집 규칙일 뿐이야.

    김우식 우리 규칙은? 십팔세가 지난 성인은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을 갖는

    줄 아는데?

    혜리 ...... (창밖만 본다)

    김우식 그냥 몸만 들어가면 돼. 하다못해 전기밥솥까지 안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구!

    혜리 징징댈꺼면 다른 안주인 찾아봐.

    김우식 대단하군!

    혜리 그거빼면 난 죽은 목숨이야. 멍청씨.

     

    S#28 주방식탁, 밤

    식탁위에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를 오려놓는다. 중앙엔 고등어튀김

    대가리까지. 만족한 표정의 정자. 벽시계를 보면 여덟시 오분전.

    괴기스러울 정도로 무표정한 정자. 의자를 당겨앉는다. 침묵.

     

    S#29 목욕탕, 밤

    '쏴' 손을 씻는 혜리. 외출복 그대로다. 입꼬리를 올리고 일부러 표정을 만드는 혜리.

    혜리 심사부 그 최과장, 아주 골때리는 인간이야. 꼭 퇴근시간만 돼면

    사람 붙잡고 늘어진데니까. 할수 없지. 직장이라고 다닐래면 참는 수밖에......

     

    S#30 주방식탁, 밤

    시금치 나물을 깔짝거리는 혜리, 째려보는 정자. 정신차리고 한입 가득 듬뿍 집어먹는 혜리. 정자는 고등어 대가리와 뼈를 들고 입으로 살을 갈라먹는다.

    혜리 (E) 고양이가 따로없군. 역겨워.

    정자 (E) 도대체 낮에 뭘처먹고 다니는 거야?

    혜리 역시 언니 솜씨가 최고야. 식당 밥은 그야말루 밥맛이야. (찡그린 다)

    정자 (우물거리며)도시락 싸줄까?

    혜리 됐어. 남들 다먹는데 그냥 먹지 뭐. 언니만 힘들잖아.

    정자 (E) 반찬 냄새나는 도시락통을 들고 다닐 니가 아니지.

    혜리 엄만?

    정자 뭘 알고 싶은거야?

    혜리 ......그냥.

    정자 하루에 한번 얼굴 도장이라도 찍는게 그렇게 힘드는 일이야?

    혜리 남은 똥기저귀에 오줌냄새에 절어사는데, 그말 안해도 알어.

    정자 돈 몇푼 벌어다 준다고 꼴값 떨지마.

    혜리 (E) 이 악마.

    정자 (E) 꼬리 열달린 여우야.

     

    S#31 안방, 밤

    허겁지겁 밥을 퍼먹는 한씨. 숟가락을 내팽기치고 손으로 퍼먹는다.

    윽하는 혜리. 한씨의 땀에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순간, 한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외면하는 혜리.

    다시 흐리멍텅해지는 한씨의 눈. 시트위에 쏟아지는 밥알들.

    열린 방문으로 두 사람을 살피는 정자의 무표정한 얼굴.

    혜리 미치겠어~ (머리를 쥐어뜯는다)나같으면 벌써 자살했겠다~

     

    S#32 정자방, 밤

    손바닥에 놓인 수면제 두알. 털어넣고 물을 마신다.

    스탠드를 끄고, 침대시트를 끌어 덮는다. 정적.

    쿵쿵. 문두드리는 소리.

    정자 (N)정확하게 일곱시간. 두알의 수면제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평화를......

     

    S#33 혜리방, 밤

    머리에 루프를 말은 혜리. 손거울로 얼굴을 요리조리 비처본다.

    한숨. 쿵쿵. 익숙하게 귀에 솜뭉치를 끼운다. 스탠드 끈다. 적막.

    혜리 (N) 내나이엔 남편과 한두명의 아이들, 그리고 아파트와 승용차가평균율이다.

    난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하다......

     

    S#34 엘리베이터 안

    '윙' 내려간다. 나란히 선 혜리와 정자.

    산뜻한 위킹우먼 스타일의 혜리. 중년부인같은 정자.

    늘씬한 다리며 웨이브진 머리, 짧은 미니스커트를 곁눈질하는 정자.

    시침떼는 혜리. 침묵.

    혜리 통장 확인해봐. 오늘 월급날이잖아.

    정자 십프로 올려.

    혜리 홧?

    정자 고물가 시대야. 다른건 몰라도 먹는건 제대루 먹어야지.

    혜리 그렇겠지. 언니가 매일 해치우는 과자값만 아껴도 그 정돈 될껄?

    정자 유세하는거야?

    혜리 ......미안해.

     

    S#35 커피숍

    썬그라스를 낀 순이. 화가 난 정자. 커피를 마신다.

    정자 또 몇주야?

    순이 안 가봤어. 이젠 창피해서 병원 근처에도 못가.

    정자 이유가 뭔데? 또 저번처럼 된장국에 멸치대가리 들어갔다구 팼니?

    순이 초인종을 눌렀는데 내가 못들었거든 ...... 수면제 먹고 겨우 잠들었었어......

    정자 너 변태니?

    순이 ...... (놀랐다)

    정자 이 기집애야, 그렇게 짐승처럼 맞으면서 뭐하러 살어? 이제 니꼴보는 것두 지긋지긋해! 제발 썬그라스 안낀 맨 얼굴로 날 만날순 없는거니!!

    순이 ...... (말없이 썬그라스를 벗는다)

    정자 쓰는게 낫겠다.

     

    S#36 커피숍앞 도로

    시동을 거는 순이,썬그라스를 썼다. 인도에 서서 바라보는 정자.

    순이 차 새로 뽑았어.

    정자 무슨 말이 듣고 싶은거야?

    순이 그냥 ...... 적어도 내가 가난뱅이가 아니란 사실은 참을만해.

    정자 부자라고 다 맞고 살진 않아. 부자라고 다 마누랄 패는것두 아니구.

    순이 .......모든걸 다 갖을 순 없는거야. ......인생이......

    정자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

    순이 ......

    정자 그놈의 인생이란 것이 너와 나를 갖고 논다는 사실말야.

     

    S#37 은행빌딩 전경

    대형빌딩. 본점이다.

     

    S#38 사무실 안

    컴퓨터를 두드리는 혜리. 커피잔을 들어보면 비었다. 이때, 김우식이 커피를 놓는다. 혜리 돌아보면 일에 몰두하는 직원들.

    의자에서 일어서는 혜리. 커피잔을 든다.

     

    S#39 옥상

    나란히 서서 커피를 마시는 혜리, 김우식.

    담배를 꺼내는 김우식, 혜리에게 권한다.

    김우식 이젠 더이상 못참겠어. 집에서들 난리야.

    혜리 ......

    김우식 말좀 해봐.

    혜리 결혼은 절대 불가하다고 했잖아. 까마귀 고기 먹었어?

    김우식 그게 벌써 몇년전인데?

    혜리 안돼는건 안돼는 거야.

    김우식 맨날 지저분한 여관방 찾아다니는 것두 역겨워. 혜린 어때?

    취향이 원래 그런건 아니겠지?

    혜리 그럼 지금 당장 결혼이 가능할 여잘 찾아봐. 깨끗한 안방에서 합법 적으로 하면 돼잖아!

    김우식 ...... (노려본다)

    혜리 결혼은 절대 안돼.

     

    S#40 거실

    말없이 커피잔을 입에대는 정자. 이모, 담배를 꺼내문다.

    이모 결혼은?

    정자 ...... 이몬 어떠세요?

    이모 나보고 양로원이나 들어 가랜다. 뭐? 깨끗하고 편하고, 의사가 하루 종일 대기하고......뭐래더라? ...... 경비도 꽤 들어간대.

    정자 아직 젊으시잖아요?

    이모 오십댄 힘든 나이야. 젊은것두 아니구, 그렇다고 늙은 것두 아니구. 절망의 시기지.

    정자 그렇게까지 힘드신줄 몰랐어요.

    이모 내가 지금 메기앞에서 수염 자랑하고 있는거니? 말두 안돼.

    정자 ......

    이모 니 엄마 알고보면 불쌍한 여자야.

    정자 어떤 기준으로요?

    이모 세상엔 말할 수 없는 일들도 많어. 언니가 너한테 하는 태도를 보면 밉다가도 한편 불쌍해져.

    정자 핏줄의 아량이겠죠.

    이모 그래두 너무 심했어. 정도가 지나쳤지......

    S#41 거실, 회상

    화려한 드레스를 몸에 대보는 혜리(21세).

    넋을 잃고 바라보는 한씨.사과를 먹던 정자, 돌씹은 표정이다.

    정자의 안색을 살피는 이모.

    한씨 공주가 따로 없네~

    혜리 그럼 얼마짜린데. 엄마는......

    이모 정자는? 해줄래면 같이 해줘야지.

    정자 전 저런옷 별루에요.

    한씨 애는 졸업파티니까 그렇지. 재가 무슨 드레스 입을 일이 있냐? 어울리기나 해?

    정자 ...... (눈물이 그렁그렁)

    혜리 언니한테 맞는것두 없어요. 특수 제작해야 된다니까요.

    한씨 왜 너두 입고 싶니?

    정자 ...... (일어난다)

    한씨 지두 여자라구...... (중얼중얼)

    이모 내가 장담하는데 언니 나중에 정자한테 효도 받을꺼야. 재가 아니라구. 두들겨 패서 키운자식 한테 효도 받는데잖우?

    한씨 악담해라~

     

    S#42 목욕탕 안

    욕조안에서 덜덜 떠는 한씨. 한씨의 등을 우왁스럽게 미는 정자.

    물을 좍좍 뿌린다.

    정자 차라리 날 낳지 말지그랬어!

    한씨 (초점없는 눈) ......어어......

    정자 날 자식으로 키운게 아니라 노예로 사육한거야! 정말 약아 빠졌어!!

    한씨 .......(두렵다)

    정자 그 알량한 핏줄로 날 얽어매놨으니까!

    한씨 ...... (머리를 무릎에 파묻는다)

    정자 난 핏줄을 증오해~엄마도 마찬가지야~ (으르렁)

     

    S#43 안방

    시트를 거칠게 잡아서 구석에 던진다. 물이 질질 흐르는 얼굴로 구석에 오그리고 앉은 한씨. 진공청소기로 침대 매트리스며 벼개, 이불의 먼지를 빨아낸다. 활짝 열린 창문. 한씨의 눈이 자꾸만 그곳으로 향한다. 청소기 스톱. 창문을 꼭꼭 잠그는 정자. 자물쇠까지.

    실망하는 한씨.

    정자 그런 눈으로 날 보지마. 설마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렸다고 착각하는건 아니겠지?

     

    S#44 베란다

    까마득히 보이는 아파트 주차장. 무표정하게 밑을 바라보는 정자.

    바람에 흩날리는 정자의 머리카락.

    정자 (N) 정작 뛰어내리고 싶은건 나다. 하루에도 수십번 내 머리통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혀 터지는 기분을 느낀다. 아플까?

     

    S#45 주방

    날렵하게 도마질 중인 정자.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순간,

    정자 아얏! (보면 피다)

     

    ``` S#46 주방식탁, 밤

    김치를 찢어서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는 정자. 입맛이 가신듯

    수저를 놓는 혜리. 째려보는 정자. 간신히 된장국물을 떠먹는 혜리.

    정자 피맛이 느껴지지 않아?

    혜리 무슨 말이야......

    정자 많이는 아니더래도 한방울 정도의 내 피가 그 된장국 안에 들어가있지.

    혜리 ....... (으웩하는 표정)

    정자 고의는 아니였어. 그런 눈으로 날 보지마. 이미 엄마한테 충분히 질렸으니까.

    혜리 ...... (고개를 젓는다)

    정자 마저먹어. 니 뒤처리까지 내가 해야돼니?

    혜리 ...... (마지못해 수저를 든다)

    정자 말귀 하난 확실하게 알아 듣는구나. 수재답게.

     

    S#47 한씨방, 회상

    이마에 수건을 맨채 누워있는 한씨. 그 앞에 앉은 혜리, 정자.

    머리에 흰핀을 꼿았다. 벽엔 김사장 영정.

    책가방을 들고 일어나는 혜리. 눈치보며 따라 일어나려는 정자.

    한씨 넌 자존심도 없니? 남의 손에 넘어간 회산 나가서 뭐하려구......

    정자 제 직장이에요.

    한씨 나도 몸이 이렇게 됐으니 이제 니가 집안 살림 맡아서 해라......

    정자 혜린요?

    한씨 잰 학생이잖아!

    정자 ...... (도로 주저앉는다)

    한씨 끙! ......우리집의 혜리는 유일한 희망이다...... 알아 들었어?

     

    S#48 공원

    구석의 으슥한 나무아래. 김우식차 심하게 출렁인다.

     

    S#49 자동차 안

    브라우스를 여미는 혜리.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담배를 거내무는 김우식. 담배를 뺏어가는 혜리. '푸' 날리는 담배연기.

    혜리 더는 못하겠어. 이젠 끝이야.

    김우식 .......

    혜리 나도 이러는 내가 환멸스러워.

    김우식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이것두 아니고 저것두 아니고, 그 틈새에 끼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거야?

    혜리 남잔 밑질거 없잖아?

    김우식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 그냥 살아가는게 인생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이루며 살아가는게 인생이라면 우린 엄청 밑지는 상황이야.

    혜리 난 누구한테 닥달당하고 사는건 질색이야. 더 보태지마.

    김우식 ......

    혜리 (문열고 나간다) 잘 살라곤 말 못하겠어. 난 천사표가 아니거든.

     

    S#50 사무실 안

    벽시계, 여섯 시. 퇴근준비를 하는 혜리. 정부장, 책상위에 걸터 앉는다. 쏘아보는 혜리. 능글맞은 정부장.

    정부장 저녁 식사 같이 할까?

    혜리 엉덩이나 치워주시죠. 부장님.

    정부장 안좋은 소문이 들리던데. 사실인가?

    혜리 알고싶은게 뭐에요? (똑바로 본다)

    정부장 원하는게 뭐냐고 물어줘. (능글)

    혜리 그럴까요?

    서랍을 '쾅'닫는다. 정부장의 허벅지가 서랍에 낑긴다.

    일그러지는 정부장의 얼굴. 냉소를 띤 혜리.

     

    S#51 아파트 현관

    구멍으로 보면, 귀에 이어폰을 낀 십대 수금원, 몸을 흔들고있다.

    갑자기 문을 여는 정자,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다.

    수금원 신, 신문 하나 ...... 새로 보시라구요.

    정자 우리집에 신문 볼 사람없어.

    수금원 아, 아줌마 보시면 되잖아요?

    정자 ...... (노려본다)

    수금원 ....... (뒷걸음친다)

     

    S#52 목욕탕 안

    멍하니 거울을 보는 정자. 부시시한 파마머리에 축늘어진 볼.

    얼굴의 잔주름, 굵은 목.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린다.

    정자 (N) 난 늙었다.

    S#53 엘리베이터 안

    피곤한듯 서있는 혜리, 남자1(50대)은 혜리의 몸을 탐색한다.

    이때, 울리는 핸드폰. 급히 꺼내는 남자

    남자 알았어. 지금 가는 중이니까 삼십분 후면 도착할 수 있을꺼야.

    ...... 그래 , 피자 찾아서 갖고 갈께 (접는다)

    혜리 (E) 피자? 웃기고 있네. 한눈이나 팔고 다니지 마라.

     

    S#54 도로, 밤

    건들건들 걷는 혜리. 한손엔 피자박스, 다른 한손엔 맥주병을 들고있다. 한모금 마시다가 병을 거꾸로 털어서 마신다음 근처 쓰레기통에 던진다.

     

    S#55 거실, 밤

    밥상 가운데 놓인 피자. 와인잔에 포도주를 따르는 혜리.

    못마땅한 정자.

    정자 이런 인스턴트 음식 싫어하는거 몰라?

    혜리 인스턴트 이전에 피자야. 피자. 끅!

    정자 그게 무슨 차이야?

    혜리 라면처럼 혼자서 후루룩 먹어치우는 그런 인스턴트(강조)가 아니라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한조각씩 사이좋게 나눠먹는 피자(강조)란 말야.

    정자 술먹었어?

    혜리 조금.

    정자 세월한번 좋구나.

    혜리 우리도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자. 언니~ 우린 짐승이 아니라구!

    정자 내 탓이란 말야?

    혜리 노 노우......단지 우린 운이 없을 따름이야. 끅!

    정자 우리라구? 감히 우리라구?

    혜리 .......

    정자 고작 이따위 피자조각이나 들고와서 그따위 헛소리나 늘어놓는 거야? 하루종일 똥걸레에 묻혀사는 내앞에서 감히 우리라구!

    혜리 미안해. 하지만 나두 최선을 다하는 거야!

    정자 넌 흉내만 낼 뿐이야. 이 얌체야!

    혜리 언닌, 괴물이야. 알어?

    정자 넌 타고난 빈대야. 내 살에 붙어서 내 피를 빨아먹는빈대! 넌 엄마하 고 똑같애!

    혜리 난 청춘을 바쳤어! 그정도로 만족못해?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돼냐구! 할복 자살이라도 할까?

    정자 난 모든걸 잃었어. 청춘정도가 아니야.

     

    S#56 아파트 거실

    베란다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정자. 피곤한 얼굴.

    혜리가 방에서 나와 정자를 돌아본뒤에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침묵.

     

    S#57 은행 커피자판기 앞

    동전을 넣는다. '윙' 잠시후, 커피잔을 꺼낸다. 피곤한 표정의 혜리. 마시려는 찰나에

    김우식 동전있어?

    혜리 ...... (동전 두개를 기계에 넣어주고 돌아선다)

    김우식 같이 마시지?

    혜리 (뒤돌아보며) 내가 다방마담이나 되는줄 알어!

     

    S#58 다방안

    껌을 좍좍 씹는 이마담. 담배를 피워문다. 정자에게 권한다.

    말없이 받아드는 정자.

    이마담 다 때려치우고 나와! 이 화상아! 꽃마을이나 뭔가에 보내면 되잖아!

    정자 그래두 엄마잖아.

    이마담 엄마? 흥! 지랄하고 자빠졌네. 자식새끼 그렇게 차별해서 키울때에 벌써 알아봤어. 천벌받은 거야.

    정자 ......

    이마담 너 연애도 한번 못해봤지?

    정자 농담하지마.(코멩멩이)

     

    S#59 아파트 현관

    문열고 서있는 정자. 활짝 웃고있는 김우식.

     

    S#60 주방

    찻잔에 커피를 따르는 정자, 손이 떨린다. 심호흠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키는 정자.

    이마담 (E) 사랑은 천둥 벼락처럼 갑자기 오는거야. 한마디로 골때리는거지.

     

    ` S#61 거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 수줍은 정자. 예의바른 김우식, 집을 둘러본다.

    김우식 하두 집에 오는걸 반대해서 제가 몰래 찾아왔습니다. 실례가 아닌 지 모르겠군요.

    정자 (E)생쥐같은년. 남자나 뒷구멍으로 살살 만나다니.

    김우식 언니께서 정말 인상이 좋으시군요. 저혼자 괜한 상상을 했나봅니다.

    정자 무슨말을 들으신거에요?

    김우식 통 말을 않해요. 그래서 저혼자 억측을 했죠.

    정자 제가 괴물이라도 되는줄 아셨군요.

    이때, 한여사의 신음소리. 신경쓰이는 김우식. 너무도 부드러운 표정의 정자.

    정자 옆집에 치매노인이 살고계세요. 안됐어요.

    김우식 ...... 그렇군요.

    정자 (E)볼수록 미남이네.코가 특히 잘생겼어. 입두......

    김우식 언닐 하나도 안 닮았군요.

    정자 우린 동전의 앞뒤처럼 완전 딴판이이에요. 신의 걸작품이죠. 호호.

     

    S#62 현관

    문을 등지고 서있는 정자. 눈을 빛낸다.

    김우식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정자 (E) 게임을 시작해 볼까?

     

    S#63 은행 비상계단

    놀라는 혜리의 눈 C. U.

    혜리 말두 안돼.

    김우식 언니때문에 그렇게 망설인거야? 언니가 되려 놀라더군.

    혜리 속은거야.

    김우식 이젠 결혼 허락만 맡으면 되겠지?

    혜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어. 절대루.

     

    S#64 주방식탁, 밤

    밥을 먹으며 정자의 표정을 살피는 혜리, 화사한 브라우스를 입은 정자, 만면에 미소가 가득. 굴비를 죽죽 찢어서 혜리의 밥위에 얹어주는 정자. 침을 꼴딱 삼키는 혜리.

    혜리 저기......

    정자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으며)영광굴빈 아니지만 맛은 괜찮아.

    혜리 (침을 삼킨다) 그 사람......

    정자 이 브라우스 어때? 주인여자가 얼마나 간롱을 떠는지 안사곤 못 배기겠더라. 장사는 그렇게 해야돼. 그치?

    혜리 그럼! ...... (살핀다)

    정자 앞으로 자주 데리고와.

    혜리 누구......

    정자 누구긴? 우식씨 말야. 비싼 돈주고 맛없는 커피 마시지 말구 집으로 같이 와.

    혜리 .......

    정자 커피는 무료로 제공할테니까.

    혜리 ...... (눈만 꿈벅꿈벅)

    정자 동생한테 그정돈 해줘야지? 우린 핏줄이잖아.

     

    S#65 한씨방

    단정하게 목수건을 둘러주는 정자. 조심스럽게 밥을 떠먹인다.

    겁에 질려 받아먹는 한씨. 온화한 미소의 정자.

    입옆으로 줄줄 밥을 흘리자 휴지로 정성스럽게 닦아준다.

    정자 엄마를 내 아기라고 생각하면서 보살피면 훨씬 즐거울텐데.

    한씨 ......우.......아......(손을 젓는다)

    정자 애기들 똥오줌 싸는건 당연하잖아.

    한씨 .......

    정자 (다독인다) 아이고, 우리 아기. 잘도 먹네~

     

    S#66 커피숍

    커피를 마시는 혜리, 김우식.

    김우식 애는 둘만 낳자.

    혜리 둘은 안돼. 둘은 불길한 숫자야.

    김우식 그럼, 하나? 겨우?

    혜리 적어도 셋은 돼야돼. 그래야 안전해.

    김우식 애들이 무슨 노후 연금보험이라도 돼는줄 알어?

    혜리 날 위해서가 아니라 애들을 위해서야. 알고나 말해.

     

    S#67 비디오 점

    한아름 비디오 테이프를 점원앞에 내미는 정자. 놀라는 점원.

     

    S#68 거실

    '철커덕' 비디오 테이프를 집어넣는다. 소파에 앉는 정자.

    리모콘으로 티비를 켠다. 옆에있는 과자봉투를 집어든다.

    와작와작 깨물면서 티비를 본다.'경고' 자막.

    이때 울리는 전화벨. 스톱시키고.

    정자 여보세요?

     

    S#69 은행 사무실

    통화중인 혜리. 옆엔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혜리 야근을 해야 될것 같애. 일이 산더미야......(불안하다)

     

    S#70 거실

    의외로 기분좋은 정자. 과자를 와작 깨문다.

    정자 그럼 월급쟁이가 일을 해야지~ 밥은?

    혜리 (E) 먹고 들어 갈려구......

    정자 몸 축안나게 맛있는거 사먹어.

    가뿐하게 수화기를 놓는 정자. 회심의 미소.

    정자 얼마든지!

    S#71 은행사무실

    못미더운 표정으로 수화기를 놓는 혜리.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도 못미더운듯이 다시 수화기를 들다가 산더미같은 일을 보곤

    절망한다.

    혜리 명복이나 빌자.

     

    S#72 거실, 밤

    밥그릇을 끼고 앉아서 소파에서 밥을 먹는 정자.

    비디오 감상중. 눈을 티비에 못박은채 밥을 우물우물 씹어먹는다.

    테이블위엔 몇개의 비디오 테이프.

     

    S#73 은행사무실, 밤

    썰렁한 분위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혜리. 기지개를 켠다.

    보면 웃고있는 김우식.

    혜리 인간이야? 영혼이야?

    김우식 호르몬이 조절안돼는 불쌍한 영혼이다.

     

    S#74 자동차 안, 밤

    커피를 마시는 혜리, 김우식.

    시계를 보다가 아예 풀어서 주머니에 쑤셔넣는 혜리.

    김우식 반란이야?

    혜리 그럴 주제도 못돼. 잠시 잊고 싶을 뿐이야.

    김우식 언니말야? 뿔이 열개라도 달린것 아닌가? 아니면 꼬리가 열 달렸던지?

    혜리 뿔은 몰라도 꼬리는 언니하고 안어울려. 항상 화가 나 있거든.

    김우식 상상이 안돼는데? 힌트좀 줘봐.

    혜리 알필요도 없어. 내가 아는 정도만 해도 머리가 돌을 지경이야.

    김우식 더 궁금해지는데?

    혜리 궁금할꺼 없어.

    S#75 거실, 밤

    베란다에서 김우식과 혜리를 살피는 정자. 빛나는 눈.

     

    S#76 아파트 주차장, 밤

    불안한듯 아파트쪽을 바라보는 혜리.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김우식.

    김우식 따로 떨어져 살기엔 우린 너무 늙었어.

    혜리 아직 양로원에 갈 나인 아니잖아.

    김우식 피곤하지?

    혜리 그냥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로 싶은 심정뿐이야. 행운이 따른다면 말야.

     

    S#77 엘리베이터 안, 밤

    불안한 표정의 혜리. '윙'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불안한 혜리.

     

    S#78 현관, 밤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는 혜리. 긴장. 너무도 깨끗한 거실.

    살피는데, 정자가 주방으로 지나가며 말한다.

    정자 목욕물 받아놨어.(지나간다)

    혜리 .......

     

    S#79 목욕탕 안, 밤

    욕조에 손을 넣어보는 혜리. 따뜻한 물이 가득. 이해가 안된다는 표 정. 이때 열리는 문.

    정자 빨리 안들어 가고 뭐해? 내가 뱀이라도 풀어놨을까봐?

    혜리 ......아니......

    정자 우식씬 잘 있니?

    혜리 ......응? 잘있어.

    정자 요번 토요일에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지?

    혜리 (다급하게) 그사람한테 물어봐야지.

    정자 설마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건 아니겠지?

    혜리 그게 아니라 원래 약속은 ......

    정자 토요일 다섯시야. 늦으면 물론 안되지. (음산하다)

    혜리 (E) 주여!

     

    S#80 정자 방, 밤

    손바닥에 수면제 두알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는 정자.

    순간 김우식의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 다시 병에 수면제를 털어넣는다. 옆에 놓인 꽃무늬 홈웨어를 몸에 대보는 정자. 레이스며 단추들을 쓰다듬는다.

    정자 (N) 난 남자를 알지 못한다. 하다못해 남자와 단둘이 마주앉아 커피를마셔본 일도 없다. 그가 나와 취향이 같았으면 좋겠다......

     

    S#81 거실, 밤

    깜깜하다. 티비 화면만이 빛난다. 비디오 감상중인 정자.

    아까의 홈웨어에 루즈까지 칠한 모습. 티비에선 남녀의 진한 정사장면. 침을 꼴딱 삼키는 정자,자신의 몸을 쓰다듬는다.

    이때, 하품을 하며 혜리가 방에서 나온다. 긴가민가 하다가 정자를 보곤 놀란다. 긴장하는 혜리.

    정자 우식씨하고 해봤어? 물론 해봤겠지.

    혜리 ....... (멍하다)

    정자 어땠어? 물론 좋았겠지.

    혜리 ....... (기가 막히다)

    정자 입 다물어.

    혜리 ...... (입을 손으로 가린다)

    정자 오럴 섹스도 해봤니?

    S#82 수영장

    '텀벙' 물에 뛰어드는 혜리. (카메라 물속에서) 마치 인어같이 유연하게 헤엄친다. '푸' 솟아오르는 혜리. 다시 물속으로 잠수.

    S#83 사우나

    물속에서 솟구쳐오르는 정자. 빨갛게 상기된 얼굴. 머리를 쓸어 넘긴다. 다시 잠수. '꼬르륵' 안 나온다.

    잠시후에 '푸' 다시 솟아 오르는 정자.

     

    S#84 체육관앞 자동판매기 앞

    '윙' 커피를 꺼내는 혜리. 머리를 털며 창가로 간다.

    유리에 머리를 비춰가며 손질하는 혜리. 보이는 정자의 모습.

    놀라는 혜리. 보면 젖은 머리의 정자.

    정자 그렇게 죽을 똥을 싸고 아침 저녁으로 수영을 해대니 살이 찔리가 있어?

    혜리 난 적어도 과자봉투를 끼고 살진 않아.

    정자 비웃는거야?

    혜리 그럴리가.다 언니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정자 너 많이 컷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혜리 ...... (실수한 느낌)

    정자 하지만 내리사랑 이래잖아. 한살이라도 더먹은 내가 이해해야지.

    혜리 ...... (놀란다)

     

    S#85 한씨방

    예쁘게 잠옷을 입은 한씨. 만면에 미소를 띤 정자를 보곤 두려움에 떤다. 모처럼 눈빛이 맑은 한씨. 단추를 채워주는 정자.

    정자 엄마하고 혜리는 유난히 예쁜것만 탐하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어.

    한씨 ......아.......아냐......

    정자 하지만 용서해 줄께. 난 요즘 너무 행복해. 사람 사는 맛이 나.

    한씨 ......아.......아...... (손을 젓는다)

    정자 그인 신의 선물이야.

    한씨 죽여......죽여줘......제발......

    정자 그를 사랑하는건 신의 계시지.

    한씨 죽여줘......

    정자 나뻐. 어떻게 딸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할수가 있어? 농담이지?

    한씨 제발..... (붙잡고 늘어진다)

    정자 뺏어버릴 꺼야. 사랑은 쟁취래잖아?

    한씨 ......안......

    정자 맨날 뺏기고 사는것도 정도지. 이젠 때가 왔어. 엄만 내가 웨딩드레 스 입은 모습이 보고 싶지 않어?

     

    S#86 웨딩드레스 샵

    순백의 화려한 드레스. 각종 디자인의 드레스. 정자, 넋을 잃고 드레스를 만진다. 부서질듯 사각거리는 드레스.

     

    S#87 예식장, 환상

    웨딩마치. 환상적인 드레스의 뒷모습, 걸어가는 신부.

    수줍게 고개를 숙인 정자의 얼굴이 면사표 아래서 빛난다.

    환하게 웃는 정자. 역시 환하게 웃으며 정자의 면사표를 들어올리는 김우식.

    점원 (E)어떤걸로 하실꺼에요?

     

    S#88 웨딩드레스 샵, 현실

    보면 정자를 들여다보는 점원의 얼굴. 눈을 깜빡이는 정자.

     

    S#89 거실

    기도중인 정자. 둘러앉은 신도들. 성경책에 손을 얹고 기도중인 목사. '쾅쾅' 문두드리는 소리.

    신도들 주여!!

    목사 주여! 보살피소서!!

    정자 주여.

    계속 쾅쾅 거리는 소리. 괴기스러운 신음소리도 함께.

    신도들 (더욱 크게) 주여!!!

    목사 어린양을 보호 하소서! 악마의 영혼이 깃든 불쌍한 양을 돌보소서!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는 착한 어린양이 있습니다.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는 마치 성인과 같은

    어린양이 있습니다. 주여!! 기도에 응답하사 어린양을 진흙탕속에서

    구하소서!

    정자 (E) 날 구하는건 엄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야. 간단하지.

    목사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나이다. 아멘!

    신도들 아멘!!

    정자 아멘.

     

    S#90 현관앞

    정자의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는 신도들.

    고개숙여 인사하는 정자,눈물이 글썽하다.

    신도1 땅에 떨어진 천사야!

    신도2 시련이 클수록 주님의 사랑이 깊은거유.

    신도3 언제나 주님을 생각해요. 그러면 길이 열릴거에요.

    정자 (E) 언제나 나한텐 우식씨 뿐이야.

     

    S#91 남자화장실

    소변중인 김우식, 정부장이 힐끔거리며 김우식을 살핀다.

    정부장 여자들한테 인기 좋던데?

    김우식 ......(신경쓰인다)

    정부장 비결좀 애기해봐. 왜 여자들이 김대리 앞에서 오줌을 질질 싸는지.

    김우식 ...... (기분 나쁘다)

    정부장 엑스 파일인가?

    김우식 농담하지 마세요. 부장님.

    정부장 내 사전에 농담이란 없어. 아직도 그걸 모르나?

    김우식 치.(웃는다) 제 생각엔 점심을 잘못 드신것 같은데요.

    정부장 꼴리는대로 생각해. 하지만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지.(나간다)

    김우식 ...... (기가막히다)

     

    S#92 엘리베이터 안

    '윙' 내려간다. 25, 24,

    나란히 선 정부장, 혜리. 침을 삼키는 정부장. 능청맞은 혜리.

    혜리의 불쑥 튀어나온 가슴과 목덜미, 다리를 쏘아보는 정부장.

    정부장 사람 차별하는거야?

    혜리 ...... (놀랐다)

    정부장 안그래도 인원감축이다 명예퇴직이다 난린데 몸을 함부로 굴려서야 쓰나~

    혜리 ....... (참는다)

    정부장 좋은건 나눠 써야지~ (다가선다)

     

    S#93 엘리베이터 밖

    문열린다. 사색이 된 정부장, 사타구니를 잡고있다. 으기양양하게 나오는 혜리.

     

    S#94 미장원

    파마루프를 말고 앉아있는 정자. 기대에 찬 표정.

    미용사1, 다가와서 루프를 하나 풀어본다. 옆의 미용사2에세 눈짓하면 중화제를 건네준다. 골고루 샅샅이 루프를 비집고 중화제를 뿌리는 미용사1.

     

    S#95 아파트 전경, 밤

    반짝이는 아파트의 불빛들.

     

    S#96 주방식탁, 밤

    헤어스타일이 바뀐 정자. 머리에 수건을 만 혜리.

    침묵속의 식사. 귀뒤로 찰랑거리는 머리를 넘기는 정자.

    혜리 (E)완전 미져리네.

    정자 (E)왜 똥씹은 얼굴이지?

    혜리 파마했어?

    정자 난 파마하면 안돼니?

    혜리 십년은 젊어보여. 피차 유쾌한 주제는 아니지만.

    정자 다섯시까지야. 음식준비는 나혼자 다 할테니까. 너야 주방일하고는 담쌓은 애 아냐?

    혜리 그건 언니 전공이잖아?

    정자 ...... (째려본다)

    정자 (E)매춘부 같은년. 남자나 숨겨놓고 다니는 주제에 ......

    혜리 (E)불길하다. 이건 언니 방식이 아니다. 도대체.......

    혜리 근데 엄마는 어떻게 할거야?

    정자 나한테 맡겨. 엄만 내 전공이잖아?

     

    S#97 한씨방

    억지로 수면제를 먹이는 정자. 입을 오무리고 거부하는 한씨.

    부드러움으로 광기를 포장한채 끈질기게 먹이는 정자. 물까지 입을 억지로 벌려 먹인다.

    정자 나두 매일밤 먹는 거야. 딸이 십수년간 끼고 산 약이 어떤지 인제는알아야지. 엄마니까~ (음산하다)

     

    S#98 주방

    경쾌한 M.오븐C. U. 기름을 빼며 바작바작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통닭. 오븐위엔 보글보글 끓는 소스. 야채를 볼에 넣고 섞는 정자.

    흰테이블보를 식탁위에 펼친다.

     

    S#99 아파트 주차장

    '끽' 서는 승용차. 잠잠.

    보면 손톱을 물어뜯는 혜리. 영문을 몰라 답답한 김우식.

    창밖에서 카메라 보면, 혜리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김우식, 불안한 표정으로 김우식을 바라보는 혜리.

     

    S#100 엘리베이터 안

    열린다. 성큼 올라서는 김우식. 들어왔다 다시 나가는 혜리.

    잡아끄는 김우식. 체념한 혜리.

     

    S#101 정자 방

    루즈를 칠하는 정자. 가슴이 떨리는지 손을 얹는다. 청심환을

    찾아서 우물우물 씹어먹는 정자. 계속 거울을 본다.

    정자 (E) 이젠 내 차례야. 멍청아.

     

    S#102 주방식탁, 밤

    쨍, 부딪히는 와인잔 세개. 웃음이 가득한 김우식, 불안한 혜리,

    부드러운 미소의 정자. 마신다. 가득한 성찬.

    닭다리를 뜯어서 김우식에게 주는 정자.

    ```` 김우식의 목에 냅킨을 끼워준다. 고개를 젓는 혜리.

    난감한 김우식. 부드러운 눈으로 김우식을 바라보는 정자.

    정자 가만, 이렇게 하고 식사해요.

    김우식 그게 좋겠군요.

    혜리 ...... (놀랐다)

    정자 이거 한번 먹어봐요. 기름기를 좍 뺐더니 아주 부드러워 졌어요.

    김우식 정말 맛있군요. 요리 솜씨가 대단하신데요?

    혜리 그건 사실이야. 요리 하난 끝내주지.

    정자 쏘쓰도 듬뿍 묻혀서 먹어요. (듬뿍 따라준다)

    김우식 ...... (황공스럽다)

    정자 어머! 어머! 입에 묻었네...... (김우식의 입가에 묻은 소쓰를 닦는다)

    혜리 ...... (놀랐다)

    김우식 ...... (당황스럽다)

    정자 한잔 더?

    김우식 예...... (혜리의 눈치를 살핀다)

    혜리 (E)미쳤어!

    정자 (E)내 남자야!

     

    S#103 거실

    김우식옆에 바짝 붙어앉은 정자. 과일을 포크로 찍어서 코앞에 디민 다. 게면쩍은 김우식, 엉덩이를 조금 옮긴다. 역시 따라서 움직이는 정자. 커피를 내오던 혜리, 기가 막히다.

    혜리 (E)정상이 아냐.

    정자 (E)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어. 멍청아.

     

    S#104 주방식탁

    노려보는 두 사람. 씩씩거리는 혜리, 능글맞은 정자.

    혜리 도대체 목적이 뭐야?

    정자 말 조심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혜리 제부가 될 사람한테 그게 뭐야? 언니 신랑이라도 돼는줄 알어!

    정자 친절한것두 트집거리니?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건데!

    혜리 챙피해서! 하는 짓이 꼭......

    정자 술집 여자 같다구?

    혜리 ......

    정자 미안해. 널 위해서 너무 신경쓰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혜리 ......

    정자 다음엔 절대로 안 그럴께. 약속할 수 있어.

    혜리 절대로 우리집에 다신 안 데려올꺼야.

    정자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줘. 응?

    혜리 ......

    정자 내가 제대루 보여줄께. 절대 실수는 없어.

     

    S#105 혜리방

    이것저것 옷을 들어보는 혜리, 마음에 안든다.

    정자, 예쁜 원피스를 들어보인다. 혹하는 혜리.

    정자 널 위해 샀어.

     

    S#106 구내식당

    식사중인 혜리. 식판을 든 김우식이 곁에 앉는다. 주위르 둘러보는 혜리. 능글맞은 김우식.

    김우식 청첩장 돌릴텐데 신경쓰지마.

    혜리 누구 맘대루?

    김우식 그렇게 좋은 언니를 왜 꽁꽁 숨겨놨어? 괴물인줄 알았잖아.

    혜리 백년 묵은 여우야.

    김우식 누가?...... (빤히 혜리를 바라본다)

    혜리 ...... 기가 막혀. (벌떡 일어난다)

     

    S#107 사무실

    김우식, 통화중이다.

    김우식 과민 반응이에요. 원래 성질이 좀 못됐잖아요......

     

    S#108 거실

    전화줄을 꼬며 통화중인 정자.

    정자 다시 정식으로 초대하고 싶은데요. 아, 아니......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요. ...... 요번주 금요일...... 좋아요.

     

    S#109 거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정자. '쾅' 수화기를 놓는다.

     

    S#110 목욕탕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 콧노래 소리. 노래를 부르며 빨래중인 정자.

    만면에 가득한 미소.

     

    S#111 한씨방

    머리위부터 옷을 끼워입히는 정자. 순한 아기처럼 말을 잘듣는

    한씨. 두려움에 떤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정자.

     

    S#112 주방식탁, 밤

    말없이 식사중인 정자, 혜리. 말하고 싶은것을 참는 혜리.

    정자는 태연하다.

    혜리 우식씨한테 전화했다며?

    정자 그래서?

    혜리 할말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해.

    정자 (E)미치년! 남자 하나 갖구 되게 유세하네.

    혜리 (E)돌아 버릴 지경이다.

     

    S#113 커피숍

    커피를 마시는 정자, 순이.역시 썬그라스를 낀 순이, 담배를 피워무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담배불을 붙여주는 정자.

    순이 살고 싶지 않어.

    정자 ......

    순이 애들은 시댁에 맡겼어. 보고싶어. (담배불을 비벼끈다)

    정자 .......

    순이 난 애들을 좋아해. 짧은 팔을 벌려서 안아 달라고 할때나, 싸이드 각도로 보는 납작한 코를 볼때, 아침에 일어나서 침냄새 풍기는 얼굴로 뽀뽀할때 ......애들이 정말 사랑스러워......

    정자 근데 왜 죽어?

    순이 애들한테 더이상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애들한테 죄를 짓는 기분 이 들어...... 나쁜 추억만 주는거니까......

    정자 언제 죽을껀데? (코멩멩이)

    순이 지금 당장..... 놀라지마. 인간은 누구나 죽잖아?

     

    S#114 한강다리

    다리밑을 바라보는 순이. 시퍼렇게 흘러가는 강물.

    백미터쯤 떨어져서 순이의 핸드백과 외투를 들고있는 정자. 무표정.

    신발 한짝을 벗는 순이. 긴장하는 정자.

    결심한듯 다리 아래로 구두를 떨어트리는 순이. 슬로우 모션.


    S#115 전동차 안

    흔들린다. 한쪽발을 벗은 순이. 사람들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정자에게 기대어 잠든 순이. 순이의 어깨를 다독거리는 정자.

    눈물 한방울이 반짝 빛난다.

     

    S#116 사무실 복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정자, 괴기스러운 표정. 아래서부터 위로 카메라 올라가면 무표정한 정자.

     

    S#117 사장실

    수화기를 든 이사장. 따르릉 따르릉, 계속 신호만 가고 받지않는다.

    '쾅' 수화기를 놓는다. 번들거리는 눈빛. 이때,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문열리고, 정자 들어온다. 이글거리는 정자의 눈.

    주눅든 이사장. 다짜고짜 이사장의 멱살을 잡는 정자. 켁켁거리는 이사장.

    정자
    마누란 샌드백이 아냐. 스파링 상대는 더더욱 아니지. 다시 한번 이 주먹을 함부로 사용하면 그땐 각오해~ (으르렁)

    이사장 .......

    정자 니 왼팔 주먹을 찾을래면 온 한강을 다 뒤져야 할꺼야. 싸우스 포래 며?

    이사장 .......

    정자 (뒤돌아가며) 그리고 그 다음엔 오른팔이야. 물론 그땐 한강쯤으로 안 끝날껄~

    이사장 미쳤어......

     

    S#118 한씨방

    창문 문고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한씨. 번들거리는 눈으로 손톱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잡아 댕긴다. 안돼자 '쾅쾅' 창문을 두들겨댄다.

    '쾅' 여리는 문. 무시무시한 표정의 정자가 노려보고 있다.



    S#119 한씨방 앞 베란다.

    열린 베란다문. 한씨의 멱살을 잡고 베란다 난간으로 밀어부치는 정자, 광기에 번뜩이는 눈. 공포에 절은 한씨의 눈에 아파트 주차장

    마당이 흔들거린다. 아차하면 떨어질것 같은 한씨. 정자에게 죽자사자 매달린다.

    정자 세상은 똥이야! 온갖 변태들과 싸이코들이 판치는 개판이라구!

    한씨 ......우......우....

    정자 그중에 크라이막스는 물론 엄마지! 엄말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두 이 젠 지겨워! 그렇게 죽는게 소원이라면 뛰어내려!

    한씨 ......아......아 (고개를 젓는다)

    정자 그냥, 새나 나비가 된것처럼 날으면 돼잖아?(광기 어린 눈)

    한씨 ....... (고개를 젓는다, 강렬하게)

    정자 우린 짐승이야......

    주저앉아 우는 정자. 덜덜 떨고있는 한씨.



    S#120 엘리베이터 안

    나란히 선 정자, 혜리. 무거운 침묵.

    정자 여덟시 까지와.

    혜리 ......

    정자 ...... (째려본다)

    혜리 누구 명령이신데 늦겠어?

     

    S#121 쇼핑센타, 수산물 코너

    헤엄치는 생선들. 바짝 코를대고 보는 정자. 그중 한마리를 그물망으로 건져 올리는 점원. 공중에 뜬 그물망, 파닥거리는 생선.

     

    S#122 엘리베이터 앞

    양손에 짐꾸러미를 든 정자, 힘들게 서있다.

    번쩍 들어주는 최씨. 놀라는 정자. 엘리베이터 문 열린다.



    S#123 엘리베이터 안

    '윙' 올라간다. 어색한 두 사람.

    최씨 손님이 오시나?

    정자 예......

    최씨 이사갈 날이 잡혔어. 다음주 월요일이야.

    정자 삼일밖에 안남았네요.

    최씨 이사 가기전에 한번 만나뫘으면 하는데......

    정자 일요일 어떠세요?

     

    S#124 주방식탁

    화기애애한 분위기. 성찬. 점잖은 정자. 그래도 불안한 혜리.

    정자 언제라구...... (물잔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혜리 ......(불안)

    김우식 크리스마스 이브에요.

    혜리 ......

    정자 (E)나쁜년!!

    멍한 정자, 그런 정자를 바라보는 김우식, 혜리. 미소를 짓는 정자.

    정자 속이 안좋아서, 이만 실례.

    혜리 체했어? 약 있어?

    정자 괜찮어. 식사나 계속해......

     

    S#125 목욕탕 앞

    슬쩍 한씨방의 문고리를 여는 정자. 문을 조금 열어논다.

     

    S#126 주방식탁, 밤

    과일을 깎는 혜리. 커피를 마시며 기분좋은 김우식. 부드러운 미소 의 정자. 부드러운 M.

    혜리 (E)불안하다. 이거야 말로 정상이 아니다. 평화는 우리한테 어울리지 않는다.

    정자 (E)최후의 만찬을 즐겨봐. 그래야 지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 수 있잖아?

    김우식 라흐마니노프죠?

    정자 평소엔 잘 듣지 않지만 특별한 날에는 가끔씩 들어요.그치?

    혜리 ...... (놀라는 눈)

     

    S#127 거실, 회상

    엄망진창이 된 거실, 냉장고의 모든 내용물들이 엎어지고 쏟아지고 난리다. 벽에는 자신의 오물로 그림을 그리는 한씨, 얼굴이며 옷에도 난리다. 한씨의 희열에 찬 얼굴. '왈칵'열리는 문.

    얼굴이 땀으로 얼룩진 혜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충격받았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울린다.

     

    S#128 주방식탁, 밤, 현실

    눈을 번쩍뜨는 혜리.

    혜리 안돼!

    그와 동시에 머리를 풀어헤친 한여사, 식탁으로 돌진한다.

    엉망이 되는 식탁, 깨지는 커피잔, 쏟아지는 커피. 충격받은 김우식.

    입벌리고 멍한 혜리.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정자.

    한씨,바닥에 떨어진 사과며 과자들을 정신없이 줏어먹는다.

    눈물이 글썽한 정자.

    정자 (E) 넌 한수 아래야. 멍청아.

     

    S#129 베란다, 밤

    밑을 바라보는 혜리. 바람에 날리는 혜리의 머리카락.

    '붕' 차 떠나는 소리. 절망의 침묵.

     

    S#130 주방

    과도를 들고 부르르떠는 혜리. 움켜쥔다.

    칼을 뺏어서 칼꼿이에 두는 정자.

    정자 나한테 감사해. 그정도 밖에 안돼는 인간이야.

    혜리 꺼져.

    정자 아직 때가 안됐어. 참을성좀 길러봐.

     

    S#131 은행복도

    힘없이 걸어가는 혜리. 맞은편에 오던 김우식, 혜리를 외면하고 지나간다. 입술을 깨무는 혜리.

     

    S#132 주방식탁, 밤

    힘없이 밥을 먹는 혜리, 정자. 침묵속에 식사한다......

     

    S#133 거실

    파자마를 입은 혜리, 팔장을 끼고 서있다. 최씨를 한씨의 방으로 안내하는 정자. 무표정하게 방으로 들어가는최씨.

    '철커덕' 닫히는 문.

    혜리 또 무슨 속셈이야?

    정자 신경쓰지마. 안그래도 머리가 복잡하지 않니?

    혜리 누구때문인데? 이젠 엄마까지 동원해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정자 조용히 해. 손님 오셨잖아.

    혜리 흥! 손님을 꽤나 위하시는군. 손님을 맞는 자세가 원래 그런게 아니었잖아?

    정자 너 잊은것 같구나. 저 아저씬 엄마가 정신만 말짱했었다면 우리 계부가 될지도 모를 사람이었어.

    혜리 불결해.

    정자 말 조심해. 엄마의 첫사랑이었어.

    혜리 언닌, 잔인해. 이젠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깔아뭉개려는 거야.

    정자 아저씨가 간절히 원했던 일이야!

    혜리 그래? 언니가 언제부터 남의 마음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지?

    정자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뭐눈엔 뭐밖에 안보인다더니 옛말 그른거 하나도 없구나.

    혜리 (E) 넌 미쳤어!

     

    ` S#134 한씨방

    담배를 피우는 최씨, 고통에 절은 눈동자. 퀭한 얼굴의 한씨,

    슬그머니 다가와서 최씨의 담배를 나꿔챈다. 담담한 최씨.

    게걸스럽게 담배를 피우는 한씨. 회환에 찬 눈으로 한씨를 바라보는 최씨.

    최씨 (E) 그애가 변해가는 모습이 날 슬프게 하오. 우린 죄인이지.

    너무 많이 살았소......

     

    S#135 거실

    마주보는 정자, 최씨. 꼬고 서있는 혜리.

    정자의 손을 부여잡은 최씨. 의외라는 표정의 정자.

    깊은 눈으로 눈물이 글썽한채 정자를 바라보는 최씨.

    무엇인가를 느낄것같은 정자, 그러나 잘 모르겠다.

    정자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나가는 최씨. 멍하니 서있는 정자.

    '쾅' 닫히는 문.

    혜리 꼭 부녀상봉이라도 하는거 같잖아?

    정자 ....... (멍하다)

     

    S#136 주방

    '삐삐' 끓는 주전자. 부시시한 정자, 커피를 꺼낸다.

    열다가 손에서 떨어트린다. 놀라는 정자. 떨어지는 커피병.

    슬로우 모션, 사방에 떨어지는 커피알갱이.

    이어 '쿵' 소리, 울린다.

     

    S#137 한씨방

    열린 창문, 그앞의 베란다문도 활짝 열렸다. 바람에 날리는 커텐.

    이어 앰블런스 울린다.

     

    S#138 거실

    검은 상복을 입은 정자, 멍하니 앉아있다. 가방을 들고 나오는 혜리.

    뚫어지게 앞만 보는 정자. 고개를 외면하고 나가는 혜리.

    '쾅' 닫히는 문. 침묵.

    혜리 (E) 살인자.

    정자 (E)다 필요없어. 떠날래면 떠나.

     

    S#139 아파트 주차장

    가방을 들고 가는 혜리.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처음엔 천천히, 점점 빨리 걷는다.

    혜리 (E)다신 돌아오지 않을꺼야. 절대로.

     

    S#140 버스 정류장

    혜리와 떨어져서 나란히 서있는 최씨. 가각 가방을 옆에 논 모습.

    각기 회환에 찬 두 사람.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혜리를 보다가 앞을 응시하는 최씨.

    이때, 버스와서 선다. 버스에 올라타는 최씨. 창가 자리에 앉아서 혜리를 보곤 손을 든다. '붕' 떠나는 버스.

    다시 버스 도착한다. '붕' 떠나면 아무도 없다.

     

    S#141 한씨방

    상복을 입은 초췌한 얼굴의 정자, 구석에 앉아있다.

    바로 한씨가 숨어 기어들던 구석이다. 양주병을 통채로 들이키는 정자. 한모금씩 계속 마신다.

    정자 (E)엄만, 짐승이야! 짐승처럼 살 권리가 있어!!......난 핏줄을 증오해! 엄마도 마찬가지야!!

    혜리 (E)언닌, 악마야! 이젠 더이상 못봐주겠어.

    한씨 (E)잰 누굴 닮아서 그런지 몰라......

    이모 (E)엄마의 첫사랑은 그렇게 떠났어. 자포자기적 심정으로 니 아빠와 결혼했단다. 그땐 그런 일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애를 떼주는 병원도 흔치 않았으니까...... 널 구박하는 것으로 니 아빠에 대한 죄의식을 무마시켰어......

    정자 그래, 잘먹고 잘살아라.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한 사람은 또 어디에선가에서 실컫 저주를 퍼붓고 있겠지? 내가 뭘 어쨌는데!

    첫사랑이 떠난게 내 잘못이란 말야! ...... 웃겨.....(마신다)

    십 오년동안 헌신하고 봉사한 대가가 바로 이거야! 적어도 엄마라면

    딸한테 한마디라도 남겼어야 할것 아냐! 사랑한다는 말은 기대하지도 않아......흑흑...... 적어도 안녕이라는 말을 했었어야지.....

    흑흑흑......다 떠나가 버려......

     

    S#142 정자방, 밤

    수면제 세알을 털어넣는 정자, 물을 마신후 스탠드를 끝다.

    어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이어 조금씩 흐느끼는 소리.

     

    S#143 같은장소

    산발을 한 정자, 인상쓰며 일어난다.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침대에서 내려온다. '쿵' 쓰러지는 정자. 달그락거리는 소리들린다.

    정자 이젠 헛소리까지 들리는 군.

     

    S#144 주방

    에어프런을 두르고 식사 준비중인 혜리. 끓는 커피포트.

    커피를 타는 혜리. 이마를 짚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는 정자. 무표정한 혜리, 정자앞에 커피잔을 놓는다.

    모락모락 나는 김.

    혜리 한꺼번에 너무 많은걸 기대하진 마.

    정자 .......

    혜리 나두 이럴줄 몰랐어.

    정자 그건 나두 마찬가지야.

    양손으로 커피잔을 잡고 한모금 마시는 정자. 열심히 상을 차리는 혜리. 정자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또르륵 떨어진다.
    오화영

    오화영

    1961년 서울 출생

    86년 홍익대 미대 도안과 졸

  • 이창동

    영화는 연극과 달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확실히 영화는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고 상상력과 테크놀로지 만 결합된다면 어떤 공간도 재현해 낼 수 있다.그러나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있어서도 엄격한 경제성의 원칙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복잡한 사건전개 현란한 장면전환만이 능사가 아니라 최소한으로 절제된 표현 속에서 최대한의 의미와 느낌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그런 점에서 응모작 중 대다수의 작품들은 사건과 장면들을 낭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를 매개로 하여 우리 사회의 세태를 풍자한 「부기우기車車車」는 안정된 구성력 위에 재치와 해학을 드러내고 있지만 보다 심도있고 날 카로운 풍자정신 대신 감상적이고 흔한 인간승리담으로 마무리짓는 바람에 설득력이 반감되고 말았다.

    「면도칼과 풍선」은 면도칼로 상징되는 폭력의 이미지와 풍선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위험스런 순수함의 이미지가 교직돼 있으나 전반적으로 의욕과잉처럼 보인다.보다 쉽고 단순한 구성,절제된 표현방식을 탐색해야할 것 같다.

    「옐로우 서브마린」은 풍부한 감성과 세련된 영상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들이 왕가위 영화들을 너무 쉽게 연상시킨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작품 속의 인물들과 사건이 과연 한국의 일상적 삶에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당선작으로 뽑은 「그녀들의 저녁식탁」은 매일 저녁의 작은 식탁을 중심으로 두 자매의 갈등과 욕망 화해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두 자매의 격렬한 갈등의 원인을 단순히 부모에 의한 성장기의 차별 때문으로 보고 있는 시각의 단순함,지나치게 평면적인 두 자매의 성격 등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쉽고도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 가학성과 피학성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가족관계와 인간내면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가능성과 저력을 느끼게 한다.정진을 빈다.
  • 오화영

    오화영

    1961년 서울 출생

    86년 홍익대 미대 도안과 졸

    아이의 양뺨이 터질듯이 붉어있었다.그토록 반짝거리고 춤추는 듯한 눈 동자를 언제쯤 봤지?
    『왜 그랬어!』
    무섭게 노려보는 눈길에 아이의 눈동자는 점차 빛을 잃고 마침내는 눈 물방울까지 글썽거렸다.고개로 두 고개,먼길이었다.
    나는 갓길조차 제대로 없는 굴곡진 도로와 그 위를 제집이나 되는 듯 이 맹렬히 질주하는 덤프트럭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게다가 폭설이었다 .
    아이를 마중나간 남편은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주변을 서성거릴 터였다.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푸하하!』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한 에미답지 않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젓가락같은 사지와 예쁘장한 얼굴로 항상 과보호의 대상이었던 아 이였다.나는 비로소 오랜 근심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서른 일곱.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였고,포기하기엔 너무 젊 은 나이였다.
    1997년의 겨울을 아홉살된 아들과 서른일곱이 된 나는 남들이 보기 엔 위험천만하고 어설픈 도전으로 보내고 있었다.
    따르릉….마침내 당선됐단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다준 아들 영진이와 노트북을 살 짝 밀어내고 검은 눈망울을 깜빡이던 딸 지영이,얼음송곳같은 모니터로 가장 날 힘들게했던 남편 서광수씨와 존경하는 엄마 박건화 여사께 사랑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특히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올곧은 자세와 비법 을 낱낱이 전수해 주신 영상작가 전문교육원의 선생님들께 머리숙여 깊이 인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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