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밤에 눈 뜨는 江

by  우은숙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검푸른 이마 위에 별빛을 따서 담고
    물결 따라 일렁이는 오늘의 발자욱들
    총총히 물을 건너며 하나·둘 깨어난다.

    계절의 뜰 안에서 혼절한 목마름
    물굽이 돌아돌아 밤으로 향하는데
    스며라 깊은 숨소리, 밤의 허울 속으로

    달빛에 아롱지는 등 시린 환한 속살
    어둠을 마시며 끝없이 달려가는
    숨쉬는 강물 사이로 내 비치는 숨은 내력.

    투명한 거울 속에 또 다른 내일 위해
    길게 누워 서성이다 허공 가른 기침소리
    밤에만 눈을 뜨는 강, 그 강에 내가 있다.

    우은숙

    1961년 강원도 정선 출생

    강원대 경영대학원 졸|강원도 교육연구원 근무

  • 유재영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다시 쓰는 처용설화(서연정)''남산을 오르며(윤병길)''눈 그친산(배한 봉)''장작을 패며(김종렬)''과원에서(서한기)''밤에 눈뜨는 江(우은숙)''화석연료에 대한 통찰(이우식)'등이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우은숙씨의 '밤에 눈뜨는 강'과 이우식씨의 '화석연료에 대한 통찰'이었다.두 사람의 작품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당선권에 접근돼 있었다. 우은숙씨의 작품은 서정을 앞세운 미학적 균형미가 돋보였으며 이우식씨의 작품은 시종 패 기와 실험성으로 시적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볼 때 이우식씨의 경우 시어끼리의 충돌이 심하고 상상력의 공간이 너무 커보이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다시 말해서 그것은 수사학적 기교면에서 는 매력적인 한 방편이 될 수 있었으나 완전한 시인의 탄생으로 기대하기는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에비해 우은숙씨는 당선작으로 뽑힌 '밤에 눈뜨는 강' 이외에도 투고된 작품 모두가 한결 같이 안정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시적인 능력면에서도 든든한 신뢰를 갖게 했으며 선명한 이미지 정갈한 언어들은 기존 시조단의 상투성을 벗어나기에 충분했다.

    당선작으로 뽑은 또다른 이유로 응모된 어느 작품들보다도 시조형식에 충실했다는 점을 들 고 싶다.최근 형식의 일탈이 새로움인 줄 아는 일부 시조단의 그릇된 풍조에서 볼 때 당선 작이 지니고 있는 빈틈없는 정형의 미덕은 상대적으로 커다란 장점이 되었으며 '강'이라는 보편적인 시적 대상을 가지고 이처럼 힘있고 부드러운 정서적 공간을 마련한 것도 정형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인식의 결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우은숙

    1961년 강원도 정선 출생

    강원대 경영대학원 졸|강원도 교육연구원 근무

    젖은 안개를 하나씩 털어 내며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

    이 도시를 끼고 흐르는 강물은 얄팍한 나의 詩心을 흔들어 깨운다. 물결 따라 일렁이는 그 강에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진한 삶의 냄새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江은 모든 사물에 대한 `새로움'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던져 버리고 싶은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 들였고, 또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조건 없이 내 주었다.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사이로 내 의식의 눈이 `불꽃 튀는 눈짓'을 보낼 때, 강은 또 다른 의미를 남기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흐르고 있었다.

    겨울강에 차디차게 묻어나는 냉철함을 보면서 하늘빛과 계절에 따라 달리 보이는 물빛 무늬의 오묘함을 표현해 내지 못하는 스스로의 무능함에 자책도 해 보고, 어렵게 부여잡은 언어 하나 붙들고 온 몸으로 아파하기도 하였다.

    이제 `시작'이라는 단어가 두려움과 함께 참지 못할 기쁨으로 다가온다.

    두 개의 강줄기가 몸을 섞으며 흐르는 소양강처럼 내 속에서 기쁨과 부끄러움이 합강되어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어느 때 보다 겸허함을 배워야 한다며 침묵의 의미를 심어주고는 이 땅에 씨 뿌림과 거둠을 가슴으로 마주하고 있는 별님에게 흙냄새 가득 담은 진한 사랑과 함께 이 기쁨을 바친다.

    기쁨과 떨림 속에서 큰 소리로 파이팅 외치며 온 1998년! 벅찬 감격의 팔을 들어 힘껏 포옹하리라.

    호수에 던진 조약돌의 울림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무거운 의미로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나는 강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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