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by  이윤설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등장인물

    곽씨父(70세) : 공직에서 은퇴한 노인. 동네사람들에게 잔소리가 심하다.
    곽씨(45세) : 아들
    곽씨부인(40세) : 며느리
    딸(17세) : 손녀
    이씨(60세) : 인색한 아버지.
    백수(35세) : 이씨의 아들. 10년째 백수생활.
    부녀회장(40세) : 부녀회장직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부녀총무(40세) : 차기 부녀회장직을 노린다.
    마담 (43세) : 술집 ‘금마차’ 마담. 부녀회장과 부녀회총무와는 앙숙.
    시인 (30세) : 뿔테안경과 바바리코트. 절필상태에 빠져있다.
    미화원장(50세) : 이 극에서 미화원장은 정부의 대리인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엄격한 원칙을 표방하는 듯 하지만 적당히 뒷돈도 받아 챙기는 공무원 스타일
    미화원들 2인. : 명령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다름없는 인조인간처럼 보인다.
    중년사내(50대)
    남자(30대)

    * 등장인물들은 각각 주변에서 흔히 보는 동네 주민들의 복장을 한다. 단, 미화원들은 미화 원 복장을 하되, 팔에는 ‘미화’라고 쓴 완장을 차야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종일관 계엄군과 같은 위압적인 포즈와 기계적인 동작으로 움직인다.

    제 1 장

    무대
    서울의 한 동네다. 무대 배경으로 동네의 집들과 상점의 간단한 풍경그림. 무대 맨 오른쪽 에 전신주가 서 있고, 전신주 밑으로 쓰레기 분리 수거함이 놓여져 있다.

    막이 오르면, 파르스름한 새벽이다.
    무대를 잠에서 깨우는 ‘새마을 노래’ 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구민여러분 오늘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입니다.” (이 소리는 진짜 쓰레기 분리수거 때 나오는 녹음음성이어야 한다.)
    미화원장과 미화원들, 쓰레기수레를 밀며 등장한다. .

    미화원장 : (확성기를 입에 대고) 분리 수거들 하세요. 분리 수거.

    주민들이 낑낑 대며 하나씩 자루를 들고 나온다. 자루에는 쓰레기 종량제라고 씌여있다.

    미화원장 : 자, 자, 번호표 순서대로 서십시오. (차트를 넘기며) 1번!
    중년사내 : 예예, 여깄습니다. (쓰레기자루 들고 앞으로 나온다.)
    미화원장 : ‘이름 김순녀. 나이 88세. 사유, 치매로 인한 노망과 망언, 망동’ 맞습니까?
    중년사내 : 노인네가 글쎄 밥그릇에다 똥을 담아놓질 않나. 된장독에 들어가 있질 않나. 저라고 이러고 싶었겠습니까.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니 원.

    중년사내가 얘기하고 있는 동안, 미화원들 앞으로 나와 자루의 무게를 단다. 이때 저울은 재래식 추저울이다. (앞으로 미화원들은 별도의 지문이 없어도 쓰레기의 무게를 다는 행동을 반복한다.)

    미화원장 : (저울을 들여다 보며) 이거 70키로잖아. (차트를 확인하며) 신고는 50키로 라고 돼 있는데 20키로나 오바됐습니다. 그새 노인네가 살이 쪘을 리도 없고.
    (미화원들에게) 풀어봐!

    자루를 열면 입에 테입을 붙인 할머니 나온다. (자루 속의 인물들은 안 보이는 것으로 설정해도 무방하다.) 자루 속을 뒤져보는 미화원들.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이 나온다.

    미화원장 : 이거 이거, 뭡니까?
    중년사내 : (당황한다) 그게 왜 거기 들었나.

    뒤에 줄 서있던 사람들 웅성댄다.

    이씨 : 해도 너무하네. 그래도 부몬데 집안쓰레기까지 슬쩍 끼워넣고.
    중년사내 : (뒤돌아보며) 닥쳐! 당신이나 나나.
    미화원장 : 가정쓰레기는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미화원들에게 눈짓하면 미화원들 쓰레기를 빼내서 중년사내에게 안긴다.) 다음! 2번.
    이씨 : 예예, 여깁니다요.
    미화원장 : 입은 잘 봉했습니까?
    이씨 : (신났다) 그러믄요.

    미화원들, 자루의 무게를 잰다.

    이씨 : 딱 75키로. 재보나마납니다요.
    미화원장 : (차트를 넘기며) 이름 이천수. 나이 서른다섯? 아니, 이렇게 젊은 사람을 버립 니까?
    이씨 : 제 자식이지만 무슨 가망이 있어야죠. 대학을 나왔으면 뭘 합니까. 10년째 백숩니다. 노는 지도 답답하고 보는 나도 답답하고. 어젯밤에 제가 잘 타일렀습니다.
    미화원장 : 다음! 3번.
    남자 : 예에. (쭈빗거리며 나온다)
    미화원장 : (수상하다. 미화원들에게) 확인부터 해봐! (입을 봉한 부인 나온다.)
    아 이거 못해먹겠군. 여긴 남자라도 돼 있는데 왜 또 여잡니까?
    남자 : 갑자기 사정이 생겼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미화원장 : 안됩니다. 자꾸들 이러시면 공무집행에 차질이 생겨요.
    남자 : 이 놈의 마누라가 밥만 축내요. 하는 일없이. 살림을 잘하나, 밤일을 잘 하나.
    미화원장 : 절대 안됩니다. 이러면 제가 시말서 써요, 시말서를.
    남자 : (몰래 돈을 찔러주며) 딱 한번만. 다 밝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거 아닙니까.
    미화원장 : 어허, 이거야 원. (못 이긴 척 받아 넣는다.) 딱 한번 뿐입니다.
    다음! 4번! 4번! (안나온다.)
    중년사내 : 아, 이 사람들 또 안 내놨네.
    남자 : 차라리 이사를 가버리던지. 쓰레기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해요 진동을.
    중년사내 : 제 코 좀 보세요. 그 놈의 냄새 때문에 비염이 다 걸렸다니까요.
    미화원장 : 4번! 4번! 4번 안나옵니까?
    남자 : 그 영감 꼭 좀 데려가셔요. 늙으면 죽어야지. 식전댓바람부터 집 앞 골목을 쓸라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대질 않나, 길바닥에 침 뱉었다고 참견하질 않나.
    중년사내 : 아 글쎄, 지 딸도 아닌데 우리 딸년한테 늦게 다닌다고 왜 혼을 냅니까? 아유, 썩는 냄새 때문에 골치가 다 아파요.
    남자 : 주민들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이 참에 꼭 좀 처리해주세요.
    미화원장 : (버럭 소리지른다.) 4번!

    곽씨가 마지못해 쭈빗쭈빗 무대 위로 등장한다.

    미화원장 : 신고 해놓고 안 내놓면 어떡합니까? 서류 다 넘어갔는데.
    곽씨 : 안되겠습니다.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시니. 다음달이나 한번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자식된 도리도 있고.
    중년사내 : 누군 도리 몰라서 그래? 냄새가 나서 살 수가 있어야지.
    미화원장 : 안됩니다. 쓸모없고 썩는 냄새가 나는 인간들은 밝고 건전한 사회를 위해 시급히 재활용시켜야 합니다.
    곽씨 : 한 번 봐주십시오.
    미화원장 : 안됩니다. 주민들 여론도 있고, 구청에 투서 들어가면 우리가 난처해집니다.

    미화원장이 미화원들에게 눈짓. 미화원들 군인들처럼 규칙적인 걸음으로 걸어나간다. 퇴장. 곽씨, 어쩔 줄 몰라하다 황급히 따라간다. 퇴장.
    이윽고 비명소리, 울부짖는 소리. 곽씨부(父) 무대 위로 도망 나온다. 도망치다 전봇대 뒤로 숨는다. 미화원들과 곽씨, 곽씨父를 쫓아 나온다.

    곽씨父 : 네 이놈들, 내가 누군줄 아느냐.
    미화원장 : (확성기를 입에 대고) 4번 쓰레기! 이러면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곽씨 : 아버지 순순히 따라가세요, 네! 이러시면 재활용도 안돼요.
    곽씨父 : 이놈들 나도 왕년에 국가의 녹을 먹던 사람이다. (다급하게) 가까이 오지마.
    미화원장 : (피곤하다. 미화원들에게) 뭣들하나?

    곽씨父 도망치다 중년사내와 남자, 미화원들에게 붙잡힌다. 미화원들이 반항하는 곽씨父를 자루에 넣어 쓰레기수레에 싣는다.

    미화원장 : 참 피곤한 하루군. 가자구.

    미화원장과 미화원들 퇴장하려는 찰라.
    이때 부녀회장과 부녀회총무, 마담의 머리끄뎅이를 끌고 나온다. 부녀회장과 부녀회총무는‘환경정화’ 라는 띠를 가슴에 가로질러 둘렀다.
    부녀자둘 : (입모아) 이 화냥년도 데려가세요.
    마담 : 놔, 이년아들아. 내가 왜 화냥년이냐.
    미화원장 : 왜들 이러십니까?
    부녀회장 : 이년이 금마차 인지 똥마차 인지 차려놓은 다음부터 동네 남자들이 허구헌날 술만 퍼먹는 다니까요.
    부녀총무 : 동네 집값이 다 떨어졌어요.
    마담 : 니 서방들이 제 발로 찾아온 게 내 잘못이냐 이년들아.
    부녀회장 : 저, 저 더러운 년은 재활용도 아까워.
    부녀총무 : 꼬랑지 살살 치는데 안 넘어가는 사내가 어딨습니까. 이년 땜에 가정파탄 난 집이 한둘이 아니라고요
    미화원장 : 상수도가 있으면 하수도도 있기 마련입니다.
    마담 : 어머, 우리 사장님 멋지다. 우리집에 한번 와, 잘해줄께.
    부녀회장 : (미화원장을 곱아보며) 인간쓰레기 분기수거에 앞장서온 우리 부녀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한 일입니다. 구청장님한테 진정서가 들어가면 좋지 않을 텐데요.
    미화원장 : (멈칫하며) 하수도도 가끔은 청소를 해야겠죠. (미화원들에게 눈짓)

    마담 반항한다. 미화원들, 여자의 입을 봉하고 쓰레기자루에 넣는다.
    미화원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화원들과 함께 퇴장하려는 찰라, 시인 뛰어나온다.

    시인 : 잠깐만요. 잠깐만요.
    미화원장 : (귀찮다는 듯이) 또 뭡니까?
    시인 : 저도 쓰레깁니다.
    미화원장 : 자진신고 기간은 따로 있습니다.
    시인 : 맘 변하기 전에 데려가셔요. 저 같은 놈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쓰레깁니다.
    부녀자들 : 꼴에 주제파악은 제대로 하네.
    미화원장 : 사유가 뭡니까?
    부녀회장 : 직업을 물어보면 알아요.
    시인 : 시인입니다.
    부녀총무 : 거봐요. 시인이라잖아. (증오에 차서) 쓰레기!
    미화원장 : 시인? (고개를 갸웃하며) 시인이 재활용이 되던가?
    부녀회장 : 밤낮 술 처먹고 지붕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는 시라고 읊어대는게, 뭐 니가 옆에 없으면 나는 니가 그립다, 그게 십니까? 그런 시는 나도 쓰겠다.
    시인 : (한 서린 눈빛으로 째려보다 체념한 듯 한숨쉬며 먼 산 바라본다.)
    부녀총무 : 저 사람 외상값이 동네 술집마다 쫙 깔렸어요. 제발 좀 데려가세요.
    미화원장 : 골치 아픈 동네구만. 아, 일단 같이 갑시다.

    미화원장, 미화원들에게 눈짓한다. 미화원들 다가가 시인의 입을 봉하려 하자,

    시인 : 내 발로 가겠소.

    미화원장과 미화원들 수레를 밀고, 시인은 그들을 따라 천천히 무대를 걸으면,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구민 여러분 오늘은 쓰레기 분리 수거의 날입니다.”
    이윽고 서늘한 정적.
    주민들 서로 바라보며 머쓱하다.

    부녀회장 : (중년사내에게) 결심하기 힘드셨죠?
    중년사내 : 그렇다고 언제까지 집안에 방치해 둘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부녀총무 : 잘 하셨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이씨 : 몇 년 동안 아들놈 썩는 냄새 때문에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답니다.
    남자 : 전 집에 가서 마누라 냄새부터 환기시켜야 겠습니다.

    모두 퇴장하고 곽씨만 남는다. 그때까지 힘없이 서 있던 곽씨. 주민들이 퇴장하자, 이내 가뿐한 얼굴이 된다.

    곽씨 : (손털며) 자, 오늘은 오랜만에 외식이나 할까. (나가면서) 여보, 갈비나 뜯으러 가자구.
    암전.

    제 2 장

    무대에 불 들어오면, 쓰레기 처리장이다. 시인, 곽씨父, 마담, 백수가 각각 자루 속 들어가 있다. 자루는 쓰레기종량제 글자가 찍혀있고 각각 6번, 4번, 5번, 2번 쓰레기번호가 붙 어있다. 이들은 목만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멀리서 흡사 고문하는 듯한 비명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아-악! 아-악! 사람 살려! 나 죽네!”

    곽씨父 : (두려움에 벌벌 떨며) 아플까?
    백수 : (쏘며) 지금 아픈 게 문제에요?
    곽씨父 : 버르장머리 없는 놈. 너는 애비도 없느냐?
    백수 : 자식 버리는 아버지도 아버집니까?
    곽씨父 : (시무룩) 그……그래도 애비는 애비지. 천륜은 못 끊어.
    마담 : 천륜? 재활용되면 천륜이고 나발이고 머릿속을 까맣게 지운대잖아.
    곽씨父 : 이런 고얀, 어디 어른한테 반말이야. 너는 애비도
    마담 : (말자르며) 당신 자식이나 신경써. 오죽 고약했으면 자식들이 버렸을까.
    곽씨父 : 내가 이런 데 있을 사람으로 보여? 맡아봐, 냄새 나나. (자루째 움직거리며 마담쪽으로 몸을 들이민다.)
    마담 : (냄새 맡는다. 외면하며) 아유, 이 썩은 내.
    곽씨父 : (자기가 맡아본다.) 뭔 냄새가 나?
    마담 : 냄새 나는 걸 안 난다고 해요. 분명 냄새 나요.
    곽씨父 : (시인쪽으로 몸을 들이밀며) 자네가 맡아봐.
    시인 : (괴로워하며) 오오 삶에서 버림받은 향기여.
    곽씨父 : 향기? 역시 시인이시라 진실이 뭔지 아시는 구만.
    마담 : 시인 아저씨. 육갑떨지 말고 밀린 외상값이나 갚으셔.
    시인 : 죄송합니다. 이 세상은 시가 술이 되지 않습니다. 시가 술값이 되지 않습니다.
    마담 : 그럼 술을 마시지 말던지.
    시인 : 이 세상은 술없인 시를 쓸 수 없습니다.
    마담 : 그럼 시를 쓰지 말던지.
    시인 : 누구도 저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저는 시인입니다. 시대의 아픔과 현실의 모순이 저로 하여금 피같은 시를 토하게 합니다.
    곽씨父 : 그럼 왜 제 발로 들어왔수?
    시인 : 시가……시가 저를 떠났습니다. 아아 (자루째 구르며 괴로워한다)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은 쓰레깁니다.
    마담 :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네.
    백수 : 세상이 미쳤어! 이건 말도 안돼!
    곽씨父 : 삼강오륜은 어디로 갔느냐.
    마담 : 가만, (곽씨父에게 다가가) 할아버지 작년 겨울에 우리 가게 왔었지? 미스박 데리고 외박나갔잖아.
    곽씨父 : 어허, 어디서 생사람을 잡아.
    마담 : 흥! 내가 물장사만 20년이야. 눈썰미 하난 백발백중이지.
    곽씨父 : 뭐, 뭐야? 사람을 뭘로 보고.
    백수 : (분개한다.) 쓰레기! 우리가 왜 쓰레깁니까? (이때 한쪽 손이 자루를 찢고 불쑥 밖으로 튀어나온다. 백수, 멈칫하고 놀란다. 한쪽 손을 움직여 웅변하는 모션으로) 이 사람 물론, 십년째 백숩니다. 그렇다고 생각없이 백수로 살고 있는거 아닙니다. 청년실업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이 사회의 모순을 온 몸으로 항거하고 있는 거라구요.
    곽씨父 : (분개하며) 나, 이 사회의 으른이야. 육이오, 사일구, 오일팔? 죽을 고비 숱하게 넘겼어. 그래도 살아남아 이 나라 이 만큼 일으킨 게 누군데. 존경은 못할 망정 이제와서 쓰레기라구? (분개하던 곽씨父의 한쪽 발이 자루를 찢고 튀어나 온다. 곽씨父 의기양양해진다. 한쪽 발을 구르며) 정년퇴직 하고 나서도 나, 동네를 위해서 할만큼 했어. 식전댓바람에 일어나 동네 골목길 쓸었지, 밤이면 방범도 돌았다니까 이 나이에.
    마담 : (분개하며 움직여보지만 역부족이다) 내 배 위로 거쳐간 남자들? 내 이참에 이름 다 불어? 동네 난리나. 지 서방들 스트레스 내가 다 받아줬지, 살림 차리자고 꼬득였던 김모씨 이모씨 박모씨, 내가 가정만은 지켜야 된다고 타일른 것만도 수삼차례야, 이거 왜이래. 그 여편네들이 그걸 몰라주고 날 고발해?
    백수 : (여전히 한쪽 손으로 모션) 아버지가 5년만에 처음으로 내방에 들어오더니 담배를 주더만요. 내 손을 꼭 잡는 거에요. 저라고 왜 가슴이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백수, 그거 쉬운 거 아니에요. 참으로 지루한 투쟁이죠. 그런데 아버지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시면서 저를 버리겠다는 거예요, 저를.
    곽씨父 : (뻗었던 한쪽 다리를 책상다리로 앉으며) 요즘 들어 밥만 먹으면 잠이 쏟아져. 내 이상하다 생각했지. 하루는 밥을 먹는 척 하고 버렸어. 아들 내외가 몰래 방에 들어와 내가 자나 안자나 확인하는 거야. 코를 골았지. 그랬더니 이것들이 가족회의를 해. ‘버리자, 냄새가 진동을 한다. 신고를 하긴 했는데 당일날이 문 제다.’ 내가 벌떡 일어났지. 아들내외가 기함을 해요. 네 이노옴들. 느이들은 안늙을 줄 아냐. (운다) 아들놈이 그래. 법이 그런 걸 어떡하냐고. 애들 교육상 보기도 안좋고.
    마담 : (푸르르 떨며) 부녀회 여편네들이 가게로 쳐들어왔어요. 암코양이처럼 다짜고짜 머리끄뎅이를 끄들르는 거예요. 그래요. 나 웃음 팔고 술 팔았어요. 그게 뭐 어때서요? 시골부모님 봉양했죠. 동생들 학비댔죠. 저요, 산전수전공중전 다겪었어요. 근데 이제와서 쓰레기 취급해요? 우리 가게 애들은 다 빼고 왜 나만 끌려오냐구요. 나 아직 싱싱해요. 단골도 많아요. 아직 일할 수 있다구요.
    시인 : 시가 안되기 시작한 건 벌써 일년 전이죠. 시를 쓰던 친구들이 하나씩 시를 버렸어요. 왜냐? 돈이 안되니까요. 그러나 저는 굽히지 않았어요. 피골이 상접했죠. 친구가 찾아와 충고하더라구요.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시인은 필요없다. 이렇게 밝고 건전한 사회에서 누가 시를 읽겠느냐. 저는 그 친구에게 침을 뱉어 주었죠.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 그런데 시가, 저를 떠났어요. 저는 시를 안 떠났는데, 시는 저를 버렸어요. 거리는 깨끗하고 이 사회는 재활용된 인간들로 넘쳐나요. 아아, 이런 곳에서 어떻게 시가 살 수 있었겠어요. 이제 전 쓰레기예요.
    백수 : (한쪽팔을 휘두르며)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왜 우리가 재활용 돼야 합니까. 과거의 기억을 잊은 채 왜 이 사회의 영구적인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존엄한 인간입니다. 여러분, 일어납시다! 여기서 빠져나갑시다!
    마담 : 맞아. 이용할 만큼 이용해 먹고, 이제와서 우리를 폐품 취급하다니.
    곽씨父 : 그러다 붙잡히면 어쩔려구.
    백수 : (증오에 차서) 기성세대는 저래서 안된다니까. 저 보신주의.
    곽씨父 : 자네도 나이들어 봐.
    시인 : 다 쓸데없는 짓이요. 이 세상을 바꾸지 않는 한.
    백수 : 저 패배주의, 그러니까 사람들이 시를 안 읽는 거야.
    마담 : 어차피 이판사판이라구 씨발.
    백수 : 자, 나를 따르실 분!
    곽씨父 : 사는 날까지 목숨이나 부지할란다.
    백수 : 시인 아저씨?
    시인 : 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시가 없는 이 세상 어디로!
    마담 : 가자, 외상값 받을 것도 있고.
    백수 : 나를 따르시오! (동시에 자루 밖으로 사지가 튀어나온다. 의기양양하며 앞장서려는데.)
    마담 : 이봐, (자신의 자루를 가리키며) 이거!
    백수 : (의기양양하게 마담의 자루를 찢는다.) 억압의 사슬이여 풀어져라.
    마담 : 해방이다!

    마담과 백수 나간다.

    이때 멀리서 들려오는 쓰레기 처리장 비명소리.
    “아-악! 아-악! 사람살려! 나 죽네!”

    곽씨父 : (무섭다. 망설인다.) 아플까?
    시인 : (무섭다) 아프겠죠.
    곽씨父 : 얼마나 아플까?
    시인 :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픔만이 성숙의 계절을 앞당기겠죠.
    곽씨父 : 껍질! (이때 나머지 한쪽 발도 튀어나온다. 놀란다. 두발을 굴러보다 일어선다. 일어설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에라 모르겠다. 같이 가! (따라나간다.)

    계속되는 비명소리.

    시인 : (무섭다. 망설인다.) 오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몸을 굴리며 따라 나가는 시늉)
    암전

    제 3 장

    요란한 싸이렌 소리. 무대 위로 도망자들을 쫓는 어지러운 조명이 훑는다. 구둣발 소리.
    미화원장과 미화원들, 주민들(이씨, 곽씨, 부녀회장, 부녀총무) 등장.
    미화원장 : 쓰레기들이 탈출했다. 쓰레기처리번호 2! 4! 5! 6!.

    주민들 경악한다.

    이씨 : 이 놈의 새끼가 끝까지 애비 속을 썩이네.
    곽씨 : 아이고 아버지, 잘 뛰지도 못하는 양반이 어떻게 담장을 넘으섰소.
    부녀회장 : 아유, 나이롱보다 질긴 년.
    미화원장 : (이씨에게) 당신 아들 혹시 의식화교육 받은 거 아냐?
    이씨 : 무, 무슨 말씀인지.
    미화원장 : 2번 쓰레기! 이번 탈출의 주동자가 바로 당신 아들이야.
    이씨 : 그럴 리 가요. 뭔가 잘못된 겁니다. 애가 게을러서 그렇지 아주 순한 놈입니다. 대학 다닐 적에 데모 한 번 안해봤다구요.
    미화원장 : 다른 쓰레기들까지 선동했어. 그게 무슨 어떤 죈줄 알아?
    미화원들 : 국가전복기도죄.

    주민들 모두 놀란다.

    이씨 : 지 신세도 전복하지 못한 놈입니다.
    곽씨 :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 아무 것도 모르는 노인네까지 꼬시다니!
    이씨 : 뭐야? (곽씨를 흘겨보며 미화원장에게) 누군가 뒤에서 사주한 게 틀림없습니다.
    미화원장 : 무슨 정보가 있습니까?
    이씨 : 평소 약방에 감초처럼 감놔라 배놔라 부추기는 불순분자가 있죠.
    곽씨 : 뭐, 뭐야. (지레 겁먹고 미화원장에게) 우리 아버지 입만 살았지, 겁 많아요. 절대 그런 짓 할 위인이 못됩니다.
    부녀총무 : (부녀회장에게) 대체 어떻게 도망쳤을까요?
    부녀회장 : 그 년이 분명 보초들을 한테 궁둥이를 흔들었겠지.
    부녀총무 : 부녀회장님, 제 소견으로는 그 시인인지 원시인인지가 아무래도 수상해요. 혹시 위장쓰레기 아닐까요?
    부녀회장 : 음, 총무님은 역시 날카로와.
    이씨 : (미화원장에게) 맞아요. 시인이니 그 세치 혀가 오죽 교활했겠어요. 우리 애가 귀가 좀 얇은 게 탈이예요.
    미화원장 : 쓰레기들은 발견 즉시 구청에 신고하셔야 합니다. 숨겨주거나 탈출을 도와주는 가구가 있을 시에는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곽씨 : 만약 못 잡으면 어떻게 되나요?
    미화원장 : 만약.
    사람들 다같이 : 만약?
    미화원장 : 쓰레기들을 찾지 못할 시,
    사람들 : 못할 시?
    미화원장 : 가족 중 다른 사람이라도 대신 내놔야 합니다.
    부녀자들 : 우린 그년의 가족이 아니에요.
    미화원장 : 신고는 당신들이 했으니 책임도 당신들이 져야합니다.
    부녀자들 : 말도 안돼!
    미화원장 : 준엄한 국가법을 어기겠다는 말입니까? 서류는 이미 정부에 넘어갔소. 내 손을 떠났단 말입니다.
    이씨 : 아이고, 자식이 아니라 웬수야 웬수.
    곽씨 : 아이구 아버지, 살만큼 사신 분이 정말 왜 그러십니까.
    부녀회장 : 왜 우리가 그 년을 책임져야 해요. 부녀회는 쓰레기분리 수거에 앞장 서온 것 뿐이라고요.
    미화원장 : 이번 주말까지 시간을 주겠소. 이번 주말까집니다.
    암전.

    제 4 장

    무대는 왼쪽으로 식탁이 있다. 이 곳은 곽씨네 집이다.
    무대 가운데는 촛불이 일렁이고 있는 책상이 있다. 이곳은 이씨네 집이다.
    무대 오른쪽에는 전신주가 있는 골목이다. 이곳은 부녀회장과 부녀총무가 만나는 장소이다. 이제부터 세 가지 장면이 번갈아 가며 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공간의 분리는 조명으로 한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곽씨네, 이씨네, 부녀회장과 부녀총무의 골목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이내 곽씨네 풍경만 남기고 조명은 사라진다.
    곽씨네 가족들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는다. 초상집 같다. 딸, 밥먹으면서 눈치 본다.

    곽씨부인 : (느닷없이 숟가락 팽개치며) 당신이 가요, 당신이. 당신 아버지니까.
    곽씨 : 미쳤어? 내가 왜 가? 썩은 냄새는 당신한테 나는데.
    곽씨부인 : 뭐예요? 뒷물을 며칠 안 해서 그렇지, 냄새는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신경질적으로 딸에게) 이 년아 편식 좀 하지마!
    곽씨 : 그래, 너! 니가 가라. 넌 가망없다. 공부도 못하지, 편식하지, 못 생겼지.
    딸 : 싫어! 나이 순서대로 가면 되잖아!
    곽씨부인 : 나이? 그러면 당신이네.
    곽씨 : 뭐야? 이것들이 몇 십년을 벌어 먹였더니.
    곽씨부인 : 흥! 나도 몇 십년을 뼈빠지게 살림했다구요.
    곽씨 : 넌 뭐했냐?
    딸 : 공부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곽씨 : 누군가는 가야한다.

    서로 긴장하며 살벌하게 눈치를 살핀다. 정적 속에서 숟가락질.

    곽씨부인 : (숟가락 팽개치며) 아버님이 돌아오실까요?
    딸 : 범인은 반드시 돌아와요.
    곽씨 : 저년 말버릇하곤 할아버지가 범인이냐?
    딸 : 참, 쓰레기였지.

    이때, 곽씨父 스타킹을 뒤집어 쓰고 와락, 나타난다.

    곽씨父 : 내가 왜 쓰레기야!
    가족들 : 아버지! 아버님! 할아버지!
    조명 꺼진다.
    동네 골목에 불들어 오면,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부녀회장.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역시 고개를 숙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부녀회총무 나타난다. 서로 마주친다.

    부녀총무 : 어머 부녀회장님.
    부녀회장 : 어머 총무님.
    부녀총무 : 아직 소식 없죠?
    부녀회장 : 기다려 봅시다. 제 년이 갈 때가 어딨겠어요. 나타날 겁니다.
    부녀총무 : 큰일이에요.
    부녀회장 : 부녀회원들을 풀었어요. 다섯가구당 1명씩 감시체제로 돌입했습니다.
    부녀총무 : 특히 남편들을 잘 감시해야 해요. 접선을 해올지도 모르니.
    부녀회장 : 총무님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부녀총무 : 다 영명하시고 위대하신 부녀회장님의 지도력이죠.
    부녀회장 : 이 땅에서 쓰레기를 추방하는 그 날까지 우리 가열찬 분리 수거 투쟁을 합시다.
    부녀총무 : (망설이며) 만에 하나, 못 잡으면 어쩌죠?
    부녀회장 : 조직을 위해서 누군가 대신 가야겠죠.
    부녀총무 : 누구……?
    부녀회장 : 회장이 자리를 비울 순 없으니. 총무가…….
    부녀총무 : (펄쩍 뛰며) 영희엄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부녀회장 : 조직에 말썽이 생겼을 땐 넘버투가 대신 십자가를 져야지.
    부녀총무 : 넘버투? 나 안해. 안하면 되잖아.(가려고 한다.)
    부녀회장 : 다음번 부녀회장 선거가 다가오죠?
    부녀총무 : (멈칫. 표정 바꾸며) 반드시 그년을 잡아야죠.

    이때 지팡이를 짚고 보자기를 쓴 마담, 늙은 할머니 분장으로 나타난다. 종종걸음으로 이들을 지나치려 한다.

    부녀회장 : (코를 킁킁대며) 이게 무슨 냄새지?
    부녀총무 : (역시 코를 킁킁대며 냄새의 진원지를 따라가다 부녀회장에게서 멈추며) 회장님한테서 나는 데요.
    부녀회장 : (당황하며) 뭐예욧. 잠깐. (할머니를 발견하고) 이봐요. 할머니.

    조명 사라지고, 이번에는 이씨네 집에 불 들어온다.
    이씨 촛불을 켜놓고 눈감고 앉아있다. 이때 백수 살금살금 걸어 들어온다. 머리에는 붉은띠를, 손에는 칼을 들었다.

    이씨 : (이씨 눈감은 채) 니가 올 줄 알았다.
    백수 : 헉.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이씨 : 사내답게 자수해라.
    백수 : (주저앉으며) 아버지-이. 너무 하십니다.
    이씨 : (눈을 뜨며) 동네사람들 깬다. 조용히 해라.
    백수 : 아버지-이, 저를 받아주십시오. 저 아직 일할 수 있습니다. 이력서요? 100장 200장이라도 쓰겠습니다. 일찍 일어나겠습니다. 자주 씻겠습니다.
    이씨 : 그 소리 한 두 번이냐? 십년 째다 십년 째.
    백수 : 1년 만 참아주십시오.
    이씨 : 참을 만큼 참았다.
    백수 : (발끈) 저는 끝까지 이 쓰레기같은 세상에 맞서 싸울 겁니다, 아버지.
    이씨 : 너 자신하고나 싸워라.
    백수 : 압니다. 제가 10년 수행 동안 가족들이 말 못할 고통을 겪었다는 거. 하지만 아버지, 이 사회는 썩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일어나 싸워야 할 때입니다.
    이씨 : 혼자 싸워라.
    백수 : (서운하다) 네-에. 저 혼자라도 싸우겠습니다. (나가려 한다. 돌아서서.)
    엄만 어디 갔어요?
    이씨 : 느이 엄마 단풍놀이 갔다. 엄마는 왜?
    백수 : 차비 좀 주세요.

    이씨네 조명 사라지고 다시 곽씨네 조명 들어온다.

    곽씨 : 어떻게 된 거에요?
    곽씨부인 : 아버님 때문에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요.
    딸 : 할아버지 대신에 내가 가야 한 대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곽씨父 : (얼굴의 스타킹 벗으며) 고얀 놈들. 이 놈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
    딸 : 할아버지 자수해요!
    곽씨부인 : 아버님, 자수하세요.
    곽씨 : 다시 태어나세요.
    곽씨父 : 이 끔찍한 세상 한 번 태어나면 됐지, 두 번은 싫다.
    곽씨 : 아버진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쓸모가 없어요. 낼 해뜨면 일찍 저하고 가십시다.
    곽씨父 : 내가 왜 쓸모가 없냐? 마당 쓸지, 동네 방범하지, 동네사람들 예절교육 시키지.
    곽씨부인 : 그럼 손녀가 가야겠어요?
    곽씨父 : 자식이야 또 낳으면 된다.
    딸 : 할아버지 몸에서 나는 썩은 냄새는 어쩌구요.
    곽씨父 : 향수 있잖냐, 그거 뿌리면 아무도 몰라.
    곽씨부인 : 내가 미쳐.
    딸 : 난 몰라, 몰라, 할아버지가 가란 말야. (운다.)
    곽씨 : 아버지 정말 왜 이러세요.
    곽씨父 : 얘들아 제발 날 버리지 말아다오. 내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동네 구석구석 쓸고, 죽을 때까지 동네 치안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치겠다.
    곽씨 : 저희도 괴롭습니다, 아버지.
    곽씨父 : (발끈) 내가 없었으면 니들이 있었겠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니들의 뿌리야. 뿌리를 뽑아버리면 나무가 살 수 있다던?
    곽씨부인 : 썩은 뿌리는 잘라 버려야죠.
    곽씨 : 진지는 드셨어요? (뭔가 꿍꿍이.)
    곽씨부인 : (꿍꿍이 사인을 알아채며 갑자기 친절해진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버님 시장하시죠? (딸에게 눈짓한다. 딸은 눈짓을 알아채고 밥을 대령한다. 밥에 수면제를 섞었다.)
    곽씨父 : (수저들고 허겁지겁 먹으려다 멈춘다.) 안 먹는다.
    곽씨 :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끼니도 못 드시고 (훌쩍이는 체.)
    부인 : 저희도 아버님 걱정에 밥이 안 넘어갔어요. (훌쩍이는 체.)
    딸 : 할아버지, 좋아하는 갈비예요.
    곽씨父 : (군침 삼키며 망설인다. 먹으려다 참는다.) 내가 모를 줄 알고? 여기다 수면제 넣었지?

    다시 곽씨네 조명 꺼지고 동네골목길 조명 켜진다.

    마담 : (천천히 반쯤 돌아서며, 할머니 목소리로) 왜 그러슈?
    부녀회장 : (다가와서) 이 동네 사시나요?
    마담 : (계속 외면한 채) 딸네집에 다니러 왔지.
    부녀총무 : 누구네요?
    마담 : (버럭 성을 내며) 말하면 알어?
    부녀회장 : 제가 이 동네 부녀회장입니다.
    부녀총무 : 말씀해보세요.
    마담 : 건 알아서 뭐 할려구?
    부녀회장 : 쓰레기들이 탈출했어요.
    마담 : 오죽했으면 토꼈을까?
    부녀회장 : 토……토껴요?
    마담 : (당황하며) 아이고, 이 놈의 주둥이. 내 손주년 말버릇이라우.
    부녀회장 : 따님댁이 어디신데요?
    마담 : (버럭 성을 내며 지팡이를 휘두른다.) 뭐야? 이 늙은이를 의심하는거여?
    부녀총무 : (움찔하며)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라, 확인차원에서.
    마담 : 나, 창신7동 노인회장이야. 당장 구청에 전화해봐.
    부녀회장 : 어머, 그러세요. 어쩐지 기품이 있으시고 뭔가 다르시다 했죠.
    부녀총무 : 저희가 워낙 신경이 예민해졌어요. 그 갈보년 때문에.
    마담 : (거슬린다) 갈보?
    부녀총무 : 그 갈보년이 우리동네 남자들을 아주 버려놨다니까요. 생긴 건 꼭 다 쭈그러진 오이지같은 게 뭐가 좋다고.
    마담 : 뭐, 오이지?
    부녀회장 : 말 마세요. 젖은 축 늘어졌지, 코는 벌렁코에 눈은 째졌지.
    부녀총무 : 광대뼈에 쌍가마
    부녀회장 : (타령조) 안장다리 얼굴곰보
    부녀총무 : (신이 나서 마주보며 타령조) 사팔뜨기 합죽이
    마담 : (발끈한다.) 뭐야? 서방 간수 못한 년들이 잘못이지
    부녀총무 :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다시 조명은 이씨집으로.
    아들은 서 있고 이씨는 아들의 바짓가랑이를 애절하게 붙들고 있다.

    이씨 : 제발 한번만 도와다오. 넌 가망없다. 나라에서 죽이는 것도 아니고 새 사람 만들어준다잖니. 돌아가라. 쓸쓸하고 아픈 기억 다 잊고 새사람이 돼서 이 밝고 건전한 사회의 일원이 되다오.
    백수 : (아버지의 손 뿌리치며) 아무도 제 길을 막지 못합니다.
    이씨 : 니가 안가면 내가 가야한다. 이 불효막심한 놈아.
    백수 : 사사로운 부자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이씨 : 나는 직장도 있고 마누라도 있다. 넌 뭐가 있니. 순리적으로 니가 가야되지 않겠냐.
    백수 : 에이 씨발. 좆같아서.
    이씨 : 이젠 입까지 썩어가는 구나.
    백수 : 빨리 차비나 달란 말야!

    다시 조명은 곽씨의 집으로.

    곽씨부인 : (손사래를 치며) 수면제라뇨 아버님. 얘, 너가 먼저 먹어봐.
    딸 : (울상 지으며 할아버지 밥을 떠먹는다) 아 맛있어.
    곽씨父 : 더 먹어.
    딸 : (울상지으며 자꾸 자꾸 먹는다) 아 맛…있…어.
    곽씨부인 : 자, 이제 안심하시고 드세요.
    곽씨 : 일단 드시고 얘기합시다.
    곽씨父 : (군침을 꿀꺽 삼키며) 그놈의 처리장에선 밥을 굶겨요. 밥을. 새롭게 태어나려면 위장을 비워야 한다나.
    곽씨부인 : 끔찍해요.
    곽씨 :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딸 : (하품한다.) 할아버지 우린 한가족이에요.
    곽씨父 : 그래. 우린 한 가족이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으려는데)
    딸 : (식탁 위로 엎어지며 잠이 든다.)
    곽씨父 : (수저를 팽개치며 일어선다) 아니 이것들이! 날 속여!

    곽씨, 곽씨부인 일어서며 곽씨父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곽씨 : 이리 오세요.
    곽씨부인 : 좋은 말루 할 때 오세요.
    곽씨父 : 네 이놈들! (호통치는 척하다가 도망친다.)
    곽씨, 곽씨부인 : 잡아라! 잡아라! 쓰레기다!

    곽씨네 모두 퇴장.
    다시 조명은 동네 골목으로.

    부녀회장 : (마담의 주위를 돌며 고개를 갸웃한다.) 많이 보던 얼굴인데.
    부녀총무 : 흠흠, 이 냄새! (코를 잡아쥔다.)
    마담 : 난 갈길이 바뻐서. (빠른 걸음으로 도망간다.)
    부녀총무 : (말문이 막혀서) 저…저…저
    부녀회장 : 총무님!
    부녀총무 : 쓰…쓰레기!
    부녀회장 : 네-에? (놀라 쫓아가며) 게 섰거라. 쓰레기!
    부녀총무 : 비상! 비상! 부녀회원들 비상!

    부녀자들, 마담 모두 퇴장.
    다시 조명은 이씨집으로.
    이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 나며 확성기 소리.

    확성기 : 너는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자수하라!
    백수 : 비겁하게 신고를 하다니.
    이씨 : 순순히 저분들의 말씀을 따라라.
    백수 : (아버지 목에다 칼을 들이대며 인질로 붙잡는다) 씨발, 들어오기만 해. 다 죽여버릴테다!
    이씨 : 살……살려다오.
    백수 : (인질의 목에 칼을 겨눈채 끌고 나가며) 따라오면 인질이 죽는다!
    이씨 : 얘야 말로 하자. 우리가 어떤 사이냐. 이러면 안된다.
    백수 : 나는 쓰레기가 아니다! 썩어빠진 이 사회가 쓰레기다!
    이씨 : 돈, 돈 줄까?
    백수 : 씨발, 언젠 오락실 간다고 100원 달라고 해도 안 주더니. 늦었어! (인질을 끌고 나간다. 퇴장)
    확성기 : 너는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자수하라!
    암전.

    제 5 장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무대 위를 샅샅이 훑는 어지러운 조명. 구둣발 소리.
    불 켜지면, 무대는 동네 골목이다. 이때 무대 왼쪽에서 도망쳐 오던 곽씨父와 무대 가운데 서 도망쳐 오던 마담, 무대 오른쪽에서 인질을 끌고 나오는 백수가 무대 중앙에서 마주친다.

    곽씨父 : (숨차하며) 자, 자네! 이…무슨 짓이야!
    마담 : (헐레벌떡 달려와 그 자리에 멈춰 서며) 뭐…뭐야!
    백수 : 동지들! 잘 오셨소!
    이씨 : 이젠 공범들까지.
    곽씨父 : 말루 해 말루, 이 사람아. 자네 애비야 애비!
    이씨 : (고개를 끄덕인다)
    백수 : 애비? 흥, 자식 버리는 애비!
    이씨 : 내가 버리고 싶어 버렸냐. 니 냄새가 워낙…….
    백수 : 닥쳐. 발냄새는 아버지가 더 지독해.
    마담 : 이러지 마, 총각. 피 볼일 있어? 칼 든 놈 치고 끝발 좋은 놈 없어.

    확성기 :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백수 : 동지들! 저 소리가 안 들리시오?
    곽씨父 : 아이고, 난 죽었다, 죽었어. 제 명 대로 살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냐.
    마담 : (후- 입바람으로 앞머리칼을 날린 후) 좆. 됐. 다.
    백수 : 동지들! 어차피 우리는 막차를 탔습니다. 억압과 고통 속에서 쓰레기로 처리된 불쌍한 열사들 앞에 우리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칩시다.
    마담 : 뒈질려면 혼자 뒈져! (울먹이며) 난 죽지도 못해, 내가 벌지 않으면 고향 식구들 다 굶어 죽는다구.
    곽씨父 : 이게 다 네 놈 탓이야! 국으로 있으면 재활용이라도 될 것을. 아이고 말년에 관재구설수가 있다더니.
    백수 : 어리석은 자들.
    이씨 : 아들아, 이 애비가 위에 줄이 좀 닿는다. 선처를 부탁해 볼테니 그만 날 놓아다오.
    백수 : 뭐? 그럼 내가 빽으로 취직시켜 달라고 할 땐 왜 모른 척 했어?

    확성기 :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곽씨父, 마담, 백수와 인질, 서로 등을 대고 사방을 견제한다.
    이때 들려오는 가족들의 소리.

    곽씨 : 아버지, 제발 자수하세요! 동네 부끄러워서 애가 학교엘 안가요!
    곽씨부인 : 아버님, 우린 한 가족이잖아요.
    곽씨父 : (분노가 치민다) 닥쳐라 이것들아. TV도 지들끼리만 보고, 갈비도 지들끼리만 뜯고 나는 맨날 시금치만 주냐! 그동안 말을 안해서 그렇지, 언제 느이들이 날 끼워주기라도 했냐 이놈들아.
    곽씨부인 : 시금치가 얼마나 영양가가 높은데요. 비타민의 보고예요.
    곽씨父 : 내 저년을! (나가려고 한다.)
    백수 : 동지! 이성을 찾으시오.

    이때 들려오는 부녀회장과 부녀회총무의 목소리.

    부녀회장 : 장마담! 나 흑석2동 부녀회장이야! 우리 부녀회에서 모든 걸 용서해주기로 했으니 그만 자수해!
    마담 : (분노가 치민다) 뭐, 오이지? 안짱다리에 곰보? 야 이년아, 내가 다 불까? 니 남편하고 몇 번 했는지 다 불어 봐!
    부녀회장 : 우리 그이는 백지처럼 깨끗해.
    마담 : 용궁장에서 두 번! 대신여관에서 세 번!
    부녀회장 : (울부짖으며) 그만!
    확성기 : 이봐요, 범인들을 흥분시키면 어떡합니까?
    부녀총무 : 장마담 나 부녀회총무야. 금마차가 미스박 손에 넘어가도 좋아?
    마담 : 안돼! (나가려 한다.)
    백수 : 동지! 적들의 속임수요. 이성을 찾아요 이성을!
    이씨 : 아들아, 너만 이성을 찾으면 된다.
    백수 : 닥쳐. 날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야! 맨날 무능하다고 구박 만하고. 말이라도 한번 따뜻하게 해 준 적 있어? 칭찬이라도 해준 적 있냐구?
    이씨 : 어디 칭찬 받을 짓을 했어야 말이지.

    확성기 :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 셋을 셀 동안 자수하라. 하나!

    백수 : 나는 쓰레기가 아니다!
    마담 : 나도 쓰레기가 아니다!
    곽씨父 : 나…나도다!
    확성기 : 둘!
    가족들 : 아버지! 아버님! 장마담!
    백수 : 잠깐, 음악을 틀어다오! 신청곡 홀리데이!

    음악, 비지스 ‘홀리데이’ 흘러나온다.

    백수 : 동지들! 헤어질 때가 왔습니다.
    마담 : 동지!
    이씨 : 동무!

    그들의 눈빛에 결연함이 감돈다. 음악 소리로 점점 커진다.

    백수 : 무전유죄 유전무죄!
    마담 : 아 좆같은 이년의 인생!
    곽씨父 : 나는 억울하다!
    이씨 : 나는 살고싶다!
    확성기 : 셋!
    암전.

    제 6 장

    파르스름한 새벽.
    무대를 잠에서 깨우는 ‘새마을 노래’ 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구민여러분 오늘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입니다.”
    미화원장과 미화원들, 쓰레기수레를 밀며 등장한다. 이제 곽씨父, 백수, 마담은 미화원이 되었다.

    미화원장 : (확성기를 입에 대고 돌아다니며)
    오늘은 분리수거의 날입니다. 가족 중에 눈빛이 갤갤 풀렸다든가, 몸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던가, 생산적인 일을 기피하거나, 터무니없이 술을 많이 먹고 우울증에 걸려 있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신고하십시오. 이 밝고 건전한 정부가 새사람으로 재활용하겠습니다.

    주민들이 낑낑 대며 하나씩 쓰레기종량제 자루를 들고 나온다.

    미화원장 : 자자 한 줄로 서십시오. (차트를 넘기며) 1번
    곽씨부인 : 예.
    미화원장 : 이름 곽수철. 나이 45세. 사유, 명예퇴직으로 인한 부양능력 상실.
    곽씨부인 : 말 마세요. 허구헌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이불 뒤집어 쓰고 있어요. 냄새도 그런 냄새가 없어요. 우리 딸애가 졸도를 했다니까요.
    미화원장 : (차트를 체크하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군.

    미화원들이 무게를 달고 쓰레기자루를 수레에 싣는다.

    곽씨부인 : (미화원 중 곽씨父를 발견하고) 아니, 아버님. 아버님 아니세요?

    미화원(곽씨父)은 무표정 무대답이다. 기계적으로 일을 끝내고 제 자리에 가서 선다.

    곽씨부인 : 아버님 기억 못하시겠어요? 저예요. 며느리.
    미화원장 : (만류하며) 자자. 다음 2번
    곽씨부인 : (물러나며) 이젠 맘보 좀 곱게 쓰고 사세요.
    이씨 : (앞으로 나서며) 우리집 마누랍니다. 애를 보내고 허구헌날 놀러다니드니만 끝내 바람이 났지 뭡니까. 자식 잃고 마누라까지 쓰레기가 되다니. 제가 죄 많은 놈입니다.
    미화원장 : 걱정 마십시오. 정부가 새 사람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미화원들 앞으로 나와 자루를 쓰레기수레에 싣는다.

    이씨 : (미화원 중 얼굴에 칼자국이 생긴 백수를 발견하고) 얘야, 나 모르겠냐?

    미화원(백수) 무표정 무대답이다. 역시 기계적으로 일을 끝내고 제 자리에 가서 선다.

    이씨 : 애비다, 애비야.
    미화원장 :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들은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고 새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밝고 건전한 사회에 적합한 재활용 시민! 지난 인연 따윈 쓰레기처리장에서 영원히 소각된 것이죠.
    이씨 : (눈물을 훔치며) 이 놈아, 드디어 니가 취직을 했구나.
    미화원장 : 다음! 아이고 새로 당선되신 부녀회장님 아니십니까?
    부녀총무 : 수고가 많으십니다. (‘환경정화’띠 가슴에 둘렀다.)
    미화원장 : 바쁘시죠?
    부녀총무 : 부녀회 일이란 게 원체 그렇죠 뭐.
    미화원장 : 앞으로도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부녀총무 : 물론이에요. 이 땅에서 인간쓰레기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저희 부녀회 회원들은 분리수거에 앞장 서겠어요.
    미화원장 : 이번에는 무슨 쓰레기를?
    부녀총무 : 전(前) 부녀회장 아시죠? 알고보니 온갖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이었어요, 이 여자. 동네 상가마다 협찬금 뜯었죠, 바자회 성금 착복했죠. 아주 썩을 대로 썩어서 재활용이 될라나 모르겠어요.
    미화원장 : 특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쓰레기를 싣는 미화원 중 마담을 발견하는 부녀총무.

    부녀총무 : 이게 누구야? 금마차 장마담아냐?

    미화원(마담), 무표정 무대답이다. 역시 기계적으로 일을 끝내고 제 자리에 가서 선다.

    부녀총무 : 화장 지우니까 증말 늙었다. 피부가 갔네, 갔어. 흥!
    미화원장 : 자 그럼, 수고들 하십시오.

    미화원장과 미화원들 나가려는 찰라,
    거지가 다 된 시인 힘겹게 뛰어나온다. 병색이 완연하다.
    시인 : 잠깐만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미화원장 : 아, 몇번이나 말했습니까.
    시인 : 저도…(콜록 콜록)…새로 태어나고 싶어요. 밝고…(콜록)…건전한…(콜록)…
    이 사회의 시민으로요!
    미화원장 : 시인은 재활용이 안됩니다.
    시인 : (울부짖으며) 저도 쓰레기라구요!

    미화원장과 미화원들 쓰레기수레를 밀면서 퇴장하며.

    미화원장 : 나랏님도 구제 못합니다. 시인은 천형이니까요.

    새마을 노래 울린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구민여러분 오늘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입니다.”

    시인 : (쫓아가며) 제발 나도 데려가죠…콜록 콜록 콜록…. (퇴장)

    이씨와 곽씨부인, 부녀총무 남는다.

    곽씨부인 : 우리는 언제쯤 쓰레기가 될까요?
    부녀총무 : (자신있게) 우린 아직 멀었죠.
    이씨 : 사람 팔자를 어찌 알겠습니까.
    부녀총무 : 우리는 썩을 때도 당당하게 썩읍시다. 추태부리지 말고.
    곽씨부인 : 그럴 수 있을까요?
    부녀총무 : 쓰레기로 더 살아 뭣하겠어요?
    이씨 : 오늘이 빨간날 인가요?
    곽씨 : 네. 휴일은 쓰레기 분리 수거의 날이죠.

    막.
    이윤설

    이윤설

    1969년 경기 이천 출생

    2001년 명지대 철학과 졸업

    현재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윤호진(단국대 연극영화과 교수, 연극연출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주제의 가닥을 끝까지 가져가지 못하고 희곡이 갖는 구조적 특징을 저버린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비자금 문제, 철거민 사태, 낙태 및 노인문제 등 뉴스 헤드라인에 한 번 쯤 거론되었던 사회적 문제점들이 모두 주제로 올라와 있다. 특히 사이버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인터넷과 채팅 그리고 통영상의 재료를 도입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 부패되어 있는 사회적 이면을 다루면서 원고지 100여장에 깊은 인상을 담아내려다보니 살인과 자살 및 엽기적 사건들이 만연하다. 그러면서도 사건을 통한 주제의 핵을 끌어올리는 데는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희곡을 쓰면서 무대에 형상화 했을 때의 감각을 끝까지 인지하고 마무리를 했어야 하나 지구력에서 그만 낙제를 한 것과 같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처럼 내성이 강한 감미로운 언어의 향연을 풀어내는 깊이 있는 작품을 기대해보기도 했으나 그런 작품은 전멸이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장의 변화와 기승전결을 염두에 두고 공을 들여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쓰레기 종량제의 사회적 제도를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비인간적 세태와 엮어 풍자극처럼 꾸몄다. 아버지와 아들을 내다버리는 현실 속에서도 그것을 관조하며 바라보듯 가벼운 코미디로 채색한 것은 이 작품을 선택하게 한 큰 장점이다. 끝까지 일관성을 지닌 아이디어의 실현은 칭찬해 줄만 하고 좀 더 치밀하게 계산 된 디테일과 유연성이 부족한 것은 초보 희곡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기에 충분함을 보여준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여 다양한 경험과 깊은 사고를 통해 내공이 쌓인 작품을 양산하는 고급인력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 이윤설

    이윤설

    1969년 경기 이천 출생

    2001년 명지대 철학과 졸업

    현재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희곡을 쓸 동안 엄마가 떠주신 꽃스팽클이 달린 파랑 손지갑이 책상에 있었다. 빈둥거리다가도 문득 그 촘촘한 질감을 뺨에 대어보고 지퍼를 열면, 맘 딱 먹고 쓰라는 말씀이 들리기도 하였다. 문 밖은 꽝꽝 얼어붙은 겨울이었고 전화벨이 잉잉잉 꿀벌처럼 울어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성탄 소포처럼 기쁘고 놀랍고 떨리는 소식을 받았다.

    스무살 무렵 혼자서 연극을 보러 다녔다.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버스를 갈아타고 소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서 기다리노라면 지루하거나 배고프거나 춥기도 하였지만, 무대 위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삶의 질료와 형상이 나타나 나를 꽉 끌어안고는 했다. 간혹 숨이 막히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듣는 날이 더 많았다.

    꼭 내가 쓴 희곡을 연극으로 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이젠 ‘이윤설적’이라는 내 이름에서 유래한 형용사를 갖겠다는, 약속을 지킬 차례이다. 아주 오래 걸릴 지도 모르는 이 약속을 기다려 주세요, 윤호진 선생님.

    자식이 밥 굶을까 쌀과 반찬보따리를 싣고 와 설거지 청소까지 하시고는 바삐 돌아가시던 부모님. 내 기쁨의 제일 으뜸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흠모하고 존경하는 교수님들께, 내 반쪽 심장 20년 지기 친구 기연에게, 그리고 당선소식에 비명을 질러 이 행성을 조금 시끄럽게 했던 우리 포에티카사람들, 툭 하면 잠수함 타고 전화 안 받는데도 나를 믿고 기다려준 선후배님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다지도 귀애하는 꽃과 새와 별의 지옥인,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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