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의 저조, 기법의 미숙
권영민(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송기원(소설가)
2004년도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의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8편이었다. 그러나 작품들의 수준이 예년의 경우에 미치지 못하였다. 응모작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제 의식의 결여와 기법의 미숙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중편소설의 양식적 특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편소설은 서사적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하는 특이한 장르이다. 단편보다 길고 장편보다 짧다는 조건은 단순한 길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중편소설은 상황성과 역사성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하는 서사적 기법의 균형을 요구한다. 중편소설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의 무게도 중요하다. 삶의 총체적인 의미를 추구하면서도 서사의 긴장을 살릴 수 있는 이야기의 밀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중편소설은 단편과 장편의 중간 형식이라기보다는 긴장된 통합 형식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심사 과정에서 비교적 세밀하게 검토된 작품은 ‘살인을 꿈꾸는 아이’(박서진), ‘독수리와 놀다’(이춘섭)라는 두 편이다. ‘살인을 꿈꾸는 아이’는 아동 성폭행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인간 의식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폭력과 상처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이 문제적인 모티프를 근간으로 하여 전개하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에 어떤 개연성을 부여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실제로 이복 남매의 만남을 우연한 계기로 설정하고 있다든지, 폭력의 반복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점 등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이야기 서술의 시점을 이동하면서도 그 효과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독수리와 놀다’는 일상 속에서 억압된 욕망과 좌절을 독수리의 표상을 중심으로 엮어간다. 그러나 그 욕망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삽화의 결합에 있어서도 긴장을 결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과 의식을 통한 인물의 성격 구성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도 ‘고양이’(이봉준) 등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하였지만, 앞의 두 편과 유사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을 뿐이다.
당선작을 골라야 하는 최종 단계에서 심사위원들은 2004년도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서 당선작을 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올해부터 제도를 개선하여 상금을 올리고 ‘동아인산문학상’까지 겸하도록 한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작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수많은 응모자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당부하고 싶다. 소설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진지한 주제의 작품이 내년에는 꼭 새롭게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