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오리예요.
다른 친구들처럼
물 속을 헤엄치지도 못하고
꽥꽥 소리내지도 못하지만
하늘 닿는
긴 장대 끝에 앉아
바람을 만나면
뱃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세게 불지 말라 부탁하고
비를 만나면
농사짓는 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많이 내리지 말라 부탁하고
별을 만나면
아이들 가슴에 반짝반짝
따뜻한 별 하나씩
품게 해달라 꼭꼭 부탁해요.
* 솟대: 마을 수호신의 상징으로 새의 모양을 만들어 꼭대기에 달아 동네 어귀에 세워 놓은 높은 장대
박예분
1964년 전북 임실 출생
1983년 전주여상 졸업
2003년 ‘아동문예’ 문학상
우화 형식 독특…구성 완벽
강정규(동화 작가) 이준관(동시 작가)
많은 분량의 응모작들을 꼼꼼히 읽었지만 새로운 소재와 독창적인 내용의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반가운 현상은 동시에서 엄마와 아가, 꽃과 나무를 맴돌던 소재가 좀 더 다양해졌고, 요즘 동화의 활성화에 힘입어 동화의 문학성이 높아진 점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통문화를 다룬 복고풍의 작품이 많아서 불만스러웠다.
동시에서는 소재의 폭이 넓어지고 생활 속의 동심을 담으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성인시나 아동시에 가까운 작품이 많은 것이 문제점이었다. 다양한 동심의 세계를 참신한 시적 표현으로 담아내기를 바란다.
동화에서는 결손 가정, 장애아 이야기, 친구와 티격태격하다가 화해하는 이야기, 전통문화를 다룬 동화 등이 주류였다. 이제는 이런 틀에 박힌 이야기나 복고풍에서 벗어나 이 시대에 맞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찾아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왜 이 동화를 쓰는가 하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쓸 것도 당부한다.
최종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동시에서 ‘포도밭 일기’(주필숙) ‘솟대’(박예분), 동화에서는 ‘꿈을 안은 보자기’(임수진) ‘그림자 각시와 매화무늬 표범’(조준호)이었다. ‘포도밭 일기’는 깔끔한 작품이었지만 기존 동시와 비슷했고, ‘꿈을 안은 보자기’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매끄러운 문장이 나무랄 데 없었으나 발상과 결말이 상투적이었다.
마지막 남은 두 편은 장르가 달라서 단순하게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그림자 각시와 매화무늬 표범’은 우화의 형식이 독특했고, 동화의 본질에도 충실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어서 참신했다. 문장이나 구성도 완벽했다. ‘솟대’는 전통문화를 다룬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자연스럽고 간결한 표현이 동시의 조건에 알맞았으며, 나무오리의 따스한 마음씨를 말하듯이 친근한 어조와 쉬운 시어로 정감 있게 표현한 좋은 작품이었다. 결국 오랜 논의 끝에 두 편을 공동 당선작으로 올렸다.
박예분
1964년 전북 임실 출생
1983년 전주여상 졸업
2003년 ‘아동문예’ 문학상
동짓날, 방바닥이 절절 끓어야만 추위를 견디시는 시어머님과 마주앉아 팥죽을 쑤었습니다. 동글동글하게 새알심을 빚을 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당선소식을 듣게 될 줄 말이지요. 그 순간은 오로지 한가지 마음 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얀 새알심이 쟁반에 수북해질 때까지 손바닥은 말없이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여든 넷인 연로하신 어머님, 당신 소원대로 건강하게 사시기를 함께 비는 마음이지요.
어스름 초저녁에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덤덤했습니다. 들뜨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안정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춘문예에 도전하던 첫해는 망둥이였고 일 년의 세월이 흘러 재도전할 때는 조급한 마음이었습니다. 올해 세 번째 다시 작품을 응모하면서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지난 해 최종심에 그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말입니다. 쓰면 쓸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글 쓰기. 지나온 시간들은 제게 겸손과 문학의 깊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당선작인 '솟대'를 쓸 때도 그랬습니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올 가을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아파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 힘들어하는 이웃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으로 살게 해달라고 동심을 빌어 저 높은 하늘에 솟대 하나 걸었습니다.
겨울햇살 한 자락처럼 늘 밝고 따뜻한 동시를 아이들 가슴에 비추게 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좋은 동시를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김문기선생님과 안데르센 창작교실 회원들, 심사위원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