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라고? 이탈리안?아이스크림 이름이야?"
"새로 나온 몬스터나 게임 주인공이겠지. 맞지?"
어제?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세종이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혹시 '현서나
민지가 뽀뽀를 알고 있을까?'하고 물어 보았다. ?
"아니, 뽀뽀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을 맞추는 거였대."
"뭐라고, 입을 맞춰? 너 뭐 잘못 먹었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 어떻게 사랑하
는 사람끼리 입을 맞추냐? 전쟁에서 적군들에게 입맞춤을 해서 세균을 퍼트렸다고 하면 믿을까, 네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리고 입에 이렇게 마우스키퍼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입을 맞추냐고?"
세종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친구가 차례차례?쏘아대기 시작했다.?처음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세종이도 그 부분이 제일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오래
전 일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마우스키퍼를 차고?있는데 입맞춤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방으로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 후에야 비로소?‘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말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어제 검색했던 자료를 보여?줄게. 잠깐만 기다려."
* 뽀 뽀 : [명사] 2015년 신체 접촉 금지법 제 3조에서 금지하기 전까지?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던 신체 접촉 행위의 하나로?상대방과 입맞춤을
하는?행동이라고 알려져 있음
예문 1 : 아침 일찍 엄마가 살며시 다가와서 뽀뽀를 해 주었다.
예문 2 :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의 뽀뽀를 하자 하객들이 큰 박수를 쳤다.
현서와 민지는 검색 결과를 보고서야 ‘뭐, 아주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때 바로 옆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호원이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사람들끼리 입을 맞추었다고??그건 자기 몸의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살인행위잖아. 아무리 마우스키퍼가 없던 시절이었다?해도 그건 말이?안 돼. 옛날 사람
이었다고 해도 그 정도 상식은 있었을 거야. 우리가 알다시피 마우스키퍼는 옛날 마스
크라는 보호장치를 계속 발전시킨 거야. 당시에도?그 정도 위생 의식은 있었던 거지.
그런데 뽀뽀라는 게 있었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세종이는 뽀뽀가 정말 있었는지, 장난기 많으신 할머니의
거짓말이었는지 계속 헷갈렸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벗어 던지고 곧장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어제 얘기해 주신 뽀뽀 말이예요"
"그래, 왜?"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리고?어떻게 하는 거예요?"
"지금은 불가능하지. 이 마우스키퍼라는 놈이 언제나 입 주위를 꼭 막고 있으니 말이야.?
옛날에는 이런 장치 없이도 하나도 위험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전염병도 많지 않았고."
'마스크가 있었잖아요? 그건 매일 쓰고 다니는 게 아니었어요?"
"아, 마스크? 그건 감기가 들었거나 기침을 할 때만 가끔씩 쓰는 거였어. 매일 이렇
게 감옥을 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참, 뽀뽀를 어떻게 하냐고 했지?"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마우스키퍼를 벗고 탁자에 내려놓으시더니 가까이 세종이를
부르셨다. 그 때 마침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머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세종이한테"
"아니야, 별 일 아니야. 뽀뽀가 뭔지 궁금하다고 해서 시범을 보여 준다는 게 그만.
미안하구나."
"세종이, 넌?얼른 네 방으로 가. 그리고 세균 샤워 3분이다. 꼭 지켜!"
"3분이나요? 너무 길고 지겨운데"
열과 바람으로 유해 세균을 죽인다는 세균 샤워가 세종이는 질색이다. 학교에서도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체육 시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샤워를 해야 하는데, 보통은 30초
정도라 참을 만 하다. 그런데 3분 동안 더운 열과 바람을 받고 있으려면 30초의 6배가?
아니라 60배는 더 많이 에너지가 소비되고 참을성이 필요하다. ‘엄마는 할머니 방에만
갔다 오면 3분 목욕을 시키신단 말이야’?투덜대면서, 세종이는 샤워 스위치를 켰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3분은 금방 지나갔다. 샤워를 하는 동안 세종이의 머리 속은 온통
뽀뽀 생각뿐이었다. 정말 뽀뽀가 있었을까?
"야, 세종아 이것 좀 봐!?네가 얘기했던 뽀뽀라는 거 혹시 이게 아닐까?"
현서가 등교를 하자마자 세종이를 불렀다.
"알다시피 내가 고물수집이 취미잖아. 어제는 할머니 방을 뒤지는데, 오래된 잡지가
있더라구.?하도 책을 오랜만에 봐서 슬며시 방에 가져와서 보는데, 네가 어제?얘기했던
뽀뽀라는?사진이 있어. 봐, 여기."
사진 속에 사람들은?마우스키퍼도 없이 자유롭게 일광욕을 하고 있고, 엄마가?정말
아이의?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고, 어른들도 환하게 웃으며 입술을 맞추고 있었다. 뚫어
져라 사진을 쳐다보고 있던 세종이는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정말 뽀뽀는 있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내 생각에?옛날에는 세균 위험이 요즘처럼 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가 배운?대로
2015년 신체금지법이 전 세계적으로 나올 때 대단한 세균 확산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게 식량전쟁, 에너지전쟁, 바이오전쟁으로 나타났고.?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세균 위
험이 덜하지 않았을까? 이 사진을 보더라도 손을 잡고,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사람들
도 많잖아."
"현서야, 나 이거 한 장 스캔해도 될까?"
"야, 안 돼. 금지된 사진이야. 복사한 기록이 남을 거고 나중에 큰 일이 생길 수 있어."
"그럼, 하루만 빌려 줘. 우리 할머니한테 보여?주고 좀 더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야"
"안 되는데... 그럼 다른 곳에 빌려?주지 말고 내일 바로 돌려줘야?해. 알겠지?"
세종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부리나케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오냐,?오늘은 또 뭐가 궁금하냐?"
세종이는 방문을 잠그고, 슬며시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었다.
"혹시, 이렇게 뽀뽀를 하는 건가요?"
"어디 보자. 그래.?용케 찾았구나. 이렇게 엄마가 아기랑?뽀뽀를 하고, 아빠?엄마도
뽀뽀를 하고, 아침에 일어났다고 뽀뽀를 하고, 행복할 때마다 언제나 뽀뽀를 했지"
"그럼, 할머니도 뽀뽀 잘 해요?"
"뭐, 잘 하냐고? 호호호. 할머니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잘 할 수 있어. 세종
이도 마찬가지고.?하지만 지금은 할머니도 세종이에게 해 줄 수가 없구나. 혹시 이
할미가 세종이한테 나쁜 병균이라도 옮기면 어떡하니? 너무 안타깝구나. 대신 할미가
뽀뽀 소리를 내 줄게."
"소리요? 뽀뽀에 소리가 있어요?"
"그럼, 볼에 대고 뽀뽀를 하면 ’쪽‘ 소리가 난단다. 입을 모으고 한 번에 소리를 내면 돼.?
이렇게,?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지.’
"우와"
잡지를 챙겨 세종이는 방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세균샤워를 하고 마우스키퍼도 풀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 얼굴을 하나?둘 떠올려 보았다. 아빠, 엄마, 할머니,?
민지. 세종이는 입을 모으고 쪽 소리를 내 보았다. 아직 정확한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몸 전체에 행복함이 번졌다.
그렇게 세종이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뽀뽀를 해 주는 동안, 방안에는 같은 박자로
마우스키퍼 충전기의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끝]
전신우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재 삼성에버랜드 근무
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채인선 동화작가
예년과 마찬가지로 응모작들은 크게 두 범주로 나뉘었다. 하나는 의인화한 동식물 또는 무생물의 눈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우화적 성격의 작품들이다. 이들은 너무도 익숙한 형태의 동화들로, 감상성과 날것의 교훈성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작품들로, 역시 너무나 익히 아는 상황이 전개되거나 미담으로 흐르기 일쑤였다.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도 여느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보거나, 익숙한 것을 다른 각도에서 그려내는 새로운 눈을 기대하며 응모작들을 읽었다.
본심에서 논의한 작품은 비만 때문에 놀림거리가 된 도형이가 새로 전학 온 당당한 뚱보 친구를 보면서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발랄한 언어로 다룬 ‘하마가 통통통’, 아이들 스스로 팽이 학원을 만들어 어른들에게 작은 반란을 꾀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학원’, 홈페이지 게시물의 형식으로 완벽한 친구를 만드는 마법의 약 제조법을 마지막 재치 있는 반전과 함께 보여주는 ‘완벽한 친구를 만드는 법’, 읽히지 못하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의 눈으로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담아낸 ‘뭐! 내가 싫다고’, 세균 감염이 두려워 뽀뽀가 금지된 미래를 다룬 ‘신체 접촉 금지법 제3조’이다. 다섯 작품이 다 일정 수준의 완성도와 재미를 갖추고 있었으나, 이 가운데 발상이 가장 참신한 ‘신체 접촉 금지법 제3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전신우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재 삼성에버랜드 근무
제주도 출장 중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각한 회의 중에 전화를 받고 ‘브라보’ 소리를 질렀습니다. 동료들의 축하 세례도 뜨거웠습니다. 마음으로 응원해준 분들과 뜨거운 감격을 나눴습니다.
용인 식구들은 더 난리가 났습니다. 큰아들은 아빠 줄 상장을 만들겠다고 신이 났고, 아내도 가족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느라 바빴습니다.
제게 오늘은 일분일초가 평생 기억이 될 겁니다.
동화로는 첫 작품입니다. 아니 본격적인 글쓰기로도 첫 시도였습니다. 가능성을 보고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신 소명(召命)과 동화 작가로서의 책임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정진하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겠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평생 반려자며 문학 동지인 아내 최은미는 늘 글쓰기에 자극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부디 내년에는 이 기쁨이 당신에게도 함께 하길...) 하루도 빠짐없이 동화책을 읽어줘야 잠이 드는 큰아들 호원이 덕분에 동화의 깊이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아빠가 게으름부리지 않고 책 많이 읽어줄게) 그리고 막내 호진이, 부모님이 제 든든한 독자요 후원자입니다.
제게 글쓰기는 노래요 호흡입니다. 저만의 울림과 삶을 이젠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