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편의점에 온 저승사자

by  유지영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지갑을 탈탈 털어보니 3600원.

    새로 나온 다섯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다 사기엔 부족한 돈이다. 하지만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하니까 일단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리 동네엔 편의점이 세 군데다. 아직 나를 후원해주는 곳은 없지만 곧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면 제일 멋진 조건을 거는 가게와 친구 맺기를 할 거다.

    매일 공짜 아이스크림 두 개. 친구를 데리고 갈 거니까. 거기다 신제품이 나오면 몽땅 시식하고, 화이트 데이나 빼빼로 데이 같이 특별한 날에는 기프티 콘을 팡팡 날려줘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하니 몸이 붕붕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어느새 드림 25시 편의점 앞.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와락 반겨 주었다.

    예닐곱 명의 손님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와! 제 유튜브에서 봤어. 사인이라도 받을까.’

    이런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아 머리랑 옷을 한 번 더 매만지고 당당하게 아이스크림 코너로 걸어갔다.

    신제품은 역시 비쌌다. 내 돈으로는 두 개도 살 수가 없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있는 식빵이랑 블루베리 잼을 이용해 새로운 맛을 만들 궁리를 해보았다.

    그때 누가 어깨를 툭 쳤다.

    ‘드디어’라고 생각하며 모델 같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야, 박 준. 오랜만이다. 나 해리.”

    꽃무늬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쓴 까무잡잡한 아이, 3년간 나랑 짝꿍을 했던 해리였다.

    “아, 안녕. 너 하와이 갔었잖아.”

    “여기서 중학교 다니려고 다시 왔어.”

    “그래? 난 네가 참 부러웠는데.”

    “아이스크림 골랐니? 내가 사줄게. 짝꿍의 귀국 선물이라 생각해줘.”

    안 그래도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사 가서 맛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해리가 사준다니 속으로 콧노래가 나왔다.

    “야, 너 그 동안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니? 얘기 좀 해줘.”

    “난 하와이 얘기가 더 궁금한데.”

    우린 편의점 앞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야금야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너 뭐 재미있는 일 없니? 학원 레벨이나 수학 진도 얘기는 하도 들어 이젠 질려. 어쩜 한국 아이들은 다 똑 같아? 내가 이러려고 한국 온 건 아닌데. 넌 원래 좀 특이했잖아?”

    “그렇지. 내가 좀 반짝하지? 난 요즘 키즈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느라 정신없다.”

    “우와. 멋지다. 역시 너다워. 그런데 그게 뭐야? 아직 이곳에 적응이 덜 되서. 스마트 폰도 담달에 아빠가 사주기로 하셨거든.”

    “유튜브는 알지?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 말이야. 거기다 내가 만든 영상을 올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구독할 수도 있고, 댓글도 달수 있어. 1인 방송이지.”

    “그럼 혼자 PD와 앵커, 카메라 맨 같은 걸 다 한다고? 힘들지 않아?”

    “요즘은 스마트 폰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 아이디어만 있으면 영상 만드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또 댓글 달리는 걸 보면 힘이 나.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

    “해외 다녀온 건 난데, 네가 더 글로벌하다. 그럼 여기도 촬영 때문에 온 거야?”

    촬영?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기분이 폭신한 구름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응, 사실 요즘 구독자 수가 늘지 않아 걱정이야. 먹방이나 초딩 일상을 찍는 건 누구나 하는 거고, 주머니 사정도 팍팍해서 뭔가를 하려 해도 힘들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해.”

    나도 모르게 한 숨을 푹 쉬었다.

    “음 그럼 이런 건 어때? 할로윈 때처럼 귀신 코스프레를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야. 하와이에서 정말 재미있었거든.”

    해리는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지만 난 너무 반가워 눈물이 솟아날 것만 같았다.

    “그래. 그거야. 무더위를 날려버릴 무섭고도 재미있는 것. 여긴 한국이니까 한국 귀신으로 해 봐야지. 정말 고마워.”

    그렇게 나와 해리의 작전은 시작되었다.


    드디어 D-데이.

    저녁밥을 든든히 먹고, 의상과 스마트 폰을 챙겨 나갔다. 캠코더와 화장품은 해리가 가져 오기로 했다. 촬영을 할 때마다 두근거렸지만 오늘은 정말 심장이 팔딱대서 가슴에 손을 얹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치솟는 구독자 수와 감탄사 가득한 댓글들…….’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행복했다.

    아파트 벤치에서 해리가 내 얼굴에 화장을 해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릴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꼭 연예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보니 정말 그럴싸했다.

    짙고 검은 눈썹과 입술, 창백한 하얀 얼굴…….

    내 등골이 다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해리가 장거리 촬영을 위해 캠코더를 맞추고 있는 동안 나는 재빨리 검은 도포를 입고 갓을 썼다. 나만큼 어린 저승사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바람처럼 스르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고등학생 누나 둘과 눈이 마주쳤다.

    “꺄!”

    두 누나는 공포 영화 한 장면을 본 듯 기겁해서 바깥으로 도망쳐 버렸다.

    대화 좀 하려고 했는데 저 누나들은 담력이 너무 약했다.

    갓을 슬쩍 올리며 가게 안을 둘러 봤다.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카운터 형이 눈에 들어 왔다.

    난 목에 힘을 주고 묵직한 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같이 가시지요.”

    “무슨 때? 난 매일 샤워해서 때는 없는데요.”

    뭔가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더 배에 힘을 주었다.

    “지금 당장 나와 함께 가야 하는데 혹 마지막 소원이 있나요? 내가 급이 좀 높은 사자라 청을 들어 줄 수도 있는데…….”

    “지금 소원은 사자 나으리와 함께 노는 것입니다.”

    이런! 별 이상한 형을 다 보았나? 『주니랑 TV』 구독자 수가 곤두박질치는 게 훤히 보였다. 땀이 난 손으로 검은 도포자락을 꽉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대사를 준비해야 했는데, 이제 후회한 들 어쩌란 말인가!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박차고 들어 왔다.

    “아니 누가 내 가게 손님을 내쫓았어? 너니? 참 요즘 초딩은 못 말린다니까.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이런 장난할 정신이 어디 있어!”

    편의점 주인 대머리 아저씨였다. 아까 누나 둘이 물건도 못 사고 도망간 걸 아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전 저승사자예요. 이 점원 대신 아저씰 데려 갈 수도 있어요. 절 방해하지 마세요!”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세게 나가야 했다. 물러서면 지는 거니까.

    “그래. 너 말 잘했다. 누가 누굴 방해했다는 거야. 너 영업방해죄로 고소당해 볼래? 아직 미성년자라고 봐줄 것 같아? 대신 너희 부모님이 배상을 하든지 철장 신세를 질 수도 있어.”

    부모님!

    배상!

    철장!

    그만 내 심장은 쪼그라들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아저씨. 손님들을 놀라게 한 건 맞지만 쫒아낸 건 아니에요. 창밖을 보세요.”

    점원 형의 말에 모두 창밖을 보았다.

    아까 도망 나갔던 누나 둘이 핸드폰으로 열심히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너그럽게 봐주세요. 물건 서리한 것도 아니고 힘겹게 의상까지 입고 와서 재밌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잖아요.”

    구세주 같은 형의 말에 나는 겨우 숨을 들이킬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래. 하기야 요즘 아이들 놀 만한 게 없지. 아저씨가 생각이 짧았다.”

    “저승사자님, 이렇게 먼 길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마지막 소원은 알바 시급이 올라 여친에게 멋진 선물을 사 주는 것입니다.”

    훤칠한 키의 점원 형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했다.

    “저승사자님, 제 마지막 소원은 가족 여행을 가보는 것입니다.”

    아저씨도 제대로 해 볼 마음인지 소매를 둥둥 걷으며 말했다.

    “어디 보자. 흠. 좋은 방법이 있긴 한데.”

    나는 턱 밑 수염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굴렸다.

    “저승사자 나으리, 그럼 얼른 알려 주셔야죠.”

    아저씨는 잔뜩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 마냥 천진스런 눈빛으로 날 보았다.

    “아저씨가 알바 형에게 가게를 맡기고 여행을 가는 거예요. 그럼 형은 시급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죠. 뭐 기분 좋으면 아저씨가 보너스를 줄 수도 있지요. 그럼 여친 누나에게 멋진 선물 사줄 수 있을 거예요. 아저씨도 가족여행 맘 편하게 다녀올 수 있잖아요.”

    갑자기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라 주저 없이 말해 버렸다.

    두 사람 다 표정이 환해졌다.

    “저승사자님! 고맙습니다. 그럼 제 목숨 한 달 더 연장해 주는 거지요?”

    “물론이지요. 제가 염라대왕 오른 팔인걸요.”

    내 말에 점원 형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이때다 싶어 나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며 해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 여기까지 『주니랑 TV』 였습니다.”

    촬영 종료 버튼을 누른 해리도, 밖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누나 둘도 키득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야, 너희들 뭐니? 완전 대박인걸. 아깐 진짜 놀라서 뛰쳐나갔는데 뭔가 재미있는 일 같아서 다시 와서 동영상을 찍었지.”

    긴 머리 누나가 가까이서 내 얼굴을 한 번 더 찍었다.

    “사실 제가 유튜브 키즈 크리에이터예요. 『주니랑 TV』라고 검색하면 제 채널이 나와요. 오늘 영상도 올릴 거구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불편한 갓을 벗고 한껏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내 애교가 통한다면 이 자리에서 구독자 넷은 확보한 거다.

    “그럼 우리 가게도 유명해지겠구나. 종종 우리 가게에서 깜짝쇼를 하렴. 물론 손님들을 내쫒거나 물건 부수지는 말고.”

    아저씨가 캔 음료를 쟁반에 가득 담아 오셨다.

    “마지막 소원이라는 아이디어 아주 좋았어. 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잖아. 해결책도 아주 멋졌어. 그런데 아저씨, 정말 가족여행 가실건가요?”

    점원 형이 음료수 캔을 시원스레 따며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 스크루지가 꿈에서 죽어 보고야 깨달았지만 난 오늘 네 덕에 진짜 중요한 걸 발견했다.”

    “어머, 참 재미있어요. 우리도 마지막 소원 생각해봐야겠어요.”

    안경 쓴 누나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무 띄워주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사실 『주니랑 TV』 구독자 수가 줄고 있어서 좀 무리를 했는데, 의외로 잘 되었어요. 하지만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걱정이 되요.”

    “왜 그렇게 구독자 수에 신경을 쓰니? 그냥 네가 좋아서 하는 거 아니었니? 너의 톡톡 튀는 모습만 보여 줘도 충분할 것 같아. 즐기다 보면 구독자 수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지.”

    형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맞아요. 처음 키즈 크리에이터를 시작하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재미있게 해볼게요. 오늘 저승사자도 큰 선물을 받아 가네요. 고맙습니다.”

    난 도포 자락을 모아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그때 점원 형이 선반 뒤에 가려져 있던 캠코더 버튼에 손을 얹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여기까지 BJ 김아담이었습니다.”


    <끝>
    유지영

    유지영

    1970년 대구 출생

    영남대 가정관리학과

  • 송재찬 동화작가·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동화형식인 생활동화나 의인동화가 응모작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작품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 스마트폰, 유튜브 등 변화된 테크놀로지 상황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완성도, 참신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4편이었다.

    부모의 불화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을 그린 ‘도돌이표 심부름’은 따뜻한 시선으로 무거운 주제를 재치 있게 풀어나갔다. 다만 가정 비극의 근본을 건드리기보다는 느닷없는 해피엔딩 식의 마무리가 공감을 얻기에는 약했다.

    개를 통해 현대인의 소통 부재를 환기시킨 ‘우리 집 빠삐용’은 문장이 안정되고 표현력이 좋았다. 하지만 기시감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TV 출연을 미끼로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어른들에 대한 저항을 썰매타기로 그려낸 ‘완벽한 하루’는 언론의 기획성으로 의미를 확대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요즘 아이들의 열망을 그린 ‘편의점에 온 저승사자’는 잘 읽히는 문장과 구성, 허를 찌르는 반전이 돋보였다.

    ‘완벽한 하루’와 ‘편의점에 온 저승사자’를 놓고 거듭 논의한 끝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대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더 흥미롭게 이끌어낸 ‘편의점에 온 저승사자’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나머지 응모자들에게는 격려를 전한다.
  • 유지영

    유지영

    1970년 대구 출생

    영남대 가정관리학과

    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제가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더군요. 마치 쓰기 중독인 것처럼….


    어렸을 적부터 네모난 것들을 참 좋아했지요. 동화책, 위인전, 백과사전, 신문…. 읽기 중독이었던 제가 두 아이를 키우며 소원대로 방 하나를 책으로 가득 채웠어요.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갈 때는 장바구니 카트기를 끌고 다녔고요. 아이들과 함께 그렇게 책을 읽어대며 저도 모르게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나 봅니다.


    1년 전 대구 혜암아동문학회에서 처음으로 동화와 동시를 공부했습니다. 그때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을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가슴 속에 눌러져 있던 이야기들이 ‘펑’ 하고 터져 나오자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되어 반짝였습니다.


    도서관에서, 학교에서 봉사를 하며 만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그 발랄함을 잃지 않도록 동화라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 순간 너무 설레고 행복합니다. 아동문학의 길을 열어주신 최춘해 선생님, 정곡을 콕콕 짚어주시는 김영란 선생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합평해 준 혜암아동문학회원 모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리며 앞으로 좋은 동화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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