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불란서 댄서들은 하이힐에 올라야 비로소
태어나지
발끝을 모으지
분란은 구두 속에도 있고
탁아소에도 있고 어쩌면
내리는 눈의 결정 속에서도 자라고
오후 세시에는 캉캉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려면 쓸데없는 말들이 필요해요
식탁 아래서 발을 흔들고
유쾌해졌지 아무 것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
몰래 휘파람 부는 것 같아서
뉴스를 튼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가십을 만들죠
상반신만 보이는 아나운서의 팔을 믿으며
캉캉은 감춰지는 중
양말 속에 주머니 속에
불란서 댄서들의 스포티한
팬티 속에
빨간 주름치마가 되어
덤블링이 되어
지구가 돌아간다
구세군 냄비에 눈이 쌓이고 내년에는
내년의 근심이 기다리겠지 고향이 어디입니까 묻는다면
제왕절개 했습니다 답하겠지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은 캉캉.
발끝을 들어올릴 때마다
불거지는 중
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조강석 문학평론가(연세대 교수)
본심에서 검토대상이 된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균일한 수준을 유지하지 못했다. 우선 본심에 오른 작품들 전체의 수준이 예년보다 고르지 못했고 동시에 개개인의 작품 5편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러나 성취는 평균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평균을 어림잡는 일과 당선작을 선별하는 일이 이 경우엔 조금 달랐다.
4명의 작품이 최종 논의 대상이 되었다. ‘아보카도의 날’ 외 5편은 비교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잘 만들어진 조립품을 연상시켰다. 거듭 읽을수록 접합부가 불거지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랑헨에서’ 외 5편은 자연스럽게 읽히는 리듬감의 측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감상적인 전개가 아쉬웠다. ‘30분’ 외 5편은 사유의 폭과 문장의 수일성이 돋보였다. 특히 ‘30분’ 같은 작품은 당선권에 근접했다. 그러나 건조하고 예사로운 어조로 일상을 묘사하는 여타 작품들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개성적인 어조가 아쉬웠다.
‘캉캉’이 당선작인 이유는 문장의 대담함과 사유의 힘이 과장 없이 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이미지들이 신선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을 통해 전개되고 있으며 진술대신 묘사를 통해 심적 상태를 제시하는 요령을 얻은 작품이다. 단 한 편의 높은 완성도가 심사과정을 마무리 지었다. 기대를 안고 축하를 건넨다.
아침에 문 밖으로 나가서, 저녁에 문 안으로 돌아옵니다. 오늘은 어쨌든 '0'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양말을 신었다가 잘 때는, 양말을 벗습니다. 최후의 나는 나체일 수 있을까요? 태어났을 때는 2.1킬로였다는데, 그 후로 서른 해를 넘긴 지금 이 몸 위에 얹어진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시를 쓸 때면 나는 나에게 가장 성가신 사람입니다. 거울 안에도 핸드폰 액정 속에도 동공의 안과 밖에도 내가 있습니다.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습니다. 나와 얘기하려면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보다 더 많은 관심사가 필요합니다. 금세 피곤해져 발을 씻고 잠에 듭니다. 앞과 뒤가 없는 얘기가 이불 속으로 들어옵니다. 살이 찐 것만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기도하는 손과 시 쓰는 손 사이에서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스스로를 사랑하기 힘든 나를 사랑해주시는 부모님께, 항상 그곳에 있어주신 김행숙 선생님께, 끊임없이 도전하시는 최정례 선생님께, 함께 아파해준 시나락과 창비학당, 교회와 동네 친구들에게. 그리고 어둠 속에서 이름을 불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충분히 오해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착각뿐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겠습니다. 이 몸을 뚫고 지나가는 시간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감각하겠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있어서 일일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사과드립니다. 피곤하시더라도 조금씩만 더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