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호모 헌드레드

by  이상민

  • 작품전문
  • 줄거리
  • 심사평
  • 당선소감
  •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기자 atg1012@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기자 atg1012@donga.com

    1

    소설이 지났지만 꽃은 아직 피어 있다. 계절에 맞지 않는 공원의 풍경은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 설면설면하다. 공원이 꽤 넓기에 낯섦은 조악하지 않고 특별한 정취를 풍긴다. 사실, 공원의 꽃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철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시의 용역을 받은 조경 회사가 주기적으로 새로 심고 품 들여 유지하는 인위적 화단이다. 세상의 옆구리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공원의 화단 사이로 마른 바람이 분다. 익숙하지 않은 첫추위가 매섭다. 그래도 아직 영상의 기온이고, 조금은 가벼운 코트로 멋을 부려도 시의에 적절하다. 공원 안의 사람들은 회귀한 계절과 새로운 공간에 들떠 각자의 영감을 착상하고 있다. 그들은 서울의 사대문 안에 이처럼 너른 공터가 있다는 것이 예기하지 못한 우수리로 느껴진다.

    송현공원은 그동안 4미터 정도의 높은 담장이 세워져 있던 곳이다. 요지가 맹지로 오래 방치되어 흉흉한 소문이 많았던 땅이다. 이곳은 과거 조선식산은행의 소유로 일본인을 위한 택지로 개발되었다. 광복 후 미군정에 넘어갔으며, 주한미국대사관이 직원 사택단지로도 사용했다. 삼성에서 새로운 현대 미술관을 만들려 했고, 한진그룹이 7성급 한옥 호텔을 짓겠다고 했지만 모두 그룹 내 불미스러운 사태와 맞물려 무산됐다. 지금도 뉴스에 이승만 기념관과 이건희 박물관의 후보지로 하마평에 오르내리지만 결착이 쉽지는 않다. 이곳은 굴곡진 과거가 현재에 유보한 거대한 빈 공간이다.

    땅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원은 나들이객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핸드폰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꽃을 배경으로 서로를 찍는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배경으로 꽃을 찍는다. 꽃을 오래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노인들이다. 이들이 꽃의 이름을 궁금해하는 것은 살아온 이야기의 여기저기에 꽃이 늘비해서다. 그리고, 그 삶의 미장센에 제대로 된 제목이 없어서다.

    하얀 꽃에서는 나보다 먼저 죽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날의 황망한 한숨은 하얀 꽃의 색과 같았다. 하얀 꽃 사이에 파묻혀 있는 친구의 흑백 영정은 시간이 지나도 거짓말 같다. 화사한 빨간 꽃에서는 어느 봄 고명딸의 결혼식장이 생각난다. 색색의 거베라꽃이 가득 꽂힌 삼단 화환은 딸을 보내는 애잔한 낯빛을 가려줬었다. 어머니에게 받은 졸업식 꽃다발과 아들에게 안긴 졸업식 꽃다발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어떤 날의 화환과. 어떤 날의 꽃다발과, 어떤 날의 난 화분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이 꽃이 다르고 저 꽃이 다르다는 것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 꽃은 고깝고 애달아진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낱낱사득 궁금해진다.



    부사장은 공원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지나간 시간과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바라본다. 여러 꽃 중 노란 국화꽃이 맘에 와 사진을 찍었다. 그의 꽃 사진에는 피사체 사이의 대화도 없고 기록한 순간과의 특별한 밀도도 없다. 기록물로써의 가치가 없을뿐더러, 수평조차 제대로 맞지 않은 사진이다. 그러나, 부사장은 그런 노란 국화 사진이 좋다. 콘텍스트적인 내러티프가 없다 한들 누구에게 보여줄 사진도 아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고 설명할 사람도 없다. 그는 지금 이 노란 국화꽃이 마음에 닿는다. 카카오톡을 열고 설정으로 들어가 프로필 사진을 바꾼다. ‘한국출판협회’에서 받은 감사패 사진이 노란 국화로 바뀐다. 부사장은 이제 노란 국화가 되었다.

    부사장은 하늘 사진도 여러 장 찍는다. 넓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허공에 손을 휘휘 젓는다. 하얀 먼지 같은 것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다른 방향의 하늘을 바라봐도 하얀 점들은 그 모양 그대로다. 점들이 눈에 붙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몰랐을 때는 불편함이 없었는데, 한 번 지각하고나니 계속 신경이 가늘다. 부사장은 힘을 빼고 헤설프게 주먹을 쥔다. 권골로 지긋하게 눈을 비빈다. 안구와 눈꺼풀이 천천히 유리하다가 마지막 순간 쩍 하고 떨어진다. 흰 점들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비문증이다. 날 ’비’ 자에 벌레 ’문’ 자. 말 그대로 안구에 모기같은 작은 벌레가 날아다니는 듯 보이는 안과 증상이다. 비문증은 안구의 노화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사장은 안경 업계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비문증과 그 해결 방편을 잘 알고 있다. 금세 사라질 일이니, 스트레스를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부사장은 손바닥을 펴 눈을 지그시 누른다. 쑥 밀려들어 간 안구가 제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 시야가 뿌옇다. 눈을 몇 번 껌뻑여 보지만 초점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몸의 이 구석 저 구석이 느슷해졌다. 거래처 안경원에 들러 눈 검사를 제대로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도움을 주었던 안경사 몇이 떠오른다.



    “윤 사장 어디요?”

    “송현동.”

    “우리도 거의 당도했네. 조계사 앞에서 보지.”

    “알겠네, 거기서 보세. 끊네.”

    최 사장은 부사장을 윤 사장이라 부른다. 전무도 이사도 아니고 부사장이라는 직함은 영 어색하다. 부대표라고 불러도 봤지만 사측도 노측도 아닌 애매한 느낌이다. 일흔도 넘은 나이에 사장 앞에 ‘부’ 자를 붙이는 것도 떨떠름하다. 그래서, 그는 부사장의 성을 가져와 윤 사장이라 부른다. 부사장이 처음 최 사장을 만난 것은 ‘한국간행물출판인협회’가 주최한 다회장이었다. 최 사장은 ‘한국전통사찰문화사’의 대표이고, <월간 다도>의 발행인이다. 최 사장과 동행해 같이 자리를 가진 관진 스님까지 세 사람이 모두 오일 년생 붕배였다. 쉰이 넘은 나이에 사회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지라, 그들은 쉽게 너나들이했다.

    세 사람은 낙원상가를 지나 종로 5가로 향한다. 예전 피맛골로 이어지던 익선동은 이제 젊은이들의 거리로 바뀌었다. 원인 불명의 큰 화재가 있고서 ‘다다익선’이라는 회사에서 계획적 젠트리피케이션에 성공한 곳이다. 지금은 프랑스 가정식 식당이나 타코 전문점, 탕후루나 마라탕 전문점이 빼꼭하게 골목을 메우고 있다. 대폿술을 파는 목로술집이나 술국을 파는 국밥집은 찾기 힘들다. 허름한 선술집이 있던 공평동과 청진동에는 마천루들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시나브로 빌딩 숲이 되었다. 청진옥 해장국 집이 아직 영업하고 있지만 새로 지은 건물 덕에 예전의 느낌이 없다. 청진동 골목 끝에 위치해 맥주를 먹기 좋았던 소시지 집 엉클조는 주상복합 건물로 옮겨갔다. 맥주는 그대로지만 역시 맛이 안 산다. 종각역 골목에는 초입부터 보란 듯이 큼직하게 ‘젊은이의 거리’라고 적혀있다. 낙원상가에서 종로 5가로 이어지는 율곡로와 종로의 사이가 사대문 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늙은이의 거리다.

    양철 슬레이트로 만든 가게의 문짝은 오래되어 아귀가 맞지 않는다. 몇 번을 미닫고서야 문이 열린다. 세 사람은 머리를 살짝 숙여 은색 샤시로 만든 문틀을 넘는다. 입구는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지는 않다. 하지만, 마치 불문율로 정해진 통과 의례인 것처럼 세 사람 모두 고개를 한껏 숙여 술집으로 들어선다. 세종대로의 거대한 전광판 광고 불빛이 잿빛 유리창으로 들어와 명멸하고 있다. 정해진 몇 가지 색이 모스 부호처럼 길게 혹은 짧게 깜빡인다. 아지트에 들어온 레지스탕스처럼 이제야 친숙한 공기에 마음이 풀린다. 의자의 인조 가죽은 해질 대로 해져서 원래의 형태가 남지 않았다. 오래된 벽에는 오래된 차림표가 걸려있다. 천원 단위 자리에 종이를 오려 붙여 가격을 올린 티가 난다. 빨간색 네온 사인이 가게로 들어오는 순간, 적색의 긴 파장으로 인해 감춰진 원래 가격이 좀 더 뚜렷하게 투영된다.

    “이모 여기 소주 하나 먼저 주소.”

    “이모 아니고 저치가 여기 사장일세, 부사장이 사장한테 그러면 쓰나?”

    관진 스님의 핀잔이 비수가 되어 부사장의 간담췌를 훑고 지나간다. 오늘은 부사장이 30년 넘게 근속한 신문사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하고 얼굴 한번 보자고 한 자리이니, 관진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다. 부사장은 관진 스님이 마치 득도한 도사처럼 꺼드럭거리는 것이 영 마뜩잖다. 언제나 상대방의 아픈 곳을 정확히 발라내 희롱을 하는 것을 보면 도력이 좀 있는 것도 같다. 사실, 부사장은 호칭의 상실로 인해 최근 우울증이 올 지경이다. 부사장이라는 호칭은 언제나 그를 든든하게 감싸는 갑옷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제 부사장이라는 직함이 사라진다고 하니 발가벗겨진 느낌이 든다.

    “아참, 오늘부턴 부사장도 아니구먼.”

    “절도 없는 중놈이! 오늘 성불 시켜드릴까? 사리를 확 꺼내버릴라.”

    “아이고 시주님, 제가 사리가 어딨다고 그걸 탐하십니까?”



    부사장은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던 참이다. 그는 퇴사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에 들렀다.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주민센터로 바뀌어 위치를 검색하는 데 이미 애를 좀 먹었다. 집 근처임에도 어렵게 위치를 찾은 동자동 주민센터에서 창구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주무관인지 뭔지 부르는 말에 대한 안내문을 보지 못해, 창구 직원을 아가씨라고 불렀다가 뜬금없는 말싸움을 한 판 했다. 그녀는 편의점 직원도, 식당 종업원도 아가씨라고 부르면 이제 큰일이 난다고 연설을 한다. 원래 부르던 말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부사장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보다야 좋은 게 아닌가. 나이가 들어 보여도 아가씨라고 하면 듣는 처지에서도 좋을 것 같아서 부른 말이다. 또, 아가씨는 뭔가 해 줄 것이 더 있을 것도 같아서 참 좋은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주무관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등본과 가족관계서 정도를 떼면서 나나지성 푸닥거리를 한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어디서 어른을 가르치려 들어.’

    부사장은 분이 가시지 않는다. 주무관은 ‘여사님’이라는 말도 비정규직 여성을 낮잡는 의미가 담겨있으니, 성별과 정규직 여부에 상관없이 ‘주무관’ 혹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간단하다고 설명한다. 차분하게 웃으며 하나하나 대척을 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맘에 들지 않는다. 세상이 말세다. 너무 변했다. 예의도, 위아래도, 반상의 예도 없는 것이 나라에 망조가 들어 있다. 여사님은 무슨 여사님이고 그것조차 싫다는 것은 또 뭔 소린지 부사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언성을 높여 끝내 ‘저기요’라는 말을 남기고 주민센터를 나왔다. 길을 걷는 동안 영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를 않는다.

    “저기, 사장님.”

    “아, 네?”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장님’이란 호명에 보도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죄다 사장이구먼.’

    부사장은 심기가 다시 불편하다. 주민센터에서 받은 서류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파카에 손을 찔러 넣는다. 양쪽 어깨를 움츠려 인파 사이를 헤집는 자세를 취하고는 아무도 없는 보도를 빠르게 걷는다. 짜치고, 잡치고, 빡친다. 동자동에서 후암동 쪽으로 모퉁이를 돌자, 주황색 벽돌로 된 서울역 구역사 건물과 함께 길거리에 있는 한 술집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역 같은.”

    부사장은 일부러 주변에 들릴 만한 소리로 술집 간판의 글자를 읽는다. 말을 뱉자, 방치된 채 썩어가던 감정이 툭 터진다. 욕설인 듯 아닌 듯 입에 착 붙는 것이 여러모로 재미가 있다. 서울역이 아닌 여느 지하철역 앞이었으면 맛매가 이 정도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사장은 이 상호가 서울역 구역사 옆에 붙어 있는 술집 이름으로 매우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든다. KTX며, 1, 4호선 지하철 승강장이 있는 서울역 신청사 옆 과거의 서울역 역사는 이제 철도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술집 이름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뒷전으로 내몰린 구역사가 내뱉는 허탈한 일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역 같은.”

    부사장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언제 한 번 써먹어야겠다고 꼬불쳐 놓은 말을 뱉는다. 최 사장과 관진 스님이 이 말의 말밑을 알 턱이 없다. 상황과의 밀도가 빠진 위트는 흐리멍덩하다. 주책없는 기롱지거리도 상황에 딱 달라붙어야 쫄깃한 맛이 산다. 멋이 없다. 멋이 적으니 상황이 멋쩍다. 부사장은 최근 대화에 있어 주변 상황과의 연결 능력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상대방의 반응이나 주변의 상황을 판단하기보다는 주로 내 생각을 중심으로 말하게 된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어렵고, 분위기를 어우르는 농담을 내놓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펀치가 박히는 농담에 뱉은 말이 뿌듯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지금의 상황이 딱 그렇다. 부사장 역시 그럴싸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부사장은 다시 짜증이 인다.

    “내가 내 입으로 말하는데 할 말은 하지도 못하고 연설을 쳐들어야겠냐? 이모가 이모고 아가씨가 아가씨지 지들이 뭔 할방구여, 할배여. 니는 스님이라 평생 ‘님’ 자 쳐들어서 좋겠네.”

    이번 타박 또한 밑도 끝도 없다. 익숙한 일이라는 듯 세 사람은 대화를 결부하지 않고 넌지시 넘어간다.

    파란 뚜껑이 달린 플라스틱 물통에는 소주 회사의 광고 스티커가 붙어있다. 모델은 K-POP 걸그룹의 멤버인 안유진이다. 사진 위로 ‘안유진 아니고 유진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카피가 적혀있다. 옆 테이블의 젊은이들은 짧은 카피의 긴 여운에 감탄하고 있다. ‘안유진 아니고 유진이’는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호명법을 담았단다. 그들이 느끼기에 성을 붙여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잘못이 드러나 혼낼 때다. ‘안유진, 너 이리 와봐.’ 같은 식이다.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는 성을 붙여 부르는 것이 금물이다. 친구들 사이뿐 아니라,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부를 경우에도 웬만하면 성을 떼고 부르는 것이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다. 소주 광고의 카피는 회식 자리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보기 좋게 꼬아 만들었다.

    “별…”

    “처사님들, 우리가 이제 7학년 3반이요. 6학년을 졸업하고도 13년이 지났어.”

    부사장은 ‘졸업’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

    “그나저나, 최 사장. 이달 월세는 냈고? 공양은 하고 댕기십니까?”

    “말 본새하곤. 관진은 뒤지면 예수 만날겨.”

    “아니 이것들이 오늘 왜 스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여? 스님 말이 틀리는거 봤습니까? 그러다 느그들 죽으면 소 됩니다.”

    “뒤지긴 누가 뒤져. 재수 없는 소리!”


    * * *


    지난 두 달 반 동안 부사장은 많은 것을 잃었다. 잃어버리기로 예정된 것들은 물론, 잃어버릴 필요가 없던 것들까지 잃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인집과 생떼뿐이다. 은퇴를 결정하고 그는 하루가 멀다고 직원들과 푸닥거리를 해댔다. 처음에는 그나마 잔소리의 주제라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와 내용이 없어지고 존중과 예의도 사라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부사장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갈 일도 문제가 되어 삐쭉하게 나불거졌다. 위품을 지키려 노력한 오랜 시간이 몇 달 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괴팍한 노인네.”

    구 차장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경리에게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웅얼거린다. 부사장이 출근하자마자 관리실에 전화해 실내 온도를 높이라고 지시를 한 것이다. 건물 전체가 중앙난방 시스템이기 때문에 요청한다고 온도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미 여러 번 전화했기 때문에 건물 관리사무소에서도 그러련 하고 그냥 무시하는 눈치다. 차장은 아침부터 거북한 전화를 해야 하고 멋쩍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 조금 기다리면 적당한 온도가 될 것이다. 또, 정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정해진 온도와 가동 시간에 대한 메뉴얼이 있을 것이다. 적당히 이해하고 양보하고 협의하여서 지내면 될 일인데, 부사장만은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것도 본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 직원을 시켜 대신 처리하니 주변이 두루 껄끄럽다.

    구 차장은 이곳 <안경보건신문>에서만 11년을 근속했다. 납부대한 성격에 부사장과는 죽이 잘 맞는 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부사장 편을 들었었다.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었는지 부사장의 짜증은 대하기 편한 구 차장에게로 자주 향한다. 아버지뻘이지만 내 아버지는 아니다. 노인네의 응석도 아니고, 반복되는 쓸데없는 지시에 십 년의 정이 한 달 사이 다 떨어졌다.

    “차장님, 부사장님 이제 법카도 날라가요. 영수증 대충 비용 처리 하시는 것도 상당한데. 의보도 개인으로 넘어가면 그것도 꽤 될 건데. 기분 별로지. 그냥 말 듣는 시늉 하고 넘어가세요.”

    “오늘은 시늉할 시간도 없어요.”

    경리와 차장은 입천장으로 웅얼거리며 말을 주고받는다. 주간 신문의 마감은 목요일이다. 월요일에 신문을 발간하려면, 목요일에는 PDF에 기사를 모두 앉히고 대지를 뽑야야 한다. 게다가 이번 달은 네 주에 걸쳐 창간 특집호를 발간하니, 업무량이 곱절로 많다. 24면이었던 지면은 32면으로 늘어났다. 창간호를 빌미로 안경 제조사와 프랜차이즈 안경원에서 광고를 받아 놨으니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침 나절에 해야 할 일을 해 놔야 오후에 다시 확인하고 인쇄소에 최종 파일을 넘길 수 있다.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하나씩 부러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출근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지시가 계속 찌르고 들어온다.

    해악질을 마친 부사장은 자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ㄹ자 모양으로 패턴을 그려 잠금을 해제한다. 되살아난 핸드폰이 다따가 커다란 소리로 동영상을 재생한다. 어제 밤 잠자리에서 보다 만 유튜브 채널이 자동 재생된 것이다. 부사장은 다급히 인터넷 브라우저를 죽였지만, 사무실에는 유튜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이명처럼 계속 울린다. ‘노인’, ‘우울증’, ‘상실’이라는 세 단어가 사무실의 공기 중을 부유한다. 두 달 전부터 부사장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은퇴 후 노년 우울증에 대한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관련 키워드를 검색한 적도 없는데, 알고리즘이 어찌 알고 생성되었다. 그리고 집요하게 잘 보지도 않던 유튜브를 매일 밤 시청하게 만들었다. 사실, 부사장의 괴팍은 알고리즘이 생성된 이후 갑자기 생겨났다.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아무도 상황을 무마해 줄 생각이 없다.

    인기는 명예의 잔돈이라 했는데, 이제 부사장의 호주머니에는 알량한 잔돈조차 남지 않았다.





    2

    조 수석이 입사한 것은 부사장의 퇴임이 결정된 직후다. 부사장은 면접 자리에서 한 시간 동안이나 연설을 늘어놨다. 홍 대표는 조수석의 첫인상을 보고 이미 합격을 결정했고, 면접 과정에서 이미 다음 주 출근을 통보했다. 두 사람은 서로 조율할 것을 넌지시 살피며 적당하게 밀고 당겨 조건을 맞췄다. 명확히 해야 할 핵심적 내용만 애두르지 않고 확실하게 말했다. 아직 서로 무기를 숨기고 있으니 별 문제가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서로가 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행간으로 맺은 계약은 공평하고 안전한 편이다. 부사장만은 대화의 결에 맞지 않는 쓸데없는 조건을 중언부언 늘어놓고 있다. 부사장은 입사지원서와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마치 자신만이 가진 엄청난 기밀문서인 것처럼 반쯤 말아 들고서 이야기를 이어 간다.

    “조아름 씨는 근속 기간이 전반적으로 길지 않네. 우리는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 좋아요. 박봉이지만 성취감이 있어서 다들 이십 년씩 다니고 그랬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조 수석은 ‘아’ 다르고 ‘아’ 다른 사람이다.

    ‘했었다는 것은 지금은 아니란 말이네.’

    홍 대표는 부사장의 경조한 말씨가 불편하다. 제풀에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부사장이 답답하다. 주요 일간지의 정직원을 제외하고, 기자는 생각보다 박봉인 직업이다. 예전에는 거래처에서 들어오는 ‘바터’라는 것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했다. 샘플과도 비슷한 바터는 때로는 먹을 것이고, 때로는 바를 것이고, 때로는 즐길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광고비 지출이 온라인 플랫폼 쪽으로 옮겨가고, 심지어 기업이 직접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바터라는 기자들의 덤은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고, 본봉이 오른 것도 아니다. 바터라는 물질적 성취감이 없어졌다는 것을 서로가 아는 상황에서 박봉과 성취감을 연결 지어 운운하는 것은 틀렸다.

    “내가 여기서 오래 일하면서 업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요. 내가 있을 때 많이 물어서 최대한 흡수하면 좋을 거 같아요.”

    부사장은 자신이 업계에서 시리어스한 사람이라는 것을 젠체하고 싶었지만, 조 수석은 착오로 들어간 시간적 조건절만 크게 들린다.

    ‘이 할배는 곧 나갈 사람인가 보네.’

    그래도 ‘안경보건신문사’는 최근에 사옥을 옮겨서 시설만은 아주 깨끗하다. ‘사람인’ 사이트의 기업 정보에 비해 규모가 좀 작아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사람이 많지 않은 쪽이 지내기 수월할 수도 있다. 조금 일찌거니 도착해 화장실도 미리 확인했다. 주변에 카페나 식당도 새로 생긴 곳이 많아서 근무 여건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름씨도 어느 정도 맞춰준 연봉에 스스로 타협할 구멍이 많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이번 주까지 면접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하고 한 두 명 면접을 더 진행하는 데, 이번엔 대표가 앉은 자리에서 결착을 지어 사나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귀찮음이 사라진 것도 맘에 든다. 조 수석은 이러한 이유에 면접 자리에서 입사 제안을 승낙했다.

    “남편 여행사는 잘 돼요? 아이는 있고?”

    부사장의 이번 질문은 화자와 청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호구 조사를 가장한 절실함의 조사다.

    ‘생업이냐고? 생업이다.’



    취향이 취향인 사람이 있다. 조 수석이 딱 그런 사람이다. 까다로운 부분을 까다롭지 않게 느껴주는 사람, 까다롭지 않은 부분은 까다롭게 느껴주는 사람이어야 겨우 곁을 허락한다. 이상적이면서 이상하지 않아야 하고, 정상적이어야 하지만 전형적인 것은 싫다. 좋은 관계는 지루함과 귀찮음 사이에서 낯섦과 설렘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취향이 취향인 사람에게는 시간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 영 헛벌이다.

    이런 조 수석의 등장으로 득을 본 것은 구 차장이다. 부사장의 말도 안 되는 역정의 표적이 구 차장에서 조 수석으로 바뀌었다. 구 차장은 서서히 녹아들며 조금씩 변한 부사장과의 관계를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했었다. 취향이 분명한 조 수석이 이상한 방향으로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기는 쉽지는 않아 보인다. 오 부장과 구 차장은 그것을 잘 알지만 상세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미필적 고의로 부사장의 과녁이 조 수석을 향하는 것을 막지 않고 있는 셈이다.

    조 수석은 부사장의 어이없는 지시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갑자기 주번을 만들어 연차 역순으로 순번을 정해 주전자를 닦으라고 하지를 않나, 부당한 규칙들이 자꾸 생성되고 있다. 부사장의 법석이 조직 관리에만 한정된다면 그냥 넘어갈 법도 하지만 편집국도 아니면서 기사 내용에도 자꾸 손을 댄다. 적응이 힘들다.

    오늘 기획 회의에서 조 수석은 대차게 까였다. 최근 새로 생긴 힙한 안경테 업체가 있어서 작은 쪽 기사 기획안을 냈다가 광고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사장에게 거절당했다. 한국적인 디자인을 융합해 ‘십장생’ 안경테 시리즈를 만든 회사다. 밀라노 아이웨어 쇼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호평을 받았다. 신선한 도전이 잘 없는 안경 업계에서 재미있는 기삿거리로 보였다. 안경 렌즈를 가지고 백자 모양의 도자기를 만든 공예가의 개인전도 재밌는 꼭지가 될 것 같았다. 작품이 렌즈로 만든 도자기가 아닌, 빛이 사방으로 굴절된 그림자 부분이라고 하니 안경 렌즈가 가지는 함의성을 다룬 것이 신선해 보였다. 부사장은 그런 것들은 다 빼고 광고를 많이 한 아이존 프랜차이즈와 롤라이 렌즈의 지면을 더 늘려 넣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오 부장, 구 차장, 조 수석은 카페에 내려와 라테 커피와 초코칩 쿠키로 기획 회의로 사라져 버린 혈당을 보충한다.

    “부장님, 어떻게 광고로만 지면을 채워요? 그건 전문지가 아니잖아요?”

    “그 이유가 그 이유가 아니에요. 장난 아니야. 전 몇 달 동안 부사장한테 들들 볶였어요.”

    국장 자리가 공석임에도 국장이 되지 못한 부장은 사실 가장 큰 피해자다. 두 명의 국장을 항명을 이유로 연달아 내보내고 그 자리에 입사한 부장에게는 국장의 타이틀을 주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부사장은 이제 전체적인 구조를 짜고 방향을 정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믿고 있다. 사내에서 존재 이유를 넓히려는 그의 노력은 부박하고 불편하다.



    오늘도 부사장은 조 수석의 트집을 잡기 위해 트집을 잡고 있다. 이대로면 아무래도 조 수석이 튕겨 나갈 분위기다. 최근 계속 직원이 바뀌고 있다. 이제는 직원들이 또 그러려니 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11년 근속한 구 차장도 다음 달을 마지막으로 퇴사한다. 석 달 전 결혼을 한다고 말을 해 놓은 상태다. 아직 청첩장도 주지 않는 것을 보면 결혼은 퇴사의 핑계일 확률이 높다.

    홍 대표는 조 수석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조 수석의 글 폼세보다는 그녀 얼굴 구멍새가 마음에 들어 채용했다. 업계 업체에 취재를 가더라도 일선 기자가 회사의 얼굴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대표는 지면에 좀 더 젊고 감각적인 갈래 있었으면 좋겠고, 광고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기사다운 기사가 있는 전문지로 다시 자리매김 하고 싶다. 전문지는 심층 분석을 통해서 해야 하는 말을 해 업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정표가 되어야 하는 것도 마땅하다. 지금의 상황이면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조직의 운영 자체가 요원해 보인다. 부드럽지 못한 인사 상황에서 창대한 결과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표가 보기에는 이전에 퇴사한 강승우 국장이나 지금의 조 수석이 그런 변화를 이끌기에 적당한 인물이다.

    ‘썅년이 이쁜데. 그냥 좀 부사장한테 맞춰 주지’

    “부사장님, 그러지 말고 좀 지켜보시면 안 되요?”

    “대표님. 오 부장은 일산에서 한 시간 반 걸려서 오는데 화장까지 다 하고 옵니다. 쟤는 엎어지면 코 닿는 데서 오면서 정확하게 정시에 맞춰서 온다? 옷은 또 참, 복장 불량이야 복장 불량. 적어도 한 달은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부사장은 지속해서 문제를 만들어 조 수석의 태도 변화를 요청한다. 그러나 그 뉘앙스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부사장과 조 수석은 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려주고 있지만 둘 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사장은 조 수석에게 기획안 작성을 지시했다. 지면도 남아 있지 않고 지금 특집이 밀려 있으므로 아무 의미도 없는 기획을 지시한 것이다. 기획안으로 두 주 정도 들들 볶을 심산이다. 꼬투리를 잡으려면 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노인의 생떼는 아집과 집념 위에서 자란다. 뱃심 있는 고집퉁이의 논쟁은 시작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부사장이 원한 기획안은 기획안이 아니다. 참신하면 업계의 현실을 모른다고 할 태세고, 탄탄하면 진부하고 납작하다 할 참이다. 본인이 업무에 관련된 지시를 바랐으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 수석은 상황을 골똘히 판단한다. 서너 번 볼펜을 딸깍거리더니 일필휘지로 기획안을 써 내려간다.



    부대표님 전상서

    우선,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고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적응하는 과정에서 제 부족으로 인해 올바른 예의를 차리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가 그동안 취재기자로 그리고, 프리랜서로 오래 일해서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과거 지면들을 검토하고 업무 내용을 신속하게 숙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상황에 맞게 업무에 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너그러운 이해와 함께 많은 지도 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아름 수석 기자 배상



    부사장은 돋보기안경을 쓰고 조 수석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기획안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제목을 읽고는 곧장 고개를 들고 돋보기 너머로 조 수석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천천히 글을 읽는다. 안춤에서 만년필을 꺼내 ‘지도 편달’에 동그라미를 치고 ‘진심’에 밑줄을 긋는다. 부사장은 몇 번 고개를 끄떡이고는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그래, 조 수석. 좋은 기획안 고마워요. 첫 번째 꼭지는 비문증 해결을 위한 타렉스 렌즈로 해보시죠.”

    조 수석의 기획안 아닌 기획안이 단박에 통과되었다. 부장과 차장은 토끼 눈이 되어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십 분 만에 휘갈겨 쓴 기획안으로 부사장의 성근을 녹인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부사장이 기획안을 써내라고 한 것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함이지 적당한 기획이 필요해서 조차 아니었다. 어찌 보면 출제하지 않은 문제에 정답자가 나온 것이다. 책상 아래서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부장과 차장의 손가락이 바쁘다. 두 사람의 카카오톡 창이 빠르게 글자로 뒤덮인다.

    부사장의 과녁이 허공으로 떴으니 두 사람은 뒤숭숭하다.


    * * *


    월요병은 월요일의 문제가 아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내내 발병하는 게 월요병이다. 월요일 오전의 기획 회의는 주말을 담보로 한 고금리 업무 대출이다. 주말 동안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안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걸 하기 위해 하루 종일 날카롭다. 조 수석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커피를 아랫배 위에 올려놓고 마루의 블라인드 사이를 파고든 한 줄기 미광을 바라본다. 생리가 시작될 참이다. 주말의 생리와 월요일의 생리 중 더 짜증 나는 상황을 헤아리다 이내 객쩍은 고민을 그만둔다. 다음 주에는 창간호 축사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전화를 수 없이 돌려야 한다. 그리고, 전화 횟수와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그녀는 기사를 작정하는 일보다 전화를 거는 일이 더 하기 싫다.

    “마누라, 졸귀탱.”

    “움직이지 좀 마!”

    조 수석의 남편은 푸석한 그녀가 귀여워 한마디 거들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그는 실뚱머룩한 표정으로 소파의 한쪽 귀퉁이에 앉는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혼꾸멍이 났다. 조 수석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말해서 알 거면 그 말을 왜 하냐. 그냥 쉬고 싶다.’

    다음 주 머리기사는 편광 선글라스에 관한 기사다. 조 수석이 맡은 부분은 안경테와 선글라스 관련 부분이다. 입사 후 처음 1면 기사를 써야 하니 부담이 있다. 엔데믹 이후 선글라스와 야외 활동용 편광 렌즈의 매출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광고가 끊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맞춤 맞은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낚시용, 캠핑용, 보드용 등 용도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기능의 편광렌즈가 있다는데, 휴일에 48시간 동안 소파에서 내려오지 않는 조 수석에게는 관심 밖의 분야다. 게다가 기획기사는 제호와 리드가 매끈하게 뽑혀야만 글맛이 산다. 도입부가 안 떠오르니 머리만 아프다.

    “한국은 아파트 유리장이 전부 초록색인 거 알아?”

    “몰랐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건물의 유리창 색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모든 집이 초록색 선글라스를 낀 셈이다. 아파트 유리창은 그 크기가 어느 정도 있어서 깨질 위험이 크다. 여러 유리를 접합해 깨진 조각의 흩날림을 방지한다. 비산 방지 접합 유리를 만들 때 한 겹 정도는 초록색이 들어간 유리를 사용한다. 편광렌즈처럼 한 가지 색만을 통과시켜 여러 빛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자외선 차단 효과도 있어 눈 건강에 도움을 주고 시원한 시야를 선사한다.

    조 수석은 풀리지 않던 머리기사의 들머리가 초록색 창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가 된 기분이다.

    ‘월요일에 가서 쓰기만 하면 되겠네.’

    남편은 왜 초록색 유리창 색 얘기를 했을까. 조 수석은 난생처음으로 초록색 유리창을 통해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3

    “저는 마카롱은 먹지 않습니다만!”

    알바생의 목소리가 사무실 크기에 비해 다소 크다. 그리고 딕션은 쓸데없이 정확하다. 사실, 마카롱을 먹으란 말이 마카롱을 먹으란 말은 아니다. 조금 쉬어가며 하라는 배려고, 서로 대화도 하고 편하게 지내자는 선심이다. 상황과 관계와 대화의 맥락 없이 마카롱이란 구체적 시니피에에 대해 호오를 표현한 것은 구렁이처럼 넘어온 단어를 역으로 이용해 이후에 펼쳐질 귀찮은 상황을 어기차게 끊어내는 수법이다. 마카롱으로 인해 벌어질 그다음의 상황은 마카롱을 준 사람보다는 마카롱을 받은 사람 쪽에 불리하기 마련이다. 뚝 끊긴 대화에 말을 건넨 디자인 실장은 겸연쩍다.

    각자의 입장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입장의 콘트라스트가 뚜렷할수록 이해는 오해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조 수석은 알바생의 곡절이 일변 이해가 간다. 그녀의 깔끔하게 잘라내는 대화법이 고소하다.

    예측한 결과가 실제로 나타나면 정황은 의미를 잃는다. 시뮬레이션은 시츄에시션을 압도한다. 그리고, 그 상황이 기존 집단의 구심을 확인하고 스크럼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면 반응은 빠르고 뚜렷하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직원 단톡방이 시끄러워진다. ‘마카롱’이라는 체언의 채도와 ‘않습니다만’이라는 용언의 용도는 주변의 모든 상황을 흐리게 만들고 문장 하나만을 사무실 공간 위에 덩그러니 놓는다. 모두가 다가들어 공통의 적을 만난 듯 물어뜯는다. 기존 집단을 우월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열등한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이제 우와 열을 선과 악으로 바꾸면 원하는 판이 깔린다. 다수를 점했으니 민주적이고, 우리가 정직원이고 오래 근무했으니 명분도 있다.

    말로만 듣던 ‘맑은 눈의 광인, ‘맑눈광’이다. 워드로 기사를 작성하는 자판 스트로크 소리와 카카오톡으로 잡담을 하는 자판 스트로크 소리는 차이가 크다. 게다가 대화의 내용은 프로젝터로 프리젠테이션하는 것 럼 자명하게 공간에 펼쳐진다.

    조 수석은 다들 남의 일에 참 관심도 많다는 생각한다.

    ‘슬픈 마카롱이네.’

    그러든 말든, 알바는 알 바 없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의도한 상황 전개다.

    ‘귀찮게 왜 말 시키고 지랄. 근데 저 마카롱 먹고 싶긴 하다.’



    ‘안경보건신문사’는 연말이 되면 통계청과 중소기업청 등의 업계 유관 데이타를 비교 분석해 <안경 업계 빅데이타 북>을 출간한다. 편찬 전 여러 데이타를 엑셀로 정리하기 위해 매년 아르바이트를 쓰고 있다. 받은 수치를 입력하고 엑셀에 간단한 함수를 입힌 뒤 데이터를 정리하면 되는 단순 작업이다. 예년의 경우, 하루 이틀 사무실에 나와 업무 과정이 어느 정도 숙지 되면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겸 재택근무로 바꿔 시급을 좀 조정한다. 이렇게 하면 사무실이 번잡하지도 않고 서로에게 제법 득이 된다. 시쳇말로 농땡이를 치면서 해도 삼일 정도면 입력을 다 할 수 있고, 일주일 주 5일 치 정도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되는 일이다. 꿀알바다. 회사 쪽에서도 바쁜 시즌에 고정 인력을 사용하지 않고 광고 수익을 낼 수 있어서 이득이다.

    그런데, 올해는 한 달 반 동안 일곱 번째 아르바이트가 작업을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 한 주 면 끝날 일이 두 달 넘게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부사장은 오는 알바마다 태도를 문제 삼아 못살게 군다. 알바생을 향한 부사장의 어깃장에 직원들도 체념한 상황이다.

    “일단 그냥 넘어가시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사회생활 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아니지.”

    본부장이 여러 방편으로 부사장을 다독여 보지만 이빨이 박히지 않는다. 본부장은 업체에서 신문 지면의 광고를 받아오는 일이 주 업무다. <빅데이타 북>이나 업계 달력 같은 광고물은 시간 패턴의 엄수가 내용의 퀄리티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알바의 태도는 책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에게 기사의 퀄리티나 내용의 정확함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잘 비비면 되고, 좀 큰 건이 필요하면 술 한 잔 같이 마시면 일 처리가 이루어진다. 어쨌든 광고를 따오기 위해서는 못해도 신정 두 주 전에는 <안경 업계 빅데이타 북> 샘플이 나와야 한다.



    부사장은 답답하다. 알바생은 하라는 것을 하면 그만이다. 공과를 따져 잘 보이면 알아서 더 챙겨주겠다는 생각이다.

    “내 속을 꺼내서 보여 줄 수도 없고.”

    부사장에게는 충분조건부 선의지만 알바생에게는 시급의 필요조건이다. 우수리와 에누리의 차이다. 알바생은 덤을 탐하다 덤터기 쓰느니, 부족할망정 정확한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부사장의 말이야 그럴싸하지만 속내는 관계의 키를 본인이 쥐겠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부하 직원에 대한 상벌의 권한은 권위의 상징과도 같다. 일의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다. 그 일을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회적 관계에서 유산 계급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모호해야 한다. 결론을 예측할 수 없어야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릴 수 있다.

    알바생으로서는 이것이 자존심의 문제만은 아니다. 반복 가능한 삶의 시스템을 만들 수가 없다면 수입과 지출의 관계를 정립할 수 없다. 계약이라는 것은 명확하고 불가역적이어야 한다. 모두는 그것을 구축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수리가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위하여 원칙이 흔들린다면 삶이 곤란해진다. 좇는 것을 쫓다가 되레 잡아먹이는 수가 있다. 검색 세대에게 이것은 과거로부터 충분한 표본이 축적된 표본오차가 없는 데이터다. 당근에 휘둘리면 당장 한 번 이득이 있을 가능성은 있으나 그것이 장기간 축적되면 손해로 수렴한다는 것이 사회의 원리이고 원칙이다.

    책상 아래서 스마트폰 채팅창을 누르는 손가락들이 분주해진다.

    - 내일 또 안 나오겠네.

    - 부장님 같으면 나오겠어요? 나 같아도 안 온다. 해도 너무 하시네. 그냥 데이타만 정리하면 되는데. 지난번에 온 친구 잘하던데, 걔 재택 한다고 할 때 천 원 더 주고 했으면 이미 다 끝났겠네. 이번 서베이 결국 못하는 거 아니에요?

    - 내 말이…

    - 아까 알바천국에 연장 다시 올렸어요. ㅜㅜ 저 인사과인 듯.



    부사장과 알바의 시간과 보수의 덤을 두고 벌이는 밀고 당기는 스토리는 1층 카페로 이어진다. 그녀들의 커피 타임은 소중한 점심시간을 쪼개서 만드는 수다의 시간이다. 조수석은 커피보다는 천천히 점심 식사에 집중하고 싶지만, 이조차 거절하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 보여 함께 수다회에 참석하고 있다.

    “부사장님 저번 알바한테 언어폭력으로 고소당했잖아요. 신곤가? 암튼. 노동청에서 출석하라고 전화 오고 난리도 아녔어요.”

    “그래도 막말하시는 분은 아니지 않나?”

    “무슨, 업무 외적으로 부당한 언사를 했다던가? 뭐라 그랬는데. 직장 내 괴롭힘 해서, 본인이 그렇게 느끼면 그런 거래요. 걔가 그걸 또 핸폰으로 녹을을 해가지고 그랬잖아요. 심지어 녹음 한다고 말까지 하고 부사장님이랑 본부장이랑 알바 뭐라고 한 게 걸린 거지.”

    “장난 아니네.”

    “사장님이 알바한테 전화해서 엄철나게 달랬어요. 겨우 취소하고 넘어갔잖아.”

    “그거 그때, 휴식 시간이랑 주휴 해서 다 급여로 쳐줬어요. 일부러 그러는 알바도 있대요.”

    “헐. 지랄도 풍년이네.”

    매년 똑같은 데이타를 연도만 바꿔 출간하는 책이라 기자들이나 디자인 실장에게 부담은 없다. 2023년을 2024년으로 바꾸고 안경원 수를 각 칸에 맞게 바꾸어서 넣으면 되는 일이다. 일 년 동안 새로 생겨난 안경원 프렌차이즈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사이 새로운 기술이 발명된 것도 아니다. 거기에 맞춰 작년 기사를 자기복제 해서 우라까이 하면 되는 것이고, 표의 수치를 조정해서 면적만 잘 보이게 보정하면 된다. 부사장이 알바생을 지지든 볶든 그녀들에게 큰 의미는 없다.



    “조 수석만 안경을 안 끼네.”

    조 수석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라식 수술을 했다. 안경 신문에 올 줄은 몰랐다. 이곳에서는 라식과 라섹 수술은 금기어다. 의료적 시술을 통해 시력을 교정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문제가 아니다. 업계의 경제적 이득에 타격이 되기 때문에 안과적 치료 방법은 다루지를 않는다. 면접할 때도 눈치가 있는 조수석이 적당히 얼버무린 주제다.

    “사실, 라식 했어요.”

    “아, 그랬구나.”

    “이번 주 탑 뭐에요?”

    “대한 안경 산업 진흥원 수주회 하기로 했는데, 수주회 가보고 상황 봐야죠. 요즘 사람 안 와서.”

    “자기는 라식 전에 도수가 얼마였어?”

    “안 잰 지 오래되서 기억 안 나요. –1.5? 그랬던 거 같아요.”

    “아이쿠 이 사람아. 어디가서 <안경보건신문>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겠다. 그게 눈 시력이 마이너스란 게 아니구, 안경 도수가 마이너스야. 근시는 마이너스, 원시는 플러스 안경 끼는 거. 오목렌즈, 볼록렌즈.”

    “아, 진짜요?”

    구 차장은 기사를 작성하며 얻은 지식을 가지고 렌즈의 굴절률 수치에 관한 설명을 한다.

    우리가 보통 안경에 쓰는 렌즈는 양 볼록 렌즈나 양 오목 렌즈가 아닌 초승달 모양의 메니스커스 렌즈다. 메니스커스 렌즈의 굴절률을 나타내는 단위를 디옵터라고 부른다. 원시와 노시를 교정하는 +1D(디옵터) 렌즈는 돋보기처럼 렌즈 뒤에 실초점을 맺는다. -1D(디옵터) 렌즈는 거꾸로 렌즈 앞쪽 1m 지점에 허초점이 맺힌다. 오목렌즈와 같은 광학적 특성을 가지기에 근시를 교정하는 데 쓰인다. 우리가 시력이라고 착각하고 말하는 ‘마이너스 얼마’라는 수치는 근시용 디옵터 수치다.

    안경 렌즈 공장에서는 -0.25D(디옵터) 단위로 렌즈를 만들어 판매한다. 그래서 안경 렌즈의 도수 종류는 의외로 많지 않다. 최근 개발된 ‘아토릭 렌즈’는 비구면체를 깎아 만들기 때문에 사람마다 눈의 상태에 따라 초점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 개인 맞춤형 렌즈라고 불리는 아토릭 렌즈를 만드는 ‘프리폼’과 ‘디지털 서피싱’ 기술은 -0.01D(디옵터), 혹은 그 미만의 정밀도로 도수를 구현한다. 그야말로 각자의 시력에 맞는 렌즈가 이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예전엔 딱 맞는 안경이 아니라 적당한 안경을 낀 거네요.”

    “만들어진 안경에 내 눈을 맞춰 산 거지 뭐.”



    삼십 분간의 수다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까지도 부사장과 본부장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들이 보기에는 알바생이 옆에 있는데 알바생에 대해 논쟁하는 태도가 더 문제인 것도 같다.

    알바생은 데스크탑 컴퓨터에 플로팅 창으로 카카오톡을 띄운다. 그리고 일회용 로그인 번호를 생성해 접속한다.

    - ㅎㅇ
    - 직컴이야? 알바 중?
    - 망. 시외 더 쳐준단 분위기 같은 분위기.
    - 일단 굴러라. 그럼 보고 결정한다??????
    - 줄거 같긴 한데. 내 시간 아작.
    - 나나 박박 하녀 모드. ㅎ. 그거 결국 안준다에 한 표… 시9?
    - ㄴㄴ 8500
    - 셀?
    - 알바 ㅈㄴ 내 알 바 없고. 오늘 거 어케 받지?
    - ㅈ
    - ㅈ2



    홍 대표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부사장과 본부장의 쓸데없는 대화가 지겹다. 논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그녀가 직접 등판한다. 사장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온 홍대표는 화들짝 놀란다. 알바는 사무실 가운데 공용 책상에서 작업을 하고 있고, 부사장과 본부장은 지근거리에 서서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홍 대표는 두 사람이 하루 종일 알바생 얘기를 하고 있기에 오늘 온 알바생이 이미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했다. 알바생은 작업을 하고 있고 그 옆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은 그녀가 생각한 직장의 모습은 아니다.

    “부사장님, 지금 알바 있는 자리에서 그 말씀을 하고 계신 거에요?”

    홍 대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사무실을 날카롭게 반으로 가른다. 쓸데없는 분란으로 자꾸 사람이 바뀌고, 일은 진행이 늦으니 대표도 짜증이 난다. 그래도 부사장이 창간 때부터 중심을 잡고 회사를 잘 이끌어 온 터라 몇 달 참고 지나가는 중이다. 다른 직원이 있는 데서 부사장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지만 이번만은 그녀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알바 간 다음에 그런 얘기를 하시든지 해야죠!”

    홍 대표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도 알바는 자리에 앉아 있다.



    ‘마카롱이나 먹을걸. 감정 업무량 존나 오지네.’





    4

    종로에 있는 최 사장의 회사는 목욕탕 건물의 3층이다. 1층 여탕과 2층 남탕을 지나 수증기와 물때 냄새를 뚫고 한 층 더 올라가야 <월간 다도>의 사무실이다. 최 사장은 부사장에게 줄 중국 병차를 우리고 있다. 차는 중국 안후이성에서 온 ‘황산모봉’이다. 황산 현지에서도 가격 깨나 나가는 물건이다. 낯꽃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부사장은 이 사무실에서 마시는 차는 매번 같은 향이 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이곳 차향은 삼분의 일이 여탕 냄새고 삼분의 이는 남탕 냄새다. 최 사장은 그러리 말리 차의 맛과 향을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다.

    사무실 한쪽에 가로로 쌓여 있는 오래된 <월간 다도> 과월호는 수분을 머금어 너저분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최 사장은 사무실의 절반을 차지한 책의 산을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신문사 밥을 오래 먹은 부사장도 최사장의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은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필름 리더기를 사용한 것이 80년대 후반 쯤인 것 같은데,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건이 사무실 가운데 여봐란듯이 놓여있다. 과거의 아카이브를 간직한 비디오테이프와 펜티엄 컴퓨터의 브라운관 모니터도 이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차를 우리는 다구들도 신기한 것이 매한가지다.

    최 사장이 이번 <월간 다도>의 특집면을 펼쳐 부사장 앞에 놓는다.

    “윤 사장, 이거 한 번 봐봐. 내가 이번에 차사를 새롭게 드러낸 바가 있소.”

    “이 친구 또 침소봉대하는구먼.”

    부사장은 최 사장이 30년 동안 주야장천 그토록 자랑하는 ‘차사를 송두리째 뒤집는 발견들’을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고려시대 문인의 일기에서 차에 관련된 한자 하나를 찾아냈다든지, 차나무의 새로운 시배지가 밝혀져 한국의 차사가 100년은 더 앞당겨졌다든지 하는 말들은 다 비슷비슷한 얘기로 들린다. 사실, 신라 시대의 차 이야기가 새롭게 밝혀질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주 작은 것들을 아주 천천히 모으는 것이 최 사장의 일이다.

    “차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 아닌데, 녹차 엑스포도 그렇고 우리 차계가 문제가 많아.”

    “뭐 지금은 커피가 유행이지.”

    “근본도 없고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엉망진창이라고. 차를 한다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

    “그래도 17차 같은 브랜드도 계속 생기고 시장이 커지기는 하지 않나?”

    두 사람이 차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 대화는 계속 동강이 난다.

    ‘한국전통사찰문화사’는 과거 여러 잡지를 동시에 출간하고 굵직한 행사를 척척 치러냈다. 한때는 어느 정도 매출도 있었다. 최 사장의 중국 출장도 잦았다. 하지만, 지금은 격월간으로 내는 잡지 하나조차 출간 기일을 못 맞추고 있다. 그나마 최 사장의 고집이 지금까지 회사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사실, 최 사장은 한글을 거의 모르는 수준이다. 국민학교만 한국에서 나왔고 중국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을’과 ‘를’조차 가려 쓰지를 못한다. 글에는 ‘것’과 ’줄’, ‘수’가 난무하고 어미는 대부분 피동형이다. 그의 글에는 문제가 많다. ‘한중 관계’가 ‘중한 관계’로 적힌다. 회사에 기자들이 많을 때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직원이 모두 나가버리니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온 상황이다. 이런 분야의 전문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사를 열고 거기에 학회지 같은 것을 만들어 수익을 만드는 구조인데, 최 사장 실력으로 비딩이 될 리 없고, 이제 행사 기획사들이 많이 생겨나 경쟁도 치열해졌다.

    지금 그의 사무실에는 차를 마시고 있는 두 사람과 일을 하는 디자인 실장 한 명 뿐이다. 디자인 실장이라고는 하지만 회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일 뿐이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한 사람이 다 하는 셈이다. 책은 출판을 해서는 안되는 수준이고, 맞춤법조차 맞지가 않는다. 어쩌면 이제 이곳은 나무의 시체를 만들어 내는 회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부사장은 최 사장의 현재가 부럽다. 창대한 말년은 아니지만,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본인만의 분야를 유지하며 잠연히 걸어왔다. 아마 그는 저 자리에서 숨을 거두면 거두지 자신이 해온 일과 박리되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최 사장의 책상에는 네 개의 안경이 놓여있다. 그는 돋보기안경을 계속 도수만 높여 쓰고 있다. 부사장은 안경을 하나씩 들어 먼 곳에 초점을 맞추며 도수를 어림잡아 가늠한다. 검안사도 아니니 별 쓸데없는 행동이지만 안경만 보면 으레 나오는 동작이다. 예전에는 신문사로 들어온 선글라스를 최 사장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안경보건신문사’ 사무실에도 샘플 안경의 씨가 말랐다.



    “여기도 사람 뽑아야 하는 거 아니야?”

    “올려는 놨는데 딱 맞는 사람이 잘 없구먼. 자네 후임은 정해졌어? 인수인계는 안 하고 나와도 되나?”

    “좀 길어질 거 같아.”

    부사장은 사무실에서 일어난 두어 달 동안의 일이 떠오른다. 그는 본인이 나간다고 말을 한 뒤부터 직원들의 태도가 불손해진 것으로 여긴다. 부사장과 최 사장이 가장 자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슬슬 등장한다. 언제나 차는 다르지만 대화의 본론은 똑같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될 일을 자꾸 트집을 잡는단 말이지.”

    “다 해본 건데 경험에서 말하면 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지들이 잘난 줄 아는데 맹탕이지 뭐.”

    “예전엔 직원들도 많고 오래 다니고 그랬는데. 그땐 백오십 주면 감지덕지했어. 시키면 잔말 없이 예 알겠습니다, 했고.”

    “그때가 좋았지.”

    왕년의 기억은 그들에게 살아가는 연료와도 같다. 사실, 인생이 언제나 클라이막스인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시간이 오히려 진짜 인생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그, 곽 국장도 십몇 년 했쟎아? 그 친구는 잘 있나?”

    “걔가 22년 하고 나갔지.”



    부사장은 그동안 홍 대표와 퇴사한 곽병희 국장이 만나는 것을 일부러 막아왔다. 업계 행사에서 마주칠 요량이면 홍 대표의 심기를 긁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홍 대표는 곽 국장이 자기 회사를 차려서 기존 광고 거래처를 가지고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전혀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곽병희가 그렇게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부사장이 같은 사안을 두고 사장에게 한 말과 곽 국장에게 한 말은 전혀 다르다. 두 사람이 대면하는 날에는 모든 것이 탄로가 난다. 부사장의 처지가 난처해질 테다. 부사장은 아직도 당시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사장이 전한 치하의 말은 중간에서 사라졌다. 곽 국장이 한 말은 뒤틀어서 사장에게 전했다. 부사장은 둘 사이를 어긋나게 해 결국 곽 국장이 나가게 만들고야 말았다. 지금도 사장은 곽 국장을 배신자로, 곽 국장은 사장을 수전노로 대하고 있다.

    곽 국장은 퇴사를 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며 블로그에 그간의 안경 업계 자료들을 정리해서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경제신문사의 전문 분야 플랫폼 업체를 만나 온라인 매거진을 차리게 되었다. 지금 곽병희가 대표로 있는 <아이스웨어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면 없이 온라인으로만 기사를 올린다. 분리된 법인이라고는 하지만 모회사인 경제신문의 지면과 온라인 사이트에 기사를 공유하는 전문지 플랫폼의 일부다. 곽병희는 한 분야에서 22년이나 근무를 했기에 업계 사람들도 많이 알고 흘러가는 내용에 빠삭해 깊이 있는 기사 작성이 가능하다. 대형 신문사 입장에서도 타사 기사를 우라까이 해서 올리는 것보다 제대로 만들어진 기사를 포스팅할 수 있다. 나름대로 광고도 붙어 자체적인 수익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곽병희 국장이 퇴사하고 이어 입사한 강승우 국장은 큰 조직에서 방구 꽤나 껴본 사람이다. 편집국장의 자리지만 조직 관리와 콘텐츠 개발, 미래 기획에 오히려 능통한 사람이었다. 취재 기자로서 기사를 작성한다기보다는 홍 대표와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는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천천히 회사를 리빌딩 할 계획이었다. 업계의 구조와 광고 자금의 흐름을 분석하고 회사 전체의 구조를 조정할 것이다. 부사장으로서는 오래 일해 머리가 자란 곽 국장을 내보내니 오히려 다 큰 호랑이가 들어온 셈이다.

    부사장은 선수를 쳐야만 했다. 처음에는 그가 하는 말을 듣고 동의하기도 했고, 자신이 할 일을 찾아 홍대표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하녀 같은 직원들이야 하나씩 괴롭히면 자기들끼리 치받고 싸울 테지만, 전체 판을 보는 자가 사내에 한 명 더 있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조직의 페이지네이션은 부사장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강승우 국장은 몇 번의 훌륭한 리빌딩 기획안도 만들어 올렸다. 신문의 UI를 바꾸고, 새로운 섹션을 신설하고, 각각의 섹션이 저마다의 역할을 해 매출을 이끌도록 구조를 짜고자 했다.

    부사장은 이 모든 것이 업계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 말했다. ‘예산을 만들 수도 없다.’ ‘원래 하던 것을 그대로 하면 되는데 당장 매출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일을 미래를 위해서 한다는 것은 기회비용이 크다.’ 부사장은 최선을 다해 대표를 설득했다. 홍 대표가 보기에도 이상적으로는 방향성이 맞지만 내부적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방향을 잡는 것도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넘어야 할 허들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창간 때부터 함께 해온 부사장이기에 우선 부사장 편을 들기로 했다.

    새로운 일이 싫은 직원들도 기사 작성도 하지 않는 편집국장이 달갑지 않아 부사장 편을 들었다. 모진 핍박 속에 강 국장은 넉 달을 일하고 결국 퇴사를 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리빌딩 기획안을 만들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시행된 것은 없으니 밖에서 보기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 보인다.

    강승우 국장이 몇 달 못 버티고 나간 뒤, 부사장은 새로운 편집장으로 지금의 부장을 채용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국장이라는 직위 대신 부장이라는 직위를 내렸다. 어느 정도 상황을 보고 위치에 맞는 역할을 하면 국장으로 승진시키겠다는 조건을 달아서다. 부장이 입사한 뒤 부사장은 초장부터 그녀를 매섭게 몰아붙쳤다.


    * * *


    예정된 면접 시간이 10분 지났다. 각자의 업무가 있으니 직원들은 면접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부사장만은 이미 맘에 들지 않는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면접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애당초 생각이 글러 먹은 거지.”

    차장의 퇴사도 얼마 남지 않았고 빨리 직원을 구하긴 해야 한다. 모집 공고가 폭이 넓고 두리뭉실하다 보니 지원자가 잘 없다. 차라리 연봉이나 혜택을 정확하게 적으면 거기에 맞는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부사장은 모집공고를 명확하게 올리지 않는다. 정신상태를 보겠다는 생각이다. 예전 같으면 편집부 면접은 국장에게 맡기고 면접 자리에서 관상만 확인만 했는데 언제부턴가 꼬치꼬치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을 구하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것도 조건을 제대로 적시하지 않은 채 올리고 어디 한 번 보겠다는 투니 지원자가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부사장은 최근 편집부 모임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며 실장과 경리, 본부장을 빼고 식사한다. 광고 본부엔 본부장 한 명이고, 디자인실에는 디자인 실장 한 명이다. 편집국장은 공석이다. 전문지에 정치부나 문화부 같은 전문 부서가 없을뿐더러 업던 직책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지금의 부장이다. 역시나 업무의 카테고리를 가를 일 없어 차장도 하나다. 그리고 조 수석이 수석 기자이니 회사에 평기자는 없다. 회사에 직책만 참 많은데, 면접자에 따라 부사장이 새로운 직책을 또 생성할 여지도 있다.

    사무실에 들어온 남자는 쥐색 양복을 입고 있다.

    사장과 부사장은 면접자와 함께 1층 카페로 면접을 보러 내려간다. 오 부장은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달려가 부사장 컴퓨터에서 면접자의 지원 서류를 확인한다. 차장이 퇴사한 자리를 충원하는 것이지만, 나이나 연차나 연봉이 딱 맞는 사람이 지원할 리 없다. 들어오는 상황에 따라 자리와 직책도 조정될 것이다. 대표는 조 수석 밑으로 3년 차 정도의 기자를 뽑겠다고 했지만 현재 인재풀에서 가장 희귀한 연차가 3년 차 사람이다. 조 수석 입장에서는 누가 들어오든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부장의 입장은 좀 다르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거나 능력이 좋은 윗사람이 들어오면 골치가 아프다. 자신은 부장으로 고정되고 연봉이 오를 일도 없어진다.

    남자는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본부장은 스펙과 상관없이 남자인 게 기분이 좋다. 들어오면 제일 먼저 담배는 피우는지 물어볼 참이다. 부사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들이라 끝나고 술 한잔을 할 수도 없고 최근에는 회식 자리를 가져 본 적도 없다. 얼마 전에 새로온 조 수석에게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했다가 그녀가 벨레 보는 눈으로 바라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나간 적이 있다. 그 뒤로 본부장은 조 수석이 무섭다. 그는 직장이라는 곳이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닌데 너무 팍팍하다는 생각한다. 본부장은 남자 직원이 들어오면 좀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이라 짐작한다.

    남자는 귀고리를 했다.

    경리는 그저 새로 오는 사람이 오래 다니기를 바란다. 금세 나가면 서류 작업이 많아진다. 사대 보험과 입 퇴사 처리에 필요한 서류가 한두 개가 아니다. 1년 정도는 다녀야 서류가 복잡하지 않다. 정부에서 나오는 일자리 보조금과 채용 지원금도 그렇고, 사대보험 서류도 자주 사람이 바뀌면 수상함을 감지하는 시스템이 작동해 뭔가 귀찮은 추가 서류를 요청하기 시작한다. 경리에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오래 다니기만 해주면 그만이다. 아니면 아예 입사하지 않으면 좋다. 인원이 적을수록 하는 일이 적어지는 것이 경리만의 상황이다. 은색 귀고리가 왠지 맘에 걸린다. 경리는 진득하게 궁둥이를 깔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필요하다.



    남자는 사무실 문을 닫으며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여긴 희안하게 시선이 불편하네. 하는 일이 안경이라 그런가?”





    5

    오늘 점심은 짜장밥이다. ‘안경보건신문사’가 있는 곳은 주상복합 단지의 업무동이다. 건물의 상가 지역에 좋은 식당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신문사 직원들은 웬만하면 옆 건물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바로 옆 건물이 HG 본사의 사옥이다. 이곳에 외부인도 이용 가능한 구내식당이 있다. 두 달 정도의 텀으로 메뉴가 바뀌어 반찬의 가짓수도 다양하고 퀄리티도 나쁘지 않아 주변 직장인을 상대로 인기리에 성업 중이다. HG기획실 차원에서 사회적 공헌을 겸하여 운영하는 것이라 식대도 합리적이다. 메뉴를 정할 필요가 없으니 시간도 절약되고 영양사의 식단이어서 꾸준히 먹으면 건강에도 좋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한 달에 한 번 본사 직원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색 식권을 사용하는 HG 본사 직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날 건물에 세입 해 들어있는 나머지 회사 직원은 박탈감을 감수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평소에는 한식, 양식, 분식 중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본사 특식이 나오는 날은 그 선택지가 한 가지로 줄어든다. 특히나 특식이 계절에 맞춰서 준비되니 오늘처럼 찬바람이 부는 날에는 아쉬움이 배가된다. 한겨울의 입구에서 자기들만 먹는 전복죽이 얼마나 뜨끈하고 든든하겠는가.

    “이왕 사회공헌 차원에서 외부에 오픈하는 거면 이러지 말지. 오히려 짜치쟎아요.”

    “그래도 이정도 밥이 어디서 나와. .평소엔 먹을만 하쟎아”

    “근데 이번 달 특식 두 번째네요. 지난주에 생대구 지리 나오고.”

    내부 설문에 의하면 본사 사원 특식은 특별히 반응이 아주 좋다. 만족도 만점을 받은 유일한 사항이다. 다만, 기타 의견으로 특식 메뉴를 다양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그들은 특식의 메뉴가 맘에 든 게 아니라 특별하다는 것이 마음에 든 것이다. 사전적 정의상 ‘특별’이라는 단어는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이라는 뜻이 있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라는 의미를 가진다. 메뉴가 둘로 좁혀지면 이 두 단어가 조금 다르게 읽힌다. 특별과 보통은 반의성을 가지게 되면서 각각의 의미는 ‘좋고’, ‘나쁨’으로 바뀐다.

    식당 한편에서 부사장이 전복죽을 먹고 있다. 어디서 아는 HG 부장에게 알랑방구를 껴서 저 대단한 하늘색 식권을 얻었다. 직원들 눈에도 부사장의 모습이 들어온다.

    “구내식당 잘 안 오시는 분이 또 웬일이래?”

    “부장님, 쪼다와 찐따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글쎄, 한국어와 중국어?”

    “쫌스런거랑 얌스런거 차이”

    “아, 그래?”

    부장은 결국 수수께끼의 주어가 부사장이라는 것을 알아먹지 못했지만 구 차장은 하고 싶은 말을 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


    “본부장, 이번 창간호 축사 리스트 보고 안 해? 하라고 한 지가 언젠가.”

    “부사장님, 지금 국회 회기 중이라 의원님들도 바쁘고 협회도 행사 준비로 좀 바쁜 모양입니다.”

    “왜 이리 말이 많아?”

    이제 부사장의 일장 연설이 시작될 참이다. 10년 넘게 일한 구 차장은 부사장의 레퍼토리를 전부 암기하고 있다. 그중에 십팔번은 연병장에서 모래 산을 옮긴 얘기다.

    부사장은 신문사에 오기 전 11사단에서 행정보급관으로 복무했다. 부대가 조용하고 훈련이 없는 시기 그는 장병들의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잡무를 만들어 시켰다. 한번은 커다란 공병 트럭으로 강변의 모래를 떠 와 연병장 한쪽 구석에 쌓았다. 주말마다 모든 장병을 집합시켜 쌓인 흙을 연병장의 반대쪽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장병들은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흙을 옮겨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오후 네 번 흙산을 옮기면, 주말에 장병들이 헤이헤질 시간을 원천적으로 삭제할 수 있다.

    부사장이 호령하던 세상은 그의 말 한마디로 척척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군대에서 행보관의 역할은 군사 작전 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조직을 부드럽게 유지하는 일이다. 행보관은 조직 내 구성원 사이에 치킨게임을 만들어야 그 역량에 빛이 난다.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는 꽃놀이패가 널려있다. 젊은 장병들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나이가 어릴수록 처신은 어리석다. 가진 게 부족하면 해결이 불편하다. 행보관은 장병 사이의 다툼을 유발하고 그걸 익힌다. 부대장이 문제를 인식할 때쯤 그 문제의 원인을 알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보관 한 명뿐이다.

    부사장의 관점에서 규율은 규칙을 지배하는 열쇠다. 규칙은 정의가 뒤집히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다. 규율은 사회가 뒤집히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다. 삼각형의 꼭짓점이 되고자 한다면 규율을 손에 쥐고 규칙을 흔들어야만 한다. 부사장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등에 업은 권위가 사라진 지금은 그가 가진 무기가 많지 않다. 불편함을 만들면 불편한 자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며 싸워야 하는데, 그들이 명령자에게로 달려들고 있다. 삼각형의 밑변은 이것을 혁명이라 하고 삼각형의 꼭짓점은 이것을 반역이라 부른다. 뒤집히지 않으려면 억지를 부리더라도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

    부사장은 일흔셋, 본부장은 예순다섯이다. 부사장이 본부장을 쥐 잡듯 잡는 장면을 본 조 수석은 눈이 동그래진다.

    “저는 이런 직장 생활이 처음이에요.”

    “저도 그래요.”



    소정의 근로 시간이 네 시간이나 지난 오후 열 시, 이제 겨우 대지가 출력되었다. 월요일에 출간되는 신문의 출력 파일은 목요일 업무가 끝난 뒤 인쇄소로 넘어가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목요일은 태반이 야근이다. 그래도 두 시간이 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이번 달은 창간 특집호여서 한 달 네 번의 목요일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은 부사장뿐이다. 그는 이런 것들이 직장인으로서 해야하는 당연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마감일에는 법인카드를 가지고 삼천 원짜리 김밥 한 줄씩을 사다가 먹는다. 그래도 오늘은 감정적으로 힘드니 중국식 배달 음식을 시켜먹기로 했다.

    부장은 해맑은 얼굴로 조수석과 함께하는 첫 중식에 앞서 취향을 물어본다.

    “자기는 부먹이야? 찍먹이야?”

    조 수석은 되도 안 되는 질문이 새로운 다툼의 꼬리라 여겨진다. 대답 하고 싶지 않다. 탕수육 따위 오늘 날씨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먹고 싶지도 않고 빨리 마감을 넘기고 퇴근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장면보다 김밥이 더 든든하기도 하다. 먹고 난 그릇을 치우는 것도 일이고, 사무실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일을 만드니 자꾸 일이 많아지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있으니 해야 할 일은 정작 더디다. 할 것만 하면 야근 없이 다 할 수 있다.

    구 차장이 끼어든다.

    “그래도 같이 먹을 땐 찍먹이 국룰 아니에요? 난 바삭한 게 좋더라. 부어 먹는 사람은 이해 안 됨. 그건 탕수육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오 부장은 보나 마나 부먹파다. 아니면 왜 그걸 물어봤겠나. 조 수석과 부먹 편이 만들어지면 은근슬적 부어 먹으려 한 것인데 물색도 없는 구 차장이 조 수석의 선택을 막아선다. 부장은 짜증이 난다. 오늘 마감에서 부장이 차장의 꼬투리를 잡는 일이 생길 조짐이다. 조 수석은 최소한의 시간이 망가질 예감에 사로잡힌다.

    “난 찍어 먹는데 가끔 부어도 먹어요. 오래된 튀김은 좀 그래.”

    디자인 실장이 거든다. 부먹찍먹 전쟁은 확전의 양상이다.

    부사장에게 탕수육 구두 결제를 하러 간 본부장이 돌아온다.

    “부사장이 탕수육은 먹지 말래.”



    간신히 살아가는 일이 간단히 살아가는 일은 아니다. 목요일 오전 구 차장은 잔머리를 굴려 금요일 오전 외근을 만들었다. 쥐재 업체 직출을 통해 출근을 늦게 하려는 고난도 꼼수다. 업체 행사 일정을 교묘하게 찾아내서 여러 시간 변수를 모두 도려냈다. 부사장이 정 꼬투리를 잡으면 포기하면 그만이다. 부사장이 웬일로 외근 결의서를 순순히 오케이 한다. 구 차장의 작전은 성공이다.

    사장이 1면의 순서를 뒤집는다. 원고야 넘어가 있으니 지면에 다시 앉히는 일만 하면 된다. 이것은 디자인 실장의 일이다. 실장의 위 아랫입술 사이로 앞니 치열이 살짝 보인다. “씨”를 발음하기 직전의 입 모양이다. 의도 없는 기획과 특별하지 않은 특집과 사진을 받아 쓴 현장 스케치의 위치를 바꾼다고 대단한 지면이 될 리는 없다. 퇴근만 늦어질 뿐이다. 그래도 홍 대표는 원하는 순서가 있다. 제목과 리드가 계속 바뀌고, 광고주의 가치에 따라 광고 기사의 위 아래를 다시 바로잡는다.

    열 시가 넘어가고 있다. 기다리다 지쳐 먼저 퇴근하는 부사장이 마치 대단한 선심을 쓰는 듯한 어투로 한 마디를 던진다.

    “내일은 다들 열한 시까지 출근하도록 하세요.”

    ‘이런, 씨팍’

    어렵게 외근을 만들어 꼼수를 부린 구 차장만은 달갑지 않은 지시다.

    ‘부사장은 계획이 다 있었구나.’


    ***


    “이게 저희가 가맹점에 납품하는 프롭터에요.”

    프롭터는 안경원마다 하나씩은 있는 자동 검안 도구다.

    “지금도 검안경으로 도수를 잡는 안경사들이 있기는 한데 대부분 자동검안기를 써요. 오차도 오히려 작고 원하는 렌즈를 바로 뽑아주니까 아무래도 문제가 안 생기죠.”

    구 차장은 아이존 안경 체인 본사에 취재를 나왔다. 이번 취재는 PB 상품에 관한 내용이다. 구 차장은 맨날 보던 프롭터에는 관심이 없다. PB 상품은 유통업체가 직접 제조하는 자체브랜드 상품이다. 안경 프랜차이즈는 최근 PB 상품을 중심으로 안경을 판매한다. 유통을 하면서 축적된 데이터가 많다 보니 잘 팔릴 확률이 높은 제품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여러 프랜차이즈 브랜드마다 PB 상품이 다르니 이제는 소비자들이 안경원을 그곳의 PB 상품 구매를 염두하고 찾는 경우가 많다.

    안경 업계뿐만 아니다. 대형 마트에 가면 이제 PB 상품이 안나오는 품목이 없을 정도다. 가성비가 좋아 소비자 만족도도 높다. 하지만 영세 제조사 입장은 다르다. 유통 업체가 제조에 손을 대는 것은 밥그릇을 뺏어가는 일이고, 협력사에 대한 배신이다. 차장은 오늘 프랜차이즈 취재를 하고, 내일은 안경 제조업체를 찾을 생각이다.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니 두 업체 모두에서 광고를 받아야 하는 <안경보건신문>의 논조도 섣불리 한쪽 스탠스를 취하기 어렵다.

    취재 내용이야 인터넷 검색을 하면 사무실에서도 모두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직접 취재를 나오는 것은 업계 사람들과의 친분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대표님은 잘 계시죠?”

    “네 뭐. 잘 계세요.”

    “본부장님도 뵌 지 오래되었네. 아직 다니시나?”

    “네, 안부 전해드릴게요.”

    부사장 안부는 묻지 않는다. 취재를 마친 뒤 구 차장은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한다.

    “부사장님, 본사 최 과장님이 안부 전해달라고 하시네요.”

    “어 그래. 그 양반 오래 하네. 언제 밥 한번 먹으러 가야겠구먼.”





    6

    중도 백중이 되면 얼굴에 윤기가 돈다고 했다. 관진 스님은 기분이 좋다. 다음 주가 백중기도 시작인 데다 수능 합격 염원 백일기도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는 주머니가 두둑하다. 은유적으로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게 아니라, 정말로 쌈지가 불룩하게 두둑하다. 종교계는 대부분 매출이 현찰박치기니, 물질적 풍요가 물질적으로 느껴진다.

    “시주님들, 오늘은 제가 쏘지요.”

    “얼라리요?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언제는 스님한테 얻어먹으면 연옥에 떨어진다고 지랄이더니.”

    “처사님, 스님한테 지랄이 뭐냐 지랄이?”

    “시끄럽고 차나 마시러 가세.”

    관진 스님은 키오스크 주문이 능통하다.

    “염불을 외면 머리가 좋아져요, 머리가. 딱히 맑아지지는 않는데.”

    관진은 가사 적삼을 휘둘러 말아 접고는 버튼을 서너 번 누른다. 현금이 통용되지 않아 결국 찻값은 윤 부사장의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만다.

    “돈은 제가 내는데 적립은 스님이 하십니다, 그려.”

    “시주한 거 물리면 소됩니다. 처사님.”



    “윤 사장, 낯빛이 왜 이래. 중놈 하는 일이 뭔가? 세상 걱정 다 들어주고 못 알아듣는 말로 염불 외주는 거 아닌가? 그게 꼬부랑꼬부랑 의사 처방전이여. 어디 병이 약 먹어 낳는 줄 아는가? 속 시원히 말해보게. 말을 맘에 두면 병이 된다네.”

    “이것 좀 봐주겠나?”



    은퇴의 변

    저는 25년간 몸과 마음을 바친 <안경보건신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지금 많은 생각이 교차하며 이 와중에도 회사의 나아갈 방향과 안경 업계의 부흥에 관한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생각으로 밤낮없이 불철주야 선공후사의 심정으로 회사를 위하여 노력을 하였고 저의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회사를 먼저 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임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 <안경보건신문>은 지난 1999년 창간하여 업계를 대표하는 언론으로서 오랜 시간 업계의 고충을 듣고 세상에 업계의 이야기를 전하는 막중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1,000 호가 넘는 그동안의 지면에는 안경계의 다양한 이야기가 아카이브로 남았습니다. 그동안 오랜 시간 동안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았고 업계와 동고동락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 자평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대표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습니다. 좋은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편집부 기자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업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사내의 중심이 되어 균형추 역할을 해준 본부장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건강과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직원들 모두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당부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떠나는 자가 어찌 말이 많겠습니까. 앞으로 직원 모두가 대표님을 도와 우리 <안경보건신문>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업무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경보건신문사 부대표 윤수봉



    “잘 했네.”

    권진 스님의 말에는 무얼 잘했다는지 목적어가 없다. 은퇴를 결정한 것이 잘 했다는 것인지, 그 동안 잘 해왔다는 것인지, 연설문을 잘 작성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부사장은 이제 삼식이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아직, 아들이 군대에 있고 녀석이 결혼을 할 때 까지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야 한다. 부사장은 최 사장과 관진 스님이 부럽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과 견고하게 연결된 무엇이 있지 않은가. 자신은 평생을 바쳐 다닌 회사인데 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출판물에 찍히는 이름조차 바로 없어지고 만다.

    주인의식은 의식의 주인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 사측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결국 노측일 뿐이다. 주주도 아니니 지분도 없다. 그래도 늦은 나이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이 홍 대표의 배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렵게 회사를 세우고 내부 시스템을 만들며 힘들게 노력했던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는 것도 알지만 알 수 없는 섭섭함이 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나이도 아니다. 그럴 재주가 없다는 것쯤은 부사장도 잘 알고 있다.

    부사장은 최 사장과 관진 스님이 부럽다.


    ***


    홍 대표는 요즘 부사장에게 타박이 늘었다. 부사장 편을 들고 넘어갔을 만한 일에도 꼬투리를 잡는다. 직원들이 있는데서도 면전에서 모진 말을 하기도 한다. 홍대표는 신문사가 좀 더 세련되게 변하기를 바란다. 부사장을 향한 타박 안에는 직원들이 알아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리고, 부사장의 퇴사가 빨리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부사장이 나가면 적당한 시간을 두고 본부장도 정리를 할 생각이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홍 대표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부턴가 <아이스웨어 파이낸셜 타임즈>가 들어앉아 있다. ‘업계가 지닌 양면의 검’ 같은 제목은 풀 뜯는 것 같지만 기사 본문에 나오는 데이터들과 경험에서 오는 볼륨감이 그러한 우려를 상쇄한다. 자신이 기획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보다는 그러한 것들을 잘 이끌어갈 편집국장과 편집부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스마트하고 가벼운, 그래서 내용에 더 충실한 신문사로 탈바꿈해야 한다.

    “부사장님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세요? 지금 업계에서 그게 되겠어요?”

    사장실에서 나온 부사장은 심기가 불편하다. 사장의 말에 대해 최선을 다해 칭찬하고 그 끝에 자기 생각 하나를 붙이는 것인데, 거기에 대한 면박이 너무 심하다. 위신이 없다. 자리에 있는 것도 불편하고 어디 나가 있을 곳도 없다. 오후가 되면 졸음이 몰려오는데, 직원에게 뱉은 말이 있어 사무실에서 편히 쉴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지만 가만히 눈을 뜨고 앉아 있어야만 한다.

    차장은 그래도 부사장이 안쓰럽다. 그의 위신도 세워 줄 겸 몇 가지 결재를 만들어 부탁드린다.

    “부사장님, 여기 결재 좀 부탁드려요.”

    구 차장은 부사장이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을 좋아하니 기분이 좀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부사장은 지금까지 회사를 먼저 생각하면서 일 처리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애사심도 누구보다 크고 한 번도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서 일한 적이 없다. 마음을 몰라주는 홍 대표가 야속하다. 사비를 들여 처리한 일도 많다. 그간의 시간이 모인 것 하나 없이 흩어지는 느낌이 든다.

    “나도 그냥 여기 직원이라고.”

    그의 일갈은 사측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시간을 한탄하는 방백이다.

    그녀들의 책상 아래서 엄지로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 괴팍한 영감탱이.





    7

    관진 스님의 부고 문자에 부사장은 적잖게 놀랐다. 그래도 그가 셋 중 가장 오래 살 것으로 생각했던 차였다. 가끔 약주를 하기는 했어도 스님이 아닌가. 건강도 문제가 없었고 사회적 스트레스도 적다고 생각했다. 일흔이 넘으니, 주변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놀랍지는 않다. 윗대 사람들의 죽음이야 매일반의 일이고, 나이가 더 어린 손아랫사람들의 장례식 빈도도 점점 많아진다. 사인을 묻고 애도를 전하는 와중에 어느 정도 죽음을 이해한다. 안타까움도 상실감도 크든 작든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동갑 친구의 죽음은 충격이 크다. 나이가 더 어린 사람의 부고보다 오히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난주에도 만나서 얘기를 나눈 친구이니 놀라움이 클 수밖에 없다.

    절 없는 중의 죽음은 애달프다. 입적한 스님을 모시는 불교의 예는 엄정하고 상서롭다.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복잡한 염불을 외며 예식을 치르고 대웅전 앞에 단을 쌓아 화장한다. 의식은 엄정하나 가족이 없으니 슬픔에는 한계가 있다.

    재가 끝나고 큰스님이 상좌에 좌정하고 여러 스님을 향해 게송을 읊는다

    “인연이란 부질 없습니다. 빈틈없이 물질로 가득 한 삶은 비우고 싶어도 제자리를 맴돕니다. 불법에 따라 서 있는 가람은,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가르침 없이는 비우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저 대웅전 처마에 매달린 풍경은 물고기 모양입니다. 물고기의 형은 자유자재한 무애와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는 경책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재’라 부르고 영가님의 위해 속가에서 올리는 것을 ‘제’라고 부릅니다. 한자로도 다른 자를 적습니다. 삼우제와 사십구재는 그 대상이 다릅니다. 삼우제는 영가의 천도를 위해 영가 앞에 올리는 제이고, 사십구재는 영가의 잘못을 고하여 부처님 앞에 올리는 재인 것입니다.

    스님들께서는 제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한 이미 끊어진 인연이고 원하던 인연은 더욱 가까워졌으니 애석할 일이 아닙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부사장은 산사의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검은 넥타이가 답답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한참을 머금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쉰다.



    절에서 나온 부사장은 오래간만에 진도의 고향 집을 찾았다. 형님이 작고한 뒤 고향 집을 지키는 것은 맏조카네다.

    측간 옆 외양간엔 소가 두 마리 들어있다.

    “아야 이 소 아직도 키냐? 이캉 본지도 솔찬히 된 거 같으다.”

    “작은아부지요, 갸들 담달에 도살장 안 가요? 정주지 말랑게요. 아따, 환장허겄네. 그, 사람 손 타면 뒤질 때 골 아프당게요.”

    “그냐? 아따, 거시기하구먼.”

    부사장은 초점을 흐리고 소를 한 번 더 쳐다본다.


    ***


    경리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업무인 직종이다. 서류에 적힌 신변과, 대차대조표에 적힌 숫자와, 영수증에 적힌 항목은 하나하나가 시한폭탄이다. 쓸데없어 보이는 사무실의 스몰 토크는 숫자의 저의를 밝히는 주석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의 낱말들과 난수의 숫자들을 요래조래 조합하면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여기에 주소와 학력과 고향 등의 신상을 대입하면, 사무실을 무대로 한 한 편의 장편소설이 완성된다. 경리의 소설은 부조리하고 치밀하며, 섬뜩하고 논리적이다.



    “대표님은 피부가 어쩜 그리 좋으세요?”

    엘리베이터에 사장과 둘 만 타게 된 날, 경리는 어색한 시간을 깨기 위해 인사치레로 무의미한 말을 뱉었다. 나이가 들긴 했지만 홍 대표의 몸 꾸밈새는 과하지 않고 말쑥하게 세련되다. 없는 말도 아니고 오늘은 화장이 화사해 보이기에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이다. 순간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급격히 바뀐다. 신문사 사무실이 있는 18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사장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사무실 자기 자리에 앉은 경리는 사장이 사용하는 법인 카드 내역 중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피부과 영수증이 떠오른다.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말실수의 요의가 자명해진다.

    ‘십팔 층까지만 가만히 있을걸, 씹팔.’



    사무실의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은 구매한 지 50년이 넘은 오래된 물건이다. 보르네오의 사무용 가구다. 고가의 명품은 아니지만 처음 홍 대표가 광고 기획사 차렸을 때 구매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그녀는 여러번 이사하고 회사가 바뀌는 와중에도 이 테이블만은 버리지 않았다. 테이블을 보면 그간의 시간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의 얼굴과 많은 대화들이 테이블 위로 선명하게 그려진다. 오래된 물건에는 시간의 힘이 있어서 내치기가 어렵다.

    지금 중앙 테이블에서는 오 부장의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다. 일부러 생일을 확인하고 서로 챙긴 것은 아니다. 어쩌다 알게 되었는데 그냥 넘어가기도 불편해서 파리바게뜨 케이크 하나를 사 와서 축하하고 있다. 화장실에 갔던 조 수석과 케이크를 사러 갔던 실장이 복도에서 만나 같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이 케이크 실장님이 사러 가신 거에요.”

    구 차장의 말은 문법에도, 상황에도 맞지 않는다. 그녀는 케이크를 사 오자는 의견을 낸 것이 조 수석이 아닌 디자인 실장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구 차장은 신경을 써준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고 싶은 것이 아니라, 조 수석이 파티하는 것에 미온적이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일러바치고 싶은 마음이다. 조 수석은 일그러진 문장에서 구 차장의 마음을 읽는다. 조 수석은 스토리 없는 케이크가 싫다. 축하를 위해 축하를 하는 의미 없는 시간이 싫다. 조 수석에게 파리바게뜨 케이크는 취향이 뭉개진 밀가루의 시체다.

    “우리 예전엔 케이크도 하고 그랬는데.”

    케이크 한 조각을 받아 든 홍 대표의 말은 모순적이다. 지금 케이크를 먹고 있다. 홍 대표 혼자 상황을 부정하고 있다. 착오로 내뱉은 말의 행간이 복잡하다. 지금의 구성원을 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자신이 좀 더 실무 필드에서 뛰던 시절을 그리워한 것도 있다. 대표가 말을 했으니, 답변을 돌려드려야 하는데 아무도 쉽게 대응하지 못한다. 각자의 목적어와 각자의 주어가 각자의 주술 호응을 어렵사리 만들어 가던 중, 부사장의 문장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다.

    “이만 원까지는 영수즐 올려.”

    홍 대표는 이제 부사장의 편을 들지 않는다. 이러다 전부 나가고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이다. 직원들 편에서 기분을 좀 내고자 한마디 거든다.

    “부사장님, 요즘 케이크가 이만 원짜리가 어딨어?”

    지금 만 칠천 원짜리 케이크를 먹는 중이다.



    회사 단체 이메일에 공석인 ‘안경 산업 진흥원’ 원장에 대한 구인 공문이 들어왔다. 공문에는 모집 요강과 자격 요건이 자세히 적혀있다. 부사장은 안경을 고쳐 쓰고 항목을 하나씩 체크한다.

    모두가 각자의 모니터에 공문을 띄우고 부사장과 같은 속도로 읽고 있다.

    ‘업계 동향을 아는 전문가.’ 체크,
    ‘동종 업계 20년 이상 근속’ 체크,
    ‘파산이나 금치산자가 아닐 것’ 체크,
    ‘조직 관리 능력 우대’ 체크, 체크,
    ‘최종학력증명서’ 어,
    아……

    거짓말처럼 동시에 모든 테이블에서 ‘딸깍’하고 마우스 클릭 소리가 울린다. 부사장은 책상에 안경을 올려놓는다. 벗어놓은 안경을 한참 바라보더니 메밀차 주전자를 집어 든다.


    * * *


    결국, 은퇴의 변辯은 은퇴의 변變이 되었다. 두 달 반의 시간 동안 부사장은 없어질 사람에서 없어져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원래 약속한 시간을 지나 3월까지로 생명을 연장해 온 참이다. 그의 가다마이 안춤에는 파커 만년필로 눌러 쓴 <은퇴의 변>이 들어앉은 지 세달째다. 그간 일곱 번을 꺼내 여덟 번을 고쳐 썼다. 출근할 때마다 분을 참지 못하고 뱉은 말들이 연설문의 내용과 상충해서다. 어젯밤에는 “53년간 해온 페이지네이션”이라는 문장 위에 쓱쓱 두 줄을 그어 없앴다. 이제 남은 완전한 문장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도인데, 사실 이제 감사하지도 않다. “사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며”는 한 달 전에 지웠고, “본부장의 성실함은” 부분은 지난주에, “모두의 노고”는 그제 지웠다. 남은 문장을 조립하면, “긴 시간 동안 저는 … 힘들었고 … 조직을 위하여 …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다.

    이제 부사장도 다툼이 힘에 부친다. 본인이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났다고는 생각했지만, 세상의 밖으로 밀려나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대한 윤전기가 창간 특집호를 토해낸다. 부사장은 오래간만에 대지를 보기 위해 인쇄소에 나왔다. 먹물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인쇄소 특유의 향훈 풍긴다. 윤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반복적이고 통쾌하다. 부사장은 파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커다란 기계의 유려한 동작을 바라본다.

    지면이 한 장씩 출력되면 색의 농도를 조정하고 전체적인 톤을 맞춘다. 오타의 수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기사 내 회사명과 사람 이름이 틀린 경우에는 윤전기를 멈추고 가져온 노트북으로 원고를 수정하는 경우는 있다. 이름이나 전화번호가 틀리면 수만 부 스티커 작업을 해야 할 수도 있기에, 이러한 사고는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

    부사장 퇴임 기사를 앉히기로 한 자리에는 칼자이스 안경 렌즈 광고가 인쇄되어 있다. 사장이 결국 30만 원의 광고비에 배열표를 수정하고야 말았다. 뜨거운 종이 위로 홍 대표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사장도 광고비를 얼마라도 더 받는 것이 중요해왔다. 그래도 자기 이름이 나오는 기사 꼭지에 신경이 쓰인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인쇄소에 대지를 보러 나온다는 것은 핑계였고, 은퇴 기사를 윤전기 앞에서 찍어 프로필 사진을 쓴 생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경 렌즈 광고느 안경알은 빼고 테만 모델에게 씌운 채 촬영한다. 반사되는 광선이 안경알을 탁하게 보이게 한다. 안경알을 빼고 찍으면 마치 안경알의 투명도가 엄청난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맑은 렌즈를 표현하고자 안경알을 뺀 안경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반대로, 안경테 광고는 안경알을 끼워서 찍는다. 모델의 눈보다 안경테가 강조되고 돋보이게 하려고 알을 통해 눈빛을 상당 부분 가린다. 칼자이스 렌즈 광고의 모델은 알이 없는 안경을 쓴 채 부사장을 바라보고 있다.





    0

    월요일 편집 회의가 끝나고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온라인 통신사 뉴시스에 엠바고를 지키지 않은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이날 국무총리가 배석한 간담회가 있었고 몇 가지 정책이 결정되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규제 완화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다양한 규제를 완화하여 경제에 활력을 주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한다는 취지다. 문제가 된것은 온라인에서 콘택트렌즈를 판매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꾼다는 것이었다.

    두 시간 정도 후 기사는 사라졌다. 이제 어느 곳에도 관련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 허용 건은 이익집단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몇 년째 유예해 온 업계를 부유하는 뇌관이다. 이미 여러 번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콘택트랜즈의 온라인 판매는 렌즈 제조사와 안경원의 줄다리기다. 독과점으로 인해 소비자의 잠정적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측과 유통 마진이 줄어 소비자에게 경제적 이득이 된다는 논리가 맞선다. 결국, 대부분이 자영업 형태인 안경원의 매출이 크게 감소하는 상황이 연출 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렌즈 기업의 로비력은 그러한 저항을 누르기에 충분하다.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위원회는 여러 차례 간담회를 열어 영업자의 편에 서는 스탠스를 취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고 정당의 당론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정해지고 나면 그들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담당자가 전화라도 받아주면 다행인 상황이다.

    사무실 전화기에서 벨이 울린다. 조 수석은 책상 위 전화기가 소리 내는 것을 처음 들었다. 각자의 책상에는 유선 전화기가 하나씩 놓여 있다. 주로 취재 약속을 잡거나 원고의 청탁을 위해 발신 용도로 사용한다. 업계 출입처에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기에 신문사 내선 전화번호로 전화를 받을 일은 거의 없다. 이어 부장의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에서도 벨 소리가 울린다. 똑같은 전화기니 벨 소리도 똑같다.

    걸려 온 전화들은 모두 동네 안경원의 안경사가 건 온라인 렌즈 판매 관련 확인 전화다. 안경원 매출의 거의 절반이 콘택트렌즈다. 그렇기에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 이슈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아직 확인된 사항이 없으며, 기다려 보시라고 상황을 넘긴다. 보도자료는 이메일로 이미 넘어와 있었으나 아무도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대표 책상 위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울린다. 한국 안경 협회장의 전화다. 대표가 직접 수화기를 잡고 인사를 하는 척하며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돌린다. 사장은 구 차장을 향해 손가락을 펴 동그라미를 그린다. 부장은 녹음기를 꺼내 빨간 버튼을 누른다. 협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마도 전화통에 불이 나 있을 것이다. 혐회장은 법안이 발효되면 안경사들이 단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지는 전문적인 광고지다. 광고지는 독자와 광고주가 다르다. 안경 업계의 광고비를 받아 월세와 월급 등을 해결한다. 글로벌 렌즈 회사에서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면 콘텍트렌즈 판매에 있어 안경원의 역할은 축소된다. 당연히, 렌즈 제조 회사들은 안경원 안경사에게 인지도가 높은 <안경보건신문>에 광고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 비용의 책정은 아무래도 바이럴 마케팅이나 홈페이지 구축, 그리고 판촉 마케팅으로 돌아갈 것이다.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고 다이소나 편의점에서 마저 콘택트렌즈의 판매가 시작되면 안경원 매출은 반토막이 날 위기다. 그리고 신문사의 광고 매출도 반토막이 날 위기다. 된서리가 따로 없다. 홍 대표는 벌서 앞날이 막막하다. 모르고 있었던 일은 아니다. 헤쳐 나갈 방법을 모색하려고 노력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구 차장은 책상 아래로 손을 넣어 곽 국장에게 카톡을 보낸다. 그래도 업계의 정보에 가장 바삭한 것이 곽병희 전국장이다. 그쪽의 상황은 상당히 심각했다. <아이스웨어 파이낸셜 타임즈>는 폐간의 수순으로 들어선다고 한다. 창간 투자 당시 이 이슈에 대한 얘기가 있었고, 서로 합의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여지는 있을 것으로 보이니 비딩을 잘 다시 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여러모로 충격이 크다. 구 차장이야 이제 퇴사를 하면 될 일이니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이다 보니 염려가 된다.

    본부장은 거래처 업체들의 카톡에 응대하기 바쁘다. 메시지에 답을 하는 속도보다 메시지가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 보인다. 어디에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할 시간조차 없이 메시지 창이 계속 뜬다.

    본부장도 마음이 다급하다.

    “대표님, 대책 회의를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표는 본부장의 얼굴을 바라본다. 본부장의 늙은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 마치 늙어버린 신문사를 보는 듯하다. 본부장과 대표는 동갑이다.

    “회의는 해서 뭐 하시게요?”



    부사장은 말없이 창에 붙어 밖을 내다보고 있다. 초록색 유리창에 비친 겨울 풍경이 봄인 듯도 하다. 안경을 들어 올리고 맨눈으로 창밖의 색을 확인한다. 두 달 반 만에 처음으로 그의 안광이 반짝인다. 부사장은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을 연다.

    도로록 도로록.

    사진첩을 한 참 올려 페라가모 안경테 사진을 찾아 카톡 프사를 바꾼다. 그는 노란 국화꽃에서 다시, 검은 안경이 되었다.
    이상민

    이상민

    1981년 경북 안동시 출생

    동덕여대 응용화학과 졸업

  • 소설이 지났지만 꽃은 아직 피어 있다. 계절에 맞지 않는 공원의 풍경은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 설면하다. 공원이 꽤 넓기에 낯섦은 조악하지 않고 특별한 정취를 풍긴다. 사실, 공원의 꽃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철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용역을 받은 조경 회사가 주기적으로 새로 심고 품 들여 유지하는 인위적 화단이다. 세상의 옆구리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공원의 화단 사이로 마른 바람이 분다.

    송현공원은 요지가 맹지로 오래 방치되어 흉흉한 소문이 많았던 땅이다. 이곳은 굴곡진 과거가 현재에 유보한 거대한 공간이다. 오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원은 나들이객으로 가득하다. 꽃을 오래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노인들이다. 이들이 꽃의 이름을 궁금해하는 것은 살아온 이야기의 여기저기에 꽃이 늘비해서다. 그리고, 그 삶의 미장센에 제대로 된 제목이 없어서다. 이 꽃이 다르고 저 꽃이 다르다는 것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 꽃은 고깝고 애달아진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낱낱사득 궁금해진다.



    오십일 년생 붕배인 세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한국간행물출판협회’가 주최한 다회장이었다. 쉰이 넘은 나이에 사회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그들은 쉽게 너나들이했다. 안정적 노년을 마련한 것은 윤 부사장뿐이다. 관진 스님은 절 없는 중이고, 최 사장의 잡지사는 이제 으끄러져 나무의 시체나 겨우 출판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부사장은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부럽다.

    사대문 안은 온통 젊은이의 거리다. 세종대로의 거대한 전광판 불빛이 오래된 대폿집의 잿빛 유리를 통과해 들어와 명멸하고 있다. 그들은 아지트에 들어온 레지스탕스처럼 친숙한 공기에 마음이 풀린다. 벽에는 오래된 차림표가 걸려있다. 천원 단위 자리에 종이를 오려 붙여 가격을 올린 티가 난다. 빨간색 네온사인이 가게로 들어오는 순간, 적색의 긴 파장으로 인해 감춰진 원래 가격이 좀 더 뚜렷하게 투영한다.

    “이모 여기 소주 하나 먼저 주소.”

    “이모 아니고 저치가 여기 사장일세, 부사장이 사장한테 그러면 쓰나? 참, 오늘부턴 부사장도 아니구먼.”

    관진 스님의 핀잔이 비수가 되어 윤 부사장의 간담췌를 훑고 지나간다. 부사장은 관진이 마치 득도한 도사처럼 꺼드럭거리는 것이 영 마뜩잖다. 언제나 상대방의 아픈 곳을 정확히 발라내 희롱을 하는 것을 보면 도력이 좀 있는 것도 같다. 사실, 부사장은 호칭의 상실로 인해 최근 우울증이 올 지경이다. 부사장이라는 호칭은 세상과의 맞대면에서 그를 든든하게 감싸는 갑옷과도 같았다.

    오늘 오전 부사장은 퇴사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주민센터에 갔다. 부사장은 주무관인지 뭔지 부르는 말에 대한 안내문을 보지 못해, 창구 직원을 아가씨라고 불렀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주무관은 ‘여사님’이라는 말도 비정규직 여성을 낮잡는 의미가 담겨있으니, 성별과 정규직 여부에 상관없이 ‘주무관’ 혹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간단하다고 설명한다. 차분하게 웃으며 하나하나 대척을 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맘에 들지 않는다.

    ‘어디서 어른을 가르치려 들어.’

    부사장은 끝내 ‘저기요’라는 말을 남기고 주민센터를 나왔다. 동자동에서 후암동 쪽으로 모퉁이를 돌자, <이런 역 같은>이라는 술집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부사장은 이 상호가 서울역 구역사 옆에 붙어 있는 술집 이름으로 매우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름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뒷전으로 내몰린 구역사가 내뱉는 허탈한 일갈 같다.



    “이런 역 같은.”

    부사장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언제 한 번 써먹어야겠다고 꼬불쳐 놓은 말을 뱉는다. 최 사장과 관진 스님이 이 말의 말밑을 알 턱이 없다. 상황과의 밀도가 빠진 위트가 흐리멍덩하다. 주책없는 기롱지거리도 딱 달라붙어야 쫄깃한 맛이 산다. 멋이 적으니, 멋쩍다. 부사장은 최근 대화에 있어 주변 상황과의 연결 능력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두 달 반 동안 부사장은 많은 것을 잃었다. 잃어버리기로 예정된 것은 물론, 잃어버릴 필요가 없던 것까지 잃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인집과 생떼뿐이다. 은퇴를 결정한 뒤, 하루가 멀다고 직원들과 푸닥거리를 해댔다. 처음에는 그나마 잔소리의 주제라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와 내용은 없어지고 존중과 예의도 사라졌다. 위품을 지키려 노력한 오랜 시간이 몇 달 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내 속을 꺼내서 보여 줄 수도 없고.”

    태도와 관계라는 것이 부사장에게는 충분조건부 선의지만, 직원들에게는 직장생활의 필요조건이다. 우수리와 에누리의 차이다. 직원들은 덤을 탐하다 덤터기를 쓰느니, 부족할망정 정확한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해악질을 마친 부사장은 자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ㄹ자 모양으로 패턴을 그려 잠금을 해제한다. 되살아난 핸드폰이 다따가 커다란 소리로 동영상을 재생한다. 다급히 인터넷 브라우저를 죽였지만, 사무실에는 유튜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이명처럼 계속 울린다. 알고리즘이 제안한 ‘노인’, ‘우울증’, ‘상실’이라는 세 단어가 공기 중을 부유한다.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아무도 이 상황을 무마해 줄 생각이 없다. 창간 때부터 오래 근속한 회사지만, 대표부터 경리까지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기는 명예의 잔돈이라 했는데, 이제 부사장의 호주머니에는 알량한 잔돈조차 남지 않았다.



    오늘은 엑셀 작업을 위해 단기 알바생 한 명이 출근을 했다. 디자인 실장은 쉬어가며 하라는 배려와 편하게 지내자는 선심으로 마카롱 한 알을 권한다.

    “저는 마카롱을 먹지 않습니다만.”

    알바생은 마카롱이 싫어서 사양한 것이 아니다. 새들한 호의가 가져올 어쭙잖은 상황을 어기차게 끊어내기 위함이다. 기다렸다는 듯 직원 단톡방이 시끄러워진다. ‘마카롱’이라는 체언의 채도와 ‘않습니다만’이라는 용언의 용도는 주변의 모든 상황을 흐리게 만들고 슬픈 문장 하나만을 사무실 공간에 덩그러니 놓는다.

    차이를 차별로 삼고 다름을 다툼으로 만드는 세대간의 싸움은 부박하다.



    신문사 직원들은 바로 옆 건물의 대기업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반찬의 가짓수도 다양하고 맛도 좋아서 주변 직장인이 일쑤 찾는다. 다만, 한 달에 한 번은 본사 사원만 선택할 수 있는 특식이 나온다. 이날 건물에 세입한 나머지 회사 직원은 소정의 박탈감을 감수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식당 한편에서 부사장이 어디서 얻은 하늘색 식권으로 특식을 먹고 있다.

    “부장님, 쪼다와 찐따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글쎄?”

    “쫌스런거랑 얌스런거 차이”

    “아, 그래?”

    오 부장은 결국 수수께끼의 주어가 부사장이라는 것을 알아먹지 못했지만, 구 차장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을 결략한다.



    거대한 윤전기가 창간 특집호를 토해낸다. 부사장은 오래간만에 대지를 보기 위해 인쇄소에 나왔다. 먹물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인쇄소 특유의 향훈이 풍긴다. 윤전기가 돌아가는 반복적인 소리가 통쾌하다. 부사장은 자신의 은퇴 기사를 프로필 사진으로 쓸 생각이다. 그러나, 퇴임 기사를 앉히기로 한 자리에는 칼자이스 안경 렌즈 광고가 인쇄되어 있다. 광고사진은 투명한 렌즈를 강조하기 위해 안경알을 빼고 찍었다. 맹알 안경을 쓴 광고 속 걸그룹 모델이 부사장을 또렷하게 응시한다.



    부사장은 두 달 전 <은퇴의 辯>이라는 제목의 연설문을 작성해 가슴팍에 넣고 다녔다. 그의 <은퇴의 변>은 은퇴의 變이 되었다. 그는 연설문을 꺼내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분을 참지 못하고 뱉은 말들이 내용과 상충해서다. 어젯밤에는 “본부장의 성실”이라는 문장을, 그제는 “편집부의 노고”, 오늘은 “대표님의 건강”이라는 문장을 지웠다. 이제 남은 邊을 조립하면, “긴 시간 동안… 저는… 힘들었고… 조직을 위하여…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다.

    편집 회의가 끝나고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온라인 통신사에 엠바고를 지키지 않은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이날 국무총리가 배석한 간담회가 있었고 몇 가지 정책을 결정했다. 문제가 된 것은 온라인에서 콘택트렌즈를 판매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전문지는 전문적인 광고지다. 신문사의 매출이 반토막이 날 위기다.

    본부장은 마음이 다급하다.

    “대표님, 대책 회의를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표는 본부장의 얼굴을 바라본다. 본부장의 늙은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 마치 늙어버린 신문사를 보는 듯하다.

    “회의는 해서 뭐 하시게요?”

    창밖을 바라보던 부사장은 <은퇴의 변>을 다시 춤 안으로 갈무리한다. 자신을 밀어낸 세상의 변화가 이제는 모두를 경계의 밖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절기는 옴나위없이 흘러, 부사장만의 소설이 모두의 대설이 되었다. 부사장은 스마트 폰을 꺼내 카카오톡 설정으로 들어간다. 두 달 전 송현공원에서 꽃이 되었던 부사장의 프로필 사진이 다시 안경테 사진으로 바뀐다.
    이상민

    이상민

    1981년 경북 안동시 출생

    동덕여대 응용화학과 졸업

  • 은희경·구효서 소설가

    본심에 올라온 열 편의 응모작 중에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모두 네 편이다.

    ‘우리의 일’은 당면한 사회문제를 정돈된 문장으로 잘 풀어냈다. 지하철 역무원의 근무환경이나 라돈 침대 파문, 환경단체의 시위 같은 묵직한 주제를 레즈비언 서사와 목소리를 잃어가는 갑상선암 수술이라는 에피소드에 녹여서 재치있고 차분하게 접근했다. 구청의 환경과에서 분뇨 처리와 정화조 관련 민원을 담당하는 디테일도 흥미롭다. 그러나 틀을 뛰어넘지 않고 안전하게 머문 느낌이었다.

    ‘우리, 집’은 오래된 폐가와 관련된 ‘존재들’을 하나씩 소환하며 3대에 걸친 삶의 이면을 조망한다.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이야기의 개연성과 구성력이 아쉬웠다.

    ‘개구리’는 에너지와 입심이 좋아서 가독성이 높은 소설이다. 인간들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적 등고선을 발견하는 통찰도 인상적이다. 개구리라는 상징을 기반으로 계급에 대한 질문을 파고드는 한편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이야기를 덧붙여가는 구성 방식에도 재치가 있다. 다만 직설적이고 거친 내레이션, 인물과 상황의 상투적 설정 등에서 다소 설득력이 약해졌다.

    당선작은 ‘호모 헌드레드’이다. ‘안경보건신문’에서 은퇴를 앞둔 부사장을 주인공으로 해서,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서의 노인의 삶뿐 아니라 디지털 사회의 도래와 함께 소외되는 직군 등 사회문제를 다루었다. 사내 인물들의 권력구조에 따른 업무 루틴 같은 충실한 디테일이 소설에 리듬감을 준다. 내공이 엿보이는 노련한 문장, 비호감 인물들에 대한 입체적 해석, 안경 렌즈로 도자기를 만드는 비전의 발견 등이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이끌어가는 추진력은 위트이다. 그것이 이 소설을 생동감 있는 세태소설로 만들고 있다. 축하를 보낸다.
  • 이상민

    이상민

    1981년 경북 안동시 출생

    동덕여대 응용화학과 졸업

    소설은 어떻게 쓰는 거냐는 질문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고 답한 대 소설가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멋진 문장이 우문에 대한 현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편 하나를 완성하고 보니, 글을 한 호흡으로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디다. 아마도, 소설 한 편을 일필휘지하는 일은 이번 생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고치지 않기로 한 문장을 애써 긍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고쳐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첩에 적어가며 17년을 수집한 단어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요. 처음의 틀 밖으로 새어나가는 문단을 통째로 붙잡아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뒤돌아보니 글을 쓰는 동안의 삶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하며, 어디선가 분리하고 무언가와 합체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처럼.

    나이 듦도 총총하게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우리는 이제 호모 헌드레드라는 종족이 되었다지요.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삶의 시니어들은 변두리가 아니라 경계의 밖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아버지가 작고하시고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미워할 수 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간은 아버지라는 안경을 맞춰 쓴 것 같았습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맺히더니 조금씩 둥그레졌습니다. 새 문서를 열고 커서를 오랫동안 응시했습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듯, 때로는 거대한 망치로 때리는 듯 그 깜빡임이 자꾸 아팠습니다. 이번에 응모한 여러 작가의 소설도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아름다운 문장으로 적혔을텐데, 올 한해는 부족한 제가 조금 더 아팠던가 봅니다.

    아직도 당선이 꿈만 같습니다. 내일은 현실감이 좀 생길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 글이 부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잘 썼다는 칭찬이라기보다는 이제 쓰기를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따뜻하게 어깨를 다독여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힘겨웠던 시간이 찬란해졌습니다.
  • 작품전문
  • 줄거리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