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지 교실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가 복도까지 내려와 앉았다. 그럴 적마다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동민이는 몸이 배배 꼬였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에 두 다리는 굳어질 것만 같았다.
동민이네 반은 음악시간이라 북이며, 장구 소리가 한창이었다. 동민이도 벌만 아니었으면 북을 두드려 대고 있을 터였다.
'아휴, 힘들어. 다 석우 때문이야. 제 이름도 못 쓰는 바보 자식!' 신나던 북이 느닷없이 싫어진 건 석우가 꽹과리를 맡게 된 뒤부터다. 석우는 제 이름 석 자도 제대로 못 써서 늘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다. 그런 석우가 모두의 장단을 이끌어 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동민이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슬쩍 일어나 교실 안을 훔쳐보았다. 열심히 꽹과리를 치고 있는 석우의 모습은 제법 폼이 났다. 동민이는 약이 올라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다 그만 선생님하고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얼른 바닥으로 내려와 다시 무릎을 꿇었지만 곧 교실 문이 열렸다. 선생님이었다.
"이동민! 들어와서 북을 칠 테냐?.
"네에..
북이라는 말에 대답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차가운 복도 바닥에 더는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동민이가 자리에 앉자 석우가 뒤를 돌아보고는 히죽 웃었지만 동민이는 모른 체했다. 선생님은 장구채를 놓고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었다.
"사물놀이는 하늘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 북으로는 구름을, 징으로는 바람을. 또 장구로는 빗소리를, 꽹과리로는 천둥소리를 만들어 내지. 그 중 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하늘이라고 할 수 없겠지? 자, 그럼 먼저 배운 거부터 시작해 볼까?.
아이들은 제가 맡은 악기를 칠 준비를 했다. 동민이는 선생님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석우는 꽹과리를 치는데 저는 북을 치는 것이 화가 났고, 꽹과리는 천둥소리라는데 북은 재미없는 구름이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들어간다..
선생님은 '들어간다'는 말에 장단을 맞추어 장구를 '덩덩덩덩'하고 쳤다. 1채 장단이었다. 그냥 입장단만으로 '덩덩덩덩'하면 재미가 없다고 말을 붙인 것이다. 그렇게 1채 장단을 친 뒤 선생님의 입장단은 바로 2채 장단으로 이어졌다.
"덩 덩 쿵따쿵, 덩 덩 쿵따쿵, 덩 덩 쿵따쿵, 덩 덩 쿵따쿵,……..
선생님의 장구소리에 맞추어 아이들은 제가 맡은 악기를 쳤다. 장구를 치는 아이는 선생님처럼 입장단을 따랐다. 북을 치는 아이들은 '둥두, 둥두' 소리를 냈다. 동민이도 그 소리에 맞추어 북을 쳤다. 재미가 없었다. 석우의 꽹과리 소리를 따라간다 생각하니 도무지 신이 나지를 않았다. 동민이는 앞에 앉은 석우의 뒤통수까지 얄밉게 보였다.
"땅땅, 찌찌갱, 따당따당 찌찌갱,…….
꽹과리는 가장 나중에 배워서 아직 여문 소리가 나지 않았다. 냄비 뚜껑을 두드리는 듯 시끄러웠다가도 이내 장구소리와 북소리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동민이는 꽹과리를 치고 싶었다. 제가 치면 잘 할 것 같았다.
'당당 다다당, 지겐 지겐, 그랑그락, 그랑그락,……' 동민이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는 꽹과리 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신이 났다. 어깨까지 들썩거렸다. 신이 나서 눈을 번쩍 뜨자 선생님이 동민이를 보고 있었다. 꽹과리를 치는 상상에 그만 북장단을 놓쳤던 것이다.
선생님은 잠깐 눈을 크게 떴지만 그 뿐이었다. 입장단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자 아이들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의 입장단은 어느 새 별달거리 장단으로 넘어갔다.
"덩 덩 쿵따쿵, 궁따 쿵따 쿵따쿵, 덩 덩 쿵따쿵, 궁따 쿵따 쿵따쿵,……..
아이들은 땀까지 비질비질 흘리면서도 선생님의 입장단을 놓치지 않았다. 동민이만 어깨가 축 늘어진 채 소리도 날 듯 말 듯 북을 치고 있었다.
그 때 앞에 앉은 석우가 꽹과리채를 떨어뜨렸다. 벌써 세 번째였다. 또 다시 장단이 어그러지고 소리가 엉망이 되었다. 아직 손에 익지 않아 그런 것을 알면서도 동민이는 끝내 석우의 머리를 북채로 '딱' 치고 말았다.
"아!.
난데없이 북채에 맞은 석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민이를 노려보았다.
"야! 그것도 소리냐? 좀 제대로 쳐 봐!.
미안한 마음에 석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아직 여, 연습을 못 해서……..
석우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동민이는 움찔하여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뿐 아니라 반 아이들까지도 동민이를 보고 있었다. '쟤 왜 자꾸 저래?' 하는 얼굴들이었다.
"이동민! 너, 이 녀석!.
선생님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동민이는 고개를 숙였다. 또 벌을 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그런 생각인지 여기저기서 수군수군 했다. 선생님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우리 넓은 운동장으로 나가서 할까?.
아이들은 대답도 잊은 채 신이 난 얼굴로 악기를 챙겨들었다. 동민이도 북을 둘러멨다.
운동장은 동민이 반 아이들뿐이었다. 하늘은 흐렸고,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며 소시락소시락 낮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왁자그르 떠드는 아이들을 둥그렇게 원으로 만들었다.
"자, 자리를 잡았으면 악기를 내려놓고 눈을 감거라..
아이들이 모두 눈을 감자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눈을 감으니까 둘레의 소리가 더 잘 들리지? 숨소리도 낮게 내 봐. 그리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보자..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숨소리까지 낮추었다. 동민이도 이번에는 선생님 말을 따랐다. 몇 분이 지나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자, 무슨 소리가 들리니?.
아이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떤 대답을 해야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눈뜨지 말고, 다시 들어 봐. 분명히 너희 귀에 닿는 소리가 있을 거야..
그 때 동민이 귓가에 바람이 스쳤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손이 번쩍 올라갔다.
"선생님, 바람이 말을 걸어요..
동민이의 말에 이번엔 다른 아이가 외쳤다.
"선생님, 구름이 뭐하냐고 묻는데요?.
다른 때 같았으면 웃을 법한 대답에도 아이들은 웃지 않았다. 그러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귀에 닿는 소리를 이야기했다.
"됐다. 이제 그만 눈을 뜨거라. 이제 우리가 대답을 할 차례다..
선생님은 악기를 메라고 했다.
"자, 북 먼저 시작할까? 들, 어, 간, 다, 들어, 간다, 들어, 간다, 들어간다,……..
"둥두, 둥두, 둥두, 둥두, 둥두둥두, 둥두둥두, 둥두둥두둥두둥두,……..
북을 맨 아이들은 선생님의 입장단에 맞추어 북을 쳤다. 선생님의 입장단은 아주 느렸다가 조금씩 빨라졌다. 북소리가 온 운동장에 울렸다. 동민이는 눈을 감았다. 북소리와 함께 구름이 그려졌다.
"선생님! 구름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요..
"이젠 동민이도 북소리를 들을 줄 아는구나. 자, 다음은 징 들어와라..
선생님의 입장단은 2채 장단으로 이어졌다. 징 소리는 바로 선생님의 입장단과 어우러졌다.
"댕, 댕, 댕, 댕,……..
문득 큰바람이 불어 아이들을 감쌌다. 징을 치는 아이가 외쳤다.
"선생님! 바람이에요. 징이 바람소리를 입었어요..
선생님은 입장단을 맞추며 차례로 다음 악기를 불러 들였다. 아이들이 치는 장구소리는 그대로 빗소리가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그러자 한 아이가 외쳤다.
"선생님! 장구소리는 정말 빗소리를 닮았네요..
빗방울이 굵어졌지만 선생님도 아이들도 멈출 줄 몰랐다. 오히려 소리를 돋우어 별달거리 장단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꽹과리 차례였다. 석우가 먼저 장단을 맞추었다.
"당당 다다당, 지겐 지겐, 그랑그락, 그랑그락,…….
서툴었다. 그러나 자신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번개가 번쩍하더니 천둥이 쳤다.
비는 더 굵어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원의 한쪽 끝부터 안으로 말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운동장에는 커다란 회오리가 그려졌다. 동민이는 이제 북이 싫지 않았다. 구름이 있어야 천둥소리도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흙탕 속을 뛰는 아이들의 얼굴은 해처럼 빛이 났다. 하늘은 운동장에 내려와 늦게까지 올라갈 줄을 모르고 있었다.
김혜정
1972년 서울 출생
1996년 경기대 국문과 졸업
현재 '파이오니아 무역상사' 근무
강정규(동화 작가) 이준관(동시 작가)
아동문학은 동심을 바탕으로 한 문학으로서 동심의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높은 문학성이 요구된다. 그런 면에서 미숙한 문학적 표현과 유치하고 단순한 발상에 머문 작품들이 많아서 아쉬웠다. 그리고 전년도의 당선 작품을 의식해서 그 소재와 경향을 모방한 작품들이 많은 것도 문제였다. 경향은 응모자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신춘문예용 소재와 경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눈치 보지 말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을 쓰기 바란다.
동시에서는 소재와 표현기법의 편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작품들이 소재에서 나무, 참새, 할머니, 엄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표현법도 의인법이 대부분이어서 엇비슷한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 생활 속의 이야기, 일과 놀이, 흙과 생명, 이웃과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세계에 대한 탐색이 있어야 할 것이며 표현기법도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동화에서는 먼저 응모자들의 연령이 1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점이 눈에 띄었다. 이는 동화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뜨거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동화의 생명은 가슴을 훈훈하고 뭉클하게 하는 감동에 있다. 그런데 많은 작품들이 그런 동화적 감동을 이끌어내는 힘이 약했다. 그리고 문학은 어떤 문제에 대한 슬기로운 해결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볼 때 응모작들이 대체로 문제의식이 부족하고 문제해결도 상식적이어서 아쉬웠다. 동화의 본질을 잘 살리고 감동이 있는 '동화다운 동화'를 쓰기를 당부한다.
최종적으로 동시에서는 '나는 홍시야'(박예분), '효자손'(손영숙), 동화에서는 '아기 오리 부리'(이옥용 ), '하늘을 닮은 소리'(김혜정)가 논의되었다. '나는 홍시야'는 의인법을 사용한 전형적인 동시로서 잘 다듬어진 깔끔한 작품이었지만 참신성이 떨어졌고, '효자손'은 발상이 신선했지만 너무 작위적이었다.
'아기 오리 부리'는 유아동화로서 기발한 발상과 톡톡 튀는 재치 있는 표현이 눈길을 끌었으나 유아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식화된 전개와 뻔한 결말이 흠이었다. '하늘을 닮은 소리'는 사물놀이를 통하여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아이들의 모습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탄탄한 구성, 유려한 문장, 강한 주제의식 등 여러 면에서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꾸준한 정진을 빈다
김혜정
1972년 서울 출생
1996년 경기대 국문과 졸업
현재 '파이오니아 무역상사' 근무
전화를 끊자마자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소리는 '하느님,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성당 문턱을 넘었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여전히 저를 붙들어 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문득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을 싫어했던 저를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불러 마음 안에 아이들을 고스란히 담게 하더니, 동화라는 꿈을 갖게 하고, 이젠 그 꿈을 다른 이에게도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여름 내내 우리의 마음을 울렸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정말 그렇군요. 꿈은 이루어지라고 있는 모양입니다. 10년 동안 꾸어온 꿈이 이렇듯 이루어진 것을 보면 말입니다.
때로 꿈은 꿈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그런 줄말 알았던 때도 있습니다. 꿈은 꿈일 뿐이니까 현실을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제게 현실은 곧 꿈이었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꿈이란 것은 이루고자 마음먹는 그 순간부터 현실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꾸는 꿈 중에 그 어느 것도 헛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꿈은 없습니다. 다만 꿈을 이루려는 사람의 마음이 헛되었거나 비어있을 수는 있지요.
그렇기에 제대로 꿈꾸는 법을 알려주신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며 어렵디 어려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은 어만사(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동화 창작 모둠 식구들에게 참 고마운 마음입니다.
더불어 나이 서른이 넘도록 시집도 안 가고 곁에서 걱정만 끼치는 딸 때문에 밤낮 걱정만 느는 부모님, 흔들리지 않게 꼭 붙들어준 친구들, 나쁜 성질 고스란히 받아준 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