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아빠의 유언장

by  성현정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아빠의 홀쭉한 볼에 가만히 손을 갖다 댔다. 아직 따뜻했다.

    “곧 형이 올 거예요.”

    아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잔뜩 구겨진 옷감처럼 주름진 아빠의 얼굴이 내 말에 가만히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아빠의 가슴에 머리를 얹는데 쿵쿵 쿵쿵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울려 왔다. 하나는 로나 아줌마고, 하나는… 아마도 형이다.

    달칵 문이 열리자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형!’

    마음속으로만 형을 불러 보았다. 처음 만나지만 난 벌써 형을 좋아한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형이 뚜벅뚜벅 걸어오다, 날 보더니 멈칫했다. 그러고는 로나 아줌마를 한번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형을 바라보았다. 내가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형이 알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형은 마치 화난 사람처럼 잔뜩 인상을 쓰고 나를 한손으로 밀쳐 냈다. 그러곤 입을 꾹 다문 채 잠든 아빠를 쳐다보았다.

    형은 화가 나 있었다.

    내게 화가 난 건지 아빠에게 화가 난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걸 알아내기 위해 계속 형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잘 모르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쥔다. 그건 내 습관이다.

    로나 아줌마가 병원에 남아서 아빠 장례식을 준비한다고 했다.

    “강우 데리고 집에 가 계세요. 5시에 변호사가 그리 갈 거예요.”

    아줌마가 울어서 조금 빨개진 눈으로 형에게 말했다.

    “강우? 강우라고요!”

    형이 코웃음을 치면서 날 노려보았다. 나는 괜히 땅바닥만 쳐다보았다. 민망할 때 나오는 내 습관이다. 형은 내 이름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분명했다. 로나 아줌마는 그런 내 머리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병원에서 우리 집으로 가려면 마을을 쭉 가로질러야 한다. 마을 안에서는 개인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게 돼 있다. 형과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무인 셔틀에 올랐다.

    이곳은 전국에서도 상위 1%의 부자들만 입주할 수 있는 실버타운이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북유럽의 작은 마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서울 중심가에서 전용 자기장도로를 타면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덕분에 최고의 의료진과 철통같은 보안 시스템을 자랑한다.

    연극과 영화를 비롯하여 갖가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오페라극장과 수영장은 물론이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산책로, 배를 띄울 수 있는 작은 호수까지 갖추어져 있다. 비록 이곳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작은 천국’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했다.

    “저기 숲으로 가는 산책길은 아빠가 가장 좋아하던 곳이야.”

    “…”

    “저기 잔디밭 보이지? 일요일 오전에는 저기서 크로케 시합이 열려.”

    “…”

    “여름엔 거의 매일 수영장에 다녔어. 예전에 형이 수영장에서 물에 빠질 뻔했다고…”

    “조용히 좀 가자꾸나.”

    형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미안해, 형. 나는 형이 듣고 싶어 할 줄 알고…”

    형은 자꾸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아랫입술을 깨무는 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기증하기로 하셨어요. 둘러보시고 가져갈 만한 게 있으면…”

    “아니요. 모조리 기증해 주세요.”

    가사도우미 아줌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이 말했다. 형은 집안을 한 번 휘 둘러보더니 아빠가 늘 앉던 창가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나도 가만히 그 앞에 있는 작은 내 의자에 앉았다.

    “이것도 기증인가요?”

    형이 갑자기 생각난 듯, 날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줌마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니요, 도련님. 생체형 안드로이드는 보통 물건과는 다르잖아요. 규정에 따라 처리해야 해요. 그렇죠, 강우 도련님?”

    아줌마는 애써 태연한 척 내게 미소 지었다. 나도 아줌마를 향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이제 난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아빠는 죽기 전에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묻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아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 아빠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줄 거라 믿고 싶었다.

    형은 아줌마와 날 번갈아보다 창밖을 내다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나는 로봇이다.

    이곳에서 노인들은 누구나 로봇과 함께 산다. 로봇들은 노인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아침마다 건강 상태를 담당 의사에게 알려 주기도 하며, 함께 놀이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나처럼 아이의 모습을 한 로봇도 많다.

    창 밖으로 정원에는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그네가 보였다. 저기서 아빠는 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럴 때 아빠는 내 손을 잡고 가만히 내 두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다.

    “아빠, 형은 언제 와? 형은 아빠랑 내가 안 보고 싶대?”

    언젠가 내가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빠는 무척 쓸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 안 올 게다. 아빠가 형한테 잘못한 게 많거든.”

    아빠한테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나도 알고 있다. 형이 아빠를 싫어한다는 걸.

    아빠는 젊은 시절, 세상에서 가장 바쁜 과학자였다. 늘 연구실에 꼼짝 않고 틀어박혀 있거나, 논문을 발표하고 강의를 하기 위해 전 세계를 다녀야 했다. 그래서 형과 놀아 줄 시간이 거의 없었다.

    형은 늘 아빠와 놀고 싶어 했지만, 아빠는 형과 소풍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수영장에서 같이 한 번 놀아 준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형의 엄마가 죽자, 형은 결국 외갓집에서 살게 되었고 그 뒤로는 영영 소식을 끊고 말았다.

    “아이가 금방 자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단다. 난 오직 나만 생각하며 살았어.”

    아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런 아빠가 불쌍해서 나는 아빠를 꼭 안아 주었다. 아빠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


    “아저씨!”

    변호사 아저씨는 언제나처럼 시간에 꼭 맞춰 도착했다.

    “강우, 그동안 잘 지냈니?”

    아저씨는 만날 때마다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는다. 그럴 때는 어쩐지 기분이 좋다. 아저씨는 날 진짜 아이처럼 대해 주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아저씨는 물끄러미 날 바라보더니 내 어깨를 툭툭 몇 번 두드릴 뿐이었다.

    “넌 밖에서 기다려.”

    형이 아저씨와 서재로 들어가며 내게 말했다.

    “아니, 강우도 들어야 합니다.”

    “네?”

    “유언장에 강우 이야기도 있어서요.”

    형은 한손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눈을 끔벅이며 다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붉게 물든 노을 때문에 서재는 온통 가을 느낌이 났다.

    “말이 됩니까!”

    형이 벌떡 일어서며 주먹으로 책상을 탕 내리쳤다.

    “이 로봇에게 전 재산을 남겼다고요?”

    변호사 아저씨는 한동안 말이 없다 겨우 입을 뗐다.

    “정신감정까지 받고 쓰신 유언장이라 뒤집기는 힘들 겁니다.”

    “로봇에게 상속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지금까지 반려동물에게 상속이 이루어진 적은 있지만, 로봇에게 상속하는 건 세계적으로 이게 아마 첫 사례일 겁니다.”

    “……”

    “다만 로봇의 법정 관리인을 아드님으로 지정하셨기 때문에 결국 아드님께서 강우를 돌보는 조건으로 실질적인 상속자가 되시겠지만요. 저도 많이 말렸습니다만…”

    어느새 밖은 깜깜해져 있었다. 형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빠의 유언장에 대해 알게 된 건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설마 형과 함께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아버지는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형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내뱉었다. 형은 끝까지 날 쳐다보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형의 차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내가 평생을 산 곳을 떠나려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19년 내내 열두 살의 모습과 열두 살의 평균 지능을 유지하고 있다.

    자동주행 모드로 전환한 뒤, 형은 물끄러미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보았다.

    “형, 아빠 보고 싶지 않아?”

    형은 대답이 없었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형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빠니까.

    어쩌면 형도 아빠가 보고 싶을지 모른다. 나는 눈으로 쏠 수 있는 작은 스크린을 형이 볼 수 있는 각도로 띄웠다. 그리고 아빠와 내가 내 키만 한 블록 쌓기를 하는 영상을 가져왔다. 그 영상에서 아빠는 훨씬 젊어 보였다.

    “흑기사의 성이야, 형.”

    내가 열중해서 블록을 쌓고 있는데 아빠는 내 바지춤을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면서 자꾸만 키득키득 웃었다. 화면 속의 나도 발을 동동 구르며 따라 웃는다. 그걸 보는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형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영상들이 나왔다. 내 기억 속에 저장된 영상들이다. 내 눈으로 촬영한 것도 있고 다른 로봇이 촬영해 준 것도 있었다.

    “어, 저건 내가 아니라 형이야.”

    그건 아빠와 형이 수영장에서 놀던 때를 촬영한 오래된 영상이었다.

    “저건 내가 아니네.”

    나는 물끄러미 그 영상을 바라보았다.

    나와 꼭 닮은 아이가 아빠와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형은 다른 영상에서의 나만큼이나 행복하게, 활짝 웃고 있었다.

    “저 애는 형이지만 이건 내 맨 처음 기억이기도 해. 아빠가 저 영상에 나온 형 모습 그대로 날 만들었거든, 강우 형.”

    나는 형이 모를 것 같아 설명해 주었다.

    영상을 보던 형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쉰 살이 넘은 형은 아이처럼 끄억끄억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화면을 끄고 형이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빠는 왜 날 만들었을까? 그냥 형한테 미안하다고 그러지.”

    형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아빠는 바보다. 가짜인 나를 만드느라 진짜인 형을 버린 셈이니까. 그래 놓고 형이 아빠를 잊는 게 싫어서 날 형에게 보내는 거다. 다정한 아빠의 모습만 알고 있는 나를.

    나는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가만히 손을 내밀어 형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비록 난 운 적이 없지만 내가 울면 아빠는 분명 그렇게 했을 거다. 아빠와 함께한 19년 동안 내 행동은 아빠의 행동을 닮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므로, 그건 로봇의 일이기도 했다. 인간에겐 늘 위로가 필요하니까.

    따뜻한 형의 눈물이 내 손을 적셨다.
    성현정

    성현정

    1975년 부산 출생

    일본 가고시마대 생물생산과학 박사

  • 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황선미 동화작가

    응모작이 전년에 비해 다소 늘었고 읽을 만한 작품도 제법 있었으나 단 하나의 수작을 뽑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다섯 편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딱 하나의 소원’은 엄마의 욕심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그리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러나 상황이 억지스럽고 결말도 갑작스러운데다 ‘엄마’로 설정된 폭력적 상황이 이런 결말로 해결된다고 보기 어려웠다. ‘내 영혼은 내 거’는 일그러진 가정에서의 아이의 결핍이 도둑질로 채워지는 설정이 그럴듯했지만 문장이 미숙하고 이야기가 단순했다. ‘할머니와 나’는 개성이 느껴지는 화법이 남달랐다. 두 인물이 툭툭 던지는 대화에 실린 감정선은 이 작가의 가능성으로 보이는데 전체의 일부인 듯한 이야기라 아쉬웠다. ‘토리와 무시무시한 늑대 이야기’는 해외 민담을 차용해 서사에 활용한 유머가 신선하고 주제의식도 분명하다. 당선 기회를 놓쳤더라도 굴하지 말고 작품을 계속 쓰기를 바란다.

    ‘아빠의 유언장’에는 최근 응모작에서 자주 보이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소재로는 새로울 게 없고, 사람에게 복종하고 굴욕에 반응하지 않는 설정은 구시대적이다. 그러나 전체를 조형하는 감각이 믿음직스럽고, 슬픈 내용임에도 감정을 낭비하지 않고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역량이 보여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 성현정

    성현정

    1975년 부산 출생

    일본 가고시마대 생물생산과학 박사

    어린 시절은 지루했다. 그때 이야기는 비(非)일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마법 통로였다.

    아빠가 코트 자락에 겨울 냄새를 잔뜩 묻히고 들어와 내밀던 동화책 한 권. 내 첫 책이었다. 겨우 글을 떼기 시작할 무렵 난 그 책을 보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으며 집착했다.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는지. 그 기억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욕심을 비울 수 있었다. 그때의 내가 읽을 이야기라면 허투루 쓰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나 혼자 잘나서 상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은 걸 보니 아닌 게 분명하다.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늘 부모님께 감사하다. 김기정 정해왕 선생님, 함께 배운 글벗들과 ‘어수선’이 있어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당선 소식에 내 일처럼 기뻐해 준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 식구들,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일일이 언급하지 못해도 늘 응원해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

    김경연 황선미 심사위원께도 감사하다. 늘 책으로 뵈었던 두 분이라 이름만으로도 설렌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을 생각을 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그 분들께도 내게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끝까지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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