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자연사박물관

by  이수경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크리스마스 날 아침, 그와 그의 아내는 아들과 딸을 차에 태우고 어느 도시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 떠났다. 박물관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시내를 지나 터널공사 중인 산을 넘어야 했다. 운전은 아내가 했다. 아내는 운전에 서툴렀고 겁에 질려있었다. 자동차는 시속 60㎞를 줄곧 유지하고 있었다. 아내는 아, 속도가 너무 빨라, 하고 중얼거렸다. 옆 차선으로 차들이 휙휙 지나갔다. 어떤 차는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적으로 추월하기도 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는 자주 비틀거렸다. 아들과 딸은 흔들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는 불안하고 지루한 시간을 말없이 견디고 있었다.

    작년 겨울, 그는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취소당했고 많은 액수의 벌금을 내야 했다. 아내가 사준 중고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이었다. 번화가를 지나 2차선 도로로 꺾어지는 모퉁이에서 경찰이 그의 차를 잡았다. 경찰은 새로 생긴 카센터 건물 뒤에 숨어 있었다. 그는 만취 상태였다.

    “쥐새끼 같은 놈들…”

    그는 젊은 경찰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경찰 중 한 명이 그의 팔을 잡아 경찰차에 태웠다. 창밖으로 불빛이 어지럽게 지나갔다. 잠시 후, 크고 단단한 손이 그의 어깨를 눌러 경찰서 의자에 앉혔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경찰서라고 말하자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만취상태의 음주운전에 대해 설명했다. 몇 시간쯤 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다.

    “걱정 마, 이건 아무 일도 아니야, 절대로 걱정하지 마.”

    옆에 앉아 있던 경찰이 빨리 끊으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쥐새끼 같은 젊은 경찰은 아니었다. 젊은 경찰은 먹이를 물어와 둥지에 던지듯이 그를 경찰서에 집어넣고는 다시 밤거리로 사라졌다.

    경찰이 소리를 지르자 그의 아내도, 누구야, 누가 당신한테 그러는 거야? 하며 함께 소리를 질렀다. 자신 때문에 흥분하고 있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그는 울컥, 감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경찰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여기가 당신 집이야?”

    “누구든 당신을 건드리기만 해봐.”

    경찰과 아내의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엇갈리며 지나다녔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현기증이 났다. 그는 경찰서에 앉아 있는 자신이 낯설고 불안한 존재로 느껴졌다. 빨리 아내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어서 거기서 나와.”

    아내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침착했다. 순간, 아내가 대학시절, 그리고 연애시절의 그녀처럼 느껴졌다.

    새벽 무렵에 그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불을 환하게 켜둔 채 거실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에서 들었던 감동적인 말을 떠올리며 아내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대로 잠들면 지난밤의 긴장과 피로가 조용히 물러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흔들어 그를 밀어냈다. 머리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더 이상 다정한 애인이 아니었다. 그와 그녀의 따뜻한 우정과 사랑은 사라졌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잃어버린 운전면허에 대한 대책과 벌금뿐이었다.

    아내는 운전학원에 속성코스로 등록했다. 그녀는 문제집이 더러워질 때까지 주의를 기울여 공부했다. 시험 전날 밤에는 그에게 문제를 내보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그가 말했지만, 반복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필기시험에 100점으로 합격했다. 점수를 부를 때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고 말했다. 그녀는 코스에서 턱걸이로 합격했고 도로주행시험에서 두 번 떨어진 후 세 번째 주행에서 마침내 면허증을 받았다.

    “인생이 바뀔 것 같아.”

    처음으로 아내가 운전석에 앉고 그가 조수석에 앉아 도로로 나간 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녀가 견뎌내는 속도는 고작 시속 40㎞였다. 차들이 달려드는 도로에서 40㎞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야.”

    그녀는 진심으로 낙담하고 슬퍼했다.

    그가 운전면허를 잃고 그녀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그들이 함께했던 일상과 사소한 즐거움은 대부분 정지되었다. 주말에 쇼핑센터를 돌며 시식코너를 기웃거리거나 중고서점에서 필요 없는 책을 팔고 싼 값에 책을 사며 즐거워하던 일,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것 같은 사소한 일도 꿈꿀 수 없었다. 아침마다 각자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30분은 일찍 일어나야했다. 속도를 잃자 그들은 무기력해졌다. 그는 그녀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못마땅했고, 그녀는 그가 운전면허를 잃은 것이 짜증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사용해야 하는 날에는 면허가 없는 그가 운전을 했고 면허증이 있는 아내가 조수석에 앉아 동행했다. 아내는 그의 비공식적인 면허증과도 같았고 그는 그들의 속도였다. 만일 사고가 나거나 검문이 있다면 곧바로 자리를 바꿔 앉아야 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 상황을 대비해 신속하게 자리를 바꾸는 연습을 해보자고 말한 것은 그녀였다.

    이 사실이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면 망신을 당하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이겠지만, 그것은 모두 지난 일이었다. 검문도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날 아침, 늘 조수석에 앉던 아내는 운전석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녀는 의자를 당기고 안전벨트를 맸다. 이제 그녀 스스로 운전해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박물관에 다녀온 후, 그는 한동안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었다. 차도 운전도 아내의 몫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치고는 날씨가 너무 따뜻했다. 눈 같은 것은 내리지 않았고 아무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모두가 이상기후에 익숙해진 듯했다. 곧, 눈이라는 물질은 지상에 떨어지기도 전에 허공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은 눈을 기다리지 않을뿐더러 눈이라는 말 자체를 잊게 될지도 몰랐다.

    “참 좋지 않은 시대야.”

    그는 코트를 벗어 뒷좌석에 던지며 중얼거렸다. 원시공동체, 노예, 봉건, 자본, 사회, 공산 같은 말들을 차례로 떠올렸고, 식민지, 노동계급, 독점자본 같은, 그와 그의 아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함께 공부했던 단어들도 떠올려보았다. 말하자면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인데, 그런 것을 떠올릴 때마다 뭔가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고 반면, 잔혹해지며 진화하는 인간의 삶이 끔찍하기도 했다. 더구나 그가 다니는 회사의 노동조합은 만들어진 지 불과 몇 달 만에 추락하고 있었다. 해고와 누군가의 죽음과 가난과 슬픔이 한꺼번에 그들 곁을 지나갔다. 추락은 쉽게 왔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또 다른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삶이 너무 잔혹해. 그러나 잔혹의 끝에서 새로운 방식이 생겨나는 거지.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것, 환경운동을 하는 것,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사막으로 가는 것,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도를 닦는 것, 종교에 귀의하는 것, 이단을 만드는 것, 자살하는 것,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그리고 지상을 버리고 어딘가로 올라가는 것…이 모든 것들은 잔혹의 끝인가, 어떤 시작인가.’

    그가 두서없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좁은 이차선 도로 반대쪽 차선에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그들의 차 옆으로 거칠게 지나갔다. 아내는 공포에 질려 핸들을 급하게 꺾고 있었다. 깎아놓은 산비탈 쪽으로 차가 처박힐 것 같았다. 놀란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핸들을 잡고 백미러를 보았다. 다행히 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브레이크를 밟아, 천천히…”

    그는 두려움으로 허둥대는 아내를 위해 침착하게 말했다.

    그가 아내의 손 위에 손을 겹쳐 잡고 핸들을 돌리자, 아내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들의 중고차는 갓길에 무사히 세워졌다.

    “죽는 줄 알았어.”

    아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직은 안 죽어.”

    그는 담배를 물고 차에서 내렸다. 그늘진 갓길의 건너편에는 햇살이 노랗게 비추고 있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까마귀 소리였다. 까마귀는 우는 것이 아니라 짖는 것 같았다. 차 안은 조용했다. 아내는 10년 전에 입었던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가 벗어놓은 코트와 같은 것이었다. 결혼하던 해 겨울에 그들로서는 꽤 많은 돈을 지불하고 코트 두 벌을 샀다. 똑같은 코트를 입고 똑같이 걸어갈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아침에 그는 그 코트를 입지 않으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왜 안 입으려고 하는지 물었다. 그는 불편하다고 대답했다.

    “너무 고와.”

    그 말 뒤에 그는, 나 같은 노동자가 입기엔 어쩐지, 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그녀는 입으라고 했고 그는 마지못해 입었다. 아내와 같은 코트를 입는 날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코트는 그에게도 아내에게도 너무 헐렁했고 똑같은 코트였지만 다른 코트처럼 느껴졌다.

    전에 아내는 그 코트에 갈색 부츠를 신었다. 승마용 부츠처럼 굽이 낮고 견고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그녀는 늘 같은 코트에 같은 신발을 신고 씩씩하게 걸었다. 을지로에서 싸구려 노트북을 산 것도 그 무렵이었다. 무겁고 검은 노트북이었다. 그녀는 노트북 안에 무언가를 잔뜩 썼다. 그는 아내가 쓰는 것이 연애소설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내는 연애를 좋아했다. 그를 만나기 전에도 연애경험이 많았다고 그에게 고백했다. 그의 고향으로 가는 중앙선 기차 안에서였다. 아내가 연애경험이 많다고 고백했을 때, 그는 낯선 남자와 그녀가 알몸으로 엉켜있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다른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도 아내에게 단 한 번의 연애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피식 웃었을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내가 아직도 연애를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차라리 포르노를 좋아하지 연애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연애는 한번이면 족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는 이따금 아내가 잠든 시간에 포르노를 봤다. 아내는 그가 포르노를 보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포르노와 연애가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포르노와 연애는 매우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포르노에서 본 체위를 아내에게 시도해보고 싶었으나 실제로 해본 적은 없었다. 결혼 후 아내는 섹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 아내가 말했다.

    “말하자면 섹스를 하기 전까지가 연애지, 그 다음은 포르노야.”

    “그럼 우리는 포르노구나?”

    “피곤해….”

    아내가 연애를 말하는 것인지 포르노를 말하는 것인지 피곤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함께 잠자지 않았다. 그러기 시작한 것은 아내 쪽이었다. 아내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연애시절, 그들은 매우 감각적인 사랑을 나눴다. 아내의 내부는 깊고 따뜻했다. 빨아들일 듯 흥분하는 것은 언제나 아내 쪽이었다. 지금 섹스하지 않는 아내는 연애를 하고 있는 걸까, 아직도 연애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다만 피곤한 걸까.

    아내는 운전석에 앉아 그늘진 산비탈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하고 불안한 모습이었지만 아직 연애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것 같기도 했다.

    도로 쪽에 있던 햇빛이 그들이 있는 갓길 쪽으로 조금 옮겨왔다. 그는 담배연기를 길게 뿜었다. 아내도 한때는 담배를 잘 피웠다. 폐활량이 좋았던 것인지 다른 사람의 담배보다 빨리 타들어갔다. 그녀의 술잔 옆에 놓인 재떨이에는 언제나 더 많은 담배꽁초들이 쌓이곤 했다.

    담배를 잘 빨던 아내의 폐는 금방 나빠졌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 이따금 한밤중에 무언가를 먹고 싶어 했다. 어느 늦은 밤, 그녀는 그에게 닭똥집을 사다 달라고 말했다.

    “여보, 닭똥집, 그거 맛있더라.”

    “무슨 그런 걸 먹는다고 그래?”

    “전에 당신이 사와서 혼자 먹었던 것 말이야.”

    “그때는 안 먹었잖아.”

    “당신이 두 개를 남겼었어. 그걸 먹었거든.”

    “그래도 나는 닭똥집은 못 사온다. 밖이 너무 추워.”

    그가 못 사온다고 말하자 그녀는 견딜 수 없이 닭똥집을 먹고 싶어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찾아낸 사람처럼 ‘그것’을 사다 달라고 졸랐다. 그는 끝내 나가지 않았다. 밖은 추운 겨울밤이었다. 아내는 냉장고에 반쯤 남겨진 소주를 꺼내 한 잔을 마시더니 싱크대에 뒤돌아서서 그릇을 달그락거리며 씻기 시작했다. 그런 투정이 그는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았다. 귀찮아! 귀찮았다. 그녀는 그릇을 달그락거리다 못해 벽에 던져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지못해 그가 주섬주섬 바지를 챙겨 입고 있을 때 그녀는, “닭똥집 같은 거, 필요 없어!” 하고 말했다. 무척 슬픈 일을 당한 사람처럼 절망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아내는 왜 그렇게 사소한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자고 닭똥집 같은 것에 분노하고 슬퍼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아내에게 닭똥집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가 남긴 것 두 개를 먹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내는 닭똥집을 먹지 못한다. 그녀는 왜 추운 겨울밤에 먹지도 못할 것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을까. 그 후로도 그녀는 닭똥집 얘기를 두고두고 오랫동안 했다. 닭똥집을 사다 주지 않는 그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닭똥집을 사다주지 못한 그 겨울밤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아내는 이제 섹스도 안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더 이상 추운 밤에 닭똥집 따위를 먹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머리위에서 까마귀들이 다시 어지럽게 깍깍 짖어대기 시작했다.

    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것들, 지난여름에는 유난히 벌레들이 극성을 부렸다. 특히 매미가 그랬다. 이상기후로 인해 잘못 우화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숫자가 불어났다. 여름내 그 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렸다. 매미소리는 더 이상 한가로운 여름의 배경음악이 아니었다. 맹렬하고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나무를 흔들어보면 검은 벌레들이 우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떤 것들은 집안으로 들어와 날개를 털며 돌아다니다가 아침이 되면 문 뒤쪽이나 책상 밑에 뒤집힌 채 죽어있었다.

    알에서 부화한 매미는 3년에서 17년까지의 긴 시간동안 유충생활을 한다던가? 15차례가량 허물을 벗고 성장한 끝에 비로소 매미로 우화한다고 했던가? 겨우 한 달쯤 땅위에서 울다 죽는 것들…. 한 달이나 3년, 17년 같이 시간을 통해서 이야기되는 것들의 몸은 ‘시간이라는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손에서 말라 바스러지는 매미의 날개는 흩어지는 시간, 그 자체가 아닐까. 눈에 띄지 못한 매미의 주검은 어딘가에서 말라 부스러져 갔을 것이다.

    그는 아침마다 죽은 매미들을 집어 휴지통에 버리고 공장으로 갔다. 잠에서 깨어난 그의 아내는 휴지통 바닥에 버려진 매미들을 다시 목련나무에 던져주고 우체국으로 출근했다. 그녀는 아침 아홉시부터 오전 내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의 비정규직인 택배 인바운드 상담직원으로, 택배주문을 받거나 민원을 상담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침에 와서 가져가라고 했잖아.”

    흥분한 남자가 반말로 지껄였다.

    “고객님, 분명히 오후에 방문하는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

    “씨발, 정말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남자의 목소리는 혀가 튀어나올 듯 험악해졌다. 휴대폰이 울렸다. 그였다. 휴대폰 액정에 12:54분이 찍혀있었다. 그녀는 그의 전화를 연결해 왼쪽 귀에 대고 남자의 전화를 오른쪽에 붙였다.

    “고객님, 곧 다시 방문해서 조치하도록 하겠…”

    그녀는 오른쪽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노조가 만들어졌어, 한 시간 전에.”

    그가 왼쪽에서 말했다.

    “필요없어!”

    남자가 오른쪽에서 말했다.

    “30년간 무노조였지. 회사에서 아주 놀란 눈치야.”

    그가 흥분된 목소리로 왼쪽에서 말했다.

    “야, 너 누구야? 너 이름 대!”

    남자가 말했다.

    “곧 저쪽에서도 대응을 하겠지.”

    그가 말했다.

    “이름을 대란 말이야, 씨발년아! 모가지를 잘라버릴 거야.”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가운 햇볕과 그의 목소리와 남자의 욕설, 그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휴대폰 액정화면에 1:00 가 찍혀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수화기를 내려놓고 왼쪽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껐다. 왼쪽이 남자였는지 오른쪽이 그였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누가 어느 쪽이든 비슷한 위협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창구 밖으로 나가 미리 준비해 놓은 등기우편을 우편물 담당자에게 건네주었다.

    또? 우편물 담당자가 물었다. 응, 또.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가 쓴 연애소설은 이번에도 어느 담당자의 손에서 버려질지도 몰랐다.

    그날 저녁, 그녀는 등푸른생선과 제철이 지난 싸구려 과일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생선을 굽고 있을 때, 낯선 남자들이 문을 두드렸다. 회사 측 노무담당자였다. 그녀는 남편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녀를 찾아온 것이라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회사는 절대로 노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불행한 사태가 생기기 전에 남편을 말려달라고 두 남자가 번갈아가며 이야기했다. 어느 틈에 다가온 것인지 떠돌이 개 한 마리가 그들이 가져온 과일상자 주변을 얼쩡거렸다. 남자들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그녀가 마지못해 문 앞에서 비켜서자, 남자들은 어깨를 약간 구부리고 어둑해진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노조의 불필요성과 그로 인해 예측되는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의를 갖췄지만 웃지는 않았다. 두 남자가 서로 의견이 맞는다고 볼 수는 없었다. 퉁퉁하고 키가 작은 남자는 임무에 충실하려는 자세였고, 키가 크고 검은 테 안경을 쓴 남자는 어쩔 수 없이 고용된 자신의 처지가 부담스러운 듯 괴로운 표정을 짓곤 했다.

    “아, 아이가 많이 컸군요. 저희도 어쩔 수 없이…”

    검은 테 안경이 말했다.

    “노조는 절대로 안 됩니다!”

    통통한 남자가 검은 테 안경의 말을 가로챘다. 남자는 더 강경한 어투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시간이 늦었다는 듯 시계를 보며 하품을 했다. 검은 테 안경을 쓴 남자가 가지고 온 복숭아 상자를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은 남자들과 그녀를 힐끗거리며 복숭아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복숭아를 먹어도 되나요?”

    아이가 귓속말로 물었다.

    그녀는 눈을 흘기며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남자들이 돌아간 후 아이들은 저녁 내내 복숭아를 먹었다. 그녀가 구워놓은 등푸른생선은 푸른 등을 잃고 식탁위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복숭아를 먹은 아이들의 배가 볼록해졌다. 세상에 그렇게 탐스럽고 보드랍고 달콤한 과일이 있었다니, 마치 처음 본 과일처럼 그들이 가져온 복숭아의 빛깔과 모양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남자들이 다녀간 것과 아름다웠던 복숭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그날 밤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복숭아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매미들이 껍질만 남기고 모두 사라져갈 무렵, 그들이 말한 ‘불행한 사태’가 왔다. 회사는 노동조합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는 해고되었다. 정오가 지나면 매일 공장 앞마당에서 점심집회를 했고 밤에는 철야농성을 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공장 여자들 몇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며 바람을 피하다가 하나둘씩 공장으로 들어갔고, 누군가는 회사 쪽에 설득 당했고, 몇몇은 그와 함께 해고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까지 그는 아내에게 한 푼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통장이 압류되었고 재판에 불려나갔다. 회사 측에서 보낸 ‘손해배상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음주운전으로 내야했던 벌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돈이었다. 경찰서 의자에 앉아 ‘절대로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위로는 헛소리였을까. 그렇다 해도, 그는 아내가 어떤 경우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경찰서에 있던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하던 아내, 그를 위해 경찰에게 소리를 지르던 아내, 비록 운전을 할 수는 없지만 100점을 맞고 딴 면허증을 들고 조수석에 앉아주던 아내는 언제까지나 그를 위로하고 견뎌줄 것이었다.

    “당신은 다른 여자들이랑 달라, 사랑해.”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온 어느 날 밤,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 같은 거, 필요없어!”

    닭똥집 때문에 낙담하던 그날 밤처럼,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모든 것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의 아내는 얼마쯤 모아두었던 적금과 보험을 깬 돈으로 카드 값을 막고 쌀을 샀다. 아이들의 피아노와 방문학습지 수업은 중단시켰다. 공과금이 밀리자 전기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고작 우체국 비정규직 상담직원으로 그녀가 받는 급여 70만원이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그녀는 똑같은 모양의 백금 결혼반지 두 개를 팔았다. 보석상 주인은 얼마간의 돈을 건네주고 그들의 반지를 서랍 깊숙이 넣었다. 거리로 나왔을 때, 참고 있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와 그녀의 삶의 어떤 순간을 낯선 곳에 버려두고 떠나온 것만 같았다.

    매운바람이 수그러들고 지나치게 따뜻한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딸의 머리에서 검은 벌레 한 마리가 떨어졌다. ‘머릿니’였다. 한동안 이 벌레가 아이들 사이에서 집단 번식했다. 머릿니는 아이들의 머리에서 머리로 옮겨 다녔고 빠르게 번졌다. 급기야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대대적인 용의검사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에 벌레가 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매우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아이들은 서로 누구누구에게서 옮은 거라고 말했지만, 누가 처음 머릿니를 퍼뜨렸는지 알 수 없었고, 누구의 머리에서 머리로 옮겨 다니는 것인지도 몰랐다. 자신이 처음 퍼뜨린 건지도 모를 가능성에 대해서는 애써 생각하지 않을 뿐이었다.

    “요즘 같은 때 머릿니라니.”

    아내가 머릿니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이상기후 때문이야, 겨울에도 날씨가 너무 따뜻하거든, 더구나…”

    “더구나?”

    “여자들이 다 일하러 나가.”

    “여자들 때문에?”

    “가난한 동네라서 그래, 가난 말이야.”

    그녀의 말에 의하면 머릿니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이상기후와 가난한 동네의 여자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딸의 머릿속에 기어 다니는 머릿니는 그녀에게서 나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동안 늘 나란히 붙어서 잠자던 아내와 아들과 딸은 서로에게 머릿니를 전염시켰을 것이다.

    셋은 알몸으로 목욕탕에 들어가서 머리에 약을 뿌렸다. 딸은 욕조에, 아들은 변기 위에, 아내는 바닥에서 설명서대로 약을 뿌린 채 10분 정도를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그는, 모두 침팬지 우리로 보내야 해, 하고 농담을 했다. 아들과 딸은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의 아내는 웃는 것인지 찡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일 아침 10시에 동물원에서 만나자.”

    그가 동물원 이야기를 했을 때, 아이들은 정말 동물원 앞에서 만나야 할 것처럼 일찍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동물원 같은 것은 까마득히 잊었다.


    ‘동물원으로 갈 걸 그랬나? 그런데 벌레들은 모두 사라졌을까?’

    그는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문득,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검은 벌레들이 여전히 아이들의 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것은 아닐까. 가난한 동네의 여자들이 퍼뜨려 놓은 머릿니가 아내와 그 자신의 머리카락에도 수없이 많은 서캐를 까놓고, 알에서 깨어난 벌레들이 머릿속에서 바글거리며 기어 다니는 것은 아닐까.

    그는 머릿니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그 머릿니라는 것이…소멸시키기 어려운, 매우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지금과 같은 이상기후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빠르게 번식하는 징그러운 벌레들이 아닌가.

    아내는 운전석을 당기고 다시 안전벨트를 맸다. 시끄럽게 울던 까마귀들이 다른 나무를 찾아간 것인지 주변은 적막했다. 그녀는 속도를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핸들을 꽉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빼고 이따금 백미러를 통해 도로를 살피기도 했다. 트럭이 지나간 후에 그녀는 한결 과감하고 침착해보였다. 그들의 차는 조심스럽지만 부드럽게 달렸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잠들었고, 그는 조수석에 얌전히 앉아 간간히 길을 알려주곤 했다.

    차는 터널공사를 하고 있는 산을 빠져나와 박물관이 있는 신도시로 들어갔다. 대개 신도시라는 것이 사람들은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와 잘 꾸민 정원과 산책길, 도로만 있는 가상의 도시처럼 여겨지게 마련이듯이, 그곳 역시 사람의 그림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넓고 낯선 도로에서 차가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번화가로 들어서자 백화점과 분수와 공원이 나타났다. 거리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사람들은 모두 거리를 빠져나가 동물원이나 스키장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박물관은 신도시의 번화가에 있었고 계단이 많았다. 미로 같았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마침내 전시장을 찾아냈다. 미로 같은 계단을 여러 번 지나 옥상을 통해 어딘가로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나가는 길을 찾을 수나 있을까, 아내는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유물이나 죽은 동물의 껍질, 지구에 살다가 멸종되었거나 사라져가는 것들, 그리고 살아있는 동물까지 전시된 종합자연사박물관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일층과 이층은 모두 값비싼 스포츠용품매장과 의류매장이었다. 박물관을 위장한 대형쇼핑센터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입장료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아내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가 어른 표 한 장과 아이들 표 두 장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는 검은 천을 들추자, 그녀는 잠깐만, 이라고 말하고는 어른 표 한 장을 더 끊었다.

    아내가 먼저 들어갔고 아이들이 따라 들어갔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두컴컴한 통로 양쪽에는 유리 안에 갇힌 동물들이 잠을 자거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탓에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린 것일까, 다만 꿈지럭거릴 뿐이었다.

    “이건 동물원보다 심하군.”

    그는 그런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쥐가 있어요, 귀여워요.”

    아들이 말했다.

    “생쥐가 아니다, 뱀의 먹이야.”

    뱀이 똬리를 틀고 잠들어있는 작은 유리 상자 안에서 생쥐는 두려움에 가득 찬 듯한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상자를 빠져 나올 수 있을까. 혹, 뱀이 먼저 죽거나 어떤 전능한 손이 상자를 열고 생쥐를 들어 올리거나, 그렇다 해도 또 다른 뱀의 먹이가 되겠지만….

    그는 계속해서 생쥐 앞에 서 있었다. 생쥐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아내가 일하는 택배 인바운드 상담책상도 앞쪽과 옆쪽이 모두 투명한 유리로 막혀있었다. 잘못된 택배 업무에 관한 항의와 욕설이 반복되었다. 전화를 끊어도 헛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따금 업무와 상관없는 전화도 걸려왔다. 그의 전화도 그 중 하나였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수화기를 왼쪽에 붙였다.

    “놀라지 마, 사무장의 아내가 죽었대.”

    그녀는 잘못 걸려온 전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현듯, 지난여름에 죽은 매미들이 떠올랐다. 휴대폰 액정에 1:00가 깜빡였다. 상담을 끝낼 시간이었다.

    “듣고 있어?”

    매미들은 얼마나 맹렬하게 울었던가. 오랜 시간 우화를 기다리다 잠깐 울고 죽은 것들….

    노동조합 사무장은 그와 함께 해고된 사람이었다. 사무장의 아내는 법원에서 날아온 불길한 서류들을 들고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렸다고 했다. 찬물에 샤워를 했대. 여자는 샤워 도중에 죽었다. 심장마비였다네. 사무장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여자는 알몸으로 욕실에 쓰러져있었고,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거실에 잠들어 있었더라고 그가 말했다. 병원 장례식장에는 키가 큰 사무장이 슬픔과 고통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어린 두 딸이 그의 곁을 서성거렸다. 그와 함께 해고된 조합원들이 죽은 매미들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도 그들의 곁에서 밤을 샜다.

    장례식이 끝난 후 아내는 달라졌다.

    “승산은 있어?”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지금은 싸우는 수밖에….” 그는 단호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녀는 두려웠다. “실패하길 바라는 거니?” 두려운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다 그만 둬!”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인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사무장의 아내가 죽었잖아.” “사고였어, 심장이 좋지 않았대.” “나도 폐가 나빠, 죽을지도 몰라.”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어.” “미안해, 함께 추락하기 싫어….”

    그와 그의 아내는 늦은 밤까지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다. 아내가 왜 그런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걸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니, 놀라서 그렇겠지. 그는 아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해나 사랑 따위는, 추운 겨울밤, 먹지도 못할 닭똥집을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철탑이나 고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상에서의 선택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그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여보, 그래도 걱정 마, 절대로 걱정하지 마.”

    아내의 눈동자가 터질 듯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못과 망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문에 못을 쾅쾅 박았다.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낮에는 아주 추웠어. 저녁 무렵에 아내가 말했었다. 산위에는 눈이 많이 쌓였어. 그것도 아내의 말이었다. 그렇게 추운 날, 망치로 쾅쾅 못질하는 소리는 그와 그녀의 집을 벗어나 온 동네로 울려 퍼질 것이 뻔했다. 누군가 항의를 해온다면 그는, 미안하다고, 누군가 죽었다고, 아내도 두려울 거라고,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곧 철탑을 기어올라 허공에 매달릴 거라고, 그래서 아내가 힘든 것이라고, 그러나 살다보면 이런 일은 또 있지 않겠냐고, 당신들도 그렇지 않겠냐고, 조금만 참아달라고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다. 벌어진 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그는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내는 어두운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아빠!”

    아들이 그를 불렀다. 당장이라도 뱀이 잠에서 깨어나 생쥐를 통째로 삼킬 것 같았다. 아내는 코너를 돌아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주춤주춤 걸었다. 뱀이 어떻게 생쥐를 삼키는지 볼 수 없었다. 어둠에 갇힌 생쥐가 어쩐지 희극적이기도 했다. 희극의 끝은 간혹 비극적이기도 한 법이 아닌가. 그런데 비극의 끝에 희극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러나 모든 끝에서 새로운 방식이 생겨나는 거지.

    낯선 도시, 자연사박물관의 긴 통로를 따라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거대한 공룡모형과 독수리 박제와 부엉이 박제가 지나갔다. 알을 깨고 막 부화하는 순간 용암에 갇혀버린 어떤 생물체의 화석도 지나갔다. 코너를 돌자 검은 코트를 입은 아내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어둠 속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먼 허공에서 정지된 채 매달려있는 동안 아내는 스스로 길을 찾고 속도를 올릴 수 있을까? 긴 통로의 끝에서 초록빛 유도등이 반짝였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이수경

    이수경

    1966년 대구 출생

    강남대 영문과 중퇴

  • 오정희·성석제 소설가

    자극적인 이야기와 미증유의 사건 사고가 폭발하는 시속에 비해 소설 속의 세상은 조용하게 내연(內燃)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문체의 유행과 기성작가를 모방한 듯한 스타일은 심사자의 눈에 도드라지게 띄었다.

    ‘술독’은 흔한 도시의 부랑자, 노숙자를 보여준다. 그늘 속 인간상에 대한 묘사와 의식 추적이 의미가 없다 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케이브 인’은 어느 식당의 일상적인 풍경을 연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속물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개성적 터치로 드러내는데 ‘노부’ 같은 어색한 호칭에서 작품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굿모닝’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입심이 대단하다. 문제가 된 것은 특정한 차의 브랜드가 정면에 등장하고 소설의 흐름도 거기에 기대고 있으며, 제목이 지향하는 상징성을 이야기가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 ‘멘덴홀 빙하 숲의 부활’은 설인(雪人)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음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개연성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작품 말미의 문장처럼 다 읽고도 뚜렷하게 ‘잡히는 건 없었다.’

    당선작 ‘자연사박물관’은 여러모로 균형이 잘 잡힌 작품이다. 소시민의 일상과 노동 현장의 살풍경한 모습, 노조 결성에 따른 핍박과 절망감이 어울리기 힘든 제재임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녹아들었다. 날것 그대로의 지독한 삶을 때로는 가벼운 욕설과 농담, 뭉클함으로 감싸안으며 소설은 한걸음씩 나아간다. 이런 걸음은 등단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며, 인연이 늦춰진 분들에게는 걸음을 멈추지 말기를 당부한다.
  • 이수경

    이수경

    1966년 대구 출생

    강남대 영문과 중퇴

    ‘마지막 두 달은 중독된 듯 썼다. 고치고 고쳤지만 흡족하지 못했다. 시야는 좁고, 위선이 보이고, 문장은 자주 막혔다.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당선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다시,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왔다. 공모도 축제도 끝났으므로, 이대로 됐다.’

    당선소식을 받기 한 시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던 글입니다. 무언가 결심하는 중이었지요. 그 결심이란 단연, ‘좋은 소설’입니다. 작가로서는 그것이 전부겠지만 인간으로 느낄 유혹이나 근심이 왜 없을까요? 그러나 이 성취는 오직 ‘소설’로 이룬 것이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설을 쓰는 것뿐입니다. 운명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소설 속의 그녀는 어렵게 딴 면허증을 쥐고 ‘운명이 바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속도를 제대로 내지는 못했지요. 어쩌면 제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묻고 있어요. ‘좋은 소설이 무엇일까.’

    송기원 선생님, 겨우 한 발짝 걸었어요. 이순원 선생님, 제가 기쁨을 드렸을까요. 김종광 선생님, 마지막 두 달, 저의 힘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노트북에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유 군, 신경질을 견뎌준 가족, 사랑하는 아이들 주연과 준식, 에콰도르에 있는 수진과 그의 가족, 엄마와 아버지, 거친 소설을 읽어주신 김갑수 작가, 고마운 장정희 소설가, 그리고 광장이나 고공에 계셨을 그 누군가가 저와 함께 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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