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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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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시간 속의 - 당신에 대해서

    월요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나는 그가 출근하는 것을 배웅하면서, 우산을 챙기라고 말했다. 그는 신발장의 우산 걸이를 확인하더니 3단 우산이 없다고, 장우산은 싫다고 말한 뒤 나가버렸다. 배웅 입맞춤은 없었다. 그는 10초도 지나지 않아, 내가 문을 잠그기도 전에 다시 문을 열었다. 비 온다. 그는 장우산, 자신의 것으로 지정해두었던 남색 장우산을 들고 나갔다. 나는 타박하지 않았고, 입맞춤은 없었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개의 배변판을 갈았다. 사료를 채우고 깨끗한 물로 갈아주었다. 간밤에 보았던 한 남자 디자이너의 헤어스타일을 흉내 내어 머리를 손질했다. 캔버스 백에 노트북과 전자담배를 넣었고, 카멜을 파우치에 담아 그것 역시 집어넣었다. 필립 빌랭의 『포옹』과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를 챙겼다. 『나자』는 읽지 않을 것이지만 들고 가기로 했다.

    녹색 장우산을 집어 들었다. 개는 나를 배웅해주지 않았고, 내가 떠날 것을 알고는 외투가 빼곡히 걸린 행거 밑 자신의 자리로 파고들었다. 일찍 귀가하지 않는다면 아마 12시간을 혼자 지내야 할 것이다.

    하늘은 낮게 깔려 있었다. 비는 아주 조금씩만 내리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느낌이 들었지만 시어서커 셔츠를 입었기에 쾌적했다. 빌라 1층의 통장을 겸한 슈퍼 아줌마가 나를 흘긋 바라보고는 고개를 틀었다. 정화조 청소비를 받은 후로 굳이 알은척을 하지 않았다. 그녀를 지나쳐 골목으로 접어들며 이레이져의 「A little respect」를 틀었다. 그것을 반복해 들으며 학교에 도착했다.

    4일이 지나 월요일이 되었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고작 4일이 지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4일이 지났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직은 쓸 수 없어-이제는 써야 해, 사이의 어디쯤에서.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아니, 조금은 놓여난 후에, 어딘가 사이쯤에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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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그러니까 지난 목요일, 공덕역을 지나치며 그에게 문자를 했다. 더 이상 그 교수를 견딜 수 없어. 강요당하고 무시당하는 굴욕을, 그 모든 억압을 참을 수 없다고 그에게 말했다. 여름부터 구직활동을 시작할 거야, 이렇게 사는 것도 구질구질하고. 그는 그래그래, 하고 답장해 주었다.

    식은 닭을 먹고 그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는 며칠 전 내가 쓰레기라고 욕한 형사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턱수염을 만졌고, 나와 같은 색으로 염색해 준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말이지 못생겼다고 말했다. 아니, 그 이전에 샤워를 하고 나와서, 한쪽 팔을 벌려 나의 품으로 들어오라 말했을 때, 그는 싫어, 하고 웃으며 말했다. 신라면을 사오면 먹겠느냐는 물음에도 싫다고 대답했다. 그래, 이제 점점 더워지니까. 나는 그가 입은 스트라이프 반바지 위로 불룩 솟아오른 배를 만졌고, 손을 집어넣어 팬티 위로 그의 성기를 잠시 매만졌다. 그랬던 것 같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그는 나에게 잠시 일어나 앉아보라고 말했다. 할 말이 있다구. 그가 이런 식으로 말했던 적이 있던가? 생각하며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그와 마주 앉았다.


    나,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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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프리즘」


    사랑만큼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살피고, 정의하기 곤란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무한대의 크기를 가진 그릇, 사랑. 그 어떤 말로 정의하려 해도 사랑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도 사랑이지 않을까?’ 하며 스르륵 들어와서는 사랑의 뜻 역시 무한으로 넓어진다.

    나는 나의 남자친구를 2년 전 이맘때쯤 만났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잤고, 그 다음 날쯤엔 사귀기로 했던 것 같다. 1년 후 내가 졸업을 하면서 동거를 시작했고, 그러고도 1년이 지나 오늘날이 되었다. 나는 그를 처음 보자마자 홀딱 빠졌고, 지금도 그를 보고 있으면 기쁘고 설렌다. 내가 태어나 가장 많이 ‘사랑해’ 하고 말해준 사람도 그이고, 나에게 가장 많이 ‘사랑해’ 해주었던 사람도 그다. 나는 그의 터질 듯한 배, 긴 속눈썹, 턱수염을 사랑하고, 욕실 변기에 물을 내리지 않고 나와도 사랑하며, 가끔 참을 수 없는 편도결석의 냄새마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를 사랑한다. 아무래도 나는 나의 남자친구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아니, 나는 분명 그를 사랑한다. 사랑하는데, 얼마 전까지는 국립국어원의 세계에서도 ‘사랑’하고 있었는데, 어, 좀 이상한 일이 생겼다.

    2014년 1월까지만 해도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한 사랑은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2012년,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에서 ‘이성’의 상대를 ‘어떤’ 상대로 바꾼 것이다. 이 작지만 큰 변화는 ‘사랑’이라는 것을 동성 커플에도 적용할 수 있고, 해석이 될 여지가 분명한 모습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올 들어 그 범위는 다시 ‘이성’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나의 동성애 중심적 사고를 반성하며, 다른 시각으로 ‘사랑’의 사전적 정의를 이해해보려 상상력을 발휘하고 의미를 쪼개고 합쳐 보아도, 사랑을 정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느낀다. 정의해야 할 것이 책도, 사과도, 영화도 아닌 바로 사랑이지 않은가. 어쩌면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불능일지도 모른다. 이 불능에 가까운 정의를 전형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협소하게 뜻을 재정의하는 것은 오히려 사전의 기능에 역행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사랑에 보편을 요구하고 정의하려는 것은 언어의 영역에서 벗어난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사랑은 영원히 정의되지 못한 채 부유하며 말할 수 없음, 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을 느꼈다, 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설가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책 한 권을 써내며, 음악가는 선문답처럼 음악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투박해지는 것에 저항한다.

    굳이 국립국어원에서 ‘이성 간의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정의하더라도 우리의 사랑은 존재한다. 나 역시 도저히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그것을 하고 있으며, 나와 나의 남자친구는 이 세계에서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군색한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사랑처럼 사랑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 어떤 속박에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 언제나 재발명 되어야 하듯, 사랑에 대한 정의도 재발명,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함부르크 스테이크가 햄버거가 되었듯, 더 이상 Films=영화는 아니듯, 그리하여 언젠가는 퀴어가 퀴어가 아니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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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 나의 글.

    올해 봄 신문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썼던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무엇보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나의 세계에, 사전에,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의 정의처럼 사랑 역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지 않는 세계를, 그때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와 내가 나눈 대화는 도무지 진부하기 짝이 없어서 묘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어떤 수사학적 기교를 부리더라도 그 장면을 진부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없다. 거듭 그 장면을 떠올릴수록 그것은 나에게 외설로만 다가왔고, 떠올리고 싶지 않아졌고, 이제는 몇 개의 단어, 그러니까 친구, 가족, 이기적 같은 단어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는 그와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서재에 들어왔다. 사방이 막힌 방은 뜨뜻미지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급격하게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종내에는 나에게 눈물까지 내비쳤지만, 이내 해피 투게더를 보며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쳤나? 생각했지만, 그 정도의 가벼운 마음, 그 정도의 즉흥적인 판단이길 바랐다.

    친구 B에게 문자를 해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그러고도 마음을 가누지 못해 새벽 한 시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 다음 학기에 집에 내려가서 살면 안 될까? 엄마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내려와서 사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하고 살지가 문제이지, 하고 말했다. 그리고 더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빨지 못한 겨울 이불과 요를 깔고 누웠다. 갑자기 뱃속에서 생긴 무언가가 내 명치를 꽉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창문을 열고 불을 껐다. 빛 한점 새어들지 않는 검은 방에 나는 다시 몸을 뉘었다.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와 나의 체취가 이불에서 올라왔다. 숨을 쉬고 싶지 않아졌다. 가슴은 계속해서 조여왔다. 숨죽여 억억 소리를 내어보다, 벌떡 일어나 자리에 앉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누웠다. 방은 습하고, 어두웠고, 나는 차가운 벽에 몸을 바싹 붙여 열을 식혔다.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죽음의 순간, 아니 죽음은 이런 상태의 지속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나는 죽음보다 지금이 훨씬 끔찍하리란 생각을 했다. 오히려 죽음이 나았다. 아이팟을 켜 가장 불행해 보이는 여자를 찾아 헤맸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OST를 틀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음은 물론 들을 수조차 없었다. 이어폰을 끼는 행위마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불을 켜 책을 읽으려 했지만 당연히 읽을 수 없었고, 영화도, 보고 듣는 그 무엇도 나는 할 수 없었다. 시간. 시간.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보내는 이 시간. 나를 틀어쥐고 놓지 않는 이것이 시간인지 몸인지 알 수 없는 이 시간. 이 시간을 나는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시간을 견딜 수 없어.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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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그는 지방으로 촬영을 떠났다. 그는 내가 자고 있는 방의 문을 열어 출근을 한다고 말했다. 책상 위에 돈을 올려두었으니 용돈으로 쓰라고도 말했다. 하와이언 꽃무늬 피케셔츠에 체크무늬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느 때였다면 바지는 단색으로 갈아입으라고 했을 것이었다. 그를 배웅했고, 처음으로, 입맞춤이 없었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이내 가슴이 조여들었다. 나는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소파에 몸을 뉘었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연유를 물어왔지만, 나는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냥 조금 지쳤어. 다시 잠들지 못했기에 TV를 틀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고 생각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에 대한 생각을 해야 했기에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잠이 간절했다. 오로지 잠, 지루한 꿈은 없을 테니까, 그것만이 간절했다. 잠이 왔다.

    가방을 열어 투고할 소설을 꺼내 들었다. 그가 놓고 간 돈을 지갑에 반쯤 끼워 넣고 집을 나섰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건조하고 더운 날씨였다. 등기우편료는 2,920원이 나왔고, 세어보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동전으로는 그것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나는 그가 준 돈을 꺼내 우편료를 해결했고 내친김에 마트로 향했다. 온 가족 한 마리 통닭을 샀다. 콜라를 샀고, 레토르트 카레와 참치 덮밥을 샀다. 그가 좋아하는 비빔면도 한 묶음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등 아래에 나란히 선 한 노부부를 바라보았고, 가짜 전신주에 매달려 교육을 받는 변전소 직원을 올려다보았다. 창문을 열고 누웠다. 식욕은 돌지 않았다. 개는 나의 곁으로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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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주 전 교수는 세월호에 관한 글을 써오라고 했다. 침몰하는 세월호 속 인물을 1인칭 시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써오라고 말했다. 친절하게 에어포켓이라는 제목까지 붙여주었다. 나는 당연히 쓰지 않았고, 수업에 불참했다. 교수는 조교를 시켜 불참한 학생을 소환했다. 그의 권위가 아직 나에게 작용하고 있었던 탓인지, 더는 불편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나는 소환에 응했다.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는 여전히 수업 중이었다.

    장관이었다. 한 학생은 몇 줄을 쓰다 포기하고 교수에게 편지를 써왔다. 글을 낭독하던 여학생은 눈물을 보였고, 더 이상 읽지 못하자 교수가 이어 읽었다. 그는 학생의 마음에 감동했다 말하며, 편지글에서 잘 쓰인 부분을 골라내어 칭찬했다. 또 다른 학생은 산문을 쓰지 못하고 오직 대화로만 글을 써왔다. 그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끔찍한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방법이 있지. 그는 글쓰기의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했고, 따라서 이 글은 아주 잘 쓰인 글이라며 칭찬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수업에서 길러야 할 것은 묘사적인 글쓰기, 디스크립티브 라이팅! 이라 힘주어 영어로 말했고, 다시 써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교수는 새로운 과제를 내주었다. 이번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의 1인칭 시점으로, 이제는 에어포켓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정해주었다. 맛이 갔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만적인 과제를 해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수업시간, 나는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시점만 바꾸어 제출했다.

    그는 나의 거짓 과제를 보고서도 나의 글쓰기에 대해 비난했다. 넌 이런 식으로밖에 쓰지 못해. 그건 너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길이야. 헛웃음이 나왔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신물 나는 애정, 그가 말하는 글쓰기의 기본인 행동하기, 보여주기, 외화外化.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글쓰기가 선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강요했고,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결코 굽히지 않았으며, 그것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보여주기보다 말하는, 행동하기보다 의식을 좇는 나의 글은 그의 눈엔 그저 멋부림에 불과했다. 교수 자신은 거리낌 없었던 전위나 실험을 내가 하는 것은 객기였다.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무릅쓴 것에 대해 그렇게 쓰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분명한 오만이며 강요라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난 후 교수를 찾아가 생활비가 모두 떨어졌으며 다음 주부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반은 맞는 말이었으니 그리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그의 수업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내 생각을 모조리 퍼부어 대립각을 세우는 것보다, 그렇게 끝내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날의 일을 곱씹으며, 어떤 단서라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마트에서 사온 온 가족 한 마리 치킨을 뜯어 먹었다.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42세의 네덜란드 남자가 하는 인터넷 핍쇼를 보았다. 그는 포경수술하지 않은 성기를 주무르고, 포피를 꼬집어 문지르다 그것을 뒤로 당겨 귀두를 드러나게 했다. 양손으로 유두를 자극하다 뒤로 돌아 엉덩이를 열어젖히고는 항문을 뻐끔거렸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사이버 코인을 지불하지 않자, 그는 사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나 역시 그의 기계적인 음란한 몸짓에 흥미가 떨어지던 차였다. 나는 몇 개의 방을 더 들락거리다 텀블러로 넘어갔다.

    벗은 남자들, 그처럼 살찌고 털이 많은 아시아 남자들의 사진이 모인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비슷비슷한 스타일—짧은 머리, 수염, 근육, 쌍꺼풀이 없는 눈매—을 한 남자들의 노출 사진에서부터 동영상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한참을 스크롤 하던 중 나는 국내산 2라는 한글로 된 제목의 동영상을 발견했다.


    환장하겄다. 환장하겄네.

    자기야, 환장하겄어. 이 자지 내 거 맞지?

    환장하겄어. 내 보지에 넣으면 환장하겄어.


    그래 하자하자. 나도 니 보지 맛 좀 보고 싶다.

    이제 그만 찍고 하자. 하자.


    그것은 핸드폰으로 촬영된, 50대는 되어 보이는 남자들의 영상이었다. 초록색 리놀륨 바닥재가 깔린 그곳은 지방의 한 공장 같기도 했고, 기원碁院같기도 한 정체불명의 공간이었다. 촬영을 당하는 남자가 바지를 벗자 노란색 트라이 팬티가 드러났다. 그는 팬티를 밑으로 내려 이미 발기한 성기를 꺼내놓았다. 환장하겠다는 남자는 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성기를 만지고 빨고 촬영을 했다.

    그들은 자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지만, 아마 처음 만난 사이였을 것이다. 한 남자는 내가 절대 입지 않을 브랜드와 무늬의 속옷을 입고 있었고, 다른 남자는 내가 절대 쓰지 않을 단어와 어휘를 구사하고 있었다.

    언젠가 쓰려고 했던 롤랑 바르트의 크루징 모습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미래인 것처럼 몇 번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반복해서 보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영상을 다섯 번쯤 더 돌려보았을 때, 나는 그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새벽녘, 신촌의 한 싸구려 모텔에서,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거 이제 내 거다. 그는 내 성기를 쥐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영상을 볼 수 없었다.


    -

    금요일 아침, 그는 노력해볼게, 하는 말을 남기고는 떠났다. 이제야 그것이 떠올랐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노력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력은 예의 혹은 존중의 다른 말이지 않았을까 그저 추측해본다.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금요일에 대한 기억이 모두 증발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토요일에 대해 쓰려고 하자 이제는 그 날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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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은 교수의 보강이 잡혀 있었다. 나는 내 감정에 더욱 함몰되어 그것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의 불화를 더 깊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학교에 가는 것을 택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으로 더운 날씨였다. 지하철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동기에게 문자를 해 수업에 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누웠다. TV를 켰다. 100여 년 만의 5월 폭염이라고 했다. 그가 촬영을 하러 떠난 거창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그에게 연락을 하려다 말았다. 대신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했다. 마치 그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 듯 청소를 하고 변기를 닦았다. 두통이 밀려와 누웠을 때,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는 이제 경산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했다. 푹푹 찐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집이 더우면 에어컨을 켜라고, 그것이 개에게도 좋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하나도 덥지 않았다.

    솔드아웃이라는 케이블 방송을 보았다. 10명의 디자이너가 팔릴 만한 옷을 디자인하고, 100명의 쇼퍼 중 51명 이상이 선택을 누르면 Sold Out이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남자 디자이너 한 명이 마음에 들어 계속 보았다.

    신라면을 먹고 체했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그에게 문자를 했다. 경산은 덥지 않니?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 그가 돌아올 시간, 그가 노력을 해보겠다는 시간, 그러니까 모든 시간, 시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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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돌아올 일요일, 나는 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모든 방법을 생각해두기로 했다. 우리가 나누었던 모든 대화를 텍스트 파일로 뽑아 꼼꼼히 훑어 보았다.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있던 ‘이기적’이란 말의 쓰임새를, 나는 천천히 복기하며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단 한 번도 이기적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딱 한 번, 그에게 성적인 불만이 있었을 때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을 발견했다. 그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무관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B 외에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삼갔고, 예전처럼 실연이나 이별 같은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방법도 하지 않았다. 남의 해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타인의 성, 그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 혼자서 해결해 볼 도리가 없었다. 권태기라는 말을 검색했고, 그러나 무수히 많은 권태기의 해답은 섹스토이와 질 수축 수술 따위로 수렴했다. 그럴싸한 대답도 있었다. 권태기는 잘 극복하면 권태기로 기억되는 거예요. 현명하게 넘어가지 못한다면 그냥 끝나는 거구요. 나는 그와의 성적 긴장감을 되찾을 방법을 생각해보았고, 다짐과 포부의 대사도 준비해두었다.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 이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그가 설득될 것임을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견디는 것은 계속되어야 했다. 아직 음악을 들을 기분은 못되었다. 아니, 그것이 혹시 나를 위로할까 봐 듣지 못했다. 나는 Ambience라고 이름 붙인 핑크 노이즈를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앨범이 끝나자 앤드루 골드의 「Lonely Boy」가 흘러나왔다.


    - 그는 1951년 여름에 태어났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자신들이 배운 걸 가르치고, 따뜻하게 입히고, 학교에 보낼 것이라 말했네.

    - 1953년, 그의 엄마는 여동생을 데려왔네. 우리는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해, 그녀는 너보다 어리니까. 그는 뛰쳐나가 울어버렸네. 어떻게 부모님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 Only son이라고 했었잖아.

    - 1969년 겨울, 그는 집을 떠났네. 어린 시절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서. 여동생은 자라 결혼을 했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가졌네. 그들은 아이를 따뜻하게 입히고, 학교에 보냈네.


    「Lonely Boy」는 앤드루 골드의 자전적인 노래라 청자 다수가 추측했으나 (그의 연대기와 가사는 모두 들어맞았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 딱 잘라 말했던 그의 대표곡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고, 이 노래의 가사를 처음 보았을 때 살짝 울뻔한 기분이 된 적이 있었다.

    앤드루 골드가 심장마비로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엄마보다 나이가 많고, 아버지보다 어린 이 가수가 돌연 죽었다는 사실이 안도감과 두려움을 함께 주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웃음이 날뻔한 기분이 되기도 했는데, 소년의 질투, 그리고 시간은 흘러 또다시 아이는 태어나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위안이 섞인 헛웃음이 나게 했다. 나는 도저히 음악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음에도, 이 노래만은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다.


    B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난 목요일 내가 먼저 연락하겠다고 약속해 두고서 3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그가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다.

    괜찮수꽈?

    하는 평소에 쓰지 않는 말투로 짐작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내게 문자를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B와 그에 대한 몇 마디 말을 나누다 곧 있을 공모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그와의 일을 글로 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와 페이스북 친구를 끊을 것이며 나는 백지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몽 자베스의 작가의 고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뭐랄까, 난 외도하고 지쳐서 돌아오길 바라는 거고. 얜 아무런 해방구가 없었으니까. 게이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랑 처음으로 사귄 거니까 그냥 답답했을 것 같아. 그러다가 진짜 좋다는 사람 생기면 그냥 끝내면 되는 거고. 내 최선은 이랬어. 좀 더 같이 지내면서 지켜보는 게 어떨까 하는 걸로. 나 돌은 거냐?

    B가 말했다.

    아냐.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지고,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것 같고. 아 근데 그냥 좀 속상하다. 떠난 사람 붙잡지 말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우리 엄마가 그랬나. 몰라 ㅋㅋㅋㅋㅋ

    뭔가 우리 엄마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니미 모자가 쌍으로 남자 때문에 박복하네 ㅋㅋㅋㅋㅋ 엄마의 사랑은 위대해, 계속 이 생각이 들어. 예전엔 자기애 쩔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병신같이 사니까 내가 끔찍하다.

    계속 그럴 거야. 계속 그렇지 않을까? 사랑했다가 헤어졌다가

    응 그럴듯해

    또 사랑했다가

    응 맞아

    아 넘 무서워. 싫다.

    끔찍하게 피곤해


    나는 문득 우리의 대화가 합평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

    10시가 조금 넘어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솔드아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샤워를 하고 난 뒤, 나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컴퓨터에 가 앉았다. 게임을 하려는 것 같았다.

    생각은 좀 해봤어? 그래서 네 기분은 어때?

    그를 다시 마주하자, 나는 도무지 그가 어리석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어졌다. 일방적인 통보는 예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여전한 단답형의 대답은 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사랑에 문맹이 있다면 그였고, 배우지 못한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달래는 말투로 회유하기도 했고, 그러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질타를 하기도 했다. 좋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 그 시절의 감정, 그리고 그가 아직 모르고 있는 감정의 종류에 대해 낱낱이 설명해주었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한 것처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내 말을 듣는 것이 최선이라고 다그쳤다. 너는 몰라. 넌 몰라.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느낄 때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니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나보다 더 잘 아니까. 근데, 그렇다고 내 마음이 변할 것 같지는 않네.


    -

    그날 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내가 동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방법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시작하려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해줄 수 있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화해의 뜻으로 나는 그를 끌어안았고, 그러나 내가 그의 입에 입맞춤하려 했을 때, 그는 고개를 돌렸다.

    다음 날 아침,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나는 그를 배웅하면서, 그와의 관계가 머지않아 끝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것은 잠재태에 불과했지만 서서히 굳어 사실이 될 것이었다. 그와의 사랑은 끝났고, 끝나 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담담하게 찾아와버리는 것에 맥이 풀렸다.


    술을 먹고 합평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 책장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꽂혀 있었고, 바로 그 옆자리에 마르케스의 『사랑의 오류』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 책의 제목을 메모해두었다.

    미완의 작품 두 개를 보았다. 끝나지 않은 글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해 줄 말이 없었기에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인상비평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때웠다. 수업을 마치고 나왔을 때 비는 꾸준하게 내리고 있었다.

    호감을 갖고 있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선배와 담배를 피웠다. 서로의 글에 대해 칭찬을 했고, 소설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구김살이 없어 보이고, 잘 웃는 그 선배를 동경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병행하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것은 여자들, 관습법상의 여자들, 모든 여성적인 것에 가지는 존경심과 그럼에도 그녀는 제도 속에 살고 있다는 부러움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집어 선배에게 빌려주었다.

    그녀가 떠나고, 언젠가 필사해둔 적이 있는 그 책의 마지막 몇 페이지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 이제는 글을 써야지,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 메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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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들」


    시험은 어땠어? 하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며칠 전 논문심사에서 털리지만 않았다면, 마음 추스를 시간에 공부를 했다면 다 맞을 것이었다고 대답한다. 상경하는 기차에서 몇 장 봐두었던 조직론에서 많은 문제가 나왔고, 이렇게 쉬울지 몰랐다고 덧붙인다. 그러니까 결론은, 쉬웠으니까 안 되겠지.

    “이번 주 일요일은 농협이다. 민족은행 농협, 사랑합니다!” 그녀가 표정을 바꾸며 말한다.

    취업시즌이 다가오면 나는 시험을 치러 오는 친구들을 맞이한다. 그들은 모두 한때 나의 동기였던 사람들이다. 서면이나 부산대 앞이 아닌 종로, 광화문, 홍대 앞을 함께 걷고 있노라면 몹시 비현실적인 기분이 되곤 한다. 나는 ‘서울’이라는 일상의 공간에 마주하는 사람이 바뀌어 있고, 친구는 ‘나’라는 익숙한 사람에 공간이 바뀌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대담해지거나, 사치스러워지거나, 수위가 높은 험담을 나눈다.

    오늘은 홍대로 정했다. 정오의 합정은 한산하고, 나는 주상복합 쇼핑몰로 친구를 끌고 간다.

    “여기가 메세나폴리스다. 근데 조만간 가든 파이브 꼴 날 것 같다. 니 탑 텐 가본 적 있나? 이번에 새로 생긴 스파 브랜든데 요새 나온 것 중에 젤 괜찮디.”

    “부산에 스파오까지는 생겼는데 저거는 처음 본다.”

    “맞나? 근데 여기서 쇼핑하는 건 좀 그렇다. 이따가 딴 매장 가보자.”

    메세나폴리스 앞,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사람 앞을 지나며 나는 홈플러스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그것은 홈에버로, 이랜드로, 이랜드 계열로, 그래서 걘 어디에 취직했대? 하는 이야기로 옮겨간다. 우리는 카페와 이국의 음식점이 들어선 거리를 걷는다. 친구는 스튜 가게와 짬뽕 카페를 저울질하다 후자를 택한다. 나는 서울말로 주문을 하고, 종업원이 자리를 뜨자 그녀는 곧바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우리의 대화는 사방으로 튄다. 그러나 미래와 잡Job이라는 일정한 자기장 속으로 이내 모여든다. 나는 그/그녀들의 세계에서 도망친 것을 무척 뿌듯해 하면서도, 하나둘 안정적이 되어가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아주 잠시 진심으로 후회한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조교 일 하는 거 99만 원 준단다. 그래도 그거라도 하면서 글 쓰고 해야지 뭐 우짜겠노.”

    우리는 서로의 불행이나 불안을 경쟁하고 웃고 위로하고 떠든다. 그것은 우습게도 퍽 즐거운 일이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상상마당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맞은편 탑 텐 매장으로 들어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살짝 더 비싼 생일 선물을 그녀에게 건넨다. 친구가 미소 지으며 투자냐고 물어온다. 탄력을 받은 우리는 와이즈 파크에 들어가 믹쏘와 유니클로와 원더 플레이스를 둘러보고, 내친김에 애프터 에이랜드까지 들어간다.

    농협 화이팅! 신춘문예 화이팅! 그녀는 나와 광화문 트윈타워에서 산 커피를 손에 쥐고 서울역에서 헤어진다. 친구의 배웅을 끝내고 나는 공항선을 타고 공덕으로 간다. 그리고 플랫폼을 서성이며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그는 피곤하고 잘생긴 얼굴을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고, 우리는 홍대로 향한다. 오늘따라 카페 룰루랄라에는 사람이 만원이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오늘 만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내렸다 그쳤다 하던 비가 이제는 꾸준하게 쏟아진다.

    나는 마주 앉은 애인을, 영화와 책은 물론 취미랄 것도 없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난여름 우리는 “서울에서 함께 살아남기”라는 목표를 정했다. 나는 서울을 떠날 수 없고, 내가 떠날 수 없기에 그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나는 세속적인 욕망을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문화 예술적-지적 허영의 인프라를 아직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다고 말해온 터였다. 나의 길티 플레져인 이 아름답고 천박한 도시에는 무언가가 있다고, 또 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있다.

    나는 그를 만나고 난 이후로 글을 쓰기보다 그저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점점 나이브해지는 나의 모습에 “삶은 예술보다 언제나 큰 법이지.” 와 같은 말로 행복한 삶이 더 우선이라 자위해보기도 한다. 욕심을 부려가며 이만큼 배웠으면 되는 거 아닐까? 고급독자, 아니 예술이라는 게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자문은 수도 없이 해보았다. 한편, “불행한 삶을 사는 대신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갖길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하는 문학 선생님의 말에 망설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던 예전의 나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몇 년간 같이 습작을 해온 친구가 이런 말을 해온 적이 있다. “우리가 예술이랍시고 하는 거, 그거 면봉이나 이쑤시개 만드는 것보다 하등 세상에 쓸모없는 일일지도 몰라.” 나는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고,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내팽개치고 우리를 더 불행한 사람으로 포장할 것들을 끌어왔다. 그러나 그 친구도 나도 안다. 우리가 모든 기회비용을 내팽개치고 몰두한 비생산적인 공부와 창작활동이 무엇보다 좋은 것이라는 걸.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지도 못하고, 내어놓은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고 만들고, 글을 쓰는 행위가 이제는 삶을 살아가는 한 수행방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아주 저렴한 비용에 행복해질 방법을 아는 사람일지도.

    그와 헤어지고 도서관 6번 자리에 돌아와 워드 창을 켠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오늘 친구와 만나 떠올려 본, 혹시 나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타인의 미래를 생각한다. 또 애써 경멸하는 미래들과 진심으로 동경하는 미래를, 정말이지 도래해버릴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잠시, 그와 함께 쿠마라는 이름을 지어준 시바견을 끌고 산책에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나의 미래도 상상해본다. 재미있는 것은 그 모든 가능한 미래에 영화와 문학이 없는 순간은 없다는 것이다. 끔찍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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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가 졸업을 하게 된 2012년 겨울부터 2013년 겨울까지, 취업을 위한 혹은 대학원 입학을 위한 자기소개서였다. 기업의 성향에 따라 그는 그녀로 바뀌기도 했으며, 시즌에 따라 신춘문예는 공모전이라는 단어로 교체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와 함께 살게 되었고, 조교 생활을 시작하고 끝냈고, 쿠마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마지막 문단은 고친 적이 없었기에 때때로 이 글은 거짓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미래는 또 도래하여, 이제 저 글은 거짓말도 상상도 과거도 아닌 이상한 양태의 글이 되어버렸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그가 없는 미래가 정말로 와 버렸다. 그가 없는 내 삶에 대해, 그가 없는 채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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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밤, 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를 보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모든 출연진이 등장하는 롱테이크 스테디캠 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죽은 인물은 초상화로 대체되어 있었다). 나는 『매그놀리아』에서도 감독 특유의 스테디 캠 씬을 본 적이 있었고, 촬영 기법과 동선의 계산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날 밤 『부기 나이트』를 보았을 때 내 눈에 들어와 박힌 것은, 롱테이크 스테디캠 씬은 이어져 있음, 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관계가, 그리고 각자의 삶이, 생이, 이렇게나 이어져 있다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사실에 감탄하면서도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어져 있다는 그의 생각이, 연출이, 테크닉이, 어쩌면 젊은 감독의 간절한 기원, 혹은 어리석은 기대에 가깝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글을 쓰며, 그와의 기억을 되살리려 해도 그것은 파편으로만 떠돌 뿐 나는 그 어떤 것도 이어붙일 수 없었다. 그를, 그와의 사랑을, 적어도 나의 감정만이라도 박제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변해가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운동을 하고, 제 모습을 바꾸고, 가끔씩 그때와 꼭 같은 모습을 보이고는 얼른 달아나 버렸다. 하나로 이어져 있던—심정적으로든, 연대기적으로든—그와의 관계와 시간과 공간은 이제는 이어붙일 수 없을 만큼 멀리 흩어져 버렸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아주 낯선 시간 속으로 불꽃이 폭발하듯 흩날아가 버렸고, 불티처럼 사라져버렸고, 이제 그 시간은 심리적 거리감이 아닌 물리적, 공간적 거리가 되어버렸다. 그와 헤어진 이후 내게 들어맞는 문법은 점프 컷이었다. 그와의 시간도, 내 일상도, 내 기억도 오히려 점프 컷이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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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한편의 이어진 글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보지만, 모든 것은 조각조각 나 버리고, 이음매는 그대로 드러나 버린다. 왜 나는 이 글을 쓰려 했으며, 왜 이러한 형태의 글을 쓰려 했는지 불가해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형식은 꼭 산문이어야만 했다. 내가 산문을 쓰겠다는 마음가짐은, 이 글을 산문으로 쓰리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몹시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의 단절. 내가 시간의 단절, 이라는 단어를 쓰고 다음 문장이 이어지기까지의 공백을 알 수 없듯, 영화의 컷과 컷 사이 얼마나 많은 시간의 단절이 있을지 짐작할 수 없듯. 그러나 시공간적인 틈은 매끄럽게 포장되고 이음매는 재단되어 이렇게 한 문장, 한 문단을 이룬다. 그 사이의 공백을, 거리를 아무도 모르고, 나도 당신의 것을 모른다. 이 문장과 저 문장을 쓰기까지 몇 시간이, 며칠이 지났을지 짐작이 가능할까? 그 거리감과 공백을, 내가 느끼는 허탈감과 지독한 고독을 그는 모르듯, 나도 그의 것을 모르고, 당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지금을 나는 모른다. 는 사실은 나를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어쩌면 이 문장은 또 매끄럽게 이어져 있고, 매끄럽게 읽히고, 우 리는 가 끔 이 어 져 있 기도 하고, 당신은 이어주었고, 나도 다시금 힘을 내어 잇기를 계속한다. 나의 글쓰기만큼 내밀한 사랑을 당신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의 사랑만큼 내밀한 글쓰기를 당신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고, 시작되고, 어느 순간 이어져 있음을 기뻐하다 다시 끊어졌다, 이으려 하고, 우리는 이어질까? 이어지게 될까? 당신과 나는 이어지게 될까? 당신과 내가 이어져 있음을, 이어져 있었음을, 그 환희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하고 글을 쓴다. 그를 쓴다. 사랑하고 있음을, 이야기가 된다는 내밀한 확신에서 오는 희열을 나는 버리지 못하고, 그 어리석음, 단절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나는, 모든 것을 잇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여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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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0일 거창은 더웠다.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5월 31일 경산은 더웠다.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라고 써둔 메모를 옮긴다.

    6월 2일 서울은 비가 내렸고,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는 말을 덧붙인다.


    수많은 다른 날씨들이 파동하면서, 끊어진 듯 계절이 되고, 그것은 이어져 있으며 순환한다는 믿음. 이제 곧 여름이 될 거야, 그것이 주는 안도감들. 너는 아직 살아있어, 삶은 계속될 거야, 너는 죽지 않을 거야 하고 말해주는 기상과 기후들.

    오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그와의 사랑이 끝났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다가올 급작스러운 이별들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는 문장을 끝으로, 이 글의 제목은 여름의 시작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러나 또 이어진다.


    6월 2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는 그쳤고, 엄마가 생활비를 부쳐주었다.

    6월 3일 날씨는 화창했고, 아버지는 자신의 연인과 서울대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왔으나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는 말도 덧붙인다.

    그 날은 앤드루 골드의 3주기이기도 했다, 는 말을 첨언한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고, 또다시 불안해지는 마음이 이어진다.


    -

    수요일 밤, 나는 그와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요즘 기분이 어떠니. 넌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니. 넌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니. 넌 복 받은 줄 알아야 해. 넌 좋은 사람을 만났고, 걷어찰 기회까지 가졌지. 넌 나한테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할 자격은 없어. 그건 니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야. 넌 친구도 가지길 원하고 연인도 있었으면 한댔지. 그 이기심에 눈곱만큼도 도움 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난 너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

    하지만, 나는 니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고, 내가 친구가 될 수 있길 기도해.

    그는 알겠다, 는 짧은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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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기 나이트』에서 아내의 부정을 참다못한 리틀 빌은 1980년 0시가 되는 순간 아내를 총으로 쏘아버리고 자살을 한다. 그리고 2년 뒤 『매그놀리아』에서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겐 줄 사랑이 많아, 하고 말하는 어리석은 게이 도니 스미스 역을 맡는다. 『부기 나이트』에서 주인공 더크 디글러를 좋아하는 스코티, 동성애자 스코티 역을 맡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디글러의 무리에서 유일하게 마약을 하지 않지만, 2014년 2월 약물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와 나는 처음부터 연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랬기에, 그가 원하는 친구가 되어주는 일은 리틀 빌과 도니 스미스만큼이나, 스코티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만큼이나 동떨어진 일인 것만 같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런 관계를 그려보는 것이 나에겐 생경하기만 한 일이다.

    그는, 그리고 나는, 이제 친구의 역할 뿐 아니라 다른 배역도 맡아야 할 것이다. 협소한 마켓에 우리를 전시하고, 잠시 동물이 되었다가, 내 몸 전체가 성기가 되어버린 듯, 성기만 있는 듯 섹스를 하고,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정액을 삼키기도 하고, 그러고는 살짝 인간이 되었다가, 상대가 동물이 되는 것은 용서할 수 있고, 동물이 되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를 감수하고 또 다른 사랑을, 나를 인정해줄 사람을 찾아 세이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절대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벌써 피로감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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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레이져와 앤드루 골드의 노래만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이레이져의 「A little respect」는 드라마 『Looking』에서 주인공 패트릭과 리치가 클럽에서 만나 사랑에 빠질 때 흘러나오던 노래였다. 둘은 만취해서 서로를 유혹하고, 몸을 비비고, 엉터리 말들을 늘어놓다가 첫 섹스를 시도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만나고, 또다시 헤어졌으며, 1시즌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둘은 다시 또 만난다.

    리치는 너를 사랑하기 바로 직전이라고 패트릭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과는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리치에게 상처를 받았던 패트릭은 내던지듯, 자신을 유혹하는 상사와 섹스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패트릭은 운다. 그리고 둘은 입을 맞춘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채로 화면은 암전된다. 암전되면, 앤드루 골드의 「Thank you for being a friend」가 흘러나온다. 이렇게 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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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시작할 때 모든 것이 그로 수렴했듯, 사랑이 끝나가는 지금도 그를 생각하는 에너지는 최고조로 치닫는다.

    그와의 사랑이 끝났다고 예감했을 때서야 비로소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쓰지 못하는 시간도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를 차갑게 식혀야 했고 동시에 그를 다시 한 번 사랑해야만 했다. 그를 사랑하지 않으려는 나를 믿을 수 없었고, 그를 포기하려는 마음을 끊임없이 지연시켜야만 했다.

    글쓰기에 있어 거리감의 상실이 언젠가 나를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 것이란 두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정념에 휩싸이지 않고서는 글을 썼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고, 정염 없이는 시작할 수조차 없었다. 헤퍼지지 않고서는 도무지 버티질 못했다.

    나는 하나도 미니멀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나는 경제적 인물이 아니며, 아무런 재화를 창출하지 못한다. 사치와 낭비를 억제하지 못하고, 내 감정도 절제하지 못한다. 이 글을 쓰며 내가 행동한 일이라고는 그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하고, 떠올리고 그것을 잇는 것이 거의 다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는 진짜였다.


    지난 일주일, 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조금씩 세련되어진 우리는 쉽게 위로 같은 것을 하지 않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나조차 나를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그 누구의 글도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이, 쓸 수 있다는 사실만이, 하얀 화면에 쌓여가는 글만이, 정말이지 아주 조금 나를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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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이야기, 그와 나 사이의 유행어와 의성어와 의태어는 이제 사어가 될 것이다. 그에게 나의 옷을 입혀놓고 기뻐하는 일도 이제는 없을 것이다. 그와 입을 맞추고, 그의 수염에 찔리고, 내 수염을 긁으면서 깨닫는. 아,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이지, 하고 느끼는 은밀한 쾌감. 그것을 다시 느끼는 일도 이제는 없을 것이다.

    글쓰기와 사랑은 용기를 필요로 했고,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와의 사랑이 끝난 지금, 끝나가는 지금, 나는 반쯤 용기를 잃었다.



    환상교차로

    여름, 비 오는 날의 아침을 꿈꾼다. 그것은 완전히 유년의 기억은 아닌, 적어도 10대 초반 무렵 보았을—정말로? 꿈으로?—것으로, …그리하여 나는 언제나 비 오는 여름날의 아침을 꿈꾸고 만다. 그러나 왜 ‘만다’고 말하게 되는 것인지. 이 여름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것이 거짓이라는 생각에, 나의 기억이 아닐 것이라는 초조함에 부끄러워지고, 환상이리란 은밀한 암시에 그만, 이제는 그만두어야지 되뇌면서도 여름, 비 오는 날, 아침, 무엇보다 흐린 날의 어둡고도 밝은 잿빛 하늘과 구름 그림자에 깔려 어둑해진 풍경, 그러나 몹시도 선명한 사물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정원 혹은 마당을 나는 본다. 눈앞의 정원에 시시오도시鹿威し는 없고,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것이 있었다면, 있어버렸다면, 나는 이 풍경을 오롯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라 인정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 풍경 이전의 여름은 생각해볼 수조차 없어. 아예 나에겐 여름이 없었다고 여겨질 정도로, 그 이전을 떠올려보는 일은 내 능력 밖의 일인 것만 같다. 나는 지금 이 여름날의 아침을 떠올림이 그 어떤 이물의 침입 없이 이루어진 것이기를, 떠올림의 기원이(기원의 떠올림은 아닌) 순수한 것이기를 이상하리만치 간절히 바란다. 겨울에 여름을 기원하는 것이 아닌, 여름 속에서 여름을 기원하는 그런 것은 아닌. 혹은 ‘여름’이라는 단어만으로 그려지는, 보이는, 환영일, 억측한 회고들 따위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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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림을 보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밀림이다. 그저 빽빽한 숲, 거의 균등한 거리로 떨어져 자란 편백나무—자연의 우연은 언제나 이리도 자연스러운지!—가 있는. 우듬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숲은 무성하지만, 눈높이의 시야는 밑줄기들 사이사이로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치 트여있어 갑갑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해는 높이 떠 있을 거야. 새소리는 잦아든 걸 테지. 소리도 빛도 요란함 없는 가운데, 이제는 낡아 썩고, 언젠가의 태풍에 카사기笠木 왼쪽 귀퉁이가 날아가 버린, 이끼와 버섯조차 살지 못하는 도리이鳥居가 있다. 그저 오랜 동안 버려진 밀림, 혹은 오랜 동안 공동으로 여겨진 밀림. 드러난 피부에 아주 살짝 습기가 느껴지고, 아니, 그것은 극도로 차분한 곳에서나 간신히 느낄 수 있는 향기의 입자(라고 느껴지는 습기), 도리이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 보아도 정글 따위가 아닌, 차라리 건조한 밀림을 나는 보고 있다.

    이게 내 여름의 시작이야.

    나는 나에게 말했으나 믿어주지 않았다.

    경역 없는 밀림, 그러나 나만의 변경邊境. 변경에 댈 수도 없을 내 세계의 끝 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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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 이전, 모든 것이 지루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구체적인 인물도 사물도 없이 오직 감정만이 나에게 남아있다.


    ennui [ãnui]

    1. 권태, 지겨움, 지루함, 갑갑함

    2. 걱정, 근심, 귀찮은 일, 골치 아픈 일, 난처한 일

    3. 고장, 장애

    4. 우수, 우울

    5. [옛] 비통, 비탄


    권태라는 감정은 필연적으로 남자(들)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후각적이다.

    석유난로가 타오르며 실내를 가득 채우는 냄새, 자동차 배기가스 냄새, 볕을 받아 뜨거워지는 모과의 향기, 공중목욕탕 하수구 냄새, 아버지의 뺨에서 나는 스킨 브레이서의 향기. 아버지의 스킨은 엄마의 화장대 위에 놓여 있었고, 압생트처럼 투명하고 찰랑이는 스킨 브레이서의 인위적인 초록은 차밍 샴푸의 초록과도 닮았다.

    그러나 차밍 샴푸는 엄마의 것, 엄마의 샴푸 옆에는 에바스 샴바드—그린 애플 부케향—가 언제나 함께 있었지. 지나치게 작은 구름 같은 얼룩이 박힌 하늘색 모자이크 타일, 그리고 욕조. 그곳에서 엄마는 담배를 피웠지만 아무도 그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욕조와 타일만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형과 함께 오줌을 누었던 기억인데, 그건 아마 나도 놀랄 만큼 아주 오랫동안, 형보다 더욱 오래 누었다는 야릇한 승리감에 도취된 때문이거나 내가 처음으로 본, 보았다고 여겨지는 남성기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 욕조에 대한 기억을 나는 훗날 처음으로 사귀게 된 남자의 집 화장실에서 마주한다. 변기 물탱크 위에 놓여있던 알로에 수딩젤, 색깔은 달랐음에도 같은 질감의 타일, 온수와 냉수 꼭지가 따로 있던 좌식 샤워기가 환기한 나의 옛집. 나는 옛집을 떠올리며, 그 남자의 집을 나의 집인 양 가꾸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의심을 하게 된다. 과연 스킨 브레이서가 엄마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게 맞던가? 그것은 확실히 그곳에 놓여있었음에도, 사후적으로, 아무래도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본 기억이 없기에 그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나? 하는 모순.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마도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릴 테고, 또 그 기억이 정확하리라는 보장도 없으며,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생각해야지, 그러다 아버지는 나의 옛집을 숙소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에 전화하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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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망가는/사라지는 여자들

    - 다방

    - 도시의 축제; 전야제와 불꽃놀이


    여러 이유로 쓰기를 그만두거나 실패하게 된 것들이다. 잘 알지 못하거나, 더 이상 기억해내지 못하거나, 나의 기억만으로 구성할 수 없거나, 너무 사소한 것이기에 파편적인 사실 그 이상으로 확장할 수 없거나, 누군가에 의해 기억을 부정당하거나(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테지만), 흥미를 잃었거나 하는 이유에서였다.

    쓰이지 못한 저 화제들은 구체성을 띠고 있을 뿐, 유년과 도시라는 단어 아래 모두 수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또한 나의 눈에는 여성적인 것들의 모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유년의 도시는 몹시 여성적인 공간으로,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남성, 아버지와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그곳이 군사도시로 기능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나는 도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어쩌면 생각만으로만—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옛집에 살던 시절, 기억이라는 것을 해낼 수 있는 역행의 마지노선을 전후로 엄마에 대한 기억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다는 사실에 최근 나는 몹시 놀랐다. 옛집에서, 그리고 그 후로도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의 등장은 언제나 클랙슨 소리로 시작되었다. 자동차는 바뀌어도 호른의 솔sol음을 내는 소리만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는 가끔 옛집으로 올 때면, 제일 먼저 내 정수리 냄새를 맡았다. 인상을 찡그리거나, 아쉽게도 냄새가 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자신은 한 적이 없다는 듯 딴 곳을 바라보며 휘네스 담배를 꺼내 피웠다. 나는 묻는 말에만 대답했고, 피아노로 가 「선구자」를 쳐 보이거나 엄마?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때때로 진열장으로 다가가서는 얇은 유리여닫이문을 열고, 언젠가 내가 대학에 가면 따겠다는 호시카부토星兜를 쓴 무사 장식의 닛카 위스키를 매만지다 그러고는 나가버렸다. 옛집에서, 아버지의 등장은 언제나 갑작스러웠고 퇴장은 매가리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간 아버지는 필경 로터리의 몇 시쯤에 있었을 것이다.

    한 시 방향의 경찰서, 하얀 세석이 촘촘하게 박힌 테라조 바닥 어두운 복도 끝의 조사계, 경찰서 뒤편의 이오 다방으로 들어갔거나, 아홉 시 방향의 표구사에 들어가 포커를 치거나 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후생 이용원에 들러 음란하게 못생긴 아줌마에게 면도를 받거나, 세시 방향에서 한 블록을 더 가면 있던 터미널, 구舊터미널 1층 도장집으로 가 목발을 짚고 다니는 종진이 아저씨를 만나 커피를 시켜먹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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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픽션의 부끄러움과 곤란함.

    오토픽션을 쓸 때의 부끄러움은 사생활이라 여겨지는 나의 내밀한 삶과 생각을 밝히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실된 문장과 이야기인지, 어떠한 감정을 추출하고 획득해내기 위한(나와 독자에게 모두) 작위가 없었는지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꾸밈을 유혹을 받는 데서 오는, 혹은 필연적인 착오를 무릅써야 한다는 한계에서 생기는 부끄러움이다. 또 언제나 문학과 남자로 수렴되고 마는 나의 편협함에서 생기는 가벼운 수치심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글 읽기/쓰기와 남자, 절대 끊을 수 없는 것.)

    오토픽션의 곤란함은 부끄러움과 그리 멀지 않다. 더 좋은 질료로 더 나은 가공을 할 수 있음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야 하는 피로함, 혹은 질료를 가공할 수 없다면 더 좋은 질료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 속의 무언가가, 내가, 기억될/할 만한 글의 질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의 곤란함이다. 다시 말해 쓰일 수 있을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이러한 엄격은 내 사전상의 오토픽션으로 자전적 글쓰기의 스펙트럼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다양하고 첨예하다. 한편, 소설에서 Auto와 Fiction은 정도의 차이일 뿐, 때로는 모든 글이 나에겐 오토픽션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쓰기에 Auto, 내가 ‘쓰기’에 Fiction.

    전적으로 나에 기대어, 나를 재료 삼아 쓰는 글쓰기, 나를 모르는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배타성, 그 배타적임으로 생기는 내밀함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때로는 한계를 벗어난 곳에서 설명 없이 설명되기를, 오해로 이해되기를.

    나는 명백하게 나이지만 나는 나와 관계없다,

    는 아슬아슬하고 은밀한 줄타기가 나는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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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2. 22

    설 연휴가 끝나고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옛 노래, 가급적 단조의 노래를 찾고 있었다. 이제는 고향으로 가더라도 느낄 수 없는 찾을 수 없는 편안함을, 거기에서조차 채워지지 않는 상실의 감정을 음악으로 대신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옛집을 떠난 이후 모든 곳이 나에겐 숙소였다. 내가 떠난 나의 집 역시 엄마에게는 점차로 숙소가 되어갔다. 삶을 유지하는 데에만 쓰일 필수품; 장롱, 화장대, 색공간이 뒤틀려버린 아남 브라운관 TV, 가스레인지, 의자는 없는 식탁, 세탁기, 빨래 건조대. 주인집에서 보수를 하며 새로 단 출입문의 스테인드 글라스만이 오직 이 집에 존재하는 장식적인 요소였다. 문이 잠기지 않는 화장실, 프린팅이 뜨고 희멀건해진 곰돌이 푸 세숫대야, 비린내가 나는 옷을 삶기 위한 양은 들통, 재떨이가 되어버린 화분 받침, 십여 년 전 내가 부순 나무 방문과 거기에 덧댄 노란 테이프.

    단출하다, 고 말해버리기엔 서글픈 그곳은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이런 구질구질한 것들을 나에게 보여주어 자신이 희생하고 있음을, 색채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집과 자신의 인생을 호소하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져 얼른 이 집을 떠나 원룸으로 가고 싶어, 그렇게 된다면 이 무겁고 어둡고 칙칙한 가구는 모두 버려버릴 거야, 그래 내가 가구를 주문해서 조립해 줄게, 하고 말한 지도 3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 누구의 집도 아닌, 집도 아닌 집을 뒤로하고, 무시하고, 엄마의 볼에 입맞춤하고, 양손에 음식을 가득 채운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경북 어딘가쯤에서는 그곳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휩싸이고, 해 질 녘 양재의 현기차 건물을 보면 거의 고향에 왔다고 생각하며 안심해버리는 상경행.

    책과 옷이 가득한 지금 나의 집—그러나 그곳 역시 도저히 나의 집이라고는 할 수 없겠는—으로 가면서, 버스는 북을 향하고 있지만 조금은 뒤돌아서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러진 않을 것이기에, 그럴 수 없기에 찾게 되는 음악, 나는 그날 버스 안에서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의 음악을 재생했다. 음악이 끝나고 나는 여운을 잇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해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고, 1985년이라는 익숙한 숫자에 이끌려 그녀의 일본 레코드 대상 무대를 보게 되었다.

    영상이 끝나고, 문득 『옛날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생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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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stalgia

    νóστος (nóstos) : (집으로) 되돌아가는 일

    äλγος (álgos) : 고통


    되돌아가지 못하는 고통을 노스탤지어라 말할 수 있겠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노스탤지어를 채워주는 행위는 이제 나에게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또 그것을 채워주는 행위가 채우기는 하는 것인지, 더욱 허기지게 하는 것인지, 혹은 더욱 허기지게 만들려는 욕망인지도 이제는 알 수 없다. 거의 중독.

    유년의 노스탤지어를 소환하는 방법도 음악을 찾는 이유와 방식도 바뀌어 그 시절에 들었던 음악을 듣는다거나, 유년에 가까운 시기에 들었던—방아쇠가 되어 더욱 과거로 가게 하는—것을 듣는다거나 하진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시절에는 듣지도 않았을, 그 노래를 알지도 못하던 시절,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가사의 1985년과 1992년 사이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

    도시의 풍경은 일본과 구별할 수 없었고, 도시의 이름이 사라진 이후 점차 도시는 한국이 되어 갔다. 한국은 내 과거가 아니야. 찾을 수 없는 과거를 기원하는 대신, 나는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일본에 대해 내가 가진 막연한 이미지는—진열장에 꽂혀있던, 교육출판공사에서 나온—세계의 여행 전집 『일본/동남아시아 편』에서 기인한 것과 기억 속 유년의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하나 나에게 비슷한 기쁨을 주는 것으로 마리오 테스티노의 사진 『Ipanema Beach』가 있다. 그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계의 여행에 실린 일본 사진의 색감과 비슷하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노스텔지어는 기억처럼 생겼지만, 기억과는 정반대의, 이미 상실한 것의 되찾을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심지어 기억과 적대적이다. (그러나 기억은 꼭 되찾을 수 있는 것이던가?) 내가 나카모리 아키나의 노래를 들으며 무언가를 되찾았다, 채워졌다 느끼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기억 찾기를 그만두고, 그것에 만족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 안락함과 충만함 속에서 멈추고자 하는 체념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채워져야 하고, 거짓된 외양을 띠고 있더라도 나는 멈출 수 없으며 어느 순간 괘념치 않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나의 작업은 기억을 찾는 일인가? 노스탤지어를 즐기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기억의 노스탤지어를 나는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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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봄, 수업에서 읽기 시작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야말로 옛날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키냐르의 『옛날에 대하여』에서도, 뷔토르의 『변경』에서도, 아니 눈앞의 모든 것들이 이미 내가 생각하는 과거로, 옛날로, 옛날 사람들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로, 내가 몰두해야 할 것은 시제, 새로운 시제를 생각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시제를 만들어내거나, 아오리스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그것—밝힐 수 없는—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렀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 잠을 줄이고 싶었고 깨어 있는 동안은 절대 졸지 않았다. 거의 시간은 사라졌다. 시간은 없었고, 온도와 계절감만으로 어렴풋이 확인가능한 흐름 속에서 나의 일상은 그야말로 충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공포에 휩싸여, 써야 할 지금이 써야 할 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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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제목을 소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글의 처음과 끝만을 가지고 있었다. 돌연한 시작과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찾아온 끝. 시작과 끝만으로, 그 두 개만으로, 두 개의 감정으로 이미지로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것을 산문으로 써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사이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이러한 글쓰기의 요구가 찾아왔을 때, 어떠한 형식으로, 무엇으로 그 사이를 채울 것인지는 글쓴이마다 모두 다를 것이나 나는 그것을 산문으로, 나로 채우려 했고, 채워야 했다. 산문을 써야 한다, 는 당위의 모습을 한 의지와 내가 되어야 한다, 는 무두무미. 산문과 나 역시 그 어떤 인과와 당위도 없지만, 나는 또 한 번 서로가 서로를 보증한다는, 해주기를, 착란에 가까운 기원에 기대어버린다. 나는 어찌도 이렇게까지 나인가, 어쩜 이렇게 또 나인가.

    그러나 좋은 글과 좋은 사람과 좋은 수업으로 보냈던 시간들, 무탈하기 그지없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충만함으로 텅 비어버렸고, 조금이라도 흘려놓은 나의 흔적을 찾으려 온갖 곳을 뒤져보았지만 쓰일 만한, 쓰일 수 있는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없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그럼에도 언제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떠한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배반당하더라도 남을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예감하기에, 그렇다면 나는 나를 최대한 멋지게 배반해주길. 인과에 기대면서도 인과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 그러니까 나카모리 아키나, 언제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러니까’.


    -

    시작할까요?

    시작해요.

    쥐색 양복을 입은 남자는 함께 사회를 보는 여자의 거의 몸통만 한, 반으로 쪼개진 모형 야구공을 들추어 올린다. 여자는 그곳에서 카드를 꺼내,

    발표합니다. 1985년 제27회 일본 레코드 대상은 나카모리 아키나씨의 「미 아모레Meu Amor E」로 결정되었습니다.

    아키나는 와인색 비로드 투피스—엉덩이를 가릴 정도로 긴 재킷의 아랫단은 검은 망사로 치렁대고—차림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인다. 무대에 올라서서도 이게 다 무엇이람, 왜 이 사람들이 나에게 상패와 도요타 모형 키와 꽃다발을 주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네요, 하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면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20살에 레코드 대상, 한 마디 부탁해요.

    그녀는 꽃다발을 안고 고개를 숙였다 가볍게 고개를 치어 들고선 눈물을 닦는다.

    만약 가족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자동차가 좋겠다고 하셨는데, 이번 대상의 부상, 자동차네요! 잘 됐어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네요.

    네. (거의 목소리의 떨림으로만)

    팬 모두에게 한 마디를!

    (지나치게 길다 싶을 정도의 포즈)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녀는 눈을 아래로 깔고, 그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다는 듯 헤매다 앙코르 전주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선(차렸다는 듯), 황금색 유선 마이크를 질질 끌며 무대 중앙으로 조심스레 걸어나간다. 목소리가 안 나오던 건 무엇이었나, 이전의 황망함과 어리둥절은 모두 잊어버리고, 그녀는 바이브레이션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며 열창한다.

    그녀 앞에 열 십자 모양으로 줄지어 선 80명가량의 무용수들은 삼바, 카니발, 퍼레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떠올리게만 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을 화려함과 색채감을 자랑하는 차림새로, 단조의 노래와 가사에 상관없이 희열에 찬 표정으로 공중회전을 하고, 윤무를 계속한다. 단조에서도 뚫고 나오는 시대의 낙관에 역행하듯 아키나는 대비되는 표정으로 안개꽃에 살짝살짝 가려지며 노래를 계속한다.

    음정이 빗나간 트럼펫 소리로 간주가 끝나면, 준비된 노모의 등장에 그녀는 아기처럼 으앙 울음을 터뜨려버리고, 눈물은 클로즈업에서 가장 멋진 메이크업이 되고, 아모레, 아모레 하며 절정이 끝나면 또 너무나 슬퍼요, 장례식장의 조문객과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아키나는 무대 뒤로 물러선다.

    그들의 화법, 예법은 일본적인 것이었을까? 방송의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옛날 사람들의 것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돌려 말하기, 바꿔 말하기, 꾸며 말하기, 과장되거나 축소된 악의 없는 능청과 (거짓)행복 반응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러나 나는 마츠다 세이코松田 聖子를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는데, 그녀의 전매특허이자 인기 요소였던 부릿코ぶりっ子는 나에게 역겹거나 웃기기만 하다. 과도함의 끝이 불러일으키는 거부감과 상스러움.)

    동시에 오히려 여성성을 강조해버리는 비로드 파워 슈트, 과도하게 큰 금색 귀걸이, 검은 펌프스 힐, 세이코짱 컷의 변형일 부풀린 파마머리, 종아리에서 벌어지는 치맛단, 윗입술 넘어 칠해진 새틴 같은 분홍색 루주의 빛남, 무엇보다 시원시원하게 벌어지지 않는 그녀의 입매 때문에 나는 거의 황홀했다. 그리고 엄마를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오던 어떤 환상, 본 적도 없는, 내 머릿속 행복했던 엄마의 모습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향후 아키나의 박복한 노선과 대비되는 환희의 순간을 슬픈 마음으로 엿보는 마음, 내가 태어나던 1985년에 발매되었다는 사실, 슬픈 열기와 낙관에 취해 나는 잠시 그녀가 나의 엄마는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하게 되었고, 그녀를 보며 어쩌면 실재하는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적인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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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이 기억한다는 것은 더 많이 산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 곤충의 몸집이 커지듯, 옛날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사람은 확장되기도 할까? 나는 그렇다 믿는다. 그리고 더 많이 산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 시간으로서의 권태.

    아버지와 함께 있던 시간은 끔찍할 정도로 길었다. 내 마음대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갑갑함, 언제 놓여날 수 있을지 절대 알 수 없음, 무의미한 시계. 나는 아버지 옆에서 조심스러워야 했고, 가끔은 아들이 아닌 ‘꼬마’로 소개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자랑이었을까? 아버지는 날 이용해 자신을 자랑했을까?

    엄마는 없었기에 나를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버지를 닮았다고들 이야기했다. 듣기 괴로웠지만, 입을 꾹 다물고 아빠 뒤에 숨거나 하면 되었고,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지갑을 꺼내 돈을 주려 할 때마다 아버지는 끝끝내 막아서다 나에게 인사를 시켰다.

    나는 아버지가 왜 그리도 무람없이 어른의 공간에 나를 데리고 다녔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도 지루하고, 매캐한 냄새가 나고, 초록색 부직포 위에 유리를 깔아놓은 공간, 사무실, 보신탕집, 철판 요릿집, 산낙지를 먹었던 밀실 같은 곳들. 아저씨들은 재미없었고, 커피를 마셨고, 다방에 날 데리고 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를 끼고, 어머 이거 런던 포그예요? 대답 대신 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물고, 나는 눈을 아프게 하는 수족관만을 쳐다보다 설탕을 탄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아버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려 했고, 두려움에 떠는 개들이 때로는 하품을 하듯, 나는 권태로웠다. 언제나 염불을 틀어놓았던 아버지 차 안, 경찰서에서, 다방에서, 표구사에서, 사우나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아빠가 돈을 줄 거야. 그것이 내가 기다리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숨 막히는 남자들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진공, 거의 무한하게 확장되는 권태의 시간. 나는 권태로 더 살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이 한 번일 뿐인데, 그것이 무섭고 아쉬워 나는 지루함을 발명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다시 한 번 지금을 권태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

    아이고, 어쩐 일이오? 오늘 노나?

    응.

    안 덥나?

    오늘 처음으로 많이 덥네. 여름 같다. 엄마 나 물어볼 게 있어서.

    뭐?

    나 태어나던 날이 궁금한데, 그날 기억하지?

    므시마 웃긴다,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는데. (웃음)

    아니, 그냥 글 쓰고 있는데 너무 궁금해서. 나 태어나던 날에 엄마 걸어서 병원 갔댔나?

    그럼 걸어서 가지 차 타고 가나? 옴마야 니 와그라는데, 미치겠네, 웃긴다 진짜.

    그날 날씨는 어땠고?

    맑았지. 근데 그게 왜 궁금한데?

    아니 궁금해서. 내가 태어나던 날을 엄마가 알지 내가 아나?

    몰라, 바쁘다, 이따 밤에 전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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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밤이었고, 나는 바깥이었고, 누나는 급하게 나의 바지를 입히고 있었다. 갈색 타일이 촘촘히 박혀있던 나의 옛집 정면, 큰 방의 불빛이 머리 뒤로 새어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세로주름이 진 여름용 인견 잠옷 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지의 무늬가 야자수였는지, 집 앞에 놓여있던 것이 켄챠나무 화분이었는지 정확하게 분간할 수 없지만, 여름이었을 것이고, 나는 바지를 입었다는 사실, 그 전후로 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 밤 나는 아마도 누나와 함께 어디론가 가 잤을 것이다. 그 이전, 엄마와 아버지는 크게 싸웠을 것이다. 누나는 나를 달랬을 것이며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유년의 여름뿐 아니라 나는 겨울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문득 유년의 여름과 겨울이 지금보다 혹독하지 않았다는 것은 망각의 강력함에 앞서 어떤 보살핌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모든 것에 감사하지만, 나는 아쉬워한다. 그날 밤새 두려움에 떨었더라면, 혹독한 겨울을 보냈더라면 더 많은 기억이 내게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다음날 나는 처음으로 신발을 신고 집으로 들어갔다. 중문을 지나 마당을 거쳐 들어간 집의 뒷문은 엉망으로 깨져있었고, 집 안은 거울을 비롯한 유리조각으로 가득했다. 엄마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딱히 막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안전을 보살핀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환한 대낮의 어두운 집, 마당에 내리쬐는 정오쯤의 햇살과 대비되는 어두움, 그러나 나에게는 거의 안락하게 느껴지는 나른한 공기와 집 안의 냄새와 깨어진 유리파편 문지방 너머의 엄마를 본다. 제자리에서 벗어난 노란색, 빨간색 합피 볼 소파와 까만 가리비 안의 진주 터치등, 빅토리아풍의 램프 쉐이드, 그리고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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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의 일이다.

    사귀던 남자와 끝이 나고, 나는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오직 잠만을 기다렸다. 잠이 오기를. 유년의 도시에서는 졸린다는 말 대신, 잠이 온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 남자가 돌아오기를,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만큼 나는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은 온다, 잠으로 갈 수는 없지, 아니다 잠으로 갈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진 않지, 지금 당장 잠으로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누워서 이마에 팔목을 대고, 잠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지루한 꿈은 없기에, 시간을 견디기 위해선 오직 잠이 필요했다.

    나는 벌판(?)에 서 있었다. 꿈의 색조는 노란색이었다. 트랙처럼 긴 공간, 헤아릴 수 없으나 끝은 보이는 야외에서, 그곳은 거의 뚫려 있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건너편에는 돌로 된 산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선 오른쪽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벽이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터미널임을 알 수 있었다. 로터리 세 시 방향에 있던 구터미널, 초록색 제일 여객 시외버스가 드나들던 터미널, 나는 그곳임을 확신했지만, 터미널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상상해볼 수도 없는, 나의 인식으로 조합해낼 수도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터무니없이 낯선 곳이지만 명백하게 터미널인 그곳에 내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터미널을 보고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 그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 이미지를 곱씹었다. 그것은 도시의 근대 사진전에서 보아 꿈에서 직조된 것이 아니었다. 원초적 환상이라거나 유전적 기억이라거나 그런 것도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의 유전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본 것을, 혹은 엄마가 상상한 것을, 엄마가 들어 떠올린 것을 내가 물려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넌 나의 꿈이야, 나는 엄마의 꿈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엄마의 기억 하나 정도는 물려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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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 Imagination → Image → 결국 보는 것 → 잘 보아 상상하는 것 → 혹은 상상을 보는 것 → 볼 수 없는 것을 상상하여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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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널 건너 탑산이 있다. 365개의 계단이 있는 탑산의 정식 명칭은 제황산 공원으로, 탑산 이전에는 러일전쟁 기념탑이 있었다고 한다. 군함 모양을 본뜬 탑산 전망대에 오르면 도시 전체가, 로터리가 한눈에 보인다. 세 시 방향으로 왔으니, 나의 집은 이제 열한 시쯤에 있다. 도시의 이름이 사라지면서 로터리 중앙 시계탑 역시 사라졌다. 분수대를 겸한 시계탑, 그 주위를 둘러싼 당종려나무는 사라지고, 밋밋하고 텅 빈 잔디 광장이 생겼다.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도로에는 사람도 차도 드물다. 느릿느릿 자동차는 반시계방향으로 돌다 몇 시쯤으로 빠져들어 간다. 나는 유령처럼 그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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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유전은 어떤 말장난이나 헛소리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어떤 중첩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난 여전히 그것이 어머니의 기억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여름, 비 오는 날 아침, 내가 10대 초반 무렵 보았을 그 풍경은 이미 나의 옛집을 떠난 후이기에 그 풍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중학생 시절 첫 여름방학, 나는 방문을 잠그고 창문만을 열어두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옆집과 우리 집 사이에 낀 지저분한 목재와 부식되고 낡은 함석 따위뿐이었다. 엄마와 나는 일주일째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랬다. 나는 엄마를 놀래 주고 싶었다. 죽은 척을 하고 싶었다. 엄마가 나가면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와서는 내 옆에 놓아두고 팔목에는 포스터컬러를 묻혀놓아야지, 눈을 감고 있어야지.

    그때 바깥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목소리. 그렇게도 싫어하는 내 이름의 중간글자로만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하늘은 낮게 깔려있었고, 틈 사이로 보이는 여름날의 하늘, 엄마가 나의 이름을 힘없이 불러댔던 순간, 나는 어린 시절 옛집의 마당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일까? 꿈일까? 지금의 내가 10대의 내 눈에 보이는 유년의 정원을 본다. 그건 어쩜 이리도 너무나 가능할까? (그런데 왜 나는 그때 유년의 정원/마당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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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rminal

    1. (사물의) 끝에 있는; (연속된 것 등의) 맨 끝에 오는, 최종적인, 궁극적인

    2. 종점인, 종착인

    3. 경계의

    4. 말기의, 죽음에 이르는


    단어의 뜻에 어원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행위를 누군가는 순진하다고, 어리석다고, 하등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것에 기댄다며 비웃을 수도 있겠다. 하긴, 웃기기도 하지, 단어로 단어를 보증하다니. 단어의 뜻을 단어라고 말해버리는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거의 미신 같아,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 행위에서 나는 언제나 용기를 얻는다.

    단어의 기원과 궤적에는 무언가가 있다, 믿는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단어가 우리를 더 과거로, 기억으로 데려다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지와 향기와 음악과 더불어 나를 더욱 과거로 데려다 놓는 단어.

    단어는 거의 문학이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

    그렇다면 단어는 노스탤지어인가?

    순수기억과 단어가 열어 보이는 환영, 그 양극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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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4. 16

    그날 저녁, 나는 한 선생님의 부친상 조문을 위해 장례식장에 갔다. 대규모 추모집회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에 일행은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고 서대문역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한참의 실랑이 끝에 내가 대표가 되어 향을 피우기로 정했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알지 못하였기에, 나는 절을 하며 선생님의 안녕을 빌었다. 빈소와 분리되어 마련된 접객실에서 글쓰기를 가르쳐준 옛 선생님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퇴근을 하고 찾아온 선배 한 명을 병원 입구에서 만났다. 이대로 헤어질 것인지 술이라도 한잔 할 것인지 집으로 가거나 글을 쓰러 갈 것인지 정하지 못한 채 그는 일단 조문을 하러 들어갔고, 일행은 광화문 교보문고엘 갔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의 글이 실린 문예지를 들추어 보았고, 만년필 가게를 기웃거리다 문학 코너로 갔다. 선배가 합류했고 우리는 모두에게 좋을 합정으로 가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교보문고 지하도 입구를 벗어나 발걸음을 떼자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노란 조명, 바닥으로 쏟아지는 전광판의 빛, 수신호를 보내는 경찰과 보도블록을 가득 메운 건널목의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 교보 빌딩 앞 라일락 냄새가 내 코로 강렬하게 들이닥쳤다. 그 향기는 국화 냄새와 완벽하게 같았다. 나는 어렴풋이 어, 어, 밀려드는 생각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2호선을 타기 위해 시청으로 향했다. 구 시청 청사 앞에서 일렬로 피켓을 들고 선 고등학생들을 보았다. ‘안아 드립니다’가 아니라 ‘안아주세요’. 일행은 환담을 나누며 둘 둘 나뉘어 시청역 지하철 출입구로 향했다. 통행에 제한을 둔 탓인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우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다른 입구를 찾아 고개를 돌린 순간, 두 개의 시청 건물 앞에서, 플라자 호텔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사람으로 가득 찬 시청광장에서, 나는 텅 비어버린 유년의 로터리를 보고 있었다. 보고 말았다. 나는 거의 얼어버릴 뻔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아주 짧았을 것이고, 여느 때처럼 농담을 하며 사람들 사이를 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 순간과 순간,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그것은 여전히 문학적인 죽음과 삶 사이에서 파생된 감정이거나, 생생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감정은 글을 쓸 수 있겠다,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어 글을 쓰고 싶어, 였으며 다른 무엇보다 그럴 수 있는 내가 있었다. 나는 이것이 『옛날 사람들』의 끝이 되리라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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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팔랭세스트palimpseste

    기억의 팔랭세스트

    누더기가 되어가는 시간과 기억 / 새로운 시간과 기억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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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나는

    나는 죽는다, 나는 남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만이 자명해 보였다.

    사람은 죽는다. 내일이 없다. 다시 깨어날 내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더 좁혀, 다음 시간이 없다는 것, 다음 한 시간, 다음 일 분, 다음 일 초……. 그 초를 더욱 잘게 쪼개어 순-간의 없음. 다음 순간, 다음 순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지 다음 순간이 없는 것이라면, 어떤 순간이 있다면, 가진다면, 가질 수 있다면, 일순간의 영생 같은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을 해보았다.

    순간 아래, 시간의 원뿔 밑면에서, 그 시간 안에서 무한히 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순 없을까. 권태의 시간처럼. 그 시간을 영원으로 늘리거나 할 순 없을까. 밑면을 벗어나, 나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이 만나 아예 새로운 시간과 과거는 탄생해버릴 수는 없나. 그러나 난 어째서 나인가, 나일 수밖에 없는가, 왜 난 고작 나이며, 나의 기억만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죽을 수 있을지언정, 아니, 나는(?), 내가(?), 나였던 것이 죽어 있을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 너를 죽을 수는 없겠지. ‘너를 죽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 문장을 떠올릴 수까지는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타인이 개입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당착을 느끼며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이 곤란해졌다. 망상의 논리가 망상의 윤리가 되어가기 직전, 그 부끄러움에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것은 어쩌면 Auto를 위한 변명일지도, 나만의 엄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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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봄, 현재는 사라지고 과거만이 남았다. 있었다. 돌출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였다.

    사라지는 것만이 가장 현재 같았다.

    구름은 사라지고 빗물이 남았고, 연기는 사라지고 재가 남았다. 음악은 사라지고 감정만이 남았다. 그러니까 나는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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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었을 뻔한 첫 번째 기록.

    비가 그쳤다. 봄은 오지 않았네. 봄이지만 봄을 기다려, 이것은 지금이 겨울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으로, 어떤 서정을 획득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 네 시 반,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기 좋은 시간이 곧 올 것이다. 구름이 걷히자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선으로, 마을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사라지고 이내 빛으로 밝아졌다. 마을은 제멋대로 파헤쳐진 정원처럼 볕을 쬐고 몸을 말리고 있었다.

    멀리 동산이 보였다. 언제나, 혹은 그저 초록으로만 보이는 동산에 모자이크를 한 듯, 물감을 묻힌 스펀지로 스텐실을 한 듯, 적어도 일곱 색깔 이상의 조각들이 그곳에 박혀 있었다. 봄인가.

    나는 저 멀리 동산을 보고 있다. 지금은 2015년 4월 16일 오후 4시 30분이다.


    끝이었을지도 모를 두 번째 기록.

    나는 다시 한 번 저 멀리 동산을 보고 있다. 언제나처럼 초록이다. 지금은 5월 23일 오후 여섯 시다.

    텅 빈 시간 동안, 나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한 남자를 만나기를 완전하게 그만두었다. 환심을 사지 못해 안달한 내가 더는 없었다.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없었다. 놀랍게도 난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을 꿈꾸지 않았다. 내 삶이 가짜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지 않은 첫해였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쓰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아직 아무도 노스탤지어가 아니었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쓰일 수 없는 내가 있었지만, 정확하게 그것에 대해 써야 했다.


    끝의 끝, 부채꼴이라 생각한 부채는 조금씩 조금씩 더 펴져선 동그란 부채가 되고, 環과 幻이 만난다.

    다시 한 번 여름이네, 아니 첫 여름인가?

    나도 믿을 수 없는 여름의 시작.

    지금은 5월 25일 오후 세 시이며, 사실은 일곱 시이며, 아니 무시로

    나는 밀림이 된 동산을 탑산을 터미널을 로터리를, ……그리하여 여름, 비 오는 날의 아침을 보고 있다. 아니 쓰고 있다. 그러니까 보고 있다.


    ※ 이인성, 『낯선 시간 속으로』, (문학과지성사, 1983), 「당신에 대해서」, 『한없이 낮은 숨결』, (문학과 지성사, 1989) 의 제목을 인용하여 변형.
    Andrew Gold, 『Lonely Boy』, (Asylum Records, 1977) 가사에서 발췌하여 정리.
    2014년,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게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봉곤

    김봉곤

    1985년 경남 진해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졸업예정

  • 구효서·은희경 소설가

    합리 혹은 주체라는 것이 형성해내는 근대적 보편이 의심받은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나라 일이었고 철학이었으며, 우리의 일이라고 해도 학문의 것이었지 예술의 일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문학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젠 그렇지 않다. 본선에 오른 네 작품 중 세 작품이 근대적 보편성에 혐의를 가하는 전략으로서의 ‘형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이 아닌 형식이 작품의 태도요 주제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오월의 야구장’은 형식이 낯설면서도 자유롭다. ‘스쿼트’는 작가가 말하듯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각하는’ 재능을 보이며, ‘Auto’는 제목처럼 오토픽션의 형식에다 레트로 마니아적 에크리튀르를 적용한다. 응모작들의 변화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대 작품의 점(點)적 구성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사라진 것들의 지도’만이 유일하게 기억과 공간과 사라짐의 관계를 인과와 개연의 좌표 안에서 풀어나간다.

    그러나 ‘오월의 야구장’은 표현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췌사와 요설의 치기도 방임했다는 이유로, ‘스쿼트’는 모든 인간의 행동을 불필요하게 이론화하려 했다는 이유로, ‘사라진 것들의 지도’는 질서 있는 구성에 비해 기억과 공간과 버려지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관통의 맥락은 선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당선작은 한 편이어야 한다는 가장 큰 이유로 배제되었다.

    ‘Auto’는 퀴어의 사랑과 이별, 기억, 시간, 장소, 글쓰기 등의 다양한 무늬를 점프 컷(장면의 급전환)과 소격효과 등의 기법을 통해 노스탤지어라는 캔버스에 개성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보아 당선작으로 정했다.
  • 김봉곤

    김봉곤

    1985년 경남 진해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졸업예정

    가장 먼저 황지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가슴 떨리는 입학 축사가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고, 저는 당신이 지은 풍요로운 정원에서 자랐습니다. 작가적 관점을 갖게 해주시고 길러주신 김경욱 선생님 감사합니다. 새로움과 깊이에 대해 가르쳐주신 권희철 선생님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저의 자질을 발견해주신 강영숙 선생님, 산문의 아름다움을 나누어주신 윤경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이현 천운영 강정 진은영 선생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인사드립니다. 부족한 제 글을 무릅쓰고 결정해주셨을 구효서 은희경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전 세계 LGBT 친구들 모두에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연대와 지지의 손을 내밉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영화과 친구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나머지 한 손을 건넵니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언제나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는 문학으로 하겠습니다. 내 글의 첫 독자이자 편집자인 주성, 따듯한 마음씨의 문학소녀 세희 고마워. 그리고 이제는 좋은 친구인 그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어머니의 가능했던, 가능했을 미래가 저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기회비용이 저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제가 쓰는 모든 글은 어머니가 쓴 것입니다. 오랜 동안 저를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앞으로도 저를 오래오래 견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