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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잘못

by  윤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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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는 잘못

    등장인물

    조사관
    민수
    대표
    기자
    음모론자

    1장

    회의실.
    조사관이 앉아 있다.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잠시 후, 노크 소리.


    조사관 들어오세요.

    민수가 들어온다.

    민수 안녕하세요.
    조사관 네.

    조사관은 민수를 보지 않고, 계속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다.
    사이.


    조사관 (보지 않고) 앉으세요.
    민수 네.

    민수, 앉는다.

    조사관 김민수 씨죠?
    민수 네.
    조사관 개발팀에 계시고요.
    민수 네.
    조사관 조사 왜 하는지, 알고 계시죠?
    민수 네?
            아. 네.
    조사관 그래요?
    민수 네?
    조사관 뭐라고 알고 계시죠? 이유가.
    민수 네?
    조사관 이 조사를 하는 이유요.
    민수 아...
           그...
           학생들... 그 사건 때문에.
    조사관 잘 알고 계시네요.

    조사관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민수 저...
           저는 그냥 개발자라서요.
           그냥 시키는 거 만드는 그런 사람인데...
           그러니까 제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아서요...

    조사관은 대답 없이 무언가를 계속 적고 있고,
    민수는 그 노트를 훔쳐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조사관 (펜을 내려놓으며) 네.
    민수 씨는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시죠?
    민수 네? 아. 개발팀이라고.
    조사관 좀 더 구체적으로 부탁드립니다. (다시 펜을 든다.)
    민수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조사관 무엇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이죠?
    민수 그... 어... (망설인다.)

    조사관이 펜을 다시 내려놓고, 민수를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한다.
    민수는 계속 대답을 망설인다.

    조사관 무엇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계시죠?
    민수 그게...
           음...
           (어색한 손동작을 해 보이며) 사용자가 피드를 보면 이렇게, 이렇게 넘겨 가면서 보잖아요? 그럼 그다음 피드가 어떤 게 뜰지 알고리즘이 결정해 줘야 하는데... 그걸 제가 다 개발한다는 건 아니고요, 그러니까 그게 간단해 보여도 사실은 엄청 큰, 저희 회사에서는 한 부서가 다 달라붙어서 만드는 알고리즘이라, 저는 그 중에서 나랑 비슷한 게시물을 좋아했던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게시물이 뜰 수 있게 점수를 매기는 그런 걸 개발하고 있는데... 이게 또 그것만으로 다음에 어떤 피드가 뜰 건지 결정되는 건 아니고 제가 개발하는 건 되게 일부분이고 이것저것 많은 요소들이 고려돼서 결정되는 건데...
    조사관 (말을 자르며) 네.

    한참을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 조사관.
    민수는 무언가 말을 덧붙일까 말까 고민한다.
    마침내 조사관이 펜을 내려놓더니, 핸드폰을 꺼내 어떤 영상을 재생해서는 민수 쪽으로 돌려 보인다.
    영상을 알아본 민수가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돌렸지만, 보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다 알고 있는 듯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조사관은 영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 민수 쪽으로 핸드폰을 내밀고 있다.


    조사관 (핸드폰을 거두며) 이 영상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민수 ...네.
    조사관 한 달 전, 이 영상을 본 학생들이 안 좋은 선택을 했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사이.

    민수 네.
    조사관 그리고 그 학생들이 영상을 본 곳이 민수 씨 회사의 플랫폼이었다는 사실도요?

    긴 사이.

    조사관 한 달 전 일군의 학생들이 민수 씨 회사의 플랫폼에서 이 영상을 보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긴 사이.

    민수 네.
    조사관 (무언가를 적으며) 감사합니다.

    사이.

    조사관 (민수를 보지 않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민수 나가야할지 무언가 말을 덧붙여야할지 우물쭈물한다.

    조사관 (여전히 민수를 보지 않고) 나가셔도 좋습니다.
    민수 (어정쩡하게 일어나며) 저...

    조사관이 민수를 본다.

    민수 그...
    조사관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민수 그게...

    조사관이 민수를 본다.

    민수 아닙니다.
    조사관 네.
               그럼.
    민수 네.
            감사합니다.

    민수, 엉거주춤하게 나간다.
    조사관은 민수가 나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노트에 계속 무언가를 적는다.


    2장

    대표의 사무실.
    대표와 기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둘 사이에는 기자의 핸드폰이 놓여 있는데, 녹음 중이다,
    대표가 막 이전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쳤다.

    기자 네, 알겠습니다.

    사이.

    기자 (망설이며) 대표님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한 번 더 여쭤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해당 영상이 특정 연령대의 학생들에게만 노출된 이유가 뭘까요?
    대표 기자님.
    기자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하셨지만, 지금까지 파악한 것만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대표 모릅니다.
    기자 대표님!
    대표 (손을 들어 기자를 제지하며) 정말로, 모릅니다.

    사이.

    기자 (애원하듯) 대표님...
    대표 정말로 모른다고요.
            AI가 블랙박스라는 말씀은 들어보셨죠? (기자가 끼어들려 하자, 제지하며) 잠시만요. 끝까지 한번 들어보세요. 그것도 모델이 하나 정도 돌아가는 거면, 그래, 어떻게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그런데 그 피드 추천하는 데 얼마나 많은 알고리즘이 돌아가고 있는지 아세요? 몰라요, 저희도. 저희도 그 많은 모델이 돌아가서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피드를 더 본다는 사실만 알지, 구체적으로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고요. 그건 그냥, (짧은 사이) 그냥 하나의 유기체예요. 그게 잘 맞물려서 작동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 진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고요.
    기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대표 그러니까 제가 기자님을 속이고 싶거나 그래서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저희도 정말로 모르고, 그래도 최대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자료를 모으고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겁니다.
    기자 잠시만요, 대표님. 잠시만요.
            제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든 상관없이, 그걸, 편의상 블랙박스라고 부르죠, 그 블랙박스를 작동시키고자 결심한 사람은 있을 거잖아요. 그 블랙박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블랙박스가 돌아가는 데서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 계속 굴러가게 두자고 결정한 사람이. 그 블랙박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냐 모르냐랑 상관없이 어쨌든 그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사이.

    대표 기자님은, 기자님이 정의라고 생각하시죠?
           아뇨, 아뇨. 기자님이 안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위악적으로) 기자님은 정의의 편이라고.
           근데요, 기자님. 기자님은 그렇게 정의로운 일 하시면서 남한테 피해 준 적 한 번도 없으세요? 한 번도?
           (기자가 반박하려 하자) 아니요, 아니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기자님. 괜찮습니다.
           어쨌든, 질문에 대해 답을 드리자면, 저희도 아직 원인은 모르고, 최선을 다해 파악하는 중입니다.

    사이.
    기자는 핸드폰을 가져와 녹음을 중지한다.


    기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이번 일.
    대표 최선을 다해 조사하겠습니다.

    기자는 인사도 하지 않고 나가버린다.

    대표 (기자의 등 뒤에 대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피곤한 듯, 대표가 앉아있던 의자에 몸을 파묻는다.

    3장

    한적한 카페.
    민수와 기자.

    민수 그, 이거, 익명... 맞죠?
    기자 네? 왜요?
    민수 아니, 그...
           누가 이런 게 배임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기자 배임이요?
    민수 네. 아무래도... 회사 일이니까.
    기자 민수 님이 원하신다면 익명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민수 네.
           죄송해요, 아무래도 좀 무서워서.
    기자 저는 민수 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여기 와 있는 겁니다. 민수 님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행동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민수 감사합니다.

    사이.

    민수 아무래도... 위에서... 그러니까 조사관들이랑 함께... 이미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는 거 같아요.
    기자 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수 얼마 전부터 정부에서 조사관들이 나와서 조사 중인 건 알고 계시죠?
           저희 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서 몇 번 불려갔는데...
           그 조사관들이 묻는 질문이 좀 묘했어요.
    기자 구체적으로요?
    민수 그러니까...
           그 학생들이 어쩌다 그 영상을 보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는 건 개발팀밖에 없지 않냐며... 마치 저희 팀이, 아니 그러니까 제가 잘못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회사 안에서 이걸 누구랑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는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사이.

    민수 근데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이렇게 기자님한테 말씀드리는 거 이거, 혹시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요? 예전에도 이렇게 그, 음, 그, 내부 고발... 같은 걸 진행해보신 적 있으세요?
    기자 아.
           네.
           네, 있습니다. 있죠.
    민수 정말요? 그럼 그분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기자 아... 그게...
    민수 왜요?
    기자 그...
    민수 네?
    기자 그게... 그분 때는 그 사건 자체가 별로 이슈가 되지 않아서, 신문사 차원에서 기사화를 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짧은 사이) 근데 이번 사건은 국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니까, 그렇게 될 리도 없을뿐더러, 민수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정부 조사관들과 사측에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수를 쓰고 있는 거라면 정치권 쪽에서도 민수 님과 같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할 테니까, 그건, 그건 정말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사이.

    민수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무래도 저 그냥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기자 (민수를 잡으며) 민수 님.
    민수 아뇨, 기자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낭비하시게 한 건 정말 죄송한데요, 저 그냥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자 민수 님. 잠시만요. 잠시만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짧은 사이) 그러니까 (짧은 사이) 그게 말이죠 (짧은 사이)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한번만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저는 없다고 생각하시고, 민수 님 사정만, 민수 님이 처한 상황만 한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거죠. 맞아요, 민수 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랑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분명 위험 부담이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계시면? 그게 더 안전한 일일까요? 만약에 민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민수 님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면, 그게 과연 민수 님의 안위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요?

    사이.

    기자 일단. 일단 인터뷰만 진행하시죠.
           익명으로 진행하고, 만약 인터뷰가 끝난 뒤에라도 기사로 나가는 게 싫으시다면 그냥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저도.

    사이.
    민수가 천천히 다시 자리에 앉는다.


    민수 정말이죠?
    기자 네? 아, 네, 네.
    민수 (가방에서 녹음 중인 녹음기를 꺼내며) 다시 한 번만 정확하게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자 (놀라며) 아.
           네, 알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철저히 익명으로 진행하며, 만약 인터뷰를 마친 이후라도 인터뷰이가 게재를 원치 않는다면 어떤 매체에도 게재하지 않겠습니다.
    민수 감사합니다.

    민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을 고른다.
    사이.


    민수 혹시 기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기자 네?
    민수 이 일에, 개발팀의 잘못이 있다고?
    기자 (짧은 사이)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아니 회사 밖에 그 누구도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를 거예요.

    사이.

    민수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아니라고요.
           개발이라는 게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고요.
           모델이 데이터를 보고 스스로 학습해서 사용자가 오래 볼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거라서, 저희 개발자들은 알고리즘이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블랙박스예요. 아시죠?
           그러니까 저희가, 개발팀에서 뭔가를 일부러 했다는 말은 애당초 성립할 수가 없는 거라고요.
    기자 네...

    사이.

    민수 사실.
           사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회사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기자 이런 일이라면?
    민수 이런 일이요. 지금 같은, 이런 일.
    기자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민수 보고서가 있었어요.
           새로운 추천 모델을 적용한 뒤 그 영향을 평가한 보고서였는데, 문제점 부분에서 콘텐츠 사용 시간이 늘어난 사용자 중 일부가 불안감을 호소한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대표 승인을 거쳐 외부에 공개된 보고서에서는 그 내용이 빠져 있었고요.
    기자 혹시 그 보고서 초안을 볼 수 있을까요?
    민수 아까 말씀드렸듯이 최종 보고서에서는 그 부분이 빠져 있어서요.
           저도 찾아보려고 했는데 내부망에서도 이미 다 삭제됐더라고요.
    기자 그럼 민수 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대표와 경영진이 자사 서비스의 위험을 알고 있었는데도 숨겼다는 뜻인가요?
    민수 그런 것 같아요.
    기자 그리고 사건이 터진 뒤에는 개발팀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고요?
    민수 네.

    기자가 생각에 잠긴다. 사이.

    기자 네, 감사합니다.
    민수 저는 정말 억울하다고요, 기자님.
    기자 (짧은 사이) 네, 네.


    4장

    회의실.
    조사관과 민수.


    민수 저는.
            저는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조사관이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민수 저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어요. 돌아가는 게 하도 수상해서.
           왜 개발팀만 집중적으로 면담을 진행하시는 거죠?

    조사관은 민수의 말을 무시한다.

    민수 아시잖아요.
            그 보고서.
            새로운 모델이 특정 사용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던 그 보고서. 그 내용이 외부에 공개될 때 빠졌다는 것까지도, 다 아실 거잖아요.
            근데 계속 개발팀만 면담, 아니 조사를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조사관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죠?
    민수 그 보고서, 그 보고서에서 부정적인 영향 평가 부분이 사라졌다는 그거, 그게 정부 발표에서 언급되지 않으면 기사화하기로 기자님이랑 이미 얘기까지 다 마쳤어요. 야당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슈화할 거라고.

    사이.

    조사관 공식적인 조사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업무방해나 배임의 여지가 있습니다.
    민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한데요. 네. 그게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요.

    사이.

    조사관 민수 씨.
    민수 네.
    조사관 민수 씨는, 민수 씨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정말로 결백하다고 그렇게 믿고 계신가요?

    긴 사이.

    조사관 이건 조사팀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의견인데요.
               저한테는.
               제가 보기에는.
               민수 씨도 최소한 공범이에요.
               그 아이들이 그렇게 죽은 데 민수 씨 잘못도 있다고요.

    사이.

    민수 누가 아니래요?
            누가 아니라고 했어요?
            근데요, 조사관님. 조사관님이 제일 잘 아시겠지만요.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잖아요.
            누가 그 책임을 뒤집어쓰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그리고 저는 절대 그 책임을 혼자서 뒤집어쓸 생각 없어요.

    사이.

    민수 이거 다, 다 내 책임은 아니라고요.
    조사관 (민수를 외면하며)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민수가 나가지 않고 조사관을 본다.
    조사관은 계속 민수를 외면한다.


    5장

    음모론자의 개인 방송.
    음모론자는 가면을 쓰고 혼자서 방송을 진행한다.


    음모론자 그러니까 타이밍이 공교롭다는 거죠.
                  하필 정부에서 그런 스캔들이 터졌을 때 갑자기 학생들이 단체로 자살을 했다? 그것도 SNS에서 똑같은 게시물을 본 학생들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건 아니에요. 있을 수 있죠,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타이밍이나 시나리오가 너무 딱딱 들어맞는다는 거죠. 마치 누군가 짠 것처럼.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자살했다는 학생들, 그 학생들이 누군지 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나요? 그 학생들이 정부에서 스캔들을 덮기 위해 만들어낸 시나리오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냐고요. 그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사진을 본 사람 있으세요? 없죠? 인터넷에 그 학생의 친구다, 부모다, 말은 많이 떠돌아다니는데, 다 말뿐이지 저는 그 죽었다는 학생들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어요.
                  물론 정부는 피해자 신원 보호다, 가족들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원했다, 그렇게 말하겠죠.
                  가짜 뉴스가 이렇게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부가, 언론이 떠드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요. 그럼 그냥 바로 개돼지 되는 거예요. 의심, 의심, 또 의심해야 합니다. 저는 이 사건의 진실이 뭔지, 진짜로 학생들이 죽기나 한 건지, 정부에서 스캔들을 덮기 위해 꾸며낸 가짜 사건은 아닌지, 그 진실을 알 때까지 의심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겁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사건의 핵심에 있는 인물을 초청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럼 다음 시간까지, 여러분도 의심하는 걸 멈추지 마시길 바랍니다.

    6장

    대표의 사무실.
    대표와 민수.


    민수 대표님이 제 요구를 들어주시거나 아니면 제가 그 방송에 나가서 폭로를 하거나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아뇨 그렇게 두 개밖에 없습니다. 없고요.
            그러니까 이건 최후통첩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가 민수를 등지고 생각에 잠긴다. 사이.

    대표 이건 기회예요.
    민수 네?
    대표 모르겠어요?
    민수 아니...
    대표 이건 기회라니까요.
    민수 기회라고요?
    대표 네.
    민수 잠시만요.
            제가 드린 말씀을 제대로 들으신 거죠?
    대표 그 음모론자가 하는 방송에 초대된 관계자가 민수 씨라는 거잖아요.
    민수 네.
    대표 그러니까요. 제 생각에 이건 기회라니까요.
    민수 아니, 제가, 제가 드린 말씀은.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저는 그 방송에 출연해서 회사가 사건의 책임을 개발팀에게 떠넘기려고 하고 있고, 사전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측했던 보고서도 기록에서 삭제했다고 폭로할 예정입니다. 대표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개발팀은 결백하다는 어떤 서면 증거라도 남겨주시지 않는 이상은요.
    대표 민수 씨.
    민수 저 많이 각오하고 온 거니까, 무슨 말을 하셔도 소용없어요.
    대표 민수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다니까요.
          생각해 봐요. 사실 우리 둘 다 피해자예요. 우리가 열심히 일한 거, 그거 말고 뭐 더 있어요? 학생들이 그런 선택을 한 거, 저도 굉장히 유감으로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밤에 잠도 못 자고 막 그래요. 민수 씨도 마찬가질 테고.
           근데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냥 천재지변 같은 거지, 그게 왜 우리 잘못이야. 그냥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니까 정부에서도 때릴 허수아비가 필요한 거고, 하필이면 이번엔 그게 우리였던 거지.
           근데 그 방송, 민수 씨가 출연한다는 그 방송, 그리고 거기서 떠드는 음모론, 이거 내 생각에 우리한텐 기회예요.
    민수 어떻게요?
    대표 논점을 흐리는 거죠.
            지금이야 전 국민이 다 이 사건만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금방 달아오르지만 또 그만큼 금방 식잖아요. 민수 씨가 그 방송에 나가면, 사람들은 막상 민수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도 안 쓸걸요?
            대신에 모두들 그 음모론자가 제기하는 음모론에 관심을 갖게 되겠죠. 사건의 핵심에 있는 관련자를 초청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아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겠구나, 하고.
            그래, 나가서 한다고 했던 얘기, 그 조사팀이랑 경영진이 짜고 개발팀을 범인으로 몰아간다고 하는 그 얘기, 그거 그냥 나가서 다 해버려요. 뭔가 있는 것 같잖아. 정부가 저렇게까지 하는 거 보면 뭔가를 숨기려고 급하게 날조하고 있구나 생각하기 딱 좋고.
    민수 네?
    대표 왜요?
    민수 아니, 그래도...
    대표 아. (웃는다)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이미 신문에 다 나온 얘기들인데.
    민수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
    대표 뭐가요?
    민수 회사나 뭐 이런 것들...
    대표 안 괜찮을 게 뭐 있어요. 이제야 일이 좀 풀리는구나 싶은데.
    민수 정말 괜찮으세요?
    대표 민수 씨. 너무 열 올리지 마세요.
            비즈니스잖아요.

    민수가 어색하게 웃는다.

    대표 어때요?
    민수 그게...
    대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민수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대표 그럼 그대로 하시죠. 민수 씨는 방송에 나가서 가능한 한 큰 이슈를 만들어 주시고, 회사는 그에 대해 노코멘트 하는 걸로.
    민수 대표님.
    대표 네.
    민수 정말 그걸로...
           아닙니다.
    대표 민수 씨.
            지금은 지금 해결해야 할 일만 생각하자고요.
            아시겠죠.
    민수 네.
            알겠습니다.

    7장

    음모론자의 스튜디오.
    음모론자와 민수.
    음모론자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다.


    음모론자 그럼 민수 님이 생각하시기에 어떤 표적 수사 같은 게 있었다 그런 말씀이시죠?
    민수 네.
    음모론자 그 희생양이 민수 님, 그리고 민수 님이 속한 팀이고요?
    민수 네.
    음모론자 왜 그랬을까요?
    민수 아무래도 경영진의 책임과 가장 먼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려다 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재무팀이나 전략팀이 잘못했다 하면 바로 경영진의 책임과 연결시키기가 쉽지만, 개발팀에서 잘못했다 하면 아무래도 엔지니어링적인 실수라고 생각하지, 경영진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모론자 그렇군요. 어수선한 상황에서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민수 아닙니다.
    음모론자 다음 질문은 좀 민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민수 네.
    음모론자 그래도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저희 시청자분들께서 민수 님이 하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실 거 같아서요. 그래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거 같은데.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민수 님, 민수 님은 회사의 서비스에서 특정 콘텐츠에 노출된 후 자살한 학생들이 진짜로 있다고 믿고 계신가요? 아니면 그게 정부가 꾸며낸 가짜뉴스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이.

    음모론자 대답하기 힘드신 거 알지만, 이 방송의 핵심인 만큼, 앞으로의 인터뷰를 위해서도 민수 님의 입장을 꼭 듣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민수 네.
    음모론자 네.
    민수 사실...
    음모론자 네.
    민수 잘 모르겠습니다.
    음모론자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서요. 믿는다, 믿지 않는다, 둘 중 어느 쪽인지 확실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수 정말 잘 모르겠어서요.
    음모론자 뭘 모르시겠다는 거죠? 죽은 아이들이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지 반만 있고 반만 없는 그런 상태는 없지 않나요?
    민수 그러니까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뭘 믿어야 할지, 믿어도 될지, 믿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 믿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 건지, 머릿속은 자꾸만 더 복잡해지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음모론자 민수 님.
                  편하게 답변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민수 님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책임을 물으려고 여기 부른 게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들일 뿐이고, 민수 님은 저희에게 진실의 방향을 가리켜 줄 증인으로 초청되셨을 뿐입니다.
                  언론 보도나 조사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신 건 알고 있는데, 저희 앞에서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으세요. 여기 나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와 시청자분들은 민수 님도 저희처럼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동지애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수 님이 믿는 진실은 어떤 건가요?
    민수 저는...
            저는 아이들이 정말로 죽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음모론자 아... 그러신가요?
    민수 네.
           사실 진실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제 안에 뭔가가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음모론자 이거 좀 의외인데요.

    사이.

    음모론자 정리하자면 민수 님은 정말로 그 아이들이 있다고 믿으시는 거죠? 민수 님이 개발한 서비스를 사용하고는 자살한 아이들이 있다고.
    민수 ...네.
    음모론자 그렇단 말이죠.
                  그럼 저희 방송엔 왜 나오신 거죠?
    민수 네?
    음모론자 저희가 진실을 의심한다고 해서 세상에 무지한 건 아니거든요. 아뇨 오히려 그 반대죠. 저희는 누구보다 세상을 잘 알기 때문에 의심, 또 의심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음모론자라고 욕하면서 저희랑 엮이기도 싫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 님은 저희랑 다른 진실을 믿으시면서 왜 이 방송에 출연을 결심하신 거죠? 저희가 출연료를 드리는 것도 아닌데.
    민수 잠시만요.
    음모론자 아니요.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시청자분들도 궁금해 하실 테고, 민수 님의 인터뷰의 진정성을 가늠하기 위해서도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저희와 다른 생각을 가지셨다면, 도대체 왜 저희 방송에 출연을 결심한 거죠?
    민수 저는 그냥...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수사가 표적 수사처럼 진행되는 것 같아서 이대로는 진실이 묻힐 것 같아서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음모론자 정말 그게 다인가요?
    민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그냥 하시죠.
    음모론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세상을 의심하는 거지 세상 돌아가는 데 어두운 건 아니라서요. 대중들이 저희가 하는 말을 잘 믿어주지 않는다는 건 저희가 제일 잘 알거든요. 물론 그건 대중들의 잘못이지만.
                  그래서 그런데, 만약 민수 님이 단순히 표적 수사의 억울함을 밝히고자 했다면 저희 채널보다는 다른 방송에 나가시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분도 아니신 것 같고... 그럼 왜 굳이 저희 방송에 나오셨을까요?
                  아, 한 부류가 있긴 하죠. 저희처럼 깨어 있지 않으면서도 이 방송에 나오려고 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보며) 누군지 아시죠?
                  정말로 죄지은 사람들이요. 지은 죄가 있어서 세상에서 밀려나고 밀려나다 결국 여기까지 온 사람들.
                  근데 어쩌죠? 저희도 그런 사람들을 받아줄 용의는 없는데.

    사이.

    음모론자 민수 님. 그래서 저희 방송에는 왜 출연하신 건가요?
    민수 진실이 궁금하다고 했죠?
    음모론자 그게 제 직업이죠.
    민수 진실이 뭔지 말씀드릴까요?
           (음모론자가 끼어들려 하자 제지하며) 제가 말씀드릴게요.
           진실은 아이들이 죽었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할 만큼 고통 받았다는 거라고요.
           또 진실은 당신이 그 죽음을 가지고 시청률 장사를 하고 있다는 거고, 이걸 보고 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그 죽음을 가지고 장난질이나 치고 있다는 거예요.
           진실은 그 죽음에 나도 한몫했다는 거고, 나뿐만이 아니라, 이걸 보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외에 모든 사람들도 다 결백하지 않다는 거예요.
           진실은 더럽게 힘든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그 아이들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회사 대표도,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조사관도, 그 누구도 그 아이들이 누군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 사건이 이제는 더 이상 그 아이들과는 상관없어져 버렸다는 게 빌어먹을 진실이라고요.

    긴 사이.

    음모론자 (손뼉을 치며) 좋아요.
                  좋네요.
                  아니, 진짜로.
                  진짜 좋다고요.
                  민수 님이 방금 쏟아낸 거, 그건 진짜였어요. 그만큼 진짜인 건 보기 드물거든요. 그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겠네요. 민수 님 스스로는 방금 한 그 말을 진실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실히 믿고 있다는 거,
                  근데 민수 님.
                  도대체 왜 지금 여기서 그런 말을 하고 계신 건가요?
                  그렇게 정의로우신 분이?

    8장

    회의실.
    조사관이 앉아 있다.
    잠시 후, 노크 소리.

    조사관 들어오세요.

    민수가 들어온다.

    민수 안녕하세요.
    조사관 네.

    사이.

    조사관 앉으세요.
    민수 네.

    민수, 앉는다.

    민수 저...

    조사관이 민수에게 서류를 건넨다.

    조사관 읽어보시고 서명하세요.
    민수 네.

    민수가 서류를 찬찬히 살펴본다.
    민수가 서류를 살펴보는 한참 동안 조사관은 민수 쪽을 한 번도 보지 않는다.
    마침내 민수가 서류에 서명을 한다.

    민수 (서류를 조사관에게 건네며) 끝인 건가요?
    조사관 네.
    민수 그렇군요.
    조사관 나가보셔도 됩니다.

    민수가 나가지 않고 우물쭈물한다.

    조사관 왜요?
    민수 그게...
    조사관 뭐, 죄책감이라도 느끼세요?
               상황이 다르게 풀렸으면 죄책감 같은 거 느낄 여유도 없었을 겁니다.
    민수 네.

    사이.

    조사관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민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조사관 (위악적으로) 얼마든지요.
    민수 조사관님은 정말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사관이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민수 아니, 그게 아니라.
           조사관님은 이 사건의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사관 제가 아는 유일한 진실은요.
           아이들이 죽었고.
           그 아이들은 죽기 직전에 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민수 씨는 그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민수 하지만 정말로 아이들이 죽었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도... 저도 결코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죠. 저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죄가 있다면 죗값을 받아 마땅하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냥... 그냥 저 혼자 다 뒤집어쓰는 게 싫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래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요?
    조사관 그건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진실이죠.
    민수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조사관 민수 씨.
    민수 네.
    조사관 정말 뭐가 어떻게 되길 바라시는 거예요?

               사이.

               정말 권선징악이 실현되길 바라세요?

               사이.

               정말요?

    막.
    윤주호

    윤주호

    1992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 한 SNS에서 특정 게시물을 본 학생들이 집단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후, 정부에서는 조사팀을 꾸려 해당 SNS를 운영하는 회사를 조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해당 SNS의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한 개발자인 민수는 조사팀의 집중적인 조사를 받게 된다.

    한편, 해당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기 위해 회사의 대표를 찾아간 기자가 회사의 책임을 추궁하지만, 대표는 알고리즘은 블랙박스이며, 이미 유기체처럼 자율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책임을 특정하기 힘들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한다.

    민수는 조사팀의 조사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의심하게 되고, 기자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 기자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민수를 도와주기로 하고,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반드시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묻자고 다짐한다.


    그러던 와중에 음모론자가 등장해 이 사건이 정부가 자신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 꾸며낸 가짜 뉴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궁지에 몰린 민수는 대표를 찾아가, 자신이 음모론자의 방송에 출연하기로 약속했으며 방송에서 편파적인 조사 실태를 폭로할 것이라며 협박한다. 뜻밖에도 대표는 민수의 방송 출연을 반기는데, 민수가 음모론자의 방송에 출연하면, 음모론이 힘을 얻으면서 회사에 대한 대중의 비판이 초점을 잃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런 논리로 대표는 오히려 민수에게 방송에 나가 “조사팀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라고 부추긴다. 음모론자의 음모론이 사태의 진실을 흐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연하게 된 음모론자의 방송에서, 민수는 대표와 약속했던 것처럼 회사와 조사팀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며 비난한다. 음모론자는 민수의 그런 폭로가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방송이 끝나기 전, 음모론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며 민수에게 “정말로 아이들이 죽었다고 믿는지, 아니면 (자신들처럼) 정부의 가짜 뉴스일 뿐이라고 믿는지” 묻는다. 이 질문을 계기로 민수와 음모론자는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논쟁이 격양되면서 민수는 자신도 결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대표의 계산대로 이 방송을 통해 음모론자의 음모론이 힘을 얻으면서 조사팀은 혐의 없음 의견으로 조사를 종결한다.


    조사가 종결되는 날, 조사실에서 민수는 조사관에게 묻는다. 누군가는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냐고. 조사관은 “그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진실이 아니”라며 자조한다.
    윤주호

    윤주호

    1992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 최진아 작가(극단 놀땅 대표), 장우재 연출가(대진대 연기예술학과 교수)

    시대의 ‘불확실’을 확실히 드러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올해 응모작에는 ‘불안함’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 있었다. 우선 사회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몇몇 혼란스러운 사회 통념을 관념적으로 다루는 작품이 있었으나 소수였다. 이에 비해 ‘알 수 없는 이유’가 태연히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시골을 배경으로 하거나 노인을 등장인물로 삼는 경우도 양적으로 많았다. 무엇보다 문학적 메타포를 다시 살려내려는 경향들이 뚜렷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공유하려는 공상과학(SF)은 특히 인공지능(AI)에 집중되어 좀 더 ‘현재’로 내려온 것이 고무적이었다. 물론 각박한 생활 분쟁을 다루는 작품도 여전했지만, 인간과 인간이 강렬하게 부딪히는 경우는 드물었고, 희극을 시도하는 작품들이 오히려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인간이 테이블이 되거나, 물고기가 되는 상상 및 소수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작품들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중간 수준의 작품들은 줄고, 준수한 작품과 아직 글쓰기가 덜된 작품은 많았다. 이 중 아쉬운 것은 많은 작품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쓰인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연극의 표현 방식이 과거보다 풍성해져 서사를 전개할 때 다양한 방식들이 가능해졌지만,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오히려 관객을 깊이 깨우는 ‘알맹이’를 탄생시킨다는 것은 희곡만의 장점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시대에 ‘알맹이’를 짓기란 참 어렵다. 그럼에도 이 ‘불안함’을 살아내기 위해 매일 이야기를 지어보려는 많은 작가가 있는 한 그것은 언젠가 이루어지리라 본다.

    ‘이명’, ‘고도 스돕도 아닌’, ‘괜찮으세요?’, ‘2025년 신춘 문예 당선자 귀하’, ‘하여가’가 언급되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단번에 ‘없는 잘못’을 선택했다. ‘없는 잘못’은 시대의 불확실을 토로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수준을 넘어 ‘불확실’ 자체를 밀도 높은 극적 완성도로 짚고 있었다. 마치 거기서부터 출발이라는 듯 ‘불확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또한 선명하여 단연 돋보였다.
  • 윤주호

    윤주호

    1992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묻지도 않은 신상 내력을 하염없이 읊는가 하면, 정작 중요한 자리에서는 상대방과 눈도 못 마주치고 발치만 쳐다보며 속삭이곤 합니다. 그중 최악은 피하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싸워야 할 때인데, 그럴 때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채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며, 어떨 때는 눈물까지 고이곤 합니다. 그렇게 밖에서 한참을 버벅대고 온 날이면 집에서는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저렇게 따져 물어야 했는데, 하고 밤새 잠도 못 이루며 머릿속으로 당당히 상대에게 맞서는 제 모습을 시뮬레이션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희곡은 저에게 판타지입니다. 물론 희곡 속에서 인물들이 자기가 할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희곡 속에서도 인물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지 못하고, 서로를 오해하고, 싸워야 할 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후회하곤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전달되지 않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오해에서 이해로 넘어가기 위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에 이르기 위해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도망친 대화의 역사와 같은 저와 비교했을 때 희곡의 인물들은 훨씬 더 용감하고, 끈기 있고,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희곡의 편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번 당선이 저에게 적어도 그 정도의 용기는 내 보라는 응원같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겁쟁이가 가질 수 있는 용기로 계속 써 나가겠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가족들, 친구들,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부족한 글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동아일보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작품전문
  • 시놉시스
  • 심사평
  • 당선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