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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과 형사2계에 있다가 등기과로 옮긴 게 한 달 전이었다. 근저당권 설정, 소유권 이전, 전세권 설정, 소유권 이전, 등기말소 같은 말들에 익숙해지고 법무사 사무장들과 안면을 트고 오후 네 시가 될 즈음에는 등기필증을 부착한 등기 서류들을 배분하고 새로 들어온 등기 서류들을 입력하는 일상에 적응해 가던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점심을 건너뛰고 벤치에 앉아있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이겠거니 했는데 너였다.
“웬일?”
“저번에 네가 말했던 데, 생각해보니까 가보고 싶어져서”“내가 니한테 말했던 데가 한두 군데도 아니고”“밀양에, 왜 전에 욱수천 걸으면서 그 고양이들 나오고 온돌이 좋고 어쩌고 했던 거기”
고향에 내려온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네 억양은 여전히 서울이었다.
“좋지, 거기 예약 오픈이 월초에 열리니까, 3월 중에 하루 가자”
사실 나도 거기가 정말 좋은 데인지는 몰랐다. ‘근교 촌캉스’ ‘시골 마을 힐링’ 같은 태그로 검색하다보니 그곳이 나왔다. 고양이들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갓 내려온 너와 하천을 걸으면서 같이 여행을 갈 만한 이런저런 곳을 되는 대로 주워섬기면서 그곳을 이야기한 건 아마도 고양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너는 고양이를 좋아했으니까. 네가 서울에서 내려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 욱수천에서 공룡발자국이 있는 곳까지 함께 걸었다. 그때 네 얼굴은 패배자 같았고 묻기 전에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걷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났으니 함께 걸어주는 것, 이라는 태도였다. 그 태도에 기분이 상해 나도 그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후로는 가끔 안부 메시지나 보내는 정도였고, 그마저도 단답에 가까웠다. 잘 지내? 응. 날씨 좋다. 그러게. 밥 잘 챙겨먹고 다니고. 걱정 마. 알아서 해. 그러던 애가 먼저 전화를 하다니. 속없이 반가웠다.
“되는 시간 알려줘. 나도 남편하고 상의해보고 시간 맞춰 볼게”
전화를 끊고 나서 괜히 남편하고 상의해본다는 이야기를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함께 사는 사람과 키워야 하는 사람과 함께 쓰는 시간이다보니 시간은 늘 모자랐다.
아침을 든든히 먹으면 점심은 건너뛰어도 괜찮다. 법원 뒤편에 조성된 작은 공원은 혼자 쉬기에 적당한 장소다. 간혹 이혼 조정을 위해 온 우울한 부부들이 점심 시간에 애매하게 걸려 와 이곳을 거닐 때도 있지만. 대개 그런 부부들은 적당히 애매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함께 있는 것도, 따로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나는 양쪽 눈에 인공눈물을 한 방울씩 흘려넣은 다음, 밀양의 독채 펜션 정보를 너에게 보냈다. 너는 되는 날짜와 예약 링크를 보내주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즈음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퇴근해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대문에 걸린 코뚜레 모양의 종을 일부러 한 번 더 울렸다. 현관문에 이 종을 단 것도, 스물여섯 평이 채 안 되는 집에 어울리지 않게 미닫이 중문을 설치해야 한다고 고집한 것도 모두 남편이다.
“현관은 집안의 얼굴 같은 곳이라서 항상 깨끗해야 한다더라.”
물이 뚝뚝 듣는 우산이 현관 문고리에 걸려 있는 것을 본 남편의 미간은 아주 잠깐 찌푸려졌다가 펴졌다. 연애하던 시절 차선을 금방 바꾸지 못해 버벅거리는 중에 뒤에서 SUV가 경적을 울리자 나도 모르게 아, 씨발, 이라고 말했을 때도 그랬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잖아. 출산 직전이라 급히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남편은 언제나처럼 낮은 목소리로 등을 토닥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는 듯이. 하지만 매일 아침 벌거벗은 채로 안방의 욕실에 들어설 때마다 벽에 붙은 한 점 크기 나방파리들을 손가락으로 눌러 죽이는 나에게는 살생의 이력이 달리지 않을까. 남편이 그토록 불러들이고 싶어하는 좋은 운이 나의 무심한 살생으로 인해 다 달아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나방파리를 눌러죽일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나방파리는 저항도 없이 잿빛 마침표처럼 손가락에 눌린 그 자세 그대로 죽었다.
호스트가 정확한 주소와 비밀번호를 보내준 건 숙박 당일 아침이었다.
[마침 마을 상수도 공사를 하느라, 집앞 골목에는 차량 진입이 안 되고 있어요. 마을회관 주소가 소고1길 44-1인데, 여기 주차하시고 1분 정도 걸어서 집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너에게 보여주자, 너는 미간을 찌푸리며 “응”이라고만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자 ‘햇살문화도시 밀양’이라는 원색의 문구가 필기체로 그려진 돌담이 보였다. 소도시일수록 도시를 홍보하는 문구는 크고 밝은 편이다. 서울은 여기가 서울이라고 홍보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쪽을 가리키자, 너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응”이라고만 했다.
“그런데 니는 갈 마음이 있긴 한 거가? 니가 가자고 했잖아”
“뭐가?”
“응, 응, 응, 응. 오면서 니가 한 말 중에 절반이 응이다.”
“응”
“아, 단답은지. 얼마나 답답은지”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 뇌진탕 때문에 그래, 계속 머리가 울려”
“뇌진탕?”
“엄마가 엊그제 소파 위치를 바꿨거든. 가구 위치에 적응 못하고 털썩 앉다가 뒤통수를 벽에 부딪혔어. 그날은 별일 없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계속 어지롭고 골이 울리는 것 같아”“헐, 그럼 병원에 가봐야 되는 거 아니가?”
“찾아보니까 2주 정도 그러면 병원 가보라는데 아직 3일밖에 안 지났어”
그게 아니더라도 너는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다. 가벼운 병으로 갔다가 덜컥 큰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게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한 봉지에 색색의 알약을 합 입에 털어넣는 내 모습에 질겁을 하는 사람이다. 몸에 대해서는 마음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걸 알게 된 게 고3 때였나.
“큰 병이 있다는 걸 빨리 알게 되면 다행이지 않나?”
“분명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이래. 모른 채로 지나가면,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면 큰 병이 있었다가도 없어진다고 봐. 모르기 때문에 괜찮은 거지. 증상을 못 견뎌서 굳이 확인하는 바람에 큰 병이 어디 숨을 데도 없이 명명백백한 사실이 되면 그 사실은 결코 없어지지 않아. 그 병이 더 이상 없었던 척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너는 여전히 그런 사람일 것 같았다.
예약한 독채 팬션은 밀양 시내에서도 차로 삼십여 분은 더 걸리는 외곽에 있었다. 작년 이맘때는 벚꽃이 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삼월 말에 가까워져도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느껴졌고 비도 잦았다. 목련은 햇빛에 그을린 것처럼 시들고 있었지만 벚꽃은 터지기 직전의 여드름처럼 붉게 달아오른 망울 상태였다.
주차선이 희미하게 그려진 회관 앞에 차를 대고 트렁크를 열었다. 짐은 소형 캐리어 두 개로 단출했다. 단출하다는 건 낯선 감각이다. 아이와 함께 왔으면 짐이 세 배는 더 늘어난다.
자물쇠 비밀번호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담한 시골집을 정갈하고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본채와 통유리로 되어있는 별채가 보였다. 독채와 별채 사이에는 여러 블로그 포스팅에서 본 대로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다. 얼룩 고양이,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들이 흑임자떡, 인절미, 시루떡처럼.
독채의 문들은 모두 미닫이였고 거실과 안방 사이는 전통 가옥 스타일의 문지방이었다. 두어 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고 문을 열 때마다 뀌이에이엑이- 어떤 문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말라비틀어진 나무 귀신의 곡성처럼 들렸다.
“동은이 데리고는 못 오겠다.”
네가 안방 문을 여닫으며 말했다.
“……한 번 잠들면 무슨 소리가 나도 안 깨, 걔는”
누워있는 네 옆에 나도 벌러덩 누웠다. 안경을 벗은 다음 형광등 빛에 비춰보았다.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을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붙인 습관이다. 내 왼쪽 안경알에는 자세히 보면 기스가 나 있다. 테라스가 있는 야외 까페에서 그랬다. 태어나 처음 하게 된 인터뷰 촬영 며칠 전, 프린트해둔 질문지 위에 올려둔 안경이 바람에 날아간 적이 있었다. 안경은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 위로 떨어졌다. 왼쪽 렌즈에는 0.5mm도 채 안 될 것 같은 기스가 났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자 남편이 내 안경을 치켜들어 보더니 에이, 안 보여. 말했다. 남편 말이 맞았다. 빛에 비춰서 애써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디작은 상처였다. 그러나 그런 것에 그러려니 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없어졌다.
“보여. 여기 봐봐, 분명 여기 있어. 작게.”
“그렇지만 사람들이 여보랑 눈을 이렇게 가까이 맞추지 않는 이상, 이건 안 보여.”
보이네, 안 보이네, 몇 번 말하다가 남편은 이내 설득을 포기했다. 당신 좀 예민한 것 같다고, 남편은 말하지 않았다. 나도 내가 편집증적이라는 걸 알았고 남편이 부러 그걸 말로 꺼냈을 때 마치 기회라도 잡은 것처럼 다툰 적이 있었다. 안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그마저 알았다. 며칠 후 촬영은 무사히 마쳤다. 기스는 없는 것처럼 내 안경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래, 은과 원은 헷갈릴 법한 발음이다. 내 동원이가 너에게는 동은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대로 두었다.
나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폰을 연결했다. 동원이가 등원하면 가끔씩 듣곤 하는 [광고 없는 피아노 배경 음악 1시간]을 틀었다. 너는 미간을 찌푸린 채 별말없이 있다가 “내가 선곡해도 돼?”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폰의 블루투스 연결을 끊어버리고 제 폰을 연결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는데 음악 하나로 시골집이라는 공간이 시적인 장소로 변했다. “못 본 새 무례해졌네”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만은 아니었다. 너는 가만히 웃었다. 여기 와서 네가 웃는 얼굴을 처음 보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춥지 않았는데 다섯 시쯤 되자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고기를 구우려면 해 넘어가기 전에 구워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번개탄으로 숯을 구워 불판을 데우고 집게로 고기를 올리는 동안 너는 평상에 신문지를 깔고 쌈 채소 같은 것들을 차렸다. 고개를 느리게 돌리는 걸 보니 어지럼증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유튜브 프리미엄권을 끊었는지 중간 광고 한 번 없이 음악은 계속되었다. 불판에서는 흰 연기와 함께 불씨가 날려서 제법 분위기가 났다. 일회용 접시에 고기를 적당히 나눠 먹었다. 그 모든 것들을 하는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거기까지가 말없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왜 우리가 함께 나눌 만한 말이 1도 생각나지 않는 걸까. 너의 찌푸린 미간과 폐쇄적인 태도 때문에 가벼운 말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 걸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원래 이 정도 사이인 걸까. 그때 구원처럼 영상통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저장해둔 이름이 너무 병신 같아서 구원이 아니었다. 네가 힐끔 화면을 보았다.
“동은이 아빠? 받아봐”
나는 폰을 들고 너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데로 가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 한가득 내복을 입은 동원이만 보였고 ‘♡남편♡’은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동원아, 엄마 저기 있네, 엄마, 안녕!”
“안녕! 엄마 어디야?”
“응, 엄마 친구 만나러 왔어”
“친구 누구?”
“응, 은지 이모라고 있어, 엄마 친구”
남편이 대신 대답했다.“나도 보고 싶다”“참 여보, 밥 다 짓고 한 번 저었나?”
“응? 응, 저었었나. 기억이 안 난다”목소리만 들렸지만 대충 얼버무리는 걸 보니 안 저은 것 같았다. 아마 동원이 미술 과제도, 다 된 빨래 중 일부만 건조기에 넣고 나머지는 가습을 위해 널어두는 것도 제대로 안 해놓았을 것 같았다. 일일이 일러주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너에게 사소한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목숨 거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 시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며 자유롭게 산 너에게는. 그건, 너무 적나라하니까.
너와 나는 예고에 다닐 때부터 친구였고 대학도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고향에 있는 미대 디자인과였다. 함께 들어갔지만 함께 졸업한 건 아니었다. 나는 졸업을 하고 이 년간 공무원 임용을 준비한 다음 9급 법원서기보 시험에 합격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동원이를 낳고 키우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작게나마 소규모의 전시회를 열며 지역 소식지에 실린 제목처럼 ‘법원에서 일하며 그림책 작가의 꿈을 키우는 워킹맘’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 조금 길긴 하지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삶이다.
반면 너의 이십대는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없다. 3학년 재학 중에 너는 대학을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가서 뭘 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영화판에서 궂은 일부터 시작하며 굴렀을지도 모르고, 우연히 좋은 기회를 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보니 너는 영화감독이 되어 있었다. 데뷔작의 제목은 ‘카제’였다. “그렇지?”라는 의미의 동남 방언으로, ‘그 카제?’를 떠올렸던 나는 그러나 카제가 かぜ라는 걸 뒤미처 알고 홀로 민망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까까머리 소년이 울고 있는 얼굴이 포스터였고 심지어 흑백이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네가 어릴 때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소설을 영화화한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찾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는 분명 너의 이름이 있었지만 다운로드를 받아서 볼 방법이 요원했다. 블로그 후기 몇 개가 눈에 띄었으나 읽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너는 시인으로 데뷔해 누구나 이름을 아는 출판사에서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영화감독, 시인이라는 두 직업과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너의 이력은 잘 먹혔다. 네가 사는 세계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이 지방국립대 중퇴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 고등학교 자퇴는 더 있어 보인다. 방송에 종종 나와 이름을 알린 한 디자이너와 함께 동업하면서 다크한 스타일의 의상을 파는 쇼핑몰도 운영한다. 그리고 분명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서사가 숨겨져 있겠지.
서울로 간 이후로 네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명절 때면 안부를 물었고,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대부분 너에게 좋은 일들이었고 성공에 가까워지는 일상이었으며 밝은 인사였고 멋진 사진이었다. 그러나 연락은 점점 뜸해졌고 길어질 법한 말의 자리는 이모티콘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너의 성공은, 대부분 너의 인스타그램 계정의 스토리와 게시물을 통해 알게 된 거다. 너의 게시물 속 힙한 스타일, 힙한 장소, 힙한 문장 아래에는 언제나 천여 개에 달하는 좋아요가 있었다. 나중에야 엠지 세대들은 그런 걸 텍스트힙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매번 너의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그 천여 개의 좋아요 중 하나를 눌렀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너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럴 때면 네가 내가 아는 그 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었다. 우리가 죽고 못 사는 사이였던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숙사의 뒤편에서 주저흔을 보여주며 비밀을 나눴던 사이, 분명 우리를 이상하게 볼 아이들의 눈을 피해 이상李箱의 『권태』와 페소아의 『불안의 서』같은 책들을 공동의 신앙으로 삼았던 사이, 주인이 둘인 드로잉 노트에 각자 거창해서 어설픈 관념 덩어리의 시를 쓰고 추상적인 이미지 드로잉을 나누었던 사이.
또 뭘 나눴었나 생각해 보면,
“있잖아,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런 거 어른들이 보기에는 다 놀이겠지?”
그날 우리는 텅 빈 교실에 앉아있었다. 수도권 소재의 한 예고 실기교사가 졸업생 선배들 중 몇을 그루밍했었다는 폭로가 SNS 계정을 통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를 뺀 반 아이들 전부가 합심해서 시위에 참여하러 서울로 올라간 날이었다. 나중에 우리가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우리를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교사들까지도 그랬다. 고2때 청도에서 전학을 와 나말고는 다른 친구를 사귀지 않는 너와 아무도 안 쓰는 시를 혼자 조용히 끄적이는 나. 그 즈음의 우리는 울릉도와 독도였다. 분명 우리나라이긴 하지만 별로 눈에 안 띄는 곳. 전국적으로 맑은 날씨입니다, 라고 기상 캐스터가 말해도 우리는 전국에 속하지 않는다는 듯 비가 내리고 풍랑이 이는 곳.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곳.
네가 드로잉 노트를 들었다. 네가 내 시를 읽을 때면 (그것도 시라고 할 수 있나) 나는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어릴 때 잘못을 하면 투명의자에 앉았다. 투명의자는 처음에는 100%에 가까웠으나 점점 사라져간다.”
우리가 만든 모임의 규칙은 셋이었다. 평가하지 않기, 감상하지 않기, 설명하지 않기. 어른들이 보기에는 다 놀이일 거라는 말은, 평가와 감상과 설명 중 어느 한쪽에라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러나 모른 척 했다. 나는 내 글에 대해서나 너의 말에 대해서나 평가도 감상도 설명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가 와서 분위기가 그럴듯했다. 그때는 무엇보다도 분위기에 쉽게 취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 아프리카 백와 달팽이 키우거든? 상추 먹으면 상추 똥 싸고 당근 먹으면 당근 똥을 싸더라, 가늘고 꼬불꼬불한 똥을 흙 속에 두고 사방을 기어다녀.”
“비 와서 생각난 거가?”
“아니다, 준비된 멘트다.”
“뭐가, 똥 이야기가?”
나는 킬킬 웃었다.
“달팽이는 자웅동체라서 둘만 있으면 교미가 가능하대. 되게 편리한 신체 구조 아니가?”
“그래서?”
너는 어색해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때까지 남자와 입을 맞춰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어떤 남자의 입술보다도 부드러운 입술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드러움 때문에라도 나는 여자를 사랑하고 싶었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가 나누었던 첫 경험이었다.
우리는 이성애자였으므로, 그때는 그게 미친 짓이었다.
사실 한동안은 우리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던 것과는 다르다. 정말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법원에 발령받았을 때 나는 민형과 한켠의 창고에 주로 머물렀다. 민사와 형사 사건의 보존 기록을 정리하고, 접수된 소장을 각 계별로 분산하는 게 첫 업무였다. 두툼한 소장이 오면 동일한 규격의 다갈색 표지를 꺼내 앞뒤로 모서리를 잘 맞추었다. 그 다음 천공기에 넣고 체중을 실어 꾹꾹 눌러 구멍을 내고 구두 끈으로 표지를 엮고 일자를 기입해 책으로 만들었다. 어깨가 뻐근해질 즈음에는, 사람이 할 필요가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일이었다. 창고에는 숨은 공간이 많아서 숨을 공간도 많았고 숨쉴 공간도 많았다. 그곳에는 과장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계장들의 앙증맞은 독서실 책상이나 전날의 숙취로 힘든 직원들이 누워서 쉴 수 있도록 만든 라꾸라꾸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았다. 헬스장에 버젓이 안마의자가 있었지만 대놓고 쓰는 사람은 없었다. 헬스장이 있는 4층은 판사들의 층이기도 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에도 서늘한 민형 창고의 공기가 좋아서 가끔 사건 기록 심부름을 하다가 틈이 날 때면 공용의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쉬곤 했다. 모두의 눈에 노출되는, 법원 내의 모든 공간 중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보 기간이 끝나고 발령 받은지 육 개월도 채 안 된 신입 공무원이 거기 누워서 깜박 잠이 든 건 형사2계 계장의 말대로 미친 짓이었다.
팔이 없고, 턱이 빠지고 눈알 한쪽이 없는 존재가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면서 걸어온다거나
비가 와서 온몸이 젖었는데 그게 알고보니 피였다거나
머리카락이 땅에 질질 끌리는 여자가 축축하게 젖은 채 걸어온다거나.
비슷비슷하게 끔찍한 상처를 가진 존재들에 시달리다가 깨어났을 때는 온몸이 식은땀이었다. 불쾌할 정도로 끈적끈적한 땀이었다. 그때 달팽이가 떠올랐고 달팽이 이야기를 하던 네가 떠올랐고 우리의 키스가 떠올랐다.
“원래 거서 자면 악몽 디게 많이 꾸고 가위도 윽수 마이 눌려”
형사2계 계장과 밥을 먹으면서, 거기서 잤다고 이실직고를 했더니 예상 외로 계장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거 있는 민형사계 장부 수천 권이 다 학대 받은 사람, 강간 상해, 치인 사람, 죽은 사람 증거 사진들 수두룩 빽빽이 첨부된 사건 기록 아이가. 그런 데 가가 자면서 악몽을 안 꾸는 기 더 이상한 거 아이라?”
큰 마음 먹고 넘겨본 자료의 첫 장에는 찍은지 얼마 안 된 허벅지 사진이 있었다. 피멍이 세 줄로 나 있는 허벅지는 스스로 찍은 게 분명했다. 2024년 3월 15일.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인구 20만의 도시에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건이 넘치는 걸까. 무자비한 폭력의 끝에서 치료도 받기 전에 먼저 그 상처를 증거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심정은 어떤 걸까.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본 적 없는 보존 기록 몇 장을 넘겨보고는 그 후로 한 번도 그 창고에서 잔 적이 없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는 반면 어떤 기억은 어떻게든 남는다. 원과 한이 사진과 기록으로 모두 보존되어 있는 곳에서, 어떤 기억은 기억해줄 사람이 없어도 세상에 남아서 떠돈다.
“영통은 잘 했어?”
돌아와보니 너는 얼추 평상 위를 거의 정리해놓고 있었다. 한 켠에는 깻잎을 깐 일회용 접시 하나에 잘 구워진 고기 몇 점이 쌓여있었다. 언제 왔는지 고양이 다섯 마리가 평상 아래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고기 좀 얻어먹어본 애들의 자세였다.
“이거는 얘들 꺼”
네가 고기를 평상 아래로 내려놓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다투지도 않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여기 인스타 봤어. 여기 애들이 고기만 구우면 냄새 맡고 전부 기어나온다더라.”
“내려놓은 거 생고기 맞제?”
“추운데 들어가자”
우리는 대충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한 다음, 온돌방에 드러누웠다. 난방이 잘 되어있어서 온돌은 따뜻하다못해 뜨거울 정도였다.
“아, 배부르고 등 따시고 좋다. 이런 게 육퇴지.”
“너 되게 아줌마 같아.”
네가 말했다. 아줌마, 라는 말에 익숙해질 수 없는 나이지만,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르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가 잠시 내 옆에 없는 지금의 나는 이 정도 말도 웃어넘길 수 있다. “아줌마 맞는데, 서른네 살 아줌마”
“근데 육퇴가 뭐야?”
“아, 하긴 니는 모르겠다. 육아 퇴근. 애 하원하고 나서 잠들고 나면 그때부터가 육퇴다. 그런데 졸려서 영화 한 편 보기도 힘들거든”“그럼 우리 영화나 볼래?”
“영화 감독님이 추천하는 게 어떻노.”
“아까 음악 틀 때부터 너한테 선택권 줄 생각은 일도 없었어.”
너는 뭘 보지, 뭐 볼까, 중얼거리다가 밀양, 이라고 말했다.
“밀양 왔으니까 밀양 보자.”
빔 프로젝터를 켜고 스크롤을 아래로 내린 다음, 우리는 넷플릭스를 켰다. 검색해보니 밀양이 있었고 우리는 밀양을 보았다.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의 좋은 점은 끔찍한 장면이 나오든 슬픈 장면이 나오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거다. 극중의 전도연이 차가 고장 나서 멈춰있는 일차선 도로가 우리가 지나온 길 같아 보였다. 저기가 아까 우리가 오면서 봤던 밀양 시내 거기다. 맞아, 그런데 확실히 많이 바뀐 것 같아. 저 영화가 몇 년도 영환데 당연하지. 저기 나오는 애도 이제 스무 살 넘었겠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의문이 드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폰을 들고 검색한다. 평점도, 출연자도, 뒤에 이어질 디테일한 줄거리도.
“저기서 전도연이 서른세 살로 나오는데, 서른세 살이면 작년 우리 나이다.”
“재작년 우리 나이야. 이제 생일 나이로 하잖아. 우리나라.”
너는 건성으로 말하며 영화를 응시했다. 고개를 고정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까처럼 어지러워보이지 않았다. 화면의 색에 따라 눈동자의 색도 달라졌다.
“영화는 어떻게 하게 된 거고?”
“그냥, 여기저기 구르다가 보니까 하고 있더라.”
너는 여전히 여기 밀양이 아니라 영화 속의 밀양에 있는 사람처럼 영혼 없이 말했다. 어두운 방 안이 영화 속의 햇볕으로 가득했다. 나는 최근 한창 떠들썩한 배우 손시연 이야기를 했다. 막 뜨기 시작했는데 학폭 피해자들이 글을 올리면서 한창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배우였다. 한때 너의 최애였던 아이돌 출신의 배우. 손시연 이야기를 꺼낸 건 어쩌면 나는 꿰뚫어본 사실을 너는 꿰뚫어보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졸렬한 쾌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설마 지금도 최애는 아니제?”
너는 그제야 밀양에 박고 있던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래도 막상 그랬다니까 화가 나고 어이 없고 씁쓸하기는 하더라”
그리고는 덧붙였다.
“사실 내가 그 배우 좋아한 건 무슨 독립영화에서 담배 불 붙이는 거 보면서였거든. 겨울밤에 바람 부는데 두 손을 기도하듯이 모으고 불을 붙이는 거야. 저렇게 작은 불씨를 소중하게 지켜낼 줄 아는 사람이, 그 희고 작고 여린 손으로 누구를 때렸다고? 고딩 때?”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입 포인트가 다르다. 나도 그 영화를 봤다. 와, 어쩌면 저렇게 리얼하게 욕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지. 마치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연기할 필요도 없었던 장면처럼 그 배우의 역할에서 어떤 당사자성을 느꼈던 참이었다. 한 마디로 그때부터
“쎄하던데”
“그런 말, 아무 이유도 없이 직관적으로 사람 판단하는 말, 아닌가?”
평가하지 않기, 감상하지 않기, 설명하지 않기. 이제 그런 규칙 같은 건 없다.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없긴 하지.”
내가 말하자, 네가 웃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이랑 무관한 사람, 건드리지 말자.”
왜 거기서 울컥했을까. “야, 아줌마들은 원래 글타. 아줌마들 모이면 우리 인생이랑 무관한 사람들 보면서 욕하고, 웃고, 울고. 드라마를 왜 보노. 영화를 왜 보노. 다 우리랑 무관한 인생인데, 무관한 이야기인데 다들 빠져갖고 보잖아. 안 보면 무슨 대역죄인처럼 대화에 끼지도 못해. 나도 드라마 같은 거 살인, 불륜, 죄다 그런 소재만 나오는 거 하나도 안 보고 살았다. 그런데 그러면 애기 엄마들이랑 소통이 안 된다. 스몰토크도 안 되더라.”
네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낯선 사람을 보는 눈으로, 사이비를 전도하는 사람을 보는 눈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는 눈으로. 언제 정지 버튼을 누른 건지, 화면은 교회에서 꺽꺽 울다가 입을 벌린 채 굳어버린 전도연의 얼굴에서 멈춰 있었다. 너는 리모컨을 들어 밀양을 끈 다음 다른 영화를 검색했다. 이창동 감독의 ‘시’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너는 별채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은은한 커피 향이 번졌다. 네가 나갈 때 분명 나무귀신의 곡성이 났을 텐데 그것도 못 들을 정도로 푹 잤구나. 밖에는 봄비가 오고 있었고, 별채 문 유리 바로 앞에 고양이가 와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오늘은 음악 없나?”
“빗소리만 들어도 충분할 것 같아서”
“참, 니 머리 어지러운 건 좀 어떻노?”
“온돌방이 뜨끈해서 그런가 좀 좋아. 완전히 다 나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어.”
“다행이다.”
“여기 되게 괜찮다. 들어올 때부터 뭔가 기분이 좋았어. 빗소리도 좋고, 향도 좋고.” 너는 뭔가 개운한 얼굴이었다. 봄비 덕분인지 커피 향 덕분인지 아프던 머리가 나아서인지는 몰랐다. 편안해진 너와 달리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만히 영화나 봤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왜 그런 소리나 해댄 걸까. 없어 보이게. 술도 한 잔 안 마셨는데 숙취 같은 게 느껴졌다. 어제 네가 시달리던 어지럼증이 내게로 온 것만 같았다. 너는 괜찮아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고양이나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별채 쪽에 있는 벚나무는 어젯밤에 막 핀 건지 벚꽃이 보였다. 비 때문에 이미 제법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목련은 햇빛도 없는데 어제보다 더 많이 그을린 채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시드는 것도 인상적인 꽃들이 주목 받는다.
“좋다”
“좋다”
체크아웃까지는 세 시간 가까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여러 식물로 정성껏 인테리어된 욕조에서 번갈아 씻었고 몇 안 되는 짐을 간단히 정리했다. 그러고는 완전히 식은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시켰다. 많이 연해지긴 했지만 따뜻하게 데워진 음료 덕분에 속이 훈훈해졌다.
“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서울에서는 왜 내려오게 된 거고?”
어제부터 오늘까지 내내 고개를 느리게만 움직이던 네가 홱 돌아보았다. 등뒤에서 몰래 다가오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는 고양이처럼, 소름 끼치게 빠른 동작과 눈빛이었다.
“오래 참았네, 박지은.”“뭐?”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가 당혹스러워 순간 벙쪘다.
“너, 그게 궁금해서 나한테 계속 연락한 거 아니야? 내가 서울 가서 뭘하고 살았는지, 잘 되고, 이런저런 상 받고, 시집 내고, 영화 찍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시사회를 다녔는지, 이런 건 하나도 안 궁금해했잖아? 처음에 너한테 가끔 연락해서 그런 소식 전하면 영혼 없이, 응, 응, 잘됐네”
과민 반응이었다. 거기에서 너는 말을 멈췄고,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네가 생각해도 과민하다는 게 느껴졌을 만큼 다른 톤이었으니까. 나는 너의 말 뒤를 잇지 않았다.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바빴다고. 임용 준비에, 결혼 준비에, 그런 보편의 삶에 부합하는 것들-네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들이겠지만 내게는 어떻게도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침묵이 위상을 결정하는 순간이었으니까. 내 침묵의 끝에 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말은 누가 들어도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수준의 말인 거, 알잖아.”
그랬었나. 내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나. 그건 너무 네 중심으로 해석한 이야기 아닐까, 하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나?”
“뭐?”
“왜 서울에서 내려온 건지 물어본 게 전부이지만, 왜 서울에서 내려왔는지 물어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냐고,”너는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안경을 벗었다. 오 년 넘게 쓰고 있는 안경이다.
이젤 옆에 서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던 마을 방송국의 영상 속에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생각에 잠긴 척 하던 지역 소식지의 커버 사진 속에서, 내 뿔테 안경은 무척 촌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음악을 선곡했다. 빗소리만으로는 충분히 지워지지 않는 침묵이었기 때문에, 공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줄 곡으로 선택했다. 어제 영화에서 본 밀양의 도로를 달려, 유명한 돼지국밥 집에 도착해 아침 겸 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었다. 너는 배고팠는지 잘 먹었고, 깍두기는 두 번이나 리필해서 먹었다. 그러고는 차를 타기도 전에 웩웩거리며 먹은 것들을 모두 토했다. 몸매 유지 비결이 이거였나 싶은 심정으로 너의 등을 쓸어주었다. 한 시간 반을 달리자 IC가 나왔다. IC를 통과하면 너의 본가까지는 이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비는 계속 왔다.
“아까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했어.”
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응, 이라고 하면 영혼 없다고 그럴 거지?”
농담만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농담이니까. 네가 웃었다.
“우리가 뭐 싸운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는 십 대에 만났던 이상한 애들이었으니까. 안 통하는 게 더 많은 거겠지”
“안 통한다는 이야기 해서 그러는 건데, 지은아. 일단, 나 정말 아무 의도 없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뭔데”
“차 서랍에 부적은 왜 넣어다니는 거야?”
“부적?”
“아니, 내가 막 함부로 서랍 열어보고 그런 건 아니고, 아까 옷 닦느라고 휴지 찾다가 열었다가”
“응?”
“……네가 넣은 거 아니야? 빨간 봉투에 있는 그거 딱 봐도 부적이던데”네가 서랍을 열더니 손바닥처럼 작고 앙증맞은 빨간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알 수 없는 한자가 봉투 앞에 금박으로 박혀 있었다.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급브레이크를 밟고 비상 깜박이를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빨간 봉투의 입구를 여는 내 손은 미세하게 그러나 네가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떨렸다. 안에는 한지 재질의 노란 종이와 붉은 선이 구불구불 불길한 필체로 휘어져 있는 글자가 들어있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진지한 물건이다.
“정말 네가 넣은 거 아니야?”
네가 조심스럽게 내 눈을 보았다. 남편일까. 남편이겠지. 그래, 남편이다. 뭘까. 무엇일가. 부귀영화 무병장수 뭐 그런 거 아닐까. 하지만 그러면 이상하잖아. 그런 거라면 왜 나 몰래 내 차에 넣어놓은 걸까?
“나 아니라 네가 뇌진탕 온 것 같은 얼굴이다?”
나는 멍한 눈으로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의 악의적인 장난이라면 차라리 좋았겠지만, 아닌 걸 안다.
밥주걱에 취업할 회사명과 제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서 안 신는 신발 속에 넣어놓는 사람. 아침마다 일어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적는 사람. 꿀 단지 아래에 십 원짜리 동전을 깔아놓는 사람.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검증되지도 않은 이상한 풍수를 유튜브에서 본 대로 따라 하는 사람, 그래, 알고 있다. 차 안의 부적도 어쩌면 내가 몰라야 효용이 있는 비방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건 은지 너에게 밑바닥까지 들킨 내 얼굴이지 내가 몰랐던 사실에 충격 받은 얼굴은 아니다.
그러나 아쉬웠다.
옛날의 너였다면 이걸 찢어줬을 텐데, 욕을 해줬을 텐데, 나와 같이 다 버리고 떠나자고 이야기해줬을 텐데, 하다못해 개안아, 개안아 하고, 과장된 말투로 빈말이라도 해주었을 텐데. 너는 남의 일을 바라보는 남의 얼굴로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알고 있다. 그 얼굴이 지금의 너와 나를 위한 최선인 거라는 걸.
너를 내려주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댔다. 오래된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이라 비 내리는 날에는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난다. 차 문을 열지 않고, 부적을 찢었다. 무얼 기원하는 부적이든, 그걸 찢어서 동티를 입든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다. 나는 폰을 들고 너의 지난 게시물들 하나하나에 좋아요,를 눌렀다. 제주에서 감귤을 따고 있는 너, 사찰 같은 곳에서 두부를 굽는 너, 트럭 뒷칸에 앉아 큼직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너, 쇼핑몰 한가운데서 태그도 안 뗀 바지를 입고 입는 너, 색색의 그래피티가 가득한 무너진 벽 앞에서 고양이를 들고 있는 너.
너는 너무 많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읽지도 보지도 않고, 엄지를 옮기며 기계적으로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누를 때마다 빈 하트가 빨갛게 찬 하트로 변했다. 꼭 피가 가득 채워지는 심장 같았다. 옛날 우리의 노트에 빈자리가 있다면 분명 그렇게 썼을 것 같다.
나는 왜 너를 만나고 싶어했던 걸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많은 게시물들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와중에 너의 새 게시물 하나가 올라왔다. 방금 올라온 게시물인데 ‘좋아요’는 벌써 30개가 찍혀 있었다. 어제 밀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어제는 햇빛이 가득했었으니까. 너는 어느 틈에 그걸 찍고 있었을까. 그건 앞유리창으로 비치는 햇빛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있는 너의 손, 그리고 密陽이었다.
2
누군가와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함께 사는 사람과의 아주 작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아직 젖어있는 화장실 문을 닫을지 말지 같은 것들. 남편은 화장실에 측간신이 있다고 믿었다. 변기에 오래 앉아있으면 귀신이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센다. 세는 일이 끝나면 귀신이 몸에 들어선다. 같은 믿음이 있었고 밤에는 늘 문을 닫아두었다. 아침에 화장실 문을 열자 기분 나쁜 습함이 느껴졌다. 왜 문을 닫아두었냐고, 물기도 다 안 말랐는데 습도도 높아지는데 이게 다 곰팡이고 물때가 된다고 말했다.
“측간신한테 잘 보일 생각이면 열어서라도 깔끔하게 환기시키는 게 맞지 않아?”
내가 딴지를 걸어도 남편은 웃으며 못 들은 척 한다. 그런 믿음의 일환으로, 지금 내가 켠 남편 노트북의 바탕화면은 눈부신 일출日出이다. 한낮에도 일출, 비가 우중충하게 내리는 장마에도 일출, 새벽에도 일출. 바다 위에서 높지 않게 떠 있는 해가 사진 상으로만 봐도 눈부시다.
“내가 사주가 을축일주인데, 언 땅에서 자라는 여린 식물이라더라고. 그래서 해를 가까이 두고 살면 좋대”
하지만 저게 정말 일출이 맞나. 나는 이 배경화면을 볼 때마다 의심한다. 붉은 하늘과 붉은 바다의 가운데에서 해는 솟아오르는 게 아니라 내려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자주 들어가는 p2p 사이트는 즐겨찾기 목록에 있다. 안 되면 할 수 없지, 라는 심정으로 들어왔지만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모두 자동 저장이 되어 있어 로그인이 되었다. 작정하고 덤벼들지 않으면 오히려 수월해지는 일들이 있다는 걸 살면서 알게 된다. 문제는 작정하고 덤벼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 매번 일어난다는 것이다. ‘받은 자료’의 목록을 보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방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거친 숨소리와 헐떡거림, 일본어 목소리의 주인들이 아마 저기 다 있겠지. 하는 소리가 아니라 당하는 여자들의 목소리. 나는 영화 카테고리로 들어간다. 온갖 제목들이 형형색색으로 올라와 있다. 정신 없는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닮았다. 역시 거지 같다.
놀라운반전 SF 액션대작 [[유령들의 범죄]] 공식자막 초고화질
7월 따끈한 신작 히어물의 결정판 ☆☆ 미싱-잃어버린 애인을 찾아라
친구와 클럽 가서 원나잇 쓰리썸 [무삭]
유부녀들 1080p –돌이킬 수 없는
ㄹr이언 선더스 주연 진실의 0역 ★블루레이 화질★
제목들 사이에서 나는 너를 검색한다. 너의 흔해빠진 이름은 예상대로 지저분한 제목들 속에 들어있다. 입이 더러워질 것 같아 언급하고 싶지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제목들이다. 흔한 여자 이름의 운명을, 나는 이십대 초반에 호프집에서 한 번 겪어본 적이 있다.
지은 씨, 지은 씨, 여기 계세요?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는데도 남자는 눈길을 둔 데 없이 두리번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이상했지만 얼결에 손을 들었다.
제가 지은인데요?”
당연히 잘못 찾은 걸 거야 생각했는데, 남자가 와, 씨 대박! 하면서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고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가까이서 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남자였다. 벌게진 눈과 거친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초면에 정말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술게임 중이거든요. 여기 골목 술집들 돌면서 이름이 지은이인 여자 데려오면 오늘 술값 뿐빠이 면제래요. 저희 지금 진짜 많이 마셔가지고 진짜, 정말, 혹시 실례가 안 되신다면 잠깐만 저랑 가서 민증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잠깐이면 되는데.
많이 취한 사람들 특유의 과할 정도로 비굴한 말투가 거슬렸다. 나와 같이 온 애들은 오! 미쳤다! 테이블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역시 많이 취한 사람들 특유의 격한 반응이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소주병이 네 개가 텅 빈 채 서 있었다.
아니오.
남자는 더 조르지 않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흔해빠진 이름, 지은씨를 찾으러.
다행히 너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이름은 너와 달리 낯선 이름이다. 고요진, 하혜령. 그래, 낯선 이름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故이은지 감독의 데뷔작 – 바람かぜ (유성빈 고요진 하혜령 주연)
너의 이름 앞에 붙은 故가 아직도 낯설다. 네가 죽고 채 세 달도 안 되어 출간된 너의 유고 시집에 붙은 떠들썩한 띠지가 낯선 것처럼. 시집 속 너의 생몰연대-태어난 해만 있고 죽은 해는 없는 파릇파릇한 시인들 사이에서, 홀로 물결 표시와 닫힌 괄호를 갖고 있는 네가 낯선 것처럼. 죽은지 얼마나 지나야 故를 붙이지 않게 될까.
제휴도 맺지 않은, 그러므로 업로드도 다운로드도 영락없이 불법인 너의 영화를, 나는 클릭한다.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너의 영화가 100% 완전히 남편의 노트북 안으로 다운 받아졌다. 눈앞에 뜨끈한 김이 오르는 간짜장 그릇을 앞에 둔 사람처럼 만족스러워진다.
죽은 너는 살아있을 때보다 잘 나가고 있다. 죽음과 젊은 시인의 이름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듯이 짝짝꿍이 잘 맞다. 텍스트힙 열풍이 부는 SNS세대 사이에서 너의 시들은 토막난 채로 떠돌아다닌다. 어떤 시는 벚꽃잎 몇 장과 함께, 어떤 시들은 아이슬란드의 설원을 배경으로, 어떤 시들은 고즈넉한 한옥의 다과상 옆에서, 어떤 시들은 가지런히 모아놓은 조개 껍질 옆에서, 어떤 시들은 하늘을 향해 높이 들린 채 #이 붙은 채로 많은 사람들의 감성이 되고 있다. 나는 매일 죽은 너의 심정으로 그런 것들을 바라본다. 하나하나 좋아요,를 누르면서 변태처럼 은밀하게 즐거워한다. 은밀하게 우울해한다. 은밀하게 슬퍼한다. 너의 사인은 뇌출혈이다. ‘두통, 현기증, 마비 등의 증상에 이어 발작, 구토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밀양으로 떠나던 날 하루 전 소파를 옮긴 너의 엄마는 이 모든 사실을 알까. 나는 은밀하게 두려워한다.
남편의 노트북에 USB를 꽂아 너의 영화를 옮긴다. 남편 노트북 안에 있는 너의 영화는 지운다. 네가 만든 영화를 단돈 삼백오십 원에 받은 사람은, 불법을 저지른 사람은 오롯이 나의 남편이다.
“엄마, 뭐 해?”
“어, 그냥 할 거 있어서”
“엄마 근데에 나아 있잖아아 혹시이 그거어 우리이 색종이이 접기이 할 수 있어?”
부탁할 때 느릿느릿 말을 늘여가면서 말하는 건 어디서 배운 걸까. 고작 다섯 살인데 내가 가르쳐주지 않은 낯선 말이나 억양, 말투로 말할 때마다 어디서 배운 걸까, 어디서 주워들은 걸까,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동원이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그러니까 제 아빠로부터 하루아침에 친구처럼 함께 지내던 집안의 모든 인형을 다 빼앗겼다. 저마다 제 이름이 있는 인형들- 아리, 코비비, 뽀로로, 루피, 토끼, 아기고양이, 슈야, 하츄핑은 지금 동원이가 서 있는 문 바로 옆의 빌트인 장롱 맨위의 수납칸으로 밀어넣어졌다. 이런 거 다 안 좋은 기운이래.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동원이가 인형들 어딨어? 응? 어딨어? 하고 울먹이며 한참을 찾았지만 남편은 해맑게 웃으며 글쎄 다들 동화나라로 잠시 여행 다녀온다고 했는데, 하고 말했다. 치밀하게 준비한 종이쪽지까지 펴서 보여주면서.
‘동원아, 우리 동화나라 다녀올게. 열 밤만 자면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잘 지내야 해.’
남편이 사인펜으로 미리 써놓은 거였다. 오달지다 싶을 만큼 또박또박. 어차피 글을 읽지도 못하고 제 이름을 그리듯이 쓰는 게 전부인 동원이를 속이기 위해 그런 정성까지 들이는 게 어이없거나 무섭다기보다는 징그럽기만 했다. 징그럽다는 말만이 유일하게 들어맞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음에도 네가 내 남편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이다. 내 남편을 잘 모르는 채로 죽어서 다행이다.
“우와, 우리 나이에도 그래 갑자기 갈 수가 있구나.”
그런 소리를 하는 남편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자기, 조문 다녀와야 되는 거 아니가? 그래도 고등학교 때 친한 동창이었다며”
그러나 나는 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나에게 너의 죽음을 전해준 건 너의 가족들도, 함께 아는 지인도, 하다못해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에게 단체로 보내는 부고 문자도 아닌, 인스타그램 계정이었으니까. 어느날 너의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 아래 ‘추모’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작은 화분 모양과 함께 ‘기념 계정으로 전환된 계정입니다. 기념 계정은 고인의 삶을 추모하고 위안을 찾기 위한 공간입니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게 뭘까.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더 이해를 못했다.
일찍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에서 똑같은 문구와 화분 모양을 보기 전까지는, 모든 게 장난인 줄 알았다. 만우절 같은 건 줄 알았다. 너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이미 일주일 전에 너의 장례식장과 발인이 짤막하게 올라온 부고 기사가 떠 있었다. 사인은 뇌출혈. 에메랄드빛과 붉은빛이 섞인 머리카락을 반묶음한 너의 프로필도 내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상단의 고정게시물은 너의 첫 시집 속 시인의 말이다.
-죽기 직전의 마지막 말까지 거짓이라는 건 슬픈 일이다.
왜인지 그 말이 너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아, 종이 접기이 빨리빨리”태블릿 화면을 켜자 동원이가 유튜브를 눌렀다. 화면은 전부 종이 접기 알고리즘으로 채워져 있다. 네모반듯한 색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펴고 다시 접는다. 한 번이라도 접힌 자리에는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접으면 그 흔적은 종이를 접는 내내 걸림돌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흔적들. 몇 번이고 화면을 일시정지해가면서 많은 접힘과 구김의 반복 끝에 겨우 개구리 한 마리를 접는다. 동원이가 사인펜을 들고 개구리 눈을 그려준다. 눈을 그릴 때는 꼭 속눈썹을 함께 그린다. 속눈썹이 있어야 예쁘지. 보라색 개구리는 엉덩이 부분을 누르면 뛴다. 아니 튄다. 동원이는 잠깐 갖고 놀더니 다른 걸 접어달라고 칭얼거린다. 애써 접어놓아도 버려지는 건 순식간이다. 다시 찾는 일은 없다.
3
정원은 두렵다. 정원에게 A6M 일명 제로센이라 불리는 전투기의 급강하 제한속도와 조종법을 알려준 교관 게이키치 소대장의 전사 소식 때문이었다. 사실 전사는 아니었다. 아카기는 얼마 전 다시 선회하는 항로를 따라 폭격도 돌격도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 게이키치 중대장이 분위기에 못 이겨 결국 할복했다고 귀띰해준다. 아카기의 입에서, 칙쇼, 칙쇼 같은 말이나 야스쿠니, 덴노 같은 불경한 말들이 쏟아진다. 엔진 출력이 1000마력에 불과한 폭격기 A6M의 기동력은 기체 경량화 덕분인데 거기에 100kg에 달하는 폭탄을 싣고 비행해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미 함대에 돌격해서 죽으라는 건 무의미하게 죽으라는 소리다.
욱일승천기가 승천과는 어울리지 않게 축 처져있는 비행장과 웃통을 벗고 열을 맞춰 운동장을 돌아도 기합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힘없는 구보와 넋을 놓아버린 군인들이 있는 이 섬에서 그마나 활기가 남아있는 것은 자연-계속되는 파도와 매미의 울음소리, 그리고 맹렬하게 울리는 공습 경보 사이렌과 위안소다.
쟤 또 운다.
정원은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엎드려 뒤통수를 감싸쥐고 귀를 찢을 것처럼 큰 이 굉음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마음과 차라리 네이팜탄이 제대로 떨어져서 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끝내버렸으면 하는 마음 사이를 오간다. 정원의 신풍 출격이 결정된 직후부터 마음은 후자 쪽으로 조금 더 확실히 기울었다.
걔 또 울더라.
아카기가 말하는 건 위안소의 밍밍이다.
조선족 애라는데 그나마 울기라도 하는 애라 그런가 걔만 더 찾는 거 같아.
아카기가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은 어떻게 참는 걸까, 정원이 입술을 깨문다.
너도 갔다 와. 그거라도 하고 오라고.
덮쳐오는 몸들과 허술한 기모노 차림의 몸 은밀한 곳곳에 재미로 새겨놓은 낙서와 온갖 종류의 폭언과 조롱 속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게 웃음이고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게 울음이다. 그러나 울 수 있다니. 며칠 안으로 제 목숨이 어떻게 될지를 알고 있는 군인들의 광기 앞에서 혼이 나가는 건 당연한 건데 울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니 그게 가능할까. 대륙의 사이렌이라고 불리는 밍밍을 찾는 줄은, 그래서 언제나 가장 길다.
정원이 그 줄 끝에 선 건 충동적이었지만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몇 마디라도 조선어로 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아니, 죽은 사람처럼 살아있는 사람들말고 살아있는 사람과 말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줄이 점점 짧아질수록 정원은 밍밍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악-! 으흐윽-!
살려달라거나 멈추라거나 하는 말 같은 건 없었다. 포악한 짐승 앞에서 한 인간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몸이 내는 소리였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군인들 사이에서 홀로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면서 줄에 서 있는 군인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웃고 있었다. 동전을 잘그락거리기도 했다. 정원은 제 차례가 다가올수록 줄에서 이탈해버리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적어도 자신이 위안소에 들어가 있는 십여 분 동안만큼은 이 울음소리를 멈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뭔데, 이거 완전 위선자네)
천막으로 칸이 나눠져 있는 위안소에서 정원은 밍밍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밍밍은 주황과 노랑이 섞인 기모노를 차려 입고 일본식의 짧은 머리를 한 채 낡은 철제침대 위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노려보는 눈도 허망한 눈도 아닌 예상 외의 단단하고 냉정한 눈으로 정원을 보았다.
나는 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다.
동남 방언이 섞인 갑작스러운 조선어에도 밍밍의 눈은 흔들림 없이 정원을 마주보고 있었다.
조선말로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밍밍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바닥에 뱉었다. 바닥에는 군홧발의 젖은 발자국이 무수히 덮여 있었다.
어이어이, 하야쿠 이키나사이, 조센노보즈! 소리가 들린다. 정원에게 하는 소리다.
꺼져, 일본 군인이랑 조선어로 할 얘기 같은 거 없으니까.
밍밍은 일본어로 말했고 정원이 나갈 때까지 침묵했다. 적의였다. 대한 독립의 의지나 제국에 대한 적의 같은 게 아니라 인간-정확히는 남자라는 존재에 대한 적의였다. 정원은 그녀의 적의가 자신을 고스란히 관통할 수 있도록 서 있었다.
편의점 프린트로 십여 년 전 네가 메일로 보내주었던 소설을 출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장당 80원짜리 A4용지가 뽑혀나오는 동안 라면 냄새를 맡는다. 네 명의 초등학생이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아이, 옷에 뭔가가 묻어있고 신발이 지저분한 아이와 자꾸만 눈이 마주친다. 불청객을 바라보는 표정이다. 나는 남은 테이블에 앉아 너의 소설 「신, 추락하다」 를 읽는다. ‘카제’와 같은 줄거리의 소설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 문예창작학과 현상공모에 이 소설을 보낸 너는 예심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한 번 읽어봐. 어때?
반감이 들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어차피 인터넷으로 긁어서 찾은 자료들로 쓴 거 아니야? 이를테면 네 소설에 묘사된 강제로 동원된 열일곱 남짓한 어린 위안부들이 저녁마다 콘돔의 일종인 삿쿠를 빨면서 느꼈을 모멸감을, 열일곱 살에 자의도 아니고 타의로 자살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우리와 같은 열일곱 살이라는 거 말고는 하나도 이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이 큰 간극을 모른 척하고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거야?
그러나 나는 그때 이런 말들을 모두 참았다. 너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게 그런 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을 숨기면서까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 너의 소설은 어린 내가 읽기에도 설익은 문장들이었는데, 영화도 네가 열일곱 살 때 썼던 소설처럼 설익은 데가 있었다. 흑백영화로 모호하게 가려진 듯 보이지만 어느 분교의 운동장임이 역력한 야외 세트가 그랬고 부자연스러운 일본어가 그랬다. 곧 죽으러 가는 소년의 내면에 몰입하던 너의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위안소에서 밍밍과 조우하는 장면의 비중이 더 컸다. 전투기 같은 건 등장하지도 않았다. 대신 배우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독기가 가득했다. 정말 배우들이 맞는 걸까. 그들은 덮쳐오는 공포와 죽음 앞에서 와들와들 떨었고 새된 비명을 지르는, 연기를 했다. 그렇지만 잘 알고 있다. 어설프고 설익은 주제에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들만큼 동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아마도,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 특공대로 뽑혀 명예로우며 (...) 우리는 미그기가 실린 적군 함대에 돌격하여 그들을 가루를 내어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세요. 걱정을 끼쳐드린 것은 불효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겠지요, 동생들아 너희를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 아, 나는 이제 씩씩하게 나아가겠습니다. 역사를 지키는 동포여, 각자가 특공대가 되어 이 역사를 영원히 지켜주세요. (...) 야스쿠니에 부름 받은 이 몸, 안녕히...]
영화의 마지막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톤을 가진 일본어였다. 일명 ‘기러기룸’이라고 하는 곳에서의 광기어린 마지막 날 밤에, 카미카제 특공대로 뽑힌 소년들이 유서를 쓰고 울고 소리 지르고 난동을 피우는 모습을 끝으로 화면이 어두워진다. 그 다음 나레이션처럼 변성기가 막 지난 소년의 목소리와 함께 자막이 나왔다. 듣자마자 알게 되는 건 이건 진짜 목소리라는 것. 음질도 좋지 않다. 안 좋아도 어차피 일본어는 잘 모르니까 상관은 없다. 너는 왜 이걸 엔딩이라고 쓴 걸까, 싶은 순간 네가 대답이라도 해준 것처럼 떠오른 말이 있었다.
-죽기 직전의 마지막 말까지 거짓이라는 건 슬픈 일이다.
나는 그동안 이 말이 너의 자기고백이라고 생각했다. 삼 년 전에 나온 시집인데 마치 죽음을 예감한 사람 같은 시인의 말을 두고 어떤 사람은 ‘성지 순례’라는 댓글을 달았다. 너의 시집 속 ‘시인의 말’은 언제나 맨 위에 있는 고정 게시글이다. 나의 좋아요,를 포함해 수없이 많은 좋아요, 를 받으면서 불멸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진 한 장.
너한테 진심이라는 게 있긴 있었니.
너의 게시물에 늘 좋아요, 만 누르던 나의 첫 댓글이었다.
얼마 안 되어 바로 반응이 왔다. 며칠 상간으로 그동안 뜰 일이 없었던 댓글 알람들이 뜨기 시작했다. 고인 모독이라느니, 누군데 이제 와서 친한 척이냐 아는 척이냐느니, 죽어서 말 못하는 사람이 증명할 길도 없게 헛소리냐, 하는 식의 악플들이었다. 악플은 증식하여 내 계정의 지극히 사적인 게시물에도 달리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단어만 읽는데도 마음이 헐었다. 이삼일 버티다가 댓글을 삭제했다.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닫아놓았다.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남편이 차를 가져가기도 했고 남이 운전해주는 동안 마음 편히 책을 읽고 싶어 어디 갈 데도 없으면서 버스를 탔다. 갖고 나온 건 계절마다 몇 편의 단편소설을 묶어서 내는 얇은 엔솔로지였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등기과 민원접수계 계장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았다. 휴가 중입니다, 메시지를 남기려다 말았다. 사람 키보다 높은 눈높이에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과 버스 특유의 거친 덜컹거림에 몸을 맡기는 기분이 오랜만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굴러가는 기분이 오랜만이어서 좀 누리고 싶었다. 그 모든 걸 천오백 원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책은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다.
갓 튀긴 꽈배기 냄새가 은은하게 났는데 앞의 할머니가 쥐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나는 것 같았다. 온 버스에 그윽하게 퍼진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쓸데없는 생각만 했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선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위태로워 보일까.
오늘따라 사람들은 또 왜 이렇게 많지.
왜 사랑합니다, 일까.
날짜를 보니 10일이었다. 끝자리가 0으로 끝나는 날은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다. 그래서 유독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버스 출입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연신 “사랑합니다” 소리가 났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경로 무료 승차카드를 대면 사랑합니다, 음성이 나오는 아이디어는 누가 생각해냈을까. 내리기 전까지 학생입니다, 는 단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다.
원래 종점까지 가려했지만 종점에 다 못 가서 “이번 정류장은 성지예술고등학교, 성지예술고등학교입니다.” 하는 안내방송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책을 읽으려고 버스를 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지 순례였던 것이다.
밀양에 다녀와서 한 달쯤 지나 네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와 만났던 곳은 우리가 함께 다녔던 고등학교였다. 거기서 만나자고 한 건 너였다.
“근데 왜 굳이 거서 만나노?”
까페, 영화관, 하다못해 근린공원 같은 데도 많은데 굳이 왜 그 높은 데 있는 학교에서 만나자는 건지.
“니 딱 봐도 운동부족이던데?”
매일 아침 등교하면서 애들은 종아리가 터질 것 같다고, 왜 아침마다 등산을 해야하냐고 징징거렸다. 산 중턱에 있는 학교. 밤늦게 자율학습이 끝나면 스쿨버스에서 서서 가지 않으려고 구르듯이 달려내려가던 학교.
“어, 니 사투리 회복했네.”
왜 그것만으로도 친근하게 느껴졌을까.
“어색하나? 어색하면 서울말 도로 쓰고.”
“아니, 서울말 안 쓰니까 좀 더 니 같다. 근데 다시 올라간다며. 그럼 가서 서울말 써야 되잖아.”
내 말에 너는 좀 웃었다. 전화 너머로 재즈 연주 같은 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쓰면 되지. 외국어도 아니고.”
학교의 경사진 초입은 그대로였고 산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그대로였다. 밤꽃 냄새였다. 한 달만에 만난 너는 밀양에 가기 전 만났을 때보다 밝아보였고, 두통도 다 나았는지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간을 찌푸리거나 하는 법도 없었다.
“야, 이 냄새 그거다. 왜 그때 에어컨 고장 났을 때 창문 열고 야자할 때 어떤 애가 남자애들이 산에서 단체로 막 자위하나, 그래갖고 애들 다 깔깔거리고 넘어갔잖아. 나는 그때 그게 뭔 뜻인지도 몰랐는데.”
몰랐으면서…… 너는 그때 그런 소설을 썼구나.
“그래 마이 역한가? 나는 맡기에 괜찮은데. 근데 있잖아 정말 그... 액체에서 이런 냄새가 나나? 니는 맡아봤제?”
“헐, 진짜 아직 모른다고?”
네가 그렇게 반문하는 나를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모르는 게 이상한 거가? 나는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나는 더 말을 잇지 않았고 뭔가 어색해진 기류 속에서 너도 말없이 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 와중에도 밤꽃 냄새는 들큰하고 집요하게 나서 자꾸만 몇몇 섹스의 끝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행위가 끝나고나서야 감각할 수 있는 것. 정액이라는 말조차 굳이 빙 돌려서 “그 액체”라고 표현하는 네가 새삼 믿기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자 네가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다시 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폰을 꺼냈고 폰을 통해 바로 옆의 네가 뭘하고 있는지 보았다. 사람들이 올리는 너의 책을 찍은 사진들, 하나하나 모두의 사랑을 받고 모두에게 받은 사랑을 스토리로 몇 분 사이 계속 올리고 있다는 걸, 나 역시 폰의 알람으로 보았다. ♡를 누를까 하는, 짖궂은 마음을 참기로 했다. 서울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거였으니까.
등산하는 기분으로 교문 앞까지 도착했을 때 나는 자꾸 헉헉거리며 짧게 내뱉게 되는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었다. 흰머리가 빽빽하게 난 수위가 나와 우리의 행색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로 왔는교?
“저희 이 학교 졸업생인데요. 이창원 선생님 뵈러 왔어요.”
“약속하고 오셨습니까?”
너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수위는 초소로 들어가더니 볼펜이 끈으로 연결된 방문대장 하나를 들고나왔다.
“여기다 성명이랑 연락처 좀 적어주소”
먼저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너에게 방문대장을 건네주었다. 너는 방문대장에 이은지 대신 김정인, 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김정인은 고3때 우리 반 반장이었고 이창원은 고3때 담임이었다. 수위는 뭔가 미심쩍은 듯 우리를 살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어떻게 선생님 만나러 오셨담서 두 분 다 빈손이라 갖고.”
“그게 잘못된 건가요?”
대화가 뭔가 삐딱한 쪽으로 빠질 것만 같아 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실은 저희 얼마 전에도 창원 샘 만났거든요. 그때 좀 못한 이야기가 있어갖고 학교까지 온 건데요.”
수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다른 말없이 초소로 들어가버렸다.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차양이 있는 곳에 걸터앉았다.
“니 본명이 김정인인 줄 몰랐네”
너는 웃었다.
“혹시 연락처도 걔 연락처 썼나?”
“그랬겠나. 나 학교 다닐 때도 걔 연락처 몰랐는데. 연락처는 그냥 마음대로 썼어. 별 문제 생기기 전까지는 저거 평생 확인할 일 없을걸. 와, 근데 나는 선생님 만나러 빈손으로 오는 게 이상한 건 줄 몰랐네. 무슨 미국 이미그레이션인 줄 알았어.”
너의 말투는 은연 중에 반쯤 서울말로 돌아와 있었다.
“근데 니는 계속 여기 살 거가?”
네가 물었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네가 말하는 여기가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 무지, 혐오, 옛날식 사고, 아무리 애써도 지방 소식지 정도에나 이름을 남기는 정도의 삶이라는 자괴감 섞인 감정, 동네 마트에 가면 공공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촌스러운 비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에서의 삶. 촌스러움. 촌스럽다는 건 도시가 아닌 시골스럽다, 라는 의미인 걸까. 촌스럽다는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뜻이면서 수도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쪽 지방의 이런 곳-대다수의 사람들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런 읍과 어울리는 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럼에도 반문했다.
“그게 무슨 뜻인데?”
“나는 솔직히 여기가 좀 음습하고, 폐쇄적인 곳이라고 생각해. 살고 있으면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서울 가서 살아보니까 보여. 밖에서 봐야만 보이는 거 있지”
촌에서 일어나는, 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온갖 사건 목록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어둠을 틈타 일어나는 우발적인 범행들이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는 길, 조명이 없는 길, 조명되지 않는 일, 있었던 일이 없어지기도 하는 세상과 도심보다는 촌이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보편의 윤리가 되어가는 순간들-밖에서 봐야만 보인다니. 안에서는 보이는 게 아니라 겪는다.
“그래서 학교도 그만두고 도망치듯이 떠난 거가?”
“도망치듯이… 아, 너는 진짜 말에 가시가 너무 많아. 항상 곱씹게 된다니까.”
그날 밀양에 다녀온 이후 너는 한 번도 남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심 네가 언젠가는 물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부적은 뭔데? 물어봤어? 어떻게 됐어? 그날? 같은 노골적인 호기심을 동반한 질문 세례에 그냥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부적은 거기 그대로 두었다고 대답하는 일이 얼마나 힘겨울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촌스러움 그 자체인 우리의 삶을 향해 무심한 듯 정곡을 찌르는 너 특유의 화법이라면, 그러니까 내가 내심 피하고 싶으면서도 예상했던 너의 질문은,
“니는 계속 이렇게 살 거가?” 였다.
그런데 너의 질문은
“니는 계속 여기 살 거가?” 였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비슷한 얘기를 하기는 했다. 솔직히 읍은 읍이잖아요. 여기 애들 욕하는 거 못 봤죠? 놀이터에서 가끔 보이는 아이들 중 몇몇은 머리를 샛노랗게, 혹은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고작해야 여덟 살이나 아홉 살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도비만이고 손에는 늘 과자봉지나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으며 음란한 욕을 거리낌없이 내뱉는다는 말은, 마치 나쁜 것들만을 모두 모아서 본인들이 도달하고 싶은 결론에 설득력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에 부합하는 이미지의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몇 번이나 실제로 마주하고 나서는 부모들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애들이 뭔 죄가 있겠어요. 방치된 아이들은 다 부모들 죄다, 그런 아이들 몇몇이 독소처럼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쳐 반 분위기를 흐리고 다른 아이들을 나쁜 쪽으로 물들인다, 어떻게든 초등학교 가기 전에 무리를 해서라도 학군이 좋은 곳-인근의 광역시로 주소지 이전을 해야한다고, 꼭 피난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서두르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그런 얼굴들을 마주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림책 작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를 느끼는 순간 달팽이들이 눈을 느낌표 모양으로 세우는 일러스트를 몇 번이고 고치고 새로 그리는 작업을 반복하다가 나온 참이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달팽이들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자신만의 속도를 갖고 있고 자신만의 숨을 곳을 갖고 있는 달팽이들은 그러나 몸이 축축하게 젖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건 키우는 사람의 눈물이다. 양육자들이 참고 삼키는 눈물로 인해 이 건조한 세계를 견뎌나가는 그들에게 삶이 당연해진다는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이었다. 동원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는 친구 승재를 보며 쓴 것이기도 했다. 그 누구와도 눈 맞추지 않는 아이였다.
한창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즈음 내가 정신이 딴 데 가 있다는 걸 알아챈 한 엄마가 내 쪽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동원이는 그래도 남자애라.
엄마 셋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뒷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뺀 세 엄마가 모두 딸을 키우고 있었다. 마치 다른 종족이라도 보는 것처럼 선을 긋는 눈길. 아홉 살짜리가 내뱉는 음란하고 속된 말 앞에서 무방비가 된다는 것의 공포가 무엇인지, 엄마로서, 같은 여자로서 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그런 이야기를 다 마쳤을 때 너는 단 네 음절을 발음했다.
“빨리 떠나.”
그날 너와 함께 걸었던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가면서 나는 그래, 나는 계속 여기 살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애도 안 키워봤으면서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살면서 삶의 거처를 바꾼다는 게, 떠나는 게 어디 그리 녹록한 일인 줄 아냐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너야말로 애 같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하고 반박은 하지 않았던 건 몇 마디 말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나도 그리고 너도 이미 그때 직감하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네가 말한 여기는 우리가 함께 나고 자란 이 작은 도시가 아니라 이 세상을 뜻하는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너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기묘한 예감처럼 더는 네가 살고 있지 않은 이 세상. 하지만 너는 죽고나서도 이 세상 여기저기에 조금씩 남아있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채 추모 계정이 된 너의 인스타그램으로, 시로, 영화로, 여전한 밤꽃 냄새 속에서 함께 생생한 기억으로.
네가 이 세상에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남아있다는 사실이 나는 좀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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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미움의 목록을 작성해 본 적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참을 수 없는 요의의 고통 속에서 네비게이션 상으로 감질나게 줄어드는 휴게소까지의 거리만 바라보고 있을 때 시속 80km도 안 되는 속도로 느릿느릿 달리는 앞의 트럭에 바짝 붙어 가면서 그를 미워해본 본 적이 있다.
기차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서 풍기는 땀 냄새와 씻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쉰내가 나를 괴롭힐 때 이름도 모르는 그 옆사람을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내내 미워한 적이 있다.
미리 일러주었음에도 내가 원했던 정도 이상의 앞머리를 잘라버린 미용사를, 앞머리가 봐줄만한 길이만큼 자라는 열흘 정도의 시간 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미워한 적이 있다.
존재만으로 미움을 사는 이들은 모두 내 마음 속에서 탄생한 이들이다. 거기엔 미안하지만 너도 있다. 이 세상에 없는 네가 내게는 미운 사람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미워하는 게 이런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게 다 잘못된 미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장거리의 요의와 지독한 냄새와 거지 같은 앞머리를 그리고 너를 다시 마주했을 때 다시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두렵다. 잿더미 속에서, 꺼진 듯하다가도 입김을 불어넣으면 다시 깜박이는 불씨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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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로 전환해두었던 계정을 푼 건 sns이벤트 참여를 위해서였다. 오 만원 이상 주문한 음식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인증하면 원하는 디저트 셋 중 하나를 골라 서비스로 받을 수 있는 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에서였다. “하자” 남편이 말했지만 남편은 인스타도 페북도 블로그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작 디저트 하나 때문에? 싶다가 다시 생각하니 고작 sns일 뿐인걸 싶었다. 동원이가 아란치니! 아란치니! 소리치는 통에 멍해지기도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부계정이라도 따로 만들어둘걸 그랬나. 오랜만에 들어간 계정에는 디엠 하나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지은 선생님. 저는 돌아가신 이은지 감독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는 J&D 페이퍼의 하서연이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되신다면 취재 요청을 드리고 싶은데 연락 가능하실 때 부탁드립니다.
날짜를 보니 거의 한 달 전에 보낸 디엠이었다.
취재 요청이라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혹시 신종 사기 같은 건 아닐까? 헐, 법원에서 일하는 사람도 사기를 당하니? 변호사도 판사도 대통령도 당하려면 당하는 게 사기야. 똑똑한 사람들도 다 결혼했다가 이혼해. 너와 가상의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게 요즘 내 습관인데 내가 무슨 무당도 아니고 이 정도면 중증이다 싶었다. 그 사이 동원이는 아란치니에 섞여있는 후추 때문인지 맵다며 한 입 먹고 뱉어냈다.
“그러지 마. 안 돼.”
하지만 동원이는 꿋꿋하게 다른 아란치니들도 다 한 입씩만 먹고 다시 뱉었다. 사이좋게 한 입씩 먹힌 아란치니들은 어딘가 어리둥절해보였고 모자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남편이 먹었다. 동원이가 뱉어낸 것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다.
“뱉어낸 걸 뭐하러 먹어?”
“뭐 어때, 사랑하는 내 아들 입에서 나온 건데”
하, 저 입. 먹는 입과 말하는 입 어느 쪽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풍선의 폐활량을 늘리는 데에나 쓰면 좋겠다, 라는 문장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차에 앉아 노트 어플에 적었다. 우리가 함께 쓰던 드로잉 노트에 끄적였던 것들처럼.
-제가 누구인지 알고 연락주신 건가요?
-네, 이은지 감독님께 말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창이시라고. 저 그리고 괜찮으시면 간단한 질문들이라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조금씩이나마 희미해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럼 그냥 디엠으로 질문하셔도 되는데요.
대화창에는 한동안 답을 쓰고 있다는 상태메시지 ‘…’만이 계속 되었다. 기다리다 창을 닫으려는 찰나였다.
-간단한 질문들이지만 꼭 뵙고 여쭤봐야 합니다.
-제가 서울에 살지 않아서요.
-네, 알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계신 곳으로 찾아 뵙고자 합니다.
하서연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프로필 사진도 설정되어 있지 않았고 팔로잉도 팔로워도 0이었다. 디엠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계정 같았다. 이쪽으로 연락주세요, 하며 알려준 번호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도 기본 이미지였다. 이목구비 없이 동그랗고 파랗고 작은 원 아래 조금 더 큰 파란 반원이 있는 기본 이미지.
사실 괜찮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이임에도 꺼림칙할 정도로 집요한 게 사이비 종교 신도의 포교처럼 느껴졌으니까. 게다가 요근래는 정말로 바쁜 일들의 연속이었다. 유치원 봄학기 입학 설명회 시즌이어서 근무 중 반차를 써서 다녀야 했다. 국공립 유치원,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절에서 하는 유치원, 숲놀이 유치원, D시의 영어유치원까지 아주 줄줄이였다.
법원 일도 많아졌다. 시 주민의 거의 대부분을 먹여살리는 D광역시의 철강 회사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협상 결렬로 인한 노조 시위가 있었다. 노조원들이 철강 회사의 사옥 일부를 사흘 넘게 불법 점거했고 공장 일부가 가동을 멈췄으며 관련 업무 하청업체들까지 연쇄 피해를 입었다. 내가 사는 곳 대부분의 주민들이 철강 회사 및 하청업체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시위가 길어질수록 생계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역 언론사들은 물론이고 보기 드물게 중앙지의 기자들도 몰려들어 관련 사건을 취재했다. 모두가 날이 서 있었다. 법정 방청석에 수두룩하게 앉아있는 노조원들로 인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느라 법원 옆 검찰청 쪽 청원경찰들까지 동원되었다. 살이 툭 불거져 나온 찌그러진 우산처럼, 딱히 흉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얹든 흉기가 될 수 있을 법한 것들을 쥔 노조원들의 표정은 살벌했다. 고작 법 같은 게 우릴 지켜줄까, 하는 불신의 표정은 다행히도 재판이 노조 측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찌그러진 우산이나 수상해보이는 비닐봉지 같은 걸 꼬나쥐고 오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큰 재판이 열릴 일이 거의 없는 법원이 근래 들어 떠들썩해지면서 내가 받은 소박한 피해는 낮잠이었다. 시위로 인해 거의 매일 재판이 열리는 3호 법정은 내가 최근 낮잠을 자기 위해 찾아낸 곳이었다. 법정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방청석 뒤편의 작은 창 커튼을 닫으면 암적응이 되어도 사물을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완전무결한 암흑의 장소가 되었다. 화장실 어둠의 농도쯤 되겠다. 그곳에서 판사들이 앉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점심을 건너뛰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재판 일정으로 점심시간에도 의자와 집기를 정리하느라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통에 나는 낮잠을 잘 공간을 잃었다.
-세계가 파멸하는 것과 내가 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큰일인가! 설사 온 세계가 파멸해버린대도 상관없지만 나는 언제나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마셔야 한다.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인간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민형과 창고의 악몽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곳은 잠들면 백 퍼센트의 확률로 악몽을 꾸는 명당이니까.
“암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아인데, 박 주임이 평소에도 꿈을 좀 많이 꾸는 체질인갑네”
원래도 꿈을 많이 꾸는 편이긴 했다. 꿈을 꾸고 난 직후에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검색을 했는데 꿈마다 모두 정해진 해몽이 버젓이 있었다. 모의고사를 친 후 정답지를 맞춰보는 기분이었다. 검증 되지 않았을 것 같은 해석이 근거라도 있는 양 단호한 문장으로 떠돌아다녔다. 꿈에서 똥을 보면 재물이 들어온다. 꿈에서 피를 보면 좋다. 꿈에서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인생이 잘 풀린다는 징조다. 모두 악몽을 바라게 만드는 해몽이었다.
“하기사 법원이란 데가 좀 기운이 좋은 데는 아니긴 하지. 여 억울한 사람들이 얼매나 많겠노”
박 계정이 말하자 맞은편에서 숟가락을 들던 현오가 대뜸 말했다.
“아니, 억울한 거 풀려고 오는 곳이잖아요. 풀고 가잖아요.”
“엠지네”
“계장님요. 엠지는 이럴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밥만 먹는 게 엠집니다. 박 주임님처럼요.”
많아야 이십대 후반쯤 되었을 현오는 청원경찰이었다. 계장님한테 저렇게 동네 형 대하듯이 말하다니. 엠지네, 현오 씨.
“등기과 옆에 흡연실 안 있나. 거기서 맨날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고 있는 아저씨 있제. 거가 한 십 년 전엔가 큰 사기사건 피해자였다 카데”“그래예? 아 그라믄 원래 멀쩡한 사람이었다고.”“그래도 항상 입성이 그럴듯한 거 보면 누가 챙겨주는 사람이라도 있나 보지.”
“소문으로만 들었으이 알 수 있나?”
계장들의 대화에 현오가 다시 툭 끼어들었다.
“근데요, 입성이 뭐예요?”
계장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이 계장이 혀를 끌끌 찼다. “요새 젊은 사람들 문해력이 심각하다카드만 현오 니도 책 좀 읽어야겠다.”
채 다 먹지도 못했지만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먹으며 말하느라 드문드문 이어지는 대화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왔다. 아, 낮잠 자고 싶다. 낮잠이 필요했다. 당장 세계가 파멸하더라도. 그러다가 차를 마시러 반지하에 있는 직원 전용 휴게실로 갔다. 말이 직원 휴게 공간이지 공익근무요원들의 아지트에 가까웠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소파에 누웠는데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스민 것 같았다.
“아 진짜, 청소 좀 하지 좀.”
앞으로는 그냥 자리에 가서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고작 몇 시간도 안 되어 종합민원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그 다짐을 번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서연 씨라는 분이 박지은 주임님 뵙기로 했다고 와 계시는데요.”
혹시 정말 사이비 종교는 아닐까. 너 혹시 그런 데에 몸 담고 있었던 건 아니지. 분명 거절했는데, 기어이 오다니. 내가 법원에서 일하는 것까지 아는 걸로 봐서는 정보력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은지와 친한 사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쯤되니 나도 궁금해졌다. 그러나 한창 법무사 사무장들이 등기 서류를 한 뭉치씩 싸들고 오는 시간이고, 책상 위에는 입력을 기다리는 서류들이 줄줄이다.
“네, 등기과로 안내해주세요.”
종합민원실과 등기과는 같은 1층이었다. 종합민원실에서 은행 내의 작은 은행 통로를 경유하면 곧바로 등기과가 보이는 구조였다. 블랙 레더 자켓을 입고 푸르스름한 머리칼에 키가 작은 한 여자가 그쪽으로 나오는 걸 보며, 등기 서류 입력 중에도 아, 저 사람이 서연이구나 싶었다. 서연도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는지 내 쪽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왜 오셨어요, 어떻게 알고 여기 오신 거예요, 혹은 침묵 대신
“네, 안녕하세요. 아, 저기 일단 한 삼십 분만 기다려줄래요?”
말한 건 내 뒷자리의 이 계장과 옆자리 강 주임의 시선이 나를 흘깃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들 말고도 저마다 자기 일에 집중하는 가운데서도 언제든 주변을 살피고 있는 눈은 여럿이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 건 한 건, 소유권 이전 서류와 저당권 설정 서류들을 부러 느리고 정확하게 입력했다. 서연은 은행 앞에 있는 나지막한 대기 좌석에 앉아 내 쪽을 바라보았다.
“큿소오오오! 오마에가 와루인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목소리에 휴게공간으로 들어서던 우리 둘다 잠시 멈칫했다. 공익근무요원 남자애의 목소리였다. 폰으로 게임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죽이는 소리였다. 뭔가가 과장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소리도 났다. 다른 한 명은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캔콜라 두 병과 과자 봉지가 놓여 있다. 남자애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 마신 듯 보이는 찻잔도 놓여있다. 말에 이 정도 일본어쯤 섞이는 게 자연스럽다는 듯이 그 남자애들은 크게 의식하지도 않고 스게, 기모찌이, 칙쇼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문득 한 학부모가 말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입이 걸쭉한 초등학생들 생각이 났다. 지금 일본어로 소리친 애는 수도권 소재의 명문대 경제학과에 다닌다. 키가 크고 잘생겼다. 시력 문제로 공익으로 온 애다.
맞은편에서 만화책을 보던 애가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는 옆의 후임 쪽으로 고개를 까딱, 하더니 어이, 이끼마쇼, 말하자 그애가 하이 센빠이 하며 킬킬거렸다. 변성기가 다 지난 애들임에도 남자애들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안정되지 않아 불안하게 흔들렸고 걸걸했다. 그들은 지나가면서 서연을 흘끔거렸다.
“일단 앉으세요”나는 테이블 위 정리되지 않은 찻잔을 들었다. 쩍, 소리가 났고 동그란 자국 하나가 책상 위에 남았다. 자세히 보니 다른 동그란 자국들이 더 있었다. 그 자국들은 유리 위에서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 닦고 안 닦은 걸까. 오늘의 자국과 어제의 자국과 한참 전이었을지 모를 자국이 호수 위 정지된 빗방울의 파문들처럼, 이상한 행성들의 그림자처럼 겹쳐져 있다. 좀 민망했다. 원래부터 여기로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민원인들을 위한 휴게 공간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곳은 난리통이었다. 안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의 전화 통화가 너무 고성이었다. 뭐, 고작 삼십만 원? 내가 그거 벌려면 어이? 택시를 몇 날을 몰아야되는지 니 아나 이 개새끼가 어이? 소액 민사소송 조정 건으로 온 사람 같았다. 십만 원, 이십만 원으로도 소송을 걸 수 있다는 걸 죽니사니 싸울 수 있다는 걸 나는 법원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내가 기호도 물어보지 않고 녹차 티백을 꺼내 차를 탈 동안 서연은 꼭 명상하는 사람처럼 두 손의 손가락들을 마주한 채 앉아있었다. 일론 머스크가 즐겨한다는 손동작이었다. 무슨 알고리즘으로 본 유튜브였더라. 하여간 나는 요즘 언제나 아주 미시적인 것들만 눈에 띄고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감사합니다.”
내가 내주는 뜨거운 찻잔을 받으며, 서연이 말했다.
“먼길 오셨겠어요.”
“네”
한숨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진심으로 나왔다.
“취재 생각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전에 지방 로케 이야기 나왔을 때 은지 감독님이 여기 추천했었거든요. 고향에 법 공부하는 친구 있으니까 촬영 협조 공문 같은 거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면 된다고요. 은지 감독님 고향이 여기인 것도 그때 알았어요. 그러니까 지은 선생님이 그 분이시잖아요. 그 법 공부하신다고 했던 친구분”
“그럼 그 영화, 같이 하신 거예요?”
“네, 스텝으로요.”
“몇 년 전일까요, 그게. 아마 9급 서기보 준비하고 있을 때지 싶은데. 근데 그냥 두루뭉술하게 법 공부라고 그랬으니 무슨 로스쿨이라도 다니는 줄 아셨겠어요.”
“그런 내막이야 몰랐지만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든든했어요. 그런 사람이잖아요.”
너는 그런 사람일까. 그런 사람이었을까.
“네, 그런 사람이었죠.”
“밀양에 같이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네? 네.”
그 사실을 안다는 건 나보다 더 최근에 너와 만난 적이 있거나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네가 내 이야기를 이 사람, 서연에게 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밀양은 어떠셨어요?”
“뭐, 좋았어요.”
“좋았어요?”
서연이 반문하더니 덧붙였다.
“아이 키우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딸인가요?”
화가 났다. 대체 이 질문들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너는 내 아이 이름이 동원인지 동은인지도 잘 몰랐는데. 나는 떨떠름했지만 할 말을 참으며 우선 묻는 말에 답했다.
“아들이요.”
서연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하려던 말을 삼키는 것처럼 혹은 자신의 깊은 숨이 한숨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왜인지 ‘동원이는 그래도 남자애라’ 말하던 한 엄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잠시 말이 끊긴 틈을 타서 물었다.
“지금 이게 은지랑 관련된 이야기가 맞나요?”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밀양에 되게 맛있는 돼지국밥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어요.”북한이 나오는 한 드라마에서 ‘내 말이 가다 넘어졌니’, 하는 말이 나와서 웃은 적이 있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아니, 왜 묻는 말에는 대답 안 하고 딴소리만 해요. 지금 일 놔두고 온 거 많아서 바빠요.”
내 말이 또 가다 넘어졌다.
“제가 살았던 곳도 그런 곳이었어요. 공중파 채널에도 몇 번 나온 적이 있는 집 왜 그런 데 있잖아요. 생생정보통 방송 탄 거 캡처해서 플랭카드 걸어놓고. 외지인들도 맛집 잘 모르면 검색해서 많이 오고. 외지인이라 그래도 서울 같은 데서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가까운 청도나 대구나 경산, 그리고... 울산에서도 오고요. 말투가 다 비슷해서 사실 외지에서 왔는지 어쨌는지는 티도 안 났어요. 그냥 옛날 차 번호판 보면 지역 적혀 있잖아요. 그거 보면서 아 저기서 왔구나, 했죠. 엄마 아빠 일하는 동안 거기서 사람 구경 하면서 자랐어요. 오빠는 지겹다고 피씨방 같은 데 가고, 아니, 그런 데 간 줄 알았죠.”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이은지 감독님 이야기요.”“지금 서연 씨 이야기 뿐이잖아요.”
서연의 표정이 점점 기묘해졌다.
“감독님이 지은 선생님께 아무 이야기도 안 했군요?”
“무슨 이야기요?”
서연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섰다. 나는 그대로 앉은 채 서연이 마시던 찻잔을 보았다. 찻잔에는 식은 차가 남아있었고 서연은 그걸 싱크대로 옮길 마음이 없어보였다. 내가 옮기지 않는다면 저 유리 테이블 위에 동그란 자국 하나가 더 생길 것이다.
“하아, 네.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더 드릴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요. 지은 선생님이 남긴 댓글 보고 온 건데, 그 진심에 대한 이야기 읽고, 은지 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가방을 메더니 나가려고 했다. 기껏 여기까지 와놓고 말 몇 마디 나누다가 돌아서버리는 서연을 보며 아직 어리구나, 충동적이구나, 역시 엠지구나, 자유롭구나 하는 꼰대 같은 생각을 했는데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건 얼마간 부러움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저기요.”
“네?”
나는 꼰대가 되기로 했다.
“마시던 거는 치우고 가세요.”
“네?”
“찻잔. 본인이 마시던 거는 치우고 가셔야죠.”
서연은 다시 내 쪽으로 왔다.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나는 찻잔만 바라보았다. 서연은 자신이 마시던 찻잔을 들고 싱크대 쪽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럼 하던 이야기만이라도 마저 하고 가겠다고 시간 괜찮으면 들어줄 수 있냐고 조금 더 공손해진 태도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 했죠?”
“오빠가 피씨방 가는 줄 알았다고.”
“네, 오빠, 그쵸. 오빠 때문에 어느날 집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어요. 별일 아니라고 다들 다 괜찮다고 해서 저도 다 괜찮은 줄 알았어요. 식당에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했고 오빠한테 이것저것 막 물었어요. 원래도 워낙 외지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니까요. 오빠도 별일 없었던 것처럼 평상시랑 같이 학교도 계속 다녔고요. 저는 어릴 때였으니까 어른들 말하는 대로 별일 아닌가보다 했어요. 나이 들고 보니까 별일이었더라구요. 고향 애들 모르는 데 가서 내가 우리 오빠 동생인 거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살았어요. 밖에도 안 나가고 그냥 누워서 지냈어요.”
그거구나. 한창 떠들썩했고, 영화로도 나온 바로 그 이야기였다.
“은지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처음에 제 멘토로 왔어요. 저 살던 구에서 무기력한 청년들을 위한 마음 건강 지원 사업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신청하면 매달 오십만 원씩 생계지원금도 주는 거라고 해서, 부모님이 신청해서 그거 했어요. 사회활동 같은 걸 하면 한 주 한 주 미션 달성인 거예요. 멘토는, 통장을 개설한다거나 내일배움카드로 취업 준비를 위한 강의를 듣는다거나 그런 거 하게끔 챙겨주는 사람. 전화해서 나오라고 이야기해주고 같이 밥 먹어주고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 집까지 찾아와서 집안에 널려 있는 배달 음식 쓰레기까지 다 치워주고 손 잡고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 그러니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주는 사람. 사실 은지 감독님이 딱 그런 사람이잖아요.”
“…네, 그런 사람이었죠.”
서연이 이번에도 동의를 구하듯 말했을 때 내 대답은 한 템포 늦고 말았다.
“은지 감독님은 그걸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처음 저 만났을 때 뭐라 그랬는 줄 아세요? ‘저는 말도 안 되는 걸, 말이 되지 않는 걸, 그리고 말로 하기에는 너무 힘든 걸, 어떻게든 말로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대박, 안 그랬으면 무기력하게 방에서 꿈틀거리고만 있던 저는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알게 되서 영화 스텝 제안도 받은 건가요?”
“제안은 아니고 감독님이 연출하고 싶다는 영화 이야기 했을 때 안 할 수 없었어요. 뭐라도 같이 하고 싶다고 졸랐어요. 그 영화 함께 한 사람들, 우리 다 같은 마음이었어요. 흥행은 완전 폭망했지만, 망했다고 뭐라고 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렇잖아요. 상업성 영화도 아니고, 누가 그런 영화에 뭐라고 해요.”
깍듯하게 말하며 품위 유지를 하려고 하지만, 중간중간 대박이니 폭망이니 같은 말을 내뱉을 때 높아지는 목소리에서 희미하지만 동남 방언의 억양이 느껴졌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 희미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사실 서연이 말하는 것들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너의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 ‘카제’의 엔딩 크레딧을 정지시켜놓고 올라오는 제작과 후원 단체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본 적이 있었다. 영화와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사회활동가, 아동청소년 인권보호단체 소속,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시민 연대, 강제 위안부 진실 추구 연대같은 이름들이 지역 언론의 한 귀퉁이에 소개되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부르짖고 있거나 분향소에서 울고 있거나 고뇌에 찬 얼굴로 마이크 앞에서 격한 손짓을 하는 모습이었다. 억울한 삶과 죽음, 알려져야 할 진실, 마땅히 함께 나누어야 할 슬픔 앞에서 그 모든 윤리를 구현하고자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람 앞에서 투자금이니 손익분기점이니 하는 것들을 담보로 따져물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감독님이 그랬어요. 다음 영화 할 건데, 이건 꼭 네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아주 가까이 있었음에도 진실을 몰랐던 저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리고는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서연이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치 너에게 홀린 사람처럼 감독님, 감독님 예찬하듯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연은 너에게서 어떤 이면을 감지했고 그 느낌이 틀렸기를 바라며 굳이 이 먼길을 온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찻잔을 입에 대며 말없이 서연이 스스로 다음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밀양에 갔을 때 혹시 그런 이야기 안 하던가요?”
“그런 이야기 무슨 이야기요?”
“영화 이야기요.”그 순간 흔들리는 눈빛.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너에게 꽂힌 사람이었다가 너의 죽음으로 인해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중인 것 같았다. 그건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죽음 이후에 식어간다면 그건 애초에 사랑도 아니었던 거겠지. 그건 내가 이미 겪었던 일이기도 했다. 나는 후배를 바라보는 것 같은 심정으로 서연을 바라본다.
“이창동 영화 봤어요. 밀양이랑 시. 배우 이야기도 했는데, 그게 서연 씨 이야기일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그날 너무 졸리기도 하고 관심도 없는 일이라 구체적으로는 잘 기억이 안 나요.”열심히 이야기했지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도 자꾸 말이 두루뭉술해지는 건 기억이 안 난다는 거짓말을 덧붙여서라도 안심시키고 싶은 의도가 드러날 것 같아서였다.
“생각해보니까 정말 왜 걔가 그렇게 밀양으로 가고 싶어했는지, 왜 그 영화들을 굳이 딱 꼬집어서 찾아본 건지 이해가 되네요. 다음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그날 걔가 신경을 많이 쓴 건지 무척 머리 아파했었거든요.”
서연의 흔들리던 눈은 그 정도의 말로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것 같다. 그 눈빛을 보며 나는 왜인지 이 사람에게 너를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해줄 말, 너무나 마침맞는 우연 하나를 끝내 찾아내어 덧붙인다.
“맞다. 송시연 배우 이야기도 했어요. 친한 사람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그러고보니 그게 서연 씨 이야기였네요.”
생각해보면, 그 말을 할 때 나는 에드거 엘런 포의 「검은 고양이」끝 부분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남자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살다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있는 순간. 나를 주체할 수 없는 순간. “완벽하게 속였다는 기쁨으로 내 심장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철부지 허세의 망령은 내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의 시신을 숨겨놓은 바로 그 벽을 힘껏 내리치게 했다”는 부분, 무엇보다 “(그저 아무 말이나 떠벌리고 싶은 광기에 휩싸여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부분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때까지만 해도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던 서연의 눈이 묘하게 싸늘해진 것을, 내 말이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했어요.”
한참의 침묵 끝에, 서연은 싱크대에 찻잔을 올려놓고 인사를 했다.
나는 물티슈를 꺼내 유리 테이블에 남아있는 동그란 물 자국들을 모두 닦아냈고 물티슈를 버린 다음 싱크대에 놓인 잔들을 간단히 씻었다. 자리로 돌아오는데 문득 커피가 너무나 간절하게 당겼다.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커피 포트로 뜨거운 물을 끓이고 붓고 기다리는 여유롭고 지난한 과정 같은 걸 모두 생략해버리고, 마치 당장 해소하지 않으면 안될 강한 요의를 느끼는 사람처럼 자판기에서 커피를 눌렀다.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보았다. 희뿌연 창문 너머 먼발치에서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서연을.
그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구글에서 하서연이란 이름으로 기사를 검색하자 몇몇 정보가 나왔다. J&D 페이퍼 인턴기자 하서연이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몇몇 기사들은 주로 청년 실업이나 국가지원사업을 다루고 있었다. 서연이 말한 고립 청년을 위한 마음 건강 돌봄 사업이라는 것도 기사화되어 있었다. 작성된 기사들의 하단에는 기자의 블로그 링크와 함께 프로필 사진이 있었다. 이렇다할 특색 없는 평범하고 밋밋한 인상을 지닌, 한 여자의 얼굴.
그건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내가 본 하서연과는, 조금도 닮은 데가 없는 사람의 얼굴. 그럼 나를 만나러 온 서연은, 아니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당연하게도 내게 디엠을 보냈던 계정도 사라져 있었다. 없는 사람이었다.
6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마다 미쳤다, 미쳤다, 하는 버릇이 있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동원이를 낳고 나서 생긴 말버릇이었다.
“와, 미쳤다, 진짜 미쳤다.”
너라면 또 넌 애가 왜 이렇게 촌스럽냐고 한마디 했겠지. 백여 년 전 아니, 오십 년 전만해도 어쩌면 당연했을 밤하늘 풍경인데 이제는 이런 별들을 보는 게 미친 일이 되었다. 나는 밤하늘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별들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다가 스카이뷰프리 어플을 작동시켜 다시 밤하늘을 비춰보았다.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서도 어디쯤 어떤 별이 떠 있는지 저 하늘에 위치한 별자리는 무엇인지 보여준다. 내 시야에 들어온 별들 중 가장 빛나는 별의 정체는 확인 결과 목성이었다.
지난번 너와 왔을 때는 영화를 보다 잠들어버려서 보지 못했던 밤 풍경이다.
퍼뜩 생각나 너의 메신저 프로필을 눌렀다. 너의 메신저 아이디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찾아보니 일 년 간 미사용시 자동 파기가 된다고 나와있다.
-네 프로필 사진은 왜 전부 애 사진밖에 없냐 ㅎㅎ 네 사진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에 나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놀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년 네 기일 전까지는 원할 때 언제든 답을 할 수 있다. 너에게 말을 걸 수 있다. 함부로 말할 수 있다. 내 앞에 하서연이란 사람의 행세를 하며 나타난 그 사람이 누군지 인상착의를 조목조목 열거해가며 물어볼 수 있다. 네가 만든 영화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 그런 것들 말고 네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어떤 마음을 먹고 지냈는지 너와는 무관하게만 보이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네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네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 왜 그러고 살았는지 한도 끝도 없이 물어볼 수 있었다. 어차피 대답도 못할 텐데 물어보는 거 말고 언젠가 죽어서 다시 만날 때를 생각해 그저 잘 지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어떤 말을 해도 수신확인이 안 되었다는 뜻의 1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나는 다시 폰을 들어 빛이 거의 없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별들을 최대한 화면안으로 담았다. 사진을 찍자 자동으로 오 초의 타이머가 작동되며, ‘움직이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떴다.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려고, 떨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었지만 사진 속의 별들은 모두 조금씩 흔들려 있었다. 흔들린 빛의 궤적 때문에 별들은 마치 희고 가는 애벌레들처럼 보였다. 사진 속에서는 내 주변의 어둠이 모두 걷히고 밝아져 있어서, 눈으로 담는 것보다 훨씬 못했다. 몇 번을 찍었는지 모른다. 한 시간 남짓 수십 번의 실패. 가장 잘 나온 미친 별들의 사진을 네 카톡으로 보낸 것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겨울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한기가 심해져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남편과 동원이는 전에 우리가 함께 잤던 온돌방에서 곯아떨어져 있다.
오늘 낮 너와 함께 왔던 밀양의 독채펜션에 체크인을 했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남편도 휴식이 필요했는지 내가 보여준 예매 내역과 몇몇 블로그 후기를 보고 나서 별말없이 선뜻 그러자고 했다.
‘햇살문화도시 밀양’ 오는 길에 본 밀양은 올봄에 왔을 때처럼 여전히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요하고 따스한. 문득 동원이를 낳기 전 다녀온 블라디보스토크가 떠올랐다. 고려할 수 있는 가까운 여행지로는 일본도 중국도 동남아도 있었지만 삼박 사일의 휴가로 다녀올 수 있는 가장 이국적인 곳이면서 비행 시간도 짧았다. 중앙광장, 해양공원, 아르바트 거리 등 관광할 만한 곳을 이십 분 이내에 도보로 다 다닐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곳의 해양공원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쯤 얼어있는 사월 초의 바다와 분홍색 파란색 패딩을 입고 달리는 웃으며 달리는 아이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일몰이 보이는 해양공원을 느리게 걷던 한때의 사람들. 핫도그를 먹는 사람. 아이를 목마 태우고 걷는 사람. 길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사람. 그들 중 몇몇 남자들은 지금 최대의 격전지라는 돈바스 지역에서 총을 들고 있을 수도 있겠지. 형형색색의 풍선과 바람개비와 솜사탕을 팔던 노점상의 젊은 남자는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몇 사람쯤 죽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았던 그들의 한때가 그들에게도 한때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한 번도 살인을 몰랐고 앞으로도 몰랐을 사람이었던 때가 꿈이었던 것처럼 몇 사람쯤 죽이는 일이 당연해졌을지도 모른다. 죽는 일 또한 당연해졌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악몽이 현실에서는 좋은 일의 복선인 것처럼, 반대로 현실이 끔찍할수록 꿈은 그만큼 더 간절하고 달콤한 무엇이 될지도 모른다.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이 작은 동물을 물어올 수 있습니다. (쥐, 새, 뱀 등 ㅠㅠ)
-혹시 마당에 사체가 있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신경이 쓰이시면 산이 있는 방향으로 가셔서 옮겨두시면 됩니다.
-마루 밑의 나무는 장작이 아니니 태우지 마세요. ㅠㅠ
-저녁에는 날벌레들이 빛을 향해 날아듭니다. 저녁에는 방충망을 꼭 닫아두세요.
봄에도 왔던 사람이란 걸 안 모양이었다. 지난 메시지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모를 수 없겠지. 얼굴도 본 적 없고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주인은 본채의 미닫이문 중앙에 ‘-또 한 번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는 손글씨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전에도 이렇게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나 싶게 집안 곳곳에 앙증맞은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보일러 사용법.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법. 고양이들에게 지켜야할 수칙. 그것들은 이 집을 얼마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부적 같았다. 나는 포스트잇 속 다정하게 느껴지는 손글씨들을 하나하나 찍어두었다.
남편도 이곳을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알고보니 그건 집 안팎으로 드나드는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 때문이었다.
“동물들은 귀신을 볼 줄 안대. 잠도 제일 좋은 명당에서만 잔다는데.”
남편은 대뜸 이런 말을 내뱉고는 이내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이제 이런 말을 못 들은 척 한다는 걸 이제 남편도 알고 있다. 아마도. 하지만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저녁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해먹고 방을 따스하게 데우고 나와 작은 마루에 앉아있는데 하나둘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마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웅크린 채 자는 고양이들이 꼭 수호신처럼 느껴진다. 이 고양이들은 봄에 봤던 그 고양이들일까. 혹시 이 집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가 아닐까. 주인의 프로필 사진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이들에게는 어쩌면 내 옆에 함께 있을지도 모를, 아니 내게 조금이라도 스며들어 있을지 모를 네가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어딘가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보게 된 건.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달빛 속에서 나와 눈을 맞춘 채 고요히 정좌한 고양이의 눈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 눈동자 속에 네가 비칠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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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속 카미카제 특공대의 유언은 ‘궁금한 이야기 Y’ 204화 방영분 참조
* 소설 속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문장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열린책들, 2010)에서 인용
* 소설 속 에드거 엘런 포의 문장은 단편「검은 고양이」(『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공포 편』, (코너스톤 2015))에서 인용
김준현
1987년 경북 포항시 출생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