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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의 등 뒤에서 -이창동의 ≪밀양≫에 관하여

by  이나라

  • 작품전문
  • 심사평
  • 입선소감
  • 그녀는 자신을 배반한 남편을 사고로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땅에 살러 왔다. 이 사연 하나만 들어도 우리는 그녀의 등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팔자 사나운 년, 지지리 복도 없는 년. 그녀가 남편의 고향, 밀양 땅을 찾은 건,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피해, 세상에 등을 지고 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애와 그녀의 아들 준을 태운 차는 밀양으로 진입하는 국도 변에서 고장이 나 서 버린다. 쌩쌩거리며 달리는 차로 변에 그녀가 우리에게 등을 보이며 서 있다. 겨우 세운 트럭을 향해 슬리퍼를 끌며 달려가는 그녀의 애처로운 뒷모습, 고장 난 차 안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는 아들을 향해 다시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녀의 피곤한 뒷모습. 그녀는 밀양 땅에서 우리에게 얼굴에 띤 환한 웃음을 보여줄까. 그러나 좁은 밀양 땅에 도착하자마자 이웃에게 훈계를 둔 탓에 신애는 금세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자신에 대한 이웃의 '뒷담화'를 듣고 있는 신애의 거울 속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다. 그녀는 얼굴에서 진짜 표정을 지우고 갑각류의 딱딱한 등짝 같은 가면, 웃음 띤 얼굴의 가면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창동의 영화 ‘밀양’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자신에게 닥친 세상의 고통과 대면하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는 영화다. 남편의 죽음, 아들의 납치와 죽음을 겪고, 신의 교회가 주는 은총과 인간의 신앙심이 주는 배신감을 겪은 여인의 얼굴이 다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등으로 들려주는 영화. 그런데 이 모든 세상의 고통은 타인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우리는 ‘타인은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문구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진정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있다면, 우리가 타인에게 우리의 진짜 표정을 감출 수 있다면, 타인은 지옥이 아닐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자는 등을 내 보인다. 또는 딱딱하고 표정 없는 등짝 같은 얼굴의 가면을 내 보인다. 그렇지만 타인의 지옥, 내 마음 속 타인의 지옥은 끔찍한 것이어서 신애는 고통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대면하지 못한다). 경찰서에서 범인의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지 못했듯이. 그래서 우리는 등을 뚫고 나오는 그녀의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아들의 납치 사실을 안 신애가 종찬의 카 센터로 꺼이꺼이 차오르는 울음을 삼키며 뛰어갈 때 우리는 얼굴보다 더 큰 격정을 표현하는 신애의 등을 바라본다. 한참을 뛰어가는 신애의 뒷모습, 길거리에 주저앉은 신애의 웅크린 등짝은 신애의 또 다른 얼굴, 얼굴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하는 얼굴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영화‘일식’의 첫 장면을 무기력과 권태에 빠져 소통을 거부하는 모니카 비티의 뒷모습으로 채웠을 때, 모니카 비티의 뒷모습도 그렇게 수많은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영화들이 등처럼 딱딱한 가면을 쓴 사람들의 얼굴만을 비추거나, 등진 자세가 표현할 수 있는 정념들, 정념의 이미지를 화면 안에서 감춘다. 이창동은 한 여인의 등을 통해 그녀가 외면했던 것, 그녀가 절박하게 표현했던 것,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 한다.우리는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신애의 뒷모습을 같은 구도로 두 번 목격한다. 교회에 나가 마음의 평화를 얻은 신애가 싱크대 앞에서 떠오르는 아들 생각에 괴로워하며 서 있다. 그 뒷모습은 신애가 이웃에게 지어 보이는 평온한 얼굴 뒤 감추고 있는 불안함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범인을 만나고 난 후 정신을 놓은 신애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일련의 복수 행각을 벌인 후 자살 시도를 하기 전에도 싱크대 앞에 그렇게 서 있다. 하늘을 향해 “봐, 보란 말이야”라고 외치던 그녀 얼굴의 독기보다, 싱크대 앞에서 선 신애의 뒷모습은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이 뒷모습을 당신은, 우리는, 신은 과연 지켜보았던가. 영화의 마지막, 신애는 카메라에 등을 지고 집 마당에 앉아 머리를 자르고, 종찬이 들어주는 거울 사이로 신애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우리는 그녀의 등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는 우리를 바라본다. 내 앞의 타인이 들어주는 거울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등 뒤를 바라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녀는 우리에게 얼굴과 등, 두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참이다.

    이나라

    1973년 서울 출생

    1998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2002년 서울대 미학과 석사

    2005년 프랑스 뚤루즈 2대학 영화과 DEA

    2007년 프랑스 파리 1대학 영상미학 박사과정 재학 중

  •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 뮤지컬학부 교수)

    올해는 예년에 비해 평론 응모작 수가 부쩍 줄어 20여 편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영화의 전반적 침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당수가 이창동의 ‘밀양’을 평론 대상으로 삼았다. 기존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내가 다른 시각으로 읽어내겠다’는 창의력으로 꿈틀대는 글이 그리웠다.

    최종 검토대상에 오른 글은 세 편이었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에 대한 논문과 ‘별빛 속으로’에 대한 단평을 쓴 이수정은 단정한 문체와 차분한 논리전개가 돋보였지만 다소 교과서적인 시각이었다. ‘밀양’에 대한 논문과 ‘우아한 세계’에 대한 단평을 쓴 최남현도 논리전개가 튼튼했지만 보편적인 인문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아장커와 홍상수에 대한 논문과 ‘밀양’에 대한 단평을 쓴 이나라가 가장 돋보였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에 연출된 풍경의 여백과 홍상수의 영화들에서 체계적으로 의도된 풍경의 부재에 관해 예민한 시각적 감식안으로 파고들었다. 창작자의 관념이 시각적으로 육화되는 방식에 주목한 점에서 이나라의 글을 넘어서는 것이 없었다. 다만 단평감각은 아직 미숙해 당선작으로 내기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이는 모든 응모자들에게 해당되는데 간결하게 원고지 10장 분량의 글로 독자를 설득시키려는 열정과 준비가 모자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10장 분량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70장 글을 쓰는 것 이상의 준비와 요령이 필요하다.
  • 이나라

    1973년 서울 출생

    1998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2002년 서울대 미학과 석사

    2005년 프랑스 뚤루즈 2대학 영화과 DEA

    2007년 프랑스 파리 1대학 영상미학 박사과정 재학 중

    나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살아본 적이 없다. 주변에는 나를 극장에 데려가 줄 어른들이 없었고, 그나마 TV의 옛날 영화들을 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주말의 명화보다 소소한 한국 드라마에 채널을 고정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영화광들에 둘러싸여 소위 어려운 영화들을 보며 영화를 처음 배웠다. 영화 속에서 세상을 배우기보다, 세상 속에서 영화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더랬다. 그래서 영화는 늘 내게 세상보다는 둘째 가는 것이었고, 오락이기엔 너무 어렵고 진지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기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통에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 고백은 더디고 수줍기만 했다.

    몇 년째 거주하고 있는 파리 골목 골목의 낡은 극장들을 들락거리며 낡은 할리우드 영화나 모르는 세계 저편에서 온 영화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작가들의 영화들을 만난다. 이 끊임없는 만남의 과정 속에서 나는 이제 더 당당하게 영화에 대한 사랑, 영화가 내게 사유하도록 한 것들을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생 극장 출입이 몇 번 없으셨지만, 영화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 나를 낳아 주시고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께 먼 곳에서 다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글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님, 배움의 어려움과 가치를 일깨워주신 학교 안팎의 여러 선생님들, 파리의 거의 모든 골목과 극장들을 하나하나 알게 해 준 티에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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