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빈곤해졌다. 우리는 인류의 유산을 조금씩 조금씩 포기했으며, “동시대”의 자잘한 변화와 교환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종종 백분의 일밖에 안 되는 가격에 전당포에 맡기기도 했다.
- 발터 벤야민, 「경험과 빈곤」 중에서
발터 벤야민은 「이야기꾼」을 위시한 여러 문학 에세이들에서 소설의 발생에 관한 자신만의 독특한 의견을 반복적으로 개진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야기꾼들의 구전적인 이야기가 지배적이던 시대에, 이야기는 인간이 공유하는 경험 - 전통, 역사, 유산 - 을 전달하고 확산시키는 매체였고, 인간은 그렇게 누구나 공유하고 실제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함양했다. 이야기꾼과 이야기는 철저하게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존재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전쟁 등의 사건은 인간의 삶의 양식과 존재기반을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이 단절시키고, 이야기꾼과 이야기가 대변하는 공동체적인 경험, 역사나 전통이나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가치를 파괴한다. 소설은 이렇게 공동체적 경험이 빈곤해진 시대, 역사와 전통이 회의적으로 부정되는 시대에 단자화된 개인들을 위무하기 위한 문학양식으로서 태어난다.
배수아는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위한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이자 최초의 모티프는 빈곤이었으며, 점점 넓어지고 팽창하는 빈곤의 형상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원고 역시 영원히 끝내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빈곤이 소설을 발생시키고 지속시키는 근원적 조건이라는 점에서 벤야민과 배수아는 각자의 시대와 영역을 넘어 공명하고 조우한다.
마지막 한 장[章] 이전까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작중인물인 김성도의 모순형용적인 표현대로 ‘빈곤에 대해서 풍부한 스펙트럼을 제공해줄 수 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관한 '초상화, 인간의 백서'에 충실하다. 많은 인물들이 일회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각각의 장들은 지극히 사소한 디테일로 연결되어 있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빈약한 시간만이 경과할 뿐이어서, 게다가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면서 어떤 결정적 파국을 예비하는, 따라서 진부한, 이야기 구조도 아니어서, 소설은 언뜻 무질서하게 수집되고 나열된 단편적 이야기들의 몽타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서 이야기의 질서를 결정짓는 것은 사건의 전후관계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으리만치 얇고 납작한 이 동시대의 시간성이 아니라, 가난하고 빈곤한 삶의 조건을 인식하는 능력의 점진적인 전개,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장악력의 점층적인 강화이다. 빈곤을 재현하는 소설의 언어는 "돈이 없어"라는 단순하지만 현실적인 두 마디의 말, 주관적이고 편협한 신세한탄에서 출발하여, 사회학 논문의 문체를 원용하면서 날카로운 통찰과 객관성 위에 반어적인 자기부정과 연민의 어조를 더한 "예비적 서문: 슬픈 빈곤의 사회"에 도달할 때까지, 텍스트의 결을 점차로 다각적이고 다층적으로 촘촘하게 조직해나간다.
글머리에 인용한 벤야민의 문구와 관련하여, 소설의 마지막 장인 「오직 무참히 짓밟힌 인간」에 이르러, 빈곤에 관한 가장 통시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인식을 구현하는 인물로서 전당포 업주가 설정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빈곤이란 허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조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태생적인 외모의 추함, 지식과 교양에 대한 문화적인 욕구를 채워줄 만한 환경의 부재 등, 빈곤의 형상은 개인의 내면과 외면뿐만 아니라 가족과 국가의 역사, 인류 전체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 헐벗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배수아의 소설에서 빈곤은 마침내 동시대와 경제의 영역을 넘어서 훨씬 오래 되고 근본적인 인간의 역사와 경험에 맞닿아 있다는 인식으로 급격히 확장된다. 우리가 빈곤하다면, 그것은 단지 배가 고프기 때문, 사랑, 명예, 지식, 미 등 개인적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대상들이 부재하고 그것들에 이르는 방법이 좌절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이 한국의 역사고 유산이란 말인가? 그들은 공통점이 없었다. 그들은 한시도 같은 '역사' 안에 머물렀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빈곤하다면, 보다 확장된 인식의 차원에서, 개인들을 공동체로 묶는 역사, 유산, 공통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역설적으로 그 빈곤한 역사의 공간에서 태어나고 지속된다. 역사적으로 빈곤한 인간을 위하여, 소설은 있다.
윤경희
1973년 서울 출생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동 대학원 불문학·영문학 석사
미국 브라운대 비교문학 석사
파리8대학 비교문학 박사과정 재학 중
오생근(문학평론가) 한기(문학평론가)
문학평론 부문은 비교적 쉬운 심사 작업이 되었다. 한강의 소설을 해부한 ‘새로운 문학적 신체의 발명’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현대적 몸의 담론 펼치기를 넘어, 병적 징후로 드러나는 신체미학의 세계를 질 들뢰즈의 이론에 비춰 의미화하는 비평적 솜씨는 드문 재능의 소유자임을 입증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당선자의 주소로 보아 유학 중이 아닌가 짐작되지만, 타국에서도 우리 문학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는 흔적을 보여주어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은 부피의 안심(安心)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배수아 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 대한 단평 ‘빈곤한 역사와 소설’도 유려한 비평적 해석의 글로 판단되었다.
그동안 많은 여성작가들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더욱 유력하게 만드는 여성비평가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감이 있어 아쉬움을 주었는데, 유능한 신예 비평가를 맞아 한국문학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선자를 축하하며 차점자들에겐 분발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러 글들이 눈에 띄었지만, 대상 선정과 재단에서 아쉬움을 주었다. 비평 작업이란 담론의 개진 이전에 대상의 재단과 주제 포착으로 작업의 반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제가 신선하면서도 안정된 작가의 세계를 포착하여 당대성의 담론을 펼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경희
1973년 서울 출생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동 대학원 불문학·영문학 석사
미국 브라운대 비교문학 석사
파리8대학 비교문학 박사과정 재학 중
가장 먼저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말과 글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시고 감정과 생각이 번져 나오는 기원이 되어주셨습니다. 동생들에게 고맙다고 전합니다. 지구별 곳곳에 멀리 떨어져 빛나는 반딧불 같은 우리들. 신광현 선생님께 아무리 드려도 모자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게 문학적 소양이 있다면 그것을 처음으로 알아봐주시고, 북돋아주시고, 존경하는 지도교수님이자 제 글의 가장 멋진 독자이자 삶의 따뜻한 멘토가 되어주셨습니다.
이성원 선생님께 잘 익은 포도주와 함께 감사드립니다. 낭만주의에 관하여, 공부의 대상을 넘어, 그것을 반드시 내 삶으로 살아내겠다는 의지적 충동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써도 써도 부족하도록 쓰겠습니다. 멀리 있어도 들리는, 깊이 울리는 언어를 만드시는 작가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먼 곳으로나 그녀의 책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부재하는 재능에 자학할 때마다 포근히 다독여주는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분, 제가 만드는 거의 모든 문장들의 독자, 제 삶의 수신인에게, 나침반으로, 체온계로, 사랑과 감사의 말을 보냅니다. 아침에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덤덤했는데, 하루의 일과를 무심히 수행했는데, 지금 감사의 말을 쓰는 동안 눈물이 아롱아롱 맺힙니다. 감사의 말로만 가득 찬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