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향에 돌아와 ‘시리어스 리’에 드나들기 시작한 건 정리해고와 이혼을 한꺼번에 겪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였다. 두 가지 모두 가볍지 않은 문제였지만 아무래도 이혼보다는 해고 쪽이 견딜만했다. 과거의 구조조정이 심각한 법적 분쟁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던 것에 비하면 그때는 일종의 유행 같은 것이 돼버린 시점이었다. 시리어스 리는 안주가 형편없었지만 생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사장은 이혼과 해고 어느 쪽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거구였고, 그 때문인지 시리어스 리를 찾는 손님보다 사장이 키우는 화분의 숫자가 많았다. 야구 경기가 시작할 시간에 고정적으로 가게를 찾는 너덧 명이 유일한 단골이었다. 야구 시청 말고 내가 한 일은 헤어진 아내 이우선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를 그리워하고 증오하는 걸 번갈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갔다. 이우선의 말투를 빌리자면 기억이 우선? 생활이 우선? 하는 문제에 있어서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했던 셈이다.
내가 겪은 고통의 기원을 따지다 보면 결국엔 ‘달 탐사 프로젝트’가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혼과 해고 어느 쪽을 생각해도 그랬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국정 과제였던 그 프로젝트를 보며 느낀 게 있다. 향후의 어떤 정부든 어떤 종류의 야심도 갖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달에 첫발을 내디딘 인류는 미국인이었지만 달을 정복하는 건 우리가 될 거라는 게 대통령의 슬로건이었다. 실질적인 정복은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으로 인해 불가능했고, 우리나라 국기를 단 기계가 달 표면을 돌아다니는 것 이상을 기대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당선된 대통령이 처음 한 일은 국기 왼쪽 구석에 달을 그려 넣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었다. 법안은 부결됐지만 새로운 국기 도안은 필통이나 가방에 인쇄돼서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종의 주말 예능 같은 구호라고 생각했던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시작하고 유엔 사무처에 계획안이 제출됐다. 내 아내 이우선은 기술분과의 자문위원으로 달에 보낼 기계를 설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정부의 계획이 꼬이기 시작한 건 역시나, 모든 일이 그렇듯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부터였다. 미국인 데니스 호프만은 1980년부터 ‘달 토지 소유권’을 판매해왔다. 우주조약은 특정 국가가 행성을 소유하는 건 금지했지만 개인에 관해서는 제한이 없었다. 국기를 단 기계가 달에 돌아다니는 건 사유지 침해라며 정부를 상대로 국가-투자자 제소권이 제기됐다. 정부는 뒤늦게 데니스 호프만의 달 지분과 개인들의 소유권을 매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국가부채를 떠안았다. 우크라이나의 발사대에서 쏘아 올린 탐사선이 달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모라토리엄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 멍청한 계획을 어째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는지 지금으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는 다들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은데 달이라도 한 번 정복해보자는 의견이 많았고,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보자는 의식이 낡아빠진 신조처럼 남아있던 탓도 있었다.
나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감기처럼 유행하던 우울증세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런 건 정말이지 사는 게 아니야, 싶다가도 죽는 건 나름 복잡하고 무서운 일이라 그냥 살았다. 아침이면 시리얼로 대충 배를 채우고 전날 야구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미 생중계로 본 경기였지만 반복 학습에 익숙한 세대라 버릇처럼 그렇게 했다.
그날도 해가 지기 전에 집을 나와서 시리어스 리를 향했다. 아직은 야구광들이 모여들 시간이 아니었다. 카운터에 놓인 커피 화분 옆에 반쯤 개봉 된 상자가 눈에 띄었다. 너덜너덜해진 택배 송장에 아내의 이름이 언뜻 보였다. 내게 온 물건이 분명했다. 항의하는 뜻으로 사장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경비 아저씨가 아니야. 허락도 없이 택배 창구로 쓰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사장은 칼날이 공책만 한 중식도로 생강을 썰고 있었다. 사장이 할 줄 아는 몇 가지 요리는 전부 생강을 재료로 했다. 생강 샐러드와 생강찜, 생강전골과 생강전 같은 것들. 식사 메뉴로는 생강 볶음밥이 있었다. 칼을 든 사람에게 적극적인 항의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뭐가 들었어요?”
“글쎄. 자세히는 안 들여다봤어.”
“확인도 안 할 거면 뭐하러 뜯어봅니까.”
“염탐꾼한테도 상도덕이란 게 있다고.”
는 늘 앉던 자리로 상자를 가져왔다. 헤어질 때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인가 싶었다. 어차피 세간은 거의 아내 돈으로 샀고, 내가 챙긴 건 아내에게 선물로 받은 천체 망원경 하나가 전부였다. 정말 가져오고 싶었던 건 치타였지만 아내가 내어줄 리 없었다. 치타는 원래부터 아내의 고양이였다. 아내의 집에 처음 간 날 치타는 하루 종일 옷장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아내와 나란히 침대에 누웠더니 뭐가 못마땅한지 야-옹도 아니라 이야-으 같은 소리를 내며 울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깼을 때 치타는 내 종아리에 등을 붙이고 잠들어 있었다. 집을 합칠 때는 아내의 집이 아니라 치타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치타가 있으면 아이를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했다. 물론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전처랑은 완전히 끝난 거 아니었어?”
“와이프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자네가 술만 먹으면 욕하잖아. 여기 오는 사람들은 전부 아는 이름일 걸?”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았다. 원래부터 못난 남편이었지만 갑자기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술 취해서 전처를 욕하고 다니는 남자라니. 그야말로 최악의 인간이 아닌가. 내가 이우선이었대도 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나는 심지어 양말도 한 짝씩만 잃어버리는 놈이었으니까. 잠깐, 그게 어때서? 그깟 양말 없어지면 마트가서 사면 되지. 나야말로 이우선을 욕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른다. 결혼 생활은 서로에게 고통이었으니 책임은 쌍방에 있는 거라고! 아내를 생각하면 늘 이렇게 조울증세가 휩쓸고 갔다. 두통이 몰려왔다. 사장이 상자를 얼른 열어보라고 재촉했다. 그럴 순 없지. 당신 호기심이나 채워주려고 이혼한 게 아니거든. 주먹을 쥐고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어이. 괜찮은 거야?”
“괜찮고 말고요.”
“아무 일 없는 거지?”
“아무 일 없어요.”
“그럼 이 가게를 직접 경영해보는 게 어때? 자네에게 정말이지 많은 일이 생길 거야. 권리금만 내면 인테리어값도 안 받을 게. 진짜 단골이니까 특별히 제안하는 거라고.”
사장은 가게 이름만큼이나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엎드렸다. 울 수 있다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 년 만에 온 연락이 택배라니. 이혼 서류가 날아왔을 때 나는 싸인을 하지 않고 버텼다. 사랑이 남아서라거나 결혼을 신성하게 여기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싸인하기가 싫었다. 법원에 드나들고 변호사를 두 번 갈아 치우고 회사에서 짤리는 동안 아내와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내는 매번 코트깃에 치타의 털을 묻히고 왔다.
“정말이네.”
사장이 티비의 볼륨을 높이며 말했다.
“유명한 사람이라더니 정말이야. 티비에 나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티비에 이우선의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구석에 달이 그려진 프로젝트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앵커는 달 탐사 프로젝트의 수장 이우선 씨가 실종됐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자문위원에서 프로젝트 책임자로 승진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야구 기사를 제외하곤 신문 한 조각도 읽지 않은 지 오래였다. 리포트도 없는 단신 뉴스였고, 앵커는 곧바로 다음 소식을 전했다. 벵에돔 낚시를 나간 지역 주민이 갑자기 불어난 해수면에 휩쓸려 갔다고 했다. 실종도 유행인 걸까. 나는 이우선이 걱정되지 않았다. 며칠 있으면 뻔뻔한 얼굴로 나타나겠지. 같이 살아봐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점수 차이가 진작에 벌어졌지만 9회가 끝날 때까지 티비 앞을 떠나지 않았다. 이걸로 7연패 확정이었다. 열불이 나서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더니 집에 갈 때쯤엔 제법 취기가 올랐다. 새로 개발한 생강 국수를 한술 뜨고 가라며 붙잡는 사장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갔다. 창문마다 블라인드를 꼼꼼하게 내리고 이우선이 보내온 상자를 열었다. 네모난 물체가 나왔다. 두부 위에 반으로 가른 방울토마토를 얹어 놓은 모양이었다. 빨간 동그라미는 뭔가를 켜고 끌 수 있는 버튼처럼 보였다. 모서리에 안테나처럼 뻗은 철사가 솟은 거로 봐서는 송신기의 일종이었다. 달에 기계를 만들어 보내는 사람이 이런 허접한 물건을 보내오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폭탄은 아니겠지.
우리의 마지막이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용기를 내서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생각보다 뻑뻑해서 힘껏 눌러야 했다. 딸깍, 소리를 내며 눌린 버튼은 두부 같은 본체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전부인 건가? 하다못해 음성 메시지라도 흘러나올 줄 알았는데. 같이 사는 동안 아내가 했던 농담의 숫자를 세어봤다. 일곱... 여덟... 열 개보다는 분명 아래였다. 장난으로 이런 기계를 보낼 사람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버튼을 다시 눌렀다. 폭, 소리를 내며 버튼이 튀어 올랐다. 딸깍, 폭, 딸깍, 폭. 뭐야 이거, 하는 기분이 들어 송신기를 던져 놓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내가 만든 기계를 나는 ‘벼룩’이라고 불렀다. 기계는 다리가 여섯 개였고, 몸통은 있지만 얼굴이 없었다. 태양광 패널로 주전력을 충당했고 비상 가동을 위한 소규모 원자로가 탑재돼 있었다. 겉보기엔 그럴싸했지만 사실 벼룩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을 찍지도 않고, 흙을 파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대기 성분을 분석하지도 않았다.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옆으로 가는 게 전부였다. 이우선은 벼룩들이 사선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 가장 많은 개발비가 투입됐다고 말해줬다. 탐사선이 발사되기 얼마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녀가 직접 밝힌 벼룩의 컨셉은 ‘싸고 단순한 기계를 많이’였다. 어쩐지 시대적인 요구와도 부합한 문구처럼 들렸던 탓에 많은 언론사가 기사 제목으로 썼다. 아내는 확실히 스타가 될 자질이 있었다. 잘만 하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미친 과학자가 세계를 망치는 전형에 부합했을 것이다. 못해도 과학기술부 장관 정도는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미친 과학자는 세계 대신 내각을 망쳤을 것이다.
결혼 생활을 돌아보면 크레이터 사이를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벼룩들의 활동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애정을 담은 아침 인사도 없었고 사소하게 공유하는 비밀도 없었다. 가정이 우선? 직장이 우선? 하는 고전적인 질문을 던질 틈조차 없었다. 주행이 우선? 탐색이 우선? 형성이 우선? 성분이 우선? 하는 것들 만이 그녀에게 중요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이우선이 우선’이었고 내게 관심을 보인 건 치타뿐이었다. 아내에게 속아 넘어간 건 처음 자고 일어난 날 내게 건넨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신기하게 너랑 있으면 편히 잘 수 있어.” 나는 그게 일종의 사랑 고백이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달에 보낼 기계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오직 잠을 자기 위한 목적으로 나를 선택한 거다.
15연패가 확정될 무렵 뉴스에선 프로젝트의 위기에 대해 연일 떠들고 있었다. 원인 미상의 폭발이 계속 관측됐다. 그깟 벼룩 몇 개 없어지는 게 뭔 대수인가 싶었다. 어차피 벼룩은 싸고, 차고 넘칠 만큼 많이 보내놓지 않았는가. 자그마치 열다섯 번. 삼 주 내내 야구를 하고도 한 번을 이기지 못한 거다. 시리어스 리의 야구광들은 모두 나와 같은 팀을 응원했다. 프로야구가 지역 연고로 시작된 건 오랜 전통이었고, 어느 동네에 태어나는지는 맘대로 고를 수 없는 일이었다. 술집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사장이 자꾸만 시리어스 리를 인수해달라며 조르는 탓에 웬만하면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팀이 열다섯 번 진 만큼 어느 팀인가는 이겼다. 물가가 요동치고 인심도 흉흉했지만 누군가는 야구를 보며 웃은 거다. 사회통합이 요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6연패는 그림 같은 끝내기 홈런으로 장식됐다. 그날따라 연장까지 팽팽하게 버텨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상대편 9번 타자가 쏘아 올린 공이 달을 배경으로 아치를 그렸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했다. 홧김에 송신기를 부서져라 내리쳤다. 이우선은 역시 좋은 공학자였다. 내 주먹 정도로 부술 수 있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홈런 장면 리플레이를 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희미하지만 달에 빨간 점이 돋는 게 보였다. 쾅, 쾅, 쾅, 쾅 네 번을 내리쳤는데 딱 네 개의 점이 생겼다. 쾅. 시험 삼아 한 번 더 내리쳐봤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화면에 잡힌 반달에 빨간 점이 돋았다. 사장이 나를 보며 신경질을 냈다.
“가게를 부술 셈이야? 그럴 거면 아예 인수를 하라고. 그럼 부수든 불태우든 다 자네 맘이잖아. 싸게 준다니까.”
“그래. 차라리 네가 사라 제발. 생강 요리를 얼마나 더 버텨야 되는 거냐.” 옆에 앉은 남자가 사장을 거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머리카락을 잃어가는 동네 선배로, 간신히 남아있는 옆머리를 무엇보다 소중히 하는 남자였다. 머리가 완전히 반질반질해지기 전에 우승하는 걸 보는 게 그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네가 주인이 되면 우리 학교 총동창회도 여기서 열어줄게. 다들 고향에 내려와 있거든. 못해도 백 오십 명은 모이겠다.”
“우리 같은 학교 나왔잖아요.”
“그럼 너는 회비 면제다. 넌 인상이 좋아서 장사하면 정말 잘 될 거야.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쉽게 돈 벌 길이 어딨을 거 같냐?”
“몇 프로 받기로 했어요? 오 프로?”
“삼 프로.” 선배는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사장은 구석에 앉은 다른 손님에게 인수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빠른 시일 내에 사장의 짐을 덜어줄 만한 호구가 나타나길 바랐다. 누가 뭐래도 생강에 맥주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프로야구 최다연패 기록에 한 발짝 다가섰다며 절망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시리어스 리를 빠져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버튼을 눌렀다. 폭. 몇 초 후 반달의 검은 부분에 빨간 점이 돋았다. 달칵. 달의 왼쪽 뺨 어귀에서 화농성 여드름이 터져나가듯 얼룩이 생겼다. 이우선은 미친 게 분명했다. 원래도 약간 미쳐있었지만 제대로 미쳐버린 거다. 나는 이런 물건을 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문과였고, 식품자원경제학과를 나왔고, 현재로써는 직업이 없었다. 벼룩이 터져나가는 건 물론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버튼이 주어지는 걸 바란 적은 없었다.
이번 시즌을 포기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면서 시리어스 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가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사장은 숨 쉬는 걸 한숨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실험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가게를 인수해서 ‘한숨 심하게 쉬는 분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내걸고 싶었다. 시리어스 리를 개업할 때 사장은 다짐했다고 한다. 대단한 레스토랑까진 못 되더라도 동네에서 인정받는 요리를 만들자고.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 적도 있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상대라면 화분이랑도 잘 수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대통령이 연일 티비에 나와 달 탐사 프로젝트에는 차질이 없다고 역설했다. 최근 들어 기계가 폭발한 건 단순한 오작동일 뿐이며, 우리의 위대한 도전은 끝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국회는 정부를 상대로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핵심 증인으로 채택된 과학자 이우선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여기저기서 달 탐사 프로젝트가 얼마나 멍청한 계획이었는지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우선과 함께 지내며 벼룩의 아이디어를 초기 단계부터 지켜본 나로서는 뒤늦은 반성이라는 느낌이었다.
벼룩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정부는 ‘싸고 단순한 기계를 많이’를 모토로 벼룩을 만들었다. 복잡한 기계는 무겁고, 무거운 기계는 많이 보낼 수가 없다. 적은 수의 기계가 달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한두 개만 고장 나도 탐사에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복잡한 기계는 복잡한 일을 해야 되잖아? 복잡한 일은 어렵다. 어려운 일은 틀리기 십상이다. 근데 틀리다 맞다 가르쳐 줄 사람이나 다른 기계가 옆에 있을 리 없다. 그럼 틀린 줄도 모르고 틀린 일을 계속하겠지?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리거나 옆에 있는 기계를 터뜨릴 것이었다. 그런 실패라면 그나마 납득이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벼룩들은 달랐다. 벼룩에게는 성공의 조건이 없었고, 그래서 절대로 터져서는 안 됐다.
사람들은 대단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 딱히 하는 일은 없어도 꾸준히 달 표면을 어슬렁거리면서 우리가 달에 뭐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를 바랐다. 정부는 달 기계가 폭발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검지를 최대한 건방지게 움직여 송신기 버튼을 딸깍거렸다.
“내가 볼 때 저 사람은 처음부터 대통령에 소질이 없었던 거야. 다른 일을 했으면 훨씬 행복했을 텐데.” 사장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실은 사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사장도 요리 말고 다른 일을 하는 편이 훨씬 행복할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한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역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꽤나 불공평했다. 어떤 사람은 잘못하는 것도 그럭저럭 해나가면서 지내니까 말이다. 문 닫을 시간까지 내내 우울해 하던 사장은 카운터에 놓여 있는 커피 화분을 들고나와 함께 퇴근했다.
밤 새 뜬 눈으로 천장을 보다가 해고 동기 몇 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벽이 깊어서야 한 명에게 답장이 왔다. 해 뜨는 걸 보려고 지리산에 오르는 중이라고 했다.
‘너 산이라면 질색이잖아.’
‘그건 사장이 주말마다 억지로 부르니까 그랬던 거고. 등산이 체질인 것 같아.’
‘돈도 안 되는 일에 뭐하러 힘 써.’
‘그러는 너는 뭐 하고 지내는데?’
나는 달리 대답할 말을 못 찾아서 핸드폰을 내려놨다. 생각해보니 이혼하고 단 하루도 편히 잠든 날이 없는 것 같았다. 잠드는 건 아예 포기하고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늦기 전에 팀을 해체해야 한다는 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지켜보는 팬들을 위해서나 리그 전체를 위해서도 그러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굳이 로그인까지 해서 비추천 버튼을 눌렀다.
이우선이 시리어스 리에 들어 온 건 오후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야구 모자를 눌러썼지만 발소리만으로도 그녀인 걸 알아차렸다. 내가 그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파리가 늘어뜨린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장은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 다소 흥분한 눈치였다. 그는 생강 냄새가 풍길법한 메뉴판을 이우선 앞에 놓고 공손히 손을 모았다. 이우선은 메뉴판을 읽고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앞뒤로 다섯 번 정도 넘기다가 결국에 고른 건 생강차였다. 나는 맥주잔을 들고 이우선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너를 찾던데.”
“평생 못 찾을 거야. 나는 기계만 잘 만드는 게 아니거든.”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얘기했잖아. 나는 기계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고.”
이우선이 시리어스 리로 택배를 보내온 게 떠올랐다. 그녀는 헤어질 때보다 뺨이 조금 헬쓱해 해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내를 웃게 만들고 싶었다. 필요한 건 재치있는 나와 아무 말에나 잘 웃는 너였다. 가게에는 둘 중에 한 가지도 준비돼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안부만큼이나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치타는?”
아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뒤로 꺾었다. 선글라스에 가렸지만 눈물이 맺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을 나가버렸어. 예상은 했는데 조금 갑작스럽더라. 시국이 이러니 말릴 수도 없고…”
“그래. 시국이… 아무래도 그렇지.”
알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다가와 식사 메뉴를 준비할지 물었다. 생강 절임을 곁들인 생강 파스타를 주문하면 특별 할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우선은 밥을 먹고 와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사장이 간절한 눈빛으로 이우선을 바라봤다. 그녀는 마지못해 생강 리조또를 주문했다.
“이젠 어떻게 할 거야?”
“한국을 떠야지. 여기에는 안 좋은 기억밖에 없어.” 이우선은 손을 뻗어 내 앞에 있는 맥주를 들이켰다. “오, 여기 맥주는 괜찮네?”
“나를 포함해서?” 내가 물었다.
“당신이 핵심이야.” 이우선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벼룩은 원하는 만큼 터뜨려. 원래부터 맘에 안 들어 했잖아.”
이우선은 생강차를 밀어 놓고 내 맥주잔을 자기 앞에 가져다 놨다. 꿀렁꿀렁 맥주를 넘기는 그녀를 보니 갑자기 마음이 시렸다. 내가 정말 저 여자를 사랑하긴 했던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사랑했다. 그녀도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벼룩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이우선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달에 대해 말하는 것도 좋아했고, 화성의 위성들을 개성 넘치는 동네 꼬마들에 비유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나는 주로 티비를 보며 그 이야기를 들었고, 침대에서는 아내의 목소리가 마취제 같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잠들었다. 그녀 앞엔 놓인 잔은 어느새 비어 있었다.
“좋아했잖아. 기계 만드는 거.”
“나는 원래 뭔가를 좋아하는 걸 잘해.”
“정말 내가 다 터뜨려버려도 상관없어?”
“응. 한번 싫어지면 다시는 안 보거든.”
“그래. 그렇겠지. 이우선이 우선이란 거잖아.”
아내는 슬픈 표정으로 웃었다. 그녀가 아직 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지만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사장이 김이 피어오르는 리조또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생강향이 코를 찔러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움푹 들어간 숟가락으로 리조또를 한술 떴다. 냄새를 맡더니 입으로 가져갈 생각도 않고 내려 놓았다. 아내는 자리를 정리하며 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내가 하려는 말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내는 고양이를 어르듯 내 머리를 쓸어내렸다.
“차라리 선인장 같은 걸 사다가 키워. 너한테는 그게 더 어울려.”
“나랑 같이 있으면 편히 잘 수 있다며.”
아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잖아, 그 얘기는 당신이 한 거야. 내가 아니라.”
나는 아내가 나가버린 출입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한 게 분명했다. 그 말을 건네는 이우선의 표정이 생생히 기억나고, 내가 답례로 지은 표정까지 머릿속에 재생할 수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나를 번뜩 스쳐 갔다. 아내와 마주 앉아있던 내내 어딘지 거슬리고 불편했는데,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세심하게도 라이벌 팀의 모자를 쓰고 왔던 것이다. 이번 시즌 상대전적은 압도적인 열세였다. 사장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손도 대지 않은 리조또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가게 문을 열고 선배가 들어왔다. 바람에 날린 옆머리를 가다듬다가 사장과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 나는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선배는 뉴스도 안 보고 뭐 하냐며 핀잔을 주더니 티비를 켰다. 긴급 속보를 알리는 자막이 빨간 띠를 두르고 있었다. 정부가 그만둬버렸다. 아, 정부가? 정부가 진짜 그만둬버린 거다.
정부 대변인이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것처럼 까만 양복에 까만 타이를 한 차림이었다.
“정부는 오늘부로 자발적 해체를 선언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묵묵히 응원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질타와 격려 속에 걸어온 이 길의 마침표를 지금 여기에 찍습니다. 제가 마지막 남은 정부입니다. 이 발표를 마치면 저도 떠납니다.” 대변인은 카메라 앞에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그럼 야구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선배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야구는 괜찮아. 이번 시즌은 어떻게든 끝까지 간다더라.”
정부가 그만뒀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갔다. 야구는 계속 졌고 사장은 날이 갈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공채에 갓 합격해 연수원에 들어가 있던 발령 대기자들이 마지막 공무원이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장관 임명을 시작할지 여부를 놓고 매일 토론을 벌였다. 아무래도 결론이 나지 않아 뉴스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토론 경과를 보도했다. 벵에돔 낚시꾼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남자는 실종된 사이 달에 다녀왔다고 주장했는데, 정부가 그만두면서 경찰도 사라져서 진실을 밝혀낼 길이 없었다. 남자의 가족들은 조만간 정신감정을 의뢰할 거란 계획을 밝혔다.
시즌 최종전을 기념하기 위해 시리어스 리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공무원 하던 사람들이 전부 고향에 내려와 얼추 동네잔치 비슷한 모양이 됐다. 자랑할 거리를 가져온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분위기가 밍숭맹숭했다. 나는 선심 쓰듯 창가에 송신기를 꺼내 놓았다. 옆에는 아내가 준 천체 망원경을 설치했다. 안타를 하나 맞을 때마다 버튼을 누르게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심드렁했다. 낙차 큰 커브를 받아친 상대편 타자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망원경에 눈을 대고 버튼을 눌러봐요.”
선배가 옆머리를 쓸어올리며 용기 있게 나섰다. 버튼이 딸깍, 하고 네모 속에 파묻혔다.
“와, 이거 진짜네? 달에서 뭐가 막 번쩍해.”
사람들이 망원경 곁으로 모여들었다.
“뭔데? 뭐가 진짜야?”
“이거 누르니까 팍 터져. 저기서.”
“이거야? 이것 때문에 달에 있는 기계가 폭발한 거야?”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정부가, 이러니 정부가 그만둬도 이상할 게 없지, 하며 혀를 찼다. 너도나도 버튼을 눌러 보겠다며 어깨를 밀쳐댔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이제 겨우 1회 초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 두 번씩은 누를 수 있어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티비로 눈길을 돌렸다. 경기가 끝나면 아마도 우리 팀은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30연패 기록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18연패가 최고 기록이었고, 메이저리그를 따져도 24연패가 전부였다.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의 기록은 심지어 19세기 이래로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었다. 사람들은 안타를 맞을 때마다 환호하며 송신기 앞으로 갔다. 달에는 아직도 차고 넘칠 만큼 많은 벼룩이 있었다.
뒤에서 누가 어깨를 쳤다. 가볍게 맞은 것 같은데 저릿저릿했다. 사장이었다.
“시리어스 리를 너한테 넘기려고.”
“말했잖아요. 저 돈 없다고요.”
“아니. 그냥 넘길 거야. 돈은 필요 없어. 여기서 신발을 팔든 생선을 떼다 팔든 맘대로 해.” 장난치는 표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사장의 얼굴은 장난에 적합하지 않았다. 부풀어 오른 눈물이 금방이라도 뺨에 떨어질 것 같았다. “어디든 가서 진짜 요리를 배워와야겠어. 그때까지 네가 부수지만 말고 좀 맡아줘.”
“부수긴 왜 부숴요. 여긴 생맥주가 맛있잖아요. 내킬 때 나와서 맥주나 팔게요. 나도 좀 마시고.” 나는 사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어쨌든 시리어스 리 덕분에 해고도 이혼도 슬기롭게 넘겼으니까. 사장의 커다란 손이 내 손을 덮었다.
“그럼 간단한 생강 요리를 알려줄게.”
“아니, 괜찮아요. 저는 맥주만 팔게요.” 마주 잡은 사장의 손을 아래위로 힘껏 흔들었다.
“그리고 말야, 네 전처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더라. 리조또에는 손도 안 댔지만.” 사장이 눈에 젖은 물기를 닦으며 말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네가 잘못한 거 같더라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
나는 사장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생각이 필요한 문제였다. 사장은 조용히 카운터로 가더니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는 가게에 있던 화분을 전부 테라스에 내놓고, 평소에 아끼던 커피 화분만 따로 포장했다. 간판 구석에 달을 그려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게 이름은 시리어스 김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장이 돌아오면 이름도 돌려줘야지. 경기는 최종전답게 큰 점수 차이로 리드 당했다.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더 버튼을 눌러보고 싶은 마음에 상대 팀을 응원했다. 선배가 맥주잔을 들고 내 옆으로 왔다.
“내년에는 우승하지 않을까? 이렇게 바닥을 쳤으면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길 거 같지 않아?”
“왜 이래요. 이 팀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 되는 거 알잖아요.”
“하긴. 그렇지?”
“구십구도 아니고 백으로 장담해요. 태어나서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도 내년 되면 시범경기부터 챙겨 볼 거잖아.”
“내년에도 야구를 한다면 말이죠.”
“그래. 내년에도 야구를 한다면.”
나는 선배와 잔을 부딪치고 남은 맥주를 입에 쏟아부었다.
두 번째 이혼도, 다시 고양이를 키우는 일도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김홍
1986년 서울 출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수료
오정희·성석제 소설가
본심으로 넘어온 9편의 작품은 상당한 수준의 성취를 보였다. 소재도 다양해서 서로 겹치는 게 없었다. ‘사라진 볼트에 관한 인터뷰’는 노동현장의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다. 기자를 화자로 내세웠는데,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기자에 어울리지 않게 주관적인 해석이 나타난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느 순간에도 절대인 것’은 북한에서 온 소녀와 만나는 어린 유학생을 다룬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차분하지만, 개인적인 기억일 뿐 독자와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볼셰비키가 왔다’는 근래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착상이 기발하고 전개는 거침없이 활달하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일상적으로 쓰는 속어가 여과 없이 소설의 ‘문장’으로 들어온 것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당선작인 ‘어쨌든 하루하루’는 느릿하고 완숙한 화법을 구사한다. 달 탐사 프로젝트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설정부터 엉뚱하지만, 치밀한 세부의 부연으로 그 엉뚱함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뀌고 독자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작금의 정치적 상황, 삼류소설을 무색케 하는 황당한 국면 전개를 통렬하게 풍자한다는 점이 빛난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게 된 분들의 분발을 바란다.
김홍
1986년 서울 출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수료
이 소설은 여름에 썼다. 야구를 많이 봤고 더워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30연패를 하지만 실제로는 연승도 하고 꽤 괜찮은 시즌이었다. 좀 덥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여름이었다. 여름까진 괜찮았던 것 같다. 정부가 농담처럼 그만두는 부분을 쓰고 ‘거 농담도 참’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농담보다 현실이 더 농담 같다. 앞으로 뭘 써야 될지 막막해지는 기분이다.
밤늦게 글을 쓰다 기분이 이상해질 때가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왜 계속 쓰고 있는 거지? 그런 질문을 하다 보면 내 자신이 낯설어진다. 그럼 낯선 사람과 동행하는 기분으로 또 쓴다. 하루하루가 엄청나게 긴데 그날그날 뭘 했는지 생각하면 하나도 모르겠다 싶은 때도 있다. 그러면 또 시간을 지울 요량으로 쓴다. 열심히 써서 언젠가는 읽는 사람을 지구에 남은 마지막 사람처럼 만드는 소설을 쓰고 싶다.
지금은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가 다 끝난 줄 알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예약한 뒤 이틀 뒤에 당선 연락을 받았다. 다섯 살에 한라산을 오르다가 무섭다고 울어서 업혀 내려왔다. 이번에는 꼭 끝까지 가려고 한다. 1년에 50일만 열린다는 백록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을까. 안개만 보고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일도 막막함 투성이라 이상하지 않다.
길이 되고 용기가 돼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덜 된 글을 군말 없이 봐준 지원, 윤주 님과 ‘뫙’ 친구들에게 고맙다. 이상한 아들 남보다 오래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할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