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뉴 트롤리 딜레마

by  구지수

  • 작품전문
  • 심사평
  • 당선소감
  • 등장인물

    효인 50대 (소미의 여성 양육자)
    소미 20대
    다원 (보험사 직원)

    배경

    자율화 3단계 자율화 3단계는 차량이 교통신호와 도로 흐름을 인식해 운전자가 독서 등 다른 활동을 할 수 있고, 특정 상황에서만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조건적 자율주행 단계이다. 핸들에 손을 올리고 전방을 주시하라는 권고사항이 담긴 안전 운행 가이드라인만 존재한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08월 열린 ‘자율주행차 윤리지침’ 공개토론회에서 “내년에 3단계 자율주행차가 국내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된 시기.

    공간

    무대 중앙에 자동차의 좌석으로 보이는 의자들이 놓여있다.
    장면이 병원으로 전환될 때는 운전석과 조수석, 뒷좌석을 간편하게 분리해서 병원 의자처럼 보이도록 나란히 놓을 수 있다.



    1

    어둡고 좁은 국도. 자율주행 중인 차 안의 소미와 효인.

    소미는 조수석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효인은 운전석에서 귤을 까고 있다.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차량이 자율주행 중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소미 얼마나 남았어?

    효인 거의 다 왔어. 할머니한테 전화해.

    소미 곧 도착할 건데 뭐 하러.

    효인 꼭 위험하게 밤길에 나와계신단 말이야. 들어가 계시라고 전화해.

    소미 어차피 들어가 계시라고 해도 기다리실걸. 그냥 할머니 태우고 들어가자.

    효인 전화해봐. 뭐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봐서 읍내에서 사가게.

    소미 맨날 없다고 하시잖아.

    효인 할머니한테 전화하기 싫어?

    소미 싫은 게 아니라 불필요한 전화를 왜 하냐는 거야. 곧 만날 건데. 얼굴 보고 얘기하 면 되잖아. 정 걸고 싶으면 엄마가 걸어. 어차피 자율주행이잖아.

    효인 곧 도랑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갈 거라 앞에 보고 있을 거야.

    소미 (비아냥대며) 그렇게 모범적인 운전을 하시는 분이 왜 차로 고라니를 치셨어요?

    효인 너 말 그렇게 할래? 됐다. 됐어. 내가 해야지.

    효인은 휴대폰을 찾으려고 몸을 돌려 차 뒷좌석을 뒤적거린다.

    효인 (혼잣말로) 고라니 한 번 쳤다고 엄마를 잡아먹으려 드네. 무서워서 살 수가 있나. 이놈의 핸드폰은 어딨는 거야.

    그때 소미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급하게 효인을 부른다.

    소미 엄마! 엄마!

    효인 왜?

    소미 (큰 소리로) 엄마 차 멈춰!

    효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본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동시에 둘의 비명 소리가 들리며 둔탁한 충돌음이 발생한다.



    [충돌이 발생하였습니다. 1시간 전 충돌과 비슷한 강도입니다. 주행을 계속하겠습니까?]



    효인은 기계음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시동을 꺼버린다. 차는 멈췄지만 쉽사리 내리지 못한다. 그런 효인을 두고 급하게 뛰어내리는 소미.

    소미 할머니!!



    암전.







    2

    병원 수술실 앞 의자. 소미와 효인이 앉아있다.

    소미 수술 얼마나 걸린대?

    효인은 대답하지 않고 손톱을 물어뜯는다.

    소미 내 말 못 들었어?

    효인 엄마 머리 아파. 조용히 좀 해.

    소미 할머니 돌아가시는 거 아니겠지?

    효인 (화를 내며)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안 그래도 불안한데.

    소미 왜 자꾸 화를 내?

    다원 등장. 멀끔한 정장을 입고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둘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날선 대화를 하는 중이다.

    다원 안녕하세요. 황효인씨 맞으세요?

    효인 (자리에서 일어나며) 네. 제가 황효인인데요.

    다원 (명함을 내밀며) 안녕하세요. TD다이렉트 손해사정센터 이다원입니다.

    효인 아, 안녕하세요.

    다원 (작은 목소리로) 고객님 혹시 1층 카페에서 저랑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흔한 사고는 아니다 보니 절차상 필요한 것들이 꽤 많아서요.

    효인 네. (몸을 돌려) 소미야. 여기 잠깐만 있어.

    소미 나도 갈래.

    효인 너도?

    다원 (살짝 당황하며) 보험액 지급 문제나 사고 관련 모든 절차는 당사자와 보험사끼리 처리하는 게 원칙이라서요.

    효인 그래. 소미야, 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 얼른 다녀올게.

    소미 (다원을 보며) 저도 당사자 맞는데요?

    다원 네?

    소미 저도 당사자라고요. 사고 목격자이기도 하고요. TD에서 제 앞으로 생명, 상해, 비운 전자, 동승자 보험 전부 들어놨고 사고 차량 조수석에 탑승하고 있기도 했는데, 저 는 왜 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당황하는 다원과 효인

    다원 그럼 그냥 여기서 얘기할까요?

    소미 네. 그렇게 하세요.

    효인 (다원을 의자로 안내하며) 이쪽으로 앉으세요.

    다원은 수술실 앞 의자에 앉는다. 효인과 소미 사이에 앉아있지만, 몸은 효인의 쪽으로 완전히 돌린 상태이다. 사실상 효인과 다원만 마주 보고 있는 것. 다원은 들고 온 가방을 열어 이것저것 서류들을 꺼낸다.

    다원 고객님, 차량이

    효인 ‘레브’요. 연식도 3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다원 자율주행하셨어요?

    효인 네. 3단계요. 3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요?

    소미 (효인에게 귓속말을 하며) 왜 굽실대?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다원 혹시…

    효인 네네.

    주위를 둘러보는 다원.

    다원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경찰에 신고하셨나요?

    효인 아… 아뇨.

    다원 잘하셨어요.

    소미 (어이가 없다는 듯) 지금 뭘 잘했다는 거예요?

    다원 지금 수술 중이신 황명자씨도 어차피 가족이시잖아요. 조회해 보니까 보험도 다 TD 에서 가족상품으로 들어놓으신 부분 확인되고요. 이런 상황에는 신고 안 하는 게 훨씬 좋죠. 괜히 사고 때문에 보험료 오를 일도 없고요. 인명 사고는 보험료가 어마 어마하게 오르거든요.

    효인 저기, 저는

    다원 네. 말씀하세요.

    효인 보험료도 보험료지만 대체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요. 자율 주행 자동차가 사람을 칠 수 있는 건가요?

    다원 (더 살가운 말투로) 저희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차량의 모든 기록과 오토파일럿 시스템 전체, 도로교통 상황까지 전부 분석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소미 인명 피해 교통사고 신고 불이행은 불법이잖아요.

    다원은 처음으로 소미를 향해 몸을 돌린다.

    다원 따님.

    소미 따님 아니고 고객님이라고 불러주실래요? 같은 고객인데 왜 호칭이 달라요?

    다원 고객님.

    소미 제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요. 도로교통법 모르세요?

    효인 (소미를 막아서며) 소미야, 그건 일단 할머니 깨어나시면 얘기하자.

    소미 뭔 소리야. 할머니가 퍽이나 신고하라고 하겠다.

    다원 사고가 나서 충격받으신 마음 매우 이해합니다. 게다가 자율주행 중이었는데 얼마 나 놀라셨겠어요. 하지만 저희가 사고 처리와 분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신뢰하며 기다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소미 이미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떻게 신뢰를 하라는 거에요.

    다원은 소미의 말을 무시하고 효인에게 서류를 건넨다.

    다원 보험 예상 지급액입니다. 지급 내용과 특약 확인하시고 연락 주세요.

    효인 (서류를 들여다보며) 네. (사이) 잠시만요.

    다원 네?

    효인 보장 금액이 너무 달라서요. 제가 가입했던 상품의 거의 세 배인데요.

    다원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본사에서 지급액 산정이 그렇게 됐네요. 내용 확인 꼼꼼하게 해보세요.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원은 인사를 하고 퇴장한다. 효인은 서류를 읽기 시작한다. 소미는 다원이 간 걸 확인하고 효인에게 말을 붙인다. 이때 다원이 다시 나와 구석에 숨어 둘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소미와 효인은 다원을 볼 수 없지만, 관객들은 다원을 볼 수 있다.

    소미 신고 안 할 거야?

    효인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이거 읽고 있잖아.

    소미 엄마!

    효인 (짜증을 내며) 아, 왜?

    소미 엄마 정신 차려. 지금 차로 사람 친 거야. 경찰에 신고를 왜 안 해?

    효인 할머니도 아직 별말이 없는데 네가 왜 이래.

    소미 할머니 의사랑 상관없는 문제잖아. 알면서 왜 그래.

    효인은 한숨을 쉬며 서류를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소미는 본격적으로 따지기 시작한다.

    소미 이제 와서 후회가 돼? 그러니까 자율주행하지 말라고 했잖아.

    효인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소미 할머니 치기 전에 다른 충돌이 있었잖아. 그때라도 수동으로 바꿨어야지.

    효인 사람을 친 것도 아니었잖아.

    소미 뭐가 달라? 동물들은 죽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거야?

    다원은 핸드폰으로 녹음을 시작한다. 최대한 두 사람 가까이 핸드폰을 든 팔을 뻗는다.

    소미 두 번이나 부딪혔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야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차를 멈추거나 자율주행을 하지 말았어야지.

    효인 첫 번째는 쓰레기였잖아.

    소미 아냐. 지금 생각해 보니 강아지였어.

    효인 강아지?

    소미 작게 짖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

    효인 왜 그 얘기를 지금 해.

    소미 계속 얘기했어. 쓰레기 아닌 것 같다고도 말했고 고라니 쳤을 때 세우자고도 말했 잖아.

    효인 (괴로운 표정으로) 제발 이따가 얘기하면 안 될까? 할머니 수술이라도 끝나고.

    소미 엄마가 신고 안 하면 나라도 할 거야.

    효인 소미야!

    효인과 실랑이를 하는 소미. 다원은 급하게 녹음을 끄고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소미와 효인은 다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속삭이듯 말하는 다원.

    다원 어. 오늘 사고 난 차. 어 그거. 블랙박스 칩 빼서 영상 옮겨 놔. 황명자씨 치기 전에 충돌 두 번이나 있었대. 아니, 사람은 아니고. 개랑 사슴? 고라니인가? 몰라 시발 개새끼는 확실히 들었어.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걸로 물고 늘어져야 할 것 같아. 어어. 일단 충돌 부분 영상만 좀 빼서 나한테 보내줘.

    다원의 휴대폰으로 전송된 영상. 다원은 블랙박스 영상을 재생하기 위해 저장한다.

    실랑이를 하던 소미와 효인은 의자를 자동차 좌석으로 바꾸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는다.



    3

    블랙박스에 담겨있을 사고 전 충돌 장면들이 펼쳐진다.

    어둑한 도로를 운전 중인 효인.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비닐봉지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꺼낸다.

    소미 자율주행하게?

    효인 응. 고속도로 들어가면. 엄마 종일 일해서 운전 힘들어.

    소미 난 자율주행 별론데.

    효인 왜?

    소미 이상하잖아. 내 의지랑 상관없이 어디로 이송되는 기분이야.

    효인 사람이 개발하고 사람이 입력한 대로 가는 건데, 의지랑 왜 상관이 없어.

    소미 그냥 내 기분이 그렇다고.

    효인 나중에 네 차 생기면 넌 직접 운전해. 엄마는 자율주행 켜고 밥 먹을 거야.

    소미 맘대로 해.

    효인 시간 좀 걸리니까 한숨 자든지.

    소미 어제 많이 잤어.

    전화벨이 울린다. 통화를 하는 효인.

    효인 어, 엄마. 밥? 소미는 배 안 고프대. 나는 가는 길에 도시락 먹으려고. 괜찮다니까. 다들 자율주행으로 고속도로 운전하고 그래. 응응. 한 시간 정도 걸려. 기다려.

    아직까지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있다.

    소미 할머니야?

    효인 응.

    소미 할머니는 아직도 엄마가 애 같은가 봐.

    효인 칠십 먹은 노인도 아흔 노모 앞에서는 애지.

    효인이 핸들에 달린 버튼을 누른다. 인공지능 시스템에서 기계음이 들려온다.



    [고속도로에 진입합니다. 자율주행 3단계로 변경합니다.]



    효인은 핸들에서 손을 뗀다. 곧바로 도시락 뚜껑을 열고 나무젓가락을 쪼갠다. 소미는 그런 효인과 고속도로를 번갈아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소미 으윽. 기분 이상해.

    효인 넌 애가 늙은이처럼 왜 그래? 나 진통 오고 너 낳으러 병원 갈 때도 자율주행으로 갔어. 너희 아빠가 하도 손을 떨어서.

    소미 간도 크다. 그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효인 직접 운전했으면 사고 났을걸. 산모인 나보다 벌벌 떠는 꼴이 얼마나 웃기던지.

    소미 그때도 지금처럼 3단계 자동화였어?

    효인 아니. 1단계인가 그랬어. 주행 자체는 자동인데 방향 설정만 수동이었지.

    소미 그게 그나마 인간적이네.

    효인 어차피 기계가 하는 일인데 인간적이고 말고 가 어디 있니? 인간은 편리하면 그만 이지.

    소미 (발끈하며) 차 안에 사람이 타고 있잖아. 도로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효인 (지겨운 듯) 어우, 그만해. 아무튼 넌 자율주행 베이비야. 알겠니? 제발 이 편리한 세상을 받아들여.

    소미는 대답하지 않는다. 효인은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물병을 꺼낸다. 그 순간 차체의 앞쪽에서 작은 충돌 소리와 무언가가 작게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창밖을 바라보는 소미와 아무렇지 않은 효인.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감속합니다. 주행을 지속하시겠습니까?]



    효인은 주행 모드 지속 버튼을 누른다.

    소미 엄마 방금 뭐 친 거 아니야?효인 아냐.

    소미 느낌이 이상했는데.

    효인 쓰레기겠지. 고속도로에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데.

    계속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뒤를 돌아보는 소미.

    어둑한 도로 위에 애매하게 작은 형체가 보인다.

    소미 자율 주행하지 말고 그냥 엄마가 운전하면 안 돼? 좀 이상한 것 같아서 그래.

    효인 뭐가 이상해?

    소미 충돌이 발생하고 나서 알려주는 게 이상하잖아.

    효인 그럼 고속도로에서 앞에 쓰레기가 나타날 때마다 멈춰서 확인하고 주행할까?

    소미 아니 그게 아니라.

    효인 (말을 자르고) 고속도로 자율주행 허가 난지 벌써 20년째야. 그동안 자율주행 과실 인명 사고는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출시 전에도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겠니. 쓸데 없는 걱정 그만하고 시트 밑에 쓰레기 정리나 좀 해.

    비닐봉지를 건네주는 효인. 소미는 쓰레기들을 주워 담으며 혼잣말을 한다.

    소미 아무리 생각해도 쓰레기는 아니었는데.

    효인은 그런 소미를 신경도 쓰지 않고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먹는다.

    사이

    완전히 어두워진 도로.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 갑자기 도로로 뛰어 들어온 고라니. 효인과 소미가 타고 있는 차가 고라니를 빗겨 친다.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감속합니다. 정차하시겠습니까?]



    소미 방금 노루 쳤잖아. 차 세워 엄마.

    효인 노루? 고라니 아냐?

    소미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뭐가 중요해! 얼른 차 세워.

    효인 어차피 고의 아니면 벌금 안 물어. 인터넷에 검색해서 사체 처리하는 곳에 전화해.

    소미 엄마!

    효인은 위치 파악을 위해 창밖을 살핀다.

    효인 여기 경부고속도로 부산 가는 방향 200.8km 지점.

    소미 살아있을 수도 있잖아.

    효인 어떻게 살아있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 치였는데.

    소미 엄마 진짜 미쳤어?

    효인 여기서 지금 차를 세워서 어쩌자는 건데?

    소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지.

    효인 확인해서 살아있으면?

    소미 그거야...

    효인 이것 봐.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소미 그래도 이건 아니지. 생명을 죽인 건데.

    효인 사고였잖아.

    소미 내가 자율 주행하지 말랬잖아.

    효인 이보세요. 자율주행 기능 없을 때도 로드킬은 고속도로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고 중 하나였어.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라니를 어떡하라고. 심지어 저 고라니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책임은 없어. 로드킬에 대해서는 운전자의 양심과 개인적 책임에 맡 기는 게 이 나라 법이야.

    소미 불법만 아니면 다 괜찮다는 거야?

    효인 그럼 법치국가에서 뭘 더 지켜야 해?

    찝찝한 마음이지만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하는 소미.

    효인 고라니 치워달라고 전화 안 할 거야?

    소미 엄마가 해.

    효인 그래.

    인터넷에 전화번호를 검색하는 효인. 신호음이 간다.

    신호음과 직원의 목소리는 음성으로만 들린다.

    직원 도로공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효인 여기 경부고속도로 부산 가는 방향 200.8km 지점인데요.

    직원 네.

    효인 운전 중에 갑자기 고라니가 튀어나와서 차에 부딪혔어요. 처리 부탁드립니다.

    직원 지금 정차 중이세요?

    효인 아니요.

    직원 고라니 상태 확인은 안 하신 거죠?

    효인 네네.

    직원 신고 접수 완료되었고요. 전화 주신 번호로 진행 상황 및 처리결과 문자 드릴 거예 요.

    효인 네. 감사합니다.

    효인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뒷좌석으로 던진다. 계속해서 나오는 차량 안내 기계음.



    [차선을 변경합니다. 전방에 휴게소가 있습니다. 경유 설정을 원하시면 버튼을 눌러주세요.]



    소미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효인 넌 꼭 그러더라. 아까 싸고 오라니까.

    소미 아 몰라. 아까는 안 마려웠어. 얼른 세워줘.

    효인 알겠어.

    버튼을 누르는 효인.



    [전방 500m에 있는 휴게소를 경유지로 설정합니다.]



    소미 (혼잣말로) 고라니가 죽어도 차를 안 세우는데 내가 오줌 마렵다니까 차를 세우네.

    효인 야, 너 화장실 가지 마.

    소미 아 그런 게 어딨어. 세워줘.

    효인 싫어. 나는 고라니가 죽고 자식이 오줌보가 터져도 차를 안 세우는 냉혈한이야.

    효인은 버튼을 다시 누른다.



    [경유지 설정을 취소합니다. 주행을 계속합니다.]



    소미 엄마 진짜 또라이같아.

    효인 어, 맞아.

    소미는 조수석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효인은 운전석에서 귤을 깐다.

    소미 얼마나 남았어?

    효인 거의 다 왔어.

    소미 금방 오네.

    효인 할머니한테 전화해봐.

    소미 곧 도착할 건데 뭐하러.

    암전.





    4

    다시 병원의 상황으로 돌아온다. 실랑이 끝에 효인을 뿌리치고 나가려다 다원을 발견하는 소미. 다원은 다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소미 여기서 뭐 하세요?

    다원 깜빡하고 말씀 못 드린 게 있어서요. 가던 길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소미 뭔데요? 말씀하세요.

    다원 (웃으며) 황효인 고객님께 설명드릴 예정이라서요.

    소미 맘대로 하세요. 저 지금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회사에 전화해서 차량 전체 리콜할 준비나 하세요.

    다원 황명자씨랑 부딪히기 전에 강아지랑 고라니 쳐서 죽이셨던데요?

    당황한 소미와 여유롭게 웃는 다원.

    소미 그래서요?

    다원 왜 저희한테 그런 얘기는 안 하셨어요?

    소미 굳이 말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다원 그럼요.

    소미 왜요?

    다원 자율주행 자동차엔 AI 딥러닝 딥러닝은 사물이나 데이터를 군집화하거나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이다. 딥러닝의 핵심은 분류를 통한 예측이다.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해 인간이 사물을 구분하듯 컴퓨터가 데이터를 나눈다. 분별 방식 중에는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이 존재한다. 비지도 학습은 직접적으로 정보를 가르치고 입력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진보한 기술이다. 현재 딥러닝 분야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 전세계의 연구자들이 해당 기술을 자율주행에 적용하고 상용화시키기 위해 개발에 힘쓰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탑재되어 있어요.

    소미 딥러닝이요?

    다원 자동차가 인간처럼 운전을 반복하며 학습하는 과정이 구현되는 소프트웨어요. 운전 자가 직접 주행하거나 선택하는 방식을 관찰하며 주행을 결정하게 되는 거죠. 그런 주행 데이터가 쌓여서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소미 그게 뭐 어쨌다고요.

    다원 이전에 비슷한 사고를 내고도 차량을 멈추지 않았다면,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스템 구축에 운전자의 책임도 있는 거죠.

    소미 운전자와 제조사의 책임을 결정하는 기준점은 ‘운전 당시’ 운전자 개입의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요? 엄마는 3단계로 운전했어요. 엄마가 아니라 자율주행 알고리즘이 사고를 낸 거라고요.

    다원 황효인씨의 선택이 그 알고리즘을 만든 거라면요?

    소미 말이 되는 소리를… (망설인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초부터 당신들이 위험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다원 3단계는 꽤 모호한 단계죠. ‘일상적인 주행 시에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작동하지만, 비상시에는 운전자의 개입이 요구되므로 운전자는 항상 직접 운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게 공식적인 자율주행 3단계의 정의입니다. 이걸 모른 채 3단계를 가동하는 사람은 없어요. 모두의 약속이라고요. 동물을 두 번이나 죽였으면 운전자 로서 ‘비상시’라는 판단을 했어야죠. 만약 오늘의 사고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숨을 고르고) 우린 황효인씨의 불성실한 판단력을 탓할 예정입니다.

    소미 이렇게 위험하고 모호한 단계의 기술을 왜 출시하셨어요? 그쪽 말대로라면 자동차 가 자율적으로 주행한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의 알고리즘을 장착한 건데, 도대체 왜 자율주행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고요.

    다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적 책임감을 벗어던지는 걸 좋아해요. ‘자율주행’ 자동차가 아니라 ‘인간과 컴퓨터가 함께 운전하는, 조금 더 편한’ 자동차는 아무도 원하지 않 는다고요.

    소미 사람들을 속이는 거네요.

    다원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 뿐입니다. 사람들이 안전하기만을 원했다면 자율 주행뿐만 아니라 자동차 자체가 탄생하질 않았겠죠. 모두 걸어 다니는 게 제일 안 전하니까요.

    소미 그럼 안전성이 제대로 식별되지 않은 기술을 사람들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내보내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다원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기술을 개발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어요. 돈을 주고 편리함을 구매했다면, 이후의 책임은 같이 져야지 않을까요? 세상의 모든 기술과 그에 따른 사고가 제조사만의 탓일 수가 있습니까? 게다가 자동차는 아직 운전자의 개입을 필수로 요구하는데요.

    소미 하지만

    다원 (말을 자르고) 경찰에 신고하시면 자율주행 사고 조사 위원회가 조사를 시작할 겁 니다. 그때부터는 저희도 당사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겠죠.

    소미 저희 책임으로 돌리고 당신들은 빠져나가겠다는 건가요?

    다원 그렇게 말한 적은 없는데요.

    소미는 다원을 노려보다가 다시 효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효인이 들고 있는 서류를 빼앗아 다원 앞에서 북북 찢는다. 효인은 의자에서 일어나 소미를 말린다.

    소미 한 번 해봐요. ‘개, 고라니 죽이고 사람도 죽이는 잔인한 자율주행 자동차’로 기사 타이틀 뽑히면 TD자동차 주식 얼마나 바닥 칠지 나도 궁금하네요.

    효인 소미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미 엄마,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오늘 사고 책임 엄마한테 다 덮어씌울 거라고…

    효인 죄송해요. 딸이 아직 어려서.

    다원 괜찮습니다. 서류는 다시 출력해서 드릴게요.

    소미 (어이없다는 듯) 허?

    다원은 바닥에 흩뿌려진 서류조각들을 줍는다.

    효인 그만해. 소미야. 이따가 엄마랑 얘기해.

    소미 (효인을 붙잡고) 엄마 진짜 왜 이래? 보험료 때문에 그래?

    효인 보험료 때문만은 아니야.

    소미 그럼 왜 이러는데. 엄마 법 좋아하잖아.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만 지키면 된다며. 갑자기 가치관이 변했어? 보험료 오르고 면허 취소될까 봐?

    효인 이래저래 복잡한 문제잖아. 신중하게 결정해야지.

    소미 고라니 죽었을 때는 그렇게 이성적이더니.

    대답하지 않고 다원과 함께 찢어진 조각들을 줍는 효인. 소미는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 다원을 향해 묻는다.

    소미 진짜 이 모든 사고가 저희 탓이라고 생각하세요?

    다원 제 개인적인 의견을 물으시는 건가요?

    소미 네.

    다원 어려운 문제죠. 백퍼센트 누구 한쪽의 책임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소미 그럼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다원 이게 제 일이니까요. 다 이렇게들 살잖아요.

    소미 그럼 질문을 바꿀게요. 이 일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다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제게는 옳고 그름이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게 정확 하겠네요. 이건 그냥 일일 뿐이니까요.

    소미 당신이랑 영원히 상관없는 문제일 것 같죠. 그러니까 이러는 거겠지.

    다원은 조각들을 전부 다 주워서 자신의 가방에 넣는다. 일어서서 정장 바지를 탈탈 턴다.

    다원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소미 네?

    다원 언젠가 제가 자율주행 자동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겠죠. 혹은 제가 사람을 치거나. 아주 작은 확률이지만요. 재수 더럽게 그 확률에 걸린다? 어쩔 수 없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죠. 그렇다고 이미 보편화 된 편리함을 포기하고 나만 불편하게 살 수는 없잖아요.

    멀리서 황명자 환자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의 외침이 들린다.

    효인은 소미와 다원을 두고 수술실 앞으로 뛰어간다.

    다원 고객님도 가보세요.

    소미 다 회사 방침이에요? 아니면 일부는 당신 생각이에요?

    다원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이건 우리 모두의 생각과 같죠.

    급하게 뛰어오는 효인.

    효인 (손짓을 하며) 소미야! 빨리 와! 할머니 깨어났어.

    효인의 말을 듣고 다원은 사무실의 직원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다원 황명자씨 사망 말고 상해로 서류 다시 준비해줘. 응, 금액 산정도 다시.

    소미는 그런 다원을 왜인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암전.



    막.
    구지수

    구지수

    1996년 광주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한태숙 연출가(경기도극단 예술감독)·장우재 극작가(대진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어쩌면 과거처럼 서슬 퍼렇게 시대를 관통하거나 일갈한다거나 하는 작품은 이제 없고, 오히려 시대가 몸을 뒤척이는 것처럼 희곡도 몸부림치며 변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극작가의 책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맑게 일어난 새로운 정신까지는 아니겠지만 쓸고 닦고 문지르며 닦아낸 세상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중요하다. 극작술이 현란하다고 해서 할 말을 잘하고 있다 착각하진 말자. 또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전달될 거라는 생각도 자제하자. 대신 뚜렷이 보고 진화된 언어가 작동하도록 섬세하게 운용하자.

    올해 역시 도시빈민,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때론 토로로, 때론 사회구조 진단과 함께 드러났다. 또 글쓰기의 어려움이 사회의 난맥상과 함께 몸을 섞으며 여전히 나왔다. 희곡에서도 미래 소재 서사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그러나 동시대 문제를 짚는 서사는 연일 매체를 통해 우리가 보고 듣는 그 이상을 넘어서진 못했다. 미래 서사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디스토피아적 전망과 최근 기술에 대한 트렌디한 논쟁을 알고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 많았다.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낙원에서’, ‘양지의 식사’, ‘리노의 호수’, ‘404 not found’, ‘고래의 기억’, ‘아빠가 돌아왔다’, ‘청춘의 밤’, ‘가방 안에 사는 남자’가 호명됐다. “***씨의 선택이 그 알고리즘을 만든 거라면요?”라는 상징대사 하나로 미래 서사를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로 구축한 ‘뉴 트롤리 딜레마’에 힘을 싣기로 했다.


  • 구지수

    구지수

    1996년 광주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서울에서 대전까지 걸어가는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길을 기대했지만, 막상 걷게 된 길 위는 상상과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많이 마주해야 했던 건 동물의 사체들이었습니다. 인간이 타고 다니는 차에 치였거나, 인간이 놓은 약을 먹었거나, 인간이 먹기 위해 가두고 죽였거나…. 모두 인간 때문에 죽은 동물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썩어가는 동물의 사체보다 이제까지 제가 살아온 삶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뉴 트롤리 딜레마’는 내일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오늘 당장 죽어가는 것들을 세상의 가장자리로 내몰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쓰게 된 글입니다.

    아낌없는 축하를 건네주신 이주영 선생님, 고연옥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시작을 지켜봐 주신 박세미 선생님, 그리고 늘 제 편이 되어주시는 박규남 선생님 역시 감사드립니다.

    늘 든든하게 제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함께 걸어가며 모두와 오래도록 행복 하고 싶습니다.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식을 단 한 번도 막아선 적이 없는 부모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 믿음과 응원을 연료 삼아 쓴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모든 행복과 행운의 원천, 희연에게 선명한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만약 딜레마에 정답이 있다면 그건 ‘영원한 고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되더라도, 성실하게 고민하며 오래오래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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