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기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이 돌을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보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이근석
1994년 충남 논산 출생
2012년 고등검정고시 합격
문정희 시인·조강석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11명의 작품이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원고들을 검토하며 우선 드는 생각은 다양성이 아쉽다는 것이었다. 질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는 작품들이지만 단정한 묘사와 소소한 토로가 주를 이루었다. 예년에 비해 표준형에 수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모험과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시단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해 슬쩍 먼저 미안해지기도 했다. 최종 검토 대상이 된 3명의 작품을 추리는 동안 심사위원들은 언어 운용 전략의 부재, 리듬감 없는 수다, 절제의 부족, 사소함에 매몰되는 현상 등을 결격 사유로 열거할 수 있었다.
「구조」외 5편은 시적 묘사의 특이성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태를 목전에 놓고 주도면밀하게 살피는 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한 대목 한 대목 인상적인 묘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묘사가 구조를 이루는 데 도달하지는 못했다. 근사하게 그려보이는 능력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헤아리는 사유 없이는 왕왕 심부름꾼의 성실함에 그치기 마련이다.
「수변」외 5편은 우선 문장 단위에서 매력을 발하는 작품들이다. 문장의 힘과 이미지의 리듬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마지막까지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산문투의 진술에 대한 아쉬움, 절제가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조금 더 기다려봄직하다는 의견과 부합하여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여름의 돌」외 5편이 당선작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리듬감 때문이다. 과장이나 과잉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러운 리듬에 실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범상해보이나 드문 기량이다. 일종의 빼어난 ‘예사로움’에 달한 기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름의 돌」은 청년의 불안과 기대를 수일한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리듬을 통해 순조롭게 표현하고 있어 당선에 값한다. 과감함이 숙제라면 숙제일 것인데 안정 없는 기획보다 신뢰할 만한 시적 진술이 올해의 선택이 된 것은 당선자에게 영광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본심 진출작(11편)
개는 빠르고, 나는 느린 편이다
인터뷰
육지 사람
아스타 마냐나
구조
청첩
빛나는 언덕과 스테인드 글라스
농담
꿈의 꿈치들
전야제
리스트
이근석
1994년 충남 논산 출생
2012년 고등검정고시 합격
각자의 시가 있다는 말이 좋았다. 기미였다 두드러질 때 좋았다. 환경이 변하고 이런저런 사건의 여파가 시를 바꾸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이전의 시와 다음 시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도 좋았다. 그대로 그 시가 있고 어느 날 돌아볼 때 이렇게도 보이고 또 저렇게도 보이는 게 좋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침착 하고 치열한 사람들이 좋았다. 나는 그들과 그들의 시에 자주 의지해왔다.
살아가면서 쓰지 않는 삶을 배워야 했다. 읽지 않는 삶도 덤으로. 그런 건 배움과 삶이 한 몸이어서 그저 산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것도 시를 쓰는 과정이라고 혹자는 말하였지만 그건 그냥 시가 없는 세상이던데. 그럴 땐 시 쓰는 당위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이런 생각만 들었다. ‘세상엔 이미 훌륭한 시인들이 많이 있고 나는 좋은 시를 쓸 재능도 자신도 없다.’
나이가 차갔다. 구직하려 하였으나 어느 사업체에서도 연락 오지 않았다. 나한테는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은 구직요망의 시일는지 모른다. 내가 아니라 내 정황이 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 관한 나의 자질은 참혹했던 현실이지 내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현실을 함께 살아준 나의 사람들이 있었다. 받게 된 것에 따라올 이유와 책임이 있다면 전자는 그들의 까닭으로, 후자는 내가 지었으면 한다. 모두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 잘 지내었으면 한다. 예심 본심에서 심사해주신 분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린다